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circassians “우리 조상의 무덤을 밟지 마라”
the return of the circassians “우리 조상의 무덤을 밟지 마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나라 밖의 문제는 차치하고 모스크바 시내의 시위만으로 충분히 골치가 아프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꿔야 할 듯하다.지난 5월 말 터키 이스탄불, 뉴욕, 브뤼셀, 그리고 세계의 다른 도시에서 그의 최대 역점사업(most cherished project)을 겨냥한 시위가 시작됐다. 2014년 동계 올림픽 말이다.
캅카스 산맥의 휴양도시 소치의 시설들이 이미 그곳을 찾은 스키어들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고 있지만 수천 명의 성난 운동가는 푸틴의 잔치에 재를 뿌리기로 작정했다(are determined to spoil Putin’s party).시위자는 체르케스인들이다(Circassians).과거 크림 반도와 현대 그루지야 공화국 사이 흑해 해안에 자신들의 나라를 가졌던 민족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150년 전 캅카스 지역 전체를 장악하려는 제정 러시아 군대의 무자비한 대공세에 나라를 잃었다(lost it a century and a half ago to a brutal campaign by the imperial Russian army to seize the entire Caucasus region). 체르케스인들은 40년 동안버티다 결국 1864년 5월 21일 항복하고 조국에서 쫓겨났다. 그 후손들은 최근까지 조용한 의식으로 그날을 기억했다.
그러나 2007년 러시아의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신청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받아들이면서 문제가 생겼다. 그 개최지가 바로 1864년 체르케스인들이 항복한 소치이기 때문이다. 그뒤로 5월 21일은 체르케스인들에게 분노의 날이 됐다.“전 세계에서 운동선수들이 몰려와 조상의 무덤 위에서 스키 또는 스케이트를 탄다면, 그러면서도 그런 사실조차 모른다면, 당신은 아니 러시아인들은 기분이 어떻겠는가?”
29세의 전화 기술자 다니알 메르자가 물었다. 지난해 5월 21일 그는 체르케스인 친구 클라라와 앨런 캐드코이 부부와 함께뉴저지 자택에서 터키까지 날아갔다. 현재대다수 체르케스 민족이 모여 사는 곳이다.우리 4명은 구호를 외치는 수천 명의 체르케스인 군중 앞쪽에 서게 됐다. 사람의 물결위에 소치 반대 깃발이 거품처럼 일렁였다(topped by a foam of anti-Sochi banners).
그 물결은 이스탄불의 이스티클랄 거리로 아져 나와 경찰의 3중 저지선에 부닥쳐 뿔뿔이 흩어졌다. 경찰은 곤봉과 최루탄으로 장하고 러시아 영사관 앞을 지켰다.메르자는 확성기를 손에 들고 어깨를 딱 벌린 채 영어로 구호를 외쳤다(Speaking into a bullhorn, Merza squared his shoulders and shouted the group’s demands in English). 소치 올림픽 반대, 체르케스인 대학살 인정, 150년 전 러시아인들이 앗아간 고국으로의 귀환권 인정. 시위대가 따라 외치는 터키어 구호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그들의 목소리는 양쪽 가파른 언덕의 주택들에 부닥쳐 메아리쳤다. “우리는 소치 올림픽을 원치 않는다!” 앨런은 주먹을 들어하늘을 찌르며 그들과 함께 구호를 외쳤다(Allan pumped his fist and shouted along with them). “단어의 의미도 모르고 구호를 외친 건 처음”이라고 그가 나중에 말했다.
그의 아내도 비슷하게 열광했다. “이런 느낌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그녀가 말했다. “우리가 터키어는 하지 못하지만 언어가 달라도 메시지는 같다.”푸틴에게 2014년 동계 올림픽 유치는 개인적인 승리였다. 소치에선 나무가 울창한 캅카스 산들이흑해로 뻗어내려(the forested Caucasus Mountains drop into the Black Sea) 오전에 수영을 하고 오후에 스키를 즐길 수 있다.
러시아가 옛 소련 이후의 문제들을 극복했음을 세계에 과시하기에 는 안성맞춤인 장소로 여겨졌다. 소치 올림픽을 위협하는 요인이 있다면 산의 반대편에 있는 체첸이라고 치안 전문가들은 말했다. 따라서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 체르케스인 시위대가 나타나 녹색과 황금색 깃발을 휘두르며 소치 올림픽 개최지 변경을 요구했을 때 대다수 평론가는 어리둥절했다.
체르케스인들이라고? 그들이 누구지? 150년 전에는 그런 질문이 필요 없었다.체르케스인들은 세계인들이 응원하는 자유의 투사였다. 러시아의 팽창정책이 세계의 안정을 위협한다고 여기는 서방 외교관들의 총아였다(the darlings of Western diplomats who viewed Russia’s expansion as a threat to global stability). 그들은 거의 승산이 없음을 알면서도 고국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체첸인들보다 5년을 더 버텼다. 패배는 그들에게 대재앙을 초래했다. 고국 땅에서 쫓겨난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콩나물 시루 같은 배에 몸을 싣고 흑해를 건너 터키로 건너갔다. 아무도 희생자 수를 헤아리지 않았지만 어느 현대 역사가에 따르면 40만 명이 사망하고 거의 50만 명이 추방됐다.비교적 소수만 러시아 체재가 허용됐다.
그들의 대탈출은 서방에서 1면 뉴스로 다뤄졌지만 곧 역사에서 잊혀졌으며(they soon slipped out of history) 터키 군주 후궁의 첩으로 많이 들어갔다는 정도로만 기억됐다(remembered only as a source of concubines for the Sultan’s harem). 체르케스인이 아닌 제3자가 그들의 비극을 다룬 책을 저술한건 내가 유일한 듯하다.그것도 2010년에야 출간됐지만 말이다.
당시의 문서들은 러시아인들의 소행을 말해준다. 체르케스인 수십 만 명을 범선에 실어 쫓아내고 그들의 집을 러시아 제국의 특공대 격인 코사크인들에게 넘겨줬다(turned the evictees’ abandoned homes over to the empire’s shock forces, the Cossacks).한 군사 보고서에 따르면 논에 남겨진 곡물을 코사크인들이 걷어들여 식량으로 썼다.
나는 영국의 옛 문서 자료를 조사하다가 체르케스인 난민들의 끔찍한 상황을 묘사하는 편지들을 찾아냈다. “상점 앞 문턱, 길거리 한복판, 광장, 정원, 나무 밑 등 도처에서 병들고 죽어가거나 죽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고 삼순 마을을 찾은 오스만 제국 보건 감독자가 썼다. 당시 러시아 영사가 보낸 편지에 따르면 1864년 하루 200명의 체르케스인이 죽어가던 곳이다.
냉전이 끝나고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체르케스인들은 자신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다(Circassians began to piece together their history). 2005년 무라트 베르 제고프라는 체르케스인 운동가 겸 상점 주인이 러시아 의회에 자국의 파괴를 민족학살(genocide)로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그 요구는 합당한 듯했다. 러시아 의원들은 앞서 스탈린 시절 체첸인, 크리미아 타타르족(the Crimean Tatars), 볼가 독일인(the Volga Germans) 등 그밖에 다수 민족의 국외추방을 모두 민족학살로 인정했다. 체르케스인들도 거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비극을 당했다(the Circassians’ tragedy was every bit as bad).
그러나 그 투표가 실시될 당시엔 러시아의 의원 중에 옛 소련 시대 반체제 인사들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2005 년에는 그런 정의의 사도들이 오래 전에 사라지고 값비싼 정장 차림의 당 관료들이 그자리를 대신했다. 베르제고프의 요구는 위협과 괴롭힘만 초래했다.하지만 그의 행동은 다른 체르케스인들이 들고 일어나는 촉매제가 됐다.
2007년IOC가 소치를 개최지로 선정한 뒤 전 세계의 체르케스인들이 그 결정에 항의했지만 IOC는 재고를 거부했다. 뉴스위크의 답변 요구에 IOC의 공보 책임자가 e-메일 답장을 보냈다. “우리의 철학은 올림픽 개최가 주최국의 발전을 가져오고 또한 건설적인 대화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IOC의 역할은 올림픽이 수준 높은 경기가 되도록 하는 한편(The IOC’s role is to ensure the Olympic Games are of excellent quality)주최 도시와 연관성을 유지하면서 장기적인 유산을 남기도록 하는 일이다(while remaining relevant and ensuring they deliver a long-term legacy to host cities). 우리는 스포츠를 통해 많은 일을 달성할 수는 있지만 한 나라가 직면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 해도 소치 게임은 체르케스인들에게 뿔뿔이 흩어진 민족을 재규합하는 더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의 조상은 대학살당했다.우리는 IOC의 결정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once again underline that we condemn in the strongest terms the IOC’s decision).”
이스라엘, 터키, 요르단, 독일, 프랑스, 벨기에뿐 아니라 미국의 운동가들을 포함하는 체르케스인 단체 ‘소치 반대(No Sochi) 2014’의 성명서 내용이다. “자유를 사랑하는 프로메테우스가 캅카스 산맥에서 붙인 횃불을 자유의 학살자 러시아에게 건네주지 마라(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줬지만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캅카스 산에서 독수리에게 간을 뜯기는 형벌을 받았다).”
그 운동이 탄력을 받자 러시아 정부가 역공에 나섰다(As the movement gathered momentum, the Russian government launched a counterstrike).러시아의 선봉장은 크렘린이 가장 신뢰하는 홍보 전문가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Leading the charge was one of the Kremlin’s most trusted spindoctors). 국영 영어방송 러시아 투데이의 마가리타 시모니안 보도국장이다.
그녀는지난해 4월 방송된 자신의 TV 프로그램 ‘오늘의 사건(What’s Happening)’에서 그들의 주장을 비웃었다. 시모니안은 소치의 진짜 문제로 첫째 교통, 둘째 교통, 셋째 하수 시설을 꼽았다. 이어 전 세계에서 전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올림픽을 다른 곳에서 열어서는 안 된다는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한 그래픽을 보여줬다.
그 뒤 미국의 국제문제 분석가를 위성으로 연결하더니 워싱턴 날씨에 관해서만 캐물었다(only to grill him about the weather in Washington).그녀는 이어 블로그에서도 열변을 토했다. 소치 올림픽의 반대파들은 “명백하고 의도적이고 사전 음모된 반 러시아 범죄를 저질렀다(were guilty of clear, intentional,premeditated anti-Russian acivity)”고 그녀는 썼다.
“국제적인 위선, 작은 나라들을 배려한다는 명분 아래 러시아의 민족적 문제들을 여기저기 들쑤시려는 혐오스러운 시도로 보인다(loathsome attempts to rockfirst one, then another of our Russian ethnic boats, under the cover of concern for small nations). 전 CIA 요원들이 바로 며칠 전에처음 이름을 들은 나라의 운명을 두고 안타까운 듯 말하는 모습은 볼썽 사납다.”
시모니안의 공격은 소치 올림픽 반대파들의 반감만 키웠다. 그녀의 프로그램 동영상이 체르케스인 사회 전체에 e-메일로 퍼져나가면서 분노와 불신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snowballing anger and disbelief as it went). 러시아 하원(Duma)은 마침내 체르케스인 운동가 중 온건파를 골라 회동에 합의했다.
그리고 지난해 5월 21일 시위 직전 러시아 의원 소그룹이 체르케스인들의 요구 목록을 공식적으로 건네 받았다. 그 운동가들은 다시 한번 1864년 일어난 일을 민족 학살로 인정하라고 러시아 정부에 촉구했다. 그러나 그밖에도 체르케스인 민족의 조국 귀환을 막는 모든 법의 폐지, 러시아 당국의 체르케스인 단체 훼방 중단을 요구했다.그 자리가 공허한 요식행위였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듯하다(Everyone involved must have understood that the session was an empty formality).
그 회동 후 하원 의원이자 역사가인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나와 이야기하면서 체르케스 민간인들의 “대학살”이 있었음을 순순히 인정했다(readily conceded that “mass killings” of Circassian civilians had taken place). 그는 그들의 역사에 관해 많은 책을 연구했다고 내게 말했다. 그렇지만 체르케스인에 대한 민족학살이 있었다고 믿는 사람은 글을 읽지 못하거나 반러시아 음모에 현혹됐다고(is either illiterate or has sold out to an anti-Russian conspiracy) 주장했다. “러시아를 약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문제를 끄집어낸다”고 그가 내게 말했다.
“그들은 러시아가 캅카스에서 항상 싸움에 말려들게 하고, 체르케스인들의 분노를 폭발시키려 한다(to explode the Circassian bomb).” 마르코프는 반러시아 음모를 ‘간파’한 전력이 있다. 2008년 그루지야와 러시아가 전쟁을 벌였을 당시 그는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대선 캠페인을 도우려고 딕 체니 부통령이 지시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히려 모스크바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체르케스인들의 지지기반이 확대된다. 1년 전 그루지야 의회는 세계 최초로 케르케스 점령을 인종학살로 인정하기로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지난 5월 21일 그루지야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아나클리아에서 체르케스 인종학살 기념비를 공개했다.
소치로부터 해안을 따라 약200km 내려간 곳이다. 러시아의 후원을 받아 그루지야에서 독립한 압하지야 공화국의 바로 옆이나 다름 없다(practically next door to the Kremlin-backed breakaway Republic of Abkhazia). 한편 체르케스인들의 시위는 해마다 규모가 커진다.
앨런은 “근 150년이 지났으니 잊고 새 출발해야 한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다(A lot of our friends say that it’s almost 150 years and that we should move on)”고 내게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다. 우리에게는 어제 일어난 일처럼 느껴진다.”“재청(I second that)”이라고 다니알이 말하자 클라라가 “삼청(I third it)”이라고 받았다.
그들은 소치 올림픽 개최를 막지 못하더라도 그 기회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야기를세상을 알릴 작정이다. 150년 만에 처음으로 체르케스인들이 다시 신문 1면에 등장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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