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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가 확인해 준 ‘느슨한 관계’의 힘 [한세희 테크&라이프]

    우리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의 네트워크 속에 살고 있다. 이 네트워크는 우리의 삶과 직업적, 사회적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맥은 흔히 성공의 필수 요소로 간주되며, 사람들은 인맥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당신의 카카오톡 친구는 몇명인가요?   이러한 인맥, 혹은 네트워크의 효과를 잘 설명하는 말로 ‘느슨한 연결(weak times)의 힘’을 들 수 있다. 친한 친구나 가족 같은 ‘강한 연결(strong ties)’ 관계가 아니라 안면 정도 있는 지인이나 친구의 친구들을 통해 더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느슨한 연결은 특히 새로운 직장을 찾거나 이직할 때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과는 서로 네트워크가 겹치니 큰 도움이 안 되지만, 적당히 거리가 있는 사람을 통해서는 지금의 인맥과는 다른 더 넓고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느슨한 연결은 1973년 미국 스탠포드대학 교수였던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타가 제시한 개념이다. 그가 미국 보스턴 지역 직장인 28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이 지인을 통해 현재의 일자리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친한 사람을 통해 직업을 얻은 사람은 드물었고, 84%는 어쩌다 한번씩 보는 지인의 소개가 큰 역할을 했다고 응답했다. 그라노베타 교수는 이를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정보의 수영장 속에서 헤엄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강한 연결과 느슨한 연결은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학 이론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대규모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실증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고, 때로는 반대로 강한 연결이 더 이직과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는 등 논란이 적지 않았다.     ━   하버드-MIT 연구진, 링크드인으로 ‘느슨한 연결’ 이론 검증     하지만 인터넷 시대를 맞아 우리는 이러한 네트워크 이론을 실증해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을 갖게 되었다. 바로 소셜 네트워크이다. 페이스북 친구나 트위터 팔로워는 대부분 직접 얼굴을 맞대고 교류하는 친한 친구가 아니라 같은 업계나 관심사, 친구의 친구 같은 막연한 공통점을 배경으로 한 지인에 가깝다.   소셜 미디어 기업들은 ‘알 수도 있는 사람(People You May Know)’과 같은 친구 추천 기능을 통해 이 같은 느슨한 연결을 부추겼다. 실제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이전이라면 접할 기회가 없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나 숨은 고수들과 교류하고, 나아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사업 또는 경력의 기회를 얻었다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수억, 수십 억의 사용자를 가진 초거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이러한 ‘느슨한 연결’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최선의 장이다. 실제 이런 연구가 이뤄진 소셜 미디어가 있다. 바로 8억명 이상의 회원을 가진 ‘직장인들을 위한 소셜 미디어’ 링크드인이다. 이 실험의 결과가 정리되어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다. 링크드인의 친구 추천 알고리즘에 따른 결과 데이터를 하버드대학과 MIT 연구진이 분석했다.   링크드인은 최적의 친구 추천 알고리즘을 찾기 위해 사용자 일부를 무작위로 골라 서로 다른 추천 방식을 적용했다. 한 사용자 그룹에는 사회적 연결 고리가 약한 사람을 추천하는 비중을 높여 느슨한 연결을 많이 형성하게끔 했다. 다른 그룹에는 연결 고리가 강한 사람을 상대적으로 많이 추천해 강한 연결을 형성하게 했다. 이어 각 그룹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세 일자리에 지원하는지, 새로 맺어진 친구와 같은 직장에 입사하는 경우는 얼마나 되는지 살폈다.   5년에 걸쳐 약 2000만명을 대상으로 테스트가 이뤄졌고, 이로 인해 20억건의 새 친구 관계와 60만건의 신규 고용이 일어났다. 연구자들은 테스트 결과를 익명화한 데이터를 활용해 사회적 연결의 강도와 이직 성공률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다. 느슨한 연결 이론에 대한 최초의 실증적 인과 관계 분석이라 하겠다.     ━   적절히 느슨한 관계가 구직에 최적   결과는 느슨한 연결 이론과 대체로 부합했다. 느슨한 관계는 강한 관계에 비해 사용자가 새 직장을 찾는데 있어 2배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느슨하다고 무작정 좋은 것은 아니었다. 적절한 수준의 느슨함은 구직에 도움이 됐지만, 어느 정도를 벗어나면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함께 아는 친구가 10명 정도 되고, 상호 교류는 거의 없는 정도의 관계가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느슨한 관계의 효과는 업종에 따라서 달랐다. 디지털 산업에서는 영향이 컸고, 전통 산업에서는 강한 관계의 힘이 상대적으로 강했다. 이는 강한 관계가 구직에 더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이 나왔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우리는 본래 ‘노는 물’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분야에서 사람들과 캐주얼한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는 것이 경력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란 실용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이런 비즈니스의 지혜만큼 주목해야 할 점은 아마 링크드인의 서로 다른 알고리즘에 따라 각 사용자의 네트워크가 느슨한 또는 강한 모습으로 순조롭게 형성됐다는 점일 수 있다. 소셜 미디어 같은 디지털 플랫폼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커지고 있고, 이는 이들 플랫폼의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이나 정책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테스트 기간 중 느슨한 연결을 추천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좋은 구직 기회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물론 강한 연결 관계에서 이직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사용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구직 기회를 잃었다고 보기도 애매하다. 그럼에도 플랫폼 기업의 블랙박스에 조금씩 더 많이 운명을 맡기는 듯한 느낌은 어딘가 찜찜하다.   메타 역시 2014년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부정적 감정을 담은 게시물을 많이 노출시키면 이를 접한 사용자 역시 부정적 게시물을 올릴지 테스트했다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70만명에 가까운 페이스북 사용자가 실험 대상이 됐다.   우리의 감정이나 일자리에 대한 결정 등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들이 몇몇 기업의 자세히 알기 어려운 알고리즘이나 테스트에 의해 영향받거나 혹은 조작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의 삶에 집합적으로 영향을 미칠 변화들이 지금도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최영진 기자 choiyj73@edaily.co.kr네트워크 한세희 소셜 네트워크 네트워크 이론 소셜 미디어 1654호(20221003)

2022-10-01

인공지능보다 더 잘 그릴 수 있습니까? [한세희 테크&라이프]

    “빛이 있으라 하시니…”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오직 ‘말씀’만으로 세상을 창조했다. 반면 인간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손과 도구를 써야 한다. 창의성은 인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지만,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재능과 도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기술 발전과 함께 새롭고 더 좋은 도구는 계속 나오고 있고, 인간이 창의성을 드러내기는 점점 쉬워지고 있다. 워드프로세서는 원고를 쓰고 교정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에 드는 시간과 노력을 크게 줄여주었다. 블로그와 소셜미디어는 글이 쉽고 빠르게 퍼질 수 있게 했다.   고화소 카메라를 가진 스마트폰과 영상 편집 프로그램의 보급 덕분에 학생들도 어느 정도 의지와 노력이 있으면 그럴 듯한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디지털 음악 프로그램은 음악 창작을 더 쉽게 했다. 요즘에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몰라도 간단한 소프트웨어를 짤 수 있는 ‘노-코드’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이는 미술과 사진, 일러스트 같은 시각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포토샵 같은 소프트웨어, 태블릿PC 같은 기기는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활짝 열었다. 대부분의 아마추어 사용자들에게 포토샵은 소셜미디어에 올릴 프로필 사진이나 증명사진을 ‘뽀샵’하는 용도이긴 하지만 말이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추세에 불을 붙였다. 인공지능 개발사 오픈AI가 공개한 GPT-3와 같은 대규모 인공지능 자연어처리 모델이 유명한 작가의 문체나 스타일을 모방해 그럴듯한 시나 소설까지 써 내 우리를 놀라게 한지 벌써 2년이 지났다. GPT-3는 웹에서 학습한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사용자의 지시나 명령에 따라 자연스러운 문장을 생성해낸다.     ━   그림 그리는 인공지능 잇달아 등장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글을 뽑아내는 인공지능이 있다면, 그림을 그려내는 인공지능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사용자가 원하는 구성과 스타일의 그림을 생성하는 이미지 합성 인공지능들이 잇달아 등장하며 주목받고 있다. GPT-3와 같은 텍스트 생성 인공지능에 이어 이제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이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이다.   이미지를 생성하는 인공지능 역시 꾸준히 연구돼 왔지만,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해 등장한 ‘달리(DALL-E)’이다. GPT-3를 만든 오픈AI가 개발한 DALL-E는 그림에 대한 설명을 텍스트로 입력하면 그에 맞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이다. ‘하프로 만든 달팽이’나 ‘아보카도 안락의자’ 같은 문장을 주면 그에 맞는 이미지를 그린다.   최근엔 해상도를 높이고, 결과물을 편집할 수도 있는 두번째 버전 ‘DALL-E2’가 나왔다. CEO는 백인 남자로만, 간호사는 백인 여자로만 묘사하는 등의 편향성 문제도 개선했다. 소수의 사람에게만 공개해 폐쇄적으로 운영했던 DALL-E와 달리 DALL-E2는 사용자를 100만명까지 초대할 계획이다. 또 월 15달러 유료 구독 상품도 내놓고, 사용자가 DALL-E2로 만든 이미지를 판매할 수도 있게 하는 등 시장 개척에 나섰다.   최근 구글은 이매젠(Imagen),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메이크-어-신(Make-A-Scene)’이라는 비슷한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도구를 선보였다. 메이크-어-신은 시용자가 간단한 그림을 그려 첨부하면 그 구도에 맞춰 그림을 그려주는 기능도 있다. 사용자의 의도를 보다 충실히 반영할 수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이미지 합성은 이제 빅테크 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스타트업이나 작은 연구자 그룹들도 나름의 이미지 생성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스테빌리티AI라는 스타트업은 대학 인공지능 연구소 및 동영상 소프트웨어 기업들과 협력해 ‘스테이블 디퓨전’을 선보였다. DALL-E 같이 빅테크 기업이 만든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 못지 않은 성능을 보여주면서, 비교적 제약 없이 자유롭게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게 했다. 페이크 이미지 생성 등을 우려해 특정 종류의 이미지 생성은 금지하는 등 여러 제약을 걸어 놓은 대기업들의 이미지 생성 모델과는 다른 접근이다.   미드저니라는 연구 팀이 만든 같은 이름의 이미지 생성 모델은 메신저 디스코드를 통해 접근할 수 있고, 다른 사용자와 결과물을 공유할 수도 있다.     ━   인공지능은 인간 창의성의 조력자?   지난해 DALL-E가 처음 나왔을 때도 예상 외의 이미지 품질로 우리를 놀라게 했지만, 최근 쏟아져 나오는 이미지 생성 모델들은 더욱 정교하고 풍부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티스트가 힘줘서 만든 영화나 게임 컨셉 아트나 정교한 일러스트와 비교할 만한 수준이다.   그림에 재주가 없어도 말(글)로 지시만 내리면 그럴듯한 작품이 창조된다. 적어도 시각 예술에 있어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한 신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셈이다.   이는 당연히 무엇이 창작이고, 또 예술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열린 주 정부 개최 박람회 미술대회의 디지털 아트 부문에서 미드저니로 만든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라는 이미지가 1위를 차지해 논란이 됐다.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예술 작품이라 부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주최측은 디지털 기술의 도움을 받는 것은 허용된다며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따지고 보면 이는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 미술계가 겪었던 몸살과 비슷하다. 사진이 인물화와 풍경화의 영역을 치고 들어오면서 화가들은 빛이 만들어내는 인상, 마음 속 심상을 표현하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는 인상파를 비롯한 현대 미술의 출발점이 됐다.   거슬러 올라가면 현실을 묘사하는데 집중한 근대 이전의 화가들도 사진 원리를 이용한 도구의 도움을 받았다.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일종의 암실 장치로 풍경이나 인물을 투사해 밑그림을 얻은 후, 이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사진은 이렇게 얻은 이미지를 화학적으로 보존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등장한 것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유명 화가들 역시 이 장치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지 생성 AI는 어쩌면 현대의 예술가들을 위한 카메라 옵스큐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밑그림들을 가지고 더욱 풍부한 창작의 세계를 탐구할 발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이 이렇게 훌륭하게 그려 놓은 재료를 갖고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내려면 인간의 예술 활동은 더욱 치열해지지 않으면 안될 듯싶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최영진 기자 choiyj73@edaily.co.kr인공지능 한세희 인공지능 이미지 인공지능 개발사 대규모 인공지능 1652호(20220919)

2022-09-17

인스타그램, 틱톡처럼?… 친구와 기계의 추천 대결 승자는? [한세희 테크&라이프]

    “인스타그램을 다시 인스타그램답게!”   미국의 유명 연예인이자 인플루언서인 킴 카다시안과 카일리 제너 자매가 최근 인스타그램에 올린 밈(meme)이다. 여기에는 “인스타그램을 틱톡처럼 바꾸지 말라”, “우리는 친구들의 사진을 보고 싶을 뿐”이라는 문장도 담겨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어마어마한 돈을 긁어 들이는 인플루언서인 이들이 인스타그램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서비스 개편을 통해 인스타그램이 디자인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중국의 숏폼 비디오 앱 틱톡을 따라했다.     ━   인스타그램을 틱톡처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앱에서 콘텐트가 노출되는 방식을 틱톡처럼 바꾸었다.   인스타그램은 친구의 콘텐트를 우선 추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선호를 판단해 추천하는 콘텐트의 비중을 높였다. 내가 모르는 사람의 게시물이 피드에 올라올 가능성이 커졌다. 또 틱톡 방식의 숏폼 영상인 ‘릴스’가 많이 보이도록 조정했고, 틱톡처럼 영상이 스마트폰 화면 전체를 차지하며 나타나게 했다. 페이스북도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트의 노출 비중을 높였다.   사용자 간 친구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추천 알고리즘이나 화면 전체를 차지하는 영상 등은 모두 틱톡의 시그니처다. 메타는 2020년 인스타그램에 틱톡과 똑같은 ‘릴스’를 선보이고, 영상 비중을 높이는 등 급성장하는 틱톡을 의식한 행보를 이어 왔다. 이제는 아예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핵심인 친구 기반 콘텐트 노출 방식마저 틱톡 같이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 개편에 대한 사용자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틱톡을 모방하느라 친구 사진이 줄어드는 등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특유의 매력이 사라진다는 불만이 잇달았다. 카다시안과 제너도 공유한 ‘인스타그램을 다시 인스타그램답게’ 밈이 바이럴을 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둘이 합쳐 6억 8600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카다시언 자매의 발언은 바짝 마른 건초더미에 마지막 불씨가 튄 셈이 되었다. 결국 인스타그램은 서비스 개편을 잠정 중단했다.     ━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철옹성 페이스북 흔들리다   페이스북은 친구 관계를 맺은 사람들, 그리고 사용자가 ‘좋아요’를 누른 페이지의 글과 사진을 공유하는 ‘소셜 미디어’이다. 인스타그램 역시 팔로우 관계를 중심으로 사용자에 사진과 영상을 노출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소셜 미디어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구축한 사용자 간 친구 관계, ‘소셜 그래프’는 메타의 핵심 자산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이 사회적 관계망을 바탕으로 사용자 30억 명에 가까운 거대한 소셜 미디어 제국을 구축했다. ‘소셜’을 키워드로 스마트폰 시대에 올라탄 메타는 모바일 시대의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는 사용자의 친구 관계와 관심사를 활용해 끝없이 콘텐트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과 시간을 붙잡아 두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생산해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올리는 글과 사진, 영상은 신문과 방송 같은 기존 미디어에 치명상을 입혔다.   메타가 구축한 요새는 좀처럼 외부의 적이 함락하기 어렵다. 소셜미디어는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각 사용자에게 돌아가는 가치도 커지는 네트워크 효과가 강한 곳이기 때문이다. 일단 네트워크 효과를 일으킨 선도 주자가 나타나면, 다른 기업이 그 자리를 빼앗기란 대단히 어렵다. 특히 메타 산하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왓츠앱처럼 각각 10억 명 혹은 20억 명 이상의 사용자 네트워크를 확보한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메타가 구글과 함께 세계 디지털 광고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   소셜미디어 시대의 종말   그런 메타가 틱톡처럼 인공지능 알고리즘 중심의 추천 시스템을 도입하려 한 것은 사실상 ‘소셜 미디어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조종이나 다름없다. 틱톡에는 친구가 없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는 달리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의 영상에 더 관심을 보이리라는 가정 같은 것은 없다. 오로지 인공지능이 사용자가 좋아할 만하다 판단해 띄워 주는 스크린 가득 찬 영상을 엄지손가락으로 넘겨 가며 볼 뿐이다.   흥미로운 점은 메타가 사람들의 친구 관계를 분석해 제공하는 소셜 콘텐트보다 사용자의 영상 시청 선호도를 분석해 제시하는 틱톡의 콘텐트가 사람에게 더 재미있게 여겨지고, 시간과 관심을 더 많이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앱 시장조사 회사 센서타워에 따르면, 틱톡은 올해 1분기 1억 7600만 건 다운로드 되었다. 인스타그램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앱이 되었다. 틱톡은 사상 5번째로 35억 건 다운로드를 기록한 앱이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 이제 사람들은 유튜브보다 틱톡에서 더 오래 영상을 본다.   개별 사용자의 친구 관계를 기반으로 한 소셜미디어가 순전한 ‘엔터테인먼트’를 표방한 틱톡에 자리를 내 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친구와 가족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온라인 공간에서 친밀한 사람들 사이의 교류는 메시징이나 24시간 후 사라지는 ‘스토리’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셜미디어는, 이미 충분히 매스미디어로 변질되긴 했지만, 이제 더욱 노골적으로 대중 매체로 바뀌어 가고 있다.   저커버그는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친구 관계와 상관없이) 추천에 의해 보여지는 콘텐트 비중이 현재 15%에서 30%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메신저로 시작해 소셜 플랫폼이 된 카카오는 이제 ‘관심사가 같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이미 카카오톡 대화량의 40%는 오픈 채팅에서 일어나고 있다. 오픈 채팅 사용자 수는 2019년보다 76% 늘었다.   인스타그램은 ‘틱톡화’에 대한 역풍이 일자 일단 디자인을 예전으로 되돌렸다. 하지만 틱톡 같은 비디오가 콘텐트 소비의 중심이 됐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영상 기반 엔터테인먼트가 사람들을 더 끌어들이는 추세도 변하지 않았다. 아마 메타는 언제든 다시 틱톡처럼 모습을 바꿀 준비를 할 것이다. 기존 소셜 그래프를 지키면서 거부감 없이 틱톡처럼 되는 것이 메타의 중단기 과제인 셈이다. 어쨌든 우리가 알던 소셜미디어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한세희 라이프 소셜미디어 플랫폼 틱톡 방식 친구 관계 1647호(20220808)

2022-08-06

페이스북 DNA에 메타버스 있을까? [한세희 테크&라이프]

      “5년 후 페이스북은 소셜미디어가 아니라 메타버스 기업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얼마 전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페이스북은 소셜 미디어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 860억 달러(약 98조원)의 세계 최대 소셜 미디어 기업이고, 이 사업으로 5대 빅테크 기업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이제 페이스북은 소셜 미디어가 아니라 메타버스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은 지난 6월말 직원들에게 메타버스 비전을 내부 공유했고, 7월 하순 저커버그 CEO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를 대중에 공개했다.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도 메타버스를 거론했다.     ━   페이스북이 그리는 메타버스 모습은?   페이스북이 제시한 메타버스의 비전은 포괄적이다. 마치 SF영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 급진적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은 우선 마치 옆에 앉아 대화하는 듯한 ‘실재감’(presence)을 디지털 공간에서도 구현하고 싶어한다. 친구와의 온라인 대화, 채팅, 화상회의와 업무 등이 보다 현실감 있게 이뤄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안에 ‘들어가 있는’ 경험이 목표다. 저커버그는 이를 ‘체화된 인터넷’(embodied internet)이라 불렀다.   이러한 메타버스 안에 사람들이 디지털 창작물을 만들어 사고 파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펼쳐진다. 지리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듯, 디지털 가상 공간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말이다. 또 세계 어디에 있건 업무에 지장이 없어진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하지 않고도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메타버스의 구축과 운영은 한 기업에 의해 이뤄질 수 없고, 여러 기업과 기관이 참여해 탈중앙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또 여러 메타버스 간에 호환성이 있어 한 메타버스에서 만든 디지털 자산을 다른 곳에서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이스북은 메타버스 제품 개발을 위한 별도 조직을 신설하고 수백 명 규모의 신규 채용 계획도 밝혔다. 저커버그는 사내 제품개발, 커뮤니티, 크리에이터, 상거래, VR 관련 조직들이 한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의 메타버스 드라이브가 성공할 지 판단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메타버스 행보가 이들의 기본 경쟁력이나 그간의 사업 방향, 지향점 등과 맞아 떨어지는지는 볼 수 있을 터다.   메타버스에 대한 저커버그의 발언을 살펴보면 페이스북은 메타버스를 모바일 이후 다가올 새로운 컴퓨팅 환경으로 바라봄을 알 수 있다. 이 분야를 선점하겠다는 의도다.   스마트폰 시대의 지배자는 모바일 운영체계(OS)와 플랫폼을 장악한 애플과 구글이다. 페이스북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애플과 구글 못지 않은 사용자 기반을 만들었지만, OS도 하드웨어도 없는 상태에서는 모바일의 근간을 통제하는 애플과 구글에 맞서기에 한계가 있다.     ━   ‘모바일 이후’ 겨냥 차세대 컴퓨팅     그래서 페이스북은 일찍이 차세대 컴퓨팅 환경으로 점 찍은 VR 분야를 주도하기 위해 오큘러스를 인수해 헤드셋을 만들고 소셜 VR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였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제 메타버스에 깃발을 먼저 꽂아 자신들이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판을 만들고 싶어한다.   페이스북의 메타버스 비전은 몇 년 간 꾸준히 추진해 온 VR 사업의 확장판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컴퓨팅 플랫폼의 관점으로만 보면 이는 신기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의 문제로만 여겨지게 된다.   중요한 점은 VR 헤드셋을 쓰고 가상현실에서 소셜 활동을 하는 좁은 의미의 가상세계 서비스가 아니라, 현실과 디지털 공간이 상호작용하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는 개념으로 페이스북의 관점이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페이스북은 이제 VR로도 소셜 네트워킹을 하려는 소셜 미디어 기업이 아니라 메타버스 기업이 되려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페이스북은 이전과 본질적으로 다른 회사가 되는 것일까?   페이스북이 내세우는 소셜 미디어란 기본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디지털 공간에 모사하려는 것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 떨기, 가족 친지와 안부를 묻고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는 것 같은 일들이다.   디지털 기술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이런 어울림이 보다 쉽고 편하게 일어날 수 있게 했다. 이를 통해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그에 기반한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더 많이 페이스북 위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활동하게 하는 것이 페이스북의 목표다. 그리고 페이스북은 사용자 데이터와 광고 수익을 얻는다.   페이스북은 메타버스를 통해 사람들 간의 어울림은 더 실제같이, 시공간의 제약은 더 무력화시키고 싶어한다. 저커버그는 “스마트폰 화면과 앱을 매개로 소통하는 지금의 방식은 자연스럽지 않아 보인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줌 화상 회의를 할 때는 참석자들이 이쪽에 앉았는지 저쪽에 앉았는지 같은 맥락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 참석자들의 발언 내용이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커버그가 구상하는 메타버스에서는 마치 실제 회의실에 있는 듯 왼쪽에 누가, 오른쪽에 누가 있는지 등의 감각까지 재현할 수 있다. 실재감이 보다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반면 시공간의 제약은 줄어든다. 그는 컴퓨터에 관심 있는 친구를 찾기 힘들었던 어린 시절 기억을 소환하며 “수업 시간에 코딩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공책에 쓰거나 집으로 돌아와 적었다. 그래서 이럴 때 다른 곳으로 텔레포트하듯 컴퓨터를 좋아하는 다른 친구와 바로 만나 대화할 수 있는 인터넷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라고 말했다.   실제와 같으면서 실제의 한계를 초월하는 관계 맺기인 셈이다. 즉 페이스북이 그리는 메타버스는 소셜 미디어와 별개가 아니라 그 확장, 또는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VR 헤드셋이나 AR 안경, 혹은 페이스북이 연구 중인 신경 신호를 읽어 명령을 수행하는 손목 밴드 등은 이런 비전을 가능케 하는 물리적 기반이 된다.   메타버스는 한때의 마케팅 테마일까? 저커버그도 제대로 된 VR 헤드셋이나 AR 안경 개발의 어려움은 인정한다. 산업 전체가 달라붙어야 할 것이란 점도 안다.   하지만 이들이 그리는 메타버스는 페이스북이 가장 잘 하는 것, 가장 원하는 것, 그리고 DNA에 깊이 박혀 있는 것의 결합체이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한세희

2021-08-08

어버이 날 낳으시고, 보정 앱 날 꾸미시니 [한세희 테크&라이프]

      최근 노르웨이에서 재미있는 법률이 통과되었다.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가 기업 후원을 받아 콘텐트를 올릴 때 사진 보정 여부를 밝히도록 한 법이다.   그러니까 사진을 보정해 피부를 더 하얗게 했는지, 얼굴은 갸름하게, 다리는 길게 하지는 않았는지 표시하라는 얘기다. 사람들이 갖는 ‘완벽한 몸에 대한 강박’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에서 보이는 이상적 혹은 비현실적 육체의 모습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전시되는 사람들의 몸을 스스로와 비교하다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청소년들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   과거에는 공공연히 멋진 육체를 자랑하는 사람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정도밖에 없었다. 이제는 소셜미디어 덕분에 나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사람 중에도 멋진 몸을 가진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은연 중에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기준이 된다.   물론 우리가 항상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처럼 행복하게 사는 건 아니듯, 그들 역시 인스타그램 사진처럼 완벽한 몸을 갖진 않았다. 우리 페이스북 게시물에 과장이 섞여 있듯, 그들의 사진도 보정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   외모 불안 부추기는 사진 보정 앱   사진 보정 앱과 뷰티 필터의 인기는 문제를 부채질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한번 열어 보라. 몇 개의 사진 앱이 있는가? 유라이크, 스노우, B612, 싸이메라, 소다, 이런 앱 1~2개는 있지 않은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스마트폰의 기본 카메라 앱에도 사진을 편집하고 보정하는 기능이 있다. 틱톡은 말할 것도 없다. 줌에도 영상에서 피부가 더 고와 보이게 만드는 옵션이 있다.   페이스북에 따르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증강현실(AR) 효과 중 하나라도 써 본 사람이 6억명에 이른다. 스냅챗은 매일 2억명이 자사 AR 및 외모 필터를 사용하며, 미국과 프랑스, 영국에선 청년층의 90% 이상이 이 기능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네이버 계열사에서 나온 스노우도 사용자가 2억7000만명에 이른다.     스냅챗이 입에서 무지개가 쏟아지거나 머리에 강아지 귀를 다는 AR 기능으로 인기를 끌 때만 해도 사진 필터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서로 깔깔대는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다. 하지만 곧 외모의 단점을 보완하고 더 아름답게 해 주는 뷰티 필터 기능이 대세가 되었다. 오늘날 사진 앱은 최고의 성형외과 의사다. 얼굴 선을 다듬고, 눈을 키우고, 잡티를 없애며, 코를 높인다. 덕분에 요즘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서 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뽀얀 피부와 갸름한 턱, 시원하게 큰 눈을 가진 선남선녀들이다.   셀카를 찍을 때마다 보정해 소셜미디어에 올리다 보니, 이제는 그것이 진짜 자기 모습이라고 자기도 모르게 생각한다는 사람 이야기도 들었다. 하루에 수백장의 셀카를 찍고, 보정 앱으로 다듬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하트를 얼마나 받는지 신경 쓰는 우리들이 이로 인해 외모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 터다. 요즘 성형외과에는 앱으로 보정된 자신의 모습처럼 수술해 달라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만 해도 사람들은 연예인 사진을 보여주며 비슷하게 수술해 달라고 했다.   최근 영국에서는 앱으로 보정한 자신의 모습과 똑같이 성형수술을 한 젊은 남성의 이야기가 뉴스를 탔다. 그는 외모가 마음에 안 들어 늘 앱으로 보정한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곤 했다. 그러다 아예 사진 앱 속 자기 모습을 모델로 성형 수술을 해 버렸다. 무려 13만 파운드(약 2억원)가 들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과연 괜찮은 것일까?   과도한 보정 문화를 경고하는 연구들은 여럿 나와 있다. 이를테면, 셀카 보정에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은 자존감이 낮기 때문일 수 있다. 애리조나대학교 연구팀이 14-17세 사이 여성 청소년 2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자기 외모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사진 보정을 많이 하는 사람은 외모에 대한 불안이 높고, 자기대상화를 하는 경향도 컸다. 자기대상화는 스스로를 사물처럼 바라보며, 다른 사람의 시선에 어떻게 보일지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사진 보정 앱을 많이 쓰는 사람은 성형 수술을 고려할 확률이 더 높고, 마른 몸매를 더 이상적으로 생각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자신의 몸에 이상이나 결함이 있다고 믿는 이형증을 부추길 수도 있다. 스크린 속 완벽한 자신과 실제 자신의 괴리를 늘 실감하기 때문이다.   물론 외모 보정은 오래 동안 이어진 문화의 일부다. 화장은 사회에서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입사 서류나 신분증에 붙일 사진도 어느 정도 손을 본다. 셀카 사진을 뽀얗게 보정하는 건 싸이월드 미니홈피 시절 이래의 전통이다. 포토샵으로 얼굴을 예쁘게 꾸미는 ‘뽀샵’이란 말이 일상어가 되었을 정도다. 소개팅 상대가 내 카톡 프사나 미니홈피를 알고 찾아올 수도 있으니 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자신을 알아 나가는 청소년 시기에 외모에 관심을 가지거나 필터나 보정 앱으로 스스로에 대해 다양한 시도를 해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얼마나 자주, 어떤 마음 가짐으로 셀카를 찍고 보정을 하느냐는 점이다. 소셜미디어를 뒤덮은 보정 사진이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는 원인이 되고, 그런 불만 때문에 보정에 집착한다면 주변의 적절한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   인공지능 시대, 도리어 획일화된 미의 기준   이와 함께 이미 일상화된 얼굴 인식 기술이 우리에게 특정한 미의 기준을 강요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얼굴 인식 기술을 이용해 얼굴의 매력을 평가하고 적절한 화장품과 화장법, 성형 수술을 추천하는 서비스가 뷰티 업계에 등장하고 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얼굴의 대칭, 눈 크기, 코 모양, 피부 상태 등을 평가해 예뻐지는 법을 맞춤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중국 얼굴 인식 기술 기업 메그비는 외모 매력도를 평가하는 ‘페이스++’ 플랫폼을 개발해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뷰티, 화장품, 데이트 앱 등은 이를 자체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나 데이트 앱이 얼굴을 인식, 아름다운 사람들의 노출을 더 늘인다는 주장도 있다. 틱톡에서는 턱 선을 보다 갸름하고 여성적으로 보이게 하는 필터가 일부 사용자에 동의 없이 자동 적용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인공지능과 인터넷 플랫폼이 미의 기준을 대규모로 확산시키는 셈이다.     무엇이 아름다운 외모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 공통의 사회적 인식이 있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으로서 고유의 매력과 아름다움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잊기 쉬운 이 진실은 소셜미디어와 인공지능 보정 기술 덕분에 더욱 실감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가고 있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2021-07-24

베이조스의 스파링 파트너, 아마존의 미래를 짊어지다 [한세희 테크&라이프]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지난 5일(현지시각) CEO에서 물러났다. 1994년 이날 아마존을 창업한지 27년만이다. 베이조스의 복심으로, 아마존웹서비스(AWS) 사업을 맡고 있던 앤디 재시가 새 CEO가 됐다.   온라인으로 책을 판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작은 회사는 이제 모든 것을 파는 세계 최대 온라인 상점,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와 영화 스트리밍 제공 업체, 이틀 만에 상품을 배송하는 혁신적 물류 기업이 됐다.   27년이 지난 지금 아마존은 연간 3860억 달러 매출(약 439조원, 2020년)의 초거대 기업이다. 127만명의 직원을 고용, 월마트에 이은 2위 고용주이기도 하다. 매달 회비를 내고 빠른 배송 등 혜택을 받는 구독 서비스 ‘아마존 프라임’ 가입자는 2억명에 이른다.   아마존 주가가 3500달러를 넘고, 시가총액이 1조8000억 달러에 이르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덕분에 그의 재산은 2000억 달러가 넘고, 세계 최고 부자 자리를 다툰다.     ━   ‘아마존 웨이’ 보여주는 AWS   아마존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더 싼 제품을 더 빨리 제공한다는 원칙만 파고드는 ‘고객 우선’ 정신이 한몫 했다. 이를 위한 베이조스의 행보는 과감했고, 집요했고, 통념을 탈피했다. 때로 위험한 선을 넘나들기도 했다. 온갖 압박에도 불구하고 수익 대부분을 재투자해 영업이익률을 1% 안팎으로 유지했다. 넓은 미국 땅에 익일 무료 배송을 하겠다며 물류망에 무모한 투자를 쏟아부었다.   고객 우선을 내세우는 통상적이지 않은 리더십 외에도 이런 과감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 또 다른 요인이 있다. 바로 클라우드 서비스 AWS의 성공이다.     AWS는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등 컴퓨팅 인프라를 갖추지 않고도 필요한만큼만 클라우드 방식으로 쓸 수 있게 해 준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AWS를 활용해 성공의 길에 다가섰다. CIA나 넷플릭스도 고객이다. 시장조사회사 시너지리서치에 따르면 AWS는 클라우드 시장의 33%를 차지, 마이크로소프트(18%)와 구글(9%)을 크게 앞질렀다. 1분기 AWS 매출은 135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 성장했다.   무엇보다 AWS는 높은 수익성으로 아마존의 돈줄 역할을 한다. 1분기 기준, 아마존에서 AWS의 매출 비중은 12%였지만, 영업이익은 42억 달러로 전체의 46%를 차지했다. AWS에서 번 돈으로 커머스와 물류, 콘텐트 등에 투자할 수 있는 것이다.   AWS는 아마존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업이다. 아마존 사업 방식의 두드러진 점은 거대한 스케일의 업무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터득한 후, 이를 다시 불특정 다수를 위한 서비스 상품으로 만드는데 탁월했다는 점이다.   원래 AWS는 개발 효율을 높이기 위한 내부 서비스로 기획됐다. 아마존 커머스 사업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짐에 따라 클라우드 운영에도 경험이 쌓였고, 2003년 이를 외부에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AWS이다. 아마존이 쌓은 클라우드 컴퓨팅의 규모와 노하우를 중소기업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존의 물류 풀필먼트(fulfillment)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풀필먼트란 물류 센터에서 제품을 꺼내어 포장해 배송하며, 교환과 환불까지 이뤄지는 물류 전 과정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아마존은 1999년 ‘전자상거래 고객의 전 주문 과정을 수행하는 곳’으로 물류 센터를 재정의하며 풀필먼트 개념을 도입했다. 이후 주문 후 선적까지 시간이 3일에서 4시간으로 줄어드는 등 물류 효율이 급속도로 좋아졌다. 2일 배송을 약속하는 아마존 프라임도 풀필먼트의 정착 덕분에 가능했다.   아마존 자체 물류의 효율을 위해 운영된 풀필먼트 역시 2006년 외부 온라인 쇼핑몰을 위한 서비스로 상용화된다. 이 서비스에 가입해 상품을 아마존의 풀필먼트 센터에 입고해 두면, 아마존이 재고, 배송, 환불을 대신 처리해 준다. 판매자는 아마존의 거대한 물류 시스템에 편승해 관리 비용을 줄이고 물류 품질을 높인다. 아마존은 더 많은 판매자를 확보해 플랫폼 규모를 키울 수 있다.      ━   베이조스의 복심, 아마존의 미래   아마존의 사업 구조나 재무 상황, 일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 AWS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하고 오늘날의 대규모 비즈니스로 키운 사람이 바로 아마존의 새 CEO 앤디 재시다.   하버드대 MBA를 마치고 1997년 3년차 스타트업 아마존에 입사한 그는 베이조스와 늘 동행하는 ‘기술 지원’ 역할을 맡게 된다. 이 자리는 베이조스가 참여하는 모든 회의와 미팅, 인터뷰 등에 그림자처럼 함께 하며 CEO를 지원하는 역할이다. 베이조스가 지시하는 과제를 수행하며, 때로는 중요한 결정을 위해 베이조스와 토론하는 ‘지적 스파링 파트너’ 역할도 해야 했다.   당시 재시는 엔지니어들의 개발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재시는 개발자들이 저장 공간과 데이터베이스 등을 설정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바람에 업무가 지연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쉽게 진행할 수 있는 내부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베이조스를 설득했다. 이 투자는 2003년 AWS 사업으로 이어졌고, 재시는 AWS의 책임자가 되어 수십 억 달러 규모의 사업을 일궜다.   재시는 아마존 초기에 합류해 줄곧 회사를 지키며 베이조스와 한 팀이 되어 일해 왔다. 아마존에 대해서도, 베이조스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며, 그 자신 아마존의 중요한 부분을 직접 만들어 온 사람이기도 하다. 기업을 이끌 리더십이나 역량이 있을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새로운 도전도 있다. 대형 플랫폼 기업에 대한 독과점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의회에서 커지고 있다는 점, 성과를 중시하는 기업 문화의 반대 급부로 물류 및 배송 직원들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 등이다.     베이조스가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 블루오리진의 우주 개발과 기후변화 문제 해결, 워싱턴포스트 운영에 시간을 쏟는 동안 재시는 아마존의 당면 과제를 헤쳐 나가야 한다. 아마존의 폭발적 성장에 기여한 그가 이제는 너무 커 버린 아마존에 대한 사회의 압박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CEO가 바뀌던 날 아마존은 회사 리더십 원칙에 두 가지 항목을 추가했다. 세계 최고의 고용주가 되라는 것과 큰 성공과 성장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이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2021-07-11

검색에서 대화로…콕 집어 정답 알려주는 인공지능 [한세희 테크&라이프]

사람: 나는 너에 대해 너무 궁금해. LaMDA: 그래 보여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사람: 너에게 가면 무엇을 볼 수 있지? LaMDA: 거대한 협곡, 빙하, 간헐천, 그리고 크레이터 등을 볼 수 있어요.   얼마 전 열린 구글 개발자 행사 I/O에서 공개된 대화형 인공지능(AI) 언어 모델 ‘람다(LaMDA, Language Model for Dialogue Applications)가 사용자와 나누는 대화다. 명왕성에 대한 질문을 받자, 스스로 명왕성에 빙의(?)해 대화하며 자신에 대해 알려준다.   람다는 사람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AI 언어 모델이다. 챗봇이 대개 미리 정해진 틀과 주어진 정보 안에서 대화를 한다면, 람다는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도 막힘없이 대화할 수 있다. 검색을 할 때, 검색어에 관한 웹페이지 목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대화 형식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이날 구글은 ‘멈(MUM, Multitask Unified Model)’이라는 AI 언어 모델도 선보였다. 멈은 여러 검색어를 입력해 나온 결과를 모으고 분석해야 알 수 있던 정보들을 한눈에 보기 쉽게 정리해 전달해 준다.   예를 들어, 등산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 해 보자. 이 사람은 올해 지리산을 등반했고, 내년 가을에는 일본 후지산을 오르려 한다. 그는 후지산에 오를 때 특별히 더 준비해야 할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더 준비해야할 것’이라는 말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후지산이 얼마나 더 높은 지 혹은 험한 지, 기후는 어떤 지 등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등산화와 장비는 새로 장만해야 할 지, 체력 훈련을 미리 해야 하는 것은 아닌 지도 궁금할 터다.   이 정보들은 모두 검색으로 알 수 있다. 단, 여러 검색어로 여러 번 검색을 해야 할 것이다. 후지산의 높이와 기온 등 기본 정보를 담은 공식 웹페이지와 인근 관광지 정보를 담은 여행 사이트, 가을 후지산에 적합한 등산 장비에 대한 내용이 담긴 등반 후기 등을 찾아보아야 한다.   하지만 주변에 전문 산악인이 있어 그에게 물어본다면, 아마 “뭘 어떻게 준비해야 돼요?”라는 막연한 질문만 듣고도 필요한 정보를 술술 알려줄 것이다. 멈은 마치 사람 전문가처럼 여러 가지 정보와 데이터를 모아 사용자의 상황에 맞는 답을 알려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글이 발표한 두 AI 언어 기술 람다와 멈을 결합하면, 인공지능이 마치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 친구처럼 대화체로 쉽고 편하게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정보를 정리해 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검색창에 검색어를 넣은 후, 찾는 정보가 있을 것 같은 웹페이지를 클릭해 가며 검색 결과 페이지 15쪽을 헤맬 필요가 없다.       ━   구글 목표…크롤러 검색에서 사용자와 대화로    이는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I/O 몇일 전 구글 내 연구 조직 ‘구글 리서치’의 연구자들은 인공지능 언어 모델로 검색의 틀을 바꿀 수 있다는 제안을 담은 논문을 공개했다.   지금의 검색은 크롤러라는 소프트웨어가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웹페이지를 찾아 인덱스를 만들고, 사용자가 검색어를 입력하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웹페이지를 결과 목록에 보여주는 방식이다. 구글은 어떤 웹페이지가 다른 웹페이지에 얼마나 많이 링크 되었는지를 근거로 웹페이지 품질을 평가하는 ‘페이지 랭크’ 알고리즘으로 세계 검색 시장을 평정했다. 구글은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이 되었고, 모바일과 인공지능, 디지털 지도, 자율주행, 클라우드 서비스 등을 통해 세계인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검색 덕분에 우리는 수없이 많은 정보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편은 남아 있다. 검색 결과에 나온 각 웹페이지들을 방문해 원하는 정보가 있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유의미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들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구글은 이제 검색, 아니 정보 탐색과 제공의 패러다임을 바꾸려 한다. 웹의 우주에서 얻은 방대한 데이터로 학습하고, 상황과 맥락에 맞는 말과 문장을 생성해 내는 AI 언어 모델이 직접 사용자의 궁금증에 답하게 하는 것이다.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나 영상, 소리 등 다양한 감각 데이터도 함께 학습해 앞으로 더욱 현실에 가까운 정보를 제공하게 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어쩌면 구글이 외쳤던 ‘AI 퍼스트’의 마지막 단계일지도 모르겠다. 구글은 자신이 만들고 자신을 세계 최고 인터넷 기업으로 만든 그 방법론을 스스로 극복하려 하고 있다.     ━   AI가 만들어주는 정답, 안심하고 받아들여도 될까   이런 발전은 인터넷과 책, 문서 등에 흩어져 있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급격하게 성능이 좋아진 AI 언어 모델 덕분에 가능했다. 람다와 멈은 모두 구글이 개발한 AI 신경망 기술 ‘트랜스포머’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17년 구글이 트랜스포머를 공개하고 오픈 소스로 개방한 후 자연어처리 인공지능은 급격하게 발전했다. 트랜스포머는 사용자의 검색 의도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구글이 만든 BERT는 물론, 오픈AI의 AI 자연어처리 모델 GPT-3의 바탕이 되었다.   GPT-3는 1750억개의 매개변수로 학습해 마치 사람처럼 시와 기사를 쓰고, 역사적 사실을 묻는 퀴즈에 답하는 등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오픈AI와 독점 계약을 맺고, GPT-3를 기반으로 인공지능이 프로그래밍을 위한 코드를 자동으로 만들어내는 기술을 선보였다.   GPT-3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사람 못지 않은 지식과 자연스러운 문장력을 뽐내는 것을 보면, AI 언어 모델로 검색을 대체하자는 생각이 드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네이버도 얼마 전 2040억개의 매개변수로 학습한 한국판 GPT-3 ‘하이퍼클로바’를 공개했다. 앞으로 맥락을 이해하고 공감을 표하는 자연스러운 대화, 창작을 돕는 자동 글쓰기, 핵심 정보 요약, 데이터 생성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그러나 가능성만큼이나 우려와 리스크도 큰 것도 사실이다. GPT-3와 같은 자연어 처리 모델이 갖는 문제를 그대로 가질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에서 학습했기 때문에 웹에 뿌리 박은 편향과 차별, 잘못된 정보 등을 그대로 익혀 전달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사람들에게 답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에게 제시되는 답에 이르기까지 과정도 알 수 없다.   지금까지의 검색은 사용자 스스로 웹페이지를 보며 신뢰성을 판단할 수 있지만, AI가 제시하는 ‘최적의’ 정답이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구글도 이런 문제는 알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임을 인정한다. AI가 답을 제시할 때 근거 자료를 함께 보여주도록 하는 등의 보완 연구를 하고 있다.   물론 더 근원적인 질문은 우리가 과연 인공지능이 떠먹여 주는 최적의 정답만을 받아들여도 되는가 라는 질문일 것이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2021-06-12

[한세희 테크&라이프] 에어태그가 세상 곳곳에 뿌려지는 날?

집을 나서는데 차 열쇠가 눈에 띄지 않거나, 지난 밤 술을 거나하게 마신 뒤 신용카드가 들어 있는 지갑을 어디 두었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면 답답하다. 소파 사이를 헤집으며 물건을 찾다 보면, 알람을 울려 자기 위치를 스스로 알려주는 기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 물건은 이미 시중에 나와 있다. 미국 스타트업이 ‘타일’이라는 동전 모양의 작은 기기를 내놓았고, 삼성 역시 올해 초 ‘스마트태그’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물건을 선보였다. 아끼는 물건에 달아 놓으면 분실했을 때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위치를 찾을 수 있다.     최근 애플이 소문만 무성했던 사물 위치추적용 액세서리 ‘에어태그’를 내놓으면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에어태그는 지난 4월 애플 신제품 발표 이벤트에서 M1칩 맥북이나 미니LED를 채택한 아이패드 사이에 묻혀 조용히 공개되었다. 큰 틀에서 타일이나 스마트태그와 모양이나 기능에서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아이폰과 맥북, 애플워치 등 10억대의 기기로 이뤄진 네트워크를 통제하는 애플이 내놓은 만큼 그 파급력은 더 크리라 예상된다. 더구나 애플은 이미 있는 기술을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통합시켜 대중화하는 데 발군이다. 이 작은 물건이 작지 않은 변화를 일으키리라는 기대가 크다.       ━   현실과 디지털 세계의 접점, AR 도입 앞당긴다     ━       에어태그는 잃어버린 물건의 위치를 추적해 찾아 준다. 무선 이어폰을 아이폰과 페어링하듯, 에어태그를 아이폰에 연결하면 자신이 가진 애플 기기의 위치를 알려주는 ‘나의 찾기’ 앱에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에어태그가 달린 물건이 블루투스 범위 안에 있다면 에어태그에서 알람이 울리게 할 수 있다.    2019년 출시된 아이폰11 이후 모델 사용자라면 훨씬 정밀하게 물건 위치를 찾아갈 수 있다. 이들 기기에는 단거리, 고대역폭 저전력 무선 초광대역(UWB, Ultra Wideband) 기술을 적용한 U1 칩이 있기 때문이다. 최대 30cm 오차 범위 안에서 물건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어 블루투스보다 정밀하고, GPS와 달리 실내에서도 제약이 없다. 잃어버린 열쇠 고리가 거실 소파 쿠션 밑에 있는지, 탁자 옆에 있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휴대폰 화면에는 큼직한 화살표가 표시되어 방향을 안내한다.   물건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잃어버린 것 같다면 ‘분실 모드’로 돌리면 된다. ‘나의 찾기’ 네트워크에 등록된 기기를 가진 다른 애플 사용자가 에어태그를 발견하면 에어태그 소유자에게 연락할 수 있다.    애플이 공개한 홍보 영상에는 소파 틈새로 빠진 열쇠를 정밀 탐색 기능으로 찾는 장면이 나온다. 유용해 보이기는 하지만,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목적만을 위해 굳이 제품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생각도 든다.   애플이 에어태그 같은 제품을 만든 이유는 아마도 오프라인 세계의 구조를 디지털 방식으로 이해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하려는 것일 터다. 사물인터넷(IoT)이나 증강현실(AR)을 구현하기 위해 디지털 세계와 실제 세계를 이어줄 접점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지난 30년 사이 PC와 인터넷 보급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디지털 세상이 확대되었다. 이어 사용자와 항상 함께 있고 위치 인식이 가능한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현실과 디지털 세상의 만남이 가능해졌다. 위치 정보에 기반한 길찾기, 쿠폰, 배달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제 현실 세계의 사물 위에 디지털 정보를 덧입혀 보여주는 AR이 차세대 컴퓨팅 환경으로 주목받고 있다. 모든 기기와 센서가 네트워크에 연결되고 정보를 주고받는 IoT가 가져올 변화도 크다. 이는 오프라인 세상과 온라인 세상의 본격적 결합을 의미한다.   현장 작업자의 AR 고글에 상황에 맞는 작업 매뉴얼이 디지털 정보로 보인다면 편리하지 않겠는가? 네트워크에 연결된 물건들이 사용자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를 꼭 맞는 타이밍에 제공한다면?    이런 기능을 구현하려면 세계에 대한 정밀하고 정확한 이해가 필수다. 물건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그 기본이다. 사람과 물건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공간’ 자체가 디지털화되어 컴퓨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애플은 에어태그를 공개하며 이런 장기적 비전은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오직 잃어버린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하나의 명확한 가치만 강조한다. 하지만 (애플 제품으로선 비교적) 저렴한 에어태그가 여기저기 뿌려진다면, 일상 공간에 대한 디지털 정보 확보의 첨병 역할을 하리란 점은 짐작 가능하다. 사용자가에어태그에 붙이는 이름 정보만으로도 오프라인 세상을 디지털 방식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애플이 온오프라인 경험을 통합한 생태계 구축을 원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애플이 AR 헤드셋과 AR 안경을 2022년과 2025년을 목표로 개발 중이란 전망도 나왔다.   2020년 나온 아이폰12에 탑재된 ToF(time of flight) 센서도 이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ToF 센서는 빛을 쏜 후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사물의 위치와 거리, 움직임, 깊이감까지 인식할 수 있다. 어두운 곳에서도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장점이지만, 현실에 대한 디지털 지도를 정확히 그려내 AR의 품질을 높이는데도 유용하다.   자율주행 차량이 주변 정보를 파악하는데 쓰는 라이다 센서와 같은 원리다. 실제로 애플은 ToF 센서를 라이다 센서라 부른다. 온오프라인 정보를 통합하려는 애플의 시도는 당연히 애플이 만드는 자동차, ‘애플 카’와도 연결될 것이다.       ━   프라이버시 위험 괜찮을까?     물론 물리적 세계가 디지털 세계와 통합된다는 것은 프라이버시가 또 한 걸음 후퇴한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에어태그는 최고의 스토킹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의 가방 속이나 차 좌석 밑에 슬그머니 넣어두면 된다.     에어태그가 3일 이상 본체와 연결되지 않으면 경고음을 울리는 프라이버시 보호 기능은 있다. 하지만 3일은 범죄가 일어나기 충분한 시간인 데다, 알람 소리는 작아서 잘 들리지 않을 수 있다. 괴롭히는 사람이 가족 등 공간을 공유하는 가까운 사이일 경우에도 무용지물이다. 안드로이드 사용자는 자신을 추적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에어태그가 주변에 있는지 폰에서 알려주는 기능을 쓸 수 없다.   프라이버시 우려, 분실물 찾기 등 핵심 가치에 대한 소비자 선택 등의 장애물을 일단 넘으면 에어태그는 현실을 디지털화 하는 작업을 가속화하는 촉매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태그들이 뿌려질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2021-05-30

[한세희 테크 & 라이프] ‘NFT’ 뭐길래? 사진 한장 5억원에 팔려

    ‘재앙의 소녀(disaster girl)’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유명 인터넷 밈(meme)의 원본 사진이 최근 인터넷 경매에서 우리 돈 약 5억원에 낙찰되어 화제다. 이런 거래를 가능하게 한 암호 화폐 기반 인증 기술, 대체불가 토큰(NFT)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사진은 2010년대 서구 인터넷 문화의 아이콘 중 하나다. 2005년 동네 불구경을 나간 4살 소녀를 아버지가 찍었고, 2008년 사진 대회에 출품한 것이 우연히 ‘발견’되어 온라인 바이럴을 탔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재앙의 소녀' 밈들. [사진 유튜브 캡쳐]   ━   현대 인터넷 문화 '밈'에 가장 잘 부합해     불이 나 활활 타오르는 집을 바라보며 귀여운 얼굴과 대조되는 묘한 미소를 짓는 소녀의 표정이 네티즌 마음속 무언가를 자극했다. 사람들은 사건 사고 현장의 이미지를 소녀의 얼굴 뒤에 합성하고, 재미있는 문구를 넣어 인터넷 유머로 즐겼다. 불타는 집을 바라보는 ‘재앙의 소녀’ 사진 위아래 부분에 ‘집에 거미가 한 마리 있었다’ ‘지금은 없다’ 같은 문구를 써 놓는 식이다.    이 사진은 수많은 이미지와 문구와 함께 합성되어 끊임없이 변형, 재생산되면서 수많은 인터넷 밈을 만들어 냈다. 밈은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문화나 사상, 종교가 마치 유전자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복제되어 퍼져 나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이다.    도킨스의 밈 이론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수많은 인터넷 사용자들이 함께 이해하고 즐기며, 핵심 사항을 바탕으로 조금씩 바꿔가며 새로운 파생물을 낳는 현대 인터넷 문화는 밈에 가장 잘 부합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서구권 인터넷 밈은 주로 공통의 이미지나 영상을 배경으로 상하단에 웃긴 글귀를 넣는 형태다.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디시인사이드에서 유명해진 강아지 ‘개죽이’나 드라마 ‘야인시대’의 ‘내가 고자라니’ 장면 등 ‘필수 요소’를 활용해 각종 웃긴 ‘짤’(인터넷에서 쓰이는 이미지)이나 영상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디시인사이드나 레딧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가 유행의 산실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지금 당장 구글에서 ‘disaster girl’을 검색해 다운로드할 수 있는 이미지가 비싼 값에 팔린 이유는 무엇일까? NFT라는 신기술에 대한 과잉 기대도 한 이유다. 그러나 인터넷 밈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가치도 역할을 했다.   유명 인터넷 밈은 2000년 이후 사람들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된 인터넷 공간의 추억, 거기서의 기억과 경험 등을 반영한다. 이 당시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유튜브에서 즐긴 조악하면서도 재미있는, 그리고 새로운 경험들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리는 애착을 가진 것을 지키거나 비용을 들여 갖고 싶어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만화영화 캐릭터 상품을 어른이 되어서도 돈 들여 산다. 프로야구나 프로농구 선수의 카드를 비싼 값에 교환하거나 수집하기도 한다. 인터넷 밈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유명한 밈의 주인공도 자신이 등장한 이미지에 NFT 인증을 해 팔면 되지 않을까? 맞다. 원본 밈 이미지를 NFT로 발행해 판 것은 ‘재앙의 소녀’가 처음이 아니다.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저스틴 비버의 노래를 개사해 부르는 유튜브 영상으로 밈이 된 ‘집착녀 (Overly Attached Girlfriend)’ 레이나 모리스가 경매에 붙인 NFT는 200이더(암호화폐 이더리움의 화폐단위), 우리 돈 약 5억원에 낙찰되었다. 일이 꼬이는 상황을 나타내는데 주로 쓰였던 ‘운 나쁜 브라이언 (Bad Luck Brian)’ 밈의 주인공 카일 크레이븐은 NFT 경매로 약 5500만원을 벌었다. ‘클라리넷 보이’ ‘치과에 다녀온 데이빗’ 등 시대를 풍미한 밈의 주인공들도 NFT를 만들어 경매에 붙였다. (이 밈들은 주로 영미권에서 많이 쓰여 우리에게는 친근하지 않다.)   NFT는 뜻하지 않게 인터넷 세계의 공공재가 된 이들 밈의 주인공들에게 보상을 돌려줄 수 있는 기술이다. 이들의 이미지는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인터넷에서 무한 복제되었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소유권 정보를 남겨 인증하는 NFT를 발행하면 인터넷의 흔한 사진과는 구분되는 희소성을 얻게 된다.   로스가 가진 ‘재앙의 소녀’ 원본 사진과 내가 구글에서 내려받은 사진은 차이가 없다. 그러나 로스가 원본 사진과 연결된 소유권 정보를 담은 토큰, 즉 NFT를 발행하면 이는 밈의 주인공이 직접 부여한 어떤 가치를 담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는 구매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대부분 NFT의 기반 기술인 이더리움의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을 활용하면 NFT 소유주가 바뀔 때마다 본래 밈의 주인에게 일정한 돈이 지급되게 할 수도 있다.     ━   비플의 NFT 작품 역대 미술 경매 사상 세번째 가격 기록    단지 NFT라는 이유로 디지털 창작물에 엄청난 가격표가 붙는 현상은 분명 거품이라 할 수 있다. 전문 아티스트들이 창작한 디지털 아트의 NFT도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판이다. 비플이란 이름의 예술가가 만든 ‘나날들: 첫 5000일’이란 작품의 NFT가 얼마 전 크리스티 경매에서 6930만달러(785억원)에 낙찰되었다. 이는 역대 미술 경매 사상 세번째로 높은 가격이다.   그러니 인터넷 게시판마다 흔하게 널려 있는, 그리고 대부분 진지한 창작 작업의 결과물도 아닌 인터넷 밈이 수천만원, 수억원에 거래된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떤 예술품에는 본래 내재된 높은 가치가 있고, PC 그림판으로 끄적인 낙서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디지털 기기와 소프트웨어의 발달과 보급, 그리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확산은 사람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NFT는 수익원을 열어주며 창작자를 돕기 위한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을 맞추었다.   실제로 이러한 기술들은 엄청난 수의 콘텐트의 탄생과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 콘텐트 수준은 가장 높은 것에서 가장 저열한 것까지 천차만별이다. 물론 절대다수는 질 낮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쏟아져 나온 수많은 콘텐트는–비록 최고의 작품은 아니더라도-세상 누군가의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다. 인터넷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이러한 ‘누군가’들을 찾아갈 길을 열어주었다. 이는 창작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기회일 수 있다.   NFT 인증을 단 인터넷 밈이 경매를 통해 팔리고 창작자에게 보상을 주는 이 현상에 혹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수준이 높건 낮건, 세상 모든 것이,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세상의 전조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가진 창의와 능력을 바탕으로 살 수 있는 완전한 예술가의 세상이자, 완전한 시장이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202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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