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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달인들 ② - 한국 전통식초의 세계화 앞장

건강의 달인들 ② - 한국 전통식초의 세계화 앞장

프랑스의 발사믹 식초, 미국의 유기농 사과식초, 일본의 흑초… 명품 건강 식초는 국가 브랜드에 기여



만화가 허영만의 음식 만화 『식객』에는 술빚는 청년이 등장한다. 전통주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 주인공의 모델이 바로 류인수(37) 한국가양주연구소장이다. 젊은 나이에 술과 식초전문가가 됐다면 식품학이나 미생물 분야에서 발효학을 전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오산이다.

삶의 궤적이 무척 흥미롭다. 그는 고교시절 꽤 잘나가는 축구 꿈나무였다. 같은 또래의 김남일·이영표·고종수 선수 등과 함께 국가대표 선수를 목표로 그라운드를 달렸다. 꿈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무릎 부상이 화근이었다. 수술을 받았지만 재기는 쉽지 않았다.

축구를 포기하니 할 게 없었다. 공부는 뒷전이었다. 졸업하고 들어간 곳이 호텔 총지배인이 운영하던 바였다. 열심히 해 1년여 만에 매니저급에 올랐다. 하지만 늘 마음 한구석엔 알 수 없는 빈자리가 있었다. 인생의 전환점은 작은 의문에서 비롯됐다. 즐비하게 늘어선 양주병을 바라보다 퍼뜩 한가지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왜 우리 전통주는 없을까.’

전통 술을 찾기 위한 유랑이 시작됐다. 낮시간을 이용해 술 빚는 곳이라면 찾아가 한 수 배웠다. 술 빚는다고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방황은 다시 시작됐다. 무작정 지리산으로 들어가 걷고 걸었다. 하산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전문성을 쌓기 위해 일본 도쿄대 농대 양조과학과를 가야겠다는 생각에서다.

“한일 병합 직전인 1909년 주세법이 시행됐죠. 정부에서 허가한 양조업자만이 세금을 내고 술을 만들어 팔게한 법률입니다.” 한일협약에 따라 내정 간섭을 시작한 일본이 재원 마련을 위해 만든 술책이었다. 이 법은 일제강점기에 더욱 강화돼 가정에서 술을 빚는 항아리는 종적을 감췄다. “집에서 담가먹는 술(가양주)만 없어진 게 아니죠. 식초도 덩달아 사라졌습니다.”



곡물·과일로 만들어야 건강 식초식초는 술과 형제다. 술이 더 익으면 식초가 된다. 식초를 만드는 초산균은 에탄올을 분해해 초산을 만든다. 그래서 술을 집에서 담가 마시는 가정에선 식초도 함께 만들어 사용했다.

“막걸리 맛이 시어지면 이를 따뜻한 부뚜막에 올려놓고 가끔 흔들어줍니다. 그러면 자연발효하면서 식초가 되죠. 먹다 남은 막걸리에 종초(種醋:초산균)를 10~20%를 넣어 만들기도 했습니다. 가정에선 이렇게 식초를 만들어 조미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렇듯 주세법은 가정에 전래돼 온 술뿐 아니라 우리나라 식초의 맥을 함께 끊었다.

반사이익을 본 곳은 일본이다. 일본은 우리나라 도공이 건너가 만든 항아리에 술을 빚고, 식초를 만들었다. 그것이 일본을 대표하는 명품 식초인 흑초다. 현미로 만드는 흑초는 술 속의 아미노산과 당분이 결합해 갈변되면서 색깔이 진해져 흑초라고 불렸다. 그가 일본 유학을 선택하게 된 배경엔 이런 사연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해탄을 건너가 일본에서 꽃을 피운 발효과학을 배워오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 꿈마저도 산산조각 나는 비운을 겪는다.

“2003년 무렵이었습니다. 일본어를 공부하는 등 2년여를 준비해 마음이 들떠 있었죠. 대학에 입학하려고 한 달 전에 입국했습니다. 그런데 공항에서 불법 입국자로 분류하더니 공항에 억류를 시키는 거예요. 그리고 강제 퇴거를 당했습니다.” 어이없어하던 그는 입학시즌에 맞춰 다시 입국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강제 출국당한 전력이 있다고 다시 쫓겨났다. 당시 최악을 향해치닫던 한일관계의 희생양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여를 그는 폐인처럼 살았다고 했다. 다시 그를 일으킨 것은 지리산이었다. 모포 한 장에 의지해 비박을 했다. 절대 고독과 공포를 체험하며 그가 깨달은 것은 일본 극복이라는 명제였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우리 것을 찾자’는 애국심으로 치환됐다.

옛 문헌을 찾아 공부하고 다시 전통주를 찾아 발품을 팔았다. 울릉도·흑산도 등 섬도 마다 않고, 시골 마을을 떠돌며 소문을 듣고 찾아가기도 했다. 한 주에 5000㎞를 달린 적도 있었다. 이후 그는 취재한 자료를 엮어 『72가지 전통주 수첩』과 『101가지 막걸리 수첩』이란 책을 펴냈다.

현재 그는 한국가양주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가양주와 관련된 연구를 하며, 이를 보급하는 교육훈련기관이다. 농수산식품부가 지정한 교육기관 3곳 중 한 곳이다. 그가 운영하는 술독(www.suldok.com) 사이트에는 가양주의 역사는 물론 술 만들기, 각종 논문, 그가 발로 뛰며 취재한 정보가 잘 정리돼 있다. 이곳을 찾는 회원은 4600명 정도. 12기를 배출해 그의 제자가 20대부터 60대까지 400여 명에 이른다. 전통식초 전문가 과정도 만들었다. 올 4월에 8주 코스 식초반이 개강한다.

식초의 주성분인 초산은 유기산의 일종이다. 유기산은 피로물질인 젖산을 분해해 몸에서 배출시킨다. 피로 회복에 좋은 이유다. 강한 살균력은 음식부패를 막는다. 식초는 또 칼슘 흡수를 돕는 기능이 있다. 갱년기 골다공증 여성에게 추천할 만 하다. 초산이 알코올을 분해하니 술 깨는데도 효과가 있다.

식초의 나라답게 건강효과를 규명하는 작업에서도 일본이 앞선다. 식초가 혈압과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비만을 줄여준다는 논문이 줄을 잇는다. 초산이 혈압을 상승시키는 호르몬의 활동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하루 15㎖ 이상 식초를 음용하면 한두 달 만에 고혈압이 개선된다는 논문도 나왔다. 저녁식사 후에 식초 15㎖를 가미한 음식을 3개월 섭취했더니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저하됐다는 논문도 발표됐다.

비만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일본의 한 논문에 따르면 건강한 성인 남녀 15명이 초산 1% 농도의 음료 250㎖를 저녁 식후에 계속 마셨더니 2주째부터 체중이 줄기시작해 한 달 만에 평균 약 0.6kg, 허리둘레 평균 1㎝가 줄었다. 그에게 식초를 건강하게 마시는 방법을 물었다. “좋은 식초는 곡물이나 과일로 만든 식초입니다. 이들 식초에는 필수 아미노산을 비롯한 미네랄 등 미세영양소와 안토시아닌 등 파이토케미칼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식초를 고를 때는 맛과 향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감식초·블루베리식초·복숭아식초·도라지식초가 풍미와 향을 두루 갖췄다. 음용식초를 살 때는 식초의 산도를 확인해야 한다. 산도가 0.7~1% 정도라야 마시기 적당하다. 예컨대 상품화된 식초의 산도가 5%라면 물을 5배 희석해야 한다. 산도 100%의 양조식초는 술에서 순수에탄올을 뽑아내 강제로 초산발효를 시킨 것이다. 신맛은 강하지만 영양성분은 없다.

그의 꿈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전통식초를 발굴해서 세계적인 식초로 키워야 합니다. 프랑스의 발사믹 식초, 미국의 유기농 사과식초, 일본의 흑초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죠. 과거 민간에서 제조되던 식초가 발전해 국가 브랜드를 만들듯 명품건강식초를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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