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희 탱그램 팩토리 대표
정덕희 탱그램 팩토리 대표
소프트웨어 개발과 하드웨어 제조를 함께하는 유일한 한국의 스타트업 탱그램 팩토리가 출시한 줄넘기 ‘스마트 로프’가 세계로 진출한다. 글로벌 기업들의 제휴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obile World Congress, MWC)는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IT 관련 기업의 기술력을 뽐내는 자리였다. 1홀(메인관)부터 8-1홀까지 각 기업들이 내놓은 각종 스마트폰과 태블릿, 액세서리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창업 열풍으로 뜨겁다는 중국 심천의 힘도 느낄 수 있었다. 심천에서 온 기업들은 그 넓은 7홀을 거의 다 차지하며 중국 스타트업의 기술을 뽐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첫날부터 일어났다. 7홀의 구석에 있는 부스(7L81)에 세계 각지의 언론사가 찾아와 취재를 하느라 북새통을 이룬 것. 페이스북, 구글, 나이키, 아디다스, 언더아머, 마이크로소프트, 일본의 소프트뱅크 등 IT업계를 이끌어가는 글로벌 기업 관계자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졌다. 부스를 찾아온 언론인과 IT 업계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빅 아이디어!” 나 “어메이징”을 연발했다. 관람객들도 무슨 일인가해서 줄지어 그 부스를 찾아왔다. 7홀을 점령(?)했던 심천 기업 관계자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떤 부스였을까. 그곳에 가면 줄 하나를 양쪽에서 잡고 돌리는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특이하지도 않은 장면에 실망한다.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숫자가 허공에 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허공에는 17, 18, 19, 20 이렇게 줄이 돌아갈 때마다 카운팅된 숫자가 떠있다. 이 신기한 모습을 선보인 곳이 바로 한국의 스타트업 탱그램 팩토리였다.
탱그램 팩토리가 선보인 것은 스마트로프(Smart Rope). 쉽게 말해 줄넘기다. 줄넘기한 횟수가 홀로그램처럼 공중에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7홀을 가득 메웠던 심천 지역 기업 관계자들이 우리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다”고 정덕희(41) 탱그램 팩토리 대표가 말했다. 한국 대기업 관계자도 부스로 찾아와 영어로 “미국에서 왔느냐”라고 질문할 정도였다.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이 스타트업이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마트로프가 사람들을 놀라게 한 비밀은 스마트로프에 설치되어 있는 23개의 LED다. LED가 스스로 발광해 홀로그램처럼 허공에 숫자를 떠오르게 한다. 줄넘기 횟수는 손잡이 안의 컴퓨터 칩이 계산한다. 4자리 숫자까지 구현 가능하고, 블루투스 4.0이 탑재되어 있어 스마트폰과 연결할 수 있다. 스마트폰과 연결됐다는 것은 줄넘기 횟수뿐만 아니라, 칼로리 소비량, 운동 시간 등 각종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손잡이에 카운터가 내장된 줄넘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줄넘기에 ‘스마트’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다. 전문가들은 사물인터넷(IoT)의 나아갈 길을 보여준 제품이라고 평가했다.
허공에 숫자를 띄운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적으로 다양한 한계를 극복해야 가능한 일이다. 정 대표는 “줄넘기를 하는 사람들마다 모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줄넘기를 돌리는 속도도 모두 다르고, 키도 다르다. 이런 변수들을 모두 계산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 눈높이에 맞게 숫자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당시 탱그램 팩토리가 7홀의 구석진 부스를 잡았던 것은 접수가 늦었기 때문이다. 스마트 로프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14년 말이었다. 아이디어를 내고 기술 타당성 등을 준비하는 시간만 2년이었다. 제조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정 대표는 “당시 우리들은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했다”면서 “제품 개발 후 MWC에 선보이자는 계획을 세웠는데, 제품 개발이 쉽지 않았다. MWC 접수를 늦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MWC 참가접수를 했을 때 남은 부스가 7L81 뿐이었다고 했다.
MWC의 성공은 예견된 일이었다. MWC에 출품되기 전부터 스마트 로프는 세계 디자인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탱그램 팩토리 페이스북 페이지에 스마트 로프를 소개한 것을 유명한 온라인 디자인 매체 ‘디자인붐’이 기사화 한 것. 이 기사를 계기로 디자인 업계에서 스마트 로프가 화제를 모았다. 스마트 로프가 더 유명해진 것은 2월 25일 크라우드 펀딩을 할 수 있는 ‘킥스타터(Kickstarter)’에 출시했기 때문이다. 처음 목표는 1000개 한정 판매를 위한 6만 달러였다. 정 대표는 “킥스타터용 크롬 컬러 제품 가격은 60 달러였다. 만일 손잡이에 끼울 수 있는 실리콘 그립을 원하면 10 달러를 추가로 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1개월 만에 목표액의 3배 이상이 모였다. 전문가들부터 일반 소비자까지 스마트 로프의 가능성을 확신한 것이다. “스마트 로프와 탱그램 팩토리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알려졌다. MWC에서 수많은 취재진이 우리 부스에 오는 것을 보고 예상이 적중한 것 같은 짜릿함을 느꼈다”고 정 대표는 말했다. 성공의 열매는 달콤했다.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탱그램 팩토리와 손잡길 원했다. 정 대표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글로벌 기업이 아시아 시장 판매를 맡을 것 같다”고 자랑했다. 한국의 유명 기업도 스마트 로프의 해외 진출을 책임지는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금액이나 기업 이름은 밝힐 수 없다. 때가 되면 발표할 것이다. 이름이 알려지면 많은 이들이 놀랄 것”이라고 정 대표는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마트 로프는 해외 판매 리테일 샵도 대부분 확정됐다. 대표적인 곳이 베스트바이. 이곳을 통해 북미 시장 소비자에게 팔리게 된다. 유럽의 유명 리셀러와 리테일 매장과도 계약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디자인 스토어 ‘모마샵’에서도 스마트 로프가 들어가게 된다. 모마샵에서 판매가 된다는 것은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다. 줄넘기라는 단순한 피트니스 도구로 세계로 진출한다는 꿈이 실제 일어난 것이다.
정 대표는 왜 줄넘기를 선택했을까? 그는 “유산소 운동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줄넘기는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그래서 2년 전부터 줄넘기 아이디어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줄넘기는 시작에 불과하다. 정 대표가 꿈꾸는 피트니스 플랫폼을 만드는 단초일 뿐이다. 스마트 로프는 9월에 정식 런칭한다. 일반인에게 판매가 시작되는데, 첫 물량은 5만개. 이후에는 초등학생들을 위한 저렴한 제품도 선보일 계획이다. 스마트 로프와 함께 선보이는 것이 ‘스마트 짐’이라는 피트니스 플랫폼이다. 칼로리 계산, 데일리 점프, 추천 운동량 등 스마트 로프에 관련된 다양한 데이터가 이곳에 축적된다. “스마트 로프 출시 이후 1년마다 덤벨·바벨 등 피니트스 제품 5종을 계속 출시할 것이다.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데이터도 계속 쌓인다. 스마트 짐을 대표적인 피트니스 플랫폼으로 만들 자신이 있다.” 정 대표는 스마트 짐을 오픈 플랫폼으로 공개를 해서 다른 기업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할 수 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정 대표는 “핵심은 실행력”이라고 강조했다. “김범수 다음 카카오 의장이 카카오톡 서비스를 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이 서비스 나도 생각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누가 먼저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누가 먼저 실행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탱그램 팩토리가 한국 스타트업계에서도 이슈가 되는 것은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흔히 제조업에 뛰어들려면 자본력이 있어야 한다. 중소기업도 아닌 스타트업이 직접 제조업에 뛰어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정 대표는 “사람들이 ‘왜 힘든 제조업에 뛰어드냐’고 많이 묻는다. 난 제조업을 하고 싶었다”며 웃었다. 산업 디자인계에서 정 대표는 유명한 인물이었다. 세종대학교 미대를 졸업한 후 삼성전자 시니어 디자이너, 아이리버 아트 디렉터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2008년 독립을 결심했다. 탱그램 디자인연구소를 설립했다. 디자인과 제조를 함께 할 수 있는 테크 플랫폼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다.
업계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은 디자이너였지만, 독립을 결심한 순간 그는 맨바닥에서 처음 시작해야 했다. 선배가 사용하는 사무실 공간 한켠을 빌렸다. 선배 사무실 직원에게 디자인 교육을 해준다는 명목이었다. 정 대표를 포함해 단 2명이 시작한 조그마한 디자인실. “성과를 내기 위해 365일을 일했던 것 같다. 사무실에 일하다가 졸리면 라면박스를 깔고 잤다. 그렇게 2~3년 정도 했더니 사무실이 본 궤도에 올라갔다”며 웃었다.
그는 모든 삶을 일에 쏟아 부었다. 그래서 삼성전자, 현대카드, 벨킨 등 국내외 유수 기업의 디자인 파트너가 됐다. 대기업과 손 잡고 일하는 디자인연구소였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디자인 기업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 것. “디자인실은 인력에 따라 매출이 결정된다. 한 사람이 1억원을 번다고 치자.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려면 100명의 디자이너가 필요한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비즈니스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디자인연구소를 열 때 목표는 100년을 이어가는 기업이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갖춰야 할 것은 기술과 브랜드였다.
그래서 2010년부터 부가가치가 높은 제조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먼저 스마트폰 케이스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신용카드를 넣을 수 있는 케이스였다. 케이스 안에 들어가는 신용카드도 케이스의 디지안과 어울리면 금상첨화였다. 얼마 후 현대카드에서 협업을 제안했다. “우리가 만든 스마트폰 케이스는 카드사에서도 탐을 낼만한 디자인이었다. 카드업계에 디자인 경영을 내세운 현대카드가 적격이었다.”
조금씩 제품을 늘려나갔다. 스마트 앨범, 스마트폰에 꼽는 레이저 포인터 ‘스마트 닷’, 스마트 플레이트 등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성공을 이어갔다. 스마트 플레이트는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을 바로 볼 수 있는 전자앨범이었다. 스마트 플레이트도 킥스타터를 통해 1000개를 선주문 받는 데 성공했다. “리미트 에디션 개념을 새롭게 접근하고 싶었다. 브랜드 파급력을 키우기 위해서 소비자 한정판 개념을 끌어왔고, 상용화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 플레이트도 곧 상용화에 들어갈 계획이다. UI(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 디자인에 중점을 둔 제품을 출시하면서 노하우를 하나씩 얻고 있었던 것.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스마트 케이스였다. 그동안 이런 제품을 만든 것은 제조와 유통을 연습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내린 결론은 복잡한 유통구조를 해결해야만 제조업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탱그램 팩토리가 선보인 제품들은 독일 IF어워드, 일본의 굿 디자인 어워드 등을 받기도 했다.
탱그램 디자인연구소라는 소프트웨어 기반의 스타트업을 통해 정 대표는 제조업에 뛰어들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었다. 2014년 7월에는 탱그램 팩토리를 설립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세일즈와 마케팅을 지휘하는 ‘탱그램 팩토리 아메리카’도 설립했다.
그동안 디자인연구소에서 번 수십억원의 돈을 몽땅 투자했다. 주변 사람들은 ‘미쳤다’고 말렸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늦출 수 없었다. 무모한 것처럼 보이는 그의 꿈은 한 기업가가 인정했다. 정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후 20억원의 자본 투자를 바로 결정한 것이다. “이 내용은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그 회장님은 숫자보다 가고자 하는 목표와 열정을 인정해주셨다. 나의 꿈과 비전을 듣고 회장님이 너무 즐거워했다”며 정 대표는 웃었다. 프로는 프로를 알아본다고 했다. 아무런 조건 없이 20억원을 투자했던 기업가의 안목은 맞았다. 탱그램 팩토리가 내놓은 첫 작품으로 스마트 로프는 대박을 앞두고 있다. 정 대표의 목표는 2017년까지 스마트 로프 1000만개 판매다. 액수로 따지면 7000억원이 넘는다. “2년 안에 1조 클럽에 들어가는 게 목표다. 1조원이 어떤 금액인지 솔직히 잘 모른다.(웃음) 하지만 탱그램 팩토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2명으로 시작했던 탱그램 팩토리의 직원은 33명으로 늘었다.
그의 이야기가 몽상가의 허언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과정을 알고 나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6남매 중 막내다.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배달을 해야 했다. “뛰어다니면서 신문을 배달하면 50부 밖에 못 돌린다. 조금 돈을 모아서 자전거를 사니 100부로 늘어나더라. 오토바이를 사니까 150부까지 돌릴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 삶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이런 경험이 세상을 보는 눈과 사업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만 했던 대학시절, 그가 졸업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10년이다. 대학 강의실이 집이었고 실습실이었다. 강의실 벽면에 자신의 작품을 걸어놓고 생활을 했다. 학교에서도 그는 유명 인사였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은 이런 고생을 이겨내면서 얻은 것 같다.”
그가 “비빌 언덕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다. 탱그램 팩토리의 복지혜택은 놀랍다. 연봉은 여타 디자인 회사보다 당연히 높다. 매월 문화생활비가 지급되고, 6년 근속을 하면 1개월 유급 휴가를 받는다. “대기업에서 시행하는 대다수의 복지혜택은 탱그램 팩토리에서도 실시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얼마 전에는 모든 직원들이 태국 푸켓으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원하는 직원들은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직원들 덕분에 탱그램 팩토리가 성공했다. 이런 제도들을 시행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지난 해 결혼을 앞둔 한 직원이 집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해결해준 것도 그였다. “어렸을 때 고생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가난하면 비빌 언덕이 있으면 어떻게라도 버티겠다고. 어려운 친구들에게 작게나마 비빌언덕이 되고 싶었다.” 그 직원의 어머니는 직접 손편지를 보내 고마움을 표시해 정 대표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정 대표가 스마트 로프 제작을 맡긴 곳도 한국의 중소업체다. “부평 남동공단에 가면 기술력 있는 중소업체들이 많다. 다들 대기업 하청업체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까웠다. 그래서 손을 잡았다”고 했다. 스마트 로프의 성공은 한 중소업체의 성공으로 이어지게 되는 셈이다.
회사명인 탱그램(Tangram) 중국에서 유래한 7개 조각 놀이판을 뜯한다. “직원들의 역량을 잘 조합하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만들 수 있는 스타트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탱그램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다.”
- 글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이원근 객원기자
탱그램 팩토리를 추천한 이유 “스마트 로프는 헬스케어, IoT, 디자인을 한꺼번에 충족시키는 제품이다. 세계 시장에 먼저 도전하여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탱그램 팩토리는 앞으로 선보일 제품도 기대되는 스타트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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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첫날부터 일어났다. 7홀의 구석에 있는 부스(7L81)에 세계 각지의 언론사가 찾아와 취재를 하느라 북새통을 이룬 것. 페이스북, 구글, 나이키, 아디다스, 언더아머, 마이크로소프트, 일본의 소프트뱅크 등 IT업계를 이끌어가는 글로벌 기업 관계자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졌다. 부스를 찾아온 언론인과 IT 업계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빅 아이디어!” 나 “어메이징”을 연발했다. 관람객들도 무슨 일인가해서 줄지어 그 부스를 찾아왔다. 7홀을 점령(?)했던 심천 기업 관계자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줄넘기 숫자를 허공에 나오게 하는 기술 성공
탱그램 팩토리가 선보인 것은 스마트로프(Smart Rope). 쉽게 말해 줄넘기다. 줄넘기한 횟수가 홀로그램처럼 공중에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7홀을 가득 메웠던 심천 지역 기업 관계자들이 우리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다”고 정덕희(41) 탱그램 팩토리 대표가 말했다. 한국 대기업 관계자도 부스로 찾아와 영어로 “미국에서 왔느냐”라고 질문할 정도였다.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이 스타트업이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마트로프가 사람들을 놀라게 한 비밀은 스마트로프에 설치되어 있는 23개의 LED다. LED가 스스로 발광해 홀로그램처럼 허공에 숫자를 떠오르게 한다. 줄넘기 횟수는 손잡이 안의 컴퓨터 칩이 계산한다. 4자리 숫자까지 구현 가능하고, 블루투스 4.0이 탑재되어 있어 스마트폰과 연결할 수 있다. 스마트폰과 연결됐다는 것은 줄넘기 횟수뿐만 아니라, 칼로리 소비량, 운동 시간 등 각종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손잡이에 카운터가 내장된 줄넘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줄넘기에 ‘스마트’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다. 전문가들은 사물인터넷(IoT)의 나아갈 길을 보여준 제품이라고 평가했다.
허공에 숫자를 띄운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적으로 다양한 한계를 극복해야 가능한 일이다. 정 대표는 “줄넘기를 하는 사람들마다 모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줄넘기를 돌리는 속도도 모두 다르고, 키도 다르다. 이런 변수들을 모두 계산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 눈높이에 맞게 숫자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당시 탱그램 팩토리가 7홀의 구석진 부스를 잡았던 것은 접수가 늦었기 때문이다. 스마트 로프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14년 말이었다. 아이디어를 내고 기술 타당성 등을 준비하는 시간만 2년이었다. 제조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정 대표는 “당시 우리들은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했다”면서 “제품 개발 후 MWC에 선보이자는 계획을 세웠는데, 제품 개발이 쉽지 않았다. MWC 접수를 늦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MWC 참가접수를 했을 때 남은 부스가 7L81 뿐이었다고 했다.
MWC의 성공은 예견된 일이었다. MWC에 출품되기 전부터 스마트 로프는 세계 디자인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탱그램 팩토리 페이스북 페이지에 스마트 로프를 소개한 것을 유명한 온라인 디자인 매체 ‘디자인붐’이 기사화 한 것. 이 기사를 계기로 디자인 업계에서 스마트 로프가 화제를 모았다. 스마트 로프가 더 유명해진 것은 2월 25일 크라우드 펀딩을 할 수 있는 ‘킥스타터(Kickstarter)’에 출시했기 때문이다. 처음 목표는 1000개 한정 판매를 위한 6만 달러였다. 정 대표는 “킥스타터용 크롬 컬러 제품 가격은 60 달러였다. 만일 손잡이에 끼울 수 있는 실리콘 그립을 원하면 10 달러를 추가로 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1개월 만에 목표액의 3배 이상이 모였다. 전문가들부터 일반 소비자까지 스마트 로프의 가능성을 확신한 것이다. “스마트 로프와 탱그램 팩토리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알려졌다. MWC에서 수많은 취재진이 우리 부스에 오는 것을 보고 예상이 적중한 것 같은 짜릿함을 느꼈다”고 정 대표는 말했다.
북미 지역에 스마트 로프 선보일 예정
이뿐만이 아니다. 스마트 로프는 해외 판매 리테일 샵도 대부분 확정됐다. 대표적인 곳이 베스트바이. 이곳을 통해 북미 시장 소비자에게 팔리게 된다. 유럽의 유명 리셀러와 리테일 매장과도 계약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디자인 스토어 ‘모마샵’에서도 스마트 로프가 들어가게 된다. 모마샵에서 판매가 된다는 것은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다. 줄넘기라는 단순한 피트니스 도구로 세계로 진출한다는 꿈이 실제 일어난 것이다.
정 대표는 왜 줄넘기를 선택했을까? 그는 “유산소 운동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줄넘기는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그래서 2년 전부터 줄넘기 아이디어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줄넘기는 시작에 불과하다. 정 대표가 꿈꾸는 피트니스 플랫폼을 만드는 단초일 뿐이다. 스마트 로프는 9월에 정식 런칭한다. 일반인에게 판매가 시작되는데, 첫 물량은 5만개. 이후에는 초등학생들을 위한 저렴한 제품도 선보일 계획이다. 스마트 로프와 함께 선보이는 것이 ‘스마트 짐’이라는 피트니스 플랫폼이다. 칼로리 계산, 데일리 점프, 추천 운동량 등 스마트 로프에 관련된 다양한 데이터가 이곳에 축적된다. “스마트 로프 출시 이후 1년마다 덤벨·바벨 등 피니트스 제품 5종을 계속 출시할 것이다.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데이터도 계속 쌓인다. 스마트 짐을 대표적인 피트니스 플랫폼으로 만들 자신이 있다.” 정 대표는 스마트 짐을 오픈 플랫폼으로 공개를 해서 다른 기업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할 수 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정 대표는 “핵심은 실행력”이라고 강조했다. “김범수 다음 카카오 의장이 카카오톡 서비스를 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이 서비스 나도 생각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누가 먼저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누가 먼저 실행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탱그램 팩토리가 한국 스타트업계에서도 이슈가 되는 것은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흔히 제조업에 뛰어들려면 자본력이 있어야 한다. 중소기업도 아닌 스타트업이 직접 제조업에 뛰어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정 대표는 “사람들이 ‘왜 힘든 제조업에 뛰어드냐’고 많이 묻는다. 난 제조업을 하고 싶었다”며 웃었다.
디자인과 제조를 함께 할 수 있는 테크 플랫폼
업계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은 디자이너였지만, 독립을 결심한 순간 그는 맨바닥에서 처음 시작해야 했다. 선배가 사용하는 사무실 공간 한켠을 빌렸다. 선배 사무실 직원에게 디자인 교육을 해준다는 명목이었다. 정 대표를 포함해 단 2명이 시작한 조그마한 디자인실. “성과를 내기 위해 365일을 일했던 것 같다. 사무실에 일하다가 졸리면 라면박스를 깔고 잤다. 그렇게 2~3년 정도 했더니 사무실이 본 궤도에 올라갔다”며 웃었다.
그는 모든 삶을 일에 쏟아 부었다. 그래서 삼성전자, 현대카드, 벨킨 등 국내외 유수 기업의 디자인 파트너가 됐다. 대기업과 손 잡고 일하는 디자인연구소였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디자인 기업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 것. “디자인실은 인력에 따라 매출이 결정된다. 한 사람이 1억원을 번다고 치자.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려면 100명의 디자이너가 필요한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비즈니스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디자인연구소를 열 때 목표는 100년을 이어가는 기업이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갖춰야 할 것은 기술과 브랜드였다.
그래서 2010년부터 부가가치가 높은 제조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먼저 스마트폰 케이스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신용카드를 넣을 수 있는 케이스였다. 케이스 안에 들어가는 신용카드도 케이스의 디지안과 어울리면 금상첨화였다. 얼마 후 현대카드에서 협업을 제안했다. “우리가 만든 스마트폰 케이스는 카드사에서도 탐을 낼만한 디자인이었다. 카드업계에 디자인 경영을 내세운 현대카드가 적격이었다.”
조금씩 제품을 늘려나갔다. 스마트 앨범, 스마트폰에 꼽는 레이저 포인터 ‘스마트 닷’, 스마트 플레이트 등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성공을 이어갔다. 스마트 플레이트는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을 바로 볼 수 있는 전자앨범이었다. 스마트 플레이트도 킥스타터를 통해 1000개를 선주문 받는 데 성공했다. “리미트 에디션 개념을 새롭게 접근하고 싶었다. 브랜드 파급력을 키우기 위해서 소비자 한정판 개념을 끌어왔고, 상용화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 플레이트도 곧 상용화에 들어갈 계획이다. UI(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 디자인에 중점을 둔 제품을 출시하면서 노하우를 하나씩 얻고 있었던 것.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스마트 케이스였다. 그동안 이런 제품을 만든 것은 제조와 유통을 연습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내린 결론은 복잡한 유통구조를 해결해야만 제조업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탱그램 팩토리가 선보인 제품들은 독일 IF어워드, 일본의 굿 디자인 어워드 등을 받기도 했다.
탱그램 디자인연구소라는 소프트웨어 기반의 스타트업을 통해 정 대표는 제조업에 뛰어들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었다. 2014년 7월에는 탱그램 팩토리를 설립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세일즈와 마케팅을 지휘하는 ‘탱그램 팩토리 아메리카’도 설립했다.
그동안 디자인연구소에서 번 수십억원의 돈을 몽땅 투자했다. 주변 사람들은 ‘미쳤다’고 말렸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늦출 수 없었다. 무모한 것처럼 보이는 그의 꿈은 한 기업가가 인정했다. 정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후 20억원의 자본 투자를 바로 결정한 것이다. “이 내용은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그 회장님은 숫자보다 가고자 하는 목표와 열정을 인정해주셨다. 나의 꿈과 비전을 듣고 회장님이 너무 즐거워했다”며 정 대표는 웃었다.
“ 어려운 이들에게 ‘비빌 언덕’ 되고 싶어”
그의 이야기가 몽상가의 허언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과정을 알고 나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6남매 중 막내다.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배달을 해야 했다. “뛰어다니면서 신문을 배달하면 50부 밖에 못 돌린다. 조금 돈을 모아서 자전거를 사니 100부로 늘어나더라. 오토바이를 사니까 150부까지 돌릴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 삶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이런 경험이 세상을 보는 눈과 사업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만 했던 대학시절, 그가 졸업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10년이다. 대학 강의실이 집이었고 실습실이었다. 강의실 벽면에 자신의 작품을 걸어놓고 생활을 했다. 학교에서도 그는 유명 인사였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은 이런 고생을 이겨내면서 얻은 것 같다.”
그가 “비빌 언덕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다. 탱그램 팩토리의 복지혜택은 놀랍다. 연봉은 여타 디자인 회사보다 당연히 높다. 매월 문화생활비가 지급되고, 6년 근속을 하면 1개월 유급 휴가를 받는다. “대기업에서 시행하는 대다수의 복지혜택은 탱그램 팩토리에서도 실시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얼마 전에는 모든 직원들이 태국 푸켓으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원하는 직원들은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직원들 덕분에 탱그램 팩토리가 성공했다. 이런 제도들을 시행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지난 해 결혼을 앞둔 한 직원이 집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해결해준 것도 그였다. “어렸을 때 고생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가난하면 비빌 언덕이 있으면 어떻게라도 버티겠다고. 어려운 친구들에게 작게나마 비빌언덕이 되고 싶었다.” 그 직원의 어머니는 직접 손편지를 보내 고마움을 표시해 정 대표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정 대표가 스마트 로프 제작을 맡긴 곳도 한국의 중소업체다. “부평 남동공단에 가면 기술력 있는 중소업체들이 많다. 다들 대기업 하청업체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까웠다. 그래서 손을 잡았다”고 했다. 스마트 로프의 성공은 한 중소업체의 성공으로 이어지게 되는 셈이다.
회사명인 탱그램(Tangram) 중국에서 유래한 7개 조각 놀이판을 뜯한다. “직원들의 역량을 잘 조합하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만들 수 있는 스타트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탱그램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다.”
- 글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이원근 객원기자
탱그램 팩토리를 추천한 이유 “스마트 로프는 헬스케어, IoT, 디자인을 한꺼번에 충족시키는 제품이다. 세계 시장에 먼저 도전하여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탱그램 팩토리는 앞으로 선보일 제품도 기대되는 스타트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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