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Management |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섞어라, 그러면 창조될 것이니

Management |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섞어라, 그러면 창조될 것이니

갤러리아 명품관 웨스트는 매장별 칸막이를 없애고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켰다.



‘BMW 미니쿠퍼에 코카콜라가 몇 개 들어갈까?’ 듣는 이를 황당하게 하는 이 질문은, 한국 코카콜라와 BMW자동차 회사의 공동 마케팅이었다. 냉장고도 아니고, 왜 자동차에 코카콜라를 넣어야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으면서도 소비자들은 이 질문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다 함께 카운트다운을 하며 숫자를 세었고, 정답 6680개를 맞춘 네티즌에게 상품으로 코카콜라 668개를 증정했다. 콜라와 자동차의 만남은 다소 낯선 조합이다. 차라리 콜라와 냉장고의 만남이었다면 더 쉽게 이해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낯설수록 더욱 열광한다. 마케팅뿐만 아니다. 식품·패션·자동차·생활가전 등 업종 불문하고 그동안 확고했던 사업 간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문화영역에서는 경계가 사라지는 현상이 가장 먼저 나타났다. 가수면 가수, 개그맨이면 개그맨처럼 하나의 영역만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멀티형 연예인’이 이에 해당한다. 개그맨과 가수의 합성어 ‘개가수’뿐만 아니라, ‘개털맨(개그맨+탤런트)’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 등 전문성을 이유로 경계선이 뚜렷했던 영역들이 하나로 결합하며 방송가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본업에나 충실하라’던 시청자들이, 다양한 역할을 해내는 연예인들에게 ‘재주가 뛰어나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개가수·개털맨 인가 상한가명확히 구분되던 브랜드 아이덴티티도 이젠 그 경계가 희미해진다. 갤러리아 명품관은 지난 3월 백화점 업계에선 파격적인 수준으로 매장 개편을 단행했다. 일반 백화점이 개별 브랜드샵 위주로 박스형 점포로 매장을 구성한 것과 달리, 백화점 한 층 전체를 편집샵으로 꾸몄다. 이젠 브랜드별 구분없이 백화점 한 개층 전체가 상품기획자(MD)의 역량에 따라 하나의 상품 테마로 새롭게 묶인다.

서울에서 소위 ‘핫(hot)하다’는 장소도 마찬가지다. 압구정동에 있는 ‘풋루스’는 젊은이들이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카페이면서, 친환경 전기자전거를 직접 타볼 수 있는 자전거 가게다. 이태원에 들어선 ‘시리즈 코너’는 남성 패션복 브랜드 ‘시리즈’를 판매하는 의류매장이면서,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유명하던 ‘머그 포 래빗’ 카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그뿐만 아니라, 매장한 쪽에서는 가죽 공방도 운영하고 있어, 커피를 마시면서 디자이너의 작업모습을 생생히 관람할 수 있다.

홍대의 서점들도 경계를 깨고 변신 중이다. 온라인 서점의 출현으로 오프라인 서점들이 문을 닫는 가운데에서, 이색적인 북카페형 서점은 오히려 인기가 치솟고 있다. 대부분 출판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멀티공간형 북카페는 전문서적을 비롯해 다양한 책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인 작가들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커피숍 형태로 공간을 꾸몄다.

특히 출판사들이 정기적으로 운영해야하는 작가와의 만남이나 시낭송회, 독자와의 만남 등을 서점에서 개최한다. ‘인문카페 창비’는 창비 행사뿐 아니라 시민단체 모임, 인문학 소모임 등 연간 70~80회의 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카페 꼼마’, ‘자음과모음’ 같은 유명 북카페도 작가 낭독회 등의 행사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상품·서비스·문화 전 영역으로 확대경계가 사라지는 현상을 극단적으로 적용해보면, 정체성이 불분명한 잡종 제품이 출현하기도 한다. ‘커피맥주’가 대표적이다. 일본 케센누마 지역의 소규모 사업장인 앵커 커피(anchor Coffee)는 이치노세키 지역의 맥주 양조장 세키노이치와 손잡고 ‘커피맥주’란 하이브리드 제품을 출시했다.

서커스와 예술을 접목시킨 아트 서커스 ‘태양의 서커스단’은 스포츠용품 브랜드인 리복과 한 배를 탔다. 이들은 놀면서 살을 뺀다는 의미의 ‘쥬카리 핏투플라이(Jukari Fit to Fly)’라는 운동을 개발했는데 이는 서커스단의 공중그네(주카리) 타기를 일반인도 쉽게 할 수 있게 개조한 유산소운동으로 인기를 끈다.

패션 브랜드 베네통이 JYP엔터테인먼트의 2PM과 함께 출시한 ‘의류앨범’은 옷이면서 동시에 음반이다. 옷에 콘텐트 코드를 부착해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2PM의 6개 신곡이 다운로드되는, 옷이면서 동시에 음악 앨범인 하이브리드 제품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고집하기보단, 경계를 허물고 다른 제품, 브랜드들과 적극적으로 혼합되는 현상은 사실 한국에서 다소 낯선 모습이다. 그동안 한국 소비자들은 ‘기본에나 충실하라’며 섞이고 혼합된 제품들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색적으로 혼합될수록 더욱 열광하는 모습을 보인다.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태도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들에게 인정받은 브랜드보다는, 자신에게 더 적합한 브랜드면 충분하다는 자신감을 갖는다. 제품을 브랜드별로 배치하지 않고, 매장 콘셉트에 맞춰 브랜드를 마구 섞어버리는 편집샵의 특징이 그러하다.

기업 입자에서도 그 동안 확고했던 제품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이 반가울 것이다. 패션회사와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만남처럼,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낯선 업종으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굳이 신사업으로 사업을 확장하지 않더라도 기업엔 기회 요소가 더 많다. 파격적인 신제품을 굳이 시장에 내놓을 필요 없이, 단지 제품과 서비스의 경계를 약간만 허물어도 소비자들로부터 ‘충분히 신선하다’는 평가를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젠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열심히 각인시키려는 노력은 다소 허망할 수 있다. 오히려 브랜드의 이미지에 다소 손상이 가더라도, 소비자의 욕구를 다소 재미있고 신선한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기업의 노력과 의지가 더욱 중요하다. 계속해서 ‘산업의 경계’가 사라지는 현상은, 저성장기에 들어선 한국 시장의 새로운 전환점을 알리는 작은 신호탄일지도 모른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급등도 급락도 아니었다...'횡보' 비트코인 '10만 달러' 고지 넘을까

2LG화학, 나주공장 알코올 생산 설비 가동 중단..."비용 절감"

3여야의정협의체, 20일 만 와해...의료계 "정부·여당 해결 의지 없어"

4일주일에 네 번 나오라던 포스코...팀장급 주5일제 전환

5득남 '정우성', 이정재와 공동매입 '청담동 건물' 170억 올랐다

6 대한의학회·의대협회 "여야의정협의체 참여 중단"

7한국은행 "내년 근원물가 상승률 2% 밑돌며 안정"

8"월급 안 들어왔네"...직장인 10명 중 4명 임금체불 경험

9국내 기업 절반, 내년 '긴축 경영' 돌입...5년 새 최고치

실시간 뉴스

1급등도 급락도 아니었다...'횡보' 비트코인 '10만 달러' 고지 넘을까

2LG화학, 나주공장 알코올 생산 설비 가동 중단..."비용 절감"

3여야의정협의체, 20일 만 와해...의료계 "정부·여당 해결 의지 없어"

4일주일에 네 번 나오라던 포스코...팀장급 주5일제 전환

5득남 '정우성', 이정재와 공동매입 '청담동 건물' 170억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