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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치, 부활 신호탄 쏘다

히타치, 부활 신호탄 쏘다

지난해 영업이익 사상 최고치 … 자회사 분리·통합하고 해외 원전사도 인수 매출 기준 일본 재계 2위인 히타치그룹이 V자 회복세다. 적자를 내던 TV사업 등을 접고 성역이던 일부 자회사에 메스도 댔다. 미쓰비시중공업과 화력발전 사업을 통합하는 결단도 했다. 덕분에 지난해 영업이익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히타치그룹 부활의 비결을 분석했다. 개혁의 주역인 나카니시 히로아키 사장도 만나 봤다.
히타치식 개혁이 일본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히타치제작소의 사기(社旗).



히타치제작소 이사회가 지난해 11월 29일 긴급 소집됐다. 이사회는 5개국을 연결하는 화상회의 형식으로 열렸다. 이사회 의장인 가와무라 타카시 회장이 호주에서 ‘미쓰비시중공업과 화력발전 사업을 통합하기로 했다’는 의제를 꺼냈다. 이사회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사외이사인 조지 버클리 3M 전 회장은 미국에서, 필립 요는 벨기에에서 “왜 히타치의 출자비율이 35%냐” “좀 더 검토하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카니시 히로아키 사장은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갔으나 이사진 설득은 쉽지 않았다. 기자회견이 예정된 오후 5시가 다 돼서야 겨우 합의를 이끌어냈다. 가와무라 회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쓰비시중공업과 화력발전 전격 통합이에 따라 히타치는 내년 1월 미쓰비시중공업과 화력발전 사업을 통합한다. 매출 1조1000억엔 규모의 새로운 회사가 탄생한다. 화력발전 사업에서 미국 GE와 독일 지멘스에 이어 세계 3위로 도약한다.

미쓰비시중공업은 기술 난이도가 높은 대형 가스 터빈을 제조할 수 있는 세계 4대 회사 중 하나다. 히타치는 중소형 가스 터빈을 제조한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합이지만 문제는 출자비율이었다.

두 회사의 수익성을 고려한 결과 히타치는 35%를 출자하기로 했다. 상대적으로 약자가 된다. 하지만 나카니시 사장은 “이번 통합은 매각이 아닌 5년, 10년 뒤를 생각한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히타치그룹은 제조업 분야에서 도요타자동차에 이어 일본 2위(매출 기준)를 자랑하는 거대 그룹이다. 올해로 창업 103주년을 맞는다. 고도 성장을 해 왔으나 2009년 기로에 섰다. 2009년 결산에서 7873억엔이라는 엄청난 적자를 냈다. D램 불황이 찾아온 1999년에 3276억엔, IT 버블이 무너진 2002년에도 4838억엔의 적자를 냈지만 ‘재무의 히타치’라고 불릴 만큼 현금흐름에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2009년 적자로 그런 여유는 단숨에 사라졌다. 자기자본비율은 11%대로 떨어졌고 ‘도산’의 그림자가 그룹을 휘감았다.

히타치는 이례적인 인사 정책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히타치 본사 이사를 퇴임하고 그룹 회장으로 옮긴 가와무라가 다시 사장 겸 회장으로 돌아왔고 부사장 나카니시를 비롯해 계열사로 자리를 옮긴 간부 대부분이 본사로 돌아왔다. 이 인사를 두고 언론은 ‘히타치의 혼전’ ‘인재 부족’이라 평했다.

차가운 시선 속에서 가와무라 회장은 과감한 개혁을 했다. 우선 히타치 액셀이나 히타치 소프트웨어 등 자회사 5개를 분리했다. 나름대로 좋은 실적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본사에 부담을 주는 일이 많았다. 방향은 뚜렷했지만 실행을 위한 장벽은 높았다. 자회사 사장직을 히타치 본사 출신이 맡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가와무라 회장은 “히타치제작소가 없어진다면 자회사도 히타치 그룹으로 살아갈 수 없다”며 설득했다. 원래 히타치는 선후배 간 위계질서가 철저해 본사의 임원이라도 선배가 사장인 자회사의 경영에 간섭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다행히 가와무라 회장은 69세로 어느 자회사 사장보다도 연장자였다.

개혁의 방향을 잡은 가와무라는 예정보다 1년 빨리 회장으로 물러난 뒤 나카니시 사장에게 바톤을 넘겼다. 나카니시 사장은 각 자회사가 재무제표를 더 엄밀하게 작성하도록 했다. 등급제를 도입해 등급이 낮은 자회사에는 자금을 빌려주지 않도록 제도를 바꿨다. 그는 특히 지난해 10월 30일 큰 결단을 내렸다.

히타치는 영국 원자력 발전 운영사인 호라이즌뉴클리어파워를 약 850억엔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호라이즌의 지분은 2개의 독일 전력회사가 소유하고 있는데 독일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매각한 것이다. 호라이즌 인수안을 들은 재무담당 나카무라 부사장은 위험부담이 크다며 반대했다.

호라이즌을 사들이면 히타치는 장기간 발전사업에 관여해야 한다. 기기 제조사의 틀을 깨고 발전사업에 뛰어든다는 걸 의미한다. 이 때문에 나카니시 사장 역시 처음에는 인수를 꺼렸다. 하지만 영국 정부 관계자가 방문해 입찰 참가를 요청한 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반대하던 나카무라 부사장도 교섭의 여지가 있다고 보고 생각을 바꿨다.



뚜렷한 미래 수종사업 없는 게 걱정자회사 통합에도 착수했다. 히타치금속과 히타치전선은 지난해 11월 13일 경영 통합을 발표했다. 후지이 히로유키 히타치금속 사장은 “최대 과제는 세계화”라며 “무엇을 국내에 남기고, 해외로 가져갈 것인지 판단할 시점에 히타치전선과 국내외 판매 거점 통합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 통합은 히타치 본사가 주도했다. 그동안 히타치금속과 히타치전선, 히타치화성 3사는 자회사 중에서도 특별 취급을 받았다. 이들 회사에 메스를 들이댄 건 개혁에 성역을 두지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사장의 확고한 글로벌 마인드 역시 히타치에 속속 녹아 들었다. 나카니시 사장은 올해 1월 카타르 바트에서 열린 ‘히타치전’에서 직접 VIP를 안내했다. 그는 아티야 카타르 부수상을 만나 히타치그룹 회장과의 면담을 주선하고 히타치의 스마트 시티와 교통 시스템을 소개했다. 해외에서 직접 세일즈맨으로 뛰었다.

가와무라 회장으로부터 사장 자리를 넘겨받은 지 4년이 되는 올해는 히타치가 장기적으로 육성하는 사회 인프라 사업을 해외에 알리는데 적극적이다. 라이벌은 GE·지멘스 같은 세계적인 우량기업이다. 단순히 기기를 납품하는 것에서부터 자금조달 계획이나, 인프라 건설 후의 운영·유지·보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품질은 물론 자금력이 뒷받침해야 승부를 걸 수 있다.

‘지금 이익률로는 세계에서 싸울 수 없다’. 해외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잘 아는 나카니시 사장은 국내에 들어앉아 낮은 이익률로 장사를 계속하는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나카니시 사장은 에바타 마코토 전무에게 가격보다 기술을 중시하는 히타치의 기업문화를 바꿀 방안을 찾도록 지시했다. 이에 에바타 전무는 미국의 20개 기업을 분석하고 네댓 곳의 컨설팅 회사를 동원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사에게 보고하기 위한 자료 작성은 업무 과잉 아니냐” “각 사업소가 높은 가격으로 자재를 조달을 하고 있다” 등 쓴 소리가 잇따라 나왔다. 에바타 전무는 가격 개혁에 나섰다. 그룹 내 부품 제조사를 한 곳으로 모으고 설계 변경도 불사하며 가격을 낮췄다. 스‘ 마트 트랜스포메이션 프로젝트(약칭 스마트라)’는 이 개혁은 2011년 4월에 시작됐다. 2015년까지 그룹 연간 지출인 9조엔의 5%를 삭감해 영업이익률 10%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들어 히타치의 실적은 V자 모양의 가파른 회복세다. 2011년 결산에서는 20년 만에 최고 이익을 경신했고 지난해에는 사상 최고 이익을 달성했다. 하지만 히타치 관계자들은 “평소대로 돌아간 것일뿐, 본업에 충실하면 이 정도 이익은 당연히 나온다”고 입을 모은다.

기분 좋은 일이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V자 회복의 원동력은 TV 등 거액의 적자를 내던 문제 사업의 철수와 글로벌 금융위기 후 급락한 자동차 부품 사업의 회복이었다. 성장 사업이 없다는 게 문제다.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는 히타치지만 기초연구 등 일부를 제외하면 자회사나 각 사업의 접목이 원활하지 않다. 예를 들어 IT를 이용해 에너지 흐름을 효율화하는 스마트 시티 사업을 전력이나 교통·정보 체제와 접목시킨 비즈니스는 앞으로 분명히 성장할 사업이다.

그러나 사이토 유타카 전무는 “히타치에는 각 사업을 아는 인재는 있어도, 전체를 파악하는 프로듀서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나카니시 사장은 최근 “머릿속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그렸다 지웠다 반복하고 있다”고 말한다. 무엇이 부족한지 어디를 키워야 하는지 GE·지멘스·IBM 등과 비교하며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 다음 카드는 인수일지 매각일지 아니면 전략적 제휴일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히타치가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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