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시작에 불과하다
그리스는 시작에 불과하다
현재 유로존 남동쪽에서 벌어지는 극적 사태는 부채의 수렁에 빠진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는 역사상 최고의 사례다. 그리스와 연관된 각종 수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해 그리스의 명목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77%였다.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돈 덕분에 겨우 명줄을 유지했다.
비록 그리스 비판가들은 부채 상환 기간이 수십년 연장되고 금리도 인하돼 자국 빚의 실제 가치가 훨씬 낮다고 주장하지만, 그럼에도 그처럼 산더미 같은 빚을 지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안타깝게도 그중 몇몇 국가는 유럽 대륙에 있다. 지난해 말 이탈리아의 정부 부채는 GDP의 132%였다. 포르투갈은 130%, 아일랜드 110%, 스페인은 98%다. 선진국 중에서 이들을 넘어서는 국가는 부채 비율 230%에 달하는 일본이 유일하다.
그리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기 위해선 177%라는 천문학적 수치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연합 통계청 유로스탯의 자료에 따르면 그리스의 부채는 약 3200억 유로다. 2012년에 첫 부채 탕감이 있었음에도 지난 금융위기 이후로 급격히 늘어났다. 그럼에도 그리스의 공공부채는 더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았다. 지난 수년 간 그리스 부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그 대신 빚을 지탱할 경제가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스 경제를 계속해서 고갈시키는 것은 추가적인 부채가 아니라 GDP의 180%에 육박하는 기존 부채의 압박이다. 2011년 그리스 공공부채는 3560억 유로, GDP 대비 부채 비율은 171%였다. 3년 뒤 부채 더미는 3170억 유로로 줄었지만 부채 비율은 177%로 높아졌다. 이렇게 보면 그리스는 결코 부채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부채 속에 깊이 잠겨 있다. 다른 나라가 그리스와 같은 상황에 처했을 수도 있다는 가정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그리스 사례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며 특별하다고 여기는 것은 위험하다.
최근 제러미 워너 기자는 데일리 텔레그래프지에 쓴 기사에서 마지막으로 그리스를 방문했던 1970년대를 돌이켰다. 워너는 가난한 나라였던 그리스에서 그처럼 많은 사람이 신식 독일 자동차를 소유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스는 어떻게 그토록 짧은 기간 동안 그렇게 많은 발전을 이뤄냈을까?” 워너 기자는 물었다. 현재 우리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리스가 금융위기를 겪기까지 수십년 동안 걸어온 길은 비록 극단적일지언정 절대 특수한 사례는 아니다. 수많은 국가들이 가계·기업·금융기관·정부를 망라하는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고 성장했다.
특히 미국·영국·아일랜드·스페인의 소비자는 부동산 시장이 활황을 맞이하면서 부채를 마구 늘렸다. 건설 부문은 돈을 있는대로 끌어와서 실현이 불투명한 개발 프로젝트에 쏟아부었다. 당시 전 세계 은행들은 현재 규제 당국이 안전하다고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부채를 끌어다 썼다는 사실이 금융위기를 겪는 동안 명백해졌다. 이제 빚더미 위에서 벌어진 잔치는 거의 잦아들었다. 미국·영국 가계 같은 일부 경우엔 사람들이 빚을 갚거나 채무 불이행에 빠지면서 빚이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전 세계의 빚이 금융위기 때 정점에 달했다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반대다. 올해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MGI)가 발행한 ‘부채와 (별 진전 없는) 부채 정리’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부채는 금융위기 이후에도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대출 열풍이 불던 2000년 말 세계 부채는 87조 달러였다. 이 수치는 2007년 말 142조 달러로 급증했다. 7년만에 63% 증가한 액수다. 이후 금융위기가 닥쳤음에도 부채 증가는 여전했다. 다시 7년이 지난 2014년 말 세계 부채는 57조 달러(40%) 증가한 199조 달러를 기록했다.
걱정하긴 이르다. 이 보고서는 앞으로도 세계 부채가 총생산량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리라고 예측했다. 2000년 세계 부채 비율은 246%, 2007년엔 269%였다. 2014년 이 비율은 17%포인트 늘어난 286%에 달했다. 온 세계가 그리스의 길을 천천히 뒤따른다. 이 길이 향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우리 빚은 그 빚을 관리하고 상환하는 데 필요한 경제력보다 더 빨리 증가한다.
저명한 경제평론가 조지 매그너스는 “크게 우려해야 할 일이다”고 말했다. “전례가 없진 않다. 수백년 전을 되돌아 보면 오늘날의 영국·미국보다 부채 비율이 높았던 적이 있었다. 단 전시가 아닐 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매그너스는 이 차이가 아주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 국가처럼 부채가 많았던 과거 사례에선 시민들이 활동을 재개하면서 경제 성장이 이뤄졌고, 그 결과 부채가 줄어들었다.
금융위기와 불황 이후에도 빚이 계속해서 늘어났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세계 경제가 호황이던 2007년까지 민간 부문(가계와 기업)은 확장, 부동산 등 자산 획득, 소비를 위해 막대한 돈을 빌렸다. 호황이 불황으로 바뀌자 그들은 대출 비중을 줄였다. 미국 가계 같은 일부 경우엔 채무불이행과 파산, 대출 상환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부채를 정리했다.
MGI의 리처드 답스는 이런 경향이 부채로 인한 금융위기 이후에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보통 위기가 발생한 이후 부채는 증가한다. 소비자가 부채를 정리하더라도 정부 부채는 늘어난다.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복지 지출이 높아지고 세수가 줄어들면 정부는 경기부양책을 펼친다. 그러면 정부 부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과거 사례들을 보면 가계와 기업이 허리띠를 졸라 메는 동안 정부가 대출을 수년 간 지속적으로 늘렸다고 답스는 말했다. 이는 복지 지출이 감소하고 세수가 늘어나면서 빚이 안정을 거쳐 감소세에 접어들기까지 불황을 막는 완충 작용을 했다.
문제는 그런 흐름이 이번에도 나타날지, 만약 그렇다면 부채가 어느 정도까지 줄어들지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폭넓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우선 답스가 지적하듯 각국 상황에 따른 다각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경제위기 이후 늘어난 부채 대부분은 개발도상국의 몫이다. 이는 흔히 ‘금융 심화(financial deepening)’라 불리는 정상적인 작용이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부채의 필요성과 부채 관리 능력이 동시에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개발도상국의 부채 증가는 현 위기와 무관하며 아주 정상적인 일”이라고 답스는 말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일각에선 중국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금융위기 이후 부채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개발도상국이 부채를 자국 화폐가 아닌 달러로 보유하고 있어서 환율변동으로 부채 관리가 어려워지리라는 지적도 있다.
개발도상국이 경제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부채를 늘려가는 경향과 별개로, 선진국의 민간·공공 부문 대출을 증가시키는 요소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거시경제 연구기관 롬바르드스트릿리서치의 찰스 듀마 대표는 세계적인 부채 증가 현상은 ‘과도한 저축’ 현상과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라고 지적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특히 북유럽 국가나 동아시아 국가들의 막대하고 지속적인 저축으로 인해 대출 가능한 액수의 총량이 크게 늘었다. 이로 인해 대출 비용이 줄어들면서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을 막론하고 모두가 더 많은 빚을 지려 나선다.
이자율 감소 추세는 30년도 더 전부터 이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주요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양적완화를 실시하면서 이자율은 더 가파른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저축을 너무 많이 한다. 바꿔 말하면 소비를 너무 적게 하면서 빚은 지나치게 많이 진다”고 듀마 대표는 말했다. “사람들이 긴축을 선호하게 되면 소비는 더 줄어들고 저축은 지속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금융위기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고자 택한 방법 또한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 각국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0에 가깝게 인하하고 막대한 액수의 부채를 운용하기 쉽게 만들면서 세계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깊고 심각한 침체로 향한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매그너스는 낮은 이자율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쌓이는 부채를 줄이려는 사람이 없어졌다.”
정부 부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 장기적으로 정부의 지속가능성에 위협을 제기하는 문제들이 잇따라 발생할 것이다. 첫째로 이자율이 극도로 낮을 때 유지 가능했던 부채는 이자율이 오르기 시작하면 점점 관리가 어려워진다. 둘째로 답스의 말에 따르면 부채가 많은 국가 대다수에선 과거보다 경제 성장이 느려지는 동시에 부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부채 관리 능력이 점차 한계에 달하고 있다.
“만약 생산성 증가가 현재 수준에 머문다면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은 지난 50년 간 3.6%에서 향후 50년 간 2% 정도로 떨어질 것”이라고 답스는 전망했다. 성장 둔화 정도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그 효과는 일부 사례에서 아주 현저하게 나타날 전망이다. 예컨대 독일에선 2050년이면 노동 인구가 현재보다 1500만 명 줄어든다. 매킨지는 그 결과 독일의 평균 성장률이 향후 50년 간 절반으로 감소한다고 추정했다. 각국 경제는 노동 가능 납세자 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경제성장률이 높고 인구가 많아 보다 복지가 수월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복지 정책을 요구하는 극심한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특히 복지 혜택을 줄이는 긴축이 급선무다. 설령 그렇게 된다 할지라도 부채는 계속 늘어날 듯하다. 예를 들면 최근 이스라엘 재무부는 향후 국가 재정을 예측하면서 현재 GDP의 67%인 정부 부채가 향후 50년 동안 170%로 증가하리라고 전망했다. 관건은 현재 그리스가 감당하지 못하는 생산량 대비 부채 비중을 수십 년 뒤 다른 국가들이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과거에 유용했던 부채 위기 타개법은 더 이상 소용없다. 1990년대에 부채 위기를 겪었던 북유럽 국가나 일부 동아시아 국가는 신속한 평가절하와 때마침 급증한 주변국의 수요에 의존한 수출을 통해 성장세를 회복했다.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모두가 자국 상품 수출을 원하는 오늘날엔 불가능한 방법이다. 주요 경제 대국이 너나 할 것 없이 평가절하를 시도한 이유 중 하나다. 5년 전 귀도 만테가 당시 브라질 재무부 장관이 ‘환율 전쟁’이라 불렀던 글로벌 폭탄 돌리기 게임이다. “일본은 세계 경제의 골칫거리가 됐다”고 듀마 대표는 말했다. “일본 정부의 엔화 평가절하는 유로존이 흔들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스 경제난이 주는 교훈 중 하나는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하는 바람에 화폐를 평가절하해 상품 경쟁력을 높이고 수출 주도 경제로 전환하는 손쉬운 해결책을 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의 교훈은 부채가 많은 국가는 2008년과 같은 금융 위기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는 부채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다른 국가들에도 큰 부담이다. 그런 나라들은 만약 중국(매년 부채율이 20%포인트씩, 경제성장률보다 2배 이상 빠르게 증가한다) 같은 경제 대국에 이변이 생길 경우 발생할 여파를 감당할 능력이 제한적이다.
전 세계 부채 총량이 향후 수십 년 간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미 부채가 많은 국가들은 앞으로 더 많은 부채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이자율이 급속도로 상승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형태의 긴축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적정 수준의 인플레이션(부채 가치가 낮아지고 관리가 용이해진다)으로 돌아간다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지도 모른다고 매그너스는 말했다.
답스는 ‘부채 화폐화(debt monetarization)’가 부분적인 해결책으로 떠오른다고 주장했다. 이미 미국·영국·일본의 중앙은행은 정부 부채를 넘겨 받아 그 이자를 정부에 지급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 부채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짊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MGI는 이처럼 정부가 이자를 내지 않는 부채를 계산에서 제외할 경우 미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89%에서 76%, 영국은 92%에서 71%, 일본은 234%에서 190%로 낮아진다고 말했다. 부채 화폐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운과 판단력이 모두 따라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그 결과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인플레이션처럼 참혹할 수 있다고 답스는 경고했다. “정부 관계자들이 부채 화폐화를 실시하면서도 거의 언급하지 않는 것은 그 위험성 때문이다. 내 생각에 관료들은 공개적으로 부채 화폐화를 너무 많이 언급하면 비판의 대상이 되거나 시스템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듯하다.”
그럼에도 부채 화폐화로 시간을 벌면서 훗날을 도모하는 것 외에 달리 좋은 방법은 없어 보인다. 듀마 대표는 “부채 비율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효과를 낼 방법은 없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금씩 개선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스 같은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우리는 아직 부채에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수위가 지금처럼 계속 높아진다면 우리도 결국 그 속에서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 ANDY DAVIS NEWSWEEK 기자 / 번역 이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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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리스 비판가들은 부채 상환 기간이 수십년 연장되고 금리도 인하돼 자국 빚의 실제 가치가 훨씬 낮다고 주장하지만, 그럼에도 그처럼 산더미 같은 빚을 지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안타깝게도 그중 몇몇 국가는 유럽 대륙에 있다. 지난해 말 이탈리아의 정부 부채는 GDP의 132%였다. 포르투갈은 130%, 아일랜드 110%, 스페인은 98%다. 선진국 중에서 이들을 넘어서는 국가는 부채 비율 230%에 달하는 일본이 유일하다.
그리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기 위해선 177%라는 천문학적 수치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연합 통계청 유로스탯의 자료에 따르면 그리스의 부채는 약 3200억 유로다. 2012년에 첫 부채 탕감이 있었음에도 지난 금융위기 이후로 급격히 늘어났다. 그럼에도 그리스의 공공부채는 더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았다. 지난 수년 간 그리스 부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그 대신 빚을 지탱할 경제가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스 경제를 계속해서 고갈시키는 것은 추가적인 부채가 아니라 GDP의 180%에 육박하는 기존 부채의 압박이다. 2011년 그리스 공공부채는 3560억 유로, GDP 대비 부채 비율은 171%였다. 3년 뒤 부채 더미는 3170억 유로로 줄었지만 부채 비율은 177%로 높아졌다.
인류 역사상 유례 없는 부채
최근 제러미 워너 기자는 데일리 텔레그래프지에 쓴 기사에서 마지막으로 그리스를 방문했던 1970년대를 돌이켰다. 워너는 가난한 나라였던 그리스에서 그처럼 많은 사람이 신식 독일 자동차를 소유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스는 어떻게 그토록 짧은 기간 동안 그렇게 많은 발전을 이뤄냈을까?” 워너 기자는 물었다. 현재 우리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리스가 금융위기를 겪기까지 수십년 동안 걸어온 길은 비록 극단적일지언정 절대 특수한 사례는 아니다. 수많은 국가들이 가계·기업·금융기관·정부를 망라하는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고 성장했다.
특히 미국·영국·아일랜드·스페인의 소비자는 부동산 시장이 활황을 맞이하면서 부채를 마구 늘렸다. 건설 부문은 돈을 있는대로 끌어와서 실현이 불투명한 개발 프로젝트에 쏟아부었다. 당시 전 세계 은행들은 현재 규제 당국이 안전하다고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부채를 끌어다 썼다는 사실이 금융위기를 겪는 동안 명백해졌다. 이제 빚더미 위에서 벌어진 잔치는 거의 잦아들었다. 미국·영국 가계 같은 일부 경우엔 사람들이 빚을 갚거나 채무 불이행에 빠지면서 빚이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전 세계의 빚이 금융위기 때 정점에 달했다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반대다. 올해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MGI)가 발행한 ‘부채와 (별 진전 없는) 부채 정리’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부채는 금융위기 이후에도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대출 열풍이 불던 2000년 말 세계 부채는 87조 달러였다. 이 수치는 2007년 말 142조 달러로 급증했다. 7년만에 63% 증가한 액수다. 이후 금융위기가 닥쳤음에도 부채 증가는 여전했다. 다시 7년이 지난 2014년 말 세계 부채는 57조 달러(40%) 증가한 199조 달러를 기록했다.
걱정하긴 이르다. 이 보고서는 앞으로도 세계 부채가 총생산량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리라고 예측했다. 2000년 세계 부채 비율은 246%, 2007년엔 269%였다. 2014년 이 비율은 17%포인트 늘어난 286%에 달했다. 온 세계가 그리스의 길을 천천히 뒤따른다. 이 길이 향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우리 빚은 그 빚을 관리하고 상환하는 데 필요한 경제력보다 더 빨리 증가한다.
저명한 경제평론가 조지 매그너스는 “크게 우려해야 할 일이다”고 말했다. “전례가 없진 않다. 수백년 전을 되돌아 보면 오늘날의 영국·미국보다 부채 비율이 높았던 적이 있었다. 단 전시가 아닐 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매그너스는 이 차이가 아주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 국가처럼 부채가 많았던 과거 사례에선 시민들이 활동을 재개하면서 경제 성장이 이뤄졌고, 그 결과 부채가 줄어들었다.
금융위기와 불황 이후에도 빚이 계속해서 늘어났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세계 경제가 호황이던 2007년까지 민간 부문(가계와 기업)은 확장, 부동산 등 자산 획득, 소비를 위해 막대한 돈을 빌렸다. 호황이 불황으로 바뀌자 그들은 대출 비중을 줄였다. 미국 가계 같은 일부 경우엔 채무불이행과 파산, 대출 상환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부채를 정리했다.
MGI의 리처드 답스는 이런 경향이 부채로 인한 금융위기 이후에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보통 위기가 발생한 이후 부채는 증가한다. 소비자가 부채를 정리하더라도 정부 부채는 늘어난다.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복지 지출이 높아지고 세수가 줄어들면 정부는 경기부양책을 펼친다. 그러면 정부 부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과거 사례들을 보면 가계와 기업이 허리띠를 졸라 메는 동안 정부가 대출을 수년 간 지속적으로 늘렸다고 답스는 말했다. 이는 복지 지출이 감소하고 세수가 늘어나면서 빚이 안정을 거쳐 감소세에 접어들기까지 불황을 막는 완충 작용을 했다.
문제는 그런 흐름이 이번에도 나타날지, 만약 그렇다면 부채가 어느 정도까지 줄어들지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폭넓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우선 답스가 지적하듯 각국 상황에 따른 다각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경제위기 이후 늘어난 부채 대부분은 개발도상국의 몫이다. 이는 흔히 ‘금융 심화(financial deepening)’라 불리는 정상적인 작용이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부채의 필요성과 부채 관리 능력이 동시에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개발도상국의 부채 증가는 현 위기와 무관하며 아주 정상적인 일”이라고 답스는 말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일각에선 중국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금융위기 이후 부채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개발도상국이 부채를 자국 화폐가 아닌 달러로 보유하고 있어서 환율변동으로 부채 관리가 어려워지리라는 지적도 있다.
개발도상국이 경제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부채를 늘려가는 경향과 별개로, 선진국의 민간·공공 부문 대출을 증가시키는 요소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거시경제 연구기관 롬바르드스트릿리서치의 찰스 듀마 대표는 세계적인 부채 증가 현상은 ‘과도한 저축’ 현상과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라고 지적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특히 북유럽 국가나 동아시아 국가들의 막대하고 지속적인 저축으로 인해 대출 가능한 액수의 총량이 크게 늘었다. 이로 인해 대출 비용이 줄어들면서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을 막론하고 모두가 더 많은 빚을 지려 나선다.
이자율 감소 추세는 30년도 더 전부터 이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주요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양적완화를 실시하면서 이자율은 더 가파른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저축을 너무 많이 한다. 바꿔 말하면 소비를 너무 적게 하면서 빚은 지나치게 많이 진다”고 듀마 대표는 말했다. “사람들이 긴축을 선호하게 되면 소비는 더 줄어들고 저축은 지속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저축이 부채를 부른다
정부 부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 장기적으로 정부의 지속가능성에 위협을 제기하는 문제들이 잇따라 발생할 것이다. 첫째로 이자율이 극도로 낮을 때 유지 가능했던 부채는 이자율이 오르기 시작하면 점점 관리가 어려워진다. 둘째로 답스의 말에 따르면 부채가 많은 국가 대다수에선 과거보다 경제 성장이 느려지는 동시에 부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부채 관리 능력이 점차 한계에 달하고 있다.
“만약 생산성 증가가 현재 수준에 머문다면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은 지난 50년 간 3.6%에서 향후 50년 간 2% 정도로 떨어질 것”이라고 답스는 전망했다. 성장 둔화 정도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그 효과는 일부 사례에서 아주 현저하게 나타날 전망이다. 예컨대 독일에선 2050년이면 노동 인구가 현재보다 1500만 명 줄어든다. 매킨지는 그 결과 독일의 평균 성장률이 향후 50년 간 절반으로 감소한다고 추정했다. 각국 경제는 노동 가능 납세자 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경제성장률이 높고 인구가 많아 보다 복지가 수월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복지 정책을 요구하는 극심한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특히 복지 혜택을 줄이는 긴축이 급선무다. 설령 그렇게 된다 할지라도 부채는 계속 늘어날 듯하다. 예를 들면 최근 이스라엘 재무부는 향후 국가 재정을 예측하면서 현재 GDP의 67%인 정부 부채가 향후 50년 동안 170%로 증가하리라고 전망했다. 관건은 현재 그리스가 감당하지 못하는 생산량 대비 부채 비중을 수십 년 뒤 다른 국가들이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과거에 유용했던 부채 위기 타개법은 더 이상 소용없다. 1990년대에 부채 위기를 겪었던 북유럽 국가나 일부 동아시아 국가는 신속한 평가절하와 때마침 급증한 주변국의 수요에 의존한 수출을 통해 성장세를 회복했다.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모두가 자국 상품 수출을 원하는 오늘날엔 불가능한 방법이다. 주요 경제 대국이 너나 할 것 없이 평가절하를 시도한 이유 중 하나다. 5년 전 귀도 만테가 당시 브라질 재무부 장관이 ‘환율 전쟁’이라 불렀던 글로벌 폭탄 돌리기 게임이다. “일본은 세계 경제의 골칫거리가 됐다”고 듀마 대표는 말했다. “일본 정부의 엔화 평가절하는 유로존이 흔들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스 경제난이 주는 교훈 중 하나는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하는 바람에 화폐를 평가절하해 상품 경쟁력을 높이고 수출 주도 경제로 전환하는 손쉬운 해결책을 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의 교훈은 부채가 많은 국가는 2008년과 같은 금융 위기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는 부채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다른 국가들에도 큰 부담이다. 그런 나라들은 만약 중국(매년 부채율이 20%포인트씩, 경제성장률보다 2배 이상 빠르게 증가한다) 같은 경제 대국에 이변이 생길 경우 발생할 여파를 감당할 능력이 제한적이다.
전 세계 부채 총량이 향후 수십 년 간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미 부채가 많은 국가들은 앞으로 더 많은 부채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이자율이 급속도로 상승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형태의 긴축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적정 수준의 인플레이션(부채 가치가 낮아지고 관리가 용이해진다)으로 돌아간다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지도 모른다고 매그너스는 말했다.
답스는 ‘부채 화폐화(debt monetarization)’가 부분적인 해결책으로 떠오른다고 주장했다. 이미 미국·영국·일본의 중앙은행은 정부 부채를 넘겨 받아 그 이자를 정부에 지급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 부채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짊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MGI는 이처럼 정부가 이자를 내지 않는 부채를 계산에서 제외할 경우 미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89%에서 76%, 영국은 92%에서 71%, 일본은 234%에서 190%로 낮아진다고 말했다. 부채 화폐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운과 판단력이 모두 따라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그 결과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인플레이션처럼 참혹할 수 있다고 답스는 경고했다. “정부 관계자들이 부채 화폐화를 실시하면서도 거의 언급하지 않는 것은 그 위험성 때문이다. 내 생각에 관료들은 공개적으로 부채 화폐화를 너무 많이 언급하면 비판의 대상이 되거나 시스템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듯하다.”
그럼에도 부채 화폐화로 시간을 벌면서 훗날을 도모하는 것 외에 달리 좋은 방법은 없어 보인다. 듀마 대표는 “부채 비율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효과를 낼 방법은 없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금씩 개선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스 같은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우리는 아직 부채에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수위가 지금처럼 계속 높아진다면 우리도 결국 그 속에서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 ANDY DAVIS NEWSWEEK 기자 / 번역 이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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