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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육우와 이야의 비극적 사랑

[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육우와 이야의 비극적 사랑

재회의 정 나눌 틈도 없이 멀어진 연인... 육우 [차경] 짓고 초야에 묻혀 살아
차(茶)의 신(神)으로 불린 육우는 당나라 최고의 명사가 됐지만 연인 이야를 잊지 못하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차(茶)의 신(神)으로 불린 육우(陸羽)가 사랑한 유일한 여인 이야(李冶)는 대표적인 당나라 시인이다. 이야가 쓴 시 ‘상사원(相思怨)’은 가곡으로도 유명한 이은상의 시 ‘그리움’의 원형이기도하다. 여중시호(女中詩豪)로 인정받은 이야는 당나라 3대 여류시인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에 유명세를 탔다.

다른 여류시인 둘은 기녀이거나 이혼녀의 처지에서 말년에 도가에 귀의했지만 이야는 어려서부터 도교에 입문한 여도사로서 사회적 비난에서 빗겨나 팜므파탈의 마력을 시와 미모로 유감없이 뿜어냈다. 색시쌍절(色詩雙絶)로 소문난 이야는 전국의 한량들로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았다. 20살 청년 육우도 이야의 명성에 이끌려 그녀를 찾아 왔다가 꿈에도 잊지 못한 소꿉놀이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됐다. 이야가 바로 육우의 어린 시절 친구 이계란이었다.
중국 전역을 떠돌며 차를 연구한 육우.
다시 만난 육우와 이야는 차와 함께 시를 노래하며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차에 대한 육우의 해박한 지식은 이야를 매료시켰다. 시는 이야가 한 수 위였지만 차는 육우가 한참 위였다. 육우는 차를 이야에게 가르치는 순간이 너무 즐거웠다. 차에 대해서만큼은 이야를 훨씬 능가하기 위해 더욱 전념했다.

“아무리 잘 만든 차도 반제품 상태이며 좋은 물을 만났을 때 비로소 차로 완성된다”고 말하는 육우의 주장에 공감하고 차는 비록 물질에 불과하지만 정신수양의 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야는 깨우쳤다. 육우에게 배운 이야의 차 실력도 일취월장해 이야가 만든 뇌차는 지금도 호주 지방의 명차로 남아있다.

뇌차는 지역마다 첨가물이 다르지만 찻잎을 주재료로 깨, 땅콩, 녹두, 쌀, 잣, 밤, 호두, 산초, 소금 등을 함께 빻은 후 끓인 물로 걸쭉하게 만들어 마시는 형태의 차다.

하지만 육우의 꿈결 같은 사랑은 길지 못했다. 이야의 뜻과 무관하게 하루가 멀다 하고 사내들이 찾아왔다. 가정에 매이지 않은 도교의 여도사로서 이들을 모두 외면할 수도 없었다. 육우는 자신의 여자가 이야가 아니라, 이야의 남자 중 하나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체감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유분방한 이야를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육우는 마음이 아플수록 더욱 차 연구에 매진했다.

육우는 호주를 비롯해 이름난 차가 있는 지방과 좋은 물이 나오는 곳을 두루 다니며 비교 분석해 기록으로 남겼다. 차에 조예가 깊고 넓은 스님 교연(皎然)을 만나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음미하는 예절까지 의견을 나누며 우정을 키웠다. 교연도 이야와 이미 잘 아는 사이였다. 호주로 돌아온 육우는 교연과 더불어 이야와 ‘쿨 한’ 연애를 하게 된다. 3인 관계에 행복한 이야의 그늘에 육우가 있었다. 결국 육우는 이야를 떠나 천하를 떠돌며 차밭을 찾아다녔다.
 혼자 가질 수 없었던 여인
당나라 3대 여류 시인으로 꼽히는 이야.
육우가 전국의 차에 대한 자료를 축적해가는 동안 이야는 유명 인사들과 사귀며 시의 깊이를 더해갔다. 이야의 사랑이 방전되어 기력을 잃고 쓰러져 연자호(燕子湖)에서 와병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육우는 한달음에 달려 이야에게 왔다. 육우를 본 이야는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육우는 정성으로 약을 달이고 영양식을 만들어 이야의 건강을 회복시켰다. 병석에서 일어난 이야는 육우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호상와병희육우지(湖上卧病喜陸羽至)’라는 시를 지었다. 아플 때 찾아준 육우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시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우연치 않게 술에 취한 우리, 이제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하나요.’ 사랑에 능한 이야의 유혹이 가득 넘친다.

육우는 이대로 이렇게 이야와 결혼해 사는 꿈을 잠시 꾸었지만 세상은 이야를 초야에 묻혀 살게 두지 않았다. 당나라 수도 장안까지 소문이 난 이야를 현종(玄宗)이 황궁으로 초대했다. 육우는 황궁으로 가겠다는 이야를 말릴 재간도 힘도 없었다. 황제의 초대는 법이자 명령이었다. 관직을 마다하고 호주로 내려온 육우는 이야를 따라 장안으로 갈 수 없었다. “잠시 다녀온다”는 이야의 말이 육우가 기억하는 이야의 마지막이었다.육우의 걱정을 뒤로 하고 이야는 장안에 도착했다. 양귀비와 사랑에 빠진 현종이 국정을 외면한 탓에 안사의 난이 일어나 장안은 패닉 상태였다. 현종도 황궁을 버리고 사천으로 도피했다. 갈 곳을 잃고 난감해진 이야는 평정심을 찾고 현종이 돌아올 때까지 장안에 있기로 작정했다. 9년이나 계속 된 난리 속에도 이야는 살아남았다. 장안으로 돌아온 현종을 알현한 이야는 한 달 반이나 황궁에 머물며 시와 투차(鬪茶)로 현종을 위로했다. 황궁을 나온 이야는 고향 호주로 돌아가지 않고 장안에서 계속 살았다.

육우가 10여 년에 걸쳐 완성한 <차경>.
육우는 제2의 고향 호주에서 차에 대한 전문서적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당대 차에 대한 백과사전이라고 부르는 [차경(茶經])의 초고를 765년경 작성했다. 10년에 걸쳐 증보판을 만들고 4년을 더 다듬어 3권 10편으로 구성된 차의 바이블, [차경]을 완성했다.

육우는 차의 위대한 스승으로 당나라 최고의 명사가 됐지만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 장안에서 풍류를 즐기던 이야는 덕종의 부름을 받들어 황궁에 들어가 시인으로서 후한 대우를 받으며 살게 됐다. 곧이어 주차의 난이 일어나 덕종은 황궁을 버리고 도망갔다. 황궁에 남아 있다가 주차의 눈에 띈 이야는 살기 위해 주차를 칭찬하는 시를 쓰게 됐다. 주차의 난이 평정되고 덕종이 황궁에 돌아와 반역의 죄를 물어 이야를 784년 박살(撲殺)형에 처해 죽였다. 육우는 유명세와 무관하게 세상과 등지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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