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갈길 먼 중소기업 해외진출…대기업 플랫폼을 디딤돌로 [CEO 110인 긴급진단]②
-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구조적 차이
정부 지원 의존 한계, '골든타임' 놓치기 일쑤
[이코노미스트 김두용 기자]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서로 밀접하게 의존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관계를 정의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자성어다. 그러나 현실은 중소기업에 한없이 차갑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는 출발선 자체가 다른 구조라 시간이 지날수록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쟁력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정부·기관 지원에 의존… ‘골든타임’ 압박
거대 자본을 앞세워 인프라·공급망 등을 이미 구축한 대기업과 이제 막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중소기업 간 출발점의 차이는 명확하다. 대기업은 넉넉한 자본과 친숙한 브랜드를 앞세워 공격적인 행보로 시장 진입을 노린다.
반면 중소기업은 부족한 자금과 제로 인프라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인다. 이에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글로벌 시장 개척을 ‘맨땅에 헤딩’이라 표현한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의 출발선 간극을 좁히기 위해 정부와 기관들의 적극 활용해야 한다. 중소업체들은 당장의 여유 자금이 없기 때문에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중소벤처기업부를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나 기술보증기금 등의 정부 유관기관과 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 등의 경제 단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대다수의 중소업체는 글로벌 시장을 성장 동력으로 삼고 출발한다. 정부의 지원 과제 모집과 정책적인 방향을 예의주시하며 만반의 준비를 한다.
올해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을 소비재·전력기기·바이오헬스·방위산업·원전·자동차·선박·철강 8개로 정했다. 소비재 수출 확대를 위해 ▲5차례의 한류박람회 개최 ▲온라인 해외 직접판매를 위한 글로벌 온라인몰 5개 구축 ▲소비재기업을 위한 3000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 조성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바이오헬스 분야 경쟁력 제고를 위해 1500억원 규모의 임상 3상 특화 펀드를 신설하고, 1조원 규모의 K바이오·백신 펀드 조성 등 지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1000억원대 규모라고 해도 파이를 나누면 그리 큰 액수가 아니다. 정부와 기관의 입장에서 특정 업체 한두 곳을 밀어줄 수 없는 구조라 보통 50~100개 기업들에 지원 기회를 준다.
한 제약·바이오업체 A대표는 “지원금은 크게 도움이 되지만 공격적으로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는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정부 과제가 빡빡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계획과 수행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보통 일정 기간 동안 순차적 배분 방식이라 기업들의 수요에 맞게 지원금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이에 글로벌 경쟁력 확대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공지능(AI) 업체의 B대표는 “정부의 지원으로 해외 파트너 업체를 구한 뒤 기술검증을 받는 등 상용화를 위한 준비가 이어진다. 기술검증까지 6개월 이상이 걸리는 데 상용화까지는 최소 2년이 걸리기 때문에 그때까지 지원금으로 버티기 쉽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정보기술(IT) 업체의 C대표는 “지원금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을 타진했을 때 돈과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조급함이 생긴다. 또 현지 네트워크가 부족하기에 한정된 시간 내 믿을 수 있는 파트너를 찾기가 매우 힘들다”고 토로했다.
스타트업·중소기업과는 달리 내수 시장에서 기반을 다진 중견기업의 경우 글로벌 진출 시 역차별을 받는 경우도 있다. 중견기업을 위한 정부의 지원 비중은 중소기업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중견기업의 D대표는 “해외 진출을 시도했을 당시 정말 ‘맨땅에 헤딩’식으로 접근해야 해서 막막했다. 중견기업 대상 정부의 지원이 거의 없어 현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오랜 기간 애를 먹었다”고 하소연했다.
현실적 대안은 ‘대기업 인프라’ 활용
국내 기업 구성은 피라미드 형식의 ‘압정형 구조’다. 대기업이 일부고, 중소기업과 중견기업들이 90% 이상으로 구성됐다. 그렇지만 매출 구조는 대기업집단에 쏠려있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국내 5대 그룹(삼성·SK·현대차·LG·한화)의 매출액은 1191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4.7%에 달했다.
대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인프라를 구축한 경우가 많아 ‘대기업 플랫폼’을 활용하는 게 중소기업들의 연착륙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이에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을 통한 ‘동반 진출 지원 사업’ 과제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선도기업의 해외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역량은 있지만 해외 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시장 개척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특히 K-뷰티와 AI 등의 분야에서 대기업의 해외 진출 노하우와 중소기업의 혁신 역량을 결합한 수출 인바운드 마케팅(외부에서 내부로 유입되도록 유도하는 마케팅의 일환) 등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롯데마트가 중소기업을 위한 플랫폼과 컨설팅 제공에 좋은 선례를 남기고 있다. 현지 유통망 확보와 시장 정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한국중소벤처기업유통원과 함께 손을 잡고 ‘K수출전략품목 상담회’를 개최하는 등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롯데마트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현지 점포를 운영 중인 인프라를 기반으로 상담회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식품 중소기업과 국내외 유통 바이어들이 실제 현지 매장의 입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상품기획자(MD)들이 직접 참여, 제품 검토와 수출 방안에 대한 컨설팅을 하는 형태다.
이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일부 기업은 현지 법인에 신규 입점을 확정하고, 현지 바이어사와 수출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얻기도 한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베트남·인도네시아 온라인 플랫폼 기업과 전략 세미나 ▲현지 대형마트 시장조사 ▲할랄 인증 기관 방문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지난 3년간 총 120개사의 중소기업을 지원했고, 누적 상담액이 300억원을 넘었다.
이순배 중기부 글로벌성장정책관은 “최근 내수 경기 침체로 중소기업이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민간 유통채널과 협력해 우수 중소기업의 글로벌 진출과 판로 개척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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