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은 글로벌 테마파크 유치 - “~들어온다” 헛바람에 민심·땅값만 들썩
말 많고 탈 많은 글로벌 테마파크 유치 - “~들어온다” 헛바람에 민심·땅값만 들썩
일본·중국·홍콩·싱가포르·말레이시아에는 있는데 한국에는 없다. 디즈니랜드·유니버설스튜디오·레고랜드 같은 글로벌 테마파트 얘기다. 일본·중국 등은 테마파크 유치로 경제적인 이득은 물론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도 도움을 받았다. 이들은 글로벌 테마파크 유치 과정에서 정부 차원의 적극적 구애작전을 벌였다. 한국도 이들 테마파크를 유치하기 위해 여러 번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물이 신통찮다. ‘특정 테마파크가 들어선다’는 소문에 땅값만 들썩이다 끝난 경우가 대다수다. 글로벌 테마파크 유치의 현주소를 알아봤다. 테마파크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테마파크의 성공 비결도 살폈다. 박근혜정부 경제정책의 화두는 서비스산업 육성이다. 지난해 8월 정부는 보건·의료, 관광, 콘텐트, 교육, 금융, 물류, 소프트웨어 등 7개 유망 서비스산업을 육성하는 투자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를 통해 2017년까지 15조원의 투자 효과를 얻고 18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관광 분야의 핵심 정책 중 하나가 ‘공공기관 부지를 활용한 국제 테마파크 유치’다. 정책에서 밝힌 공공기관 부지는 수자원공사가 소유하고 있는 경기도 화성시 신외동 송산그린시티 동쪽의 부지를 말한다. 2007년부터 세계 2위의 테마파크인 ‘유니버설스튜디오’ 유치 여부를 놓고 말이 많은 지역이다. 그런데 이곳을 두고 최근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이미 유니버설스튜디오 유치는 물 건너 갔다”는 말이 나온다. 유니버설스튜디오&리조트 측이 새로운 사업 파트너를 중국으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10월 24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베이징의 주요 건설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승인됐으며, 건설 부지는 베이징 퉁저우 문화 관광 지역으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중국에 유니버설스튜디오가 들어선다고 해서 화성 국제 테마파크 사업이 완전 무산되는 건 아니다. 현재 사업 세부사항을 논의 중이다. 일본에도 유니버설스튜디오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에도 지역 특색에 맞는 새로운 유니버설스튜디오가 들어설 수 있다. 꼭 유니버설스튜디오가 아니더라도 디즈니랜드와 같은 제3의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는 있다. 정부도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제 테마파크 유치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다만, 최근 유니버셜스튜디오 유치의 과정을 살펴보면 여러 모로 뒷맛이 깔끔하지 않다.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 시행사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촌극이 빚어져서다. 국제 테마파크 유치는 많은 국가에서 욕심을 내는 사업이다. 앞서 다른 국가의 성공 사례를 보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결단이 큰 몫을 한 경우가 많았다. 화성 국제 테마파크 사업은 그렇지 못했다. 시행사는 사업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고, 수자원공사와 지자체는 시행사에 모든 책임을 떠 넘기기에 바빴다. 정부는 구체적인 계획도 나오지 않은 사업을 두고 홍보에만 몰두했다. 이번 '서비스산업 투자 활성화 대책’을 보면, 정부는 이 사업으로 2500억원의 투자 효과를 올릴 수 있다고 명시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다.
어디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 걸까. 이 사업의 시작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유니버설스튜디오&리조트는 한국에 새로운 유니버설스튜디오를 짓는 사업을 검토했다. 이른바 유니버설스튜디오코리아리조트(USKR) 사업이다. 유니버설스튜디오는 한국 사업자에게 브랜드·지적재산권 사용 권한과 운영 노하우를 제공하고 라이선스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같은 해 한국은 사업자 컨소시엄을 구성해 라이선스 계약을 따는데 성공했다. 이듬해에는 포스코건설의 주도로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와 업무위탁사(AMC)가 설립됐다. 다음해에는 롯데그룹이 PFV 지분을 늘리는 방법으로 사업에 참여했다. 경기도 역시 별도의 부서를 꾸려 지원하면서 사업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화성 시민들은 일본 유니버설스튜디오보다 7배나 큰 테마파크가 한국에 들어선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유치를 추진한 경기도는 ‘직접 고용 1만1000명, 15명의 고용유발 효과, 연 15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화성에 유니버설스튜디오가 들어서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하지만 테마파크를 지을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사업이 예정된 땅은 송산그린시티 동쪽 국제 테마파크 부지로 시화호를 매립한 곳이다. 매립지인 만큼 땅의 소유는 수자원공사다. 공기업 부채를 줄이라는 압박에 시달리던 수자원공사는 420만㎡ 땅을 팔아 4대강 사업으로 생긴 부채를 해결할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최대한 많은 자금을 확보하려는 수자원공사와 시행사(USKR PFV) 사이에 기나긴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수자원공사가 최초로 제시한 금액은 1조원에 달했고, 시행사 측은 3000억~4000억원이 적당하고 주장했다. 양측의 입장차가 커 꽤 오랜 시간을 끌었다. 그러다 2011년 7월 양측은 이 부지의 감정평가액인 5040억원에 토지를 매매하기로 극적으로 합의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시행사 측이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시행사 측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상황에서 토지 금액이 지나치게 높다”고 주장했다. PFV 지분 60% 이상을 가진 롯데그룹 측의 사정도 좋지 않았다. 당시 서울 잠실에 추진 중인 제2 롯데월드 사업이 답보 상태를 빠져 추가 사업을 진행할 동력을 잃은 것이다.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이 롯데쇼핑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한 것에 대한 부담이 컸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납부 시한인 2012년 9월 30일까지 1500억원 가량의 토지대금 일부를 시행사가 지급하지 않으면서 토지계약 자체가 취소됐다. 지역 내 테마파크가 들어서 경제 효과를 기대했던 지역 주민들은 “시행사가 지나치게 미온적인 태도를 취해 사업이 좌초 위기를 맞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업 추진 실패에 대한 여론이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자 이번에는 USKR측에서 새로운 안을 제시했다. 테마파크 부지 중 콘도가 들어서기로 예정된 100만㎡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우선 개발하는 대신 땅값을 3000억원으로 낮춰 줄 것을 수자원공사 측에 제안했다. 제외된 지역은 자금 여건이 개선되면 추가로 진행 여부를 논의한다는 조항도 넣었다. 하지만 수자원공사 측은 이 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자원공사 측은 “처음 계약한 대로 사업을 진행하지 않으면 특정 지자체나 기업에 특혜를 주는 셈이 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기도와 시행사는 “수자원공사가 지나친 욕심으로 사업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땅값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사업은 점차 산으로 갔다. 7년 전 획득한 라이선스 계약기간도 이미 만료가 됐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계약을 해야 한다. 여기에 지난해 7월 일본을 방문한 토머스 윌리엄스 유니버설스튜디오 파크 앤 리조트(UPR) 회장이 “서울 근교에 유니버설스튜디오를 짓는 사업은 백지화됐다”고 말했다. 정부와 경기도의 부인에도 사실상 사업 종료를 선언한 셈이다. 테마파크를 기대한 시민들과 주변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그 와중에도 관련 기관과 기업은 네 탓 공방을 벌이기에 바빴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부가 나섰다. 원래 이 사업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략 사항이었다. 거기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서비스산업 육성 투자계획에 포함되면서 물릴래야 물릴 수 없는 사업이 됐다. 최경환 부총리까지 전면에 나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제 불똥은 공기업인 수자원공사 쪽으로 튀게 됐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공공기관이 협조하지 않는 그림으로 비칠 수 있어서다.
수자원공사는 새롭게 TF팀을 꾸려 사업을 재추진 했다. 최계운 수자원공사 사장은 부랴부랴 미국 올랜도로 날아가 마이클 실버 UPR 사장과 면담했다. 귀국 후에는 ‘실버 사장으로부터 송산그린시티가 매력적이고 유일한 장소임을 확인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유일한’ 장소라는 수자원공사의 설명과는 달리 두 달 뒤 UPR은 중국 베이징 진출을 선언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경기도가 “중국 베이징에 유니버설스튜디오가 들어서는 것과 한국의 사업은 별개”라며 성난 민심을 달랬다. 화성 테마파크 사업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정부는 공모방식으로 사업을 재추진 할 계획이다. 기존의 시행사인 USKR을 포함한 모든 기업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새로운 사업자를 선정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지자체의 대대적인 지원은 물론이고 토지를 무상으로 임대하거나 토지 현물출자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수자원공사가 이미 불가능하다고 밝혔던 분할 매각도 불사하겠다는 자세다. 디즈니랜드로 대체할 가능성도 열어뒀다.
사업이 미궁 속으로 빠진 가운데 정부는 ‘화성 테마파크 사업은 정상적으로 추진 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상황에서 2500억원의 투자 효과를 2017년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7년 동안이나 ‘유치 성공’ ‘좌초 위기’ ‘전환 국면’ ‘사실상 무산’ ‘재추진’ 등을 반복하고 있다.
답답한 글로벌 테마파크 사업의 현장은 또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2008년 추진했던 MGM 테마파크 사업이다. MGM은 ‘톰과 제리’로 유명한 영화사다. 인천공항 근처에 영화단지를 비롯한 놀이시설과 호텔 등을 짓는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사업 역시 땅값 문제 등을 이유로 사실상 무산됐다. 인천 송도유원지에 유치를 추진했던 파라마운트 무비파크 사업 역시 지지부진한 상태다. 국내 사업 파트너와 예상 부지가 수 차례 변경되며 부동산 투자 바람몰이만 하다 끝날 분위기다. MGM 테마파크(인천공항), 유니버설스튜디오(화성), 파라마운트 무비파크(인천 송도) 등 세 사업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추진 됐다. 모두 수도권에서 진행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에는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수도권에만 지나치게 많은 테마파크를 유치한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지역 균형 발전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수도권에 추진 중이었던 글로벌 테마파크 사업은 모두 백지화 위기에 놓였다.
경상남도 진해에는 세계적 영화사 폭스가 투자하는 글로벌 테마파크 사업이 추진 중이다. 경상남도와 미국 20세기 폭스그룹, 호주 빌리지 로드쇼는 지난해 7월 16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웅동지구 72만평 부지에 글로벌 테마파크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업이 원만하게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폭스가 참여하는 영화 관련 사업 비중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은 카지노와 호텔, 골프장 사업이 주다. “대규모 투자 유치를 위해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폭스를 끌어들이려고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연간 1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할 것으로 자신하는 경상남도와 달리 수요가 많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크다.
국내에 추진 중인 글로벌 테마파크 사업 중 그나마 실현 가능성이 큰 곳은 춘천 레고랜드다. 세계 3대 테마파크 중 하나인 레고랜드가 강원도 춘천 중도 섬에 들어설 예정이다. 1932년 덴마크의 작은 도시에서 탄생한 블록 ‘레고’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교육용 장난감이다. 춘천 레고랜드 사업 역시 우여곡절이 많았다. 원래 레고랜드 건립이 추진된 곳은 경기도 이천으로 시기도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을 포함한 프랑스·독일·일본 등이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국 쪽으로 유리한 상황이 조성됐으나 수도권 규제에 발목이 잡혀 사업이 무산 됐다. 결국 레고랜드는 독일에 둥지를 틀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2008년 강원도가 다시 한번 레고랜드 측에 러브콜을 보냈다. 양측은 2011년 투자에 합의했고, 2012년 레고랜드 개발을 위한 특수목적법인인 ‘엘엘개발’이 설립됐다. 이후 2016년 준공, 2017년 3월 개장을 목표로 순항했다. 엘엘개발은 “129만㎡의 부지에 레고랜드가 들어서면 연간 200만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며 9883개의 직접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10년 동안 생산유발 효과는 5조원, 지방세수는 연간 평균 44억원이 걷힐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까지 국내에 추진됐던 다른 글로벌 테마파크 사업과 달리 조건도 나쁘지 않다. 별도의 로열티 없이 연간 매출이 약 425억원이 넘을 경우 8~12%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현재 영국·미국(2곳)·독일·말레이시아 등 세계 6곳의 레고랜드가 있는데,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는 곳은 춘천 레고랜드가 유일하다. 테마파크가 들어서는 부지는 레고랜드(멀린)에서 앞으로 50년 최대 100년간 무상 임대하는 조건이며, 나머지 부지는 강원도가 출자 또는 매각하는 것으로 돼 있다.
약간의 잡음도 있다. 춘천 중도를 개발하는 도중 테마파크 부지에서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이다. 이를 처리하는 방안을 놓고 문화재심의위원회가 수 차례 결정을 미루며 사업이 무기한 연기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정부가 적극적 지원에 나서며 사업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문화재심의위원회가 조건부로 사업을 승인했고, 결국 지난해 11월 17일 착공했다. 착공까지는 성공했으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았다. 시민단체의 반발이 여전히 거세다. ‘춘천 중도 고조선 유적지 보존 범국민운동본부’는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중도 개발을 저지하는 운동의 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 갔다. 국내 역사학자들을 비롯해 전국민족단체협의회, 한민족사연구회 등 100여 곳이 참여했다. 범국민운동본부 측은 “문화재청이 공청회를 한 번도 개최하지 않은 채 중도 개발을 신속히 허가했다”며 법원에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춘천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는 “강원도가 도민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너무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글로벌 테마파크 유치의 과실이 지역주민들에게 충분히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강원도는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간담회를 열고, 시만단체의 의견을 앞으로의 사업 계획에 반영할 계획이다.
전국 각지에서 추진된 글로벌 테마파크 사업은 최근 7년 동안 수많은 국민의 마음과 전국 부동산 가격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그나마 순항 중인 곳은 춘천 레고랜드뿐이다. 물론 글로벌 테마파크 유치가 무조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유치에 성공한 레고랜드 역시 앞으로 해결할 과제가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공약 남발’ ‘치적 홍보’ ‘부동산 투기열풍’ ‘책임 전가’ 악순환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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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분야의 핵심 정책 중 하나가 ‘공공기관 부지를 활용한 국제 테마파크 유치’다. 정책에서 밝힌 공공기관 부지는 수자원공사가 소유하고 있는 경기도 화성시 신외동 송산그린시티 동쪽의 부지를 말한다. 2007년부터 세계 2위의 테마파크인 ‘유니버설스튜디오’ 유치 여부를 놓고 말이 많은 지역이다. 그런데 이곳을 두고 최근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이미 유니버설스튜디오 유치는 물 건너 갔다”는 말이 나온다. 유니버설스튜디오&리조트 측이 새로운 사업 파트너를 중국으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10월 24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베이징의 주요 건설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승인됐으며, 건설 부지는 베이징 퉁저우 문화 관광 지역으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중국으로 간 유니버설스튜디오
다만, 최근 유니버셜스튜디오 유치의 과정을 살펴보면 여러 모로 뒷맛이 깔끔하지 않다.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 시행사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촌극이 빚어져서다. 국제 테마파크 유치는 많은 국가에서 욕심을 내는 사업이다. 앞서 다른 국가의 성공 사례를 보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결단이 큰 몫을 한 경우가 많았다. 화성 국제 테마파크 사업은 그렇지 못했다. 시행사는 사업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고, 수자원공사와 지자체는 시행사에 모든 책임을 떠 넘기기에 바빴다. 정부는 구체적인 계획도 나오지 않은 사업을 두고 홍보에만 몰두했다. 이번 '서비스산업 투자 활성화 대책’을 보면, 정부는 이 사업으로 2500억원의 투자 효과를 올릴 수 있다고 명시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다.
어디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 걸까. 이 사업의 시작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유니버설스튜디오&리조트는 한국에 새로운 유니버설스튜디오를 짓는 사업을 검토했다. 이른바 유니버설스튜디오코리아리조트(USKR) 사업이다. 유니버설스튜디오는 한국 사업자에게 브랜드·지적재산권 사용 권한과 운영 노하우를 제공하고 라이선스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같은 해 한국은 사업자 컨소시엄을 구성해 라이선스 계약을 따는데 성공했다. 이듬해에는 포스코건설의 주도로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와 업무위탁사(AMC)가 설립됐다. 다음해에는 롯데그룹이 PFV 지분을 늘리는 방법으로 사업에 참여했다. 경기도 역시 별도의 부서를 꾸려 지원하면서 사업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화성 시민들은 일본 유니버설스튜디오보다 7배나 큰 테마파크가 한국에 들어선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유치를 추진한 경기도는 ‘직접 고용 1만1000명, 15명의 고용유발 효과, 연 15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화성에 유니버설스튜디오가 들어서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하지만 테마파크를 지을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사업이 예정된 땅은 송산그린시티 동쪽 국제 테마파크 부지로 시화호를 매립한 곳이다. 매립지인 만큼 땅의 소유는 수자원공사다. 공기업 부채를 줄이라는 압박에 시달리던 수자원공사는 420만㎡ 땅을 팔아 4대강 사업으로 생긴 부채를 해결할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최대한 많은 자금을 확보하려는 수자원공사와 시행사(USKR PFV) 사이에 기나긴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수자원공사가 최초로 제시한 금액은 1조원에 달했고, 시행사 측은 3000억~4000억원이 적당하고 주장했다. 양측의 입장차가 커 꽤 오랜 시간을 끌었다. 그러다 2011년 7월 양측은 이 부지의 감정평가액인 5040억원에 토지를 매매하기로 극적으로 합의한다.
땅값 줄다리기 중 금융위기 발생
사업 추진 실패에 대한 여론이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자 이번에는 USKR측에서 새로운 안을 제시했다. 테마파크 부지 중 콘도가 들어서기로 예정된 100만㎡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우선 개발하는 대신 땅값을 3000억원으로 낮춰 줄 것을 수자원공사 측에 제안했다. 제외된 지역은 자금 여건이 개선되면 추가로 진행 여부를 논의한다는 조항도 넣었다. 하지만 수자원공사 측은 이 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자원공사 측은 “처음 계약한 대로 사업을 진행하지 않으면 특정 지자체나 기업에 특혜를 주는 셈이 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기도와 시행사는 “수자원공사가 지나친 욕심으로 사업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땅값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사업은 점차 산으로 갔다. 7년 전 획득한 라이선스 계약기간도 이미 만료가 됐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계약을 해야 한다. 여기에 지난해 7월 일본을 방문한 토머스 윌리엄스 유니버설스튜디오 파크 앤 리조트(UPR) 회장이 “서울 근교에 유니버설스튜디오를 짓는 사업은 백지화됐다”고 말했다. 정부와 경기도의 부인에도 사실상 사업 종료를 선언한 셈이다. 테마파크를 기대한 시민들과 주변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그 와중에도 관련 기관과 기업은 네 탓 공방을 벌이기에 바빴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부가 나섰다. 원래 이 사업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략 사항이었다. 거기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서비스산업 육성 투자계획에 포함되면서 물릴래야 물릴 수 없는 사업이 됐다. 최경환 부총리까지 전면에 나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제 불똥은 공기업인 수자원공사 쪽으로 튀게 됐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공공기관이 협조하지 않는 그림으로 비칠 수 있어서다.
수자원공사는 새롭게 TF팀을 꾸려 사업을 재추진 했다. 최계운 수자원공사 사장은 부랴부랴 미국 올랜도로 날아가 마이클 실버 UPR 사장과 면담했다. 귀국 후에는 ‘실버 사장으로부터 송산그린시티가 매력적이고 유일한 장소임을 확인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유일한’ 장소라는 수자원공사의 설명과는 달리 두 달 뒤 UPR은 중국 베이징 진출을 선언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경기도가 “중국 베이징에 유니버설스튜디오가 들어서는 것과 한국의 사업은 별개”라며 성난 민심을 달랬다.
정부 “화성 테마파크 사업 추진 중” 말만 되풀이
사업이 미궁 속으로 빠진 가운데 정부는 ‘화성 테마파크 사업은 정상적으로 추진 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상황에서 2500억원의 투자 효과를 2017년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7년 동안이나 ‘유치 성공’ ‘좌초 위기’ ‘전환 국면’ ‘사실상 무산’ ‘재추진’ 등을 반복하고 있다.
답답한 글로벌 테마파크 사업의 현장은 또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2008년 추진했던 MGM 테마파크 사업이다. MGM은 ‘톰과 제리’로 유명한 영화사다. 인천공항 근처에 영화단지를 비롯한 놀이시설과 호텔 등을 짓는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사업 역시 땅값 문제 등을 이유로 사실상 무산됐다. 인천 송도유원지에 유치를 추진했던 파라마운트 무비파크 사업 역시 지지부진한 상태다. 국내 사업 파트너와 예상 부지가 수 차례 변경되며 부동산 투자 바람몰이만 하다 끝날 분위기다.
부동산 시장에 헛바람만 집어 넣고…
경상남도 진해에는 세계적 영화사 폭스가 투자하는 글로벌 테마파크 사업이 추진 중이다. 경상남도와 미국 20세기 폭스그룹, 호주 빌리지 로드쇼는 지난해 7월 16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웅동지구 72만평 부지에 글로벌 테마파크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업이 원만하게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폭스가 참여하는 영화 관련 사업 비중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은 카지노와 호텔, 골프장 사업이 주다. “대규모 투자 유치를 위해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폭스를 끌어들이려고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연간 1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할 것으로 자신하는 경상남도와 달리 수요가 많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크다.
국내에 추진 중인 글로벌 테마파크 사업 중 그나마 실현 가능성이 큰 곳은 춘천 레고랜드다. 세계 3대 테마파크 중 하나인 레고랜드가 강원도 춘천 중도 섬에 들어설 예정이다. 1932년 덴마크의 작은 도시에서 탄생한 블록 ‘레고’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교육용 장난감이다. 춘천 레고랜드 사업 역시 우여곡절이 많았다. 원래 레고랜드 건립이 추진된 곳은 경기도 이천으로 시기도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을 포함한 프랑스·독일·일본 등이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국 쪽으로 유리한 상황이 조성됐으나 수도권 규제에 발목이 잡혀 사업이 무산 됐다. 결국 레고랜드는 독일에 둥지를 틀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2008년 강원도가 다시 한번 레고랜드 측에 러브콜을 보냈다. 양측은 2011년 투자에 합의했고, 2012년 레고랜드 개발을 위한 특수목적법인인 ‘엘엘개발’이 설립됐다. 이후 2016년 준공, 2017년 3월 개장을 목표로 순항했다. 엘엘개발은 “129만㎡의 부지에 레고랜드가 들어서면 연간 200만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며 9883개의 직접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10년 동안 생산유발 효과는 5조원, 지방세수는 연간 평균 44억원이 걷힐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까지 국내에 추진됐던 다른 글로벌 테마파크 사업과 달리 조건도 나쁘지 않다. 별도의 로열티 없이 연간 매출이 약 425억원이 넘을 경우 8~12%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현재 영국·미국(2곳)·독일·말레이시아 등 세계 6곳의 레고랜드가 있는데,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는 곳은 춘천 레고랜드가 유일하다. 테마파크가 들어서는 부지는 레고랜드(멀린)에서 앞으로 50년 최대 100년간 무상 임대하는 조건이며, 나머지 부지는 강원도가 출자 또는 매각하는 것으로 돼 있다.
약간의 잡음도 있다. 춘천 중도를 개발하는 도중 테마파크 부지에서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이다. 이를 처리하는 방안을 놓고 문화재심의위원회가 수 차례 결정을 미루며 사업이 무기한 연기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정부가 적극적 지원에 나서며 사업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문화재심의위원회가 조건부로 사업을 승인했고, 결국 지난해 11월 17일 착공했다.
레고랜드는 우여곡절 끝에 2014년 11월 착공
전국 각지에서 추진된 글로벌 테마파크 사업은 최근 7년 동안 수많은 국민의 마음과 전국 부동산 가격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그나마 순항 중인 곳은 춘천 레고랜드뿐이다. 물론 글로벌 테마파크 유치가 무조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유치에 성공한 레고랜드 역시 앞으로 해결할 과제가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공약 남발’ ‘치적 홍보’ ‘부동산 투기열풍’ ‘책임 전가’ 악순환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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