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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컵을 탐하다

캡틴, 컵을 탐하다

제이 하스 아메리카팀 단장(왼쪽)과 닉 프라이스 인터내셔널팀 단장(오른쪽)은 서로 승리를 장담했다. 인터내셔널팀 부단장 최경주 선수는 “아메리카팀을 상대로 이기려면 많은 분들의 응원이 필요하다. 관중이 없는 쇼는 흥미도 의미도 없다”며 홍보대사를 자임했다.
‘The Time Has Come(이제 때가 왔다)’. 지난 11월 5일 오전 ‘2015 프레지던츠컵 캡틴스 데이’ 행사가 열린 인천 송도 오크우드 호텔 프리미어 룸 곳곳에 붙은 대회 슬로건이다. 이날 행사엔 인터내셔널팀 닉 프라이스(57) 단장과 최경주 수석 부단장, 아메리카팀 제이 하스(61) 단장, 팀핀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커미셔너, 유정복 인천시장이 참석해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마케팅을 선언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은 내년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열린다. 장소는 인천시 송도자유무역지구에 위치한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핀쳄 커미셔너(행사 최고책임자)는 “내년 프레지던츠컵 중계는 225개국, 10억 가구에 30개의 언어로 중계될 예정이다. 대회 개최지 인천은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경제효과를 누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의 주역은 양 팀 단장(캡틴)과 최경주 수석 부단장이었다. PGA 전설의 프로들이 양 팀 리더를 맡았기 때문이다. 막걸리로 대회 성공 기원 건배를 하며 공식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을 비즈니스 룸에서 따로 만났다. “제이 하스 단장과 나는 상당히 오랜 친구다. 하지만 내년 한두 주 동안은 우정을 뒤로 미뤄놓아야 할 것 같다.” 농담을 던진 프라이스 인터내셔널팀 단장이 “내기를 하자”며 20달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하스 아메리카팀 단장도 만만치 않았다. 프라이스 단장이 달러를 지갑에 넣으려 하자 만류하면서 “내 것이니 잘 보관해 두라”고 응수했다.
 배상문·최경주·김형성 등 선발 후보군
프레지던츠컵은 미국 PGA투어가 1994년 미국과 유럽 프로 골프 대항전인 ‘라이더컵’을 본떠서 만든 대회다. 2년에 한 번씩 미국 출신 골퍼 12명(아메리카팀)과 유럽을 제외한 국가 출신 골퍼 12명(인터내셔널팀)이 실력을 겨룬다. 개최국의 행정수반이 명예 대회장을 맡는 전통에 따라 프레지던츠컵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까지 총 10회의 대회 중 8번은 아메리카팀이 승리했으며, 1998년 멜버른 대회에서는 인터내셔널팀이 우승했다. 2003년 남아공 대회 에서는 무승부를 기록한 바 있다.

단장은 주로 PGA 스타 선수 출신들이 맡는다. 남아공 출신의 닉프라이스는 지난 대회에 이어 인터내셔널팀 단장을 두 번째 맡았다. PGA투어 18승에 프레지던츠컵에도 다섯 번 출전하는 등 그린 안팎에서 많은 업적을 쌓았다. 그는 “단장에게 가장 어려운 임무는 ‘페어링(Pairing)’, 즉 선수를 짝 짓는 것이다. 두 선수가 서로 얼마나 맞는지 많은 요소들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출신의 제이 하스 단장은 지난 대회 부단장에서 이번 대회 단장으로 승격했다. LPG투어에서 9승한 그는 아들 빌 하스와 함께 프레지던츠컵에 두 차례 참가해 화제가 됐다.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12명의 선수를 맡은 것은 나의 골프 경력 중 하이라이트”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경쟁자이자 ‘절친’이다. 필드 위에서나 밖에서나 자주 만나며 늘 서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제이 하스는 자신보다 네 살이나 적은 닉 프라이스에 대해 ‘존경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닉은 명예의 전당에 오른 메이저 챔피언이자 세계적인 골프 선수다. 나는 닉을 브리티시오픈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존경했다. 세계 챔피언감이라고 느꼈고 그는 이후 실력이 점점 좋아졌다. 닉은 아주 훌륭한 요리사이기도 하다. 닉에 대해서 칭찬할 게 너무 많다. 솔직히 이번 대회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지만 나는 닉과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승자가 된 기분이다. 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경주는 인터내셔널팀 수석 부단장에 선임됐다. PGA 8회 우승, 아시아 선수로는 최다인 3차례 프레지던츠컵 출전, 그리고 개최지가 한국이라는 것을 감안한 발탁으로 풀이된다. 최경주는 “2003년 남아공 대회 때 미국 애틀랜타에서 18시간 30분이나 걸려 케이프타운에 도착했다. 상금도 없는 대회에 왜 이 고생을 하며 가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하지만 남아공에서 태극기가 올라가면서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선수로서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두 팀 중 하나는 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터내셔널팀에게 아홉 번째 패배는 반갑지 않다. 아시아 최초 유치라 행사 진행을 잘 해야 한다. 표가 없어서 못 들어올 정도로 흥행이 돼야 한다.” 프라이스는 “최 수석 부단장은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개최는 박삼구 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회장이 2006년 플레이어스 참관 차 미국을 방문해 핀쳄 커미셔너에게 유치 의사를 전달한 게 출발점이다. 이후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과 친분이 있는 류진 풍산그룹회장의 도움이 더해져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최경주와 양용은 등 PGA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역할도 컸다. 아시아에서 처음 개최되는 만큼 높은 경제효과와 흥행도 기대된다. 특히 2015년은 골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 직전이라 전 세계적으로 골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시기다. PGA투어는 전 세계 약 12만 명이 프레지던츠컵을 관람하기 위해 인천을 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역대 대회 1일 평균 갤러리는 2만5000여 명으로 연습 라운드 때도 1만 명 넘게 관전했다. 올해 프레지던츠컵이 열린 미국 더블린과 인근 지역인 콜럼버스는 대회 기간내내 호텔, 식당, 쇼핑센터가 만원을 이루는 등 경제 효과를 톡톡히 봤다.

대회 흥행의 열쇠는 ‘참가 선수의 면면’이라는 게 중론이다. 인터내셔널팀의 12명 중 10명은 미국과 유럽선수를 제외한 세계랭킹 상위 선수로 뽑고 나머지 2명은 단장 추천으로 선발한다. 흥행을 위해서라면 개최국 선수를 선발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대회의 품격에 어울리는 수준의 선수가 아니면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 한국에서는 최경주, 배상문, 김형성 선수 등이 후보군에 올라 있다. 프라이스 단장은 “최경주와 배상문, 두 선수가 같은 팀에서 경기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배 선수는 최근에 경기를 잘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좋은 경기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랭킹에 의해 우리 팀에 합류하면 최상이겠지만 만약 단장 추천이 필요할 경우 그를 뽑을 가능성이 크다.”
 여자대회도 유치, 골프계 훈풍 불까
한편 세계 여자골프 유일의 국가대항전인 인터내셔널크라운도 2018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개최된다. 2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이 대회는 세계랭킹을 근거로 전 세계에서 8개국이 참가하며 나라별 4명의 선수가 랭킹에 의해 선발된다.

프레지던츠컵에 이어 인터내셔널크라운 개최가 결정 되면서 국내 골프계는 물론이고 골프산업에 훈풍이 불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현재 골프장·장비·의류등을 포함한 골프산업 규모는 약 20조원으로 추정돼 전체 스포츠 산업의 3분의 1에 달한다. 하지만 한국 골프산업의 현주소는 ‘골프 강국’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다. 전국 500개에 육박하는 골프장은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하고, 회원제 골프장은 입회금 반환 대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골프산업의 근간인 골프장은 법률로 규정된 체육시설임에도 과세할 때는 사행성 업종에 포함된다. 골퍼들이 회원제 골프장을 이용할 때마다 부담하는 개별소비세(2만1120원)는 카지노의 2.3배, 경륜장의 30배에 달한다.

최경주 수석 부단장은 “농사짓는 부친께서 가끔 전화를 하셔서 ‘너처럼 좋은 일에 돈 쓰는 사람도 많은데 왜 방송이나 신문에서는 골프를 그리 작살내느냐?’고 물으신다”며 “골프만큼 세계 속에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스포츠가 없는데도 골프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가 관련 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도 골프에 대해 로비를 위한 스포츠로 여기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많은 분들이 눈치 보면서 골프채를 놓고 있다. 이번 프레지던츠컵 개최가 국가 이미지 상승뿐 아니라 침체된 국내 골프산업의 전환점이 됐으면 한다.”
 숫자로 본 2015 프레지던츠컵 - 상금은 0달러, 500만 달러 수익은 기부로
0 출전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금. 프레지던츠컵은 상금이나 참가비가 없다. 대신 선수들은 대회 기간 중 기업이나 개인들로부터 모금된 기부금(개인당 약 15만 달러)의 사용처를 직접 정할 수 있다.

1 아시아 첫 개최국. 지난해까지 프레지던츠컵 10차례 대회 중 미국외 지역에서는 호주와 남아공, 캐나다 등 단 3개 국가에서만 열렸다. 한국은 2011년 호주 멜버른 대회에서 개최지로 선정됐다.

9 ‘황제’ 타이거 우즈의 9회 연속 출전 여부가 관심이다. 우즈는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8회 연속 출전했고 5회 연속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현재 우즈는 아메리카팀 포인트 랭킹 10위 안에 들지 못한 상황(100위권 밖)으로 출전이 불투명하다. 2015년 9월 8일 발표될 단장 추천 선수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 국내 팬을 만나기 어렵다.

12 아메리카팀은 2년간 PGA 투어 상금랭킹 순으로 10명, 인터내셔널팀은 대회 직전 세계랭킹 순으로 10명에게 출전 자격을 준다. 여기에 단장 추천 선수 2명씩 더해진다. 대회 첫 날엔 2인 1조가 돼 포섬(공 하나로 번갈아 샷을 하는 방식) 6경기를 치르고, 이틀째는 포볼(각자의 공으로 경기한 뒤 더 좋은 스코어를 택하는 방식) 6경기를 펼친다. 사흘째는 포섬과 포볼 방식으로 5경기씩 치르고 마지막 날엔 싱글 매치플레이 12경기로 우승팀을 정한다.

2000만 대회 개최에 드는 최소 비용은 2000만 달러(약 220억 원). 하지만 프레지던츠컵은 철저하게 상업성을 배제한 대회여서 대회 명칭에 기업 타이틀 스폰서를 붙일 수 없고 대회장에 광고판도 설치할 수 없다. 선수들 모자나 유니폼도 깨끗하다. 조직위는 공식글로벌 파트너 시티그룹과 롤렉스 외에 든든한 스폰서를 구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3200만 프레지던츠컵은 대회를 통해 모인 수익을 기부한다. 2013년 미국 대회 500만 달러 등 지금까지 20년간 총 3200만 달러를 모아 15개국 450여개의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버림받은 동물들을 치료하거나 남아공 장애인들에게 골프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등 방법도 다양하다. 최경주는 한국에서 점심을 굶는 어린이들에게 급식비를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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