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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진한 커피는 스위트 디저트 스타일

그의 진한 커피는 스위트 디저트 스타일



11월17일 서울 서대문구 ‘폴 바셋’ 이대점. 바리스타 폴 바셋(34)은 짧은 머리와 깔끔하게 면도를 한 모습이었다. 그의 상징이었던 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인터넷 등을 통해 봐 왔던, 매장에 걸려있는 사진을 통해 익숙하던 예지자 같은 모습과 사뭇 달랐다. 두 달전 스타일을 바꿨다는 그는 “가끔 삶의 변화도 필요하니까”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를 알아보는 팬들로 매장이 붐볐다. 매장 3층 한 켠에서 인터뷰 중이던 그를 알아본 팬이 수줍게 지켜보다가 같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기자가 커피 머신 앞에서 바셋을 촬영하는 동안 주문한 커피를 받지 못하고 기다리던 여성은 불평 한 마디 안했다. 잠깐 사이에 휴대전화로 바셋의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매장 1층이 가득 찼다. 기다린 손님들을 위해 바셋은 한참 동안 커피를 만들었다.

폴 바셋은 2003년 25세 때 최연소로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2000년 이탈리아 여행 이후 본격적으로 바리스타의 길에 들어선지 3년 만이다. 이 대회는 전 세계 바리스타가 한자리에 모여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를 선발하는 대회다.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에도 그의 이름을 딴 커피전문점이 신세계 강남점, 강남파이낸스센터, 청담동 아라리오갤러리 등 17군데나 있다.

그의 아버지는 호주에서 유명한 셰프 존 바셋이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모던 레스토랑에서 일한 적이 있는 그에게 셰프가 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아버지께서 항상 저녁과 주말에 바쁘셨어요. 시간을 낼 여유가 없어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못하시더군요. 그게 싫어서 셰프의 꿈을 접었습니다.”

그는 부동산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서인지 지루했고 결과도 좋지 않았다. 일을 시작한지 2달 만에 그만뒀다. 바셋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이탈리아적인 식자재, 문화, 맛 등을 보고 느끼며 자랐다. 이는 2000년 그가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배경이 됐다.

이탈리아 여행은 그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됐다. 거기서 그는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에스프레소 바 에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런데 이탈리아 각 지역별로 에스프레소의 맛이 달랐다. 바셋은 “왜 지역별로 맛이 다른지 궁금해졌다”며 “맛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배워 내 스타일로 에스프레소를 만들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호주에 돌아온 그는 전화번호부를 펼쳤다. 자신의 성향과 맞을 것 같은 여러 커피 회사에 전화를 했다. 바셋은 “아버지 레스토랑에서 일했기 때문에 커피 만들 줄은 알았지만 좀 더 실력을 키우고 싶어 무작정 전화했다”고 밝혔다. 호주의 커피산업은 전문점보다는 로스팅해서 원두를 공급하는 ‘커피회사’가 중심이다.

이들 회사는 직접 생두를 구입해 로스팅 한 원두를 공급하는 것은 물론, 그곳 직원들에게 커피 만드는 교육도 한다. 회사 이름을 걸고 만드는 원두로 최고의 맛을 내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다. 10번째 전화한 곳에서 일자리를 얻은 그는 커피를 블렌딩하고 바리스타 교육을 하면서 실력을 다졌다.

바셋은 “바리스타는 커피를 요리하는 셰프”라며 “원두를 선별하고 자신이 원하는 맛이 나도록 블렌딩하고 추출하는 과정이 셰프가 하는 일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리스타는 셰프보다 덜 바쁘냐는 물음에 “저녁 시간은 비교적 여유가 있다”며 웃었다.

그가 추구하는 커피는 ‘스위트 디저트 스타일’의 에스프레소. 식사 후 먹는 달콤한 디저트처럼 달고 진한 커피를 말한다. 물론 단 맛은 설탕 등 첨가제가 아닌 커피 자체에서 나오도록 한다. 바셋은 “바리스타가 된 이후 쭉 스위트 디저트 스타일의 커피를 고수해 왔다”고 밝혔다. 이런 맛을 내기 위해 드라이한 맛의 에티오피아 원두와 풍부한 맛을 내는 브라질산 원두를 섞는다. 하지만 그 비율이 나 로스팅과 그라인딩 정도 등은 일정하지 않다.

그는 “커피콩은 농산물이기 때문에 같은 지역이라도 그 해의 기후 조건 등에 따라 달라진다”며 “이 때문에 항상 원산지별로 원두의 상태를 확인하고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블렌딩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매년 산지에 가서 일년치 생두(볶지 않은 커피콩)를 수매한다. 같은 지역이라도 섹터(Sector)별로 매입한다. 커피농장 위치에 따라 채광과 강수량이 다른 까닭이다.



커피를 무조건 많이 마시지 않는다그는 호주에서 자기 이름을 걸고 로스팅한 원두를 판매한다. 한 주에 1300kg의 원두를 각 커피전문점에 제공한다. 커피를 만드는 교육도 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는 그의 이름을 딴 커피전문점이 있다. 그는 한국에서 점포 수를 무작정 많이 늘리지는 않겠

다는 생각이다. 대신 매장별로 작은 것도 다르게 꾸며 색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실제 ‘폴 바셋’ 매장은 탁자 하나, 조명 하나도 매장마다 다르다. 품질관리를 위해 모든 매장은 직영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매장에는 파트타이머도 없다. 모두 정식 직원이다. 바리스타는 전문직이라는게 그 이유다. 그는 하루 몇 잔의 커피를 마실까. “매일 다르지만 컨디션에 따라 조절해 마신다”고 대답했다. 테스팅을 할 때도 맛만 보고 입을 헹구는 식이다.

저녁에 커피를 마시면 숙면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잘 마시지 않는다. 바리스타라서 커피를 많이 마실 줄 알았다는 말에 “소믈리에가 취할 정도로 와인을 마시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바셋은 “새로운 곳에 진출하는 것도 좋지만 당분간 한국 시장에 집중하고 싶다”고 밝혔다. 호주에서 원두 사업도 계속 키워갈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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