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삼성SDI-제일모직 합병 그 후…
Issue | 삼성SDI-제일모직 합병 그 후…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합병키로 결정한 큰 그림은 무엇일까. 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은 삼성그룹의 자동차 연관 사업 전면전으로 받아 들인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3남매 자녀 사이에 상속 영역을 구체화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사업 영역만 놓고 보면 삼성그룹이 자동차 부품·소재에 대한 확실한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익명을 요구한 외국계 증권사 자동차담당 애널리스트는 “이번 합병 발표로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자동차 소재·부품 사업이 확실해 보인다. 궁극적으로 전기차로 가기 위한 토대가 아닐까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대차그룹에서는 삼성의 자동차 부품 사업 진출을 전기차 생산을 위한 사전 단계로 해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차그룹 말고도 이번 삼성SDI의 제일모직 합병에 긴장하는 회사가 있다. 삼성과 전기·전자 40여년 라이벌인 LG그룹이다. LG전자는 지난해 6월 그룹 내 자동차 사업을 총괄하는 자동차부품(VC) 사업부를 별도로 만들고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LG그룹은 이미 전기자동차 시대에 맞는 확실한 인프라를 갖췄다. LG화학이 전기차 핵심인 2차전지에서 세계 선두권으로 발돋움한데다 기존 화학사업부에서는 자동차용 플라스틱 소재를 수십 년째 만들고 있다.
지난해에는 석유화학사업본부에 EP(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사업본부를 신설하며 자동차용 플라스틱 사업을 강화했다. 특히 2000년 이후 세계 자동차 업계에 연비 경쟁 바람이 불면서 LG화학의 소재 사업은 탄력을 받았다. 무게를 줄이는 경량화가 신차 개발의 핵심 기술로 떠오르면서 가볍고 강성이 좋은 강화 플라스틱 사용이 점점 확산됐다.
주로 실내 인테리어에 쓰이던 강화 플라스틱은 2000년 이후 기술 발전으로 강성이 좋아지면서 강철이나 알루미늄을 대신해 보닛 같은 외부 차체까지 쓰임새를 넓히고 있다. 자동차용 플라스틱 소재 적용 비율은 자동차 한 대당 2010년 0.1%에서 2017년 7%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이번 합병으로 삼성SDI가 유리해지는 분야는 단연 자동차 부품·소재다. 기존 전기차용 2차전지와 ESS(대용량 에너지 저장 장치)에 이어 자동차 소재까지 보폭을 확대한 것이다. 자동차 소재는 삼성SDI가 LG화학에 비해 취약했던 분야다. 이런 약점을 제일모직이 보강해준 것이다. 제일모직은 1990년대 후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로 화학사업을 다각화한 이후, 2010년부터 자동차용 플라스틱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기존 전자부품에 사용하던 폴리카보네이트(PC)·ABS 같은 합성수지를 자동차용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자동차 경량화 추세에 강화 플라스틱 인기제일모직은 흡수합병 되는 처지지만 사업 영역에서는 호재다. 자동차 부품과 함께 신사업으로 확대했던 IT용 편광필름과 OLED 재료가 기대에 못 미쳤던 게 사실이다. 삼성SDI는 LCD·OLED·2차전지 같은 삼성전자의 신수종 사업을 인큐베이팅해 성공한 경험이 남아 있다. 이번 합병으로 제일모직에서 지지부진했던 편광필름·OLED 재료 사업이 삼성SDI의 노하우를 접목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그렇다고 당장 이런 합병 효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각 사 체제를 유지하면서 합병 작업을 구체화하고 연말께야 본격적으로 사업부 간 결합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전문가들은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려면 3, 4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그간 삼성SDI는 LG화학에 비해 소재와 관련한 원천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전기차용 2차전지 같은 핵심사업 육성을 위해서도 소재의 원천기술이 절실했다. 제일모직은 2차전지 분리막 기술과 전자재료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 3월 31일 합병을 발표하면서 삼성SDI는 “제일모직이 보유한 분리막 기술과 유기소재 기술, 기타 다양한 요소기술 등을 확보해 2차전지 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2차전지 배터리팩 외장 소재에 대한 고민도 덜게 됐다. 배터리팩 사업이 장기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가볍고 강한 플라스틱 외장을 갖춰야 한다. 제일모직은 강화 플라스틱 사업을 2011년부터 준비해 왔다.
이런 양사의 강점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 그동안 전기차의 최대 약점으로 꼽혔던 주행거리 향상에 큰 폭의 진전이 기대된다. 차량 경량화와 2차전지 효율성 향상이 그것이다. 전기차 배터리에는 휴대폰용 2차전지 기준으로 약 7000개, ESS는 1MW에 휴대폰용 배터리 10만 개가 소요된다.
삼성SDI는 지난해 BMW의 전기차인 i3와 i8, 크라이슬러 전기차 F500e에 자사의 2차전지를 탑재하기로 계약했다. 이들 차량은 올해 하반기 본격적으로 시판된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말이나 내년 상반기에 삼성 SDI가 만든 전기차 배터리의 안정성과 신뢰도 평가가 자동차 업계에서 나올 것”이라며 “성공일 경우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선두인 LG화학에 버금가는 평판도를 지니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삼성SDI는 올해 중국에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향후 5년 간 전기자동차용 2차전지 사업에 65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미국과 유럽에 이어 중국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려는 포석이다. 박상원 UL코리아 오토사업담당 본부장은 “이번 합병으로 2차전지와 자동차 플라스틱에서 제대로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면 설계단계부터 공정기술까지 노하우를 공유해 경량화뿐 아니라 제품개발기간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쟁상대인 LG화학은 2007년 이후 GM·르노·포드와 현대·기아차 등 10여개 대형 자동차 업체에 전기차용 2차전지를 공급하고 있다. 2012~2013년 연속 미국 에너지 조사업체인 네비건트리서치 평가에서 세계 최고 전기차 배터리 기업으로 선정될 만큼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체로 자리 잡았다. LG화학은 자동차 경량화 추세 맞춰 2차전지의 무게를 줄이는 파우치형 배터리 개발에 열심이다.
LG그룹의 반격은…LG그룹은 2012년 5월 지주회사인 ㈜LG 산하에 시너지팀을 만들었다. 당시 시너지팀의 임무는 한 세대 이상 뒤떨어진 스마트폰 경쟁력 강화와 OLED TV 개발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둔 뒤 다음 과제는 자동차 부품 사업으로 결정됐다. 구본무 회장은 2012년 말 그룹 전 계열사의 ‘업적보고회’에서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단단히 각오하고 준비해 한번 충전하면 장거리를 갈 수 있는 고용량·고출력의 차세대 배터리 기술로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어 “LG그룹이 선도해야 할 시장이 자동차 부품”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결과 지난해 6월 LG전자에 자동차부품(VC) 사업부가 신설됐고, 자동차 관련 모든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LG그룹의 대응도 주목할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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