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빠른데 왜 안 통할까…한국형 리더십의 치명적 약점 [CEO 110인 긴급진단]⑧
- 속도·자원 동원은 강점
이사회·보상·조직문화는 ‘글로벌 괴리’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글로벌 투자자들이 바라본 한국 기업 리더십은 ‘양면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빠른 의사결정과 강한 조직 결집력은 경쟁력으로 꼽히지만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낮은 자율성, 글로벌 기준과의 괴리는 기업가치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최근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은 순발력이 뛰어나고, 대기업 집단이 보유한 인력·자금·경험 등 다양한 자원을 네트워크 형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며 “회장이나 최고경영진이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리고 선택과 집중을 실행할 수 있는 구조가 경쟁력”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속도 중심 리더십’은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이 회장은 “과거에는 자본의 성격을 구분하기보다 성장 자체가 최우선 목표였고, 고속 성장과 목표 달성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 경제가 선진국 단계에 진입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는 진단이다. 그는 “투명성과 책임 경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현재 환경에서는 과거 회장 중심의 의사결정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사회가 ‘거수기’ 전락”…지배구조 한계
한국 기업 리더십의 가장 큰 한계로는 이사회 기능의 형식화가 꼽힌다.
이 회장은 “이사회는 경영진을 견제·감독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회장이나 최고경영진이 이를 통제하거나 의사결정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본연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구조적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오너 경영 체제의 세대 변화가 리스크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글로벌 패밀리 비즈니스 사례를 보면 1·2세대는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지만 3세대 이후에는 성과 편차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며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3세 경영 체제로 접어든 상황에서 이사회 견제가 작동하지 않으면 독단적 의사결정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기업과의 차이도 분명하다. 이 회장은 “대만의 TSMC는 이사회를 전략적 의사결정 파트너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이사회가 형식적 기구에 머무르지 않고 경영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직문화 역시 한국 기업 리더십의 구조적 한계로 지목된다. 이 회장은 “조직은 수평적으로 운영되고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해야 하는데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수직적인 문화가 강하다”며 “이러한 구조는 창의성을 저해하고 우수 인재의 유입과 유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실제로 글로벌 수준의 인재를 채용하고도 조직문화와 보상 체계 문제로 이탈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성과는 글로벌 수준을 요구하면서도 보상과 평가 체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세대 간 인식 차이도 커지고 있다. 20~30대 인재들은 성과에 따른 권한과 보상을 요구하는 글로벌 기준에 익숙한 반면, 국내 기업의 연공 중심 문화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립적 이사회·글로벌 기준 필요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와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실행력과 위기 대응 능력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가 이어지지만, 이사회 독립성과 의사결정 투명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로 해외 기관투자가들은 투자 판단 시 기업의 성장성뿐 아니라 ▲이사회 구성 ▲내부 견제 장치 ▲경영진 보상 체계 등을 핵심 변수로 반영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의무를 기존 ‘회사’에서 ‘모든 주주’로 확대하고, 전자주주총회 도입 등 주주권 강화 장치가 도입되고 있다. 다만 제도 변화가 실제 기업 현장의 의사결정 구조와 조직문화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이 회장은 “제도 개선 자체도 중요하지만, 기업 내부에서 이를 실제로 작동시키는 문화와 리더십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며 “이사회가 형식적인 기구에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인 견제와 조언 기능을 수행할 때 기업가치도 함께 올라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한국 기업이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거버넌스(지배구조) 체계의 전면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기업과 인재의 역량 자체는 글로벌 최고 수준에 뒤지지 않는다”며 “문제는 의사결정 구조의 투명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거버넌스 체계”라고 말했다.
특히 이사회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가 핵심 과제로 제시된다. 그는 “해외 전문가를 포함해 실무 경험이 풍부한 기업인과 자본시장 전문가를 이사회에 적극적으로 영입해야 한다”며 “이사회가 경영진을 견제하는 동시에 전략적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조직문화와 보상 체계 역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재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리더십과 조직문화, 의사결정 구조 같은 질적인 요소들이 그동안 과소평가돼 왔다”며 “특히 경영진이 젊은 전문 인력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기업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변화는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통증’일 수 있지만 반드시 넘어야 할 단계”라며 “지금이 한국 기업들이 질적 도약을 위해 체질을 바꿔야 할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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