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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차를 알려면 '차경'을 읽어라

[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차를 알려면 '차경'을 읽어라

차의 모든 것을 수록한 바이블 … 차 산업 부흥의 계기 돼
[차경(茶經)]은 세계 최초의 차(茶) 백과사전이다. 유교와 불교의 경전(經典)처럼 차에 대한 모든 진리를 담아냈다는 자부심으로 육우(陸羽)는 3권 10절로 구성된 자신의 책에 ‘경(經)’을 스스로 붙였다. 육우의 필생 대업인 [차경]은 765년 초고가 나왔지만 14년에 걸쳐 내용을 보완해 779년 완성됐다. 차 문화와 차 산업발전을 선도한 육우는 차의 위대한 스승으로 당나라 최고의 명사가 됐지만 관직을 뒤로하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육우를 차선(茶仙)과 차성(茶聖)으로 존경하던 사람들은 육우가 세상을 떠나자 차신(茶神)으로 모셨다.
 1200여 년 전 출간돼 현재까지 필독서로
[차경] 해설본.
[차경]은 부모에게 버림받고 말더듬이였던 육우가 인류에게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차경]은 처음 출간된 당나라 때부터 오늘까지도 전 세계 차 학습자가 찾는 필수 텍스트다. 21살 때 차 전문서적을 쓰기로 결심한 육우는 풍찬노숙을 각오하고 차가 생산되는 지역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끼니를 거르고 찻물로 갈증과 허기를 달래가며 12년 동안 차와 연관된 32개 주를 찾아다니며 지역 촌로와 장인들을 만나 실습을 하면서 차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생생한 정보를 축적했다. 육우는 어릴 때 한 집에서 살며 소꿉동무로 지냈던 이야(李冶)의 고향 절강성(浙江省) 호주(湖州)에 정착해 집필에 전념했다. 육우가 47세 되던 해 [차경]은 마침내 세상에 나왔다.

[차경] 이전에도 차에 대한 기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설과 설화가 난무하는 과장된 내용과 단편적인 사실 정도였다. 차에 대한 무수한 전설과 방대한 역사 속에서 진위와 옥석을 가려내고 당대의 차 세계를 분석하고 차 문화를 창도한 육우는 [차경]의 첫 소절인 일지원(一之源, 차의 근원)에서 차를 남쪽의 진귀한 나무로 소개하며 외형적 특성과 차를 칭하는 다른 이름과 성장 환경을 소개했다. 일지원의 마지막 부분에서 차의 약성과 효능을 설명하며 인삼에 비유했다.

육우
[차경] 일지원 뒷부분을 해석하면 ‘차는 인삼처럼 피로회복에 좋다. 최고 품질 인삼은 산서성 상당(山西省上黨) 지역에서 나오고 중급은 백제와 신라 것이다. 하등급은 고려에서 온 것’이라고 기술돼 있다. 인삼 전문가가 아닌 육우의 명백한 오류가 이 글에 숨어 있다. 산서성 상당에서 나오는 삼은 두릅나무과 뿌리인 인삼이 아닌 초롱꽃과 뿌리인 만삼(蔓蔘)으로 당삼(黨參)이라고도 부른다. 약성은 인삼보다 약하고 비슷한 효능을 갖고 있다. 남북조 시대 양나라 관리였다가 도가에 귀의한 의약학자 도홍경(陶弘景:456~536년)이 저술한 [신농본초경집주(神農本草經集注)]와 [명의별록(名醫別錄)]에도 [차경]과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당나라 지식인 육우도 중화사상을 벗어나지 못해 중국산을 최고라고 했는지 무지의 소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삼과 당삼은 근본이 다르다.

[차경]에서 육우는 차의 효능과 ‘고려인삼’에 대해 비교했는데 당시는 고려가 건국하기 137년 전이었다. 타임머신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 없었던 육우가 미래를 내다본 것은 아니다. 고구려는 영토가 넓어지며 ‘맥족(貊族)의 국가’라는 뜻이 내포된 고구려 대신 이민족에 위화감을 주지 않는 포용정책으로 ‘대제국’이라는 의미로 5세기 중엽에 ‘고려(高麗)’로 국호를 바꿨다. 다만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서 왕건이 세운 고려와 혼동되지 않게 옛 고려를 초지일관 고구려라고 서술했다. 진수(陳壽, 233~297년)가 편찬한 중국역사서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도 고구려를 고려라고 기술했다. 이외에도 고구려를 고려라고 표기한 고대 중국의 책은 차고 넘친다.
 7000자로 응축한 실용학습서
차 대바구니
[차경] 두 번째 소절 이지구(二之具, 차 제조용 도구)는 차를 채취할 때 둘러매는 대바구니부터 찜통과 화덕까지 묘사했다. 삼지조(三之造, 제차와 품차)는 차를 채취하는 시기와 방법부터 완성까지의 과정과 차의 품질을 가늠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사지기(四之器, 음차용 도구일체), 오지자(五之煮, 차를 끓이는 복잡다단한 과정소개), 육지음(六之飮, 차를 마실 때 주의해야 할 9가지 주의사항), 칠지사(七之事, 차의 기원부터 설화와 역사 모음집), 팔지출(八之出, 전국 차 생산지역 소개), 구지략(九之略, 간소하게 마시는 예절)은 차 마실 때 필요한 당시의 기본 도구 24가지 중 상황에 따라 생략할 수 있는 경우와 방법을 제시했다. 규범과 허례허식보다 실용과 겸손함을 강조한 육우는 천자(天子)와 제후(諸侯) 같은 귀족과 벼슬아치들이 24가지 기본 도구 중 하나만 빠져도 차를 마시지 않는 풍토를 개탄했다.

[차경] 마지막 소절 십지도(十之圖, 괘도)는 앞에 언급한 1절부터 9절의 키워드를 하얀 비단에 큰 글씨로 도표처럼 만들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걸어놓고 수시로 보기를 강력하게 권했다. 육우는 26년 동안 공들여 체득해 7000자에 응축시킨 [차경]을 독자들이 읽고 이해하는 수준이 아닌 실용학습서로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책의 마지막 결구에 수시로 보고 익히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초롱꽃과 당삼
[차경]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을 원했던 육우의 바람대로 차 문화는 폐쇄적인 황실 귀족문화에서 대중적인 일반 문화로 확산되며 차 산업의 일대 부흥을 일으켰다. 약용으로 주로 사용되던 차가 일상생활로 다가왔다. 차 생산과 유통량이 급증하며 차는 소금 못지않은 고율의 과세 품목으로 부상했다. 유명 차 산지마다 황실공차를 헌공하는 황실다원이 지정되며 그 지역 백성들의 부담이 가중됐다. 육우가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도 있었지만 중국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차가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 잡는 순간이 왔다. 육우가 창도한 차 문화는 한반도와 일본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 오늘까지도 그 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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