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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장르를 무덤에서 끌어내다

좀비 장르를 무덤에서 끌어내다

캐나다 로뱅 오베르 감독의 ‘래버너스’, 생사 뛰어넘은 존재론적 공포 다룬 독창적이고 감동적인 작품넷플릭스는 ‘부산행’ 등 최근 몇 년 동안 제작된 최고의 좀비 영화들을 제공해 왔다. 지난 3월 5일엔 캐나다에서 만든 프랑스어 좀비 영화 ‘래버너스’(프랑스어 제목 ‘Les Affamés’)를 서비스 목록에 추가했다. 이 작품은 매우 독창적이고 감동적이어서 좀비 장르를 무덤에서 끌어낸 듯한 느낌마저 준다.

돌이켜 보면 21세기 초는 위대한 좀비 영화의 시대였다. 우선 영국에서 두 편의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이 나왔다.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2002)와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다. 두 작품 모두 좀비 영화 장르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좀비 영화에 보내는 연애편지 같은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잭 스나이더 감독이 로메로의 걸작 ‘새벽의 저주’ 리메이크작으로 흥행에 성공을 거둔 2004년에 발표됐다.

그때부터 좀비 영화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좀비와 뱀파이어 영화를 섞어놓은 듯한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2007)부터 좀비 코미디 ‘폰티풀’(2008)과 ‘좀비랜드’(2009)까지.

하지만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좀비물의 인기는 2010년 AMC의 드라마 ‘워킹 데드’로 정점을 찍은 뒤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2013년 맥스 브룩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월드워 Z’는 몹시 지루했다. 좀비물 특유의 유머가 죽어버린 듯했다.어떻게 하면 좀비 이야기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제작에 참여하는 게 한 방법이다. 예전에 로메로 감독이 그랬듯이 특정 문화에 뿌리를 둔 더 깊은 공포심을 이용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로메로 감독의 선구적인 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은 냉전의 탐구부터 1960년대 미국의 인종 관계에 대한 논평까지 다양한 메시지를 담았다. 10년 뒤 나온 로메로 감독의 오리지널 ‘새벽의 저주’는 워터게이트 이후의 미국 사회와 통제불능의 상업주의를 꼬집었다.

로메로 감독은 2010년 배니티페어와의 인터뷰에서 “내 이야기는 인간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또는 반응하지 않는지, 혹은 얼마나 어리석게 반응하는지를 들여다본다. 내 영화의 초점은 좀비가 아니라 인간이다.”

캐나다 퀘벡의 프랑스어권 작가 겸 감독인 로뱅 오베르는 ‘래버너스’에 로메로 감독의 이런 전통을 적용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요소는 인간을 잡아먹는 좀비의 존재가 아니다. 좀비가 매우 비논리적이고 이상한 그들만의 문화를 구축한다는 사실을 주인공들이 깨달았을 때 극도의 공포감이 몰려온다.

‘래버너스’는 생사를 뛰어넘은 존재론적 공포를 다룸으로써 성공했다. 영화에서 퀘벡의 농장과 낙농장에 사는 주민은 끊임없이 문화말살의 위협을 받는다. 이런 상황은 젊은이까지도 일종의 방어적 자부심으로 무장하게 만든다. 실제로 퀘벡의 프랑스어권 주민 대다수가 여전히 캐나다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주장한다. 올 들어 독립을 위한 정치운동이 새로운 힘을 얻기 시작했다.캐나다 일간지 글로브 앤 메일은 지난해 10월 ‘래버너스’가 각종 영화제에서 공개되기 시작하자 이렇게 썼다. ‘퀘벡에 이문화를 가진 종족이 몰려와 지배하려고 드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그들이 저항할 수 없는 방법으로 주민을 자신들과 같은 존재로 만들려고 한다면 어떨까? 퀘벡의 프랑스어권 주민에게 그보다 더 끔찍한 악몽은 없을 것이다.’

이런 문화적 피해망상이 ‘래버너스’에 풍요로운 서브텍스트(subtext,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숨은 맥락)를 제공한다. 주인공 중 한 명인 타니아(모니아 초크리)는 등에 아코디언을 메고 다니며 퀘벡 지도로 열쇠에 묻은 피를 닦아낸다. 프랑스어를 쓰는 주인공들은 좀비들이 쌓은 이상한 탑을 ‘칼리스’(성찬을 가리키는 신성모독적 표현)라는 주문으로 파괴한다. 좀비는 이들에게 공포스러운 존재일 뿐 아니라 자신들이 사는 퀘벡 땅에 대한 모욕이다.

영화의 어느 시점에 가면 좀비의 지성에 관한 의구심에 지친 인간 캐릭터들이 그 문제를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이 대목과 관련해 글로브 앤 메일은 ‘침입자들에 관해 너무 많이 아는 것은 위험하다’고 썼다. ‘자신들의 본성을 잃고 그들과 더 비슷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좀비에 맞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살아온 평화로운 땅을 떠날 것인지를 고민한다. 퀘벡의 프랑스어권 주민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만한 두려운 선택이다. 하지만 이것은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류의 공포 영화가 제작진의 문화적 배경과 상관없이 여러 문화에서 두루 통하는 이유다.

- 에밀리 고데트 뉴스위크 기자

※ [뉴스위크 한국판 2018년 4월 9일자에 실린 기사를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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