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이야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뉴욕 이야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브루클린의 문학 대사로 불리던 소설가 조너선 레섬, 신작 ‘갬블러스 아나토미’에선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 독일 베를린과 싱가포르까지 영역 확장 최근 어느날 저녁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의 헨리스 펍에서 소설가 조너선 레섬을 만났다. “난 마치 영화 ‘좋은 친구들’ 막바지의 레이 리오타가 된 기분”이라고 그는 말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이 마피아 영화에서 리오타는 법정에서 조직의 비밀을 증언하고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가입해 낯선 곳에서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리오타가 연기한 캐릭터가 미국의 이름 없는 소도시에서 숨어 지내는 모습이 현재 로스앤젤레스 교외의 조용한 도시 클레어몬트에서 살아가는 자신과 흡사하다는 말인 듯하다. ‘마더리스 브루클린(Motherless Brooklyn)’ ‘고독의 요새(The Fortress of Solitude)’ 등 인기 소설에서 자신이 나고 자란 뉴욕 브루클린을 상세하게 묘사해 브루클린의 문학 대사로 불리기도 했던 그가 지난 6년 동안 클레어몬트에서 지내게 된 건 포모나대학의 ‘로이 에드워드 디즈니’ 문예창작 교수직에 임용됐기 때문이다. 레섬에게는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동쪽 끝에 있는 이 도시가 그곳에서 서쪽으로 몇 ㎞ 떨어진 세계적인 도시 로스앤젤레스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레섬은 2008년 자살한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의 뒤를 이어 ‘디즈니’ 교수직에 임명됐다. 그는 내게 포모나대학 취임 당시 전임자인 월러스의 비극적인 죽음에 큰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월러스가 쓰던 사무실 가구에서 담배를 씹는 버릇이 있었던 그의 흔적을 보여주는 얼룩을 발견했을 때를 돌이키기도 했다.
‘좋은 친구들’에서처럼 레섬에게 교외 이주는 이전에 살아오던 생활방식의 포기를 의미했다. 레섬은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한 직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브루클린은 소설가들에게 암처럼 나쁜 영향을 미치는 곳이 됐다. 뉴욕은 이제 글쓰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다. 정신적 교통혼잡이 매우 심한 곳이다.” 그는 당시의 단어 선택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말로 나타내고자 했던 감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브루클린이 지나치게 ‘브루클린화’했다는 생각이다. 그는 자신이 성장했고 ‘고독의 요새’의 배경으로 삼은 보름힐이 “화려함과 돈에 흠뻑 빠졌다”고 말했다.
브루클린과 결별한 레섬이 다음 소설 ‘디시던트 가든(Dissident Gardens)’(2013)의 배경으로 삼은 곳은 퀸스였다. 난 시사주간지 ‘뉴 리퍼블릭’에서 이 작품을 그해 최고의 소설로 꼽았다. 다른 평론가들도 “(레섬의) 서정적인 문체가 드디어 심각한 주제와 결합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레섬의 초기 소설들은 공상과학과 누아르의 양식을 따랐지만 이 작품은 더 깊고 진실된 뭔가를 추구했다. 뉴욕타임스의 재닛 매슬린은 레섬을 필립 로스와 비교했다. 로스는 늘 자신이 나고 자란 뉴저지 주 뉴어크 근처를 배경으로 삼았지만 레섬은 브루클린을 넘어 낯선 지역들을 탐험한다.
레섬의 최신작 ‘갬블러스 아나토미(A Gambler’s Anatomy)’는 독일 베를린과 싱가포르까지 영역을 확장한다. 작품의 후반부 대부분은 주인공 알렉산더 브루노(주사위게임의 달인)의 고향인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근처의 지저분한 거리를 배경으로 한다. 브루노는 얼굴 안쪽에 생긴 커다란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베이 에어리어로 돌아온다. 주사위게임을 못하게 된 그는 날개 잃은 새 같은 신세가 돼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던 고향으로 갔다.
요즘 레섬의 소설들은 록 스타처럼 찬사를 받는 동시에 원숙한 작가의 작품답게 시시콜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워싱턴포스트의 론 찰스는 이 소설에서 버클리를 배경으로 한 대목이 지루하다고 평했다. 하지만 난 레섬이 시들어가는 진보주의와 씨름하는 이곳에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다. 커트 앤더슨은 뉴욕타임스 북 리뷰 커버에서 이 책을 ‘흥미진진한 1급 소설’이라고 평했다.
이 소설의 핵심은 인습을 무시하는 외과의 노아 베린저가 집도한 14시간 동안의 수술을 묘사한 대목(20쪽 분량)이다. 베린저는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를 들으면서 도널드 트럼프가 ‘탈의실 잡담(locker room talk)’이라고 부를 만한 음담을 늘어놓으며 수술을 집도한다.
베린저는 몇 시간 동안 브로노의 비강과 턱뼈 안쪽, 비인두, 눈 언저리를 들여다보며 종양과 씨름했다. 그러다 보니 크기에 대한 감각이 무너졌다. 양극성 소작기(지혈을 위한 도구)와 안면신경 자극기, 작은 구리 스푼과 겸자, 가위, 신경외과용 코트노이드(솜 절편) 등 수술도구와 자재들이 그의 눈엔 마치 거대한 건축 장비처럼 보였다.
레섬은 3년 전 ‘갬블러스 아나토미’의 집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주사위게임이나 악안면 종양학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당초 그는 주인공을 큰손 포커꾼으로 설정할 생각이었지만 너무 진부하다고 판단해 주사위게임으로 바꿨다. 어린 시절 브루클린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이 동아시아에서 주사위게임 선수가 됐기 때문에 현실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레섬은 책을 통한 이론 학습과 온라인 실전 경험으로 주사위게임 용어를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끼워 넣을 수 있을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쌓았다. 또 얼굴 종양 수술 묘사를 위해 신경외과 전문서적을 탐독했다. 버클리의 거리 풍경은 그에게 익숙했기 때문에 묘사하기가 쉬웠다. 레섬은 1980년대에 버몬트 주 베닝턴대학을 중퇴하고 히치하이킹으로 캘리포니아 주까지 갔다. 그는 브루클린이 고급주택지로 바뀌기 이전 그곳에서 그의 부모가 추구하던 진보주의의 흔적을 버클리에서 발견했다고 말했다. 레섬은 버클리의 빈민 지역에서 살았다. 공상과학 소설가 필립 K 딕이 살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레섬은 딕이 한때 그랬듯이 자신도 이름 없는 공상과학 잡지에 글을 보낸 적이 있다며 웃었다.
레섬은 버클리 캠퍼스 근처의 유명한 서점 ‘모스 북스’에서도 일했다. 그는 헨리스 펍에서 나를 만난 뒤 서둘러 그 서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의 신작 소설 낭독회가 열렸다. 그는 접이식 의자에 앉은 청중 앞에서 자신이 작가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었던 것은 1994년 데뷔작 ‘건, 위드 오케이저널 뮤직(Gun, With Occasional Music)’을 내놨을 때 뉴스위크에 실린 맬콤 존스의 고무적인 서평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5년 후 ‘마더리스 브루클린’이 나왔고, 그 후 4년 만에 ‘고독의 요새’가 출판됐다. 책 관련 블로거들이 레섬을 조너선 포어, 조너선 프랜즌과 함께 ‘문학계의 조너선 군단’ 중 한 명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우스꽝스러운 분류지만 레섬이 그만큼 유명해졌다는 증거였다.
레섬은 “이번 작품에선 뉴욕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고 내게 말했다. 그래서 그는 브루노를 버클리로 보냈다. 버클리는 여러모로 ‘고독의 요새’에서 브루클린의 딘 스트리트나 ‘디시던트 가든’에 나오는 ‘서니사이드 가든’(이곳에서는 어른들이 아이들 같은 이상적인 환상을 안고 살아간다)과 같은 기능을 한다. 레섬은 ‘일시적인 이상향’이라는 개념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이 용어는 모순적으로 들린다. 지속되지 않는 이상향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것은 누추한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기분 좋은 꿈 같은 것이다.
버클리는 한때 많은 사람의 이상향이었지만 알렉산더 브루노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고 그의 어머니는 이 도시의 고질적 병폐인 노숙자 대열에 합류했다. 그의 어린 시절 친구 키스 스톨라스키는 부유한 건물주가 됐다. 브루노의 얼굴 종양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흉터 때문에 마스크 없이는 버클리 거리를 돌아다닐 수가 없다. 이 도시 또한 다양한 마스크로 본 모습을 가린 듯 보인다.
레섬은 내게 ‘피상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갬블러스 아나토미’의 집필 동기라고 말했다. 그런 관심은 진정한 자아와 마스크로 본 모습을 가린 자아, 포커 페이스와 그 뒤에 숨은 진짜 얼굴 사이의 괴리로 나타난다. 50년 전 버클리의 학생들이 자본주의 정권 타도를 외치던 현장에서 몇 블럭 떨어진 곳에 지금은 에퀴녹스 피트니스 센터가 들어섰다.
레섬은 헨리스 펍에서 나와 모스 북스로 걸어가던 도중 ‘갬블러스 아나토미’에 등장하는 싸구려 식당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소설에 나오는 몇몇 다른 장소들을 내게 보여줬다. 그중엔 피플스 파크도 있었다. 1969년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로널드 레이건이 그 땅의 공유화를 주장하는 급진주의자들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주방위군을 파견한 뒤 공원으로 조성됐다.
피플스 파크는 레섬의 또 다른 이상향이다. 이 공원은 1960년대의 급진주의를 상징하며 그 이름에도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듯하다. 하지만 지금은 황량한 노숙자들의 야영지에 지나지 않으며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찾는 공원이다.
‘갬블러스 아나토미’의 막바지에 버클리는 새로운 폭력 사태를 맞이한다. 건물주 스톨라스키를 겨냥한 이 폭력 사태는 브루노가 선동한 것이다. 피플스 파크는 다시 한번 경찰과 대격전을 벌이는 현장이 된다. 브루노는 이 폭력을 피해 마스크로 신분을 숨긴 채 버클리를 떠난다. 마지막 장면에는 그가 싱가포르에서 주사위게임을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의 신경은 온통 ‘다른 사람들이 무슨 패를 쥐고 있는가’에 쏠려 있다.
- 알렉산더 나자리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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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타가 연기한 캐릭터가 미국의 이름 없는 소도시에서 숨어 지내는 모습이 현재 로스앤젤레스 교외의 조용한 도시 클레어몬트에서 살아가는 자신과 흡사하다는 말인 듯하다. ‘마더리스 브루클린(Motherless Brooklyn)’ ‘고독의 요새(The Fortress of Solitude)’ 등 인기 소설에서 자신이 나고 자란 뉴욕 브루클린을 상세하게 묘사해 브루클린의 문학 대사로 불리기도 했던 그가 지난 6년 동안 클레어몬트에서 지내게 된 건 포모나대학의 ‘로이 에드워드 디즈니’ 문예창작 교수직에 임용됐기 때문이다. 레섬에게는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동쪽 끝에 있는 이 도시가 그곳에서 서쪽으로 몇 ㎞ 떨어진 세계적인 도시 로스앤젤레스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레섬은 2008년 자살한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의 뒤를 이어 ‘디즈니’ 교수직에 임명됐다. 그는 내게 포모나대학 취임 당시 전임자인 월러스의 비극적인 죽음에 큰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월러스가 쓰던 사무실 가구에서 담배를 씹는 버릇이 있었던 그의 흔적을 보여주는 얼룩을 발견했을 때를 돌이키기도 했다.
‘좋은 친구들’에서처럼 레섬에게 교외 이주는 이전에 살아오던 생활방식의 포기를 의미했다. 레섬은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한 직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브루클린은 소설가들에게 암처럼 나쁜 영향을 미치는 곳이 됐다. 뉴욕은 이제 글쓰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다. 정신적 교통혼잡이 매우 심한 곳이다.” 그는 당시의 단어 선택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말로 나타내고자 했던 감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브루클린이 지나치게 ‘브루클린화’했다는 생각이다. 그는 자신이 성장했고 ‘고독의 요새’의 배경으로 삼은 보름힐이 “화려함과 돈에 흠뻑 빠졌다”고 말했다.
브루클린과 결별한 레섬이 다음 소설 ‘디시던트 가든(Dissident Gardens)’(2013)의 배경으로 삼은 곳은 퀸스였다. 난 시사주간지 ‘뉴 리퍼블릭’에서 이 작품을 그해 최고의 소설로 꼽았다. 다른 평론가들도 “(레섬의) 서정적인 문체가 드디어 심각한 주제와 결합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레섬의 초기 소설들은 공상과학과 누아르의 양식을 따랐지만 이 작품은 더 깊고 진실된 뭔가를 추구했다. 뉴욕타임스의 재닛 매슬린은 레섬을 필립 로스와 비교했다. 로스는 늘 자신이 나고 자란 뉴저지 주 뉴어크 근처를 배경으로 삼았지만 레섬은 브루클린을 넘어 낯선 지역들을 탐험한다.
레섬의 최신작 ‘갬블러스 아나토미(A Gambler’s Anatomy)’는 독일 베를린과 싱가포르까지 영역을 확장한다. 작품의 후반부 대부분은 주인공 알렉산더 브루노(주사위게임의 달인)의 고향인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근처의 지저분한 거리를 배경으로 한다. 브루노는 얼굴 안쪽에 생긴 커다란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베이 에어리어로 돌아온다. 주사위게임을 못하게 된 그는 날개 잃은 새 같은 신세가 돼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던 고향으로 갔다.
요즘 레섬의 소설들은 록 스타처럼 찬사를 받는 동시에 원숙한 작가의 작품답게 시시콜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워싱턴포스트의 론 찰스는 이 소설에서 버클리를 배경으로 한 대목이 지루하다고 평했다. 하지만 난 레섬이 시들어가는 진보주의와 씨름하는 이곳에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다. 커트 앤더슨은 뉴욕타임스 북 리뷰 커버에서 이 책을 ‘흥미진진한 1급 소설’이라고 평했다.
이 소설의 핵심은 인습을 무시하는 외과의 노아 베린저가 집도한 14시간 동안의 수술을 묘사한 대목(20쪽 분량)이다. 베린저는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를 들으면서 도널드 트럼프가 ‘탈의실 잡담(locker room talk)’이라고 부를 만한 음담을 늘어놓으며 수술을 집도한다.
베린저는 몇 시간 동안 브로노의 비강과 턱뼈 안쪽, 비인두, 눈 언저리를 들여다보며 종양과 씨름했다. 그러다 보니 크기에 대한 감각이 무너졌다. 양극성 소작기(지혈을 위한 도구)와 안면신경 자극기, 작은 구리 스푼과 겸자, 가위, 신경외과용 코트노이드(솜 절편) 등 수술도구와 자재들이 그의 눈엔 마치 거대한 건축 장비처럼 보였다.
레섬은 3년 전 ‘갬블러스 아나토미’의 집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주사위게임이나 악안면 종양학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당초 그는 주인공을 큰손 포커꾼으로 설정할 생각이었지만 너무 진부하다고 판단해 주사위게임으로 바꿨다. 어린 시절 브루클린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이 동아시아에서 주사위게임 선수가 됐기 때문에 현실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레섬은 책을 통한 이론 학습과 온라인 실전 경험으로 주사위게임 용어를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끼워 넣을 수 있을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쌓았다. 또 얼굴 종양 수술 묘사를 위해 신경외과 전문서적을 탐독했다. 버클리의 거리 풍경은 그에게 익숙했기 때문에 묘사하기가 쉬웠다. 레섬은 1980년대에 버몬트 주 베닝턴대학을 중퇴하고 히치하이킹으로 캘리포니아 주까지 갔다. 그는 브루클린이 고급주택지로 바뀌기 이전 그곳에서 그의 부모가 추구하던 진보주의의 흔적을 버클리에서 발견했다고 말했다. 레섬은 버클리의 빈민 지역에서 살았다. 공상과학 소설가 필립 K 딕이 살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레섬은 딕이 한때 그랬듯이 자신도 이름 없는 공상과학 잡지에 글을 보낸 적이 있다며 웃었다.
레섬은 버클리 캠퍼스 근처의 유명한 서점 ‘모스 북스’에서도 일했다. 그는 헨리스 펍에서 나를 만난 뒤 서둘러 그 서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의 신작 소설 낭독회가 열렸다. 그는 접이식 의자에 앉은 청중 앞에서 자신이 작가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었던 것은 1994년 데뷔작 ‘건, 위드 오케이저널 뮤직(Gun, With Occasional Music)’을 내놨을 때 뉴스위크에 실린 맬콤 존스의 고무적인 서평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5년 후 ‘마더리스 브루클린’이 나왔고, 그 후 4년 만에 ‘고독의 요새’가 출판됐다. 책 관련 블로거들이 레섬을 조너선 포어, 조너선 프랜즌과 함께 ‘문학계의 조너선 군단’ 중 한 명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우스꽝스러운 분류지만 레섬이 그만큼 유명해졌다는 증거였다.
레섬은 “이번 작품에선 뉴욕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고 내게 말했다. 그래서 그는 브루노를 버클리로 보냈다. 버클리는 여러모로 ‘고독의 요새’에서 브루클린의 딘 스트리트나 ‘디시던트 가든’에 나오는 ‘서니사이드 가든’(이곳에서는 어른들이 아이들 같은 이상적인 환상을 안고 살아간다)과 같은 기능을 한다. 레섬은 ‘일시적인 이상향’이라는 개념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이 용어는 모순적으로 들린다. 지속되지 않는 이상향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것은 누추한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기분 좋은 꿈 같은 것이다.
버클리는 한때 많은 사람의 이상향이었지만 알렉산더 브루노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고 그의 어머니는 이 도시의 고질적 병폐인 노숙자 대열에 합류했다. 그의 어린 시절 친구 키스 스톨라스키는 부유한 건물주가 됐다. 브루노의 얼굴 종양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흉터 때문에 마스크 없이는 버클리 거리를 돌아다닐 수가 없다. 이 도시 또한 다양한 마스크로 본 모습을 가린 듯 보인다.
레섬은 내게 ‘피상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갬블러스 아나토미’의 집필 동기라고 말했다. 그런 관심은 진정한 자아와 마스크로 본 모습을 가린 자아, 포커 페이스와 그 뒤에 숨은 진짜 얼굴 사이의 괴리로 나타난다. 50년 전 버클리의 학생들이 자본주의 정권 타도를 외치던 현장에서 몇 블럭 떨어진 곳에 지금은 에퀴녹스 피트니스 센터가 들어섰다.
레섬은 헨리스 펍에서 나와 모스 북스로 걸어가던 도중 ‘갬블러스 아나토미’에 등장하는 싸구려 식당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소설에 나오는 몇몇 다른 장소들을 내게 보여줬다. 그중엔 피플스 파크도 있었다. 1969년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로널드 레이건이 그 땅의 공유화를 주장하는 급진주의자들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주방위군을 파견한 뒤 공원으로 조성됐다.
피플스 파크는 레섬의 또 다른 이상향이다. 이 공원은 1960년대의 급진주의를 상징하며 그 이름에도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듯하다. 하지만 지금은 황량한 노숙자들의 야영지에 지나지 않으며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찾는 공원이다.
‘갬블러스 아나토미’의 막바지에 버클리는 새로운 폭력 사태를 맞이한다. 건물주 스톨라스키를 겨냥한 이 폭력 사태는 브루노가 선동한 것이다. 피플스 파크는 다시 한번 경찰과 대격전을 벌이는 현장이 된다. 브루노는 이 폭력을 피해 마스크로 신분을 숨긴 채 버클리를 떠난다. 마지막 장면에는 그가 싱가포르에서 주사위게임을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의 신경은 온통 ‘다른 사람들이 무슨 패를 쥐고 있는가’에 쏠려 있다.
- 알렉산더 나자리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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