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철 KG제로인 대표
김병철 KG제로인 대표
해외 펀드를 평가하면 모닝스타, 국내 펀드를 평가하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KG제로인’의 이름이 있다. 국내 대표 펀드평가사에서 ‘투자 포트폴리오 컨설팅 회사’로의 진화를 꾀하고 있는 김병철 대표를 찾았다. ‘펀드 순자산 450조원’, ‘총 펀드 수 9200개’. 전체 펀드 규모가 지난해 3월 처음으로 400조원을 돌파한 이후 1년 남짓한 사이에 50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의무가입으로 불어난 510조원 국민연금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비교해보면 국민 대다수가 펀드 계좌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펀드 시장의 양적인 성장만큼 고객 유치를 위한 경쟁도 그만큼 치열해졌다. 서로가 좋다고 하는 펀드, 투자자는 뭘 보고 돈을 맡겨야 할까? 현행 자본시장법에는 집합투자기구(공·사모펀드) 평가회사라는 게 있다. 국내엔 KG제로인·에프앤가이드·한국펀드 평가 총 3곳이 운영 중이다.
“등급은 누구나 만들고 공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등급의 신뢰도는 믿는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있다고 할 수 있죠. KG제로인은 연기금을 포함한 38개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788조원 규모의 위탁자산 평가경험을 축적한 펀드평가사입니다.”
최근 서울 중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김병철 대표가 KG제로인에 대해 한 말이다. 요즘 불고 있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열풍을 타고, KB국민은행의 ‘일임형ISA’ 컨설팅 업무도 맡는 등 기관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의 신뢰가 탄탄하다는 김 대표의 말에 힘이 실렸다. 거침없어 보이는 최근 그의 행보, 처음부터 다져진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2000년부터 KG제로인에 합류한 그는 1991년 현대투자신탁증권에 사회 첫발을 내디뎠던 소위 ‘증권맨’이었다. 그가 펀드평가사로 옮겨야 할지 고민한 것은 1998년부터다.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아 기업의 줄 도산이 잇따르고, 여의도 증권가에는 대량 감원 소식이 줄을 이을 때였다.
당시 복잡한 심경으로 선후배와 술자리를 가졌던 그는 우연한 기회로 진로를 바꾸게 된다. IMF 금융위기를 단순 한국 경제난이라고 봤던 이들과 달리 새로운 ‘기회’로 본 것이다. 김 대표는 “IMF 구제금융은 국내 자본시장의 개방을 의미했다. 한국 운용사들이 세계적인 글로벌 운용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한국만의 특화된 등급 같은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실제 IMF 금융위기 이후 밀려든 외국자본 덕분에 한국 자본시장은 급격하게 커졌고, 변동성도 더 심해졌다. 1998년 증시 완전개방 이후 증시는 코스피 지수 200선 후반에서 1000선까지 몇 개월 만에 상승했다가 1999년부터는 지수 500선까지 50% 이상 조정을 받기도 했다. 코스피의 성장과 함께 ‘벤처 붐’ 시대도 맞물렸다. 코스피 지수는 IT 호황의 절정이었던 2000년 3월에 290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IT 버블 붕괴까지. 증권사에 다니던 김 대표는 변동성은 커졌지만, 한층 커진 자본 시장 덕에 상당히 좋은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펀드평가사로 자리를 옮겼다. 김 대표는 “당시 나를 보고 다들 미쳤다고 했다. 작은 회사가 대형 운용사를 평가한다니 무모한 도전이라고 본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김 대표는 운용사 문이 닳도록 다니며 평가의 중요성을 알렸다. 평가 계약을 체결하고도 평가가 예상보다 좋지 못하면 신뢰할 수 없다며, 돈을 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는 “사업을 본격 시작하고 1~2년은 돈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회사 자금을 써가며 누군가 나를 알아주기를 기대하며 버텼다”고 기억했다.
기다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거대해진 기관자금이 KG제로인을 찾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국민연금·교원공제회·사학연금 등이 펀드에 자금을 맡기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준이 필요했던 것. 평가가 좋은 펀드에는 더 많은 자금을 맡기는 식이었다. 김 대표는 “한국 자본시장이 주먹구구식 투자에서 나름의 투자 프로세스를 갖춰가는 시기였다. 갑작스러운 리스크를 예측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체질적으로 건강한 펀드를 골라 투자하려는 의지의 발로였다”며 강조했다.
하지만 회의적인 시선이 없던 것은 아니다. 특히 개인의 경우 펀드평가사가 내놓은 순위에 맞춰 투자했음에도 손실을 크게 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관투자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김 대표도 일부 인정했다. “어쨌든 투자자가 우리가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분류했다는 정보를 가지고 투자했다고 믿었으니 평가사로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KG 제로인은 평가기준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던 ‘투자 성과’보다 ‘진짜 꾸준한 수익을 내고 있는가?’, ‘합리적으로 투자했나?’, ‘왜 성과가 나는가?’ 등 평가 시선을 다각화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감독기관·투자기관도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16년간의 업력으로 쌓인 데이터를 다시 분석했다.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구성할지 시뮬레이션도 다시 돌려보고, 평가를 다각화해서 하는 등 다양한 평가법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운용사에 국한됐던 자금 운용도 은행이나 보험사로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KG 제로인이 최근 밀고 있는 컨설팅 서비스를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투자자문과 컨설팅, 무슨 차이가 있을까? “종목·수량·가격·투자시기를 알려주는 것이 투자자문이라면 컨설팅은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구성할지, 투자 관리나 결정 프로세스 등을 어떻게 하면서 투자를 결정해야 하는지 시시콜콜한 부분도 자문하는 것을 말한다”고 김 대표가 설명했다. KB국민은행과의 최근 ‘일임형ISA’ 자문도 같은 맥락의 계약이다. 그는 “16년간 기다려온 일이 드디어 터진 것”이라며 “당장 큰 수익은 어렵지만 자금 운용을 위한 자문 수요는 더 커질 전망”이라고 한층 고무돼 있었다.
정해진 다음 일정 때문에 급하게 자리를 옮기며, 김 대표는 아쉬움을 담은 바람도 덧붙였다. “소위 ‘제3의 기관’이라 불리는 우리가 투자자·판매사·운용사와 적절한 균형관계를 이루는 날 한국 자본시장이 한 단계 진일보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더 정교한 서비스를 마련하는 일에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 글 김영문 기자·사진 오종택 기자
profile: 연세대 경영학과 1991년 현대투자신탁증권 입사 2000년 KG제로인 입사 2015년 KG제로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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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은 누구나 만들고 공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등급의 신뢰도는 믿는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있다고 할 수 있죠. KG제로인은 연기금을 포함한 38개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788조원 규모의 위탁자산 평가경험을 축적한 펀드평가사입니다.”
최근 서울 중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김병철 대표가 KG제로인에 대해 한 말이다. 요즘 불고 있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열풍을 타고, KB국민은행의 ‘일임형ISA’ 컨설팅 업무도 맡는 등 기관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의 신뢰가 탄탄하다는 김 대표의 말에 힘이 실렸다. 거침없어 보이는 최근 그의 행보, 처음부터 다져진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펀드 인기 시들해진 위기 상황 포트폴리오 컨설팅으로 타개
당시 복잡한 심경으로 선후배와 술자리를 가졌던 그는 우연한 기회로 진로를 바꾸게 된다. IMF 금융위기를 단순 한국 경제난이라고 봤던 이들과 달리 새로운 ‘기회’로 본 것이다. 김 대표는 “IMF 구제금융은 국내 자본시장의 개방을 의미했다. 한국 운용사들이 세계적인 글로벌 운용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한국만의 특화된 등급 같은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실제 IMF 금융위기 이후 밀려든 외국자본 덕분에 한국 자본시장은 급격하게 커졌고, 변동성도 더 심해졌다. 1998년 증시 완전개방 이후 증시는 코스피 지수 200선 후반에서 1000선까지 몇 개월 만에 상승했다가 1999년부터는 지수 500선까지 50% 이상 조정을 받기도 했다. 코스피의 성장과 함께 ‘벤처 붐’ 시대도 맞물렸다. 코스피 지수는 IT 호황의 절정이었던 2000년 3월에 290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IT 버블 붕괴까지. 증권사에 다니던 김 대표는 변동성은 커졌지만, 한층 커진 자본 시장 덕에 상당히 좋은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펀드평가사로 자리를 옮겼다. 김 대표는 “당시 나를 보고 다들 미쳤다고 했다. 작은 회사가 대형 운용사를 평가한다니 무모한 도전이라고 본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김 대표는 운용사 문이 닳도록 다니며 평가의 중요성을 알렸다. 평가 계약을 체결하고도 평가가 예상보다 좋지 못하면 신뢰할 수 없다며, 돈을 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는 “사업을 본격 시작하고 1~2년은 돈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회사 자금을 써가며 누군가 나를 알아주기를 기대하며 버텼다”고 기억했다.
기다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거대해진 기관자금이 KG제로인을 찾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국민연금·교원공제회·사학연금 등이 펀드에 자금을 맡기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준이 필요했던 것. 평가가 좋은 펀드에는 더 많은 자금을 맡기는 식이었다. 김 대표는 “한국 자본시장이 주먹구구식 투자에서 나름의 투자 프로세스를 갖춰가는 시기였다. 갑작스러운 리스크를 예측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체질적으로 건강한 펀드를 골라 투자하려는 의지의 발로였다”며 강조했다.
하지만 회의적인 시선이 없던 것은 아니다. 특히 개인의 경우 펀드평가사가 내놓은 순위에 맞춰 투자했음에도 손실을 크게 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관투자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김 대표도 일부 인정했다. “어쨌든 투자자가 우리가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분류했다는 정보를 가지고 투자했다고 믿었으니 평가사로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KG 제로인은 평가기준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던 ‘투자 성과’보다 ‘진짜 꾸준한 수익을 내고 있는가?’, ‘합리적으로 투자했나?’, ‘왜 성과가 나는가?’ 등 평가 시선을 다각화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감독기관·투자기관도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16년간의 업력으로 쌓인 데이터를 다시 분석했다.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구성할지 시뮬레이션도 다시 돌려보고, 평가를 다각화해서 하는 등 다양한 평가법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운용사에 국한됐던 자금 운용도 은행이나 보험사로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KG 제로인이 최근 밀고 있는 컨설팅 서비스를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투자자문과 컨설팅, 무슨 차이가 있을까? “종목·수량·가격·투자시기를 알려주는 것이 투자자문이라면 컨설팅은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구성할지, 투자 관리나 결정 프로세스 등을 어떻게 하면서 투자를 결정해야 하는지 시시콜콜한 부분도 자문하는 것을 말한다”고 김 대표가 설명했다. KB국민은행과의 최근 ‘일임형ISA’ 자문도 같은 맥락의 계약이다. 그는 “16년간 기다려온 일이 드디어 터진 것”이라며 “당장 큰 수익은 어렵지만 자금 운용을 위한 자문 수요는 더 커질 전망”이라고 한층 고무돼 있었다.
정해진 다음 일정 때문에 급하게 자리를 옮기며, 김 대표는 아쉬움을 담은 바람도 덧붙였다. “소위 ‘제3의 기관’이라 불리는 우리가 투자자·판매사·운용사와 적절한 균형관계를 이루는 날 한국 자본시장이 한 단계 진일보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더 정교한 서비스를 마련하는 일에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 글 김영문 기자·사진 오종택 기자
profile: 연세대 경영학과 1991년 현대투자신탁증권 입사 2000년 KG제로인 입사 2015년 KG제로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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