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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歷(학교 간판) 아닌 學力(배운 지식·기술)`에 맞는 직무 늘려야

學歷(학교 간판) 아닌 學力(배운 지식·기술)`에 맞는 직무 늘려야

‘선 취업 후 진학제도’ 활성화 필요…고교-기업 맞춤형 교육과정 보완도
고졸 채용 확산을 위해 고용노동부가 2012년 7월 주최한 채용박람회에 입장하기 위해 고등학생들이 줄을 서 있다.



우리나라는 ‘고졸자 일자리 열악 → 대학진학 필수 → 대학 과잉 진학 → 대졸자 하향 취업 → 고졸자 취업기회 감소 → 고졸자 열악한 일자리’라는 악순환 고리에 빠져 있다. 이런 악순환을 차단하려면 무엇보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한다는 건 고졸자도 ‘괜찮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걸 뜻한다. 괜찮은 일자리란 무엇일까. 고졸 학력 때문에 입사 초기에는 대졸자보다 처우가 낮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대졸자와 유사한 처우를 받고, 장기적으로는 대졸자와 동등한 수준의 평생 임금을 받는 일자리다. 학력이 아닌 실력으로 대졸자와 동등하게 승진하고, 역량과 직무개발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고졸자만의 특정 기능과 기술 분야에 종사하면서 존중을 받고 안정적인 지위를 누릴 수도 있어야 한다.

고졸자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하려면 고졸자의 성장 경로를 제대로 분석해 체계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크게는 학력에 적합한 일자리 개발, 일자리에 부합하는 인력 공급, 열린 채용과 성장 비전 제공, 실력 중시 사회풍토를 위한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



산·학 연결하는 호주의 도제센터일자리 정책 관련해서는 ‘學歷(학력, 학교를 다닌 경력)보다는 學力(학력, 교육으로 얻은 지식·기술)’에 적합한 직무 개발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고졸자에게 능력에 따른 일자리 기회를 적극 제공해야 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몇몇 대기업이 대졸자의 일자리로 인식되던 연구개발·소프트웨어 개발 관련 직무를 고졸자에게 개방한 건 장려할 만한 일이다. 나아가 기술직·영업관리직·사무직·전문텔러직·공무원 직종 중에서 과거 대졸자가 담당한 직무에 대한 고졸자 취업 기회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 고졸자에게 부합하는 직무개발을 위한 전담조직도 필요하다.

현재 고졸 취업은 학교가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으나 한계가 있다. 국가나 지역사회가 나서서 취업 가능 기업과 일자리를 발굴하고, 취업 협약을 맺는 등 기업과 고졸 인력 간 일자리 매칭을 위한 전담기관을 운영해야 한다.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아 도제생의 훈련뿐아니라, 산·학 간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등 기업과 학생, 학교 간의 연계를 전담하는 호주의 도제센터를 참고할 만하다. 현재 실업급여와 실업자를 지원하는 한정된 고용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지역별 고용센터에 산학 간 일자리 매칭 기능을 부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고졸 취업자에게 산업 현장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실무능력을 제공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적극 운영해야 한다. 구미전자공고가 LG이노텍·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등과 수요맞춤형 교과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좋은 사례다. 나아가 단지 기능공이 아닌 전문 기술과 지식까지 갖추도록 교과과정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미림여자정보과학고가 프로그래밍언어 등 일부 교과과목을 전문대 수준으로 편성해 성장 잠재력이 큰 인력을 배출하고 있는 것도 참고할 만한 사례다.

고졸자의 직업기초능력 개발도 시급하다. 기업체 인사 담당자들이 고졸자의 문제 해결능력, 책임감과 자신감 등의 부족을 심각하게 인식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교과수업 중심에서 벗어나 팀 프로젝트, 액션 러닝 같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다. 또 특성화고·마이스터고에 대한 투자와 예산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특히 마이스터고는 실습을 포함한 교육비 소요가 많으므로 국가가 책임지고 중장기적으로 교육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고졸자에게는 서류전형·면접 위주 채용채용의 주체인 기업의 노력도 필요하다. 우선 대졸자 중심인 채용기준을 고졸자 수준에 적합하게 개선해야 한다. 그동안 많은 기업의 공채에서 고졸자에게 입사 지원 기회를 부여했으나 영어나 인성·적성 검사 같은 선발 기준은 고졸자에게 맞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대우조선해양·삼성전자가 고졸자에게 적합한 서류전형·면접만으로 채용하고 있는 사례를 더욱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학력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공정한 인사를 할 필요도 있다. 학력보다는 직무 특성에 따른 처우, 능력과 성과중심의 승진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고졸자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역량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 역량 개발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입시 부담이 없고 근무를 하면서도 학습할 수 있는 사내 대학제도를 더욱 활성화해야 있다. SPC 식품과학대학, 대우조선해양의 중공업사관학교, 삼성전자 공과대학 등이 좋은 사례이다. 또한, 일정 정도의 교육을 이수하고 경력을 쌓아 실력이 검증된 직원은 성장을 위해 다른 직군 근무도 언제든지 가능하게 하는 직군전환 제도를 실시해야 한다.

지나치게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선, 고졸자의 성공 사례를 적극 발굴해 경력 개발 모델로 제시해야 한다. 고졸 출신의 CEO,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가, 명장이 참여하는 비전 캠프,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통해 고졸자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고졸 취업자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선(先) 취업, 후(後) 진학 제도’를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현재 재직자 특별전형을 하는 대학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나, 참여자들이 정상적인 대학교육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호소가 많은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학습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선행학습 기회 부여 등의 다양한 지원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청소년기 때 올바른 직업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조기 직업·진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직업 이해를 돕는 사전학습, 실제 기업을 방문하거나 직업 종사자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체험하게 하는 미국의 ‘잡 섀도(Job Shadow)’제도가 좋은 사례다. 무엇보다 학부모의 직업관 교육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단지 일회성, 전시성이 아닌 실제 학부모 교육을 위한 관련 전문가의 확충, 충실한 교육프로그램의 개발, 상시 교육시스템의 구축을 위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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