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 폭탄 스위치 누가 먼저 누를까?
Management - 폭탄 스위치 누가 먼저 누를까?
2008년 개봉한 배트맨 시리즈의 문제작 ‘다크나이트(The Dark Knight)’. 정의의 수호자 배트맨(크리스찬 베일)은 관록의 형사 짐 고든(게리 올드만) 등과 함께 그들의 고담시(市)를 범죄로부터 영원히 구원하고자 한다.
불안을 느낀 악당들은 대책 마련을 위해 긴급 회합을 갖는데 기괴한 광대 분장에 보라색 양복을 걸친 조커(히스 레저)가 예고도 없이 등장해서는 악당들을 이끌게 된다.
조커는 오로지 폭력 그 자체를 즐기는 도덕성 제로의 절대악(惡)이다. 그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고담시를 혼란에 빠뜨린다.
배트맨이 가면을 벗고 정체를 밝힐 때까지 살인과 파괴를 멈추지 않겠다며 배트맨을 압박한다. 급기야 조커는 악의적인 게임상황을 연출해 가며 인간의 불신과 이중성을 비웃는다.
선량한 시민들과 극악무도한 복역수들이 나누어 타고 있는 두 척의 배에 각각 폭탄을 설치해 놓고는 다른 쪽 배를 폭파시킬 수 있는 기폭장치를 양쪽에 전달한 것이다. 그리고 1시간 내에 먼저 스위치를 눌러 다른 쪽 배를 폭파시킨 쪽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조커의 말마따나 이것은 일종의 사회적 실험(Social experiment)이다. 시민과 복역수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두 갈래, 스위치를 먼저 누를 것이냐 말 것이냐 뿐이다.
폭탄 스위치 먼저 누르는 쪽만 살아남는데…이 상황은 게임이론 모형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의 전형을 보여준다. 범행을 저지른 두 명의 공범자가 있다. 그들은 각각 다른 방에 격리돼 동시에 조사를 받게 되는데 둘 다 범행을 부인할 경우 혐의 입증이 어려워 경미한 처벌에 그치게 된다. 둘 다 자백할 경우는 혐의가 모두 드러나 무거운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여기까지는 쉽다. 그런데 만약 둘 중 한 사람만 자백을 한다면 자백한 사람은 그 대가로 즉시 석방되지만 끝까지 부인한 나머지 범인은 가중처벌돼 더욱 무거운 형을 받게 된다면?
순순히 자백할 것인가 끝까지 부인할 것인가라는 운명의 갈림길에서 두 명의 죄수들은 썩 내키지 않는 딜레마에 빠진다(그래서 ‘죄수의 딜레마’이다). 이때 상식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답은 두 명 다 끝까지 부인하고 경미한 처벌로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리한(게임이론적 표현으로는 합리적인) 죄수들은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따져본 후 결국 모두 자백하고 만다.
상대방이 어떤 액션을 취하든 내 입장에서는 항상 자백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상대방이 부인한다고 가정했을 때, 나도 부인하면 경미한 처벌을 받지만 자백하면 바로 석방된다. 상대방이 자백한다고 가정했을 때, 나도 자백하면 무거운 처벌을 받지만 부인하면 가중처벌까지 받게 된다).
죄수의 딜레마 상황은 우리 사회 곳곳은 물론 회사 내부에서도 종종 목격된다. 학연과 지연에 따른 라이벌 의식이나 부서 이기주의가 지나쳐 회사에 해(害)를 끼치고 결국에는 스스로에게도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한 생산과 마케팅 파트, 경영 스텝과 실행 파트 간 오랜 갈등의 기저에도 모두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깔려 있다.
일례로 마케팅에서는 시장에서 팔릴 만한 고사양 제품을 요구하는데 생산 파트에서는 예산 제약 아래에서 생산성을 유지해 가며 저비용 제품에 집중하는 식이다. CEO 직속의 경영 스텝에서는 회사의 미래를 생각하며 담대하고 도전적인 계획을 세우지만, 실행부서에서는 펜대만 놀리는 무책임한 탁상공론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이렇듯 회사 내 고질적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흔히 회사 전체를 생각하는 큰 시각과 주인의식, 애사심 등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듣는 사람은 없는데 벽 보고 노래하는 꼴이다. 인간의 이기적 합리성이 존재하는 한 결국에는 균형상태, 즉 딜레마 상황으로 다시 회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개별적인 이익 추구보다 전사적 이익 추구가 개인에게 혹은 부서에게 더 유리하게끔 하는 유인책(Incentive) 마련이 중요하다.
어정쩡한 관용보다 엄격한 신상필벌을우선 부서 간 소통 채널을 확대해야 한다. 각 개인(혹은 부서)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대해 사전에 간단한 의사소통만 있어도 게임의 결과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음이 입증돼 있다(게임이론에서 말하는 시그널링(Signaling)이나 칩톡(Cheap talk)이 여기에 해당된다). 여러 부서에 파장이 미치는 의사결정 안건에 대해 부서 간 간담회와 전체 토론회 등이 (비록 뜨뜻미지근한 듯 보여도)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다음으로 부서 간 협업이나 시너지 성과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별도로 보상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게임의 이익구조(Payoff structure)가 바뀌게 되어 회사에 유리한 쪽으로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가능하다. 운동경기에서 선수 개개인의 득점보다는 어시스트나 희생 플레이 회수, 팀 성적에 따라 개인의 보상을 결정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조직문화를 손질해 협조문화를 정착시킬 필요도 있다. 우선 비협조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스타일로 철저하게 응징해 이기심에 제동을 거는 방법이 있다(게임이론에서는 이를 팃포탯(Tit-for-tat) 전략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서로 협조하다가 상대방이 한번 배신하면 나도 똑같이 배신하는 전략을 말한다. 팃포탯은 죄수의 딜레마가 여러 번 반복될 경우에 가장 우월한 전략임이 이론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
어정쩡한 관용보다 정나미는 떨어져 보여도 엄정한 신상필벌 문화가 더 유익할 수 있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소위 한솥밥 정신, 즉 구성원 간 관계의 지속성을 상기시켜 지금 당장 눈앞의 큰 이득에 현혹되기보다 꾸준히 좋은 평판을 유지해 소소한이득을 쌓아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조커의 농간에 빠진 사람들을 보자. 두 척의 배 모두의 운명이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드디어 예정된 데드라인 12시가 다가온다. 게임이론의 예측대로라면 양쪽 모두 스위치를 누르고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야 한다. 그러나 고담시의 시민과 복역수들은 이익보다는 양심을 선택하고 차마 기폭장치를 누르지 못한다.
할리우드의 영웅주의가 게임이론의 수학적 균형조차 능가했다고 볼 수 밖에. 영화 뒷얘기 한 가지. 조커 역을 맡아 열연한 히스 레저는 촬영 전 호텔방에 칩거하며 조커의 목소리, 불안한 움직임, 광기 어린 표정 하나하나를 연구했다고 한다. 이런 과도한 몰입 탓에 그는 촬영이 끝난 후에도 조커 캐릭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결국 영화가 개봉된 그 해에 불면증과 히스테리로 인한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미국 영화예술아카데미는 2009년 그에게 남우조연상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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