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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숲 경영’에 나서다

기업 ‘숲 경영’에 나서다

숲을 가꾸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나대지에 숲을 조성하거나 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돌려준다. 목재를 많이 쓰는 기업뿐 아니라 정유·식음료·패션 등 업종을 불문하고 동참한다. 숲을 통한 친환경 경영을 통해 사회적 책임(CSR)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가치를 모두 추구하는 공유가치창출(CSV) 전략이다.
지난 5월 대전 장동 계족산 맨발축제가 열려 축제에 참가한 관광객들이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며 휴일을 만끽하고 있다. / 중앙포토
대청호가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오는 대전 장동 삼림욕장. 임도를 따라 600여 미터를 더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폭 2미터의 황톳길이 시작된다. 총 길이 14.5㎞의 산길을 맨발로 걷다 보면 고운 입자의 황토가 발을 부드럽게 감싼다. 전체 코스는 4시간 거리지만 짧게 2시간 코스도 가능하다. 사적 355호인 계족산성 구경은 덤이다. 주말이면 5만 명 가까이 몰리는 대전 계족산 황톳길 풍경이다. 이곳은 산소 넣은 소주 ‘오투린’을 파는 대전주류회사 맥키스컴퍼니(옛 선양)가 조성했다.

조웅래 맥키스컴퍼니 회장은 ‘700-5425’ 전화정보서비스사업을 창업한 벤처 1세대다. 2004년 매출이 곤두박질치고 있던 소주회사 선양을 인수한 그는 ‘소주 한 병 더 파는 것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2006년 8월부터 계족산에 황토를 깔기 시작했다. 회사 임원들도 ‘미친 짓’이라며 말렸지만 이젠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으로 안착했다. 매년 5월이면 이틀 동안 ‘계족산 맨발축제’가 열리고 4~10월 매주 토·일요일 오후엔 ‘숲속 음악회’가 무료로 진행된다. 꾸준히 50억원을 투자해 이뤄낸 결과다. 조 회장은 지난해 포브스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계족산 황톳길이 알려지면서 전국에 흙길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가장 큰 효과”라고 말했다. “지역에 건물 하나 기증하는 것보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랏돈 한 푼 들어가지 않은 순수 기업 주도의 관광지라 더 자랑스럽습니다.”
 기업의 숲 가꾸기는 글로벌 추세
(왼쪽부터) 지난 5월 현대모비스가 충북 진천 미르숲 야외음악당에서 미르숲 1단계 준공식 기념 오픈 음악회를 열고 있다. 울산 시민들의 기업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SK에너지가 2006년 시민들에게 기증한 울산대공원. / 중앙포토
숲을 가꾸거나 개발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과거 정부 재정만으로 숲을 조성해 왔다면, 최근엔 기업-정부-지자체간 파트너십을 통해 도시숲 조성에 나서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숲 조성에 기업이 참여한 건수는 170건에 달한다. 기업이나 개인이 기증한 수목은 34만3000그루, 금액으로 70억원 규모다. 기업의 사회공헌이 직접적 수혜 차원을 넘어 공유가치창출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숲을 사들여 산림을 보호하거나 자사 목적에 맞게 개발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다. 스웨덴 가구업체인 이케아는 지난 7월 루마니아의 숲 3만3600ha(약 1억160만평)를 사들였다. 여의도의 116배에 달하는 크기로 이케아가 숲을 소유, 운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케아는 가구 제작용 목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숲을 사들이고 있다.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라트비아의 숲 4050ha를 매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종이와 포장을 제외하고 미국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14채에 해당하는 규모의 통나무를 사용한 이케아는 늘 환경 파괴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케아 관계자는 “2020년 매출을 현재의 두 배로 잡았다”면서 “하지만 제품 디자인을 최적화하고 재활용 목재 사용을 늘려 실제 목재 사용량은 50% 정도만 늘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은 아예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숲을 사들이고 있다. 비영리단체와 손잡고 미국 동부지역인 메인 주와 노스캐롤라이나 주 일대의 숲을 매입해 ‘아이 포레스트(iForest)’를 조성하고 있다. 이 숲은 ‘워킹 포레스트’(임업·관광·광산·목작·레크리에이션 시설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 토지)이거나, 산업용으로 재생 가능한 목재와 펄프의 생산지였다. 애플은 이 숲의 보존을 통해 종이 등의 자원을 자체 조달하고, 지구 환경 파괴를 막겠다는 목표다. 매입하고 있는 숲의 면적은 약 1만100ha(약 3060만평)로, 뉴욕 맨해튼의 2.5배 규모다. 애플의 환경 담당 부사장 리사 잭슨은 “애플이 세상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확고한 행동을 궁리해 왔다”며 “애플은 애플만의 종이 공급 체계를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가장 손꼽히는 사례는 SK에너지가 1020억 원을 부담해 조성한 울산대공원이다. 축구장 약 220개에 달하는 부지에 자연학습지구와 환경테마놀이기구, 가족피크닉지구, 청소년시설지구, 기타지구 등 5개 지구에 식물원, 사계절 썰매장, 교통공원 등 모두 26개 시설로 구성했다. 2014년 한 해 기준 740만 명의 시민이 이곳을 찾았고, 매년 5월 일주일 남짓 열리는 장미축제엔 2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등 지역 명소가 됐다. 울산대공원은 기업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녹지공간을 조성하는 문화가 정착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울산대공원 조성은 최종현 SK 선대회장의 뜻이다. 울산에서 ‘섬유에서 석유까지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최 선대회장은 1995년 울산시의 요청을 받아들여 “세계적인 환경친화공원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착공 직후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고, 최 선대회장이 타계하면서 사업이 전면 보류될 위기도 있었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2006년 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창의적 발상으로 다양한 도시숲 조성
현대모비스도 장기 프로젝트로 충북 진천군에 미르숲 가꾸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향후 10년간 100억원을 투자해 진천군 초평호 인근에 ‘모두가 함께하는 행복한 숲’을 테마로 108ha(약 33만평) 규모의 숲을 조성한다. 어린이 자연생태체험학습장, 숲속 산책로, 자전거 트레킹코스 등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특히 숲 탐방과 치유의 숲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절 과실수 축제와 숲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탐방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장도 마련한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미르숲 가꾸기는 지역민과 함께 지역사회의 환경을 자연친화적으로 조성하고 활용하는 프로젝트”라며 “탄소배출 감소, 친환경 부품 개발 등 기업 이미지와 잘 맞다”고 말했다.

에쓰오일이 지난해 조성한 울산 태화루 도시숲 역시 하루 평균 1500명의 시민들이 찾을 정도로 명소가 됐다. 울산 태화루는 신라 선덕여왕 때 건립돼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영남을 대표하는 3대 누각 중 하나였지만 임진왜란 당시 소각됐다. 이를 에쓰오일이 100억원을 후원해 400여년 만에 재건한 것이다. 나세르 알 마하셔 대표는 지난해 준공식에서 “에쓰오일은 울산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해 온 기업시민으로서 울산 시민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태화루 건립을 후원했다”고 말했다.

최근엔 도시숲 조성이 대세다. 힐링이나 휴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도시민들에게 녹지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은 국민 91%가 도심에 거주하고 있는데 소음과 공해, 도시열섬 현상, 부족한 휴식공간의 해결책으로 도시숲이 떠오르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서울의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은 4m²이다. 런던 27m², 뉴욕 23m², 파리 13m²에 비해 크게 부족하고,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9m²의 절반 가량에 불과하다.

침구전문업체 이브자리는 2017년까지 도심에 탄소상쇄숲 4개소를 만들 계획이다. 서울시가 주도하는 ‘탄소상쇄숲’은 기업 활동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탄소를 상쇄하기 위해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하는 산림탄소상쇄제도를 이용한 프로그램이다. 산림이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활용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쇄하는 사업으로 그 흡수량을 산림청이 인증한다. 서울시와 이브자리는 지난해 3월 서울 강동구 암사역사생태공원에 전국 최초로 민관 협력을 통한 탄소상쇄숲을 조성한데 이어 올해도 강동구 일자산 도시자연공원 내 산림 훼손지에 추가로 숲을 조성했다. 이브자리의 탄소상쇄숲 4개소가 완성되면 연간 총 34.5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브자리는 산림청 산하 녹색 사업단이 지정한 식생복구형 산림탄소상쇄사업 1호로 등록되기도 했다.

금호타이어도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무악동 인왕산에 탄소상쇄숲 ‘아름다운 금호타이어 숲’ 조성을 시작했다. 시민 400여명과 함께 청단풍, 산수유 등 1500그루의 묘목을 심었다. 금호타이어 관계자는 “서울시민과 임직원들의 적극적 참여로 아름다운 금호타이어 숲을 조성하고 있다”며 “대기오염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데 지속적 환경캠페인을 통해 아름다운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태국에 본사를 둔 복사용지 전문기업 더블에이는 나무 심는 사회적기업 트리플래닛과 함께 서울시 전역에 버려진 자투리땅을 찾아 나무를 심고 가꾸는 공공 캠페인 ‘자투리땅, 초록으로 물들다’를 진행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이 캠페인을 통해 자투리땅 14곳에 심은 8000여 그루의 나무는 연간 52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자투리땅 주변의 환경 개선 활동을 통해 시민들의 휴식공간도 마련했다.

이 밖에 서울 시내 대표적인 민간 주도 푸른 숲 조성 행사인 ‘노을공원시민모임 100개 숲 만들기’에도 알라딘커뮤니케이션·도레이첨단소재·범창페이퍼 등 중소기업들이 대거 참여했다. 삼성화재는 지난 2012년부터 연간 6개 학교를 대상으로 학교숲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동안 15억원을 들여 학교숲 14개를 조성했다.

기업의 숲 가꾸기 원조는 유한킴벌리다. 유한킴벌리는 1984년부터 시작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통해 국·공유지 나무심기, 숲 가꾸기, 학교숲 만들기, 시민초청 나무심기, 청소년 자연체험, 동북아 사막화 방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쳐왔다. 캠페인 30주년을 맞는 지난해엔 국민 1인당 1그루에 해당하는 5000만 그루 나무 심기를 완성하기도 했다. 최근엔 20~35세대를 숲 가꾸기로 유인하는 ‘우푸푸 프로젝트’와 북한지역의 황폐한 산림과 DMZ 주변 황폐지 복원을 위한 ‘DMZ 미래 준비의 숲’ 사업을 펼치고 있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멀리에 존재하는, 접근이 어려운 숲이 아니라 사람 곁에 있는 숲, 크지 않으나 친근한 숲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가치 창출과 연계해야 지속성 확보
이 같은 기업의 숲 가꾸기 활동에 대해 김재현 건국대 교수(녹지환경계획학)는 “숲은 이념적으로 중립적이며 누구나 참여하고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공간이라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자체가 환경에도 기여하지만 미래지향적인 희망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이 CSV 활동 대상으로 선호하고 있습니다. 최근 사회·경제구조의 변화에 따라 숲에 대한 기업의 관심은 계속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들의 도시숲 가꾸기 활동이 활발해지자 지자체와 정부도 지원에 나섰다. 산림청은 최근 도시녹화운동을 활성화하고 기업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도시녹화운동 사례집을 발간해 350개 기업에 배포했다. 서울시도 오는 2018년까지 ‘천 개의 숲, 천 개의 정원 조성’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올 한 해 총 524곳을 숲과 정원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숲 경영이 지속성을 갖기 위해선 기업가치 창출과 연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지용 덕성여대 교수(경영학)는 “숲 가꾸기에 동참하는 기업이나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인지되고 그것이 고객충성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며 “다만 기업들의 이러한 활동을 마케팅 수단인지, 아니면 진정성 있는 활동인지에 대한 판단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속적으로 가치 창출 활동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수익이 발생해야 하므로 CSV 활동 또한 기업의 가치 창출과 연계돼야 한다”며 “숲 가꾸기 활동에 참여하는 기업들도 그것이 기업의 가치 창출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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