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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옥죄는 크렘린

표현의 자유 옥죄는 크렘린

러시아 소셜미디어에 멋모르고 이미지 게시했다가 극단주의자·테리리스트 명단에 올라 감옥에 가는 사람 적지 않아
러시아 반체제 운동가들은 센터 E 요원을 ‘오흐란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제정 러시아 시대 비밀경찰을 가리키던 표현이다. / 사진:ILLUSTRATION BY ALEX FINE
지난해 7월 어느 날 아침 6시 직전 러시아 중부 시베리아의 작은 도시 바르나울에 있는 다니일 마르킨의 아파트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영화를 공부하는 18세 학생이었던 마르킨은 왜 경찰이 자신의 집을 급습했는지 알 수 없었다. 경찰도 처음엔 그 이유를 설명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들은 무조건 마르킨의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전자 기기를 압수하고 그를 ‘극단주의 대응센터(센터 E)’ 현지 사무실로 데려갔다. 막강한 러시아 내무부에 소속된 경찰의 한 부서다.

마르킨은 센터 E에 가서야 요원들로부터 러시아판 페이스북으로 불리는 SNS ‘브콘탁테(VK)’ 계정에 자신이 저장했거나 재게시한 밈(소셜미디어에서 재미난 말을 적어 넣어서 다시 포스팅한 그림이나 사진)이 러시아 정교회를 혐오하는 표현을 담고 있어 극단주의 행위 혐의로 강제 구인됐다고 통보 받았다. 가장 오래된 이미지는 그가 13세였던 2013년 저장된 것이었다. 마르킨은 그 이미지를 직접 제작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온라인에 널리 유포된 이미지였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 유죄로 판명되면 최고 5년 징역형을 선고 받을 수 있다.

마르킨을 이런 곤경에 처하도록 만든 온라인 이미지가 실제로 일부 러시아 정교회 신자를 불쾌하게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르킨의 변호사 알렉산드르 예레멘코는 그 이미지를 혐오 표현으로 분류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한 이미지는 인기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 존 스노의 모습에다 후광을 넣고 ‘존 스노가 부활했다! 그가 진실로 부활했다!’는 글을 달았다. 드라마에서 스노가 기적처럼 다시 살아난 것을 가리키는 그 글은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이 부활절에 서로 인사할 때 사용하는 표현의 패러디였다. 다른 이미지는 천사 세 명이 물파이프로 마리화나를 피우는 그림이었다. 마르킨은 수사관들이 자신의 VK 계정에 담긴 이미지를 스크롤하다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고 말했다.

마르킨의 재판은 지난 6월 시작됐다. 그는 “그들이 나의 혐의를 알려줬을 때 너무 터무니없어 말문이 막혔다”고 돌이켰다. 러시아 정부는 마르킨을 기소한 데 이어 네오나치와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지지자들이 포함된 ‘극단주의·테러리스트’ 명단에 그를 올렸다. 무엇보다 그 명단에 오르면 더는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으며 자신의 은행 계좌에서 한 달에 1만 루블(약 17만원) 이상은 인출할 수 없다. 마르킨은 “실제로 본 사람도 별로 없고 대수롭지도 않은 이미지를 내가 몇 장 저장하고 게시했다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의 명단에 나를 포함시키다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러시아는 소셜미디어 활동을 대상으로 단속을 강화하는 중이다. 러시아 인권단체 아고라에 따르면 지난해 당국에 의해 기소된 인터넷 사용자가 411명이었다. 2016년의 298명에서 크게 늘었다. 그중 43명이 수 개월부터 4년 이내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혐의 대다수는 문제 있는 콘텐트를 SNS에 재게시했거나 마르킨처럼 소셜미디어 계정의 개인 사진앨범에 저장했다는 것이었다. 주로 러시아 정교회나 크렘린과 연계된 주요 인사를 풍자하는 이미지 또는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을 비판하는 이미지가 기소 대상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18년 전 통치 초기에 주요 매체를 강압적으로 크렘린의 통제 아래 끌어들였다. 비판자들은 그때 시작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지금까지 이어져왔으며, SNS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이런 기소가 그런 탄압의 최근 사례라고 지적한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또 다른 예를 보자.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실업자인 에두아르드 니키틴(42)은 VK에 게시한 정치색 강한 이미지를 통해 ‘혐오를 부추긴’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5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문제가 된 이미지 중 하나는 푸틴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교육 받지 못한 무지한 사람들로 조롱한 풍자 그림이었다. 지난 9월 초엔 러시아 중부 사라토프 출신의 여성 나탈리아 코발레바(42)가 현지 법원의 부패를 꼬집는 러시아 포크송을 SNS에 여러 곡 올린 뒤 극단주의 행동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녀에 따르면 집을 급습한 경찰은 사라토프 지역 판사들의 ‘명예와 품위에 먹칠한’ 혐의로 그녀를 체포한다고 말했다. 극단주의 행위로 기소된 피의자를 대변하는 변호사 알렉세이 부슈마코프는 최근 러시아의 66.ru 웹사이트에 “경찰은 반정부 시위에 참가하거나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지지하는 네티즌을 기소하려 한다”고 말했다.센터 E는 2008년 설립됐다. 모스크바 본부의 요원 약 100명을 포함해 전국적으로는 수백 명이 그 조직에서 일한다.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정치적인 반대자를 단속하는 것만이 그들의 임무는 아니다. 요원들은 2000년대 말 러시아의 백인우월주의 운동을 무너뜨리려는 과정에서도 주된 역할을 했다. 당시 그들은 폭력을 휘두른 초국수주의자들을 대거 체포했다. 러시아의 극단주의를 감시하는 인권단체 소바 센터의 알렉산드르 베르호프스키 소장은 “그런 극단주의자 수백 명을 그들이 감옥에 잡아넣었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VK를 들여다 보며 클릭하는 것과 달리 그런 일은 상당히 위험하다.”

러시아 네티즌은 이제 터무니없는 혐의로 기소될까 두려워 VK에 콘텐트를 게시하는 것조차 망설이게 됐다. / 사진:GETTY IMAGES BANK
하지만 지금 러시아 반체제 운동가들은 센터 E 요원을 ‘오흐란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제정 러시아 시대에 비밀경찰를 가리키던 표현이다. 대부분의 기소는 서방의 SNS가 아니라 VK에 게시한 글이나 이미지를 대상으로 한다. 비판자들은 러시아 소셜미디어 업체인 VK가 사용자의 데이터를 넘겨달라는 당국의 요구를 고분고분 따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VK는 경찰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VK의 모회사 Mail.Ru는 ‘극단주의’ 콘텐트의 재게시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기소된 피의자를 사면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VK 사용자를 위해 콘텐트를 완전히 비공개로 할 수 있는 옵션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기소는 계속된다. 게시된 맥락을 불문하고 나치 상징이 포함된 이미지를 게시하는 것도 극단주의 행위로 분류된다. 4년 전까지는 나치주의를 도모하려는 목적으로 나치 상징을 게시할 때만 러시아 법에 의해 처벌됐다. 그러나 2014년 법조문에서 ‘나치주의 도모 목적’이라는 조건이 삭제됐다. 당시 러시아 당국은 ‘나치주의 부활’ 기도와 효과적으로 싸우기 위해 법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비판자들은 현재 터무니없는 기소가 자주 있게 된 것이 바로 그런 법 개정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일례로 러시아 중부 지방에서 한 남자는 할리우드 영화 ‘아메리칸 히스토리 X’의 홍보 포스터에 ‘좋아요’를 클릭했다가 기소됐다. 포스터에서 주인공의 몸에 나치 문양 문신이 새겨졌다는 이유였다. 에드워드 노튼이 주연한 그 영화는 폭력적인 스킨헤드족이던 주인공이 교도소에서 백인우월주의가 허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러시아에서 상영이 금지되지 않았으며 국영 TV에서도 방영됐다. 또 다른 예로 러시아 극동 지방의 블라디보스톡에서 야권 지지자인 16세짜리가 자신의 VK 사진 앨범에 불교에서 빛과 평화를 상징하는 ‘만(卍)’자 이미지를 저장했다가 기소됐다. 이 두 사람은 결국 소액의 벌금만 물고 풀려났지만 그처럼 터무니없는 혐의로 기소됐다는 사실은 그들의 삶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비판자들은 지적했다.

2014~16년 센터 E에서 근무한 경찰 출신으로 변호사인 드미트리 줄라이는 “극단주의를 막으려는 그 법은 문자 그대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인종주의와 차별과 싸우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엔 그런 법이 정치 운동가나 야권 인사 등 당국에 눈엣가시인 사람을 제어하는 데 사용된다.”그러나 줄라이를 포함한 센터 E 출신들은 극단주의 혐의를 받는 인터넷 사용자의 증가가 반드시 당국의 정치적인 탄압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에 따르면 센터 E 지도부가 계속 높아지는 체포 할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요원들에게 가하는 무자비한 압박이 한 가지 주요 요인이다. 지도부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요원들이 사용하는 수단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센터 E는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안드레이 부베예프는 2016년 크림반도 관련 콘텐트를 VK에 재게시했다가 극단주의 혐의로 기소돼 2년 3개월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 사진:AP-NEWSIS
줄라이는 “공식적으로 몇 명을 체포하라는 할당량은 없지만 매년 지난해보다 더 많은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 검색 엔진을 사용해 인터넷 사용자가 VK에 올린 미심쩍은 이미지를 찾는 것이다.” 약간이라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이미지를 찾으면 급습과 기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센터 E 출신인 블라디미르 보론초프는 “실적을 올리기 위한 기소가 많다”고 말했다. “러시아 당국은 처음엔 반체제 인사를 단속할 목적으로 극단주의 근절법을 도입했지만 지금은 상사들을 만족시키려는 센터 E 요원들이 그 법을 임의적으로 적용한다. 센터 E에서 근무했을 때 동료 요원들은 일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이건 내 일이니 지시대로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 검색에 몰두한 요원들은 부끄러운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사들의 기분을 맞추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일을 위해 다른 사람의 삶과 자유를 희생시켜도 좋다고 생각했다.”

센터 E 요원들만이 온라인 극단주의로 의심되는 이미지를 찾는 건 아니다. 줄라이는 “익명의 고발이 많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 서로 다투다가 보복하려는 사람들도 당국에 극단주의 이미지를 찾았다고 제보한다.” 그에 따르면 그런 상황은 옛 소련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공산당 반대’ 활동이나 언급을 두고 식구가 다른 식구를, 이웃이 다른 이웃을 밀고하던 관행을 가리킨다.

이제 일반 러시아인은 SNS, 특히 VK에 이미지나 글을 게시할 때 망설일 수밖에 없다. 성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자원봉사자 옐레나(33)는 “걱정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내게 게시하거나 재게시하는 콘텐트 때문에 기소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 걱정이 쌓이면서 러시아 네티즌의 분노도 커진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모스크바 센터의 분석가 안드레이 페체프는 “사람들이 자신과 자녀가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법이 불공평하며, 법집행 기관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런 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고 말했다. “따라서 당연히 이런 의문이 생긴다. ‘부패 관리들은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풀려나는데 힘 없는 대중은 왜 SNS에 올린 대수롭지 않은 이미지 때문에 감옥에 가야 하는가?’ 그런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크렘린이 비난 받고 궁지에 몰리게 된다.”

푸틴 대통령도 이 문제를 우려하는 듯하다. 지난 6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푸틴 대통령은 “죄 있는 사람에겐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말하면서도 일부 센터 E의 기소가 ‘불합리’하게 진행될 소지가 있다고 경고했다. 또 지난 10월 3일엔 푸틴 대통령이 ‘극단주의’ 콘텐트의 SNS 재게시를 기소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안했다. 그러나 그 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러시아의 인터넷 사용자는 그런 SNS 활동 때문에 최대 15일 동안 구금될 수 있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영화 학도인 마르킨은 ‘왕좌의 게임’ 캐릭터를 두고 불손한 패러디를 한 ‘죄’로 자신의 20대 초반을 교도소에서 보낼 수 있는 엄연한 가능성에 기가 찰 노릇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나를 죽이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푸틴의 러시아에선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 마크 베네츠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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