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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S. RELIGION] 백악관과 뉴욕 대주교가 붙었다

[THE U.S. RELIGION] 백악관과 뉴욕 대주교가 붙었다



맨해튼 매디슨 애비뉴 452번지, 뉴욕 대주교 티머시 M 돌런의 관저. 19세기 신 고딕풍 맨션의 육중한 정문 바로 안쪽에 이 장소의 성격을 말해주는 단서가 놓여 있다. 현관 협탁 위에 놓인 함 속에 짙은 빨강색 비레타(biretta)가 얹혀 있다. 지난 2월 돌런이 로마 추기경회(the College of Cardinals)의 일원으로 승격됐을 때 교황이 그의 머리에 얹어 준 신부용 사각모자다. 옆에는 또 다른 주홍색 모자가 놓여 있다. 돌런이 응원하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즈 팀의 로고가 새겨진 야구모자다. “나는 의전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don’t know all the protocol)”고 돌런이 말했다. “추기경 모자를 입구에 놓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

돌런은 세인트루이스 교외에서 성장했지만 천생 브로드웨이 체질인 듯하다(was born for Broadway). 성격이 활달하고 그만큼 몸통 둘레도 크며 화려한 성격이다(An outsize personality of great mirth, and ample girth). 성직자들은 때때로 애정을 담아 그를 ‘방대한 신부님(His Immensity)’이라고 부른다. 돌런은 2009년 미국 가톨릭의 얼굴 격인 대주교구의 제10대 대주교로 뉴욕에 부임했다. 그는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유명인사가 됐다. 유머를 즐기고(loved to crack wise), 몰려드는 취재진을 마다 않고(welcomed a media scrum), 뉴욕 양키스에 관심 있는 척하지 않는 사제를 뉴욕이 받아들이리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했다(양키스는 시즌 개막식 시구를 그에게 요청했다).

가톨릭 교회는 아동 성추문 스캔들로 상처 입고 내부 분열을 일으키며 갈수록 까칠하게 주변 문화로부터 멀어졌다. 돌런이 그런 갈등과 상처를 봉합하는 듯했다(seemed a balm). 그는 골수 정통파지만 성직자(churchman)로서의 재능은 다른 데 있었다. 불협화음 없이 교리를 전달하고, 교회를 심판자가 아니라 인류를 사랑하는 대변자로 알리는 능력을 지녔다. “우리는 항상 잔소리하고, 반대하고, 비난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그가 말했다. “가톨릭 교회는 오히려 인간사(the human project)에서 가장 고귀하고 정신을 고양하는 요소를 이끌어낼 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is at its best).” 교회의 이미지 개선이 절실히 필요할 때 동료 주교들이 2010년 그를 미국 가톨릭 주교회(U.S. Conference of Catholic Bishops)의 의장으로 선출하면서 돌런은 미국 가톨릭 교회를 대표하는 얼굴이 됐다. 바티칸은 기회가 오자 곧바로 돌런을 추기경으로 승격해 지지의사를 분명하게 표명했다. 그에 따라 돌런은 차기 교황 선출 투표권을 얻으며 사실상 잠재적인 교황 후보(papabile)가 됐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영향력과 권위 측면에서 실제 교회 실력자는 아닐지 몰라도 사실상 이미 미국의 교황과 같은 존재다.

그러나 바로 그 역할 때문에 돌런은 이제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to play against type) 하는 입장이 됐다. 오바마 정부의 법령에 맞서 위험성이 큰 싸움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leading the high-stakes fight). 교회의 입장에서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the Church finds morally objectionable) 제품과 서비스에 고용주들이 보험을 제공하도록 하는 법령과의 싸움이다. 그 법령은 피임약, 불임술(sterilization), 낙태 유도제를 보험 대상에 포함시킨다. 지난 1월 그 정책의 발표로 불붙은 전쟁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3월 중순 돌런이 이끄는 주교단은 반대입장을 강력하게 재천명했다. 오바마 정부의 규제에 대한 반대를 정책상의 최우선과제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뉴스위크와 인터뷰에서 돌런은 이른바 “교회의 정체성, 교회의 내부 문제에 대한 부당하고 전례 없고 과격한 침해”에 맞서 싸우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전쟁을 어느 선까지 확대할(how far he would carry the battle) 작정이냐는 물음에 돌런은 정부가 교회와 유관기관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지 않는다면 특단의 조치에 의지하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원칙에 입각한 해결책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의 일(가톨릭 학교, 자선단체, 의료시설의 운영)을 포기하거나 손을 떼도록 강요 받거나, 또는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 운동을 벌여 벌금을 물게 되는 상황에 몰린다면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일을 하기보다는 그런 방안을 검토해야 할지 모른다.”

그것은 자신이 원한 싸움이 아니라고 돌런은 주장한다. 그는 조정자로 성가를 높이며 전국 무대에 등장했다(arrived on the national stage with the reputation of a conciliator). 그는 교회가 일부 교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솎아내는 작업에 나서서는 안 된다고(should not be in the business of weeding out) 믿는다. 밀워키 대주교 시절 그는 교회가 반대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의 응징(영성체 또는 교구민들의 투표 거부 등의 방법으로)을 권유한 주교들에 동조하지 않았다. “가톨릭 주교들은 원칙적으로 낙태는 잘못이라는 데 뜻을 같이할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가르치는 방법이 최선인지, 교회의 가르침과 상충되는 입장을 취하는 가톨릭 신자 공직자를 응징할지, 그리고 그들을 어느 선까지 응징해야 할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릴 것이다. 나는 사람들과 무릎을 맞대고 앉아 ‘우리 앉아서 이 문제를 대화로 풀어봅시다. 내가 먼저 성직자로서 무엇이 도움이 될지를 말해 볼게요’라는 식으로 조정하는 방식을 훨씬 선호한다.” 실제로 2004년 대선 때 가톨릭 신자였던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종교관을 검증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돌런이 전국 종교계에서 부상한 이후 그런 관행은 사실상 사라졌다(가톨릭 교도인 캐슬린 시벨리우스 보건복지부 장관, 그리고 동성결혼 법안에 서명한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와 마틴 오맬리 메릴랜드 주지사에게는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돌런의 타협적 성향은 현재의 갈등에서 그의 주요 반대파들조차 인정한다. 가톨릭 보건 협회(the Catholic Health Association) 책임자인 캐롤 키헌 수녀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건강보험 전쟁에서 오바마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왔다. 그만큼 주교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as reliable an irritant to the bishops). 키헌 수녀는 돌런을 가리켜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교회가 폭넓은 견해를 수용하는 큰 천막이라고 믿는 듯하다(I think he believes that the church is a big tent).” 백악관은 돌런을 말이 통할 만한 대화상대로 간주한다. 그리고 여전히 어떤 형태의 절충안을 기대한다. 돌런은 협상은 가능하지만 정부가 현재 내건 조건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말한다. “백악관은 거의 관계가 없는 문제의 수정(some tinkering with tangential issues)만 논의하려 한다”고 돌런은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 점이 신경에 거슬린다.”

오바마 건강보험 법령을 둘러싼 논란은 이미 대선 정치로 확산됐다. 하지만 누구도 득을 보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그리고 11월 대선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올 가을 오바마 대통령의 가장 무서운 적수는 공화당 후보가 아니라 쾌활한 성격의 뉴욕 대주교가 될지도 모른다. 돌런은 당파 싸움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고 말하지만 이 문제를 우려하는 가톨릭 교도들이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오바마가 2008년 자칭 가톨릭 교도들의 표를 쉽게 쓸어갔지만(easily carried the vote of self-described Catholics) 꾸준히 교회에 나가는 신자들 사이에선 큰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다(his advantage among regular churchgoers was razor thin).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가톨릭 교도들은 낙태반대(pro-life) 문제에 강하게 반응한다”고 돌런이 말했다. “그들은 또한 경제문제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난 3개월을 돌아볼 때 종교의 자유 문제에도 상당히 강경했다. 가톨릭 인구 비중이 높은 주요 주에서 교회에 나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 선거의 향배를 바꿔놓을 만큼(to throw the election one way or the other) 비중 있는 부동표(swing vote)가 될 수 있을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피임 법령을 둘러싼 싸움은 바티칸 II로 시작된 교회 내부의 오랜 분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바티칸 II는 1962년 가톨릭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목적으로 소집된 공의회(ecumenical council)다. 1965년 그 회의가 결론을 내릴 무렵 전면적인 개혁이 중점의제가 됐다. 우위에 선 개혁파들은 당시 사회문화의 영향을 받아 교회의 철저한 쇄신(a thoroughgoing remaking)을 구상했다. 사회정의에 중점을 두는 진보적인 이념이 수십 년 동안 미국 주교체제(the American episcopacy)를 지배했다. 그 이념은 상당부분 미국 주교 평의회의 초대 수장이었던 조셉 버나딘에 의해 형성됐다. 버나딘은 “일관성 있는 생명윤리(a consistent ethic of life)”를 따르도록 교회에 촉구했다. 가톨릭이 뱃속의 태아를 보호하는 문제만큼이나 빈민 지원(tending to the poor)과 평화 옹호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버나딘의 비전을 구현한 한가지 사례가 관할 시카고 관구에서 도시의 빈민지역 사우스 사이드를 대상으로 실시한 지역진흥프로젝트(Developing Communities Project)였다. 그 프로젝트의 설립자 중 공동체 운동가 솔 알린스키 밑에서 교육받은 운동가가 있었다. 그는 1984년 뉴욕으로 건너가 젊은 콜럼비아대 졸업생을 선발해 프로젝트의 운영을 맡겼다. 바로 버락 오바마가 지역사회 운동가(a community organizer)로 활동하기 시작하게 된 배경이다. 그는 사우스 사이드에 있는 홀리 로자리 교회의 사무실에서 활동했다.

그 무렵 교회 내에 개혁이 정도를 벗어났다고(the reforms had gone off track)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폴란드 출신의 카리스마 넘치는 요한 바오로 2세와 그의 오른팔(그리고 훗날의 후계자)인 조셉 라칭거가 대표적이었다. 그들은 바티칸 2차 공의회(Vatican II)를 재해석하는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뿌리 깊은 정통교리에서 비롯된 복음전도(evangelization)에 중점을 뒀다. 요한 바오로 2세 개인과 그의 교리를 철저히 따르는(deeply attached to) 신세대 성직자들이 부상했다. 미국 교회 내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들 중 한 명이 티머시 돌런이었다. 그는 1950년대 미주리주 볼윈에 있는 홀리 인펀트 교구에서 교육을 받았다. 아일랜드 출신 수녀들 밑에서 엄격한 공동체 생활을 했다. 그 영향으로 돌런은 신앙이 즐겁고 자유를 준다는 비전을 오래 간직하게 됐다. “교회는 ‘긍정’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그가 말했다. “ ‘노’라고 말하는 상황은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행동을 감지할 때뿐이다(only time she says no is when she detects something negating human dignity).”

가톨릭 교회의 이들 양대 파벌이 지난해 11월 8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 마주 앉았다. 정부가 입안 중이던 피임규제를 논의하려 오바마 대통령이 돌런을 백악관으로 초대했다. 사전에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었다. 주교들은 100년 전부터 전국민 건강보험(universal health care)을 지지해 왔다. 그런 그들이 오바마 개혁안의 최종안에 강력히 반대했다. 낙태를 보험대상에서 제외하는 규정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바마와 의회 내 동조자들은 주교들을 따돌렸다(went around the bishops). 대신 뜻을 같이 하는 가톨릭계 인사들과 손을 잡았다. 키헌 수녀가 핵심인물이었다. 키헌은 법안의 통과 직전 숨가빴던 며칠 동안 정부가 의지하는 가톨릭계 인사가 됐다(became the go-to Catholic). 키헌은 감사의 표시로 법안 서명에 쓰인 펜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돌런은 그것을 대통령의 냉소적인 정치 제스처이며 키헌 수녀의 불충한 행동이라고 봤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대통령 집무실에 초대받았을 때 주교들로선 그 문제에 많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었다(had a lot at stake). 그들은 다수의 사회적 프로젝트에서 정부와 파트너였으며 정부의 자금지원에 크게 의존했다. 백악관 회의 불과 몇 주 전 정부는 가톨릭주교회에 맡겼던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구호 감독업무를 다시 빼앗아갔다(had relieved the conference of its role of overseeing relief for human-trafficking victims). 가톨릭 운동가들이 피해자들을 낙태나 피임 서비스 기관에 소개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wouldn’t refer victims to abortion or contraceptive services). 이제 낙태와 동성결혼 같은 윤리적 현안에 관한 가톨릭의 근본 교리를 두고 오바마 진영에서 동성애 혐오적이고 성차별적이고 심지어 불법적으로 간주한다고 일부 주교들은 우려했다.

돌런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외경심을 느꼈으며 대통령으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회의가 끝날 때 규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런에 따르면 오바마는 “건강보험, 교육, 자선 문제에서 잘 해나가고 있는 교회를 방해할 일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을 것이며 양심의 수호를 성스런 의무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시벨리우스가 1월 20일 그 규제를 발표했을 때 돌런은 충격을 받고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고용주가 피임을 보험 대상에 포함시키도록 하는 정부의 법령에서 유일한 면제 대상이 실제 교회(actual houses of worship)뿐이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입장에서 이는 인가된 사목활동(ministry: 교회의 업무)이 무엇인지를 국가가 결정하는 월권행위였다. 키헌 수녀도 그것을 실수라고 부른 명백한 권한남용이었다. 오바마는 곧바로 철회하고 수정을 명령했다. 이번에도 오바마 진영은 주교들을 따돌리고 그 영향력 있는 워싱턴 DC 수녀의 반응을 물었다. 그 결과가 백악관의 표현을 빌리자면 2월 10일의 “조정안(accommodation)”이었다. 피임 서비스를 제공하는 책임을 고용주에서 보험사로 떠넘겼다. 키헌 수녀는 즉시 그 계획을 지지했다.

오바마는 그 계획을 발표한 날 아침 돌런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대통령에게 ‘각하, 이 문제에 관한 제 생각을 묻는 겁니까? 이 법령이 먹힐지 알아보려고 반응을 떠보는 겁니까(Are you floating this to see if this will work)? 아니면 각하의 결정을 통보하는 겁니까?’라고 물었다”고 돌런이 돌이켰다. “그러자 대통령은 ‘후자’라고 답했다.”

돌런은 그 개정안을 가리켜 훌륭한 첫걸음이지만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날 늦게 측근과 동료 주교들의 의견을 들은 뒤 그는 오바마의 ‘조정안’이 이름만 다른 같은 내용(a distinction without a difference)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고용주에게 있던 책임을 보험사로 넘긴 건 회계조작(accounting trick)에 불과하다고 돌런이 말했다. 게다가 개정안에 따르면 여전히 어떤 교회 유관기관을 사목활동 기관에 포함시킬지를 정부가 결정하며 자체적으로 보험을 든 기관들을 면제해 주지도 않았다. 많은 가톨릭 기관들이 자가보험을 들었다.

백악관 측근들은 돌런이 대화에 직접 참여하면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고 믿었다. 돌런은 절충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백악관에서 나오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법령에서 제외되는 사목활동을 좁게 정의해야 한다는 백악관의 입장이 확고해 보이기 때문이다. 돌런은 의회나 법원이 도움을 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한편 돌런과 주교들은 홍보 캠페인을 강화할 계획이다. 정보 소식지의 교회 배포도 포함된다. 교구에 투표자 등록 운동을 장려하며 딜 허드슨 같은 독립적 운동가는 이미 주요 주에서 선거 캠페인 현장교육(outreach training sessions)을 실시하는 중이다. 딜 허드슨은 공화당 선거전략가 칼 로브를 도와 조지 W 부시가 가톨릭 표를 끌어 모으도록 한 인물이다. “사려 깊은 유권자가 가톨릭 교리에 입각해(informed by his or her Catholic faith) 고려할 문제가 다수 있지만 몇 가지 중요한 문제는 타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돌런이 말했다. “그중 첫째가 뱃속에 있는 태아 생명의 보호다.”

교회 지도자들이 특정 후보를 실명으로 거론하며 당선 또는 낙선 운동을 하는 건 “역효과를 낸다(it’s counterproductive)”고 돌런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원칙을 말해야 한다”고 그가 덧붙였다. “그리고 그렇게 뻔한 문제에서는 원칙을 말할 때 사람들은 대개 누구를 말하는지 안다.”

뉴스위크와 인터뷰가 끝날 무렵 돌런은 관저 뒤편에 있는 방으로 장소를 옮겼다. 성패트릭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뒷문 통로 가까운 방이다. 한 사제의 도움을 받아 사제복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대성당에서 집전할 의식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주홍색 조끼의 단추들(“아직도 이 옷 입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을 끼우면서 뉴욕 초대 대주교 존 휴스의 초상화 아래 섰다.

완전히 대조적인 광경이었다(was a striking juxtaposition). ‘비수 존(Dagger John)’으로 알려진 휴스는 아일랜드 태생의 19세기 개혁 운동가로 싸움닭이었다(a fiercely combative man). 공립학교에서 가톨릭을 이단 종교(religious deviance)로 가르치던 시절 뉴욕에서 이민 배척주의자 무리(nativist mobs)와 신교도 기성세력과 싸웠다. 1864년 세상을 떠나기 전 휴스는 새로운 성패트릭 대성당의 주춧돌을 놓았다. ‘타협적(conciliatory)’이라는 말은 그의 사전에 없었다.

사제복을 입고 대성당에 입장할 준비를 거의 마친 돌런은 사제가 목에 커다란 황금색 패용 십자가(pectoral cross)를 두를 동안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추기경은 자신의 심장 바로 아랫부분에서 십자가를 매만지면서 물었다. “이게 누구 건지 아시오(You know who this belonged to)?” 그는 턱으로 휴스의 초상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비수 존이오.”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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