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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정수기 ‘선인장’

자연의 정수기 ‘선인장’

부채선인장의 점액에는 주방 세제처럼 분산제로 작용할 수 있는 물질이 들어 있다.
때로는 현대의 가장 복잡한 문제를 고대의 가장 원시적인 지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학의 화학공학자 노마 올캔터는 할머니가 1900년대 초 멕시코 시골에서 자랄 때 부채선인장으로 강물의 불순물을 걸러내 식수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자연을 이용하는 할머니의 슬기로움에 감탄한 그는 동료 화학공학자들과 함께 그 기법이 석유가 유출된 바닷물부터 물고기 양식에 사용되는 재순환수 시스템까지 모든 물을 친환경적으로 정화하는 데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할 때는 주로 분산제가 필요하다. 불필요한 물질이 쉽게 씻겨나가도록 분해할 수 있는 화학 혼합물을 말한다. 식기에 묻은 기름을 제거할 때 사용하는 주방세제, 석유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름띠를 작은 방울로 쪼개 정화할 수 있도록 수면의 기름막에 뿌리는 화학 분산제가 그 예다. 올캔터 연구원이 이끄는 팀은 점액(선인장에서 가뭄 동안 수분을 유지해주는 끈적거리는 부분) 속의 당분이 화학 분산제와 같은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화학 혼합물보다 훨씬 친환경적이란 사실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선인장의 점액은 탄수화물과 약 60가지 다당류로 구성된다. 그 다당류는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오염물질을 분산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 올캔터 연구원이 전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할머니가 부채선인장을 끓인 물을 오염된 강물에 붓자 불순물이 분리돼 수면으로 떠올랐다. 실험실에서 올캔터 연구원과 동료들은 선인장에서 얻은 점액이 오염된 물의 침전물만이 아니라 비소와 박테리아까지 흡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먼저 2006년 아이티 지진 후 오염된 식수의 정화에 선인장을 사용한 결과, 효과가 좋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4년 뒤인 2010년엔 멕시코만에서 다국적 석유회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시추시설 딥워터 호라이즌이 폭발 사고를 일으켜 원유가 유출되자 BP는 기름막이 형성된 곳에 화학 분산제 코렉시트를 700만ℓ나 퍼부었다. 환경 과학자들은 코렉시트가 멕시코만의 해양생물에 장기적인 피해를 준다며 비난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올캔터 연구원은 독성 없는 선인장 점액이 코렉시트처럼 석유 분산에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연구팀이 시뮬레이션한 원유 기름막에 선인장 점액을 뿌리자 화학 분산제와 똑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미국 플로리다 주 새러소타에 있는 모트 해양연구소가 그 소식을 듣고 어류 양식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올캔터 팀과 제휴를 원했다. 양식장에선 물이 재순환될 때마다 박테리아가 성장할 때 만들어진 악취 나는 화학물질이 물고기의 피부와 조직, 알에 흡수된다. 현재로선 물고기를 잡을 때 오존처리된 민물로 정화한다. 몇 개월이 걸리고 많은 물이 필요하며 물고기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과정이다. 올캔터 팀은 실험실 수족관에서 선인장 점액을 방울이나 분말로 재순환되는 물에 뿌려 악취와 쓴맛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다음 단계로 그들은 모트 연구소의 철갑상어 수족관에서 선인장 점액으로 실험할 계획이다. 올캔터 연구원은 실험이 성공한다면 양식 물고기 정화에 걸리는 시간을 3개월에서 일주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물도 그만큼 많이 절약된다는 뜻이다.

- 크리스티나 프로코피우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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