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hoto - 눈으로 보는 현실 vs 렌즈에 담긴 현실
사진을 찍을 때 초보자가 가장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어떻게 하면 실제와 똑같이 찍을까’ 하고 애쓴다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도 눈으로 보는 것과 똑같이 찍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눈과 카메라 렌즈는 기능이 비슷하지만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다 하더라도 사진이 현실을 똑같이 묘사하는 건 기계적인 복제일 뿐입니다. 예술로서 사진은 아닙니다.
처음 카메라를 들면 누구나 보이는 것과 똑같이 찍으려고 노력합니다. 지나고 보면 참 부질없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헛된 노력은 아닙니다. 사진을 공부할 때 반드시 거치는 과정입니다.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눈과 카메라 렌즈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것도 사진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눈의 구조를 생각해 봅니다. 렌즈가 두 개입니다. 이는 대상을 입체(3D)로 본다는 뜻입니다. 카메라 렌즈는 평면(2D)을 묘사할 뿐입니다. 시각의 폭인 화각도 사람의 눈이 훨씬 더 넓습니다. 시각보다 넓은 180도를 볼 수 있는 렌즈도 나와 있지만 사물의 형상이 왜곡돼 보입니다.
눈은 카메라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성능이 좋은 자동 초점 기능이 있습니다. 자동 노출 기능도 매우 뛰어납니다. 밝은 곳에서는 동공이 축소되고 어두운 곳에서는 확대됩니다. 사람이나 사물을 보는 물리적인 인지과정이 매우 빠르게 진행됩니다. 사람의 눈은 ‘동영상’입니다. 움직임을 연속해서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걸 흘러가는 동영상에 담을 수 있습니다.
눈이 렌즈보다 우월, 렌즈는 틈새 노려야사람의 눈은 보조기능까지 있습니다. 냄새(후각)·소리(청각)·맛(미각)까지 거들며 감각적인 완성도를 극대화합니다. 꽃을 예로 들어 볼까요. 꽃은 눈으로 보는 것도 예쁘지만 향기는 꽃을 더욱 꽃답게 합니다. 꽃밭에서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꿀벌의 날개소리도 운치를 더합니다. 꽃을 보는 사람의 심리 상태에 따라 느껴지는 감흥도 더해집니다. 카메라가 어찌 이를 따를 수 있을까요.
기능적인 차이가 이렇듯 매우 큽니다. 카메라가 사람의 눈과 ‘맞짱’ 뜨자고 덤비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도 사진가는 카메라를 들고 끊임없이 눈과 ‘한 판 붙자’고 대듭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요. 놀랍게도 막상막하입니다. 미학적인 완성도로 볼 때 사진이 더 앞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럴까요?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카메라는 눈과 전면전을 벌이면 백전백패입니다. 게릴라전을 펼쳐야 승산이 있습니다. 눈이 가진 태생적인 약점을 끊임없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똑같이 찍으려고 한다면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없습니다. 사진을 시작하는 초보자가 명심할 대목입니다.
사진의 승패를 사람의 눈과 카메라의 대결구도로 놓고 생각해봅시다. 눈과 싸워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열세일 수밖에 없는 카메라의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하는 역발상이 필요합니다. 카메라 렌즈가 사람 눈보다 화각이 좁습니다. 하지만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한 쪽 눈을 감는 이유도 피사체에 좀 더 몰입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분으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상징성을 부각시켜야 합니다. 나무를 보여주고 숲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것이 사진입니다. 그래서 사진은 ‘뺄셈의 미학’이라고 합니다.
눈은 진행형, 즉 동영상으로 대상을 보지만 순간을 포착하는 기능은 카메라가 훨씬 더 앞서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눈이 감지할 수 없는 수천 분의 일초, 수만 분의 일초까지 잡아냅니다. 이 뛰어난 순간 포착 기능으로 흘러가는 동영상 속에 묻힌 순간의 직관을 잡아채야 합니다. 이것이 브레송이 말한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사진은 시각예술입니다. 그 출발은 뭔가를 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눈은 사진의 소재를 제공할 뿐입니다. 눈으로 보는 이미지는 잠시 머리 속에 저장되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기억으로 존재합니다. 이는 일정한 양식으로 저장하고 편집하고 가공할 수 없는 아주 무질서한 상태의 감각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사진의 차이는 ‘재료와 제품’ 의 관계일 뿐입니다.
사진은 무질서한 상태 속에 널려있는 무수한 이미지 가운데 의미 있는 한 장면을 포착해 미적·의미론적으로 가공하는 것입니다. 사진의 좋고 나쁨은 카메라의 성능이 좌우하는 게 아닙니다. 작가적인 상상력과 통찰력, 미적 감각에 달려 있습니다. 눈에 대한 카메라의 경쟁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진을 실제와 비교하는 건 참 부질없는 일입니다. 흔히 사진이 “잘 나왔네” “못 나왔네” 하는 말의 가치 기준은 현실과 닮은 정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사진이 잘못 나왔다며 울상 짓는 사람에게 ‘원판 불변의 법칙’을 운운하며 농담을 합니다. 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원판 불변의 법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원판’ 은 찍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기술적인 면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의 표현 형식에 따라 사진은 얼마든지 원판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사진은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매체입니다.

전남 구례에서 산수유 마을에 들렀습니다. 집집마다 골목마다 노란 산수유 꽃이 지천입니다. 광각 렌즈를 끼우고 그 모두를 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의치가 않습니다. 꽃에 취해 흥분했나 봅니다. 캘린더에서나 보는 진부한 풍경사진 이상의 것을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카메라를 들면 감성은 안고 가야 하지만 냉정하고 이성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렌즈를 통해 보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렌즈로 갈아 끼우고 시야를 좁혔습니다. 컴컴한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노란 산수유 꽃에 햇볕이 쏟아집니다. 불꽃을 닮았습니다. 봄이 아지랑이가 돼 타오릅니다.

강원도 철원 한탄강변 풍경입니다. 두루미와 재두루미 수백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지친 날개를 쉬며 잠을 청하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부지런히 바닥을 쪼아대며 먹이를 찾는 두루미도 보입니다.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두루미 무리를 천천히 관찰했습니다. 순간 강을 건너오는 재두루미 무리가 보였습니다. 정면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색다릅니다.
하늘을 나는 모습만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공군’으로 알고 있던 재두루미에서 행군하는 ‘육군’의 이미지를 봅니다. ‘사관과 신사’라는 제목을 붙여보면 어떨까요? 하얀 얼음판 위를 걷는 재두루미의 모습에 기품이 느껴집니다. 재두루미 실루엣이 연출하는 몸의 미학도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하나 둘, 하나 둘…. 부대를 인솔하는 소대장의 구령 소리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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