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지방자치 30년, 도시는 무엇을 놓쳤나[김현아의 시티라이프]
- [지방선거와 도시]⑦
지방자치·균형발전, 30년의 민낯
31번째 투표장에서 도시와 정치를 생각하다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지금 각 가정의 우편함에는 두툼한 지방선거 공보물이 도착해 있다. 후보들의 공약집에는 공통된 단어가 있다. ▲글로벌 도시 ▲스마트 시티 ▲청년 허브. 인구 5만명 이하 소도시도 예외가 없다. 그리고 그 소도시에는 신청사 건립이 단골 공약으로 등장한다. 인구 2만명대 소도시가 수백억원짜리 신청사 예산을 증액하다 감사원 감사를 받는 일이 지금도 반복된다. 재정난을 호소하면서도 신청사 건립 경쟁을 벌이는 것, 이것이 지방자치 30년의 민낯 중 하나다. 그렇다고 그 30년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것은 아니다. 지방정부가 처리하는 사무 비중은 1994년 13.4%에서 2024년 36.7%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2000년 주민조례발안제, 2004년 주민투표법, 2006년 주민소환제가 차례로 도입되며 주민이 행정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도 갖춰졌다. 제도의 서랍은 분명히 늘어났다. 그러나 제도의 서랍이 늘어나는 동안 도시는 더 비어갔다.
일은 세 배, 지갑은 더 얇아진 도시
제도의 성장 뒤에 숨은 숫자를 들여다보면 표정이 달라진다. 지방세 비중은 1995년 21.2%에서 2023년 24.6%로, 30년간 겨우 3.4%포인트 늘었다. 반면 지방재정자립도는 1997년 63%에서 2024년 48.6%로 14%포인트 이상 후퇴했다. 사무는 세 배 늘었는데, 그 일을 할 재정의 자율성은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더 많은 일을 하면서 더 빈 지갑으로 한다는 뜻이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의하면 각 지방단체장들의 공약이행 완료율은 70.42%지만 공약이행 필요재정 확보율은 52.22%에 그쳤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도시는 단체장이 스스로 설계해 실행할 수 있는 공약의 범위가 처음부터 좁다. 예산의 절반 이상이 중앙에서 내려오는 교부금과 보조금으로 채워지는 구조에서, 재정 권한 없는 자율은 허울에 가깝다. 지방자치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주민은 62%지만, 실제 성과를 체감한다는 응답은 36%에 그쳤다. 참여 기회가 늘었다고 느끼는 비율은 48%였지만 실제로 참여해본 주민은 14%에 불과했다.(행정안전부·한국지방행정연구원 ‘민선 지방자치 30년 평가’ 중간 결과 자료) 제도는 열려 있는데, 그 문을 통과한 사람은 드물다. 이것이 지방자치 30년의 가장 솔직한 성적표다.
민선 1기가 출범하던 1995년 수도권 인구 비중은 약 45%였는데 2025년 51%로 이미 과반을 넘었다. 비수도권 중소도시의 인구는 30년간 약 25% 감소했다. 30년간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지방자치를 했는데, 지방 도시는 더 비어갔다. KDI는 2026년 1월 보고서 ‘수도권 집중 흐름의 분석과 향후 비수도권 발전방향’에서 이 역설을 해부했다. 30년간 균형발전정책을 시행하고, 세종시에 8조5000억원을 투입하고, 전국에 10조원을 들여 혁신도시를 조성했다.
그런데도 1970년 이래 단 한 차례의 반전이 없었다. 보고서가 지목한 핵심 원인은 인프라 부족이 아니었다. 2010년대 수도권 지식기반산업의 생산성이 20% 이상 올라가는 동안, 비수도권 제조업 도시의 생산성은 오히려 줄었다. 10개 혁신도시 중 8곳이 계획인구 목표에 미달했다. 수도권 인구를 끌어오기는커녕 주변 소도시 인구를 흡수하는 역효과만 낳았다. 사람은 도로가 깔린 곳이 아니라 기회가 있는 곳으로 간다. 공공기관을 옮기고 도로를 깔아도,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결국 하나의 질문이다. "여기서 내 삶이 나아질 수 있는가."
대리전의 반복, 그리고 분권의 역설
정작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지방선거는, 30년간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역대 지방선거의 핵심 의제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대부분 지역의 고유 문제가 아닌 중앙 정치의 대리전이었다. 대통령 임기 중반의 심판론, 여야의 수도권 전초전, 국가 현안에 대한 찬반. 지역 후보의 공약을 꼼꼼히 따지는 선거보다, 중앙 정당의 간판을 보고 투표하는 선거가 반복됐다. 4년마다 새 단체장이 취임하지만, 이전 단체장의 정책이 검증되고 계승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 구조의 대가는 설계도의 소멸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 에너지 자원을 주민 수익으로 돌려주겠다는 구상들이 곳곳에서 나왔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거의 같은 방향을 향해 독립적으로 제출됐던 설계도들이, 경선이라는 정치적 문턱을 넘지 못하고 서랍 속으로 사라졌다. 탈락한 것은 후보들이지, 그 설계도의 타당성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더 많은 분권인가.
2023년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됐고, 자치입법권 확대·기관구성 다양화·기회발전특구 조성 등 분권과 자치 강화의 법적 기반은 계속 쌓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불편한 질문을 하나 던져야 한다. 사람이 빠져나간 도시에서 자치 권한을 강화하면, 그 권한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기존 지역 네트워크가 조례·인허가·예산을 더 촘촘하게 틀어쥐게 될 때, 외부에서 이주를 고민하는 청년이나 귀촌을 꿈꾸는 외지인은 그 도시의 문이 더 좁게 느껴질 것이다. 분권은 도시를 살릴 조건이 아니라, 살아있는 도시가 더 잘 작동하게 해주는 도구다. 순서가 바뀌면 답도 달라진다.
중앙에서 어떤 도시에 후보를 공천하는 데는 그 도시의 주민들이 어떤 투표 성향을 보이느냐와 관련이 깊다. 중앙 정당이 지역을 ‘관리 가능한 표밭’으로 볼 때, 그 도시의 고유한 문제는 후순위로 밀린다. 지방선거가 대리전이 되는 것은 유권자의 무관심 때문만이 아니라, 공천 구조가 그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조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뒤집어 말하면, 유권자가 달라지면 공천도 달라진다. 중앙 정치가 지방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 유권자가 중앙 정치의 공천 방정식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질문은 그대로다, 여덟 번의 선거를 치르는 동안 우리는 주로 중앙 정치의 언어로 투표해왔다. 이번 한 번은, 후보를 평가하는 기준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중앙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내가 사는 도시의 언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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