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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월 만에 일하는 종사자 늘었다

  지난 3월 국내 사업체 종사자 수가 13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고용노동부가 4월 29일 발표한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3월 마지막 영업일 기준으로 종사자 1인 이상 사업체 전체 종사자는 1850만1000명이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22만3000명(1.2%) 증가했다. 사업체 종사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 증가한 것은 지난해 2월 이후 13개월 만이다.     특히 정부·지자체 일자리 사업으로 공공행정 종사자는 4만1000명 증가했고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도 11만7000명 늘었다. 교육서비스업과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도 9만3000명, 4만5000명 증가했다.     반면 줄어든 업종도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직격탄을 맞은 숙박·음식업 종사자는 5만9000명 감소했다. 여행업을 포함한 사업시설관리업과 예술·스포츠·여가업도 각각 3만4000명, 5000명 줄었다. 또 제조업 종사자도 4만6000명 감소했다.     근무 형태별로 보면 상용직 근로자는 2만명 줄었고, 임시·일용직은 20만2000명 늘었다. 특수고용직을 포함한 기타 종사자는 4만1000명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지난해 3월 사업체 종사자가 대폭 감소했던 대구에서 지난달 2만9000명 증가했다. 서울(-3000명)은 올해 2월(-11만6000명)보다 감소 폭이 줄었다.   2월 상용직 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의 전체 근로자 1인당 임금 총액은 395만원으로, 지난해 동월보다 54만7000원(16.1%) 증가했다. 상용직 근로자의 임금은 417만6000원으로, 지난해 동월보다 58만9000원(16.4%) 증가했고 임시·일용직은 157만원으로, 11만원(7.5%) 늘었다.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2021-05-03

'온라인 거래' 늘며 부가통신업계 순익 '뚝'

     지난해 국내 주요 부가통신업계(VAN·밴사) 당기 순이익 규모가 전년 대비 3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밴사는 카드사와 가맹점 계약에 따라 단말기 설치나 신용카드 조회·승인 등을 중계하는 업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주요 13개 밴사의 당기 순이익이 총 1040억원으로 전년 대비 534억원(33.9%) 줄었다. 산정 기준은 전체 27개 밴사에서 시장점유율의 98%를 차지하는 13곳의 밴사다.   밴사의 당기순이익 감소는 영업 비용이 크게 증가한 탓인 것으로 풀이된다. 밴사의 지난해 영업수익은 2조5424억원으로 전년 대비 950억원 늘었으나 영업비용이 전년 대비 1316억원 증가한 2조387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거래 건수는 감소했으나 온라인 거래 비중은 늘어난 영향이 크다. 주요 수익원인 중계 수수료 수익은 997억원으로 전년 대비 913억원 줄었으나 온라인 쇼핑 거래 확대로 PG(전자결제)사업 수익은 1조3677억원으로 2202억원 증가했다. PG사업 확대로 매출 원가 증가 등이 전년 대비 13.5%(2046억원) 늘어 수익보다 비용이 더 커졌다.   밴사의 유동 자산과 부채는 모두 증가했다. PG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기성 결제 대금이 증가해서다.     13개 밴사의 자산은 총 2조7153억원으로 전년 말에 비해 14.1%(3350억원) 증가했다. 부채는 1조1573억원으로 전년 대비 34.5%(2971억원) 늘었다. 자본규모는 총 1조5580억원으로 전년 대비 378억원(2.5%) 증가했다.   금감원은 “가맹점수수료 인하와 비대면 확대 등 결제환경 변화로 밴사 부문 수익성이 나빠짐에 따라 수익원 확대 움직임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김하늬 기자 kim.honey@joongang.co.kr 

2021-05-03

[체크리포트] '싹수가 노랗네'…1020 보험사기 '껑충'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금액과 인원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10~20대의 보험사기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사기범 10명 중 2명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0년 보험사기 적발 현황 및 향후 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8986억원, 적발인원은 9만8826명으로 전년 대비 각각 2.0%(117억원), 6.8%(6288명) 증가했다.   보험사기 적발금액과 인원은 역대 최대였지만 적발된 보험사기 금액의 증가폭은 전년 대비 8.4%포인트 감소했다. 사고보험금 대비 보험사기 적발 비중도 줄었다.   연령별로는 50대의 적발 비중이 24.9%로 가장 높았다. 특히 10~20대의 보험사기가 급증했다. 지난해 10~20대의 보험사기 적발인원은 1만8619명을 기록했다. 보험사기 비중도 2018년(16.4%) 대비 지난해 18.8%로 상승했다. 전 연령대에서 2018년 대비 보험사기 비중이 증가한 세대는 10~20대와 60대 이상 뿐이다.    성별로는 남성이 67.9%(6만7137명), 여성은 32.1%(3만1689명)였는데 남성의 자동차 보험사기 적발인원이 4.15배 높은데 기인한 것이다. 보험 종목별로는 손해보험을 이용한 사기가 91.1%(8025억원), 생명보험은 8.9%(785억원)으로 집계됐다.   보험사기 적발자의 직업은 회사원(19.4%), 전업주부(10.8%), 무직·일용직(10.5%), 학생(4.7%) 등의 순이었다. 보험설계사, 의료인, 자동차정비업자 등 관련 전문종사자 비중은 3.6%(3490명) 수준이었다.   금감원은 “브로커 등의 유혹에 의해 허위진단, 자동차 고의사고 등에 가담하면 보험사기에 연루될 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정훈 기자 kim.junghoon2@joongang.co.kr 

2021-05-03

[체크리포트] 기업 체감경기 회복세, 자동차 업종은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침체됐던 기업들의 체감경기가 회복세를 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인해 자동차 업종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4월 28일, 매출액 기준 국내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5월 BSI는 전월(106.0) 대비 소폭 상승한 107.7로 호조를 보였다. BSI는 기업체가 느끼는 체감경기를 나타낸다. 100보다 높으면 경기호전을 예상하는 기업이 경기악화를 예상하는 기업보다 많다는 의미다.   한경연은 5월 BSI 전망지수가 긍정적으로 나타난 주 요인을 비제조업 중 건설업을 중심으로 한 사업 수주 증가로 분석했다. 이 기간 비제조업 BSI는 106.5로 전월보다 4.3p 상승했고, 건설업 BSI는 8.4p 상승했다.   반면 제조업 BSI 전망지수는 108.6으로 전월보다 0.4p 하락했다. 특히 자동차 전망지수가 90.0으로 2개월 연속 하락하며 체감경기가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자동차 생산·판매량 변화 추이’에 따르면 지난 2월까지 증가 추세에 있던 자동차 산업의 생산·내수· 수출 증감률은 각각 -9.5%, -0.9%, -1.4%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한경연은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인한 완성차 생산 위축이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연관 후방산업 체감경기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현대차·기아는 반도체 수급난으로 인해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4월 7~14일 아이오닉5를 생산하는 울산1공장과, 4월 12~13일, 19~20일 그랜저와 쏘나타 등을 생산하는 아산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한 바 있다. 증권사들은 올해 1분기 양호한 실적을 낸 현대차·기아 주가가 주춤하는 이유도 2분기부턴 반도체 부족 본격화로 실적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기업 체감경기가 점차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자동차 등 주력산업의 위축이 경기하방 리스크로 작용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김채영 인턴기자 kim.chaeyoung1@joongang.co.kr 

2021-05-03

[체크리포트]지난해 화장품 수출 61억 달러 ‘역대 최고’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한국 화장품 수출액이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올해 1분기에도 수출 증가율이 30%가 넘어서는 등 급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4월 25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화장품 수출액은 61억2200만 달러로 집계됐다. 1년 전(53억3500만달러)보다 14.8% 늘었다.     주요국의 백신 접종이 시작된 올해 1분기에는 성장세가 더 가팔라졌다. 전년 동기 대비 32.4% 증가했다. 우리나라 화장품 수출액은 2012년(831억달러) 이후 매년 늘어나고 있다. 무역수지(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금액)도 2013년부터 8년째 흑자 행진 중이다.   우리나라 화장품 수출이 늘어난 건 기초 화장품이 잘 팔린 덕분이다. 전체 화장품 수출의 50%를 웃도는 기초화장용 제품의 수출이 24.0% 증가하며 수출 성장세를 견인했다. 코로나 사태로 마스크를 쓰면서 피부 문제가 늘었고, 이 때문에 품질이 좋은 한국산 기초 화장품 수요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반면 색조 화장품 수출은 저조했다. 메이크업용과 립메이크업 제품 수출액이 각각 5.9%, 3.1% 감소했다. 다만 마스크 밖으로 드러나는 부위의 화장품 수출은 증가했다. 아이메이크업 제품과 손발톱용 화장품이 각각 8.5%, 25.8% 증가했다. 관세청은 “네일샵 등 시술 매장에 편히 가기 어려운 환경이 되면서 손발톱용 화장품의 수요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국가별로는 최대수출국인 중국에 30억4600만 달러를 수출해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전체 화장품 수출액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치다. 이어 홍콩과 일본·미국 순으로 수출액이 많았다. 수출증가율 기준으로는 일본 58.7%, 중국 24.6%, 베트남 17.6%의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2021-05-03

[체크리포트] 국내 라이브커머스 시장, 2025년 25조원까지 성장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라이브커머스 열풍이 불고 있다. 국내 라이브커머스 시장이 2025년 약25조6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모바일 중심의 미디어 이용 증가와 온라인상거래 성장은 라이브커머스 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라는 분석이다.    4월 28일 미디어미래연구소가 발행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세로 떠오르는 라이브커머스 'M-report'에 따르면 국내 라이브커머스 시장 규모는 2020년 1조 7000억원 규모에서 2025년 최대 25조60000억원까지 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자가 쇼호스트나 판매자와 직접 실시간 양방향 소통하는 방식이 기존 온라인 커머스와 차별화 요인이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비대면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고, 인플루언서 중심의 마케팅이 확대되면서 라이브커머스는 커머스 시장에서 가장 주목 받는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라이브커머스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실시간 동영상’과 ‘양방향 소통’이다. 라이브커머스(Live Commerce)는 라이브스트리밍(Live streaming)과 이커머스(E-commerce)가 결합한 용어다.     라이브커머스는 라이브방송이 송출되는 플랫폼 유형에 따라 총 5가지 사업자로 유형화할 수 있다. ▲오프라인 백화점과 TV홈쇼핑이 포함된 ‘대형유통사업자’ ▲전자상거래 대표주자인 ‘기존 이커머스사업자’ ▲이미 많은 이용자를 확보한 ‘대형포털사업자’ ▲모바일을 기반으로 하는 라이브방송 ‘전문플랫폼사업자’ ▲‘SNS 기반 사업자’까지 다양한 유형의 플랫폼 사업자들이 라이브커머스에 진출했다.     미대어미래연구소 측은 “라이브커머스의 실시간 양방향 소통 기능은 기존 온라인 쇼핑, TV홈쇼핑의 일방향 정보 전달의 한계점을 극복, 다른 채널로의 소비자 유출을 막고 방송에 대한 몰입도 및 구매 전환율을 높인다”며 “이처럼 ‘실시간동영상’ 및 ‘양방향소통’ 장점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라이브커머스는 언택트 시대를 맞아 새로운 소비와 유통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1-05-03

[체크리포트] ‘벤처붐’ 1분기 1조원 넘은 벤처투자

중소벤처기업부   벤처붐이 돌아왔다. 지난 1분기 벤처투자액과 펀드결성액 각각 1조원을 훌쩍 넘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7일 발표한 ‘2021년 1분기 벤처투자 동향’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벤처투자 규모는 1조2455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61.1% 증가했고, 1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1분기 투자 건수와 투자 받은 기업 수도 각각 989건과 558개사로 2000년 이후 최고치에 달했다. 100억원 이상 대형 투자를 받은 기업도 23곳으로 역대 최대였다.   분야별로는 비대면 분야 기업에 대한 투자액(5617억원)이 전년 동기 대비 2102억원(59.8%) 증가했다. 중기부는 올해도 비대면 분야 기업들의 투자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업종별는 유통·서비스 쪽 벤처에 대한 투자가 1440억원으로 가장 많이 늘었고,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 기업은 1152억원, 바이오·의료는 1021억원 증가했다.   펀드결성액도 치솟았다. 지난 1분기 53개 펀드가 1조4561억원을 결정했다.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1분기 대비 186.7% 증가했다. 정책금융 출자는 4650억원으로 231% 늘었고, 민간부문 출자는 9911억원으로 169.8% 증가했다. 금융기관, 연금·공제회, 벤처캐피탈(VC), 법인 등의 출자가 전년 동기 대비 약 1000억원 이상 크게 늘었다. 특히 지난해 감소했던 개인출자도 올해 유동자금 확대를 타고 778억원(175.3%) 증가했다.   강성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은 “최근 발표된 미국 1분기 투자 역시 역대 최대 분기 실적(약 690억달러, 약 76조7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세계적으로 벤처붐 열풍이 일어나고 있다”며 “벤처붐 열기가 계속되도록 복수의결권 도입, K-유니콘 프로젝트의 추진, 실리콘밸리식 금융제도 도입도 차질 없이 추진하면서 투자-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스타트업 벤처생태계가 원활히 작동될 수 있도록 보완할 점은 없는지 면밀히 검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2021-05-03

[김준태의 호적수(20)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국운을 뒤흔든 며느리와 시부의 정쟁

간신이 판을 치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은 한 시대의 영걸들이 반목하는 것이다. 서로를 성장시키는 건강한 경쟁이 아니라 오로지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면, 그들 자신에게만 손해가 아니다. 힘을 합쳤다면 이룩했을 수많은 업적은 차치하고서라도, 싸우느라 낸 상처가 공동체에 짙게 새겨진다. 그들의 능력이 뛰어난 만큼이나 더욱 깊고 아프게.   19세기 후반, 황혼에 접어든 조선에는 두 사람의 걸물이 등장했다.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는 등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지만, 범상치 않았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뛰어난 정치력으로 정국을 휘어잡았고 열강의 인정을 받았던 인물, 바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과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1895)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흥선대원군은 둘째 아들 명복이 익종(효명세자)의 양자가 되어 왕으로 즉위하면서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대원군’은 종친 중에서 왕위를 계승했을 때 왕의 생부에게 내려주는 작위인데, 조선에서 나온 4명의 대원군 중 생전에 이 지위에 오른 것은 흥선대원군이 유일하다. 그런데 대원군이란 호칭은 왕의 생부를 예우하는 차원일 뿐, 그 자체에 제도적인 권력이 보장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흥선대원군이 섭정이 되어 국정을 관장할 수 있었던 것은, 수렴청정이라는 합법적 권한을 가진 익종비 순원왕후(고종의 양어머니다. 흔히 조대비라고 불린다)가 자신의 권력을 양도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정권을 잡은 흥선대원군은 조선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왔다. 60년에 걸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종식시켰고, 당파를 초월해 인재를 등용하였으며 부정부패를 엄단했다. 많은 폐단을 양산하며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던 서원을 47개소만 남겨놓고 모두 철폐하였으며, 군포(軍布)를 개혁하는 등 각종 경제제도․조세제도를 바로잡았다. 법전인 《대전회통(大典會通)》을 편찬하여 법질서를 확립하였고, 사치를 단속하고 의복을 간소화하여 사회 분위기를 일신한 것도 흥선대원군이다. 그는 쇠락해가는 왕조를 중흥시키기 위하여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쏟았다. 무리하게 경복궁 중건을 추진하여 백성의 원성을 들었고, 쇄국정치를 강화함으로써 근대화를 가로막는 실책을 범하긴 했지만, 그의 개혁정치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명성황후(추정) [중앙포토]   ━   고종의 아내이자 정치적 동반자       그런데 흥선대원군은 10년이 지나도록 섭정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공식적인 수렴청정 기간이 끝나고 고종이 성년이 된 뒤에도 권좌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아들이 아직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이 엄중한 시국을 감당할 사람은 나뿐이다’라는 생각이었겠지만, 어쨌든 순리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스물두 살 청년이 된 ‘왕’이 계속 그의 그늘에 머물고 싶어 할 리도 만무했다. 결국 1873년 11월, 고종은 친정을 선포하고 아버지 흥선대원군을 강제로 실각시켰다.   이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 고종의 비 명성황후다. 명성황후를 왕비로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흥선대원군이었는데,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성장하는 등 친정 식구가 변변치 못하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외척 가문의 발호에 학을 뗐던 대원군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성황후는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훗날 고종이 직접 지은 명성황후의 행록(行錄)을 보자. “내가 근심하고 경계하는 것이 있으면, 대책을 세워 풀어주었다. 특히 외국과 교섭하는 문제에서 수원(綏遠, 먼 나라를 끌어들여 가까운 나라를 견제함)하길 권하니 다른 나라에서도 모두 감복하였다. 황후가 일찍이 나에게 말한 것들이 지나고 보면 모두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황후의 통달한 지식과 멀리 내다보는 안목, 앞날에 대한 헤아림은 고금에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 훌륭한 공덕으로 나를 잘 도와주었기 때문에 내가 정사를 돌볼 수가 있었다.”   죽은 아내를 추모하며 지은 글이니 최대한 좋은 말들로 채워졌겠지만, 명성황후가 고종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상담자였으며 외교 정책에도 깊이 관여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비록 민씨 일가의 전횡을 촉발하고 무속에 빠져 국고를 낭비하는 등 여러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명민한 판단력과 총명한 지혜로써 조선의 생존을 도모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일본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도 그녀가 일본의 조선 침탈을 저지하는 버팀목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지만, 만약 흥선대원군이 일찌감치 섭정에서 물러나 아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면 어땠을까? 최소한 서로 싸우느라 조정을 혼란에 빠트리지 않았더라면. 외세의 위협 앞에서는 힘을 합칠 줄 알았더라면.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바꾸진 못하더라도 조선의 마지막 자취가 훨씬 더 품위 있지 않았을까? 흥선대원군 [중앙포토]     ━   고종을 둘러싼 정권 찬탈 공방전       한데 이렇게 능력이 있는 두 사람이 도대체 왜 정적이 되었을까? 흥선대원군이 무리한 치료 방법을 강요하여 명성황후가 낳은 원자를 죽게 만들었고, 원한을 품은 명성황후가 대원군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는 식의 이야기가 전해 오지만 근거가 충분치 않다. 성년이 된 임금을 아랑곳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국정을 처리하는 대원군에게 반발하여 임금과 중전이 힘을 합쳐 권력을 회수해온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대원군이 행사하는 권력은 본래 왕의 것이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하지만 강제로 물러나게 된 흥선대원군은 분노했다. 며느리의 농간으로 아들이 자신을 배반했다고 여긴 대원군은 원망의 화살을 명성황후에게 돌렸다. 명성황후 역시 대원군의 재기를 막고자 대원군 세력을 강하게 탄압했다. 이와 같은 갈등은 1882년 임오군란으로 재집권한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가 승하했다고 선포하고(장호원으로 피신한 명성황후의 복귀를 막기 위해서다), 명성황후는 청나라와 교섭하여 대원군을 납치, 청에 유폐시킴으로써 더욱 악화하였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반목을 일삼았는데 명성황후가 청에서 돌아온 대원군을 계속 압박하자, 대원군의 울분은 극도에 달했던 것 같다. 위안스카이와 공모하여 쿠데타를 도모하고, 동학농민군과 연계를 시도했으며,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과도 손을 잡았다. 이듬해에는 장손 이준용을 왕으로 옹립하려다 실패하기도 한다. 명성황후를 끌어내리고 다시 정권을 잡을 수만 있다면 누구와도 한 편이 될 수 있고, 무슨 짓인들 할 수 있다는 태도였다.     이에 대해 명성황후는 고종을 통해 대원군의 집 앞에 순검을 배치하고 “높고 낮은 신하와 백성들이 칙명 외에는 감히 대원군을 만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왕의 생부이니 처벌하지는 못하지만 대놓고 가택 연금을 한 것이다. 이러한 대립은 흥선대원군이 을미사변에 얽혀 들어 가는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 시해에 협조했다는 주장, 묵인했다는 주장, 일본에 이용당했다는 주장이 있다) 비극이 벌어진 뒤에야 끝나게 된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지만, 만약 흥선대원군이 일찌감치 섭정에서 물러나 아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면 어땠을까? 복수심에 눈이 멀어 탐욕을 부리지 않았다면? 또한, 명성황후가 흥선대원군을 예우하고 존중했다면? 어떻게든 남편과 시아버지를 화합시키고자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아니 그런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서로 싸우느라 조정을 혼란에 빠트리지 않았더라면. 외세의 위협 앞에서는 힘을 합칠 줄 알았더라면.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바꾸진 못하더라도 조선의 마지막 자취가 훨씬 더 품위 있지 않았을까?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202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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