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세계 1위 노리는 롯데] ‘서비스업의 삼성전자’ 약속 지킨다
[면세점 세계 1위 노리는 롯데] ‘서비스업의 삼성전자’ 약속 지킨다
summary | 롯데는 1970년대 롯데호텔을 지으면서 관광사업에 뛰어들었다. ‘부존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관광산업은 필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유에 신격호 총괄회장이 화답한 결과물이다. 약 40년이 지난 지금 호텔은 글로벌 체인으로 성장 중이고, 면세점은 세계 3위가 됐다.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다. 신동빈 회장은 최근 ‘수년 내 면세점 세계 1위로 도약하겠다’고 공언했다.
‘비교적 선방’. 9월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평가다. 경영권 분쟁과 순환출자 등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지만 신 회장은 침착한 답변을 이어갔다. 의외의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차근차근 회사의 사정을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전반적으로 방어 자세를 유지했지만 한 가지 질문에 대해서만큼은 적극적인 자세로 대응했다. 바로 면세점 관련 질문이었다. 그는 ‘롯데가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면세점 사업을 일부 포기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면세점에 관해서는 드릴 말씀이 있다’며 확신에 찬 어조로 발언을 이어갔다.
“면세점은 어려운 사업입니다. 세계적으로도 5~7개 주요 업체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중 롯데면세점은 세계 3위에 올랐고, 내년에는 2위, 그리고 내후년에는 1위까지도 오를 수 있는 회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서비스업의 삼성전자와 같은 회사입니다. 롯데면세점의 간접 고용은 3만명에 이르고 지금까지 투자 액은 2조8000억원에 달합니다. 롯데면세점이 특혜를 받았다는 이야기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내년 3월에는 방콕에 면세점을 오픈할 것이고, 도쿄 긴자에도 문을 엽니다. 이 국가적인 사업에 국민 여러분이 많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규모의 경제’가 면세점 사업 성패 좌우
덩치 싸움에서 밀리면 잡아 먹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면세 사업자 간에 끊임없는 이합집산이 계속되는 이유도 결국은 덩치를 키우기 위한 것이다. 백화점에 비해 영업이익률이 낮은 면세점은 수급이나 재고 관리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하면 비싼 임대료나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매출을 키워야만 협상력과 효율성이 높아지고, 마케팅 비용도 과감히 쓸 수 있다. 또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 외부 변수에 워낙 민감한 사업이라 환율이나 출입국자 수 등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는 사업자 스스로 어찌 조절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힘들 때 버텨내는 위기 관리능력 역시 중요하다. 명품 브랜드 유치나 관광객을 응대하는 노하우 등 서비스 측면에서도 오랜 기간 사업을 해온 상위 업체가 유리한 영역인 게 사실이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국내에선 롯데면세점이 가장 앞서 있다. 1980년 국내 최초의 종합면세점으로 첫 발을 내디딘 롯데는 불과 35년 만에 세계 3위 면세사업자로 도약했다. 최근 무디 리포트가 발표한 면세사업자 매출 순위에 따르면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33억4600만 유로(약 4조4000억원)의 매출을 올려 3위에 올라섰다. 국내 면세사업자 중 처음으로 매출 4조원을 돌파했고, 상위 10개 업체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1위 듀프리(스위스)와는 격차가 꽤 있지만 2위 DFS(미국)는 이미 사정권에 들어왔다. 롯데는 현재 국내에서 7개, 해외에서 5개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소공동 본점에서만 약 2조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단일 매장으론 단연 세계 1위다. 잠실점도 48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사실 롯데가 호텔·면세 사업에 뛰어든 건 몇 가지 우연이 겹친 덕분이었다.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한국 투자의 길이 열리자 일본에서 사업을 하던 신격호 총괄회장은 한국으로 건너와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이후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 등을 연이어 설립하며 단숨에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도약했다. 토대를 닦은 신 총괄회장은 제철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컨설팅까지 끝낸 상황이었으나 제철 사업이 국영으로 전환되면서 계획을 접어야만 했다. 바로 그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신 총괄 회장을 불러 ‘관광사업을 한 번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반도호텔 부지를 매입해 호텔을 지어보라는 권유였다. 반도호텔은 당시 한국관광공사가 경영하고 있었는데 경쟁력 약화와 적자 누적으로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1970년대 중반, 한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외국 기업인이나 바이어의 방문이 크게 늘었지만 편하게 묶을 호텔이나 제반 시설이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외자 유치와 경제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려면 인프라 구축이 꼭 필요하다고 보고 민간기업을 상대로 현대식 호텔의 건립 등을 적극 권유했다. 제안을 받았지만 신 총괄회장은 망설였다. 제조업 중심인 롯데에게 관광사업은 너무나 도전적인 미션이었다. 산업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마땅한 관광상품조차 없던 시점이었다. 정책의 우선순위 또한 후순위였다. 그러나 신 총괄회장은 ‘관광은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가 꼭 키워야 할 산업’이란 박 전 대통령의 생각에 공감했고,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했다.
박정희-신격호 ‘자원 없는 나라, 관광이 필수’ 공감대
외형보다 더 눈에 띈 건 체인 계약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브랜드 인지도나 운영 노하우 습득을 위해선 유명 호텔과 체인 계약을 하는 게 유리했지만 롯데호텔은 독자적인 운영방식을 개척하는 방향을 택했다. 로열티를 내지 않는다는 단기적 이익도 있었지만 이는 이후 세계 곳곳에 롯데 이름을 달고 호텔을 지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소공동 신관을 완공한 롯데호텔은 현재 국내 10곳, 해외 6곳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글로벌 호텔 체인으로 성장했다. 지난 5월엔 뉴욕 맨하튼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뉴욕팰리스호텔을 약 1조원에 인수해 롯데뉴욕팰리스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호텔롯데는 2020년까지 세계 주요 도시 33개의 호텔을 추가로 인수해 롯데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호텔과 마찬가지로 면세점 사업 역시 앞으로의 승부는 글로벌 시장에서 결판난다. 아무리 국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확보했어도 규모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롯데가 신 회장의 약속대로 글로벌 1위로 도약하려면 듀프리·DFS와 같은 상위 업체와의 입점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중국인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외 관광에 나서기 시작한 이후 최근 글로벌 면세 시장에선 엄청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하나 같이 전략은 ‘덩치 키우기’다. 업계 1위 듀프리는 지난 3월 롯데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업계 5위인 WDF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무려 4조원을 쏟아 부었는데 지난해 7~8위권이던 뉘앙스를 인수한 데 이어 두 번째 대규모 인수·합병(M&A)이다. 중국은 하이난섬 싼야에 세계 최대 규모(2만㎡)의 면세점 CDF몰을 지어 운영을 시작했고, 대만 역시 중국 본토와 가까운 진먼섬의 군사보호지역을 개발해 대규모 면세점 에버리치를 열었다. 국가별로 경쟁력이 있는 면세사업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국가대항전을 펼치는 형국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롯데도 글로벌 시장 공략 속도를 높이고 있다. 적극적인 M&A와 해외 진출이 키다. 조금씩 성공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롯데는 지난해 국내 면세사업자 중 처음으로 외국 공항 전체의 면세점 운영권을 따냈다. 그것도 DFS가 30년 넘게 독점했던 괌공항의 운영권이다. 비록 최근 공을 들였던 WDF 인수에 실패했지만 매물은 얼마든지 있다. 새 해외 면세점 오픈 계획도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현재 괌공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2곳)·싱가포르·일본 간사이 공항 등 4개국 5개의 해외 면세점을 운영 중인 롯데면세점은 내년 상반기 태국 방콕과 일본 긴자에서도 새 면세점을 선보인다.
국가대항전 성격 치열한 글로벌 면세시장
업계에 정통한 한 교수는 “이번 재허가 대상인 (롯데가 운영하는) 두 곳의 면세점은 주변에 있는 백화점이나 롯데월드 등과 시너지를 통해 힘을 발휘하는 것인데 사업자를 바꾼다고 얻는 실익이 크지 않고, 그 편익이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라며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만큼 롯데를 하나의 면세사업자가 아닌 국가대표로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쟁력 있는 기업에 힘을 실어주되, 그 이익을 고용과 중소기업 협력 강화 등으로 국가에 환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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