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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풀리며 전 세계가 물자 부족으로 골머리, 해법은?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글로벌 공급 부족이 가속화하고 있다. 애초 에너지 수요 급증에 따라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이 발생했지만, 이젠 거의 전 분야에서 공급 부족이 심화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식량 생산·공급까지도 모자라지면서 동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기아가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1월 25일의 추수감사절과 12월 성탄 특수를 앞두고 장난감·의류의 공급 부족과 물류 정체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선물 없는 명절’을 맞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 일부 지역에선 심지어 화장지도 재고가 줄고 있다. 화장지를 비롯한 각종 생필품에 커피를 비롯한 기호품까지 공급 부족이 심각하다.       ━   위드코로나로 촉발된 ‘퍼펙트 스톰’   에너지 수급 불안정에 따른 정전 사태도 레바논을 비롯한 일부 한계 국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게다가 반도체 칩의 부족으로 반도체가 필수적인 각종 전자제품은 물론 자동차까지 생산과 공급에 차질이 예상된다. 중국은 석탄 부족에 따른 전력난으로 산업체 가동 중단 사태를 맞으면서 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다. 전력난은 반도체 생산 차질과 종이 부족까지 유발하고 있어 파장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글로벌 공급 부족 현상의 핵심 원인으로는 2년이 다 돼가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공급 부족, 위드코로나 확산에 따른 수요 증가와 관련 기대감의 상승, 그리고 인력 부족 등에 따른 물류 대란을 꼽을 수 있다. 거기에 산업현장과 시장 감당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일부 국가의 무리한 그린 경제화도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런 인재에 더해 이상 기후로 인한 일부 지역의 자연재해도 한몫하고 있다.     문제는 이 요인들이 대부분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펜데믹은 이미 8분기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익숙한 상황이다. 이에 따른 수요와 공급의 동시 부족은 상당 기간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작용해왔다. 방역에 따른 인력 수급 부족도 마찬가지다.     위드코로나는 이미 지난해 12월 시작된 코로나 백신 접종이 2021년 들어 궤도에 오르면서 지난 상반기부터 올해 가을쯤 시작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따른 글로벌 수요 증가도 당연히 예상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예측되던 상황이 한꺼번에 도래하면서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수요와 공급, 코로나라는 천지인 삼박자가 우연히 다 맞아떨어지면서 글로벌 공급 부족 현상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했다.     글로벌 공급 부족 현상은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퍼펙트 스톰은 원래 기상학 용어로 ‘발생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들이 우연히 겹치면서 증폭돼 발생하는 기상 사태’를 가리킨다. 개별적으로는 큰 타격을 주지 않는 요인들이 우연히 동시에 발생해 서로 결합하면서 예상 밖의 엄청난 위력을 갖게 되는 자연 현상이다. 주로 드문 기상 현상이 서로 결합하면서 발생한 강력한 폭풍을 가리킬 때 사용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의미로도 쓴다.     퍼펙트 스톰은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경제가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그 후 개별적으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요인이 복수로 동시에 터지면서 영향력이 대대적으로 증폭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2011년 6월에는 월가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론자로 ‘닥터 둠(Doctor Doom)’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미국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글로벌 경제가 2013년 퍼펙트 스톰을 겪을 것으로 예측하면서 이 용어는 더욱 유명해졌다. 루비니 교수는 2013년이 되면 유럽 발 재정위기로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에서 일부 국가가 이탈하고, 미국 경제의 거품이 붕괴하면서 성장이 둔화하며,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경제성장률도 함께 하락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그는 미국 경제가 단기간에 걸쳐 성장세를 기록한 뒤 곧바로 다시 불황에 빠지는 더블딥(W자형 불황)을 우려했다. 더블 딥의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소비 침체와 정부 지출 확대에 따른 과도한 재정적자,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지나치게 빠른 자금 회수 등이 꼽힌다. 기업이 생산량을 늘리면서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다시 경기가 침체하는 현상이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도 경제는 소비 부족으로 충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재정적자만 늘어난다. 아울러 지나친 자금 공급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로 이자율을 높여 돈을 회수하면 경기가 다시 불황에 접어들 수 있다. 루비니의 부정적인 예측은 미국 연방준비의 대처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재정위기 극복 노력 등으로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   가장 큰 피해 지역은 아프리카 빈곤국, 식량부족 우려     결국 당시엔 각국이 필사의 대처로 퍼펙트 스톰을 어느 정도 예방했다. 하지만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2년 가까이 겪은 지금, 새로운 포스트 코로나 경제가 시작되면서 글로벌 공급 부족 현상이 예기치 못한 퍼펙트 스톰으로 등장하고 있다.     가장 문제가 식량 부족으로 제대로 먹지 못하는 기아 사태다.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케냐는 심각한 가뭄으로 인한 식량부족 사태 등 국가적 위기를 겪으면서 지난 9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 나라 기후는 우기인 3~6월과 나머지 건기로 나뉘는데 지난 2년간 우기에도 비가 내리지 않아 농사를 망쳤다. 비가 내리더라도 폭우로 이어져 농작물이 떠내려갔다. 이런 이상 기후로 농작물 생산량이 70~90%나 줄었다. 가축도 먹을 풀이 없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이동이 제한되면서 원조 식량 배분에도 지장을 초래했다. 이런 현상은 인근의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그리고 고(故) 이태석 신부가 활동했던 신생국 남수단 등 아프리카의 상당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개발원조(ODA) 정책의 하나로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아프리카·중동 등에 지원하는 한국산 쌀 공급을 늘려야 할 이유다.     아일랜드의 국제인도주의단체 컨선월드와이드가 10월 16일 발표한 2021 세계기아지수(Global Hunger Index) 보고서를 보면 소말리아가 기아 분야에서 ‘극히 위험’ 국가로, 예멘·중앙아프리카공화국·차드·콩고민주공화국·마다가스카르가 ‘위험’ 국가로 지목됐다. 대부분 정치적 분쟁과 코로나19를 동시에 겪은 나라다. 컨선월드와이드와 세계기아원조는 기아 해결을 위한 국제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2006년부터 세계기아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소말리아는 영화 ‘모가디슈’의 배경으로 수십 년 동안 내전을 겪은 데 이어 가뭄 등 자연재해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기아 국가로 지목됐다. 이 나라에선 영양결핍 인구 비율이 59.5%이며,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은 11.7%에 달해 나이지리아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아이들은 굶고 병들어서 목숨을 잃고 있다. 악명을 떨쳤던 소말리아 해적 활동이 최근에는 잠잠해지고 있지만 코로나19 등으로 상황이 악화하면서 다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아덴만에 파병된 한국 청해부대도 기본 임무는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한국 선박을 지키는 일이다.     브라질은 1세기 만의 심각한 가뭄으로 올해 커피 생산량 급감이 예상된다. 올해 커피 생산은 자연 주기적으로도 줄어들 예정이었지만 여기에 서리 및 가뭄에 따른 수확 감소로 인해 품귀현상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더불어 해상 화물 운송료 증가와 컨테이너 부족 등이 겹치면서 브라질 커피는 심각한 공급난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질은 세계 최대 원두 수출국이기 때문에 브라질의 커피 공급난은 전 세계 카페에서 판매되는 원두와 이로 추출한 커피음료의 가격 상승은 물론, 커피를 원료로 한 다양한 가공식품의 공급량과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브라질의 가뭄은 전력난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WP)는 브라질 전기 생산에서 수력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올해 가뭄에 따른 수자원 부족은 이 나라 에너지 공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도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19년 브라질의 에너지 소비구조는 석유 38%·수력 29%·재생에너지 16%·천연가스 11%·석탄 5%·원자력 1% 순이다. 이에 따라 가뭄은 수력 발전량을 줄이고 국가 전체 에너지 수급에도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국민에게 절전을 호소하고 있으며, 상황이 악화하면 전기를 시간제로 배급할 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브라질 에너지 장관은 정부 기관에 에너지 사용을 20% 줄이라고 지시했다.     세계적인 산유국으로 아프리카 대륙 최대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자랑하는 나이지리아도 액화천연가스(LPG)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나이지리아 국내 LNG 가격은 공급 부족으로 지난 4월에서 7월 사이 60%가 치솟았으며, 이에 따른 가격 장벽이 높아지며 수많은 주민이 가스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결국 수많은 가정과 식당은 가스 대신 숯과 화목 등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가스 가격 상승의 이유 중 하나로는 글로벌 공급 부족이 꼽힌다. 나이지리아는 에너지 수출국이지만 정유 관련 시설이 충분하지 않아 LNG를 비롯한 완제품은 수입에 의존한다. LNG 사태는 나이지리아 법정통화인 나이라의 가치 하락과 정부의 LNG 세금 신설 등으로 더욱 악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환경은 물론 주민 건강도 우려된다고 BBC는 지적했다.       ━   레바논 에너지 부족사태, 예고된 인재(人災)     동지중해 중동국가로 오랫동안 경제적·문화적 번영을 구가하며 ‘중동의 진주’로 불렸던 레바논은 최근 심각한 전력난과 식수난까지 겹치면서 국가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레바논은 온갖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최악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대표적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 퍼펙트 스톰 국가로 꼽힌다. 레바논은 1943년 독립 당시 맺은 국민대협약과 1979년 내전 종식을 위한 타이프 합의에 따라 마론파 기독교와 수니파 이슬람·시아파 이슬람·드루즈교 신자 등이 권력을 각각 분할해 겉으로는 종교·종파별 정치적 균형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런 권력 나눠먹기는 무책임 행정으로 이어져 정부는 각종 위기 앞에 무능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정부 마비로 이어졌다. 2020년 8월 4일에는 베이루트 항구에 보관 중이던 2750톤 이상의 질산암모늄이 대폭발하면서 항구 기능이 마비됐으며,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과 복구 작업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 BBC는 레바논이 식수와 의약품 그리고 연료 부족의 우려가 크다고 보도했다. 레바논은 지난 18개월 동안 경제 위기를 겪어왔으며, 그 결과 인구의 4분의 3이 가난으로 내몰아 넣었다는 지적이다. 자국 화폐가치 하락과 생필품 가격 상승 등으로 국민은 현재의 정치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대규모 시위로 표출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이런 상황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정부는 연료를 제대로 구하지 못해 화력 발전소 운영을 중단했으며, 이 때문에 전력 공급이 줄어 수시 정전은 물론 하루 중 상당 시간을 전기 없이 사는 신세가 됐다. 상당수 국민은 석유로 가동하는 사설 발전회사나 가정용 발전기에 의존하고 있다. 사설 발전회사는 암거래 등으로 확보한 기름을 바탕으로 고가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병원 등 필수 시설은 정전에 대비해 발전기를 가동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비용 상승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지원해온 이란은 최근 석유를 실은 유조선을 베이루트에 보내 정치적인 지원을 시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아파 시위대에 괴한이 총격을 가해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국내 상황이 더욱 혼잡해지고 있다.     이미 지난 8월 유엔의 레바논 인도적 지원 조정관인 나야트 로치디는 “수백만 명이 겪고 있는 보건의료 부문에 대한 연료 위기와 식수 공급 문제를 깊이 우려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마비된 정부는 뚜렷한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한때 금융·유통·관광업으로 번영을 구가했던 레바논은 코로나19와 글로벌 공급 부족, 그리고 정치적 위기까지 겹치면서 국제사회의 대표적인 실패국가로 자리 잡고 있다.     더욱 문제는 코로나19가 쉽사리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백신 접종 이후에도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재감염이 확산하고 있다. 인구 대부분이 백신을 접종해 항체를 형성하면 코로나19가 진정될 것이라는 희망은 새로운 변종의 출현과 돌파 감염의 확산 등으로 인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거기에 백신 접종 뒤 코로나19 사망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이유로 전 세계적으로 위드코로나 시기에 접어들면서 글로벌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인류는 이미 백신 접종과 치료제 보급을 비록한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자국 우선주의가 얼마나 만연하고, 보건과 방역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악용되는지를 목격했다. 앞으로 위드코로나를 통한 경제 회복 과정에서 글로벌 사회가 얼마나 자국 이기주의를 앞세워 각축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코로나 세계 글로벌 공급 퍼펙트 스톰 에너지 수급 1607호(20211018)

2021-10-23

판도라 페이퍼스가 보여주는 부패권력의 추악한 두 얼굴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전세계의 수많은 군주·왕족, 정치 지도자, 기업인, 저명인사들이 조세 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세금 회피·탈루를 시도하거나 재산을 은닉했다는 폭로가 또다시 나오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10월 3일 이 같은 내용의 ‘판도라 페이퍼스’를 공개하면서 지도자들의 도덕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ICIJ는 1997년 설립돼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독립 글로벌 네트워크다. 100여 국가의 280명 이상의 탐사보도 기자와 100개가 넘는 미디어 조직으로 이뤄졌다. 이 조직은 영국의 BBC방송과 일간지 가디언, 프랑스의 르 몽드,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 독일의 쥐트도이체차이퉁, 노르트도이처룬트풍크(NDR) 방송, 인도의 인디언 익스프레스, 스위스의 존타크스차이퉁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2008~2011년 담배산업의 실상을 탐사보도하면서 활동에 들어갔다. 건강보다 돈을 앞세우는 담배산업의 이면에 대한 적나라한 보도와 비판은 전세계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조직이 전세계에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명성을 얻은 것은 2016년 4월 조세회피처인 파나마의 금융업체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다. 이를 통해 세계적인 정치인, 기업인이 역외 지역에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세금을 회피하고 자금 세탁을 하는 한편 은밀하게 재산을 숨겨왔음을 생생하게 고발했다. 당시 보도는 전세계에 충격을 안긴 것과 동시에 탐사보도와 데이터저널리즘의 위력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이들의 폭로 저널리즘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심지어 도덕적 지도자들에 대한 가면 벗기기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보도에 전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이어 2017년에는 파라다이스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이 입수한 파라다이스 페이퍼스를 함께 분석해 보도하면서 다시 한번 충격을 줬다.      ━   ‘파나마 페이퍼스’ 이어 ‘판도라 페이퍼스’ 파문     10월 3일 폭로된 ‘판도라 페이퍼스’도 전세계를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이번 판도라 페이퍼스에 공개된 ICIJ의 역외 탈세 탐사보도 자료는 분량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전세계 14개 금융회사에서 유출된 1190여만 건의 금융정보로, 3테라바이트 분량이다. 3테라바이트는 통상 2기가 정도인 극영화 1500편 이상에 해당한다.     판도라 페이퍼스는 분량면에서 2016년 파나마 페이퍼스와 2017년 패러다이스 페이퍼스를 넘어선다. 파나마 페이퍼스는 2.6테라바이트 분량의 문서 1150만 건이었고, 파라다이스 페이퍼스는 1.4테라바이트 분량의 문서 1340만 건이었다. 이 방대한 데이터를 전세계 117개국 언론인 600여명이 참가해 파헤쳤다. 그야말로 데이터 저널리즘의 개가다.      문건에 등장하는 인물의 숫자도 경악할 수준이다. 보고서에 이름이 올린 전·현직 정치인이 336명이나 된다. 여기에는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 총리,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 기예르모 라소 에콰도르 대통령 등 전·현직 국가원수와 정부 수반 35명이 포함됐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번에 공개된 판도라 페이퍼스엔 대부분 국가가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중남미의 전직 정상이 11명이나 무더기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파마나는 리카르도 마르티넬리, 에르네스토 페레스 발라다레스, 후안 카를로스 바렐라 등 전직 대통령 3명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콜롬비아는 세사르 가비리아와 안드레스 파스트라나, 엘살바도르는 알프레도 크리스티아니와 프란시스코 플로레스 페레즈 등 각각 2명의 전직 대통령이 등장한다. 호라쇼카르테스 전 파라과이 대통령, 페드로 파블로쿠친스키 전 페루 대통령, 포르피리오 로보 전 온두라스 대통령도 등장했다.    대화와 타협, 협상과 양보를 통한 연립정권 구성이 필요한 내각책임제와 달리 일단 대선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임기 내내 당선인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승자독식제도(the winner-take-all)’에 따라 부패하기 쉽고 견제받기 쉽지 않은 대통령제의 폐단이 고스란히 나타났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게다가 중남미 국가는 한결같이 부유하지 않는 나라인데, 지도층이 이렇게 세금을 줄이려고 탈법을 일삼는 행동을 보였다는 점에서 이번 판도라 페이퍼스의 폭로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명목 금액 기준 2021년 전망치에 따르면 전·현직 대통령의 탈선이 드러난 중남미 국가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상당히 작다. 그나마 교역이 발달한 파나마가 1만3690달러로 유일하게 1만 달러를 넘을 뿐 페루 6678달러, 콜롬비아 5753달러, 파라과이 5146달러, 엘살바도르 4031달러, 온두라스 2586달러의 가난한 나라들이다. 그런데도 전직 대통령들은 조세회피지에 페이퍼컴퍼니를 여러 개 설립해 세금을 회피하거나 자금을 은닉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남미에선 현직 대통령도 3명이나 이름을 올렸다. 칠레의 세바스티안 피녜라, 에콰도르의 기예르모 라소, 도미니카공화국의 루이스 아비나데르가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기업인 출신으로 공직인 대통령이 되면서는 이런 일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번 공개를 계기로 부패, 돈세탁, 글로벌 조세 회피 등 여러 의혹을 받아 정치적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유럽의 안도라·리히텐슈타인·모나코,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남태평양의 마셜제도·나우루·바누아투 등을 자금 투명성 공개 비협조국으로 분류해왔다. 일부 국가는 관련 법령을 통과했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평가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적반하장·내로남불형 정치인이 많이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체코의 안드레이 바비시 총리다. 탈세와 부패 척결을 내세워 정치 권력을 잡았던 바비시 총리는 조세 회피지의 여러 페이퍼컴퍼니로 2200만 달러(261억원)의 자금을 빼돌려 프랑스에 대저택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바비시는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주의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재산을 모은 ‘체제 전환 부호’다. 과거의 공산 당적을 시장경제 전환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다. 그런 그는 시민단체 ‘불만 있는 시민들의 행동(ANO)’을 만들고 2012년 이를 ‘ANO 2011’이라는 정당으로 전환했다. 좌파와 우파를 아우르는 포괄정당으로 중도주의·자유주의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좌파 계열의 포퓰리즘 정당이라는 평가다. ANO와 ANO2011는 부패방지와 정치인의 면책특권 폐지를 앞세워 기존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를 모으고 실업 대책과 교통인프라 확대 등 생활 공약을 앞세웠다. 기존 정치인의 부패와 불투명성, 특권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힌 인물이 정작 자신은 역외 지역의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세금을 줄이고 자금을 은닉했다가 들킨 셈이다.     ━   부패 척결 외치던 바비시 총리도 조세 회피   바비시는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1980년 슬로바키아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1989년 벨벳 혁명으로 공산당이 몰락하자 체코의 프라하로 이주해 정착했다. 2013년 총선에서 사회민주당, 기독교민주동맹 등과 연립정권을 이루면서 2014~2017년 제1부총리와 재무장관을 맡아 정부 재정을 책임졌다. 2017년 총선에서 ANO2011이 제1당이 되면서 그해 12월 총리가 됐다. 바비시는 이번 폭로가 연말 총선을 앞두고 자신을 압박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프리카 케냐의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도 “모든 공직자의 자산은 국민이 그 적법성을 물을 수 있도록 대중에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산공개의 투명성을 강조해온 정치인이다. 이처럼 겉으론 공직자 재산 공개의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뒤로는 조세 회피지에 적어도 7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3000만 달러(약 350억원)가 넘는 비밀 재산을 보유해왔다.    그는 1963년 독립한 케냐의 초대 대통령 조모 케냐타(1889~1978년, 64~78년 재임)의 아들이다. 2013년 첫 당선했으며, 2017년 재선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2003~2013년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2009~2012년 재무장관을, 2008~2013년 부총리를 지냈다. 재무장관으로 나라 살림을 책임진 국가원수가 역외 지역을 이용한 것은 도덕성에 큰 흠결로 지적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어떤 자금이기에 그런 곳을 이용했느냐는 추궁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제르바이잔의 2대 세습 대통령에 비하면 약과다. 아버지인 게이다르 알리예프(1923~2003년, 재임 1993~2003년)에 이어 2003년 10월부터 대통령을 맡은 일함 알리예프는 2008년·2013년·2018년 대선에 당선해 4선을 기록하고 있다. 2017년 부통령직을 신설해 부인 메흐리반 알리예바를 그 자리에 앉혔다. 세습에 이어 족벌체제를 이룬 셈이다.   주목할 점은 아제르바이잔이 세계적인 산유국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자료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은 2020년 하루 69만3880배럴의 원유를 생산한 세계 22위의 산유국이며, 1인당 하루 원유 생산은 8만5710배럴로 세계 14위다.       ━   아제르바이잔 알리예프 2세 런던 건물 대거 매입     이렇게 아제르바이잔은 산유국으로 명성이 높지만 1000만 국민은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명목 금액 기준 2021년 전망치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883달러 수준이다.     이번 폭로에 따르면 알리예프는 부동산 가격이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 중심지의 건물을 대거 사들였는데, 아예 거의 블록 하나를 다 산 것으로 드러났다. 알리예프 대통령이 족벌정치를 펼치고, 역외 지역을 이용해 재산을 해외에 빼돌린 것을 보면 가난의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견제받지 않는 독재정치는 부패를 부르고 부패로 국부가 빠져나가면서 국민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역시 권력은 견제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도자들의 세금 회피 기법도 흥미롭다. 한때 세계 좌파의 희망이었던 변호사 출신의 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는 2017년 빅토리아 시대 건물을 직접 사는 대신 이를 보유하고 있던 버진아일랜드 등록 업체를 아예 인수했다. 이런 기법을 통해 약 5억원의 세금을 아낀 것으로 드러났다. 블레어는 물론 부인 셰리도 변호사다. 자신들의 지식을 이렇게 탈법적인 사익을 위해 활용했고, 이런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점에서 국민의 실망감을 짐작할 수 있다.     2000년부터 러시아를 지배해온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가까운 여성을 앞세워 모나코의 불법 자산과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는다. 역외 지역을 이용해 부동산을 취득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와 함께 이탈리아의 마피아, 독일의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시퍼도 역외 지역을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역외 지역 이용에는 정치 지도자와 유명인사, 마피아가 따로 없는 셈이다.     요르단의 국왕 압둘라 2세는 최소 36개의 역외 유령회사를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 말리부와 워싱턴, 영국 런던 등 전 세계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지역에서 모두 합쳐서 1억600만 달러(1258억원)가 넘는 14개 저택을 손에 넣었다. 압둘라 2세 국왕은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와 같은 쿠라이시족에 속한 집안인 하심 가문 출신이다. 하심 가문은 오랫동안 ‘두 개의 성지의 수문장(열쇠지기)’이라는 종교적인 직책을 맡아 이슬람 성지인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와 메디나를 지배했다. 7세기부터 시작한 오랜 가문의 명예가 1300년이 지난 지금 타격을 받는 상황이 된 셈이다.     판도라 페이퍼스에 대해 압둘라 2세 국왕은 즉각 “특이하지도 부적절하지도 않다”고 항변했다. 법적으로 따지면 국왕인 자신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릴 일은 없다는 자신감이 드러난다.     물론 다른 지도자들도 법적으로 따지면 무사히 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도자들이 역외지역 조세 회피처를 이용해 유령회사로 불리는 페이퍼컴퍼니를 세웠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충분히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대중과 지도자 사이의 괴리도 더욱 깊어간다. 이 간극을 제대로 메우지 않으면 전 세계는 새롭게 정치적·사회적·도덕적 갈등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셈이다. 문건의 이름이 판도라인 이유일 것이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1-10-12

파벌 야합이 만든 기시다 총리 시대, ‘기대할 것들과 포기할 것들’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는 일본을 바꿀 수 있을까? 기시다는 9월 29일 열린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10월 4일 임시국회에서 일본의 제100대 총리에 오르게 된다.   기시다가 취임하면 21세기 들어 12번째(인물로 치면 아베가 2차례 헸기 때문에 11번째) 일본 총리가 된다. 자민당의 오부치 게이죠(小渕恵三·1998~2000년 재임), 모리 요시히로(森喜朗·2000~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2001~2006년), 아베 신조(安倍晋三·2006~2007),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2007~2008), 아소 다로(麻生太郎·2008~2009),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2009~2010), 간 나오토(菅直人·2010~2011), 노다 요시히로(野田佳彦·2011~2012), 다시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晋三·2012~2020) 2기, 스가 요시히데(菅義偉·2020~2021) 등이 그들이다. 1979년을 재임해 역대 장기 재임 6위에 이룬 고이즈미와 3186일간 자리를 지켜 1위를 기록한 아베를 제외하고는 모두 만 2년을 넘지 못한 단명 총리다.   이 때문에 기시다가 장기 재임할 수 있을지 아니면 단명 총리에 그칠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특히 자민당 입장으로선 장기 재임으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국을 운영한 장기 재임 총리인 아베와 취임 1년여 만에 코로나19 부실 대응 여파로 지지율이 급락해 사실상 경질된 스가를 1년 새 보고 있기 때문에 기시다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만약 기시다가 싹을 보이지 않으면 누구보다 빨리 경질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뚝심과 정치력, 정책력을 보여주고 대중의 인기를 확보할 경우 상당 기간 재임이 가능하다.       ━   ‘무색무취’ 정치인…내년 참의원 선거 승리 과제   기시다는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선거에 전력투구해야 할 입장이다. 오는 10월 말까지 중의원 선거를 치러야 하고, 내년 7월엔 참의원 선거도 기다린다. 이번 중의원 선거의 결과는 전임자 탓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내년 참의원 선거는 그야말로 기시다의 선거다. 자민당의 정치력, 정책력, 그리고 대중을 상대로 한 득표력은 곧바로 기시다의 책임 또는 업적이 된다.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곧바로 경질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번의 선거를 무사히 치르면 4년 정도는 큰 고비 없이 정주행할 수도 있다. 총리 기시다의 운명이 내년 7월까지 결판나는 셈이다.     기시다는 사실 무색무취의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 때문에 당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대중의 지지도는 낮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처세가 아베와 아소 체제의 지원을 얻어 큰 어려움 없이 자민당 총재가 되고 일본의 제100대 총리가 되는 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의원내각제인 일본 총리는 국민이 직선으로 뽑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기시다가 21세기 일본의 12번째 총리임에도 일본 정치의 낡은 관행을 온통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가 파벌 정치다. 사실 기시다는 파벌 간, 특히 최다 파벌인 호소다파의 아베 전 총리와 아소파의 아소 전 총리의 지원에 힘입어 자민당 총재에 당선될 수 있었다. 호소다 자신이 자민당 7대 파벌의 5위에 해당하는 기시다파의 수장이지만 아베와 아소의 지원 없이 당선이 불가능했다. 기시다가 대중적 인기는 낮은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기시다는 지난 9월 21일 보도된 산케이(産經)신문과 계열사인 후지뉴스네크워크(FNN)의 여론조사(응답자 1116명)에서 15.2%의 낮은 지지율로 52.6%의 지지를 얻은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개혁 담당상에 이어 2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대중적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중에게 기시다는 그저 고만고만한 정치인으로 비쳤다. 큰 문제도 없지만 그렇다고 총리감으로 매력적이지도 않은 인물이었다.   그런 기시다를 ‘일국의 총리’에 올린 것은 아베가 수훈갑이다. 아베는 파벌 소속 의원들을 총동원하는 것도 모자라 전화기를 들고 당 총재를 뽑는 1차 선거에 투표권이 있는 수많은 국회의원과 이들과 동수인 당원 및 당우(黨友·당원이 아닌 당 외부의 지원자와 관련자)를 설득했다. 기시다가 심지어 1차 투표에서 애초 1위가 예상되던 고노를 1표 차이로 누르고 1위를 차지한 것부터가 아베의 공로로 볼 수밖에 없다. 2차 투표는 국회의원과 47명의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대표로 이뤄지기 때문에 애초에 파별 담합으로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기시다는 1차 투표에서도 256표를 획득해 255표를 얻은 고노를 1표 차이로 앞섰지만 과반을 얻지 못해 결선투표에 갔다. 결선 투표에서 기시다는 넉넉하게 257표를 득표해 170표에 그친 고노를 87표 차이로 꺾었다. 고노 돌풍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아소의 경우 자기 파벌 소속인 고노가 대중적 인기를 엎고 독자적으로 총재에 출마하면서 파벌 차원의 지원을 하지 않고 기시다를 도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기시다 당선의 일등공신은 아베인 셈이다. 따지고 보면 아베는 일등공신 수준을 넘어 수렴청정하며 정국을 맘대로 조종하는 킹메이커로 등극한 셈이다.     ━   아베의 막강한 ‘파벌의 힘’ 드러나     지난 9년간 자민당의 파벌 간 합종연횡과 밀실 담합을 이끈 사람이 바로 아베와 아소였다. 현재 일본 자민당에는 호소다파(細田派·중의원 61명+참의원 35명=96명), 아소파(麻生派·42+13=55), 다케시타파(竹下派·32+20=52), 니카이파(二階派·37+10=47), 기시다파(岸田派·34+12=46), 이시바파(石派派·15+1=16), 이시하라파(石原派·중의원만 10) 등 7대 파벌이 있다. 무파벌은 불과 63명(중의원 45+참의원 18)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자민당은 케케묵은 파벌 정치를 해왔다.   21세기 한복판에 자민당 총재로 당선돼 사실상 총리 티켓을 예약한 기시다는 1955년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이 합당해 보수 빅텐트 정당인 자유민주당(자민당)이 탄생하면서 성립한 이른바 ‘55년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일본 재무장에 더욱 적극적인 일본민주당계와 덜 적극적이면서 미국에 협조적인 자유당계에서 비롯한 파벌이 분화와 합종 연횡을 거쳐 오늘날까지 파벌 정치를 이어오고 있다. 기시다도 아베의 도움으로 이런 파벌 정치의 수혜를 얻어 자민당 총재와 총리 자리를 거머쥐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가 정치 2선으로 물러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킹 메이커로서 뒷방에 자리 잡고 앉아서 기시다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면서 수렴청정을 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아베가 정치적 숙원으로 삼고 있는 평화헌법 9조 폐기와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드는 일, 자위대의 정식 군대화 등은 아베의 의지를 강하게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10월 4일 이후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나카타초(永田町)의 총리 공관에 들어설 기시다의 집무실에는 아베의 냄새가 날 가능성이 농후한 이유다.   기시다가 보여주는 일본 정치의 또 다른 모습이 세습정치다. 자민당에선 2017년 10월 총선으로 구성된 현재의 중의원 218명 중 72명, 즉 3분의 1이 세습의원이다. 중의원과 참의원 전체에선 29%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72) 총리 내각 각료의 과반수가 세습 정치인이다. 어디서 들은 듯한 성씨가 많은 이유다. 사실 이는 야당인 입헌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세습정치는 일본 정치의 봉건성·중세성을 보여주는 요소의 하나다. 자민당이 끊임없이 새로운 정치인이 들어오면서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하고 활력으로 가득 찬 정당이 아닌 세습 기득권 정치를 확대 재생산한다는 비판을 받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기사다는 조부·부친에 이어 3대 세습정치인이다. 와세다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집안의 지역구인 히로시마에서 9선을 기록했다. 최장수 외상(2012~17년)과 당 3역인 자민당 정조회장(2017~2020년)을 지냈다.     ━   성과와 업적을 낼 수 있는 정책 펼칠 가능성 높아   그런데도 기시다가 총리에 오르면서 일본 정치에는 일말의 희망이 모인다. 기시다는 우물 안 개구리가 판치는 일본 정계에서 그나마 국제사회를 보는 눈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어려서 미국에 거주해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드문 일본 총리가 된다. 주요 7개국(G7)이나 주요 20개국(G20), 쿼더 정상회의 등에서 통역 없이 외국 정상과 영어로 대화하는 일본 총리의 모습을 이젠 볼 수 있다. 기시다는 4년 7개월 넘게 외상으로 재임하면서 능력을 보였다.   특히 외상 재임 중이던 2015년 한국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파트너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일궜다. 당시 양국 합의와 일본의 유감 표명에 회의적이던 아베 총리를 설득한 것도 기시다였다. 반대로 합의가 번복됐을 때 정치적 책임을 뒤집어쓴 것도 기시다였다.   기시다가 일본이 지닌 수많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기시다는 29일 당선 연설에서 “정치가 국민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신뢰를 잃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신임 자민당 총재이자 총리 예정자인 기시다가 공개적으로 자민당이 이끄는 일본 정치가 위기이고 일본의 민주주의가 위기임을 인정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중요하다.   기시다는 또 “계속 국난이 이어지고 있다”며 “코로나19대책을 필사적인 각오로 이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코로나19와 이로 인한 경제난 극복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각오다. 앞으로의 정책 무게를 여기에 두겠다는 다짐이다. 그는 코로나19로 침체한 경기를 살리기 위한 수십조엔(수백조원) 규모의 경제 대책을 연내에 수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면서 “새로운 자본주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실현, 소자화(저출산) 대책 등 우리의 미래와 관련한 중대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오늘부터 전력으로 달리겠다”고 말했다. 코로나와 경제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외교·안보에선 미국에 협력하며 중국에 대응하는 인도·태평양 체제의 구축에 힘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기시다가 정치적 퍼포먼스보다 실제로 구체적인 성과와 업적을 낼 수 있는 정책으로 대결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 이유다. 사실 성과와 업적은 아베의 입김에서 벗어나 총리 기시다의 단명을 막는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다. 유일한 힘일지도 모른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1-10-02

쿠바 시위 근본 원인은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7월11일 쿠바 수도 아바나의 중심지에 있는 엘 카피톨리오(옛 쿠바 국회의사당) 주변에 인파가 몰렸다. 1929년 완공된 쿠바 국회의사당은 우아한 돔 지붕과 수많은 기둥이 이어진 주랑 현관으로 이뤄진 네오클래식 양식의 기품 있는 건물이다. 미국 워싱턴의 연방의사당과 흡사하다. 1899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해 쿠바를 스페인에서 독립시킨 미국의 민주주의를 따르겠다는 의지를 건축물로 구현한 유서 깊은 장소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리베르타드(Libertad·자유)”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쿠바에선 드문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쿠바 국회의사당은 혁명광장과 함께 쿠바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혁명광장의 내무부 청사 벽에는 강철 케이블로 만든 체 게바라의 이미지와 그가 했다는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Hasta la victoria siempre)”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국회의사당은 이처럼 관광객들이 쿠바의 역사와 혁명을 소비하는 두 곳 중 하나다. 이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것은 충격적이다.       ━   쿠바 리브레가 反공산당 시위 구호된 까닭     소셜미디어에는 한 여성이 “우리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고 외치는 영상이 올라왔다. 트위터 등에는 ‘#비바쿠바리브레(자유 쿠바 만세)’와 ‘#SOS쿠바’라는 해시태그가 줄을 이었다. 쿠바 리브레는 스페인에 대항하던 시절부터 쿠바 독립과 해방을 상징한 구호다. 럼주와 콜라를 섞어 만든 쿠바 칵테일의 하나이기도 하다.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쿠바에 살면서 즐겨 마셨다는 모히토(럼과 라임, 박하로 만든 칵테일), 다이키리(럼과 라임, 설탕으로 만든 칵테일)와 함께 쿠바를 대표하는 칵테일이다. 그런 쿠바 리브레가 생활고를 호소하며 공산당 반대 시위를 벌이는 쿠바 주민의 구호가 된 것은 그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다.     아바나 서남쪽 26㎞에 있는 산 안토니오 데 로스 바뇨스에서도 수많은 시위대가 줄을 지어 리베르다드(자유)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이 페이스북을 통해 중계됐다. 일부는 유튜브로 전파됐다.     일부 지역에선 주민들이 쿠바 정부가 운영하는 고가품 상점을 약탈하기도 했다. 쿠바는 2011년 개혁 조치로 일부 잡화 상점이나 작은 식당은 개인이 운영할 수 있지만 값비싼 전자제품이나 주류 등을 파는 가게는 국영으로 운영된다.     아바나 동쪽 150㎞에 있는 인구 13만의 도시 카르데나스에선 심지어 시위대가 공산당 간부와 경찰 차량을 뒤집고 환호하는 장면이 SNS에 올랐다.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카르데나스는 쿠바가 외국 자본(주로 스페인)을 유치해 개발한 해안 관광지인 바라데로에서 10㎞쯤 떨어진 곳이다.     바라데로는 육지에서 바다로 툭 튀어나온 긴 반도로 가운데에 주도로가 있고 그 양쪽, 남북으로 수많은 리조트와 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미국 플로리다 주 키웨스트에서 160㎞쯤 떨어진 곳으로 과거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는 사람들이 배나 뗏목을 타고 출발하는 곳이었다. 지금은 쿠바 관광산업의 핵심으로 외화를 버는 곳으로 변모했다.     인구 32만명으로 쿠바에서 셋째로 큰 도시인 중부 카마궤이에서도 시위대가 공산당 간부의 차량을 뒤집었다. 카마궤이는 중심부가 식민지 시대의 고풍스러운 건축물로 가득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이를 보러 관광객이 줄을 이었던 곳이다.     카르데나스와 카마궤이는 쿠바의 관광산업과 관련이 깊은 지역이다. 이런 곳에서 시위가 유난히 격렬하게 진행된 배경에는 경제적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19로 쿠바의 주요 산업인 관광산업이 마비되면서 주민들의 생활이 팍팍해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쿠바 경제 현황을 살펴보자. 인구 1135만명의 쿠바는 국내총생산(GDP)이 2018년 유엔 통계로 1050억 달러, 2019년 세계은행(WB) 통계로 1031억 달러다. 1인당 GDP는 2019년 유엔 통계로 9296달러, WB 통계로 9100달러에 이른다. 대부분 개발도상국인 중남미에선 비교적 괜찮은 경제를 꾸리는 편이다.     그런데 무역 실적과 내용을 보면 산업 구조상 문제가 보인다. 쿠바의 수출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팩트북 2017년 추정치로 26억3000만 달러다. 주요 수출품이 석유·니켈(쿠바는 주요 니켈 산지다)·의약품·설탕·담배(주로 시가)·수산물·감귤류·커피다. 주요 수출 대상국은 베네수엘라(17.8%)·스페인(12.2%)·러시아(7.9%)·레바논(6.3%)·인도네시아(4,5%)·독일((4.3%) 순이다.     수입은 110억6000만 달러로 석유·식품·기계장비·화학제품의 비율이 높다. 주요 수입국은 중국(22%)·스페인(14%)·러시아(5%)·브라질(5%)·멕시코(4.9%)·이탈리아(4.8%)·미국(4.5%) 등이다.     한눈에 봐도 무역 적자가 상당하다. 내다 팔 상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쿠바는 과거 식민지 시대에 기형적인 플랜테이션(선진국이나 다국적기업의 자본 및 기술과 원주민의 값싼 노동력이 결합돼 상품작물을 대규모로 단일 경작하는 농업 방식)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납치해 데려온 노예(1886년 해방)를 동원, 플로리다에서 식량을 수입해 이들을 먹여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이를 원료로 설탕을 생산해 미국과 유럽에 수출하는 삼각 무역의 중심지였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가 산업과 관광업, 그리고 니켈을 중심으로 하는 광업이 추가되는 정도다.     비스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현재 설탕의 국제가격은 파운드당 17센트에 불과하다. 게다가 국제설탕협회(ISO)에 따르면 글로벌 설탕 생산은 인도·브라질·태국·중국·미국 등 대규모 농업 국가가 주도한다. 2019년 기준 쿠바의 설탕 수출은 브라질의 거의 30분의 1 수준이다. 미국의 경제 제재가 아니더라도 쿠바 경제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셈이다.     쿠바는 무역적자와 경쟁력 부족을 관광산업과 해외 송금으로 보충해왔다. 지난 2017년 쿠바는 관광산업으로 25억 달러 정도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미국 등으로 망명한 해외 동포(과거엔 배신자였지만 쿠바의 정책이 바뀌면서 동포로 간주한다)들이 친척들에게 송금하거나 쿠바 내 소규모 비즈니스에 투자한 30억 달러가 주요 외화 수입원이다. 이 외화를 이용해 외국에서 석유를 사와 아이들에게 먹일 분유와 관광객들에게 팔 육류를 들여온다. 쿠바 내 축산업은 미미하다. 사료용 옥수수와 콩을 대규모로 들여와 가축을 키워야 하는데 거기에 투자할 외화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1959년 1월 1일 쿠바에 공산 정권이 들어선 뒤 경제사를 살펴보면 쿠바 경제가 왜 이런 상황에 부닥쳤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쿠바 공산 정부는 식량 배급, 무상 교육, 무상 의료의 사회주의 정책을 펴왔다. 이러한 무상 체제는 소련의 원조를 바탕으로 작동했다. 자립경제 기반을 구축하는 대신 사회주의 우호 가격이나 원조에 의존해왔다.      ━   쿠바 경제의 이유 있는 ‘몰락’   1991년 12월 26일 소련이 무너지고 원조가 끊기면서 쿠바 무상 경제의 품질이 추락했다. 특히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 설탕 산업이 흔들리면서 경제 전반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소련의 농약, 비료, 농기계, 연료 원조가 끊기자 농업이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급기야 식량난까지 덮쳤다.     고기가 필요한 주민들이 동물원을 약탈하고, 길거리의 고양이까지 잡아먹는 일이 생겼을 정도다. 쿠바의 ‘특별한 시기’다. 이는 북한의 ‘고난의 행군’과 유사하다.     이런 비극 속에서도 쿠바는 강력한 통제를 바탕으로 일당 독재의 공산체제는 유지했다.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생존 방식은 현저히 달랐다. 북한은 개혁과 개방을 거부했지만, 쿠바는 변신에 도전했다. 49년 동안 국가평의회장(대통령 격)을 맡던 피델 카스트로가 2008년 물러나면서 뒤를 이은 혁명 동지이자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는 체제 안에서의 개혁을 시도했다. 2011년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경제사회개혁방안’을 의결하면서 신(新)경제체제를 시작했다.     국가가 책임지던 국민 경제활동을 민간으로 과감하게 이양하는 것이 개혁의 핵심이다. 사실상 외화와 세수 부족, 실업자 증가로 더는 과거 무상 체제를 유지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대신 소규모 자영업을 육성해 경제 활성화의 길을 찾기로 방향을 틀었다. 피델 카스트로는 권위 상, 체면 상 자신이 이런 개혁을 하지 못하고 동생이 하는 것은 방관했다.     모든 것의 국영화를 포기하고 일부 자영업 육성을 위해 쿠바는 택시, 렌터카, 민박집, 민영 식당, 이발소, 청소업, 수리업, 건설 노동 등 관광업 진흥과 관련이 큰 181개 분야를 민영화했다. 무상급식 등 정부 부담 서비스의 제공을 일부 폐지하거나 축소했다.     2011년 자동차와 주택 매매도 가능해지면서 관련 산업도 발전을 시작했다. 2013년 1월 쿠바인의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비공식 무역이 늘었다. 파나마 자유무역 지대에 가서 국내 자영업 운영을 위한 재료와 소모품을 사왔다. 변화와 수구, 정부 주도와 민영화의 갈림길에서 쿠바는 변화와 민영화를 택했다.     그 결과 2008년 15만명에 불과하던 자영업자가 2015년 50만명을 넘어섰다. 자영업자의 60%는 과거 실업자였다. 친지 창업을 돕기 위한 해외거주 쿠바인들의 국내 송금도 매년 30억 달러 이상에 이르러 튼튼한 외화 자금원 구실을 했다.     관광객도 늘어 매년 25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안겨줬다. 90년대부터 전략적으로 국영 호텔과 리조트를 확충한 것과 함께 민박집과 민영 식당 등 외국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인프라를 확충한 덕분이다. 외국인을 배척하는 북한과 달리 쿠바는 외국인을 외화 수입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016년 400만명의 외국인이 쿠바를 찾은 것은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평가할 수 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2015년 1월 쿠바와 국교를 정상화하고 4차례에 걸쳐 경제 제재를 완화한 것도 쿠바의 이러한 경제 민영화 강화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는 현재도 유지하지만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제조업이 빈약하다 보니 무상교육으로 대학이나 고교를 졸업해 직장에 배정받아도 할 일이 없는 상황이 속출했다. 무상의료를 제공해도 출산율은 1.6%까지 떨어져 인구까지 줄었다.     미화 기준 25~30달러 수준의 국가 급여를 받는 쿠바인 의사들이 4배가 넘는 급여를 받을 수 있는 베네수엘라나 브라질 등 해외 근무에 대거 나서면서 국내 의료에 공백이 생기기도 했다. 일부 젊은이 사이에선 해외 이주를 탈출구로 여기는 풍조도 번졌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쿠바 경제는 빈사 상태에 이르렀다. 쿠바 경제를 지탱하던 관광과 해외 송금이 끊기면서 쿠바는 심각한 외화 부족 사태에 빠졌다. 자립 경제 기반이 부족하고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경제의 도입이 늦은 쿠바가 코로나19확산으로 인한 한계 국가의 대표적인 사례로 등장한 셈이다.     여기에 쿠바의 새로운 권력자가 된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의 경제 악수가 경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디아스카넬은 2018년 4월 19일 라울 카스트로에 이어 국가평의회 의장이 됐으며 2019년 10월 10일 대통령직이 43년 만에 부활하면서 제15대 대통령에 올랐다. 지난 4월 19일에는 라울 카스트로의 뒤를 이어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를 맡았다. 카스트로에 이어 국가의 새로운 1인자가 된 것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10일 25년 넘게 적용해온 이중 화폐제를 올해 1월 1일부터 폐지한다고 선언했다. 쿠바는 ‘특별한 시기’에 전통 페소화(CUP)의 가치가 추락하자 미국 달러화를 사실상 통화로 사용했다. 그러다 1994년 북한식으로 말하면 ‘외화와 바꾼 돈’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태환 페소(CUC)를 도입했다. 구어로 각각 쿱과 쿡으로 불리는 두 가지 화폐가 통용되는 이중 화폐제도다. 1쿡은 미화 1달러에 가치를 고정했다. 달러화를 현지에서 공식적으로 바꾸면 약간의 커미션을 떼고 쿡을 준다. 쿱은 외환과 교환되지 않는다.     디아스카넬은 이중화폐제를 폐지하면서 “기업환경을 개선하고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이 조치는 물가 상승을 부추겼다. 페소화 가치의 하락 탓이다. 디아스카넬은 통제로 사회주의 경제를 관리할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어차피 코로나19로 외국 관광객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 시장 경제는 의미가 없다고 봤던 것일까.     이런 통화 정책 실패는 국민의 불만을 부르고 거대한 시위의 소용돌이로 쿠바를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쿠바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경제 체제의 모순이었던 것이다. 쿠바 공산당은 여전히 시장경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시위가 벌어지자 디아스카넬은 맞불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뒤에 있다”며 미국 탓을 하며 음모론을 앞세워 주민의 분노를 힘으로 누르려고 시도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인데, 이를 정치 구호로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모양새다.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를 모르는 상황이다. 진단을 못 하니 처방도 나오기 힘들다. 쿠바의 앞길이 어두운 이유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1-07-18

창당 100년 중국 공산당의 생존비결은?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중국공산당(중공)이 7월 1일로 창당 100주년을 맞았다. 이날은 공식적인 중국공산당 탄생 기념일(중국 공산당 건당 기념일, 7·1 건당절)이다. 중국 공산당은 성대한 기념행사를 열었다. 중국 전역의 혁명 유적지는 9000만 명이 넘는 공산당원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실 중공이 실제로 창당된 날은 1921년 7월 23일이다. 이날 상하이(上海) 프랑스 조계(외국인 치외법권 지역)의 망지로(望志路) 106번지(현재 흥업로(興業路) 76번지)에서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열렸다. 중국 전역에 공산당원 57명(50여 명으로도 알려졌으며, 밝혀진 인물은 41명)을 대표하는 13명과 첫 대표회의를 요구한 외국인 코민테른 요원 2명 등 모두 15명이 모였다. 마지막 날인 30일 조계의 프랑스 경찰이 현장에 들어와 수색하고 순찰을 강화하자 이들은 상하이에서 서남쪽으로 100㎞쯤 떨어진 저장(浙江)성 자싱(嘉興)에 있는 유람선으로 옮겨 대회를 마쳤다. 그리고 당의 기본 임무와 민주집중제 등 조직원칙, 규율 등을 담은 중국공산당 강령을 채택했다. 천두슈(陳獨秀·1879~1942)가 중앙집행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그렇다면 왜 7월 23일이 아닌 7월 1일이 건당 기념일이 됐을까?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이 1938년 5월 옌안(延安)에서 내놓은 ‘지구전을 논하다’에서 7월 1일을 창당 기념일이라고 언급한 게 계기다. 그 뒤 1941년 6월 공산당 중앙위원회 문건에서 ‘창당 20년, 7·7절 4년’이라고 표현하며 그날 기념식을 열기로 하면서 7월 1일이 공식적으로 정착됐다. 7·7절은 1937년 7월 7일 베이징(당시엔 베이핑(北平)) 서남쪽의 루거우차오(盧溝橋)에서 일본군의 자작극으로 벌인 발포로 중일전쟁이 시작된 날을 가리킨다.     중국공산당이 100년을 생존한 요인은 무엇일까. 가장 큰 비결로 경제 업적을 들 수 있다. 오늘날 중국공산당은 현대 중국사를 주도한 핵심 세력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들은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의 개혁·개방을 바탕으로 이룬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룬 주역으로 자평한다.       ━   마오쩌둥 실수 딛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오늘날 중국은 14억4399만 명 인구에 명목 금액 기준 국제통화기금(IMF) 2021년 국내총생산(GDP) 예상치가 16조6400억 달러로 미국(22조6752억 달러)에 이어 세계 2위다. 그 뒤를 잇는 일본(5조3781억 달러), 독일(4조3192억 달러), 영국(3조1246억 달러), 인도(3조497억 달러)보다 한참 앞선다. 중국의 2021년 1인당 GDP 예상치는 1만1819달러로 세계 78위다. 세계 평균을 조금 넘는 액수다. 2020년 수출 2조5900억 달러에 수입 2조600억 달러다. 말 그대로 눈부신 성적표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고 마오쩌둥식 공산주의 이념을 정치·경제·사회에 확산했다. 건국 초기인 1950~70년대 초 중국은 거대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에 나서기까지 중국에선 역사 발전의 바퀴가 사실상 멈춰 섰다.     1949년 중국을 장악한 중국공산당과 마오쩌둥은 전국에 자신들의 이념을 적용하려고 시도하다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중국 인민이 받았다. 중국 헌법 서언(서문)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된 후…노동계급이 지도하는 노농동맹을 기초로 한 인민민주주의 독재 즉 실질상의 무산계급독재가 강고해지고 발전되었다”고 적혀 있다. 여기에 초기 시행착오의 원인을 엿볼 수 있다.     중국공산당은 1950년대 초 ‘인민민주주의’를 앞세워 지주를 비롯한 ‘반혁명분자’를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인민민주주의는 무산계급이 지주·자본가와 기득권층으로 이뤄진 유산계급이 지배하던 봉건 체제를 무너뜨린 뒤 공산당 중심의 중앙집중적인 권력체계를 구성하는 것을 가리킨다. 무산계급이 인민의 적인 유산계급과 반혁명분자를 배제하고 적대시하면서 독재를 펼친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중국 당국이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인민민주주의를 가리킨다. 이는 당의 지도와 지배 아래에서 이뤄지는 체제이기 때문에 개인의 의지와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하는 서구 자유민주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중국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소련을 만든 블라디미르 레닌이 주창한 ‘민주집중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민주집중제는 ‘토론은 자유롭게 하되 일단 당이 결정하면 따르는 것’을 가리킨다. 당이 정하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은 1951년부터 사상개조 운동과 함께 부패·낭비·관료주의에 반대한다는 삼반(三反) 운동, 그리고 뇌물·탈세·국영재산강탈·정부계약사기·국가경제정보누설을 반대한다는 오반(五反) 운동을 펼쳤다. 둘을 합쳐 삼반오반운동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반혁명 세력 타도에 나섰다. 1955~57년에는 반우파운동을 펼쳐 공산당에 대한 불평불만 분자를 제거에 나섰다. 토지개혁, 집단농장 등 반대파 숙청 등을 통해 공산당은 독재체제를 확립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발전은커녕 혼란에 빠졌다.       ━   덩샤오핑, 헌법개정으로 개혁개방 시작   그 뒤에는 더 큰 사건이 벌어졌다. 1957년 반우파 투쟁으로 공산당의 주도권을 장악한 마오쩌둥은 1958~1961년 대규모 인력 투입으로 농업과 공업의 대규모 증산을 노린 대약진 운동을 진행했다. 그는 반대파를 숙청하고 인민공사와 합작사, 집단식당 등을 운영하면서 인민의 재산을 공유화하고 공산주의 정책을 추진하면, 15년 안에 미국과 영국을 따라잡을 만큼 고도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위해 마오쩌둥은 농촌에 소형 용광로를 다량 보급해 쇠를 생산하는 등 기기묘묘한 정책을 펼쳤다. ‘참새는 해롭다’는 그의 말 한마디에 참새를 대대적으로 잡는 바람에 참새가 먹던 해충이 창궐해 농촌에 대규모 흉년이 들었다. 중국 전역의 산업과 인프라, 그리고 환경이 대대적으로 파괴되면서 전국이 혼란에 빠졌고, 그 결과 대기근이 발생해 이 시기에만 1500만~550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1966년~1976년에는 권력 회복을 노린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을 일으키며 중국은 또다시 암흑기에 빠져들었다. 문화대혁명은 인민민주주의를 더욱 확고화 한다면서 어린 홍위병의 폭력에 의존해 민중의 사상과 행동을 통일하려고 시도한 사건이다. 명분은 ‘봉건적 문화와 자본주의 문화를 비판하고 새로운 사회주의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수세에 몰린 마오쩌둥의 정치적인 술수라는 평가다. 이때 발생한 사망자가 수십만에서 2500만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학교는 폐쇄됐고 지식인·문화예술가들과 마오쩌둥에 맞서던 공산당 지도부는 대대적인 탄압을 받았다. 공산당 원리주의 또는 교조주의의 생생한 모습이었다.     마오쩌둥 집권 시절인 1954년 제정된 중국 헌법은 그의 말년인 1975년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되면서 공산주의 색채를 희석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입각한 현대 국가 건설에 힘을 실어줬다. 1975년 첫 헌법 개정 때는 당시에 이미 유명무실했던 국가주석 제도를 폐지하는 등 정치·제도적 변화에 그쳤다.     하지만 1976년 마오쩌둥이 세상을 떠난 뒤인 1978년 3월에 이뤄진 헌법 개정은 중국과 중국공산당의 방향을 대대적으로 바꿔놓았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불리는 덩샤오핑이 그야말로 작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은 이를 위한 첫 조치로 공산주의 계급투쟁 노선을 의미하는 ‘전면적인 독재’라는 구절을 헌법에서 뺐다. 그 대신 공업·농업·국방·과학기술의 현대화를 가리키는 ‘4개 현대화’를 헌법에 명문화했다. 4대 현대화는 저우언라이(周恩來,1898~1976년)가 주창했던 정책으로 덩샤오핑은 이를 중국의 공식 경제정책으로 삼았다. 이념보다 실용을 앞세운 조치다.     ━   중국 경제 살린 ‘흑묘백묘’론   변화를 위한 기반을 다진 덩샤오핑은 1978년 12월 열린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2회 전체회의에서 개혁·개방 정책을 제안했다. 국내체제 개혁과 대외개방 정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바로 1978년 개헌이었다. 그해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싱가포르에 다녀온 뒤였다. 당시 헌법에 삽입된 4개 근대화는 개혁·개방의 상징으로서 경제성장의 소중한 거름이 됐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사상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으로 대표된다. 이념보다 실용을 앞세운 덩샤오핑의 생각이 잘 반영된 말이다. 여기에 ‘자본주의에도 계획경제가 존재하듯 사회주의에도 시장경제가 있다’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론, 일방적인 평등화보다 ‘부유할 수 있는 사람부터 먼저 부유해져라’는 선부론(先富論)을 합치면서 덩샤오핑의 경제사상이 완성됐다.     덩샤오핑의 신념은 공산당 지배는 그대로 둔 상태에서 헌법 개정 작업을 통해 실현되기 시작했다. 그는 “인민들이 잘 먹고 잘사느냐가 사회주의냐 아니냐의 핵심”이라며 실용주의 노선을 앞세웠다. 공산주의의 기본정신은 부정하지 않고, 인민 민주주의 독재 정치체제를 지키며, 공산당의 지도력을 유지한다는 중국 사회주의의 3가지 원칙은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을 통해 부강한 중국을 건설한다는 것이 덩샤오핑의 의도였다. 이는 그 뒤 중국 헌법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1979년 헌법 개정은 정치적인 보수화를 상징한다. 공산당은 4대 민주, 또는 4대 자유로 불렸던 대명(大鳴·자유로운 발언)·대방(大放·자유로운 조직과 활동)·대변론(大辯論·자유토론)·대자보(大字報·벽보 붙이기)를 폐지했다. 78~79년 웨이징성(魏京生) 등이 베이징 시단(西單)의 벽에 민주화·자유를 선전하는 대자보를 붙인 ‘민주의 벽’ 운동이 원인이었다.     중국공산당이 개헌을 통해 개혁·개방의 한계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4대 민주는 문화혁명 시기 인민의 완전한 언론·조직 활동을 보장해 기득권 세력을 타도한다며 한때 마오쩌둥이 주창했던 인민동원방식이었다. 하지만 민주의 벽 운동에선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1982년 개헌도 보수파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공산당은 사회주의, 무산계급독재, 공산당 영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의 4원칙을 지킨다는 내용의 ‘4항 기본원칙’을 헌법에 반영했다. 급진적인 개혁 요구를 제한하겠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덩샤오핑은 중국의 개혁개방은 정치개혁 없는 경제개혁임을 분명히 했다. 그런 다음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다당제·공정선거 등 정치개혁 없이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근본적인 경제적 변화를 이룰 수 있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들은 개혁·개방 과정에서 개혁파와 보수파의 갈등이 있었으며 이를 서로 타협해 해결했음을 보여준다.       ━   지금 중국경제는 타협의 산물   이런 개혁을 통해 보수파를 달랜 덩샤오핑은 시장경제로 더욱 달려 나갔다. 1988년 개헌에선 헌법 11조에 “자영경제, 사영경제 등 비공동소유경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중요한 구성 부분”임을 인정하고 “국가는 자영경제 사영경제 등 비공유 경제의 합법적 권리와 이익을 보호한다”라고 명문화했다. 민간경제의 가치와 지위를 인정하는 내용이 추가된 셈이다. 토지사용권 양도도 가능하게 했다.     1993년 개헌에선 국유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분리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소유권과 경영권의 분리는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선 개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기업 활동에서 공산당이나 정부의 입김을 배제한 획기적인 조치이기 때문이다.     1999년 개헌에선 덩샤오핑 이론에 헌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사회주의 법치국가 건설을 추진했다. 헌법 5조에 “어떠한 조직이나 개인도 헌법과 법률을 초월하는 권리를 가질 수 없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며 사회주의 법치국가를 건설한다”며 법치를 명문화했다. 법치의 도입은 중국의 변화를 상징한다. 실제로는 법도 공산당보다는 앞설 수 없는 게 현실이지만 말이다.     2004년에는 사유재산권 보장을 헌법에 못 박았다. 헌법 13조에 “공민의 합법적인 사유재산은 불가침”이라는 내용을 넣었다. 사유재산 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 제도를 실현해 빈부 격차를 없앤다는 고전적 공산주의 이념이 인민이 잘 먹고 잘살아야 한다는 절실한 요구 앞에 잠시 고개를 숙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중국공산당은 항상 중국의 선진사회 생산력의 발전 요구, 선진 문화의 전진 방향, 인민 대부분의 근본 이익을 대표한다는 장쩌민(江澤民)의 3개 대표 사상에 대한 헌법적 지위도 확립했다.     중국공산당도 변했다.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변모를 꾀했다. 개혁·개방 초기 과거의 잘못된 판결과 정치적 평가를 바로 잡는 평반(平反)을 활성화했다. 이는 문화대혁명을 포함한 과거 역사의 과오를 청산하고 중국 사회를 재구성하는 계기가 됐다. 심지어 당원 자격도 무산대중에서 당을 지지하는 홍색 자본가로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 사회주의는 정치적 의미를 상실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의 정치적 권위는 그대로 유지됐다. 이를 통해 중국공산당은 변화와 개혁을 실험할 수 있는 더욱 강력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중국공산당이 지금까지 100년의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건국 초기의 실수를 바로잡으려는 내부 노력에서 찾을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성과만 보지 말고 내부의 변화 과정을 더욱 정밀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중국공산당의 장단점이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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