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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의 프리즘] “회사 작업복이 부끄러워요”

[양재찬의 프리즘] “회사 작업복이 부끄러워요”

무덥다. 장마도 왔다. 이런 판에 시내버스가 멈춰 섰다. 더욱 짜증이 날 텐데 대전 시민은 달랐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내버스 노조가 파업하자 시 당국더러 “불편을 참을 테니 굴복하지 말라”고 했다. 2005년 파업 때만 해도 대전시를 나무라던 시민들이 이번에는 노조가 너무 한다는 걸 알아서다. 대전은 지난해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했다. 40억원이던 시 지원금이 297억원으로 불었다. 기사 임금도 부산·광주보다 높다. 하루 2000원씩 연초(煙草)수당도 신설했다. 시민 세금은 훨씬 더 나가는데 버스 서비스는 나아지지 않았다. 반(反)FTA 총파업에 참여한 현대차 노조에도 울산 시민들이 가만 있지 않았다. 140개 단체가 ‘행복도시 울산만들기 범시민협의회’를 구성, 현대차 정문 앞에 모여 제발 파업만은 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낌새를 알아챈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시민단체들이 정치파업 반대 집회에 쓰려고 울산상공회의소에 보관해 둔 피켓과 어깨띠를 내동댕이쳤다.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도 파업할 때가 있다. 구조조정이나 근로조건 등 기업 내 문제를 갖고 하지 ‘정치파업’은 안 한다. 그런데 현대차는 한·미FTA 체결 저지를 내세웠다. 한·미FTA의 최대 수혜자인 자동차 업종, 그 주축인 현대·기아차가 말이다. 공장은 국내에 있지만 경영권은 외국기업에 있는 GM대우는 노조 간부만 참여하고, 쌍용차는 불참했다.
미국이 자랑하는 빅3(GM·포드·크라이슬러)를 제치고 올 1분기 생산량 세계 1위로 올라선 일본 도요타도 1950년 대규모 정리해고와 이에 반대하는 노조의 파업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노사가 얻은 교훈은 ‘대립해선 얻는 게 없다’는 점이다. 그로부터 57년째 도요타는 무(無)파업이다. 이런 도요타를 배우겠다는 현대차는 지금 GM을 닮아가는 형국이다. 87년 이후 딱 한 해(94년)를 빼곤 매해 파업했다. 연례파업에 따른 매출 손실만 10조9048억원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33일간 파업으로 1조6000억원의 손실을 냈다. 그러고도 연말 성과급 50%를 더 달라는 노조의 파업에 회사가 굴복했다. 이런 과정이 쌓여 2003년 2조2722억원이었던 인건비는 지난해 3조원을 넘어섰다. 인건비는 계속 높아지는데 영업이익률은 거꾸로다. 6월 25일 코스피지수가 하락한 가운데 현대·기아차와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3인방은 올랐다. 상급단체인 금속노조가 주도하는 반FTA 부분파업(25∼27일)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소식이 전해져서다. 하지만 28일 총파업에 참여하자 코스피지수가 반등한 가운데 현대차 주가는 하락했다. 시장은 이렇게 냉정하다. 28일 아침 현대차 사장이 내건 담화문은 이렇다. “언젠가부터 울산 시내에서 현대차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을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예전에는 값비싼 양복보다 작업복이 더 자랑스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역 시민의 사랑마저 잃어가는 회사, 직원들 스스로도 회사복을 입기 꺼리는 회사, 이것이 바로 우리의 서글픈 현실입니다.” 사장 담화문보다 일찍 노조 자유 게시판에 뜬 노조원의 글은 더욱 절박하다. “10년 이상 고객분들이 뭐라고 하는지 말해 드릴까요? 현대차 타고 다니는 게 창피하고 쪽 팔린답니다. 요즘 FTA 이야기 많이들 합니다. 수입차 밀려오면 위기다 하셨지요. 두렵습니까? 전 그것(FTA)이 두려운 게 아니고, 수입차가 밀려오기 전에 국민이 ‘현대차=파업’, 그래 (수입차와) 가격만 같아져 봐라, 두고 보자, 이것이 두렵습니다.” 현대차는 세계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대표기업이다. 이런 대표주자가 20년째 파업하는 것을 본 외국인이 한국에 투자하고 싶을까? 현대차의 연례파업은 현대차만 멍들이는 게 아니다. 코리아의 이미지도 갉아먹는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정치파업을 반대하는 울산 시민의 피켓을 내던진 26일 민주노총과 생각이 다른 한국노총 위원장은 청와대에서 비서관들을 상대로 새로운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에 대해 강의했다. 노동운동, 이제 노사가 함께 살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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