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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WAVE k-hop] K - 합이 뜬다

[KOREAN WAVE k-hop] K - 합이 뜬다


2NE1, 아지아틱스 등 실력파 래퍼나 R&B 가수가 주도하는 한류 힙합이 세계를 사로잡는다

봇물처럼 팝 그룹을 쏟아내는 한국 음악계에 약간 이색적인 기대주가 등장했다. 지난해 10월, 6회의 일본 공연에서 7만 명의 청중을 동원한 4인조 걸그룹 2NE1이다. 외모와 춤 솜씨가 뛰어난 걸그룹과 보이그룹을 통칭하는 용어로 K-팝이 인기를 끌었지만 2NE1은 K-합(K-hop)을 대표한다. K-합이란 실력파 래퍼나 R&B 가수가 주도하는 한류 힙합을 가리킨다.

아시아에서 기세를 올리는 한국의 음악계에서 최근 아이돌 그룹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이 탄생하고 있다. 그들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의 음악팬들을 겨냥한 사운드를 창조한다. 그리고 2NE1의 작사·작곡을 맡은 테디 박(33·박홍준) 등 한국계 미국인 프로듀서들이 그들의 재능을 반짝이게 다듬는 역할을 한다.

도쿄 하라주쿠에서 취재에 응한 2NE1의 리드 래퍼 CL은 “유튜브 덕분에 한국, 일본, 그리고 세계라는 경계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가 하나가 된다.”

K-팝은 요즘 유튜브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아시아 이외의 지역에서도 팬을 늘려나간다. 이른바 정통파 아이돌인 동방신기나 소녀시대가 지난해 파리와 뉴욕에서 라이브 공연을 가진 것도 그 덕분이다. 한국 가수의 세계진출의 꿈은 야망인 동시에 필요에 따른 선택이다. 한국이라는 작은 시장에서는 수익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세계 제2의 음악시장으로 꼽히는 일본과 세계 1위의 미국시장을 겨냥한다.

한국의 ‘만들어진’ 아이돌 그룹이 미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우려하는 평론가도 있다. 멤버 모두가 같은 의상과 분장으로 서로 구분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아시아 문화를 좋아하는 계층에는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일반 미국인들에게까지 통할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테디 박 등이 프로듀싱하는 힙합은 뭔가 다르다. 2NE1은 지난해 11월 미국 음악전문 채널 MTV 이기(IGGY)에서 ‘세계최고 신인 밴드(Best New Band in the World)’로 선정됐다. 같은 달 그들과 같은 회사 ‘YG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빅뱅도 MTV 유럽 뮤직 어워드에서 ‘월드와이드 액트(World Wide Act)’상을 수상했다.

K-합은 소울, 힙합, 일렉트로니카, 에스닉뮤직을 바탕으로 세계의 음악팬을 만족시키는 진정한 크로스오버 히트를 추구한다. 이는 K-팝보다 훨씬 깊이가 있는 음악혁명이다. 2NE1 결성 당시부터 프로듀싱해 온 테디 박은 퀸과 우탱 클랜의 음악을 들으면서 뉴저지와 캘리포니아주에서 성장했다. 10대 후반에 한국으로 건너와 음악활동을 시작한 그는 왜 세계에서 활약할 수 있는 아시아인 가수가 없을까 항상 의아해 했다.

박씨와 마찬가지로 현재 가장 주목 받는 한국계 미국인 프로듀서 중 한 명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자란 정재윤(41)이다. 90년대 초반 한국음악계에 처음 소울과 R&B를 들여온 인물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당시 “한국의 힙합계는 규모가 아주 작았다”고 정씨는 돌이켰다.

2000년대로 접어들며 역시 LA 출신의 타이거 JK와 솔로 힙합 가수인 그의 부인 윤미래가 정씨의 뒤를 이었다. 텍사스주 태생인 윤씨가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전근으로 한국으로 이주할 무렵 힙합은 아직 언더그라운드 클럽에 국한돼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싱글 차트의 최소 90%는 R&B의 영향을 받는다”고 그녀는 말한다. 정씨에 따르면 한국에서 R&B가 사랑받는 이유는 원래 한국인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발라드조차 템포가 빨라졌지만 한국의 R&B는 지금도 R&B다운 멜로디 라인을 중시한다고 정씨는 말한다.

정씨가 현재 프로듀싱하는 가수는 한국계 미국인 남성 3인조 힙합 그룹 아지아틱스(Aziatix)다. 이들이 일본을 건너뛰어 미국에 진출해 발표한 데뷔 앨범 ‘아지아틱스’는 지난해 5월 미국 아이튠스의 R&B/소울 앨범 차트에서 5위에 올랐다.

한편 2NE1의 멤버구성은 마치 글로벌한 음악성을 과시하는 K-합의 축소판이다. 메인 보컬인 박봄은 중학교부터 대학(보스턴 소재 버클리 음대)까지 미국에서 생활했으며 박산다라는 필리핀에서 배우로 활약한 경험이 있다. CL은 유소년기의 태반을 프랑스와 일본에서 보냈다.

그런 다채로운 멤버가 부르는 노래는 독창적이다. 2NE1은 한 노래에 여러가지 언어를 사용하거나 세계의 다양한 음악을 삽입하기도 한다. ‘내가 제일 잘 나가’에서는 아랍음악을 연상케 하는 사운드가 반복적으로 사용돼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곡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2NE1의 곡은 아이돌 그룹에는 없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외모에 자신 없는 여자의 심리를 노래한 ‘Ugly’는 CL의 이야기를 들은 테디 박이 그 자리에서 가사를 붙였다. “그는 여자의 마음을 안다”고 CL이 말했다.

여성의 독립을 장려하는 가사를 쓴다고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남녀가 평등하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자기 주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박씨가 말했다. 리한나, 레이디 가가, 그리고 케이티 페리 등 개성 강한 여성 아티스트가 큰 성공을 거두는 해외에서 그런 메시지가 잘 통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프로듀서들은 아시아의 대중음악이 촌스럽다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K-합의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인정받는 것이 그 증거가 될 듯하다. 전망은 나쁘지 않다. 올해 미국 진출이 예정된 2NE1에는 블랙 아이드 피스의 윌아이엠(will.i.am)이 자진해 프로듀싱을 맡았다. 지난해 말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어느 시상식에서는 윌아이엠이 CL과 공동 출연해 2NE1의 후견인임을 과시했다.

테디 박은 한국어가 걸림돌이 되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일본이나 중국의 곡을 들으면 발음이 영어와 너무 다르기 때문에 단어에 신경이 쓰여 리듬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언어의 이점이 있다. 한국어는 영어의 어떤 음도 표현이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인의 입맛에 맞춰 사운드를 지나치게 뜯어고치면 K-합 특유의 색깔이 사라지기 쉽다. 윤씨도 그 점을 걱정한다. “음악을 통해 세계가 하나가 되면 기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음악의 정신을 잃게 되는 건 보고 싶지 않다.”

빌보드지의 로브 슈월츠 도쿄 지국장은 비나 보아 같은 한국의 팝스타가 미국 진출에 고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그는 K-합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현재 미국의 팝뮤직은 R&B가 강한 영향을 미친다. K-합은 지금까지의 한국음악과 달리 소울의 성격이 뚜렷하고 R&B의 영향이 강하다. 아지아틱스 등은 개성이 강한 최첨단 사운드이며 무엇보다 힙합 그 자체다.”

K-합의 입장에서 최대의 장벽은 “한국인 아티스트에게 문화의 벽은 넘을 수 없는 존재”라는 미국인의 편견일 듯하다. 하지만 슈월츠는 낙관적이다. “힙합을 좋아하는 미국인은 일반적인 팝음악을 듣는 백인중류층에 비해 관용적이다. K-합도 받아들여질 성싶다.”

외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K-팝에서는 지금까지 아티스트의 재능은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실력파 K-합에는 태평양을 건너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길거리 청춘들의 마음을 확실히 사로잡는 능력은 이미 아시아에서 입증됐다. K-합이 아주 색다른 아시아의 랩으로서 한때의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고 음악의 대세를 이루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팝그룹에는 천편일률적인 패스트푸드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우리는 소울이 듬뿍 담긴 가정식 요리를 음악팬 앞에 내놓고 싶다”고 정씨는 말한다.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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