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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이 갈수록 많아질까?

왜 일이 갈수록 많아질까?

근사한 사무실에 근무하면 보수 좋고 인식도 좋지만 사회에 조금도 보탬이 되지 않아
지난해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0%가 일에 의욕이 없다고 답했다. / 사진:GETTY IMAGES BANK
호아킨 가르시아라는 이름의 스페인 공무원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2010년까지 최소 6년 동안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갔다.

가르시아는 1996년부터 카디스의 지역 수도국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지만 경영진이 새로 부임하면서 한직으로 밀려났다. 환멸과 좌절을 느낀 가르시아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았다. 한쪽 부서에는 저쪽 부서의 지시를 받는다고 말하고 저쪽에 가서는 반대로 말했다. 그뒤 출근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바뤼흐 스피노자의 철학 서적을 파고들었다. 그의 사기극은 부시장이 가르시아에게 장기근속 훈장을 수여하려다가 소속 부서에 그의 소재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에야 들통났다.

가르시아의 이야기는 2016년 그가 재판에 회부되면서 항간의 화제가 됐다. 그러나 거기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얼마나 불로소득을 올렸느냐보다(벌금을 납부하고도 약 3만1000달러) 그것이 현대 직업의 세계에 관해 무엇을 시사하느냐는 점이다. 직업에는 원래 사회에 필요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내버려 두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고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일자리였다.

데이비드 그래버는 신저 ‘허튼 수작 일자리 이론(Bullshit Jobs: A Theory, 사이먼&슈스터 펴냄)’에서그런 일자리가 예외적이기는커녕 요즘엔 현대 생활의 보편적인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경제가 진화하고 기술이 더 고도화되면서 실상 사람들의 일이 줄어야 한다. 그러나 오히려 ‘경제가 불합리를 낳는 거대한 엔진이 됐다’고 그래버는 썼다. 갈수록 할 일은 줄어드는데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은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무의미한 일, 그가 말하는 이른바 ‘허튼 수작 일자리(bullshit jobs)’가 확산된다고 그래버는 말한다. 이는 보수가 형편 없고 천하게 여겨지거나 스트레스가 많지만 궁극적으로 사회에 필수적인 ‘엿 같은 일자리(shit jobs, 예컨대 쓰레기 수거나 사회복지 등)’와는 다르다. ‘허튼 수작 일자리’는 종종 하버드대학부터 할리우드까지 근사한 사무실에 근무하면 보수 좋고 인식도 좋지만 사회에 조금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그래버는 ‘사라진다 해도 사회가 매끄럽게 굴러가는 일자리’라고 썼다.현재 런던정경대학 인류학 교수인 그래버는 2011년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운동 중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그 운동의 유명한 ‘우리가 99%’ 슬로건의 창안자로 널리 알려졌다. 그의 신저는 2013년에 쓴 에세이 ‘허튼 수작 일자리 현상에 관해’를 보완해 확대한 것이다. 에세이가 엄청난 인기를 끌어 그것을 게재한 웹사이트가 다운되고 10여개 언어로 번역될 정도였다. 그뒤 그래버는 무의미한 일자리의 체험 사례 수백 건(이 색다르고 새로운 허튼 수작의 세계에서 전해진 웃기면서 분통 터지는 메시지들)이 그래버에게 쇄도했으며 그중 다수를 책에 담았다.

요즘 인간은 일이 줄기는커녕 언제나 네트워크에 연결돼 끊임없이 감시의 위협을 받으며 더 열심히 일하면서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됐다. / 사진:GETTY IMAGES BANK
분명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지난해 갤럽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0%가 일에 의욕이 없다고 답했다. 일본에선 그 비율이 무려 94%에 달한다. 드물게 의미 있는 일을 찾게 되더라도 종종 희생이 따른다. 그래버는 여러 건의 연구를 인용해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의 일이 남들에게 더 명백하게 혜택을 줄수록 보상을 받을 가능성은 떨어진다’고 썼다. (그래버가 언급하지 않은 또 다른 일반원칙도 마찬가지로 역설적이다. ‘어떤 사람의 일이 남들에게 주는 혜택이 적을수록 근무시간이 더 길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당초 의도하지 않은 결과다. 과거 경제학자와 철학자들은 기계가 근로자를 대체함에 따라 일하는 시간이 줄어 사람들이 각자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는 나름 논리적인 가정을 제시했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로 손꼽히는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2030년쯤에는 기술발전으로 “3시간 교대근무나 주당 15시간 근무로 경제적 행복의 종착지”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상상했다. 유일한 숙제는 인간이 시간 보낼 방법을 새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한 세기 가까이 흐른 지금 기계 덕분에 인간은 언제나 네트워크에 연결돼 끊임없이 감시의 위협을 받으며 분명 더 열심히 일하면서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됐다.

온갖 경이적인 디지털 혁명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특히 미국의 근로시간은 석판에 새겨놓은 십계명처럼 변함이 없다. 평균적인 미국 근로자는 다른 어떤 선진공업국, 특히 일벌레로 악명 높은 일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한다. 지난해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고용전망 보고서 내용이다. 미국의 근로시간(연간 1783시간)을 독일 수준(1363시간)으로 줄일 경우 미국 근로자는 연간 2개월의 휴가를 추가로 얻는 셈이 된다.

이런 점에서 스페인 공무원 가르시아의 사기극은 또 다른 기만술에 대한 반응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자신과 사회가 살아남으려면 모두가 주당 5일씩 풀타임으로 일해야 한다는 이론의 여지 없는 원칙이다. 할 일이 줄어든 세상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내기보다 단지 일 자체를 위해 사람들에게 일을 강요한다고 그래버는 말한다. 그는 “우리는 일을 바탕으로 하는 문명이 됐다”며 “ ‘생산적인’ 일도 아니고 일 자체가 목적이자 의미가 된다”고 썼다.

모두가 일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필시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장기 추적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 우울증·스트레스·불안 같은 정신건강 문제가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트렌드의 원인은 복잡하지만 그리고 책의 몇 군데에서 그래버가 필시 너무 선뜻 우리의 직업 생활 탓으로 돌리지만 일이 그 한 가지 요인이 아니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근로 세계의 핵심에는 잔인한 모순이 자리잡고 있다. 사회가 우리에게 일에서 자존감과 자부심을 찾도록 장려하는 동시에 사회 구성원의 태반이 일을 혐오하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이다. 그래버는 ‘우리의 일에 사회적 효용이나 사회적 가치가 결여됐다는 말 못할 믿음 아래 노동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은 심리적·사회적·정치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우리의 집단적인 영혼에 상흔을 남긴다’고 썼다. 그러나 과로는 더 많은 노동자를 낳는다(스트레스와 시간 압박을 받는 1차 근로집단에 봉사하는 정신과의사로부터 음식 배달원에 이르는 더 많은 2차 근로집단). 따라서 그 불합리한 순환은 계속된다.

그래버에게 의심할 바 없이 급진주의자라는 평판이 따른다는 점에서 거부감을 갖는 독자도 있을 수 있다. 그의 약간 편의주의적인 방법론에 못마땅한 사람도 필시 있을 듯하다. 그리고 통계적인 분석을 더 많이 인용했다면 분명 더 믿음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제기하는 문제는 분명 당파성을 초월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영위하는 삶, 그리고 우리가 창조한 세상에 관한 문제다. 그래버는 해결책을 논하지 않고 이 같은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근로의 세계에 문제가 있으며 그것을 둘러싼 침묵의 수용 때문에 더욱더 시급한 문제라는 사실이다.

그래버는 무엇이 해결책이 아닌지는 분명히 적시한다. 바로 자동화 더 넓게 말해 기술혁신이다. 그런 기술적 발전은 수세기 전부터 계속돼 왔다. 필시 기계가 근로자를 대체하는 현재의 속도는 어떤 컴퓨터 공학 천재보다 현대 작업장의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인 리듬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자동화 물결은 인간이 무엇으로 전락했는지를 반영할 뿐이다. 상상력의 정수를 성취할 수 있는 존재는 분명 아니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일이 없는 세상에 관한 창조적인 사고라고 그래버는 말한다. 그리고 ‘허튼 수작 일자리’에서 이런 논의의 조건을 성공적으로 설정한다. 그는 ‘지금의 우리 모습은 뭔가 대단히 잘못 됐다’고 썼다. 안타깝게도 그것을 바로잡으려면 많은 공을 들여야 할 듯하다.

- 새뮤얼 얼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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