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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베이비’ 더 크고 더 건강하게

‘디자이너 베이비’ 더 크고 더 건강하게

유전자 편집 기술로 병과 불임을 치료하고 인류의 미래를 바꾼다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인간 배아를 변형해서 출생 전에 유전적 결함을 제거할 수 있다.
레일라 리처즈는 2014년 6월 영국 런던의 병원에서 태어났다. 검정 솜털 머리카락과 통통한 볼을 가진 3.46㎏의 활기찬 아기였다. 그러나 생후 12주째 런던 북부의 자택에서 잘 자라던 리처즈가 갑자기 우유를 빨지 않고 칭얼거리며 끊임없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밝고 편안해 보였기 때문에 부모는 아기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의사는 위장염을 의심했지만 확실하게 혈액검사를 하기로 했다. 며칠 뒤 나온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치명적인 급성 백혈병이었다. 겨우 생후 14주 째였다.

검사 결과가 나오자 마자 앰뷸런스가 출동해 아기를 그레이트 오먼드 스트리트(GOS) 병원 중환자실로 데려갔다. 블룸스베리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아과 센터다. 의료진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고약한 악성”에 속하는 백혈병이라고 설명했다. 그 뒤 수주 동안 여러 차례 화학치료를 한 뒤 전체 골수 이식을 통해 손상된 혈액 세포를 교체했다. 이 같은 공격적인 치료가 아기에게서 종종 성공할 때도 있지만 리처즈에게는 어떤 치료도, 심지어 실험적인 요법조차 듣지 않았다. 의학적으로 더는 희망이 없었다. 유일하게 남은 한 가지 선택지는 임종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시설에서 남은 생을 편안하게 보내는 것이다.

GOS 병원의 백혈병동 가까운 곳에 암을 포함해 아동 면역체계 질환을 전문으로 하는 와심 카심 박사 사무실이 있다. 면역학자인 그는 수개월 전부터 새로운 백혈병 치료법을 연구 중이었다. 익명으로 기증 받은 백혈구 세포 유전자를 조작해 암세포를 식별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백혈구는 감염병을 비롯해 체내의 외부 침략자들과 싸우는 병정이다. 유전자 조작된 세포들은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세포 군단을 형성하며 누구에게나 투여 가능하다. 문제는 이 치료법이 생쥐 실험만 거쳤을 뿐이라는 점이다.

카심 박사 연구실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GOS 아동건강 연구소에 있다. 이 건물과 GOS 병원 사이에 연결 통로가 나 있다. 카심 박사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병원으로 향하는 일단의 양문 도어를 통과하면서 “두 건물 간에 이동이 자유롭다”며 “다른 물리적 또는 지적 장벽이 없어 뜻하지 않은 행운을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카심 박사는 골수 이식 담당의에게서 리처즈 아기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농담조로 ‘정신 나간 소릴지 모르지만 (박사의 세포가) 아이에게 효과가 있을까요’라고 물었다”고 카심 박사는 돌이켰다.

그 요법은 아직 인체 실험을 거치지 않아 큰 문제가 발생할 위험성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리처즈 부모와 의료진에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아기를 잃게 된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었다. 영국 약품·의료제품규제청으로부터 응급처방 허가를 받은 뒤 다른 사람에게서 기증받은 세포 한 회 분이 세계 최초로 리처즈에게 주사됐다. 아기의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유전자 편집된 세포들이다.

카심 박사의 실험적 유전자 치료 이후 맞춤 설계된 분자 가위를 이용해 DNA를 절단·편집·삭제하는 신기법을 두고 리처즈의 의료진으로부터 ‘기적적이다’ ‘경이적이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4주 만에 아기가 차도를 보이면서 2차 골수이식수술도 잘 이겨냈다. 1년여가 지나 만 두 살이 돼가는 지금 아기는 암에서 해방돼 건강하게 자란다.
 누가 조물주 행세를 하려는가?
레일라 리처즈는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유전자 편집된 제3자의 세포를 세계 최초로 투여 받아 지금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아기 리처즈는 선구자였다. 유전자 편집 기술로 살아난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영국 과학자와 규제 당국이 그런 치료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지 않았다면 세포에 특이한 성질을 부여하는 카심 박사의 실험적 치료도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유전자 편집기술의 발전과 정부의 승인으로 영국이 보기완 다르게 유전암호 조작 기술 분야의 선구자로 떠오른다. 논란 많으면서도 인류의 가장 경이적인 지식으로 손꼽히는 의술 분야다. 전 세계 연구소들이 아동과 성인 질병의 유전적 치료법을 연구 중이지만 대부분 인간 배아 DNA의 변형에는 조심스런 태도를 취해 왔다. 미래 세대에 의도하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은 2016년 동시에 두 가지 분야에서 선구자가 됐다. 세계 최초로 배아 일부의 제3자 유전자 대체를 합법화했고, 또한 배아 단계에서 인간의 유전자 변형도 가장 먼저 허용했다.

생명윤리학자와 종교 지도자뿐 아니라 미국 국립보건원(NIH) 등은 ‘맞춤 아기’의 반유토피아적인 미래를 예고한다며 그 기법에 반대한다. 부모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더 강하고 크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유전자 편집을 택함으로써 ‘조물주 행세’를 하는 세상이 된다는 비판이다. 분자 생물학자 겸 윤리학자인 데이비드 킹은 영국 생명윤리 감시단체 ‘휴먼 제네틱스 얼러트(HGA)’의 설립자다. 그는 배아 조작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의도적으로 인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설계할 가능성”을 열어놓는다고 믿는다. 런던의 너필드 생명윤리 위원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특히 배아의 유전자 편집에는 더 엄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예기치 못한 영향의 범위가 크거나 회복 불가능하다고 간주되는” 분야에서 윤리적인 반대가 제기돼 왔다고 위원회는 지적했다.
 유전자 편집으로 유전적 장애 제거
와심 카심 박사의 실험적 치료법은 맞춤 설계된 분자 가위를 이용해 DNA를 절단·편집·삭제해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인간은 모두 특유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갖고 있다. DNA로 알려진 30억 쌍 이상의 분자들이다. 이들이 인간의 외모부터 생물학적 특성, 성격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 짓는다. 머리 색깔, 특정 음식의 선호, 심지어 마감시간을 맞추는 능력까지 모두 DNA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같은 유전암호에 돌연변이나 오류가 생기면 당뇨나 백혈병 같은 질병이 생길 수 있다. 이제 유전자 편집 기술 덕분에 실험실에서 유전자 오류를 찾아내 교정할 수 있게 됐다. 이 도구들을 더 정교하게 가다듬으면 겸상 적혈구 빈혈증과 낭포성 섬유증 같은 질병 치료나 심지어 암 퇴치에도 이용할 수 있다.

유전자 편집의 가능성은 성인 질환의 치료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을 이용해 인간 배아를 수정하고 지독한 유전적 결함을 출생 전에 제거할 수도 있다. 따라서 소모성 질환이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전달되지 않도록 막고 심각한 유전적 장애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영국은 최근 정부의 유전자 편집 연구 승인으로 다른 나라가 원하든 원치 않든 미래 건강·의학 혁명의 최전선에 서게 됐다.

리처즈가 태어나기 약 40년 전 영국에서 역사를 창조한 여아가 또 있었다. 1978년 7월 부모의 간절한 기원 속에 루이스 브라운이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2.5㎏의 이 건강한 아기의 분만에서 특이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아기가 세상에 나온 덕분에 영국인 과학자 2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브라운이 배양접시에서 수태됐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체외수정(IVF)을 통해 태어난 아기였다. 당시 브라운은 최초의 ‘시험관 아기’로 불렸다. 지금은 표준으로 자리 잡은 방법이 당시 얼마나 기이하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말해준다. 1981년 뉴욕타임스는 그 방법이 “일부 반대파의 눈에는 낙태와 마찬가지”로 간주됐다고 썼다.

브라운의 완벽한 실험실 수정은 영국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획기적인 생명공학 발전 역사의 한 축을 이룬다. 그 유산은 1953년 케임브리지대학 박사과정생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해 인간 생물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면서 시작됐다. 현대 분자생물학 분야가 그 단순한 이중나선 구조에서 생겨났다(‘네이처’에 실린 최초 논문에서 크릭의 부인 오딜이 손으로 그 이미지를 그렸다). 그것은 복제부터 유전자 편집에 이르는 온갖 첨단 기법을 탄생시켰다. 영국 과학자들은 IVF를 포함한 생식 생물학의 임상 기법, 생쥐 배아 줄기세포의 발견(1981), 포유동물 최초 복제 양 돌리 탄생의 선구자가 됐다.

이 같은 이정표에 도달할 때마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인간 생명의 정의와 관련된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했다. 세포 덩어리가 언제 태아를 이루는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명형태에 권리가 있는가? 우리 인류에게서 청력상실 같은 신체 장애를 제거해야 하는가? 영국 정부는 브라운 탄생 이후 철학자 메리 워녹이 이끄는 윤리위원회를 소집해 실험실에서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고 변형하는 데 따르는 영향을 연구하도록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1987년 작성된 보고서는 IVF의 명백한 사회적 혜택에 관한 국가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보고서는 또한 인간수정·배아관리국(HFEA) 설립의 초석이 됐다. 인간 배아 연구와 IVF 시술을 규제하는 세계 최초의 독립적인 입법기구다. 정부 부처장관이 아니라 독립 위원회의 지휘를 받는다. 그러나 영국 보건부의 후원을 받아 보건부 장관이 위원들을 임명한다. 위원은 유전학자·철학자 그리고 전직 공무원, 금융·기업 전문직 종사자 등으로 구성된다. 샐리 체셔 위원장은 영국 보건 장관에게 직접 보고한다. HFEA는 영국의 의학 혁신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의학 연구가 종종 종교와 정치에 발목 잡히는 미국과 독일 같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진보적이다.

최근 HFEA는 논란 많은 의술 두 건을 승인했다. 2015년 2월 영국 정부는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미토콘드리아 질환이 산모에게서 아기로 유전되지 않도록 막는 선구적인 유전자 기술을 승인했다. IVF 배아에 기증자의 건강한 유전자를 주입하면 태어나는 아기가 청력상실·근육위축, 간 또는 신부전 그리고 뇌손상 같은 심각한 증상을 피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런 아기들이 새 유전암호를 2세, 3세를 비롯한 모든 후대에 전달할 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영국 성공회와 가톨릭 사제단의 반발뿐 아니라 일부 의원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국 하원은 미토콘드리아 기증의 허용을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켰다. 영국 정부는 그 시술을 승인했지만 미국과 중국 당국은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해 초 그 기술의 평가 보고서에서 사람들 간에 미토콘드리아를 이식해도 안전한지 뒷받침하는 증거가 아직 없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2월 영국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의 유전학자 케이티 니아칸 박사는 연구 목적으로 건강한 인간 배아 편집 허가를 받은 세계 최초의 과학자가 됐다(그 배아를 사람에게 이식해선 안 된다). 그녀의 목적은 인간 발달의 초기 과정 연구이지 아기의 유전자 변형이 아니다. 그런데도 영국의 일부 의원은 그런 유의 연구를 어떻게든 저지하려 했다. 인간 배아 편집허가에 관한 의회 청문회에서 보수당의 제이커 리스-모그 의원은 “유전자 변형 작물이 불안을 초래하는 상황에서 유전자 변형 아기의 허용 움직임은 무모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미국 NIH의 주요 인사들도 비슷한 우려를 표명한다. 지난해 7월 유전자 편집의 영향에 관한 토의 차 소집된 과학 전문가 모임에서 프랜시스 콜린스 NIH 원장은 인간 배아 변형 연구에 대한 자금지원을 기피하는 것은 윤리적인 우려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콜린스 원장은 종교적인 신념에서 인간 배아 유전자 변형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시인했다. 그는 인터넷 뉴스 매체 버즈피드 뉴스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개인적으로나 하나의 인류집단으로나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 인류 자신을 조작할 만한 사랑·지능·지혜를 가졌는지에 관해 대단히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은 모든 인간 배아 연구에 대한 연방 자금지원을 금지한다. 1995년 의회에서 통과된 그 법은 ‘인간 배아 또는 배아들을 파괴 또는 폐기하거나 자궁 내 태아에 관한 연구에 허용된 것보다 의도적으로 더 큰 손상 또는 소멸 위험에 처하게 하는 모든 연구’에 연방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HFEA와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의 유전자 편집 문제 관련 과학 고문인 로빈 로벨-뱃지 교수는 “미국에선 인공수정 기술이나 유전자 조작과 관련된 어떤 문제에 관해서든 진정한 토론을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말했다. “그것이 공론화를 꺼리는 낙태 관련 문제로 비화할까 모두가 두려워한다. 정치·종교 단체들이 그런 토론을 주도한다. 미국에선 유전자 편집 문제가 불안감을 유발하지만 영국은 그렇지 않다. 영국에선 관련 법률과 규정이 확립돼 어디에 걸림돌이 있는지 정확히 알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정부는 배아 연구는 꺼리지만 IVF 시술은 허용한다. 니아칸 박사는 “NIH가 지지하는 IVF는 역설적으로 인간 배아 연구에서 최신 정보를 얻는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 실시된 연구에 의존하면서 자신들은 그것을 지원하려 하지 않는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태도다.”

니아칸 박사는 로벨-뱃지 교수와 함께 런던에 새로 문을 연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의 창립 멤버가 됐다. 연구소는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영국인 과학자 프랜시스 크릭을 기념해 명명했으며 HFEA로부터 7일 된 인간 배아의 편집 허가를 받은 최초의 연구 허브다. 그들은 IVF 성공률 향상 지원에 초점을 맞춘다. IVF의 효력은 1978년 약 320㎞ 북쪽에서 브라운이 태어났을 때 입증됐다.
 모든 수태는 기적이다
루이스 브라운은 체외수정을 통해 태어난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다. 브라운을 안아든 의사들(왼쪽 사진)과 그 소식을 전한 뉴스위크 커버.
노벨상 수상 생물학자 폴 너스 경이 이끄는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는 지난해 9월 문을 열었다. 약 8억500만 달러를 투자해 만든 이곳에서 과학자 1250명이 연구를 진행한다. 유럽 최대의 생체의학 연구소로 자리매김했다. 건물 내의 영국 과학자들은 인간 생명의 수정에 이르는 분자의 신비를 가장 먼저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노력의 선봉에 선 여성은 38세의 니아칸 박사다. 지난해 5월 런던 북부 밀 힐 지구의 임시 실험실을 찾아갔을 때 생성 5일째된 초기 인간 배아(즉 배반포)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그녀는 종이 한 장을 집어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끔씩 동그라미 친 숫자를 써 넣으며 IVF 배아의 낮은 생존율을 보여준다. 수정된 배아 중 40%만 배반포로 성장한다. 그중 여성의 자궁에 착상되는 비율은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석 달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현재로선 배아의 생존율이 왜 그렇게 낮은지 원인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통계적으로 인간이 수세기 동안 성공적으로 번식해온 게 기적 같다고 말하자 그녀는 “정말 그렇지 않아요?”라며 맞장구를 친다.

이란 이민자의 딸인 니아칸 박사는 아버지가 신경과 병원을 개업한 워싱턴 주 실버데일의 작은 마을에서 성장했다. 시애틀의 워싱턴대학 1학년 때 유전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대가족의 선천적 질환을 연구하는 실험실을 찾아가 배양접시를 닦게 해달라고 졸랐다. 인간 유전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보조원 역할이 그녀에게 맡겨졌다. 그녀는 훗날 유전적 혈액질환인 탈라세미아(thalassemia)와 관련된 유전자를 발견했다. “유전학 강의 때 교과서에서 온갖 DNA 밴드를 보다가 실험실에서 실제로 목격하고는 너무 기뻐 나도 모르게 ‘저건 A, 저건 T, G, C’라고 외쳤다”고 니아칸 박사는 DNA 염기서열을 처음 목격했을 때를 돌이켰다. “그때 매료된 뒤로 줄곧 거기에 빠져 살았다.”

니아칸 박사는 캘리포니아대학, 하버드대학에서 발달 생물학을 공부하고 200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으로 건너가 박사후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그녀는 “단일 세포 유기체에서 정형화된 3가지 독특한 세포유형의 아주 복잡한 집합체로 발달하는 과정을 연구하는 일이 정말로 좋다”고 했다. “여러 해가 지난 지금도 사실상 같은 문제에 매달려 있다. 영국에선 생식건강과 의학에 접근하는 방식이 대단히 전향적이다. 그것이 대단히 마음에 들며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이곳에 머무는 이유다.”

니아칸 박사의 목표는 인간 생명의 가장 초기 단계, 인간이 세포 200개의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때를 이해하는 일이다. 자신의 연구가 궁극적으로 여성의 임신과 유전 질환의 퇴치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지만 그것은 그녀가 추구하는 이상이 아니다. 그녀의 진짜 관심사는 인간 생식의 과학적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다. 그녀는 “배양접시 위에서 인간생물학의 이해에 혁명을 가져올 만한 잠재력을 지닌 연구”라며 “그것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태아 발달에 중요한 유전자를 분리해내고자 한다. 그래야만 각 유전자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DNA를 매우 정확하게 절단하고 편집할 수 있는 크리스퍼-카스 9이라는 유전자 편집 도구를 이용한다. “결정적으로 어떤 유전자가 필요한가라는 생물학의 기본적인 의문이 중요한 것은 어떤 배반포가 발달해 자궁에 착상하고 성장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떤 여성이 IVF 시술을 받으러 클리닉을 방문할 때 전문가들은 배아의 유전적 특징보다는 물리적 형태·크기 그리고 기타 가시적인 특성을 토대로 배아의 질을 채점한다. 배아의 염색체 이상을 검사할 수는 있지만 초기 단계의 인간 발달 유전학에 관해 거의 알려진 게 없다. 니아칸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배아의 식별에 사용되는 분자 도구가 거의 없다. 배아의 절반이 탈락한다. 따라서 배아가 성공적으로 착상하는 데 필요한 주요 특성을 규명할 여지가 있다. 그것이 임신 확률을 높이거나 또는 건강한 아기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배아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 지식이 생식과정의 결함이나 나아가 불임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HFEA는 니아칸 박사의 크리스퍼-카스9 가위 사용 요청에 관해 3년간 조사했다. 실험실에서 배아를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뤘는지, 그리고 기증자에게 적절하게 상담과 새 정보를 제공했는지 등 그녀의 연구 활동에 대한 일련의 정밀 조사를 실시했다. 니아칸 박사는 지난해 1월 말 결정을 통보 받았다. 그녀는 흥분이나 성취감에 휩싸이기보다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불합리가 과학을 압도할까 두려웠다고 말한다.

그 결정에 과학자, 유전병 환자 그룹, 난임 여성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네 번 유산했던 34세 여성 엠마 벤자민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널리 지지를 표명했다. “내가 왜 계속 유산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해 답답했다. 이 연구가 더 일찍 시작돼 원인을 알려줬더라면 그렇게 가슴 아픈 일들을 많이 겪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사설 클리닉의 IVF 시장 규모는 10억 달러
런던의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는 HFEA로부터 7일된 생 인간 배아의 편집 허가를 받은 최초의 연구 허브다.
니아칸 박사의 기념비적인 승리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변형 배아를 출산 목적으로 자궁에 착상시키는 건 영국에선 불법이다. 변형된 유전자가 미래 세대에게 대물림하지 않도록 하려는 조치다. 니아칸 박사의 연구팀은 7일이 넘은 배아는 모두 파기해야 한다.

니아칸 박사는 이 연구가 (현재로선) 실제 아기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의학계에서는 변형된 배아가 실제 아기로 자랄 가능성을 검토하는 중이다. 2015년 12월 전 세계 수백 명의 과학자가 미국 워싱턴 D.C.에 모여 유전자 편집에 관한 사상 최초의 국제 회의를 가졌다. 행사 주최자인 캘리포니아공대 생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 데이비드 볼티모어 교수는 폐막식에서 성명을 통해 “과학 지식이 발달하고 사회의 관점이 진화함에 따라 생식세포계열(배아) 편집의 임상적 활용에 관한 정기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과학자들이 우려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미 앞서나간 과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2015년 4월 중국 광저우의 연구팀이 결함 있는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실험을 했다고 발표했다.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혈액질환인 베타-탈라사에미아를 일으키는 유전자 편집이 목적이었다. 실험은 실패였다. 크리스퍼 시술 중 실수로 엉뚱한 유전자를 편집해 배아의 DNA를 돌이킬 수 없게 망쳐놓았기 때문이다.

그 연구는 전 세계 학계에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윤리성 관련 법률과 규정이 과학발전 속도를 따라올 때까지 배아 변형 중단의 선포 여부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와 관련해 워싱턴 회의에 참석한 미국·영국·중국 과학자들은 출산 목적의 인간 배아 변형을 가리켜 “무책임”하고 잠재적으로 위험하다며 일시적인 동결을 촉구했다. 국제적인 협력을 촉구하는 신속한 결정은 이 연구의 초국가적인 성격을 말해준다. 인간의 정의를 바꿔놓을 수 있는 과학 영역이기 때문이다.

유전자 편집의 가장 열성적인 지지자들도 재앙에 가까운 실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예컨대 크리스퍼 가위가 유전자를 부정확하게 편집해 의도하지 않은 돌연변이와 기형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악의적인 제3자의 부적절한 편집 위험성도 있다. 부자들이 돈을 주고 유전자를 강화할 경우 사회적 차별이 될 수 있으며 인류에 새로운 유전자 염기서열이 도입될 수도 있다. 일종의 유전자 미용성형술이다. 과학계는 이 같은 안전·윤리 문제들이 해결될 때까지 현재의 연구를 중단하고 상시적으로 재평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 밖에도 중국에서 인간 배아 실험들이 진행 중이라는 루머가 학계에 돌면서 규제 받지 않는 임상시험 암시장과 관련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마찬가지로 미국도 연방의 예산지원은 금하지만 배아에 관한 사적인 연구를 규제하는 법이 없다. 따라서 배아가 밀수품처럼 거래된다는 의미다. 로벨-뱃지 교수는 “사설 클리닉의 IVF 시장 규모가 10억 달러에 달한다”고 전했다. “그중에는 의심스런 기법을 이용하는 곳이 많다. 한 여성에 2개 이상의 배아 이식은 법으로 엄격히 금지된다. 하지만 미국에는 ‘옥토맘’(체외수정으로 여덟 쌍둥이 출산) 같은 유명한 사건들이 있다. 그들은 분명 어떤 규정도 전혀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대다수 과학자들은 배아 편집이 언젠가는 임상적 대안이 되리라고 보지만 여전히 강력히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감시단체 HGA의 킹 설립자는 유전자 편집을 가리켜 ‘신기술 우생학’(인류의 유전학적 개량 목적의 연구)으로 부른다.

로벨-뱃지 교수는 HFEA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솔직한 토론이 그것을 임상에 안전하게 도입하는 열쇠라고 본다. “영국에선 유전자 편집 배아의 여성 이식은 모두 불법이다. 이 연구에 대한 HFEA의 과거 규제 방식을 감안하고 또 법이 개정되면 대중도 이 기법이 임상적 용도로만 사용된다고 믿을 것이다.”

니아칸 박사도 자신의 연구와 같은 논란 많은 문제에서 영국 규제당국의 정교분리 능력을 지적하며 같은 의견을 말한다. 그녀는 “생식 의학과 건강 특히 IVF의 발전에서 영국의 선구적인 역할은 규제 프레임워크와 많은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이 같은 복잡한 문제에 관한 솔직한 토론에 적극 참여한다. 다른 나라에선 정치·종교 문제가 뒤엉켜 중구난방이다.”
 완벽한 아기를 위한 편집
인류의 장애를 완전히 제거한다는 아이디어가 지체장애자의 권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서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다.
배아 편집은 철저하게 실험실에 국한되지만 잉글랜드 북부 뉴캐슬대학의 과학자들은 건강한 아기를 낳기 위한 IVF 배아 유전자 변형으로 미래를 향한 거보를 내딛고 있다.

지난해 9월 멕시코에서 세계 최초로 3명의 유전자를 가진 아기가 태어났다. 부모는 미트콘드리아 질환으로 아이 둘을 잃고 4회 유산한 요르단인 부부였다. 미토콘드리아 기능마비로 생긴 유전 질환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 생성을 담당하는 세포 단위다. 이 아기의 경우 미토콘드리아 DNA의 돌연변이 즉 오류로 인해 제 기능을 못하게 됐다. 구체적인 정보는 많지 않지만 뉴욕시의 의료진이 시술을 맡았다. 배아 편집 기술과 관련된 법률 또는 규제 프레임워크를 갖춘 나라는 영국뿐이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배아를 합법적으로 변형해 여성의 자궁에 이식할 수 있다.

레이첼 스틸(26)은 20세까지 IVF 규제에 관해 거의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뉴캐슬의 노섬브리아대학에서 소아간호학을 공부한 그녀는 30세 전에 아기를 낳고 싶었지만 서두르진 않았다. 그녀가 겪은 건강 이상은 약간의 난청을 유발한 귀 감염이 전부였다. 종종 감염이 확대돼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고 짐작하는 편이었다. 의사들은 그녀의 청력이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5년 전 미토콘드리아 DNA에 유전적 돌연변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스틸이 간호사로 일하는 뉴캐슬 소재 로열빅토리아 병원의 의료진은 그녀의 어머니가 수 년 전 받은 신장에 이어 췌장 이식을 받으러 입원했을 때 처음 뭔가 이상하다고 의심했다. 그녀는 “엄마의 형제자매 다섯이 모두 당뇨와 약간의 난청이 있음을 알고는 의사들이 기이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스틸의 어머니에게 미토콘드리아 질환이 있음을 알아냈다. 미토콘드리아는 전적으로 엄마에게서 자녀에게로 대물림된다.

유전자 2만 개 중 대다수는 두 부모의 DNA가 담겨 있는 각 세포의 핵에 존재한다. 그러나 미토콘드리아는 나름의 유전자 집합을 갖고 있다.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는 약 37개뿐이며 어머니에게서만 물려받는다. 미토콘드리아 질환의 경중은 물려받은 37개 유전자의 돌연변이 비중에 달려 있다. 스틸의 경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 돌연변이 중 80%를 물려받았다. 스틸은 아직 건강하지만 당뇨병부터 청력상실 또는 극단적인 근육 퇴화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질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

스틸이 아기를 나을 경우 후세엔 더 심각한 질병이 나타날 수 있다. 스틸은 “어릴 때는 아기까지 영향을 받는다니 딱하다고만 생각했지 내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미토콘드리아 질환을 갖고 태어나는 아기는 약 200명 중 1명 꼴이다. 미국의 경우엔 그 비율이 더 낮아 해마다 태어나는 아기 1000명 당 대략 1명 꼴이다. 상당수가 수 시간 만에 숨지고, 나머지도 년 뒤부터 두뇌·심장 또는 신장 질환이 급격히 악화된다. 미토콘드리아 질환에는 치료법이 없다. 그런 질환이 있으면서 자녀를 갖기 원하는 여성의 경우 선택지는 임신 후 이상 있는 배아를 솎아내거나(예비 부모로선 가슴 아픈 방법이다) 또는 기증자 난자를 이용해 IVF 아기를 갖는 방법뿐이다.

스틸의 미래를 위해 가장 열심히 싸우는 사람은 미토콘드리아 질환 전문의로 35년 간 일해온 그녀의 담당의 더글라스 턴불(64) 경이다. 그는 뉴캐슬대학에 있는 실험실에서 “내 환자들 중에는 가족 모두를 포함해 20~30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한 집안에서 3대에 걸쳐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중 많은 가족이 미토콘드리아 병으로 자녀 3~4명을 잃는다. 내게는 그것이 가장 큰 자극제다.”

턴불 경은 2001년부터 뉴캐슬대학 발생학자(embryologist) 메리 허버트와 함께 미토콘드리아 대체요법이라는 새 IVF 기법을 연구해 왔다. 스틸 같은 여성들(영국 내에서만 2500명이 확인됐다)에게 엄마의 돌연변이가 없는 친자를 갖게 하는 방법이다. 이 기법은 달걀 노른자위 바꿔치기와 약간 비슷하다. 수정된 엄마 난자의 핵에는 아기가 물려받는 유전물질 중 약 99.8%가 담겨 있다. 건강한 난자 핵 즉 노른자위를 들어내 핵을 제거한 기증자 난자에 대신 이식한다. 미토콘드리아 질환이 없는 기증자는 자신의 건강한 미토콘드리아를 아기에게 물려주게 된다. 이렇게 하면 아기는 핵 DNA를 통해 부모의 생물학적 특성 대다수를 물려받으면서도 기증자의 건강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갖게 된다.

지난여름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턴불과 허버트는 자신들의 기법으로 결함 미토콘드리아 DNA의 대물림 위험을 5% 미만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예전의 유전위험 60~90%에서 크게 줄어든 수치다. 허버트 박사는 “눈 앞에서 자녀가 병에 시달리는 모습을 마냥 지켜보는 부모 입장에선 엄청나게 발전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뉴캐슬 대학 연구팀은 2012년 HFEA를 대상으로 자신들의 방법을 승인 받기 위한 로비를 시작했지만 강력한 반대에 부닥쳤다. 미토콘드리아 이식법은 유전자 변화를 다음 세대로 물려준다는 점에서 영국 의원들뿐 아니라 일부 과학자까지 예상치 못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카톨릭교 윤리학자들도 제3자 유전자의 배아이식이 “부모의 정체성을 희석시킨다”며 반대했다. 뉴캐슬대학 팀은 기증자가 익명으로 난자를 기부하며 아기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3의 부모로 간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불치병의 치료
인류의 장애를 완전히 제거한다는 사고에 거부감을 보이는 시각도 있다. 지체장애자의 권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서다. 왜소증으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생물윤리학자 톰 셰익스피어는 원칙적으로 미토콘드리아 기증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유전자 돌연변이의 ‘수정’이 반드시 지체장애자 커뮤니티가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는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일반적인 통념과는 반대로 대다수 장애인이 말하는 삶의 질은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그들의 우선과제는 차별·편견과의 싸움”이라고 썼다. 동료 생명윤리학자이자 청력을 상실한 연구원 재키 리치 스컬리는 모든 장애를 유전적 치료법으로 해결한다는 사고방식에 특히 거부감을 보이면서도 “대체로 아주 지독한 질병”인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의 수정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는 점은 시인한다.

뉴캐슬대학 과학자들은 이 같은 논리에 강력히 반대한다. 그들은 유전 질환을 가진 모든 엄마는 최선의 결과를 희망하거나, 의학적으로 건강한 아기를 선별하는 방안 중에 택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턴불 경은 “우리가 장애를 경시한다고 종종 비판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돌보며 평생을 보낸 난 사람들이 장애 자녀를 낳을지에 관한 결정권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미국에선 1990년대 뉴저지 주의 불임 클리닉 의사들이 이 방법의 초보적 버전을 실시했다. 미국·이스라엘·대만·이탈리아에서 최소 50명 이상의 아기가 이 방법으로 태어났다. 다수가 오늘날까지 건강하지만 FDA는 2001년 이 시술을 금지했다. 예기치 못한 기형과 이런 식으로 태어난 여성의 수정률 감소와 관련된 우려 때문이다. 그 뒤로 미국의 여러 연구소에서 턴불과 허버트처럼 임상 허가를 신청했지만 미국 규제당국에 퇴짜를 맞았다. FDA 대변인은 한 성명을 통해 “미토콘드리아 질환의 전달 방지를 위해 배아 유전자 변형을 활용하는 인간 대상 연구는 미국에선 2016 회계연도에는 실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영국 의회에서 이 기법에 관해 논쟁이 벌어진 5년 동안 스틸을 포함한 환자들(생식연령을 지난 여성들까지)은 의사당을 방문해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스틸은 “나는 100% 가족을 원한다”며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거기에 따르는 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과학자들이 첨단 생체의학 기법을 인간에게 적용하기 전의 실험에 대한 승인을 얻기 위해 여전히 싸움을 벌이는 동안 UCL의 면역학자 카심 박사는 더 많은 생명을 살려내고 있다.

리처즈가 증세 호전으로 퇴원한 몇 달 뒤인 2015년 크리스마스쯤 카심 의료팀은 또 다른 여아 대상의 두 번째 응급 치료 허가를 받아냈다. 아기는 생후 4주 만에 동일한 유형의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아기의 생후 16개월 째 리처즈가 받은 것과 같은 분량의 유전자 편집 킬러 세포를 투여했다(부모가 아기의 이름 공개를 원치 않았다). 몇 주 뒤 암이 사라졌다는 판정을 받았으며 지금 2년 4개월 째인 아이는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지금껏 아기 2명을 구한 카심 박사의 응급 치료는 지난해 6월 일반에 개방된 더 큰 실험의 일환이다. 병이 나은 두 아기와 같은 유형의 백혈병 어린이를 최대 10명까지 치료하게 된다. 그 치료법으로 이들 새 환자 10명도 낫게 될 경우 변형 유전자의 투여가 이 같은 암에서 화학요법까지 대체하는 일차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

카심 박사는 이 유전자 요법에 약간만 변화를 주면 다른 암, 심지어 탈라세미아 같은 유전병에까지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질환을 대상으로 유전자 요법 실험이 진행 중이다. 따라서 이르면 5년 뒤에는 갖가지 유전자 결함을 치료할 수 있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이 요법은 HIV 같은 불치병으로 간주되는 질병에도 사용될 수 있다. 미국 제약회사 생가모는 유전자 편집을 이용해 HIV 환자의 병에 대한 면역기능을 조작하는 임상시험을 한다.

한편 리처즈는 2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이 암 재발 없이 건강하다. 2015년 12월 GOS 병원을 위한 자선 모금행사에서 리처즈의 어머니는 다른 환우 아동의 부모들에게 실험용 ‘모르모트’ 치료를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시도를 하라”고 권장했다.

카심 박사의 치료법이 일반 용도로 승인될 경우 그것을 신호탄으로 비슷한 치료가 무수히 이어질 수 있다. 리처즈의 아버지가 응급처방 요청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리처즈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명이 주어졌다. 아기는 죽음의 문턱에까지 접근했다. 암의 경우엔 보통 희소식을 듣기 어렵다. 하지만 언젠가는 암 치료법이 등장할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40년 뒤 암 치료법의 등장을 향한 첫 걸음에 리처즈가 일조한 결과가 될지.”

- 매더미타 머지아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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