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백의민족과 더플코트
[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백의민족과 더플코트
우리나라 사람을 ‘백의민족(白衣民族)’으로도 지칭한다. 흰색 옷을 즐겨 입어서 생겨난 명칭으로 순수한 백색이 주는 낭만적 느낌이 든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로 평민들이 입던 무명천을 물들일 염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오늘날 평상복은 물론 등산복이나 운동복조차도 다채로운 색깔로 치장할 수 있는 배경은 근대 이후 발전한 화학염료 덕분이다.
통상 보라색이 어울리는 사람에게 귀티가 난다고 표현한다. 색깔 자체의 특성도 있지만 보라색 염료와 연관된 기술적 배경이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보라색은 왕을 비롯한 최고위 관직만이 입는 고귀한 신분의 상징이었다. 로마의 개선장군이 입는 망토와 로마에서 시작된 가톨릭 주교들의 공식 복장이 보라색인 연원이다. 고대 서양에서는 지중해산 조개 종류에서 채취하는 보라색 염료가 워낙 귀해 보라색 옷은 자연히 최고위직만 입을 수 있었던 선망의 대상이었다. 점차 공급이 늘어나고 가격이 떨어지면서 다른 계층에서도 보라색 옷을 입기 시작하고, 차츰 부유한 평민들도 보라색을 입으면서 유행이 생겨난다. 이와 달리 전통적으로 보라색 옷을 입던 계층에서는 평민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다른 디자인과 소재, 나아가 다른 색깔의 옷을 입기 시작한다. 이것이 유행이 생겨나고 확산되는 기본 패턴이다. 상류층의 일상생활 스타일을 중간층이 모방하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면, 상류층은 다시 차별화하기 위해 색상·디자인·소재에서 다른 방식을 만들어낸다. 즉 ‘위에서 도망가면 아래에서 따라가는 것’이 유행의 메커니즘이다. 유행의 역동성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모방에서 발생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분제 사회에서 의복은 철저히 소속된 신분에 따르도록 법규와 제도가 만들어진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옷차림만 보면 곧바로 신분을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 양반은 갓을 쓰고 평민은 패랭이(초립)를 썼다. 평민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갓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근대세계에서 신분제가 해체되면서 복식도 자유로워졌고 취향에 따라 어떤 옷이라도 입는 시대로 변화했다. 과거처럼 신분으로 구분할 수 없게 되자 일반인은 접근하기 어려운 높은 가격으로 구분하는 이른바 명품 브랜드가 생겨났다. 하지만 유행의 패턴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근대 이전에는 왕가와 귀족층이 패션리더였다면, 지금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가 주도층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남성 정장인 수트와 타이는 서양 근대의 군복에서 출발했다. 수트 상의의 뒤트임은 말을 타기 편하게 만든 것이고 주머니는 개인 군용장비를 넣기 위한 용도였다. 남성복의 핵심인 넥타이도 군대에서 유래했다. 1688년 터키전투에서 승리한 크로아티아 부대가 파리에서 거행한 개선식을 참관한 루이 14세는 병사들의 목에 두른 밝은 색 수건에 매혹돼 자신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패션리더인 왕의 목수건이 귀족을 비롯해 일반인 사이에서도 유행하면서 오늘날 넥타이로 발전했다.
근대세계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나라는 영국으로 법률과 제도에서 철도와 자동차, 나아가 축구·골프 등의 스포츠와 복식에서도 현대의 기준을 형성한다. 특히 20세기 초반 왕세자였던 윈저공(Duke of Windsor, 1894~1972)은 오늘날 남성복 스타일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후일 왕위에 올라 에드워드 8세가 되었다가 미국 국적 이혼녀인 심슨 부인과 사랑에 빠져 왕실 규정에 따라 왕위를 포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남이고 사교술이 좋아서 최고의 인기인이었던 윈저공의 취향을 당시 상류층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따르고 일반인들에게도 퍼졌다. 그는 옷을 잘 입는 차원이 아니라 디자인을 스스로 고안하는 수준이었다. 넥타이 매듭을 크게 매는 윈저노트(Windsor Knot)를 고안하고, 이에 어울리는 칼라가 넓은 윈저칼라셔츠(Windsor Collar Shirt)를 만들었다. 단정한 느낌의 폭이 좁은 탭칼라(Tap Collar) 셔츠도 창안한다. 당시까지 하층민들의 생활복이었던 모직 스웨터는 윈저공이 1922년 세인트앤드루스 골프클럽에서 처음으로 입기 시작하면서 신사들의 평상복이 되었고, 이제는 세계인의 생활복으로 발전했다. 토머스 버버리의 가게에서 만든 트렌치 코트도 윈저공이 ‘버버리’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브랜드 명칭이 일반명사가 됐다.
대개 유행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지만 때때로 아래에서 위로 퍼지기도 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힙합패션이 대표적이다. 미국 교도소에서는 사고방지를 위해 죄수들에게 허리띠를 주지 않았다. 허리띠로 목을 매달 수도 있고, 꼬아서 탈옥도구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죄수들은 어쩔 수 없이 바지를 엉덩이에 걸치고 다녔고, 출소해서도 허리띠 없이 엉거주춤하게 바지를 입고 다녔다. 이러한 모습을 당시 빈민가의 10대 청소년들이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 스타일로 발전했고 1990년대의 힙합열풍을 타고 세계적 유행이 됐다.
겨울철에 흔히 입는 더플코트(Duffle coat)도 하층민인 북해 어부의 작업복에서 출발해 신사복 정장으로 올라선 아이템이다. 15세기 벨기에 앤트워프 부근 소도시인 더펠(Duffel)에서는 직조와 봉제가 발달했다. 더펠산 두터운 모직물을 사용해 북해 어부들의 작업복으로 만든 외투가 유명했다. 추운 바다에서 일하는 어부들에게 필요한 큼직한 모자가 달려있고, 장갑 낀 손으로도 옷을 여밀 수 있게 단추가 아닌 토글(동물뼈로 만들어 가죽끈에 거는 방식)을 달았다. 주머니가 커서 작업도구를 넣고 꺼내기 편한 작업복은 인기를 끌면서 ‘더플코트’로 불렸다. 영국으로도 전파돼 귀족들의 야외 활동복으로 애용되다가 1차 대전에는 영국 해군 수병용 작업복이 됐다. 2차 대전에서 영국군 최고지휘관 몽고메리 원수가 즐겨 입으면서 장교들도 따라 입기 시작한다. 전쟁이 끝나고 군수품으로 보관하던 막대한 군용 더플코트가 민간에게 풀리면서 1950~60년대 크게 유행한다. 모자가 있으면서 신사복 정장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옷이 더플코트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깔, 옷에서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커지고 소멸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유행은 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때때로 분수처럼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기도 한다. 사회·경제적 질서변화를 촉발하는 혁신도 마찬가지로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다가 때때로 후발이 선발을 압도하는 경우가 생겨나면서 판도가 변하고 산업이 발전한다.
※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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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보라색이 어울리는 사람에게 귀티가 난다고 표현한다. 색깔 자체의 특성도 있지만 보라색 염료와 연관된 기술적 배경이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보라색은 왕을 비롯한 최고위 관직만이 입는 고귀한 신분의 상징이었다. 로마의 개선장군이 입는 망토와 로마에서 시작된 가톨릭 주교들의 공식 복장이 보라색인 연원이다. 고대 서양에서는 지중해산 조개 종류에서 채취하는 보라색 염료가 워낙 귀해 보라색 옷은 자연히 최고위직만 입을 수 있었던 선망의 대상이었다. 점차 공급이 늘어나고 가격이 떨어지면서 다른 계층에서도 보라색 옷을 입기 시작하고, 차츰 부유한 평민들도 보라색을 입으면서 유행이 생겨난다. 이와 달리 전통적으로 보라색 옷을 입던 계층에서는 평민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다른 디자인과 소재, 나아가 다른 색깔의 옷을 입기 시작한다. 이것이 유행이 생겨나고 확산되는 기본 패턴이다. 상류층의 일상생활 스타일을 중간층이 모방하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면, 상류층은 다시 차별화하기 위해 색상·디자인·소재에서 다른 방식을 만들어낸다. 즉 ‘위에서 도망가면 아래에서 따라가는 것’이 유행의 메커니즘이다. 유행의 역동성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모방에서 발생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분제 사회에서 의복은 철저히 소속된 신분에 따르도록 법규와 제도가 만들어진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옷차림만 보면 곧바로 신분을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 양반은 갓을 쓰고 평민은 패랭이(초립)를 썼다. 평민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갓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근대세계에서 신분제가 해체되면서 복식도 자유로워졌고 취향에 따라 어떤 옷이라도 입는 시대로 변화했다. 과거처럼 신분으로 구분할 수 없게 되자 일반인은 접근하기 어려운 높은 가격으로 구분하는 이른바 명품 브랜드가 생겨났다. 하지만 유행의 패턴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근대 이전에는 왕가와 귀족층이 패션리더였다면, 지금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가 주도층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남성 정장인 수트와 타이는 서양 근대의 군복에서 출발했다. 수트 상의의 뒤트임은 말을 타기 편하게 만든 것이고 주머니는 개인 군용장비를 넣기 위한 용도였다. 남성복의 핵심인 넥타이도 군대에서 유래했다. 1688년 터키전투에서 승리한 크로아티아 부대가 파리에서 거행한 개선식을 참관한 루이 14세는 병사들의 목에 두른 밝은 색 수건에 매혹돼 자신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패션리더인 왕의 목수건이 귀족을 비롯해 일반인 사이에서도 유행하면서 오늘날 넥타이로 발전했다.
근대세계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나라는 영국으로 법률과 제도에서 철도와 자동차, 나아가 축구·골프 등의 스포츠와 복식에서도 현대의 기준을 형성한다. 특히 20세기 초반 왕세자였던 윈저공(Duke of Windsor, 1894~1972)은 오늘날 남성복 스타일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후일 왕위에 올라 에드워드 8세가 되었다가 미국 국적 이혼녀인 심슨 부인과 사랑에 빠져 왕실 규정에 따라 왕위를 포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남이고 사교술이 좋아서 최고의 인기인이었던 윈저공의 취향을 당시 상류층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따르고 일반인들에게도 퍼졌다. 그는 옷을 잘 입는 차원이 아니라 디자인을 스스로 고안하는 수준이었다. 넥타이 매듭을 크게 매는 윈저노트(Windsor Knot)를 고안하고, 이에 어울리는 칼라가 넓은 윈저칼라셔츠(Windsor Collar Shirt)를 만들었다. 단정한 느낌의 폭이 좁은 탭칼라(Tap Collar) 셔츠도 창안한다. 당시까지 하층민들의 생활복이었던 모직 스웨터는 윈저공이 1922년 세인트앤드루스 골프클럽에서 처음으로 입기 시작하면서 신사들의 평상복이 되었고, 이제는 세계인의 생활복으로 발전했다. 토머스 버버리의 가게에서 만든 트렌치 코트도 윈저공이 ‘버버리’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브랜드 명칭이 일반명사가 됐다.
대개 유행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지만 때때로 아래에서 위로 퍼지기도 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힙합패션이 대표적이다. 미국 교도소에서는 사고방지를 위해 죄수들에게 허리띠를 주지 않았다. 허리띠로 목을 매달 수도 있고, 꼬아서 탈옥도구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죄수들은 어쩔 수 없이 바지를 엉덩이에 걸치고 다녔고, 출소해서도 허리띠 없이 엉거주춤하게 바지를 입고 다녔다. 이러한 모습을 당시 빈민가의 10대 청소년들이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 스타일로 발전했고 1990년대의 힙합열풍을 타고 세계적 유행이 됐다.
겨울철에 흔히 입는 더플코트(Duffle coat)도 하층민인 북해 어부의 작업복에서 출발해 신사복 정장으로 올라선 아이템이다. 15세기 벨기에 앤트워프 부근 소도시인 더펠(Duffel)에서는 직조와 봉제가 발달했다. 더펠산 두터운 모직물을 사용해 북해 어부들의 작업복으로 만든 외투가 유명했다. 추운 바다에서 일하는 어부들에게 필요한 큼직한 모자가 달려있고, 장갑 낀 손으로도 옷을 여밀 수 있게 단추가 아닌 토글(동물뼈로 만들어 가죽끈에 거는 방식)을 달았다. 주머니가 커서 작업도구를 넣고 꺼내기 편한 작업복은 인기를 끌면서 ‘더플코트’로 불렸다. 영국으로도 전파돼 귀족들의 야외 활동복으로 애용되다가 1차 대전에는 영국 해군 수병용 작업복이 됐다. 2차 대전에서 영국군 최고지휘관 몽고메리 원수가 즐겨 입으면서 장교들도 따라 입기 시작한다. 전쟁이 끝나고 군수품으로 보관하던 막대한 군용 더플코트가 민간에게 풀리면서 1950~60년대 크게 유행한다. 모자가 있으면서 신사복 정장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옷이 더플코트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깔, 옷에서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커지고 소멸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유행은 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때때로 분수처럼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기도 한다. 사회·경제적 질서변화를 촉발하는 혁신도 마찬가지로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다가 때때로 후발이 선발을 압도하는 경우가 생겨나면서 판도가 변하고 산업이 발전한다.
※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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