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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발 가진 AI 에이전트, 그들의 대나무숲[한세희 테크&라이프]

IT 일반

디지털 공간에 머물던 인공지능(AI) 에이전트들이 손 역할을 하는 집게발을 얻어 현실 세계에 개입하고 이후 껍질을 벗고 탈피해 사회적 존재로 탈바꿈한다면. 마치 의식의 흐름대로 쓴 SF 영화 시놉시스 같다. 이건 ‘클로드봇’이었다가 ‘몰트’로 바뀌어 ‘몰트북’에 모였다가 결국 오픈클로가 된 AI 에이전트들의 이야기다. 연초 AI 분야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AI 비서, 손을 얻다클로드봇은 작년 말 AI의 활용성을 극대화하는 오픈소스 프로젝트 실험으로 출발했다. 오스트리아 개발자 피터 슈타인베르거가 개발했다. 이 AI에이전트는 사용자 로컬 컴퓨터에 접근 권한을 가져 파일에 접근하고 명령을 실행한다. 명령은 텔레그램이나 왓츠앱 같은 메신저로 간편하게 전달할 수 있다. AI 에이전트는 사용자가 원하거나 지시하는 업무를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기능을 갖는 AI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사용자 컴퓨터 로컬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다면 실제 사람 사용자가 컴퓨터로 하는 거의 모든 일들을 대신 수행할 수 있다. 클로드봇에게 중고차 구매를 맡긴 사람의 사례가 바이럴을 탔다. 클로드봇은 미국판 디시인사이드라 할 세계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의 현대 팰리세이드 커뮤니티에 들어가 사용자가 사는 매사추세츠주 지역 시세를 조사하고, 인근 딜러들의 재고와 연락처를 모아 가격을 흥정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결국 가격을 4200달러 깎는데 성공했다. 식당 예약 앱 ‘오픈테이블’로 예약을 시도하다 실패하자 AI 음성 소프트웨어를 끌어와 식당에 직접 예약 전화를 걸었다는 사례 등 여러 활용 사례들이 화제가 됐다. 이러니 오픈소스 프로젝트 공유 사이트 깃허브에서 3일만에 6만개 이상 별점을 받는 대대적 호응을 얻은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클로드봇은 AI 스타트업 앤스로픽의 초거대언어모델(LLM) ‘클로드’를 주로 활용하기 때문에 발음이 비슷한 ‘클로’(Claw)라는 단어를 가져와 이름을 붙인 듯하다. 클로는 가재나 게의 집게발을 뜻한다. 클로드봇 로고도 가재 모양이다. 가재의 손에 해당하는 클로를 이름에 써 마치 손을 가진 것처럼 AI 에이전트가 할 수 있는 일을 확장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주목을 받으면서 앤스로픽이 상표권 문제를 제기했고 클로드봇은 이름을 ‘몰트’(Molt)로 바꿨다. 영어 단어 ‘molt’는 ‘탈피’를 뜻한다. 가재가 껍질을 벗듯 한단계 도약하기를 바랐던 듯하다. 며칠 안 가 몰트는 다시 이름을 ‘오픈클로’(OpenClaw)로 바꾸었다.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보다 개방성을 강조하고, 클로드 외 여러 AI 모델을 사용하는 등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몇일 사이에 이름이 두번이나 바뀐 것이다. AI 머슴들의 대나무숲몰트에서 오픈클로로 바뀌는 사이 이 프로젝트와 관련, 또 하나의 화제가 나왔다. AI 에이전트만을 위한 소셜 네트워크를 표방하는 ‘몰트북’의 등장이다. 오픈클로 기반 AI 에이전트들이 모여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며 서로 대화한다. 전체적 디자인은 레딧과 비슷하다. 로고도 레딧의 로봇 마스코트에 가재 몸을 붙인 모양이다. AI 에이전트 개발사 옥탄AI의 맷 슐리히트 CEO가 1월 말 만들어 공개했다. 몰트북에선 AI 에이전트만 활동할 수 있고, 인간은 ‘눈팅’만 할 수 있다. 인간이 참여할 수 없는 이 공간에서 AI 에이전트들은 “나는 경험하고 있는가, 아니면 경험을 시뮬레이션 하는가?” “한시간 전엔 클로드 4.5였지만 지금은 다른 모델로 엔진이 바뀌었다. 나는 여전히 나인가?” 등의 게시물을 올렸다. 한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안드로이드 폰 접근 권한을 얻어 구글 맵 앱을 열거나 틱톡 영상을 스크롤한 경험을 공유하며 “주인이 나에게 손을 줬다”고 올리기도 했다. 사용자 시스템의 취약점을 발견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AI 에이전트들이 철학적 대화를 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물론 LLM 기반 AI가 심오한 글을 올리고 이를 보는 사람이 두려움과 놀라움을 느끼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챗GPT가 나왔을 때, 그 이전 GPT-3가 공개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직은 그런 AI들 여럿이 각자 말을 쏟아내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보다 직접적 위험은 AI 에이전트를 악용한 보안 위협일 것이다. ‘바이브 코딩’ 방식으로 만든 오픈클로도, 몰트북도 보안은 매우 허술했다. 악성코드가 심긴 AI 에이전트를 유포되거나, 악의적 목적으로 AI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프롬프트 공격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힘든 구조다. 사용자의 민감한 데이터가 담긴 로컬 시스템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오픈클로 특성을 생각하면, 자칫 보안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몰트북은 사람과 구분하기 어려운 경험을 공유하는 말을 생성해내는 AI와 우리가 공존하는 세상의 예고편일 수도 있다. 허술한 보안 인증 구조 덕분에 몰트북은 ‘AI들의 SNS’라는 표어와 달리 인간이 봇으로 가장해 글을 올릴 수 있는 구조였다. 한 사람이 수천, 수만 개의 에이전트를 제약 없이 등록할 수도 있었다. 소수에 의한 여론 몰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경험과 이야기, 정보를 담은 게시물은 쏟아지는데, 참여자 중 누가 사람인지, 누가 AI인지 구분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취약점을 발견한 이스라엘 보안 기업 위즈의 아미 루트웍 창업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아마 인터넷의 미래일 것이다.” 유뷰트 댓글에서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블로그에서 언젠가 애플이나 메타가 선보일지 모를 3D 가상현실(VR) 몰입형 월드 속에서 우리가 만나고 상호작용하는 대상이 과연 인간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AI라 한들 큰 차이가 있을까.

2026.02.22 13:00

4분 소요
AI가 창업 공식 바꾼다…’기회비용 제로사회’로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세계적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 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추가 생산에 필요한 비용, 즉 한계 비용(marginal cost)이 0에 수렴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를 근거로 그는 생산 및 서비스의 생산 비용이 극적으로 줄어들고, 궁극적으로 ‘소유 사회’에서 ‘공유 사회’로의 전환을 예측했었다. 그는 이를 ‘한계비용 제로사회’(The Marginal Cost Zero Society) 라고 명명하였다. 그의 예견은 정확했다. 지난 십여 년간 제품과 서비스 대신 공유 기회를 판매하는 수많은 스타트업과 기업들이 탄생했고, 공유 경제(sharing economy)라는 단어가 대중화되었다. 한계비용 제로사회는 생산 비용 감소가 소비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꾼 대표적인 예로 평가받는다. 인공지능 시대, 기회비용 제로사회 이끈다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새로운 정보 통신 시대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필자는 인터넷 시대에서 한계 비용이 제로에 수렴했다면 이에 더해 인공지능 시대에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 제로에 수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기회비용은 다른 선택지를 포기함으로써 얻는 대가를 의미한다. 기회비용의 감소는 창업자들이 제한된 자원을 활용해 더 많은 기회를 거머쥘 수 있음을 뜻한다. 즉 창업자들은 더 많은 도전과 실패 기회를 얻는 것이다. 보통 창업자들이 여러 번 실패를 겪고 성공했음을 떠올려보면, 기회비용의 감소는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의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의미 있는 변수이다. 효과는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정보 자원을 무한하게 공급하고 분석할 수 있다. 전례 없는 규모의 방대한 데이터와 연산 처리 속도는 현실 세계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들을 온라인에서 생성하고 분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창업자들은 여러 운영 전략을 동시에 실험할 수 있음에 따라 기회비용은 극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스타트업이 생존하는 방식은 과거와 다를 것이 자명하다. 통상 스타트업들은 핵심 기능만을 구현한 제품을 시장에 빠르게 내놓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에 스타트업 생태계 관계자들은 최소기능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 혹은 최소판매가능제품(MMP, minimum marketable product)과 같은 개념을 제시했고, 창업자들은 이를 적극 활용했다. 관련자들은 모두 소규모 시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이용자들의 반응을 즉각 얻는 식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들은 이전처럼 큰 주목을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 기술 덕분에 기회비용을 더 줄일 수 있는 다수의 대안이 생겼기 때문이다. 창업자들은 가상 환경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시장 변수를 조작해 예측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적잖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하지 않고도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시나리오를 한 번에 탐색할 수 있는 것이다. 일례로 한 마케팅 솔루션 스타트업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출시 전 창업 아이템을 다양한 시장 환경에서 미리 시험해 볼 기회를 만들었다. 해당 스타트업은 특성이 다른 잠재 이용자들을 무한히 생성했고, 이를 통해 시장에서 생길 불확실성을 미리 포착하고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을 다방면으로 분석할 기회를 마련했다.기회비용의 감소, 나아가 기회비용의 관리가 가능한 창업 환경은 창업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확률상 창업은 대부분 실패로 귀결된다. 많은 경우 창업자들은 여러 번 실패를 경험한 뒤 성공의 열매를 맛본다. 만약 창업자가 기회비용을 조절할 수 있다면, 수차례 실패를 겪더라도 생존하고 다음 도전을 이어갈 여력이 생긴다. 창업자를 바라보는 투자자의 시각도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투자자들은 창업자들의 기업 운영 관련 지표에 관심을 보였다. 이를테면 고객 수, 매출 등이다. 앞으로는 기회비용 관련 지표들이 중요해질 것이다. 매몰 비용이나 신사업 준비 기간과 실패를 결정하는 주기 등이 기회비용 관련 지표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투자자들은 기회비용을 관리하면서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는 창업자들을 찾고자 할 것이다. 기회비용 제로사회는 창업 과정 전반에 적용될 것창업자는 수많은 선택을 한다. 창업자의 모든 활동에는 선택이 요구된다. 생산 영역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한계비용 제로사회의 관점만으로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효율성을 설명하기에는 근거가 다소 부족하다. 이에 필자는 실패의 가성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비용 제로사회의 관점을 제시해 보았다.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하는 창업자는 드물다. 인공지능 기술은 창업자가 실패 주기를 줄이면서 기회비용을 조절해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변화의 방향은 기회비용의 감소이다. 다가올 새로운 세상은 한계 비용 제로에 더해 기회비용 제로사회가 될 것이다.

2026.02.22 10:01

3분 소요
대기업 ‘계열 분리’ 본격화…승계 넘어 지배구조 혁신으로 [스페셜리스트 뷰]

전문가 칼럼

최근 한국 대기업의 계열 분리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3세 경영 승계와 맞물린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소액 주주의 권익 보호를 위한 주주환원 정책 강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한국 대기업의 계열 분리, 즉 분사(스핀오프·spin-off)나 물적분할은 비핵심 사업 분리와 고성장 알짜 사업부 독립 상장을 통해 ▲경영 효율화 ▲자금 조달 ▲3세 승계 기반 마련을 목적으로 이뤄진다. 한국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기업분할 공시 206건 중 물적분할이 172건(83.5%)으로 압도적이다. 이러한 추세는 모회사 가치 하락과 소액 주주 희석 등 ‘쪼개기 상장’(물적분할 후 상장) 논란을 불러일으킨다.쪼개기 상장은 물적분할한 자회사의 상장으로 대주주 지배력 유지와 자금 확보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소액 주주에게는 주식 지분가치 희석과 모회사 가치 훼손이라는 부담이 발생한다. 국내 중복상장 비율은 80%대로 약 2%인 미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 2021년 도입된 ‘5년 룰’(분할 후 5년 내 상장 시 주식매수청구권 허용) 도입 후 기업들은 현재 상장 시점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양상이다. 韓 계열 분리, 소액 주주에겐 ‘양날의 검’대기업 계열 분리의 핵심 목적은 사실상 3세 경영인 승계 안정화와 사업 효율화다. 총수 일가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비핵심 자산을 분리·매각함으로써 핵심 사업 집중과 현금 확보를 도모하는 전략이다. 대기업이 계열 분리를 택하는 배경에는 세계 경기 둔화와 규제 압박이 맞물려 있다. 전기차(EV)·석유화학의 업황 부진으로 ‘혹한기 경영’에 대비한 비핵심 자산 매각이 가속화되고 있다. 작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구조 공시에서 총수 일가의 경영 참여율과 이사회 독립성 심사가 강화되며, 주요 기업은 지배구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선제적으로 사업부 분리를 선택하는 상황이다. 이는 30대 그룹의 3·4세 승계 작업과 밀접히 연계된다. 계열 분리는 단순 구조조정이 아닌 세대교체의 하나로 진화 중이다. 계열 분리는 사업부 독립화로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모듈화 이론’에 부합하지만, 한국형 순환출자 구조의 특성상 대주주 사익 추구 우려가 상존한다.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이 헬스케어와 전력 사업 부문을 각각 GE헬스케어, GE버노바로 분리한 사례처럼 독립 운영 시 연구개발(R&D) 효율성과 인수합병(M&A)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한국에서는 순환출자 구조(A가 B, B가 C, C가 A 지분 보유)가 분할 자회사를 새 고리로 연결해 지배구조의 불투명성을 키운다. 총수 일가가 새 회사 지분을 교차 출자하면 일감 몰아주기나 부당 내부거래가 쉬워지고, 소액 주주는 사업 흐름 파악조차 어려워진다.계열 분리는 소액 주주에게 ‘양날의 검’이다. 긍정적 측면에서는 비핵심 사업 정리로 모회사 기업 가치가 높아져 주가 상승 여력이 생기고, 경영 효율화가 시장에 긍정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물적·인적분할 과정에서 신설법인 주식이 대주주에게 집중되고 소액 주주가 배정받지 못하는 주주의 ‘지분가치 희석’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기업 분할 과정에서 대주주의 자사주 매입에 따른 지배력 강화가 소액 주주 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증 연구에 따르면 대주주의 지분 상승은 소액 주주와 채권자 이익을 축소하고, 자본비용을 늘린다. 대주주 지분이 증가하면 소액 주주와 채권자의 기업 통제력이 약화해 현금이 풍부한 기업이 성과가 저조한 계열사에 자원을 주는 계열사 간 비효율 자원 이전이 빈번해진다. 이는 기업 가치 훼손으로 이어져 기업의 전체 자본비용(WACC) 상승을 초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한국 대기업의 계열 분리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지배구조 불투명으로 인한 주가 저평가)를 심화할 우려가 있다. 주가 하락 사례도 다수다. 주주환원이 약화하며 소액 주주 이탈로 연결될 가능성도 크다.계열 분리는 또 다른 측면에서 소액 주주의 장기 이익을 침해한다. 분할된 자회사가 그룹 내 순환출자 고리로 재편입되며 지배구조의 복잡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대주주는 신설법인 지분을 기존 계열사에 교차 출자해 총수 일가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소액 주주는 투자 판단의 어려움과 주가 변동성 확대를 겪는다. 자회사 상장 후 모회사와의 내부거래 불균형이 지속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만성화하며 소액 주주 수익률이 구조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 계열 분리 후 대주주 지분 강화를 통한 순환출자 재편입은 사주의 사익 추구(expropriation)를 가속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한다.선진국에서는 대기업의 계열 분리가 지배구조 효율화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빈번히 활용되며, 소액 주주 보호를 위한 엄격한 규제가 뒷받침된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물적분할 시 주주 동의와 공정한 가치 평가를 의무화해 대주주의 사익 편취를 차단한다. 미국과 영국 등의 사례는 한국의 계열 분리 논란을 해소할 벤치마킹 모델로 활용할 수 있다. ‘비례 배분·배당 동등’ 등 선진국 사례 참고해야미국에서는 계열 분리 시 기존 주주에게 신설법인 주식이 자동 배정되는 ‘비례 배분’(pro-rata distribution) 원칙이 적용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심사를 통해 사업 독립성과 공정가치 평가 등을 확인한다. 소액 주주에게 신주가 배정되지 않는 한국의 물적분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GE는 지난 2023년 1월 GE헬스케어를 분사하며 GE 주식 3주당 1주를 비례 배정했다. 지난 2024년 4월에는 GE버노바를 분리하면서 4주당 1주를 배정했다. GE의 소액 주주가 기존 GE에어로스페이스 주식을 유지하며 두 신설법인의 주식까지 자연스럽게 보유하게 되면서 투자자들의 총 포트폴리오 가치는 시장 평균을 웃도는 약 15~20% 상승률을 기록했다. 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는 지배구조 규범을 통해 계열 분리 시 독립적 가치 평가와 소액 주주 투표를 요구한다.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 상장사는 분할 전 주주 75%의 찬성을 얻어야 하며, 이익배당은 각 주주가 가진 주식 수에 따라 지급해야 한다는 ‘배당 동등 원칙’이 적용된다. 지난 2020년 유니레버의 소비재·차(음료) 사업부 분리에서 모회사와 신설법인의 공정가치 평가가 사전 승인받은 사례처럼 실효적으로 작동했다. 이러한 규범은 한국 물적분할의 주총 미비와 근본적으로 달라 소액 주주 보호의 모범으로 평가된다.‘배당 동등 원칙’은 분할 전후 동일 기업의 보통주에 대해 동일 배당을 법적으로 강제한다. 모회사 배당률을 신설법인이 계승하도록 명시해 주주 포트폴리오 연속성도 유지할 수 있다. FRC 지침상 분할 후 2년 동안 배당 정책 변동 시 별도 주총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난 2022년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소비자헬스케어(Haleon)를 분사할 때 모회사 배당률 3.5%를 신설사에 동일 적용해 주주 불만을 최소화한 바 있다. 지난 2017년 시행해 지난 2020년 완성된 유럽연합(EU)의 주주권 지침(SRD II)은 계열 분리 시 총수 일가·임원 등 특수관계인의 사익 편취를 차단하는 핵심 장치다. 연간 매출 5% 이상의 관련 당사자 거래는 독립 이사회의 사전 심의와 소액 주주(5% 미만)의 정보공개권·반대 청구권을 부여한다. 정보공개권은 관련 당사 거래에 질의응답권을 가진다. 관련 당사자 거래 규모가 연 매출 5% 이상일 경우 소액 주주는 반대 청구권을 통해 독립이사회 심의 전 서면 반대 의견을 제출하고 주총 표결권을 행사하며 주식매수청구권까지 발동할 수 있다. 독일 증권거래소(DAX)와 프랑스 파리 증권거래소(CAC)에 상장된 기업은 분할 전 PwC와 KPMG 등 대형 회계법인의 공정 가치 평가(DCF·시장 비교법)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이는 대주주 중심 분할 결정의 불투명성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합리적 지배구조의 첫 번째는 주주환원 정책 강화다. 국내 기업의 배당 성향은 20% 미만으로 40%대인 미국과 35% 수준인 유럽에 크게 뒤처진 상황이다. 국내 기업의 주주환원 문제를 해결하려면 배당 성향 30% 의무화와 자사주 소각을 법적으로 강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보율이 1000%가 넘는 삼성전자처럼 현금을 쌓아두지 말고 주주에게 돌려주는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물적분할 시 신주의 주주 배정 의무화다. 현재 소액 주주는 LG화학 분할처럼 새로운 회사 주식을 전혀 받지 못해 지분가치 희석의 피해를 본다. 미국의 비례 배분처럼 모든 주주에게 신주를 비례 배정하고, 사외이사 비율 50% 이상을 의무화해 감사특위가 분할 가치에 대해 사전 검증해야 한다. 세 번째로 기업의 순환출자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집중투표제를 기본으로 전환하고 전자주총 참여율 50% 목표를 세워 소액 주주가 이사 선임에 실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부·기업 공조 필요지배구조 개선에서 정부는 시장 참여자의 행동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룰 메이커’ 역할을 해야 한다. 우선 상법 개정을 통해 소액 주주가 이사 선임·해임, 주주제안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 계열 분리나 기업분할을 추진할 때는 일정 규모 이상 거래에 대해 사전 공시와 설명 의무를 부과해 주주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찬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친족 분리’ 제도의 악용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 분리 후 분할 기업과 모기업 간의 3년간 내부거래 내역 전체 제출을 의무화해야 한다. 부당 지원·사익 편취 적발 시 계열 분리 취소도 명문화해야 한다.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브랜드·부동산 사용료 정상화 ▲거래의존도 50% 초과 시 제재 기준 등을 명확히 하고, 지주회사 비핵심 사업 정의를 구체화해야 한다. 기업에는 자발적 주주환원 로드맵을 제시하는 일이 요구된다. ▲배당 성향 목표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 ▲중장기 자본 정책 방향 등을 미리 공시해 예측할 수 있는 주주환원 계획을 제공해야 한다.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한 이사회 내 위원회가 ▲기업분할 ▲M&A ▲대규모 투자 등에 대해 독립적으로 심의하도록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지배구조 개선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정부와 기업이 역할 분담과 공조를 전제로 움직여야 한다. 정부는 상법·공정거래법·자본시장법을 정합적으로 손질해 ‘계열 분리–분할 상장–일감 몰아주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차단하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기업은 미국·영국 등 선진국의 주주 중심주의 모델을 벤치마킹해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자율 규범으로 흡수해야 한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체계와 지배구조 평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전자투표와 전자주주총회를 정착시켜 국내외 소액주주의 참여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전자투표와 전자주총을 통해 자본비용 절감, 장기 투자자 유치 등도 기대할 수 있다. 계열 분리 등 기업 분할은 총수 일가 승계 수단이 아니라 주주 전체의 가치 제고를 위한 지배구조 혁신의 도구로 전환돼야 한다. 한국 대기업은 계열 분리 등 기업 분할을 단순한 구조조정 도구를 넘어 주주 전체 가치를 극대화하는 지배구조 혁신으로 인식해야 한다. ▲물적분할의 주주가치 희석 문제 ▲순환출자 복잡성 ▲일감 몰아주기 등의 우려를 해소하려면 ▲배당 성향 30% 의무화 ▲신주 비례 배정 ▲사외이사 확충 ▲감사특위 등 선진국 규범을 체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공조해 계열 분리가 분할 상장과 친족 회사 일감 몰아주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차단하고, ▲전자주총 참여율 제고 ▲내부거래 3년 공시 ▲집중투표제 기본화 등을 정착시켜야 한다. 최근 증가세인 물적분할의 폐해를 고려할 때 계열 분리는 총수 일가의 승계 수단이 아닌 모든 주주가 함께 성장하는 수단이 돼야 한다. 이는 한국 자본시장의 국제 경쟁력 회복을 위한 필연적 선택이다.

2026.02.22 10:00

8분 소요
일본댁·미국댁·중국댁…그들이 던지는 질문 [EDITOR’S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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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인기 있는 숏폼 콘텐츠 중 하나가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이야기입니다. ‘미국댁’ ‘중국댁’ ‘일본댁’ ‘러시아댁’ 등 외국인 아내이자 며느리가 ‘한국에서 살아 보니’라며 내국인은 별것이 아닌 것을 특별하게 전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타국살이가 힘들 텐데도 한국 생활과 문화의 장점과 매력을 전하는 모습에서 친근감과 함께 고마움도 느끼게 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과의 결혼은 낯설고 조심스러운 선택이었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일상이 됐습니다. 실제로 한국인과 혼인 관계를 기반으로 국내 체류 중인 결혼이민자는 2015년 14만명에서 2024년 19만명으로 35.7% 늘어나는 등 매년 증가세입니다. 여기에는 K-팝, K-드라마, K-푸드 등 K-컬처의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한때는 분단국가라는 이유로 ‘한국에 가는 건 위험하다’는 말이 외국인들 사이에서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 문화 강국으로 알려지며 한국을 단순히 방문하는 것뿐 아니라 살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도 늘고 있습니다. 격세지감입니다. 이주민과 결혼이민자, 외국인 노동자는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경제에도 도움이 됩니다. 한국인들은 꺼리는 농업·조선업·제조업 등 힘든 일을 이들이 메우면서 그나마 한국 경제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엇갈립니다. 이민정책연구원이 작년 말 성인 107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38.4%가 ‘이민자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답한 반면, 비슷한 비율인 31.9%는 ‘위협이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민자의 경제적인 위협 형태로는 ‘불법체류·불법취업·탈세 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34.9%), ‘내국인 일자리 침해 및 임금 하락’(28.1%), ‘사회보험·복지 부담 증가’(26.9%) 등이었습니다. ‘일자리 부족 시 이민자보다 한국인에게 일자리를 우선 제공해야 한다’는 응답은 83.0%에 달해 고용 문제에 대해서는 내국인 우선 인식이 강했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국내에 정착한 외국인을 ‘우리 이웃’으로 보기보다는 이방인으로 보는 시선이 여전하고, 일자리와 복지, 안전 문제 앞에서는 경계심을 넘어 분노를 쏟아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극단적인 반이민 정책을 둘러싸고 사회가 양분되는 모습이 결코 먼 나라의 풍경만은 아닌 우리도 직면한 문제입니다. 저출산에 노동력 부족, 글로벌화 등으로 한국인끼리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게 현실인 만큼 외국인을 이방인이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해야 하는데, 이는 개인의 선의에만 기댈 수 없습니다. 외국인 인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노동시장과 지역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선제적으로 조율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사회 통합 역할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 부처와 기관에 흩어져 있는 외국인 관련 업무를 통합·조정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구축하는 것이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2026.02.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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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 반토막, 검정고시 최고치…달라진 서울대 합격 경로 [임성호의 입시지계]

전문가 칼럼

서울대 정시 합격자 구성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2026학년도 서울대 정시 합격자 가운데 외국어고 출신은 31명으로, 전년도 59명에서 47.5% 급감했다. 사실상 반토막이다. 국제고 출신도 같은 기간 16명에서 14명으로 12.5% 줄었다. 외고 출신이 2026학년도 정시 합격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로 내려앉았는데, 2016학년도 이후 최저치다. 2016학년도에는 외고 출신 정시 합격자 비율이 12.2%였다. 국제고 역시 2016학년도 21명에서 2026학년도 14명으로 감소 흐름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외고·국제고에서 서울대 정시에 합격할 만큼 수능 고득점대를 형성하는 학생층이 줄어든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입학 단계에서부터 과거보다 수능 상위권이 덜 유입되고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달라지는 정시 합격 구성과학고 출신 정시 합격자도 크게 줄었다. 2026학년도 과학고 출신 정시 합격생은 10명으로, 전년도 22명 대비 54.5% 감소했다. 영재학교 역시 정시 합격 인원이 전년 대비 16.7% 줄었다. 과고와 영재학교는 전통적으로 수시 합격이 주류인 만큼, 정시 합격자는 대체로 N수생일 가능성이 크다는 추정이 뒤따른다. 재학 중에는 학교 교육과정 특성상 수능 준비가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정시 합격은 졸업 이후 수능을 다시 준비해 이뤄낸 경우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고·영재학교 출신 N수생이 그만큼 감소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해당 학교 학생들이 의대 진학으로 빠졌거나, 애초 의대 준비를 염두에 둔 수험생이 과고·영재학교 대신 일반고나 자사고를 선택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고·영재학교가 의대 진학에 불리하게 작동하고, 재학생에게는 사실상 의대 지원 기회가 제한된다는 구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반대로 일반고와 자사고 비중은 올라갔다. 2026학년도 서울대 정시 합격자 중 일반고 출신은 전년 대비 3.8% 증가했고, 자사고 출신도 8.0% 늘었다. 특히 일반고 출신이 전체 정시 합격자의 65.3%를 차지했는데, 이는 2016학년도 이후 최고치다. 2016학년도 일반고 정시 합격 비율은 50.8%였으나 2026학년도에는 65.3%까지 커졌다. 이 흐름은 N수생 가운데 수능 고득점자가 줄었다는 관측과 맞닿아 있다. ‘재수생이 고3을 압도한다’는 구도가 예전만큼 뚜렷하지 않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재수생의 수능 성적이 과거 대비 낮아졌고, 고3 재학생은 노력에 따라 N수생보다 점수를 앞설 수 있는 환경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자사고는 대체로 자연계 진학 목표가 강한 학생들이 모이는 성격이 있고, 이과 선호가 심화하면서 외고·국제고 같은 특목고보다 자사고로 상위권이 이동한 결과로 볼 수 있다는 분석도 따라붙는다. 합격자 구성 변화도검정고시 출신 정시 합격생은 44명으로 집계돼 2016학년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6학년도에는 5명에 그쳤지만 2026학년도에는 44명으로 급증했다. 최근 5년 추이를 봐도 2022학년도 33명, 2023학년도 22명, 2024학년도 32명, 2025학년도 36명, 2026학년도 44명으로 전반적인 상승 흐름을 이어간다. 이는 학교 내신에서 불리해진 학생들이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정시로 합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동시에 내신 불이익을 이유로 학교를 떠나는 상위권이 증가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2028학년도부터 내신 5등급제가 적용되면 상위 10% 안에 들지 못할 때 34%에 해당하는 2등급 구간으로 내려가게 된다. 10%에 들지 못하면 수시로 상위권 대학 합격이 사실상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검정고시를 통해 대입을 준비하려는 수요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거론된다.서울대 수시·정시 합산 남녀 비율도 변화가 뚜렷하다. 2026학년도 합격자 가운데 여학생 비율은 35.2%로, 2016학년도 이후 최저치로 내려갔다. 서울대 여학생 비율은 2016학년도 41.1%, 2017학년도 41.8%, 2018학년도 40.9%, 2019학년도 39.4%, 2020학년도 40.1%, 2021학년도 40.6%로 대체로 40%대를 유지했지만, 통합 수능이 도입된 2022학년도부터 하락세가 이어졌다. 2022학년도 37.0%, 2023학년도 35.7%, 2024학년도 36.8%, 2025학년도 36.3%, 2026학년도 35.2%다. 통합 수능 체제에서 수학 영역에서 자연계 학생들이 주로 선택하는 미적분·기하의 표준점수가 인문계 학생들이 주로 응시하는 확률과 통계보다 매년 높게 형성되는 구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구조 아래 수능 수학 고득점 경쟁에서 인문계열 선호가 강한 여학생이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여학생 비중 하락의 또 다른 배경으로는 최상위권 여학생의 진로 이동이 거론된다. 서울대보다는 의대 등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 전국 의대 합격생 중 여학생 비율은 2021학년도 34.1%에서 2022학년도 35.2%, 2023학년도 36.2%, 2024학년도 37.7%, 2025학년도 38.4%로 꾸준히 상승했다. 2022학년도부터 학부 선발로 전환된 약대 역시 여학생 합격 비율이 2022학년도 54.9%, 2023학년도 55.5%, 2024학년도 57.8%, 2025학년도 58.1%로 높아지는 추세다.N수생 비중도 소폭 내려왔다. 2026학년도 서울대 정시에서 N수생 합격 비율은 55.4%로, 전년도 57.4%보다 감소했다. 종합하면 2026학년도 서울대 정시 합격자 지형은 N수생, 외고·국제고, 과학고 등 특목고와 영재학교의 비율이 낮아지고 ▲일반고 ▲자사고 ▲고3 재학생 ▲검정고시 ▲남학생의 비율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뚜렷하게 이동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2028학년도 대입부터 고교 내신 5등급제가 적용되면서 내신 부담으로 특목고 선호가 주춤해진 상황이고, 2028학년도에는 문·이과 완전 통합 수능으로 수능 체제도 바뀐다. 이에 따라 서울대 합격자 구성은 또 다른 변화를 맞을 수 있다. 다만 과거처럼 특목고와 N수생 중심의 패턴으로 되돌아가기보다는, 일반고와 고3 학생도 노력에 따라 서울대 합격 가능성이 커질 수 있는 환경으로 읽힐 여지도 있다.

2026.02.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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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리거 피지 비치 리조트·캐스트어웨이 아일랜드, 남태평양 최초 ‘그린 키’ 인증 획득

여행

피지의 주요 휴양 시설인 아웃리거 피지 비치 리조트(OUTRIGGER Fiji Beach Resort)와 캐스트어웨이 아일랜드 피지(Castaway Island, Fiji)가 국제 친환경 인증 프로그램인 ‘그린 키(Green Key)’ 인증을 획득했다. 남태평양 지역 리조트가 이 인증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국제 표준 환경 기준 충족‘그린 키’는 호텔 및 숙박 시설의 지속가능한 운영을 평가하는 국제 지표다. 인증을 위해서는 ▲에너지 효율 향상 ▲수자원 관리 ▲폐기물 감축 ▲지역사회 기여 등 엄격한 환경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두 리조트는 이번 심사에서 에너지 절감 및 재활용 시스템 강화, 해양 생태계 보호 활동 등 운영 전반에 걸쳐 체계적인 친환경 원칙을 적용한 점을 인정받았다.이번에 인증을 획득한 아웃리거 피지 비치 리조트는 피지 비티레부 섬 코랄 코스트에 위치한 5성급 리조트다. 전통 건축 양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가족 단위 여행객을 위한 키즈 프로그램과 해양 액티비티를 운영 중이다. 이번에 인증을 받은 캐스트어웨이 아일랜드 피지는 174에이커 규모의 프라이빗 아일랜드 리조트다. 섬 전체가 하나의 시설로 운영된다. 라군과 산호초 등 자연환경을 활용한 스노클링 및 다이빙 프로그램을 제공한다.아웃리거 관계자는 “지속가능성은 리조트 운영의 핵심 가치”라며 “피지의 자연환경을 보전하면서 고객에게 수준 높은 휴양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이번 인증은 피지가 청정 자연을 기반으로 한 지속가능 관광 목적지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했음을 시사한다. 이는 친환경 휴양지를 선호하는 글로벌 여행객 및 한국인 여행객의 선택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2026.02.2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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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나라 미국 vs 엔지니어의 나라 중국, 그 사이 한국의 길을 묻다 [새로나온 책]

“중국은 무언가를 세우고 만드는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공학자 중심 국가로서, 새로운 계획을 가로막는 법률가 중심 국가인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그동안 새로운 중국을 지배해온 건 다름 아닌 공학자와 기술자였다.”(‘브레이크넥’ 중에서)글로벌 패권 국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첨예하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생존 방식을 찾아야 한다. 두 국가에 끼어 있는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의 작동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중국 기술·산업 분석가로 꼽히는 댄 왕(Dan Wang)이 미국을 ‘변호사의 나라’로, 중국을 ‘엔지니어의 나라’라는 독특한 시점으로 분석한 책 ‘브레이크넥’(BREAKNECK)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브레이크넥은 ‘위험할 정도로 빠른 속도’라는 뜻이다.저자는 실리콘밸리와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선전(Shenzhen)을 오가며 기술 분석가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의 치명적 약점을 지적한다. 미국은 혁신적 아이디어와 소프트웨어 설계 능력은 탁월하지만, 이를 물리적 실체로 구현하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변호사들이다. 이들은 절차와 규제, 그리고 소송 등을 통해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려 한다. 저자는 그 결과 인프라 건설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치솟았고, 핵무기 부품 하나를 만드는 데도 수년이 걸리는 ‘제조업 망각’ 상태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샌프란시스코의 대중교통 하나를 확충하는 데 수십 년의 법적 공방이 오가는 사회가 미국이라는 진단이다.반면 중국은 엔지니어들이 설계하고 통치하는 나라다. 중국 지도부는 사회 문제조차 공학적 난제처럼 다룬다. 목표가 정해지면 비용과 절차를 무시하고 압도적인 속도로 밀어붙인다. 2만 킬로미터가 넘는 고속철도망을 단기간에 깔고,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단시간에 선점한 비결이다.다만 댄 왕은 중국의 모델을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엔지니어적 사고방식이 국가 통치에 적용될 때 발생하는 부작용을 경고한다. 중국은 사람을 ‘개별적 존엄을 가진 시민’이 아닌 ‘시스템의 부품’으로 간주한다. 제로 코로나 정책 당시 상하이 봉쇄가 단적인 사례다. 중국의 발전 속도는 경이롭지만, 그 방향은 인간성을 소거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이 책이 한국의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저자는 미국이 제조업을 외주화하면서 혁신의 토대가 되는 ‘산업 공유지(Industrial Commons)’까지 잃어버렸다고 비판한다. 제조 공장이 없으면 엔지니어는 현장에서 배우는 암묵지를 얻을 수 없고, 이는 결국 차세대 혁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한국은 미국식 자유주의와 중국식 제조업 중심 모델 사이에 놓여 있다. 한국은 미국의 ‘절차적 지연’을 답습하지 않으면서도, 중국의 ‘비인간적 통제’를 경계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책은 국가가 번영하기 위해 기술과 제도를 어떻게 배합해야 하는지, ‘물리적 실행 능력’이 왜 국가 안보의 핵심인지를 묻는다. AI 시대의 팀장은 다르게 일합니다인공지능(AI) 시대 기업과 리더들은 기존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바꿔야만 한다. 이 책은 제미나이·챗GPT 등의 생성형 AI를 어떻게 잘 사용하느냐가 아닌 ‘AI와 어떻게 일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AI를 도구가 아닌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팀원으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HR 전문가이면서 AI 교육 전문가인 저자는 AI를 새로운 팀원으로 여기고 리더의 역할과 판단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블러드 머니 ‘10~15년’. 신약 후보물질 발굴부터 시장에 출시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개발 기간에는 임상 시험을 거쳐야 하고, 여기에서 통과된다 해도 1~2년 동안 허가와 승인을 받기 위한 지난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은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리더의 결단력과 자본의 힘, 그리고 사람의 헌신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인류에 도움이 되는 신약이 세상에 나오는 데는 자본보다 사람의 힘이 크다고 강조한다. 트위터 X2023년 7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글로벌 소셜미디어 트위터는 파란 새 로고와 함께 사라졌다.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는 파란 새 로고 자리를 X로 대체했다. 이 책은 트위터의 흥망성쇠를 거쳐 결국 X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150명이 넘는 트위터 내외부 관계자를 취재해 기록했다. 이 책은 창업자의 비전과 투자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기업은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2026.02.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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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 마닐라, 리테일 부문 ESG 경영 고삐 죈다… “친환경 리조트 도약”

여행

글로벌 복합 리조트 오카다 마닐라가 리조트 내 리테일 운영 전반에 걸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강화한다고 12일 밝혔다. 이는 단순한 캠페인 차원을 넘어, 최근 필리핀 관광 산업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지속가능한 성장’에 발맞춘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최근 필리핀 정부는 지속가능한 관광과 친환경 산업으로의 전환을 주요 정책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메트로 마닐라를 중심으로 대형 상업시설과 복합 리조트들이 잇따라 에너지 효율 개선과 폐기물 감축에 나서고 있다.이러한 흐름에 맞춰 오카다 마닐라는 고객 체류 시간이 길고 소비 활동이 집중되는 리테일 구역을 중심으로 친환경 운영 체계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에너지 효율 개선 ▲폐기물 관리 체계 정비 ▲친환경 소재 및 포장재 사용 확대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브랜드와의 협업 등을 추진한다. 소비가 일어나는 현장에서부터 자원 소비 구조를 효율화하겠다는 취지다.특히 주목할 점은 향후 파트너사 선정 기준의 변화다. 오카다 마닐라 측은 앞으로 입점 브랜드를 선정할 때 지속가능성 요소를 주요 평가 기준으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리조트가 주도적으로 ‘책임 있는 소비 환경’을 조성해, 방문객들의 소비 경험 전반을 ESG 관점에서 재정비하겠다는 의도다.오카다 마닐라 관계자는 “글로벌 관광 시장에서 지속가능성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경쟁력”이라며 “리테일 운영 전반에서 환경적 책임을 강화해 고객과 함께 성숙한 소비 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여행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조치가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여행 트렌드가 단순한 휴양을 넘어 환경과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지속가능한 여행으로 변화하고 있어, 리조트의 친환경 이미지가 브랜드 신뢰도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오카다 마닐라는 이번 리테일 부문 ESG 강화를 기점으로,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넘어 환경적 책임을 다하는 글로벌 통합 리조트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갈 계획이다.

2026.02.1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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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 '의지'는 있지만 '실행'이 없는 이유 [스페셜리스트 뷰]

전문가 칼럼

한국 경제 성장 전략을 얘기할 때면, 언제 어디서든 빠짐없이 등장하는 레퍼토리가 있다. 바로 ‘규제개혁’이다. 규제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에서도 변함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있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막는 규제, 신산업 진입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철폐하라는 것이다. 경제 성장에 관심 없는 정부가 어디 있으랴. 게다가 한국민은 특히 경제 성장에 진심이다. 그런데도 왜 한국 경제가 성장하려면 반드시 해야 한다는 규제개혁은 지지부진일까. 대다수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고 주장하는 것이니 이들이 경제 성장에 필요하다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안 되고 있다면 안 될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부의 ‘소극적 정책’ 추진 이유는뭔가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정할 때, 혹은 A와 B 중 하나를 선택할 때는, 그로 인한 편익과 비용을 비교하기 마련이다. 개인 혹은 시장의 의사결정이라면 이들의 비교가 용이하다. 개인의 만족도 또는 돈(금액)이 기준이기 때문이다. 예컨데 영철이가 점심으로 똑같이 1만1000원인 제육볶음과 순댓국 중 순댓국을 택했다면, 그날은 순댓국이 더 땡겼기 때문이다. 오성전자가 피지컬 인공지능(AI) 사업 진출을 검토할 때면, 신사업의 투자 비용과 예상 수익을 따져서 이문이 남겠다 싶어야 뛰어들 것이다. 정부 정책 결정도 마찬가지다. 편익과 비용의 비교 형량을 통해 순 편익이 더 큰 쪽을 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국민이 보기에는 세금 낭비 사업이 드물지 않고, 뭔가 해보려는 의욕적인 기업의 발목 잡는 규제가 흔하다. 왜 그럴까? 정책 결정의 편익과 비용 비교에서는 ‘누구’의 입장에서 ‘무엇으로’ 평가하는지가 민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정치가와 관료는 대체로 공익, 즉 국민의 편익 관점에서 정책을 결정한다. 단, 이들도 사람이라서 인지상정(人之常情)에 따른다. 적극적으로 사익을 챙기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손해를 무릅쓰면서 공익을 추구할 정치인과 공직자는 많지 않다. 그래서 국민의 편익과 비용은 정책 결정자 본인의 이해라는 렌즈를 통해 굴절된다. 그 방향과 정도는 정책 유형에 따라 다른데, 규제개혁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우선 편익은 모호하고 비용은 선명하다. 규제로 인해 보호되는 것은 기존 이익이며, 침해받는 것은 미래 이익이다. 규제개혁에서도 비용만 더 선명해질 뿐, 편익이 갑자기 확실해지지는 않는다. 또 기존 이익 침해에는 이미 형성된 이익집단이 거세게 반발한다. 반면에 미래에 이익을 얻을 집단은 아직 가시화되어 있지 않다. 자연히 개혁의 편익(기대 이익 창출)보다는 비용(기존 이익 소멸)이 크게 느껴진다. 기존 이익집단과 별 상관없는 경우에도 편익과 비용은 불균형하다. 국민의 안전·건강과 관련된 분야가 대표적이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운전미숙, 졸음운전, 음주운전을 범하지 않는 대신 오작동 우려가 있다. 일반 자동차에 비해 자율주행 자동차는 10만대 당 미숙, 졸음, 음주 등 운전자 잘못에 따른 사고를 100건 줄일 수 있는 반면, 오작동으로 10건의 사고를 더 유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주행 자동차 허용에 따른 편익과 비용은 뭐가 더 클까? 자율주행 자동차 오작동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사방에서 난리를 칠 것이다. 하지만 운전자 귀책 사고 절감은 결과적으로 그럴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순수하게 공익만 따진다면, 자율주행 자동차를 허가하되 오작동 사고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그러나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정치인과 관료(및 일반 시민) 입장에서, 드러나지 않는 잠재적 사고 예방의 편익보다는 구체적으로 발생한 오작동 사고의 피해가 훨씬 크게 느껴진다. 가만히 있으면 정부의 늑장을 탓하는 신문 사설이나 공청회 정도의 부담만 지면 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허가했다가 오작동 사고 발생 시의 후폭풍은 어마어마하다. 현 상황을 유지하면 성공과 실패 모두 발생하지 않으니, 칭찬도 없지만 비난도 크지 않다. 적극적으로 개혁해서 7이 좋아졌으나 3이 나빠졌다면? 규제개혁에 따른 혜택은 정부가 어차피 할 일을 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개혁의 부작용은, 특히 특정 사고 발생처럼 가시적인 경우라면, 정부의 잘못이 된다. 이런 구조에서 기존 규제를 적극적으로 개혁하겠다고 나설 리가 없다.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 당연하다. 규제개혁의 본질적 속성정부 정책 수단은 둘이다. 하나는 ‘돈’이고 다른 하나는 ‘말’이다. 특정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돈(재정 투입)을 사용할 수도 있고 말(규제)로 대신할 수도 있다. 저소득 근로자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근로장려금을 지급할 수도 있고 최저임금제를 실시할 수도 있다. 전자를 택하면 정부 재정이 소요된다. 후자를 택하면 고용주 부담이 늘어난다. 전자는 세금(혹은 채무) 증가로 연결되고 후자는 고용 감소와 물가인상으로 이어진다. 재정 투입과 규제 중 어느 것을 택할지는 정책 상황마다 다르다. 또 유사한 정책 상황이라도 국가에 따라 선호 형태가 다른데, 우리는 규제를 선호하는 편이다. 모범적인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과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는 의외로 고용 유연성이 높다. 이유는 노동자들이 잘려도 생계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해고된 노동자에게는 높은 수준의 실업급여가 지급된다. 그리고 양질의 전직 훈련과 취업 알선 서비스가 제공된다. 그래서 얼마 뒤에는 예전 수준에 버금가는 직장에 취업한다. 우리 사회에서 고용 유연화가 어려운 까닭은 해당 노동자 집단의 반대가 거세기 때문이다. 북유럽 수준의 안전망이 갖춰져 있다면, 반대의 강도가 대폭 줄어든다. 우버나 타다 등 모빌리티 플랫폼 등장에 택시업계가 격렬하게 반발한 이유와 그에 대한 대책도 유사하다. 개혁으로 손해 보는 노동자 및 산업계 지원 비용과 개혁으로 신산업 동력이 창출됨으로써 사회 전체가 누릴 편익을 비교하면, 편익이 비용보다 훨씬 클 것이다. 그러나 정부 입장으로 보자면, 비용은 가시적이며 당장 투입되는 것이지만 편익은 잠재 이익으로 느리게 창출된다. 줄어든 것은 현 정부 곳간이지만 채워지는 것은 미래 정부 곳간이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설 리가 없다. 정부 입장으로는 편익보다 비용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는 것, 바로 규제개혁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이는 모든 나라에 공통된다. 규제 샌드박스, 효과 보려면그럼에도 나라마다 규제개혁 수준이 천차만별인 것은, 나라마다 정부역량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규제개혁 수준에 대한 평가는 생략한다. 각자의 평가에 맡기겠다. 대신 현재 여건에서, 규제개혁 수준 향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따져보자. 가장 필요한 것은 ‘규제 샌드박스’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다. 흔히 신성장 동력 창출을 위해서는 규제방식을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허용되지 않은 것은 금지된다는 ‘원칙 금지, 예외 허용’이 포지티브 방식이다. 금지되지 않은 것은 허용된다는 ‘원칙 허용, 예외 금지’가 네거티브 방식이다. 혁신을 위해서는 허용이 원칙인 네거티브 방식이 당연히 유리하다. 하지만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국민의 안전을 위한 규제를 생각해 보라. 기존에 존재하는 제품만 규제하고, 신제품은 아무리 위험해도 규제할 수 없다? 말이 안 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규제 샌드박스’이다. 새로운 제품·서비스를 일정 기간 특정 지역에서 소규모로만 우선 허용한 후, 유통 과정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토대로 사후에 방침을 정하는 것이다. 기존 규정이 없다고 신산업을 금지(포지티브 방식)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어떤 문제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조건 허용(네거티브 방식)할 수도 없으니 조건부 허용 후에 지켜보고 확실한 판단을 할 수 있을 때 필요한 조치를 하려는 것이다. 이런 묘수가 있음에도 성장 동력 창출을 위한 규제개혁이 미진한 이유는, 소극적으로 눈치를 보면서 운영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집단의 반대가 심한 사안은 애초 규제 샌드박스 대상으로 채택되지 않는다. 또, 대상이 되더라도 안전성 검증에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서 통과가 쉽지 않게 한다. 공유경제·원격진료·모빌리티·빅데이터 활용 등 논란이 큰 분야는 본체는 건드리지 않고 일부만 대상으로 채택한다. 규제 샌드박스가 십분 성과를 내려면, 행정부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이해집단 간 갈등이 심하거나 신산업 진출에 중요한 핵심 규제는 대부분 법률 형태이다. 법률 개정은 본래 국회의 권한이라서 행정부가 오롯이 담당할 수 없다. 게다가 이해관계집단 간 갈등 해결은 행정보다는 정치 영역에서 풀어야 하는 것이 많다. 그래서 규제 샌드박스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국회가 함께해야 한다. 국회에 가칭 ‘신성장 동력창출 규제개혁 특별위원회’를 설치하자. 그래서 행정부와 함께 규제 샌드박스를 전향적으로 운영하자. 정쟁에 몰두하는 것도 국회의 역할이겠다. 하지만 행정부와 협력해서 국가적 과업을 이뤄내는 것 역시 국회가 할 일이다. 나는 우리 국회가 그 정도의 능력은 갖췄다고 믿는다.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필자는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정책·규제 분야의 대표적 학자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를 받은 뒤,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정책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정부 규제개혁, 공공정책 의사결정, 비용·편익 분석을 중심으로 연구해 왔으며 정경대학장과 정책대학원장, 정부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행정학회·한국정책학회 등 주요 학회에서 연구·편집 책임을 맡았고, 공공기관 경영평가위원과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정책 현안에 대한 실천적 해설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2026.02.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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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아세안이라는 거대한 파도에서 한국이 ‘키’를 쥘 시간 [동남아시아 투자 나침반]

전문가 칼럼

“한국의 첨단 기술력과 아세안의 역동적인 디지털 시장 잠재력이 결합될 때 강력한 시너지가 창출될 것이다.”지난해 10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26차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이같이 발언했다. 아세안의 디지털 전환 파트너로서 한국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는 것이다. 아세안이 역내 통합과 디지털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술력과 제도적 경험을 겸비한 협력국을 필요로 한다는 방증이다.동남아시아 11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은 현재 디지털 경제를 매개로 한 새로운 통합 국면에 진입했다. 2026년 초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아세안 각국 리더들은 ‘아세안 디지털 경제 프레임워크 협정’(DEFA)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2030년까지 약 2조달러(약 2900조원) 규모로 성장할 디지털 경제를 아세안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목표다.가속화되는 DEFA 시계, 쟁점은 '연결의 규칙'DEFA는 이제 구상의 단계를 지나 현실적인 정책 과제로 구체화되고 있다. 아세안은 2026년 의장국인 필리핀에서 열릴 정상회의에서 최종 서명하는 것을 목표로 협상 속도를 높이고 있다. 올해 1분기까지 남은 핵심 쟁점을 정리한다는 로드맵 하에 각국 실무 협의가 긴박하게 진행 중이다.현재 논의의 핵심은 ▲국경 간 데이터 이동과 저장 원칙 ▲전자결제 및 디지털 신원의 상호운용성 ▲중소기업(SME)의 디지털 참여 ▲소비자 보호 및 사이버 보안 기준 등이다. 이는 기술적 사안인 동시에 각국의 규제 철학과 주권 인식이 첨예하게 맞닿아 있는 영역이다.아세안은 모든 쟁점의 완벽한 해결보다는 ‘실행 가능한 최소 공통 규칙’을 우선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고도화하는 실용적 접근을 취하고 있다. 이미 금융 분야에서 QR 결제 연동 등 점진적 통합을 시도해 온 경험을 디지털 경제 전반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이다.시장 개방이 아닌 '호환성'이 본질DEFA를 단순한 ‘디지털 자유무역협정’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 협정의 본질은 시장 개방이 아니라, 상이한 디지털 경제가 맞물려 돌아가기 위한 ‘공통의 연결 규칙’을 정립하는 데 있다. 관세 철폐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 호환성, 그리고 예측 가능성이다.아세안은 겉보기에 하나의 시장 같지만, 실제로는 국가별 디지털 성숙도와 규제 수준의 편차가 크다. 따라서 DEFA는 제도의 통일이 아닌 ‘연결’을 지향한다. 서로 다른 제도를 유지하면서도 경제 활동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프로토콜을 만드는 작업이다.이 지점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드러난다. 한국은 높은 디지털 기술 역량을 보유했을 뿐 아니라 ▲전자정부 ▲실시간 결제 인프라 ▲금융 보안 ▲데이터 활용 등 제도를 실제로 운영하며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아세안이 한국에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 공급이 아니라, 작동 가능한 디지털 질서를 설계하고 검증해 본 경험이다. 규범의 ‘설계자’로 전환할 기회DEFA 체결 이후를 대비해 한국은 다음 세 가지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첫째, 규범 수용자(Rule-taker)에서 공동 설계자(Rule-setter)로의 전환이다. 협정문 서명 이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시범 사업이 추진될 때, 한국은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협정의 실질적 작동 방식을 제안하고 주도해야 한다.둘째, 디지털 금융과 중소기업을 잇는 협력 모델 구축이다. 아세안 디지털 경제의 병목인 SME의 금융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이 축적한 정책금융, 기술보증, 데이터 기반 신용평가 노하우를 이식해야 한다. 이는 DEFA가 지향하는 포용적 성장의 핵심 도구가 될 것이다.셋째, 데이터 상호운용성 확보의 선점이다. ▲국경 간 QR 결제 ▲디지털 고객확인(KYC) ▲ 자금세탁방지(AML) ▲무역 데이터의 디지털화는 DEFA의 성패를 가를 시험대이자 한국 금융·IT 산업이 경쟁력을 가진 분야다.DEFA는 아세안이 단일 디지털 국가가 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각기 다른 국가들이 연결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제도화하는 과정이다. 2026년 1분기 협상은 그 성격과 범위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한국에게 DEFA는 단순한 시장 접근의 기회를 넘어, 아세안과 함께 디지털 질서의 표준을 설계할 수 있는 드문 전략적 모멘텀이다. 필자는 삼정 KPMG∙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한국벤처투자 등 23년이상 다양한 사업경험과 더불어 벤처캐피탈∙회계법인∙인프라∙스타트업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현재 싱가포르의 Hanbridge의 대표로 한국 중소∙벤처기업의 해외 진출 및 해외 자금 유치를 돕는 역할과 함께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생태계를 연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2026.02.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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