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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도 이사회도 없는 벤처 펀드

CEO도 이사회도 없는 벤처 펀드

벤처 캐피털과 흡사하지만 블록체인 기반으로 월스트리트 위협할 수 있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누구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비공개 기업의 주식을 사기 쉽도록 해주는 새로운 규정을 도입했다.
.소프트웨어와 로봇의 습격에 일자리를 잃게 된 중산층에게도 희망은 있는 것 같다.

지난 5월 말 일어난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은 좀 더 공평한 미래를 시사한다. 루이뷔통 시티 스티머 악어가죽 백 하나에 5만5000달러를 쓸 수 있는 소수의 부자만이 아니라 서민을 포함해 사회의 넓은 계층에게 좋은 미래를 말한다.

그런 사건 중 하나는 희한한 블록체인 기반의 DAO가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1억2500만 달러를 모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누구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비공개 기업의 주식을 사기 쉽게 해주는 새로운 규정을 미국 정부가 도입했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다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사실 아주 중요한 문제를 건드렸다. 자본의 민주화를 말한다. 성공한다면 이 운동은 월스트리트나 헤지펀드, 벤처투자사의 손에서 권력을 빼앗아 네트워크 경제(인터넷의 발달로 경제 주체들이 서로 연결된 상황)의 성공을 중산층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소프트웨어와 로봇이 인구의 95%를 의미 있는 일자리에서 몰아낼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가 될 수 있다.

먼저 희한한 것부터 보자. DAO는 ‘distributed autonomous organization(분산된 자율조직)’의 머리글자다. 기본 틀(소프트웨어)은 독일의 프로그래머 크리스토프 옌츠가 만들었지만 일단 인터넷에 풀어놓자 DAO는 스스로 움직이는 로봇 벤처 펀드가 됐다. DAO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2주만에 전 세계 사람들에게서 1억2500만 달러의 투자금을 모았다.

DAO가 돌아가는 방식은 대충 이렇다. 누구나 익명으로 투자할 수 있으며 투자 결정은 기본적으로 자체 개발 프로그램이 업체들의 실적을 보고 판단하지만 투자자들은 투자 결정에 대해 투표로 찬반의사 표시를 할 수 있다. 펀드가 투자한 회사가 성공하면 소프트웨어가 수익금을 펀드 투자자들에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기존의 벤처 캐피털 회사와 흡사하다. 다만 CEO나 이사회가 없고 펀드 투자자가 반드시 공인된 부자이거나 하버드대학 기부금 같은 기관일 필요가 없다는 점이 다르다.

말하자면 DAO는 시험비행과 같다. 대다수는 이 비행기의 꼴을 보고는 타보려 하지 않고 다음 비행기를 기다린다. DAO의 꼴은 어떤가? 우선 실제 돈이 아니라 이더(Ether)라는 디지털 화폐가 사용된다. 이더는 비트코인보다 더 불가사의하고 얻기 어렵다. 미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 이런 투자는 불법일 수 있다. 정보기술 정보지 와이어드를 창간한 저술가 케빈 켈리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DAO는 기술적인 장애물이 수없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금된 1억2500만 달러를 ‘순전한 투기라고 불렀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의 자연스런 확장이고 모든 것의 분산화라는 요즘의 추세에 따른 불가피한 발전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도 이더를 약간 사서 어떻게 되는지 두고볼 생각이다.”

DAO가 어떻게 되든 그 이면에 깔린 개념과 기술은 사라지지 않고 개선될 게 확실하다. 아울러 지금은 시험비행이지만 궁극적으로 이런 장치는 우리 모두에게 더 안전해지면서 자본 시장과 부의 분배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다.

DAO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생각된다면 좀 더 현실적인 면을 보자.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도입한 새로운 투자 규정은 DAO 개념의 현실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모든 스타트업과 비공개 기업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그 대가로 투자자에게 주식을 줄 수 있다. 과거엔 예를 들어 킥스타터에서 한 회사에 투자하면 그 회사의 제품을 일찍 구입할 수 있거나 그 회사 로고가 찍힌 커피잔을 대가로 받았다. 투자한 회사로부터 주식을 받으려면 투자자는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순자산 규모 100만 달러 또는 연간 소득 20만 달러 이상이라야 투자자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예전의 규정은 부자에게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도구’를 줬지만 나머지 사람에겐 그 도구를 사용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대중은 그 도구를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SEC의 새 규정을 사업에 적용하기 위해 이미 새로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시드인베스트, 플래시펀더스, 위펀더 등이다. 위펀더의 홈페이지는 이렇게 선언한다. “부자의 독점을 타파하라. 이제까지는 부자만 정부가 보호하는 독점권을 누리며 고성장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누구나 자신이 원하고 믿는 기업에 투자할 권리를 갖는다.” 그 사이트에 오른 투자 종목은 광섬유 회사부터 로데오 도넛(‘명품 도넛을 프라이드 치킨·위스키와 함께 드세요!’)까지 다양하다.

로데오 도넛 같은 회사는 이런 현상의 발전이 중요하며 바람직한 이유를 설명해주는 좋은 예다. 민주적인 크라우드 펀딩과 DAO 방식의 메커니즘은 더 많은 사람에게 네트워크 경제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동시에 틈새의 중소기업이 투자를 받아 사업을 시작하기 쉽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노스캐피털프라이빗시큐리티의 CEO 제임스 다우드는 뉴욕타임스에 “새 규정은 전문 투자자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회사들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일반 소비자와 자영업자에게로 흘러가는 투자 자본은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소수의 영주와 수많은 농노로 구성되는 현대판 ‘봉건주의’ 경제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그런 자본의 민주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전통적인 중산층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그들에게 최상의 길은 기업가, 하청업체, 투자자가 혼합된 개인 사업자가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렇게 되려면 자본이 세계 수백만 명의 엘리트만이 아니라 수십억 명의 중산층에서도 잘 흐르도록 해주는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회의론자는 보통사람이 스타트업이나 민간기업 투자에 뛰어들 정도로 전문지식이 많지 않다고 경고한다. DAO나 위펀더 같은 장치는 수많은 일반인을 무일푼으로 만들려는 계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차피 소프트웨어와 로봇이 우리를 별 쓸모 없이 만들 게 분명하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화된 자본은 적어도 중산층에게 도전할 기회를 준다. 아울러 도넛을 프라이드치킨·위스키와 함께 제공하는 회사가 존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사회로서도 추구할 가치가 있는 목표다.

- 케빈 메이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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