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생각하는 ‘미투’ 운동과 성추행 피해자 경험 세계를 휩쓰는 ‘미투’ 운동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평생 해온 여성운동의 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사진:WIKIMEDIA COMMONS글로리아 스타이넘(83)은 세계 여성운동의 대모로 불린다. 그녀는 1963년 플레이보이 클럽의 바니걸로 위장취업해 착취와 매춘에 시달리던 여종업원의 실상을 폭로하는 르포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72년엔 ‘미즈’ 잡지를 창간했다. 창간호 표지는 가재도구가 하나씩 들려 있는 8개의 팔을 가졌고 뱃속엔 아기가 들어 있는 주부 ‘여신’이 눈물을 흘리는 그림이었다. 스타 이넘은 그 후 여성행동연맹(WAA), 미국여성정치회의(NWPC), 여성미디어센터(WMC) 등 많은 기관을 설립했다. 그녀는 여성운동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45년 동안 페미니즘의 가장 웅변적이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였다.
특히 미국에서 시작돼 세계를 휩쓸고 있는 ‘미투’ 운동은 여러 면에서 스타이넘이 평생에 걸쳐 펼쳐온 여성운동의 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뉴스위크는 그녀에게서 ‘미투’ 운동의 부상과 그 놀라운 계기를 구체적인 변화로 바꾸는 방법에 관해 들어봤다.
‘미투’ 운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까지 한번도 목격하지 못했던 수준의 행동주의 운동이 지금 펼쳐지고 있다. 어디를 가든 이전엔 투표도 하지 않은 사람이 공직에 출마하고, 자신이 사는 지역의 의원이 누군지도 모르던 사람이 지금은 그들의 사무실 밖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치광이를 대통령으로 갖는 위험을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반면교사로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은 인정한다. 고맙게도 그는 선거나 정부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살아가던 많은 사람의 정치적인 의식을 일깨웠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황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희롱은 처음엔 적절한 표현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경험이었다. 그러다가 표현은 있되 관련 법은 없었던 것으로 진화했다. 그 다음 관련 법은 있지만 국민적 의식은 없었던 것으로 변했다. 그런데 지금은 처음으로 사람들이 믿는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됐다. 계급·인종과 뒤얽힌 남성 지배 시스템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권력이 섹스를 얼마나 많이 왜곡시켰는지 우리는 이제 인식하기 시작했다.
봇물처럼 쏟아진 성폭력·성희롱 폭로를 보면서 자신도 과거에 당한 경험을 다시 생각하게 됐는가?
내가 ‘미즈’ 잡지를 창간하기 전엔 사무실에서 일한 적이 없었던 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지금 깨닫고 있다. 난 늘 집에서 기사를 써서 선데이 뉴욕타임스에 보냈다. 가끔씩 기사를 제출할 때마다 편집자가 나에게 ‘오후에 호텔방에 갈래? 아니면 내 편지를 부쳐주는 심부름을 할래?’라며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서른 살 때 어느 사무실에서 한 남자 지인과 소파에 앉아 있었던 일이 기억난다. 우리는 제3의 남자 사무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앉아 기다리던 남자가 팔을 뻗어 내 손목을 잡고는 키스하려 했다. 난 그의 뺨을 깨물었다. 그의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내가 생각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게 나의 미덕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난 성장 배경 때문에 본능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내 본능은 교육으로 억제되지 않았다.
그 후 그 남자는 “여기 봐, 흉터가 생겼잖아”라고 농담하며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그 일로 나는 깨달은 바가 있었다. 남을 기쁘게 해주고 복종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는 숨 막히는 문화적 메시지가 없다면 우리는 내가 키우는 고양이처럼 본능을 그래도 노출한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 고양이는 본능을 억제하도록 교육 받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이든 참지 않고 그대로 표출한다. 지난해 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에 반대하는 시위인 ‘여성들의 행진’에 참가한 스타이넘 (가운데 오른쪽). / 사진:AP-NEWSIS 아이들에게 그런 자신감을 어떻게 불어넣을 수 있을까?
너무 늦어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요즘 전 세계의 아이들은 ‘그건 공정하지 않아요!’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아요!’라고 말한다. 그런 면이 아주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그런 면을 가장 효과적으로 장려할 수 있다. 그들이 무엇에 관심 있는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들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격려하라. 과도한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을 지원해주는 공동체를 만들어줘야 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여자아이들은 사회적으로 독립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의존적이 된다. ‘그걸 하고 싶어? 그럼 그렇게 해’라고 말해줘야 한다.
배운 것 중에서 어떤 점이 자신의 행동을 바꾸도록 했는가?
조직을 만들어 이끄는 사람이 창의적인 것은 각 상황에 따라 생길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하게 하고 종교 등에 의해 고통당하는 편견의 예를 끄집어냄으로써 서로 이해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적어도 고함지르지 않음으로써 장려하고 싶은 행동을 모범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려는 여성으로서 우리는 때로 그런 경향의 문제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뭔가를 하기 위해 500명이 주어졌을 때 그중 100명이 반대한다면 여성들은 나머지 400명으로 일을 진행하기보다 반대하는 100명을 설득하려 한다. 때로는 나 자신도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다시 설명해줄게’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냥 ‘알았다’고 말하며 설득을 그만두고 찬성하는 사람들만 데리고 함께 행동하는 게 바람직하다. 스타이넘이 1972년 발행한 잡지 ‘미즈’ 창간호 표지는 당시 여성의 처지를 상징했다. 젊은 여성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말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몰두할 정도로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라. 그 다음 그런 일에 도움을 줄 사람을 찾아라. 자신을 도와 주고 원하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며 그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하라. 반드시 주어진 것만 해야 한다는 걱정을 떨쳐버려라.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쓰레기를 수거하는 남자에게서 배운 것이 오랫동안 나의 가장 좋은 정치적 조언이 됐다. 그는 모르는 게 없었다. 시 정책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할지 말해줄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단순히 균형을 따르는 것이 최고다. 다른 사람보다 권력이 더 많은 위치에 있다면 자신이 말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권력이 적은 위치에 있다면 듣는 만큼 자신이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이 민주주의에서 필요한 아주 간단한 균형의 원칙이다.
- 애비게일 존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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