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온으론 모자라···발열이 대세
보온으론 모자라···발열이 대세
이른 추위가 몰려든 11월 22일 서울 강남구 역삼역 근처 유니클로 매장. 동이 트기도 전인 새벽 6시에 수백 명의 인파가 긴 줄을 만들었다. 어림잡아도 500m가 넘는다. 앞 쪽에 줄을 선 사람들은 대부분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렸다. “새벽 4시에 줄을 서 두 시간 넘게 기다렸다”는 사람도 있다. “잠시 후 입장을 시작하겠습니다”는 관계자의 말에 사람들의 눈이 빛났다. 매장 문이 열리자 망설임 없이 달려가 선 곳은 발열내의 ‘히트텍’ 매대다.
원하는 디자인과 사이즈, 무늬의 히트텍을 찾은 사람들은 계산대로 달려갔다. 계산대에 사람이 몰려 30여분이 더 지나서야 겨우 매장을 빠져 나왔다. 유니클로 강남역삼점이 개점 기념으로 준비한 히트텍 반값 판매 행사였다. 직장인들도 반값의 행운을 얻을 수 있도록 아침 6시에 문을 열었다. 국내 유니클로 매장이 이 시간에 문을 연 건 이날이 처음이다. 유니클로 관계자는 “선착순 500명을 상대로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10분 만에 준비한 히트텍 물량이 동이 났다”고 말했다.
히트텍 할인 행사에 두 시간 줄 서히트텍은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제조유통 일괄화)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와 섬유업체 도레이(Toray)가 공동 개발한 신소재로 만든 발열내의다. 인체에 발생하는 수증기를 열에너지로 변환해 발열하는 원리로 만들었다. 일본에서 2002년 첫 선을 보였고, 전 세계적으로 1억장 이상 팔린 히트상품이다.
국내에는 2008년 내놨다. 그 해 18만장이 팔렸고, 2009년 75만장, 2010년 110만장, 2011년 300만장, 지난해 500만장 이상이 팔렸다. 올해도 지난해 판매량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는 히트상품의 수준을 뛰어넘어 겨울철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많은 속옷 브랜드에서 히트텍과 비슷한 기능성 발열내의를 선보였지만 히트텍의 아성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히트텍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어서다. 처음에는 따뜻하고 실용적 내복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지금은 패션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내복은 일반적으로 겉옷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발상 승부가 주효한 셈이다. 다양한 컬러와 무늬, 라운드와 V넥, 상의와 하의 길이의 조합에 따라 100여 가지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유니클로 관계자는 “히트텍만 입고 외출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디자인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부쩍 추워진 겨울에 너도 나도 방한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기상청에 따르면 2009년 이후 겨울의 평균기온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올 겨울도 평년에 비해 1도 이상 낮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날씨가 추워진다는 말에 관련 업계가 바빠졌다. 양모(毛)·거위털·오리털·알파카·캐시미어 등 최고급 방한 제품으로도 소비자를 완벽하게 만족시키기 어렵다. 이제는 기술을 총동원해 발열에 도전한다.
가장 뜨거운 격전지는 아웃도어 브랜드다. 회사마다 특수소재로 만든 발열 패딩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대부분이 80만~200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제품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납득이 가는 제품도 있다. 고도의 기술로 중무장했다. 일부 제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도 좋다. 특허청에 따르면 최근 10년 간 방한의류 관련 특허출원은 783건이다. 2004년 74건을 시작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고기능성 방한의류 특허출원 빈도가 늘고 있다. 총 210건으로 2009년 이후 해마다 20건 이상의 특허가 출원됐다. 올해는 10월 말까지 34건이다. 태양광 흡수율이 뛰어난 탄소나노튜브, 세라믹 소재를 원단으로 써서 햇빛을 열로 바꾸거나 온도에 따라 고체와 액체로 바뀌는 물질을 사용해 보온력을 높이는 기술이 있다.
휴대전화 전원으로 섭씨 40도까지 온도를 높일 수 있는 기술, 전도성 고분자를 섬유에 프린팅해 전기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꿔주며 외부환경에 따라 발열체 온도를 섭씨 35~40도까지 조절할 수 있는 기술도 눈에 띈다. 서일호 특허청 고분자섬유심사과장은 “레저 열풍으로 겨울철 야외활동이 늘었고, 이상기온 현상으로 겨울이 유난히 춥고 길어지면서 고기능성 방한 기술 특허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눈에 띄는 제품으로는 K2가 출시한 ‘뉴 볼케이노’ 다운재킷이 있다. 등판에 원적외선과 음이온이 발생하는 판소섬유 발열체를 삽입하고 배터리 전력을 연결해 열을 낸다. 간단한 버튼 조작으로 섭씨 38도에서 최대 70도까지 5단계로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발열체가 세라믹·옥·백탄·숯 같은 천연재료로 제작돼 인체에 무해하다”는 게 정철우 K2 의류기획팀장의 설명이다. 컬럼비아에서는 신체의 열을 반사해 보온성을 높인 ‘옴니히트’가 효자 상품으로 떠올랐다. 올해 예상 판매량을 훌쩍 넘겨 추가 생산에 들어갔다.
LG패션의 아웃도어 브랜드 라푸마는 ‘헬리오스 시리즈’를 출시했다. 외부의 태양광을 흡수하고 인체에서 발생하는 원적외선을 반사해 발열하는 안감을 등판에 장착했다. 네파는 패딩 안에 공기 유지층을 주입해 보온 기능을 강화한 ‘에어 볼륨 시스템’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선보였다. 아이더는 안감과 겉감을 맞붙여 봉제하는 샌드위치 봉제 기법을 적용해 보온성을 높였다.
어그부츠에 도전장 내민 스노부츠겨울철 신발 전쟁도 한창이다. 최근 수년 간 인기를 끈 신발은 어그(UGG) 부츠다. 호주에서 양모를 이용해 신발을 만들었다. 발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패션 아이템으로 각광 받았다. 하지만 어그부츠에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양모 소재의 가죽제품이라 때가 잘 탄다. 자칫 관리를 잘 못하면 해마다 새로운 어그부츠를 사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수십만원대로 가격이 비싸고 밑창이 미끄러워 빙판길에 쉽게 미끄러진다는 단점도 있다.
어그부츠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 스노부츠다.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제품으로 미끄럼 방지에 방수·발열 기능을 갖췄다. 한번 충전을 하고 버튼을 누르면 6시간 이상 발열하는 제품까지 등장했다. 업계에서 “어그가 지고 스노부츠가 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판매량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패션업계가 기술경쟁을 펼치고 있다면, 액세서리 업계에선 아이디어 경쟁이 한창이다. 도화선이 된 것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난방온도 제한이다. 올 12월 16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공공기관은 겨울철 실내 난방온도를 섭씨 18도 이하로 제한한다. 일부 기업에서도 비슷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난방온도 제한으로 떨어본 사람들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여기저기서 “지금도 추운데 온도제한까지 하면 추워서 어떻게 일을 하냐”는 불만이 나온다.
온라인 쇼핑몰과 액세서리 판매점에서는 이들을 위한 상품을 쏟아냈다. USB에 연결하는 소형 난방기는 물론이고 손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마우스·키보드 장갑, 발열 실내화, 발열 컵홀더, 발열 장판 등 상상을 뛰어넘는 제품이 속속 나온다. 가정에서는 침대 위에 텐트처럼 설치해 바람을 막고 체온을 유지해는 주는 보온텐트도 인기다. 보일러를 최소한으로 돌려도 그 열을 밤새도록 유지해주기 때문에 에너지 절약 효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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