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대중을 위한 경제로 돌아가라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대중을 위한 경제로 돌아가라
‘2030년 인류는 기술 진보, 자본 축적으로 급속한 생산성 증가를 누릴 것이다. 저축을 하면 ‘복리(複利)의 마법’이 우리 손에 돈을 듬뿍 쥐어 주고, 인류는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 것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1930년 발표한 수필 [내 손자 세대를 위한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에 나오는 말이다. 80년 이상이 지난 지금 소득과 성장 측면에서 케인스의 예측은 정확했다. 그는 큰 전쟁이나 인구 증가가 없다면 세계경제가 4배 내지 8배 성장할 것으로 봤다. 현재 세계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30년에 비해 4배로 높아졌다. 하지만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34시간(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기준)으로 예상을 빗나갔다. 또 세계적인 저금리 정책으로 저축은 보관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나라가 늘면서 은행에 돈을 맡기면 수수료 등으로 돈을 떼일 수 있다는 불안감마저 커지고 있다. 케인스가 꿈꾼 행복한 번영의 시대는 왜 오지 않을까. 노벨상을 받은 22명의 경제학자와 함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책이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이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의 이론이라 따분하고 어려울 것이라고 속단하면 곤란하다.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저자인 조원경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의 힘이다. 그는 연세대 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파이낸스 석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행정고시(34회)에 합격한 후 기획재정부에서 관세·물가·복지·국제금융 등 경제분야를 두루 경험한 실물 경제 전문가다. 그는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를 우리 삶과 밀접한 이야기로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2013년 내놓은 첫 작품 [명작의 경제]에선 [레미제라블] 등 잘 알려진 명작소설을 앞세워서, 지난해 펴낸 [법정에 선 경제학자]에선 세계적인 경제학자를 법정에 세우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형식으로 경제 이슈를 다뤘다. 이번 책의 무대는 식탁이다. 그는 서문에서 “우리네 삶과 밀접한 식탁에 저명한 경제학자를 초대해 지금의 현실을 쉽고 재미있게 조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저자는 그들의 혜안을 ‘삶과 경제의 영혼’ ‘우리가 직면한 도전’ ‘경제와 윤리’ ‘국가 만들기’ ‘기술과 혁신’ 등 다섯 가지 범주로 묶어 소개한다. 식탁 위에 오른 첫번째 주제는 ‘행복’이다. 저성장, 양극화, 청년 실업 등으로 삶이 고단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현대인이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고성장의 향수가 불러온 후유증이다. 한국만 해도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향해 달리다가 브레이크가 걸렸다. 지난해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년 전보다 2.6% 감소했다. 경기 침체와 원화 가치 하락이 맞물리면서 1인당 GNI는 6년만에 뒷걸음쳤다. 경제성장률(GDP)도 3%를 넘는 게 버거운 상황이다.
하지만 성장이 어려워도 국민의 생활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벨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의 행복 방정식을 소개했다. 행복은 욕망 분의 소유(행복=소유/욕망)다. 소득이 증가해 소유가 늘면 행복도는 올라가지만 행복을 추구하려는 과정에서 소유보다 욕망이 더 늘면 행복도는 떨어진다. 소득과 행복 사이엔 절대적인 비례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저자는 저성장 등 급격하게 바뀐 국내외 경제 환경에 맞춰 기대(욕망)를 낮추면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20년 전만 해도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 졸업장은 취직하는 데 유리했다. 이와 달리 대졸자가 넘쳐나는 요즘엔 과거처럼 좋은 직장을 골라 취업하긴 어렵다. 따라서 눈높이를 낮추고 현실적인 취업, 창업, 해외 일자리로 눈을 돌려보라고 권한다.
최근 식탁이 흔들리는 가장 큰 이유로 비전통적인 금융정책, 저출산 등을 꼽았다. 그중에서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운 데는 유럽과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이라고 봤다. 각국 정부는 제로(0) 금리 상태에서 더 이상 금리를 낮추는 정책을 쓸 수 없자,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개별 시중은행의 대출 여력을 확대하는 정책이다. 은행이 푸는 돈이 실물 경기를 일으키는 힘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예상과 달리 물가는 오르지 않고 소비자는 지갑을 굳게 닫았다. 양적완화 정책이 뚜렷한 효과가 없자 일본은 올해 2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했다.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기면 수수료를 물리겠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아베 정권의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는 저축하지 말고 소비하라고 실물경제로 돈을 내치는 정책이 은행 등 금융 시스템에 무리를 줄 수 있다고 걱정한다. 20세기 자유주의 경제학 대가인 밀턴 프리드먼의 ‘공짜 점심은 없다’는 명언을 곁들였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수단이 고갈되는 것보다 더 위협적인 문제가 있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세상이다. 게임이론 중 하나인 죄수의 딜레마는 서로 협력하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음에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다가 모두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현상이다. 요즘 세계 각국은 국제 관계가 항상 우호적일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각자 자국의 이익만 좇다 보니 자연스레 친기업 정책을 펼친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1990년대에 비해 국민소득에서 기업에 돌아가는 몫의 비중(자본 소득 분배율)은 늘고, 근로자의 노동에 돌아가는 몫의 비중(노동 소득 분배율)은 줄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특히 각 나라가 수출경쟁력을 갖기 위해 자국 통화가치를 낮추는 ‘환율 전쟁’을 벌인다면 세계 무역은 더 축소되고,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해결책은 뭘까. 경제 문제를 더 이상 경제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저자는 책에서 “장기적인 경제 성장은 사회 구성원의 믿음, 규범, 공통된 편견과 같은 비공식적 제도와 이를 반영한 정치·경제 제도가 얼마나 바람직하게 바뀌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199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도 ‘효율적인 제도’가 경제성장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이다. 중국이 막대한 인구, 자본에도 산업혁명을 일으키지 못한 이유는 새로운 변화를 이끌 제도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교를 근본이념으로 둔 중국은 발전보다 체제유지에 집중했던 것이다. 맺음말에 작가의 바람이 눈에 띈다. 그는 “케인스처럼 내 손자세대의 번영의 가능성을 여전히 믿고 싶다”며 “이를 위해서라도 대중의,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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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가 꿈꾼 번영의 시대는 왜 오지 않을까
저자는 그들의 혜안을 ‘삶과 경제의 영혼’ ‘우리가 직면한 도전’ ‘경제와 윤리’ ‘국가 만들기’ ‘기술과 혁신’ 등 다섯 가지 범주로 묶어 소개한다. 식탁 위에 오른 첫번째 주제는 ‘행복’이다. 저성장, 양극화, 청년 실업 등으로 삶이 고단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현대인이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고성장의 향수가 불러온 후유증이다. 한국만 해도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향해 달리다가 브레이크가 걸렸다. 지난해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년 전보다 2.6% 감소했다. 경기 침체와 원화 가치 하락이 맞물리면서 1인당 GNI는 6년만에 뒷걸음쳤다. 경제성장률(GDP)도 3%를 넘는 게 버거운 상황이다.
하지만 성장이 어려워도 국민의 생활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벨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의 행복 방정식을 소개했다. 행복은 욕망 분의 소유(행복=소유/욕망)다. 소득이 증가해 소유가 늘면 행복도는 올라가지만 행복을 추구하려는 과정에서 소유보다 욕망이 더 늘면 행복도는 떨어진다. 소득과 행복 사이엔 절대적인 비례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저자는 저성장 등 급격하게 바뀐 국내외 경제 환경에 맞춰 기대(욕망)를 낮추면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20년 전만 해도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 졸업장은 취직하는 데 유리했다. 이와 달리 대졸자가 넘쳐나는 요즘엔 과거처럼 좋은 직장을 골라 취업하긴 어렵다. 따라서 눈높이를 낮추고 현실적인 취업, 창업, 해외 일자리로 눈을 돌려보라고 권한다.
최근 식탁이 흔들리는 가장 큰 이유로 비전통적인 금융정책, 저출산 등을 꼽았다. 그중에서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운 데는 유럽과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이라고 봤다. 각국 정부는 제로(0) 금리 상태에서 더 이상 금리를 낮추는 정책을 쓸 수 없자,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개별 시중은행의 대출 여력을 확대하는 정책이다. 은행이 푸는 돈이 실물 경기를 일으키는 힘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예상과 달리 물가는 오르지 않고 소비자는 지갑을 굳게 닫았다. 양적완화 정책이 뚜렷한 효과가 없자 일본은 올해 2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했다.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기면 수수료를 물리겠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아베 정권의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는 저축하지 말고 소비하라고 실물경제로 돈을 내치는 정책이 은행 등 금융 시스템에 무리를 줄 수 있다고 걱정한다. 20세기 자유주의 경제학 대가인 밀턴 프리드먼의 ‘공짜 점심은 없다’는 명언을 곁들였다.
세계 환율전쟁은 경기 침체 부추겨
그 결과 세계적으로 1990년대에 비해 국민소득에서 기업에 돌아가는 몫의 비중(자본 소득 분배율)은 늘고, 근로자의 노동에 돌아가는 몫의 비중(노동 소득 분배율)은 줄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특히 각 나라가 수출경쟁력을 갖기 위해 자국 통화가치를 낮추는 ‘환율 전쟁’을 벌인다면 세계 무역은 더 축소되고,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해결책은 뭘까. 경제 문제를 더 이상 경제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저자는 책에서 “장기적인 경제 성장은 사회 구성원의 믿음, 규범, 공통된 편견과 같은 비공식적 제도와 이를 반영한 정치·경제 제도가 얼마나 바람직하게 바뀌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199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도 ‘효율적인 제도’가 경제성장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이다. 중국이 막대한 인구, 자본에도 산업혁명을 일으키지 못한 이유는 새로운 변화를 이끌 제도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교를 근본이념으로 둔 중국은 발전보다 체제유지에 집중했던 것이다. 맺음말에 작가의 바람이 눈에 띈다. 그는 “케인스처럼 내 손자세대의 번영의 가능성을 여전히 믿고 싶다”며 “이를 위해서라도 대중의,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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