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주자마다 경제 민주화를 앞세우며 재벌 때리기가 한창이다. 대표적 사례가 재벌의 순환출자를 규제하겠다는 공약이다. 순환출자는 계열사 A가 계열사 B에 출자하고, 계열사 B는 또 다른 계열사 C를, 그리고 C는 다시 A에 출자하는 고리형 출자관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순환출자 구조 때문에 재벌은 적은 종자돈으로 많은 회사를 지배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경제력집중이 심화되고 있다는 인식이 규제론을 뒷받침한다.

구체적인 규제방법에 대해서는 대선 주자별로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새누리당에서는 순환출자분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고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겠다는 법률 개정안을 이미 발의했다. 이에 반해 민주통합당은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존의 순환출자도 3년 유예기간 안에 해소해야 한다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도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7개 재벌공약을 발표하면서 순환출자 규제를 표명한 바 있다.

이렇게 여야 없이 모든 대선 주자가 순환출자를 문제 삼으니 규제 법안이 통과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제는 순환출자 규제 논거가 단단하지 못하고, 규제를 통해 기대되는 사회적 편익이 부작용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사실이다. 먼저 순환출자 현상이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나라 재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일 것으로 예단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순환출자에 기반한 기업집단은 세계 곳곳에 산재한다. 일본의 토요타 그룹은 토요타 자동차, 토요타 자동직기, 아이신, 덴소와 같은 핵심 계열사에 심지어 쌍방향 순환출자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토요타 그룹 외에 일본 기업집단의 대부분은 계열사 간 상호출자와 순환출자가 다반사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일본에서는 경제학자와 정치인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지적하거나 규제론을 주창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한국의 경제학자, 정치인보다 못한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가 공연한 이슈에 힘을 빼고 있는 것인가.

순환출자는 다른 선진국의 일류 기업에서도 관찰된다. 루이뷔통 가방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명품 재벌인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그룹에서도 순환출자가 존재한다. LVMH는 새로 들어선 프랑스 좌파 정부의 부유세를 피하기 위해 벨기에 시민권을 신청했다고 해서 얼마 전에 유명세를 탔던 아르노 회장이 이끄는 재벌이다. 이 밖에 피아트 자동차를 생산하는 이탈리아의 아그넬리 그룹, 인도의 타타 그룹 등에서도 순환출자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만 순환출자를 규제(금지)하면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현대·기아차 그룹의 경우,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의 순환고리를 끊는데 최소 6조원 이상이 들 것이라 한다. 고려대 오정근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현대·기아차, 현대중공업, 삼성그룹 등에서 순환출자 해소에 들어가는 직접적인 비용이 14조원이 넘고, 경영권 불안에 따른 투자위축 효과까지 감안하면 순환출자 규제로 인해 국내총생산(GDP)이 2% 가량 감소할 것이라 한다.

GDP 1%당 일자리가 약 7만 개가 걸려 있다고 보면 불필요한 규제 때문에 약 14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음이다. 대선 주자들 모두 최상의 복지는 일자리라며,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약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일자리 창출기반을 크게 해치는 규제안을 내세우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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