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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장막’ 뒤에서

‘카리브해의 장막’ 뒤에서

자메이카 출신 미술가 폴 앤서니 스미스 전시회, 사진의 가려진 부분이 레이스 베일 같은 효과 내는 ‘피코티지’ 기법 눈길 끌어
‘교차로’(2018). 스미스가 2012년 실험하기 시작한 ‘피코티지’라는 기법을 이용했다. / 사진:COURTESY OF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RY
자메이카 출신 미국인 미술가 폴 앤서니 스미스(31)는 자신의 첫 번째 대규모 전시회가 개막하는 날 아침 마지막 몇 작품이 갤러리에 걸리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가을부터 작업해온 작품들인데 여기 걸어놓으니 낯설어 보인다”면서 “내 세계를 모든 사람에게 열어젖혔으니 이제 저 작품들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스미스는 전시작이 팔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내가 만든 모든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누군가 작품을 살 때마다 좀 속상하다. 작품을 떠나보내기가 무척 힘들다. 그래서 작품이 팔리면 바로 다른 작업을 시작한다.”

스미스는 지난해 10월 잭 셰인먼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교차로(Junction)’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회는 뉴욕에 있는 이 갤러리의 2개 지점에서 오는 5월 11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회는 지리적·정서적 교차로에서 사는 작가 개인의 역사를 다룬다. 스미스는 태어나서 9년 동안 자메이카에서 살다가 가족과 함께 미국 마이애미로 이주해 또 9년을 살았다. 그 후 미주리주의 캔자스 시티 미술대학에서 4년 동안 도자기를 공부했다.

‘교차로’라는 제목의 작품은 사진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스미스가 2012년 실험하기 시작한 ‘피코티지(picotage)’라는 기법을 이용했다. 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한 장이나 여러 장)를 흰색 뮤지엄 보드 위에 얹은 다음 도자기로 된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부분적으로 밑에 있는 보드가 드러나도록 한다. 그 부분은 잿빛 벽돌 벽이나 1950~60년대 카리브해 연안의 섬에서 인기가 높았던 옥외통로 형태의 오림판을 대고 문양을 낸다(1950~60년대는 카리브해 연안 섬에서 수십만 명이 미국이나 영국에 이민한 시기로 이 지역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태양의 리듬을 축으로 돌다’(2018~2019). 부분적으로 가려진 대상이 더 매혹적으로 보인다. / 사진:NEW YORK
“이 문양은 사진에 은유적인 층을 더해 외국에 사는 아프리카인의 경험에 말을 건다”고 스미스는 말했다. “살던 땅을 떠나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 것, 그리고 새로운 땅에 초대됐지만, 그 땅의 일원이 되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자메이카의 해변, 가족·친구와 함께하는 시간, 뉴욕 브루클린의 서인도제도 축제에서 화려한 의상을 입고 춤추는 무용수 등 작품 속의 장면들은 매혹적이다. 그 이유는 사진이 부분적으로 가려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레이스 베일 같은 효과를 낸다. 베일 속의 대상을 보고 싶게 만드는 동시에 보는 이의 눈으로부터 그 대상을 보호한다.

스미스는 “해변의 광경을 찍은 한 사진 위엔 스프레이 페인트로 구슬로 엮은 줄들을 그려 넣었는데 그 줄들은 자메이카에서 쓰는 구슬 커튼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철의 장막을 아느냐”면서 “난 이것을 ‘카리브해의 장막’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스미스는 자신이 그동안 작업한 수천 장의 사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각각의 사진이 내 인생의 어느 놀라운 날 스쳐 지나간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대다수가 축하와 춤, 내가 느낀 리듬이나 진동과 관련된 것이다. 일부는 의도적으로 희미하게 처리했다. 기억과 역사의 상실, 분명치 않은 것들을 묘사하기 위해서다.”

“자메이카의 국가 모토는 ‘다수로부터 하나로(Out of many, one people)’이다. 시리아인·독일인·유대인·인도인·중국인 등 이 섬으로 이민한 많은 민족이 하나의 국민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누구도 자메이카가 다수의 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곳곳에서 역사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문화가 억압당했다.”

스미스는 그 땅을 떠난 사람으로서 그곳의 벽과 경계가 허물어지기를 바라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벽과 경계를 좋아한다. 그 안에 속해도 좋고 배제당해도 좋다. 내 사적인 공간만 보장된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스미스는 하얀색으로 칠한 브루클린의 스튜디오 안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곳은 그의 이류 스케치북을 보관해둔 ‘성소’다. “난 미술가가 내 꿈이라는 걸 늘 알고 있었지만, 한때 요리사와 격투기 선수 등 다른 진로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폴 앤서니 스미스는 자신이 나고 자란 자메이카의 해변이 늘 그립다고 말한다. / 사진:ATISHA PAULSON
스미스는 미술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캔자스 시티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미국 중서부에 사는 건 아주 멋진 경험이었지만 추운 겨울은 견디기 힘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늘 자메이카의 해변을 그리워했고 지금도 그렇다. “내 스튜디오를 빼고 내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곳이 그 해변”이라고 그는 말했다. “내게 가장 감명 깊었던 작품 중 하나가 고교 시절에 본 에드워드 호퍼의 ‘일요일 이른 아침(Early Sunday Morning)’이다.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이 그림은 너무도 고요하게 느껴져 자메이카의 바다를 생각나게 했다.”

스미스는 조수들이 큰 그림 하나를 갤러리 벽에 거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멈춰섰다. 그는 마치 첫걸음마를 하는 자녀를 지켜보는 부모처럼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쉬었다. 갤러리의 액자 세공사가 스미스에게 다가와 잠을 좀 잤느냐고 묻자 그는 “죽어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환하게 미소 띠며 대답했다.

그날 저녁 열릴 전시회 개막식까지는 6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는 액자 작업이 끝난 작품의 맨 아랫부분을 들어내고 싶었다. ‘태양의 리듬을 축으로 돌다(Slightly Pivoted to the Sun’s Rhythm)’라는 제목의 그 작품은 비키니 톱과 깃털 치마를 입은 퍼레이드 무용수의 모습을 담았다. 그가 생각하는 작품의 완성 기준은 뭘까? “음식을 먹을 때와 같다. 배가 부르면 그만둔다.” 그는 아직 배가 고픈 게 분명하다.

- 메리 케이 실링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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