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과 행정에서 한류 이끈다
정책과 행정에서 한류 이끈다
2014년 8월 중미통합체제(SICA) 회원국 정책담당자 13명이 한국을 찾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이 개최한 ‘중남미 공공정책 및 관리 역량강화 연수과정’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KDI국제정책대학원이 지난 5월 SICA 회원국 중 하나인 과테말라를 찾아 실시한 ‘중미 국가 대상 경제개발전략과 혁신정책과정’의 후속행사다. KDI국제정책대학원은 2013년부터 중미 지역 차세대 지도자 양성을 위한 정책대학원과 국가 중장기 경제사회발전전략 수립에 관한 정책 연구를 수행할 연구소 설립 지원을 위해 지난해부터 중미 국가 대상 공공정책 및 역량강화사업을 수행했다.
중남미와 한국은 거리도 멀 뿐 아니라 직항편이 없어 왕복이 불편하다. 게다가 중남미 바로 위에는 문화적, 지리적으로 한국보다 훨씬 가까운 선진국 미국이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남미 핵심 관료들은 국가 미래전략 수립과 핵심인재 양성을 KDI국제정책대학원에 맡겼다. 중남미뿐만이 아니다. 아프리카도 KDI국제정책대학원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1998년 개원 이래 총 153명의 졸업생이 아프리카 출신이며 현재도 24개국 62명의 아프리카 학생이 재학 중이다. 재학생 대부분이 각국 정부 부처에 소속된 관료들이다. 2013년엔 이 학생들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지역의 사회 발전을 모색하는 아프리카 포럼을 결성했다.
KDI국제정책대학원은 미국 외 국가 최초로 정책학 분야에서 전미행정대학원연합회(NASPAA) 인증을 획득했다.중남미,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 KDI국제정책대학원에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 공공기관의 뛰어난 정책·행정 능력이다. 한국 공공정책 및 행정은 수준이 높기로 유명하다. ‘정책 한류’ ‘행정 한류’란 말이 나올 정도다. 한국은 2003년부터 수여를 시작한 유엔 공공행정 우수상을 총 25개 수상했다. 지난 11년 간 이 상을 수상한 공공기관은 전세계를 통틀어 250개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2013년 총 4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한 회 최다 수상기관이자 역대 최다 수상기관의 영예를 안았다.
정책·행정 전문가의 산실‘정책 한류’ ‘행정 한류’의 중심엔 KDI국제정책대학원이 있었다. KDI국제정책대학원의 모태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971년 설립된 이래 40여 년 동안 한국의 고도성장 과정을 뒷받침한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다. 오랜 세월 경제개발, 빈부격차 해소, 공기업 효율성 제고부터 경제위기 극복과 남북경제협력까지 한국 경제 발전과 함께하며 축적한 지적 자산이 KDI국제정책대학원의 교육 과정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현재 KDI국제정책대학원엔 정책학, 개발학 과정과 정책학 박사 과정이 개설돼 있으며 행정학에 해당하는 공공관리학 석사 과정이 2015년부터 신설될 예정이다.
KDI국제정책대학원은 ‘국제’란 이름에 걸맞은 선진국형 대학원을 지향한다. 모든 수업을 100% 영어로 진행하며, 외국인 학생 비율도 50%에 달한다. 현재 전체 학생 339명 중 한국 학생은 159명이며 나머지 180명은 아프리카 브룬디부터 유럽 리투아니아까지 73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다. 유학생 대부분이 해당 국가 공무원이거나 공공기관 종사자다. 동문까지 더하면 총 111개국이 인맥으로 연결되며 이 중 70% 이상이 정부부처 소속 관료다. 남상우 KDI국제정책대학원 원장은 “해외 동문회만 23개가 존재한다”며 “국제적인 인맥을 구축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교수진 역시 미국, 중국, 호주, 우즈베키스탄 등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됐다. UN, OECD 등 국제기구 출신 교수진이 생생한 현장경험과 교육자료를 공유한다.
7월엔 미국 외 국가 최초로 정책학 분야에서 전미행정대학원연합회(NASPAA) 인증을 획득하며 우수한 교육과정을 인정받았다. NASPAA는 1970년에 설립돼 미국대학 공공학 교육과정의 수준향상과 국제교류 강화를 위해 프로그램 인증을 시행해왔다. 시라큐스대, 컬럼비아대, 인디아나대, 워싱턴대 등을 포함한 약 180여 개의 세계 유수 정책대학원이 지금까지 NASPAA 인증을 받았다. 본래 미국 내 대학만을 대상으로 하다가 몇 해 전부터는 해외 교육기관의 인증을 시작했는데 한국이 그 첫 대상으로 선정된 것이다.
KDI국제정책대학원은 3년 전부터 NASPAA 인증을 위해 꾸준히 준비해왔다. 2014년 3월 현장실사 단계에서 학생 구성의 다양성과 이에 따른 차별화된 교육과정, 글로벌 교육환경, 학생 및 교직원에 대한 다양한 지원 등 다방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남 원장은 “세계를 대표하는 정책대학원으로서 미국의 인증기관으로부터 정책학 석사 과정의 교육수준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한국의 우수 사례 해외에 전한다전쟁의 폐허 속에서 뛰어난 정책, 행정 능력을 키워낸 한국의 사례는 수많은 개발도상국의 귀감이다. KDI국제정책대학원에 해외 유학생이 많은 이유다. 한국형 개발모델과 우수 정책 사례를 해외로 전파하는 첨병 역할을 해왔다. 유학생뿐 아니라 해외 관료를 초빙해 단기 연수 형태로 한국형 개발모델을 가르친다. 2014년 8월엔 g7+(20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취약국가 연합체) 회원국 고위 정책담당자들을 대상으로 ‘글로벌리더과정’을 개최했다. 이 연수 중 g7+가 내놓은 안건이 같이 연수에 참석한 호주 G20 관계자들을 통해 G20 정상회담 안건으로 상정을 검토하기로 했다.
단기연수를 왔던 해외 관료들이 정규 학위과정으로 입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KDI국제정책대학원 관계자는 “최근 중남미 공무원역량강화과정에 온 온두라스 공무원은 실제로 이번 가을학기 전형에 합격하기도 했고, 연수를 받았던 알제리 공무원은 과정의 충실성과 연수의 질에 감탄하여 자국 공무원의 5년 장기교육을 대학원에 위탁하기로 하는 등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대단히 높다"고 말했다. "학위과정으로 졸업한 공무원들은 졸업 후에도 충성도가 높아 각국의 동문모임을 활발히 하며 한국과 자국의 외교적, 경제적 다리역할을 담당한다.”
그 공헌을 인정받아 세계은행 세계개발교육네트워크(GDLN) 한국센터로 지정됐다. GDLN 회원국 약 80개국을 대상으로 개발협력 관련 콘텐트를 제공하고 실시간 화상토론을 운영한다. 한국의 발전경험사례를 사전 형태로 집대성한 웹사이트 K-디벨로피디아는 2012년부터 제공하는 서비스로 세계은행, OECD 등 총 106개의 국내외 기관에서 수집된 2만5천건 이상의 한국 발전 경험 관련 자료를 보유하고 있으며, 청와대 홈페이지의 경제 부문 정부주요포털로 선정됐다.
2015년은 KDI국제정책대학원이 새롭게 도약하는 해다. 현재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캠퍼스 내부 건물에 위치한 학교가 2014년 12월엔 새로 마련된 세종시 KDI국제정책대학원 캠퍼스로 이전한다. 연구 및 교육에 최적화된 학생연구실과 학습시설, 최신식 기숙사가 갖춰져 학업에 몰입 가능한 교육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KDI국제정책대학원 관계자는 “세종캠퍼스는 중앙부처와 국책연구기관이 집약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경제정책 및 공공분야에 특화된 교육과정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5년 세종시 이전과 함께 새로 개설되는 공공관리학 석사 과정은 세종시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전문성을 키우는 데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뛰어난 정책, 행정 능력을 키워낸 한국의 사례는 수많은 개발도상국의 귀감이다. KDI국제정책대학원에 해외 유학생이 많은 이유다.
“한국은 개도국 발전모델로 적합한 국가”
남 원장은 새로운 KDI국제정책대학원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는 서강대 무역학과와 MIT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베트남 기획투자부 등을 거치며 개발경제 전문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도 인연이 깊다. 1977년 KDI 연구위원으로, 1998년엔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로 일했다. 2010년 맡은 KDI국제정책대학원 5대 원장직은 2012년 12월로 임기가 끝났지만 연임이 확정되면서 2014년 12월까지 6대 원장직을 이어간다.
남 원장은 열정적인 한국형 개발모델 전도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의 경쟁력이 디지털부분과 제조업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밖에서 주목하는 진정한 한국의 경쟁력은 단기에 이룬 눈부신 경제개발성공 신화에 있다.” 그는 한국이야말로 개발도상국이 참고할 만한 최적의 경제발전 모델이라고 본다. “한국만큼 적절한 발전경험을 가진 나라가 별로 없다. 유럽이나 일본은 산업화한 지가 오래됐다. 최근 급성장한 중국도 내수 및 노동을 기반으로 규모의 경제성장을 이룬 모델이기에 이상적인 경제성장 롤모델이 될 수 없다. 이들과 달리 한국은 천연자원 없이도 단기간에 고도성장을 이뤘다.”
고도성장의 배경엔 뛰어난 정책 및 행정능력이 있었다. “한국의 유교적 전통이 뛰어난 관료사회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사농공상이라는 말이 있듯이 조선은 공직에 대한 존중이 큰 사회였다. 우수한 사람이 공직에 뜻을 두고, 공직에 나아가는 과정이 비교적 투명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공직 진출을 통해 실제로 가능했다. 개발도상국의 사례를 보면 우수한 인재가 투명하게 일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취임과 동시에 전공으로 승격시킨 개발정책학 과정은 금세 본 궤도에 올랐다. 2012년 이후 추가로 11명의 교수가 임용됐고, 지금까지 총 224명이 동 과정을 이수했다. 이중 외국인 유학생이 157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개설 직후 488명이었던 지원자도 2014년 578명으로 늘었다. 남 원장은 신설 과정이 빠르게 자리잡은 이유로 “한국의 성장모델을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개발도상국의 관심”을 꼽으며 발전경험 전파야말로 가장 중요한 해외원조라고 덧붙였다. “건물을 지어주고 다리를 놔주는 등의 물리적인 원조는 어떤 나라든 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에 적절한 발전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국가는 흔치 않다.”
남 원장은 2015년 새로 개설될 공공관리학 과정에 큰 기대를 보였다. 그는 “아무리 정책이 좋아도 제대로 집행이 안 되면 전혀 효과다 없다”며 행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미 국내 행정대학원에선 정책을, 정책대학원에선 행정을 가르치고 있다. 그만큼 두 분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세종캠퍼스로 이전하면 세종시 소재 정부기관과 협력관계를 강화해 우수한 공공인력을 양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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