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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보다 적응, 예측보다 대응[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전문가 칼럼

2026년, 마케터들은 달갑지 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2월) ▲FIFA 월드컵(6월) ▲전국동시지방선거(6월) ▲나고야-아이치 아시안게임(9월) 등 한 해에 4개의 메가 이벤트가 몰린다. 빅 이벤트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기회다. 그러나 함정이 있다. 모든 브랜드가 동시에 목소리를 높이면서 노이즈 레벨이 치솟는다. 지난 2018년, 올해와 같이 4대 빅 이벤트가 정확히 겹쳤던 해, 막대한 스폰서십 비용을 지불한 브랜드들 중 상당수가 '존재감 없음'으로 끝났다. 2026년은 더 복잡하다. 경기 불확실성은 높고, 예측은 어렵다. 그러나 반전의 기회가 있다. 인공지능(AI)과 OTT 플랫폼의 성숙으로 대응 능력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는 콘텐츠 제작 속도를 높였고, OTT·CTV(커넥티드TV)는 타겟팅 정밀도를 높였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전략이다.리얼타임 컨텍스트 마케팅, 순간을 잡는 자가 시장을 잡는다2013년 슈퍼볼 결승전, 34분간 정전이 발생했다. 오레오는 15분 만에 ‘You can still dunk in the dark’(당신은 어둠 속에서도 덩크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렸고 1만5000건 이상의 리트윗과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리얼타임 마케팅의 전설이 탄생한 순간이다. 2026년의 게임 체인저는 AI다. 과거 '15분 만에 제작'이 화제였다면, 이제는 '5분 안에 10개 버전 제작'이 가능하다. 노이즈 속에서 돋보이려면 속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이벤트 기간 동안 24시간 애자일 팀 구성 ▲AI 소셜 리스닝 실시간 추적 ▲현장 팀장 권한 위임이 필요하다.하이퍼-로컬 타겟팅, 정밀한 타겟이 노이즈를 뚫는다모두가 동시에 광고를 쏟아내면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도 묻힌다. 해법은? 정확한 사람에게만 말을 거는 것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지역별 타겟팅이 226개 지자체마다 다른 광고를 만들라는 뜻은 아니다. 하고 싶은 말(메시지)은 하나로 통일하되, 말하는 방식을 지역마다 다르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올림픽 광고라도 강원도에서는 "우리 지역 올림픽"이라는 자부심을, 서울에서는 "세계인의 축제"라는 참여감을 강조하는 식이다. 기술은 이미 준비됐다. 넷플릭스는 2022년부터 광고를 받기 시작했고, 유튜브는 TV로 보는 사람들에게 지역·나이·관심사에 맞춘 광고를 보여준다. 티빙, 웨이브 같은 국내 플랫폼도 비슷한 서비스를 확대하는 중이다.AI를 쓰면 하나의 광고를 지역별로 10-20개 버전으로 자동 변환할 수 있다. 여기에 각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소규모 인플루언서를 결합하면 진정성까지 확보된다. 노이즈 속에서 살아남는 법은 '더 크게 외치기'가 아니라 '정확한 사람 귀에 속삭이기'다.참여형 브랜드 경험, 관객을 선수로 만들어라노이즈가 높은 환경에서 일방적 메시지는 무력하다. 소비자를 능동적 참여자로 만들어야 한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보자. 나이키는 공식 스폰서도 아니었지만, 팬들이 자신의 축구 영상에 #JustDoIt를 달아 올리도록 유도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축구 순간이 나이키 캠페인의 일부가 됐다. 결과는? 월드컵 기간 나이키의 브랜드 언급량이 공식 스폰서 아디다스를 30% 초과했다. 참여는 기억을 만들고, 기억은 충성도를 만든다. 광고를 100번 보는 것보다 한 번 참여하는 게 더 강력하다.경기 결과 예측 게임, 응원 미션 같은 게이미피케이션을 설계하라. 금전 보상이 아니어도 된다. ▲리더보드 1위 ▲특별 배지 같은 사회적 보상도 효과적이다. 팬들의 응원 콘텐츠를 모아 재확산하는 허브를 만들고, 경기 직후 즉시 관련 상품을 살 수 있게 연결하라.퍼포먼스와 진정성의 균형, 숫자와 감성 둘 다 잡아라빅이벤트 마케팅에는 딜레마가 있다. 경영진은 "광고비 쓴 만큼 매출이 올랐느냐"고 따진다. 그러나 소비자는 "돈 냄새 나는 광고"에 냉소적이다. 클릭 수와 구매 전환율만 쫓으면 당장 성과는 나올지 몰라도, 브랜드는 텅 빈다. 반대로 "브랜드 가치가 올랐다"는 추상적인 말만 하면 경영진을 설득하기 어렵다. 단기와 장기를 함께 측정하는 체계를 만들어라. 즉각적 성과(클릭·구매)와 브랜드 건강도(인지도·선호도)를 동시에 추적한다. 이벤트와 연관된 브랜드 서사를 만들어라. BBQ의 ‘치킨연금’은 아이디어 하나로 이 둘을 모두 잡았다.노이즈 속 생존 사례, 즉흥과 계획의 균형2024년 파리 올림픽, 삼성은 메달리스트에게 갤럭시 폰을 제공하고 시상대 셀카를 유도했다. ‘빅토리 셀피’는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된 후원사 제품의 시상대 등장이었다. 사전에 준비된 치밀한 기획이지만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자연스러운 장면 연출했지만 현장에서의 창의적 적응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전 세계 메달리스트 셀카가 SNS 확산되며 '승리의 순간 = 갤럭시'로 각인 됐다 둘 다 '의미 있는 순간'에 브랜드를 연결한 것이다.2022년 베이징, BBQ는 공식 스폰서가 아니었다. 윤홍근 회장이 빙상연맹 회장 이라는 특수 관계를 활용해 즉흥적으로 '치킨연금' 아이디어를 냈다. 금메달리스트가 나오자 화제 폭발. 특수관계 논란은 있었지만 창의성으로 전년대비 매출 40%%가 급증했다.2026년은 2018년보다 유리하다. 첫째는 속도다. AI로 리얼타임 대응이 일상화됐다. 둘째는 정밀도. OTT·CTV로 하이퍼-로컬 타겟팅이 현실화됐다. 셋째는 효율이다. AI가 제작·타겟팅·측정을 자동화한다. 그러나 역설이 있다. 기술이 좋아졌다고 쉬워진 게 아니다. 모두가 같은 무기를 가지면, 전략과 창의성이 승부를 가른다.2026년 마케팅 환경은 이중적이다. 4개 빅이벤트는 기회지만 노이즈는 최고다. 불확실성은 높지만 대응 능력도 진화했다. 핵심은 창의적 순발력이다.. 오레오, BBQ 그리고 삼성의 성공비결은 창의적 아이디어다. 아울러 ▲‘의미 있는 순간'에 브랜드를 연결하는 순발력 ▲리얼타임으로 반응하되 창의적으로 ▲지역을 타겟하되 정밀하게 ▲소비자를 참여시키되 기억에 남게 ▲성과를 측정하되 진정성 있게. 2026년의 승자는 가장 큰 예산을 가진 브랜드가 아니다. 순발력있게 창의적으로 적응하는 브랜드가 될 것이다.

2026.01.26 10:00

4분 소요
2026 거브테크 시대 개막, AI가 바꾸는 정책 참여 경험[스페셜리스트 뷰]

전문가 칼럼

해마다 1월이 되면 사람들은 다양한 정책 정보를 마주한다. ▲세금 공제 ▲지역 지원금 ▲보험료 반환 ▲사회보장제도 등 올해 달라지는 제도 목록이 SNS 카드뉴스와 검색 콘텐츠를 가득 채운다. 그러나 정보 생산량이 높아진 것 대비 실제 정책 참여 증가 비율은 정체돼 있다.대중들의 정책 참여를 막는 큰 요인 중 하나는 정보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원활치 않기 때문이다. 문서를 여러 차례 읽어보더라도 소득·가구·부양·거주 형태 등 조건들이 엮여 있어, 본인이 이 정책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또한 많은 시간을 들여 정보를 확인하고 정책 참여를 시도했다가 조건 미비로 실패하는 경험이 쌓이게 되면 자연스레 참여 의지가 약해지기 마련이다. 현대의 개인은 빠르게 변한다. 정규직과 프리랜서, 결혼·이사·부채 상환 등 여러 요인들에 의해 생활 구조가 계속 달라진다. 똑같은 자영업자라 하더라도 매출 구조·업종별 규제·임대 계약 조건의 차이가 있고 주거 환경이나 부양 여부가 1년 사이 바뀌기도 한다. 결국 동일한 집단에 속해도 개인의 상황에 따라 정책 적용 여부는 크게 갈린다. 이 때, 개개인의 세부 조건을 반영해 정밀하게 계산하고 정책의 수혜가 대중에게 온전히 닿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로 거브테크(GovTech)다. 거브테크는 정부(Government)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기술·데이터·혁신 생태계와 협업하여 효율적이고 투명한 공공서비스 체계를 구축하는 최신 정부 혁신 패러다임이다. 거브테크를 구성하는 핵심 기술 인프라거브테크는 크게 네 가지 기술 축으로 움직이고 있다. 첫번째는 인공지능(AI/ML) 기반 기술이다. ▲방대한 정책 문서를 자동 요약하는 기술 ▲반복 질의에 대한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응답 시스템 ▲복지 및 정책을 정밀 매칭하는 기능 ▲이상거래를 감지해 부정수급을 방지하는 탐지 기술 ▲예산 집행·도시 혼잡·재난 상황 등을 사전에 분석하는 예측 행정 기술이 포함된다. 두번째는 클라우드 및 공공데이터 인프라(Cloud & Data Infrastructure)다. ▲정부 데이터센터의 클라우드 이전 ▲공공데이터를 API 형태로 개방하는 구조 ▲개인 데이터 주권을 강화하는 MyData 기반 플랫폼 등이 해당된다. 세번째 기술은 사이버보안 및 디지털 신원(Security & Digital Identity)이다. ▲제로트러스트 기반의 정부망 보안 체계 ▲블록체인 기반 전자문서·전자서명 기술 ▲디지털 신원(Digital ID·DID)을 도입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으며 ▲국내 행정전자서명이 대표적인 사례다.마지막은 데이터 거버넌스 및 상호운용성(Data Governance & Interoperability)다. 해당 분야에는 ▲기관 간 데이터를 연계하기 위한 표준 프레임워크 ▲메타데이터·품질관리 체계 ▲정책 결정을 지원하는 데이터 레이크 등이 있다.빠르게 성장하는 글로벌 거브테크 산업과 한국 시장 환경글로벌 거브테크 산업은 대규모 자본을 기반으로 급성장 중이다. 기업가치 10억 달러(한화 약 1조 4769억원)를 기준으로 하는 유니콘 기업만 보더라도 그 흐름은 명확하다. 미국의 정부용 데이터 분석 및 인공지능 플랫폼 ‘팔란티어’는 최근 기업가치가 약 4240억 달러(한화 약 626조 2056억원)에 달했으며, 공공기관 인사·컴플라이언스 솔루션을 제공하는 ‘네오고브’는 약 30억 달러(한화 약 4조 4307억원, 국방·정부기술 플랫폼을 구축하는 ‘안두릴’은 약 305억 달러(한화 약 45조 454억원)로 추정된다. 공공 행정의 디지털 전환이 거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물론 하나의 산업 분야로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거브테크는 아직 시작 단계이긴 하지만, 발전을 위한 기본 조건을 이미 상당 부분 확보한 상태다. 모바일 본인인증 보급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전자문서 처리와 디지털 행정 경험에 대한 국민 수용성도 높다. 여기에 ▲금융 서비스 ▲각종 보조금 신청 ▲연말정산 등 누적된 온라인 기반 행정 경험은 거브테크 서비스를 실생활에 안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공공 조달·행정 부문이 경제 규모 대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5년 기준 미국의 GDP는 30.34조 달러로 한국(GDP 1.95조 달러, 약 2780조 원) 대비 약 16배 규모지만, 같은 해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은 약 7000억 달러(약 980조 원)로 한국(약 1600억 달러, 약 225조 원) 대비 약 4배 수준이다. 이는 한국의 거브테크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이 잘 마련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책 수요와 행정 구조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정부는 디지털 행정 고도화를 위한 대규모 구조 개편을 진행 중이다. 행정안전부는 2026년 예산 6조6665억원 중 AI 민주정부 및 정보화 분야에 8649억원을 편성하고, 기존 디지털정부혁신실을 ‘인공지능정부실’로 개편했다. 조직을 정책국·서비스국·기반국으로 재편한 것은 AI 기반 행정을 단일 사업이 아니라 국가 행정의 기본 인프라로 삼겠다는 방향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정부는 그동안 민간 기술 생태계와의 협업을 통해 실제 행정 적용 가능성을 검증해왔다. 그중 하나는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2023~2024년 운영한 ‘국민체감 선도프로젝트’다. 개인·기업 대상 6개 과제를 선정해 민간 기업과 공동 개발한 사례로, 청년 정책 맞춤형 추천, 마음건강 데이터 분석 기반 서비스, AI 기반 공공입찰 추천 모델 등이 시범 구현돼 공공 데이터가 민간 기술과 결합해 국민 체감형 서비스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당시 웰로도 개인·기업 대상 과제의 주관·참여기업으로서 정책 추천 및 입찰 정보 분석 기술을 실증한 바 있다. 정책을 실제 경험으로 연결하는 웰로의 혁신 기술정책 데이터는 그 규모가 방대할 뿐만 아니라 기관별 형식도 상이해 공공기관의 단독 처리·표준화·활용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정책 정보를 개인·기업·기관 단위에서 실제 활용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려면 웰로와 같은 전문 거브테크 기업들의 협업 지원이 필수다. 이런 상황속에서 웰로는 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서 발행되는 정책 정보를 수집·정제하고 한글 문서·웹 콘텐츠 등 방대한 비정형 데이터를 자연어 처리 기반으로 구조화해 사용자에게 맞춤 제공한다. 가족 구성·거주 지역·소득 등의 개인별 메타데이터를 반영해 정책 대상자와 혜택을 정밀하게 연결함으로써 이용자에게 필요한 정책을 자동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편의성 덕분에 웰로는 2025년 누적 이용자 수 523만명을 달성했다.스타트업 기업 ‘코딧’은 경우 공공이 필요로 하는 정책 정보를 자동으로 리포팅 해주는 AI 에이전트를 고도화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선 정책 모니터링 플랫폼’, ‘APEC 2025 정책 모니터링 플랫폼’ 등을 연달아 출시해 관심을 끌었다. 해외에서는 ‘유나 솔루션즈’가 유명하다. 유나 솔루션즈는 공공부문의 핵심 행정 기능 및 재무 운영을 지원하는 클라우드 솔루션 기업이다. 북미 전역의 3400개 이상 공공기관이 효율적이고 투명한 운영을 위해 유나 솔루션즈와 협업중이다. ‘플럭스’도 주목할만 하다. 플럭스는 보조금 관리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서비스 출시 2년 만에 7000여개의 비영리 단체를 고객으로 확보하는 등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미국의 기술지원기관협회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독립 재단의 34%, 가족 재단의 26%가 플럭스의 기술을 선호한다고 응답했다.지속 가능한 거브테크 산업을 위한 과제국내 거브테크 산업이 지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술 기업이 행정 영역에서 실효성 있는 시도를 이어가도록 신규 모델을 실증하고 확장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돼야 한다. 또한 디지털 행정의 국제적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초기 설계 단계부터 호환성과 확장성을 고려한 접근도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최근 산업 내 AI 활용이 확산되면서 데이터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특히, 공공 영역의 경우 보안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데이터가 어떻게 처리되고, 어떠한 책임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많은 거브테크 기업들은 장기적인 안정성과 신뢰 확보를 위해 투명한 AI 운영 체계를 만드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결론적으로 거브테크의 핵심은 정책을 단순한 정보로 전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개인과 기업의 실제 삶 속에서 체감 가능한 경험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정책 참여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과 반복적인 실패 경험을 줄이고, 이용자가 자신의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가 마련될 때 비로소 행정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시민들은 더 이상 정책을 ‘찾아야 하는 정보’로 인식하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먼저 다가오는 서비스, 선택의 부담을 줄여주는 경험을 기대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정책이 제도에 머무르지 않고 경험으로 완성되는 순간, 거브테크는 선택지가 아닌 행정의 기본 전제가 될 것이다. 필자는 2021년 AI 기반 개인 맞춤형 정책 추천 플랫폼 ‘웰로’를 창업한 이후, 기업용 공공사업 관리 SaaS ‘웰로비즈’, 기관용 정책관리 솔루션 ‘웰로링크’를 출시하며 거브테크 전 분야로 확장해왔다. 개인 사용자 523만명, 가입 기업 7000개사를 돌파했으며, 2025년 세계 AI 학회 AAAI에서 대한민국 거브테크 분야 최초 ‘혁신적 인공지능 응용상’을 수상했다. 현재 국무총리실 공공데이터 전략위원회, 행정안전부 정책자문위원회 공공AX분과 의원으로 정책 자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26.01.26 08:00

7분 소요
젠슨 황의 ‘잃어버린 15년’…우리는 왜 그를 기억하지 못했나[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지난해 10월 엔비디아의 창업자 젠슨 황(Jensen Huang) 최고경영자(CEO)의 방한은 장안의 화젯거리였다. 특히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함께 ‘치맥’을 즐기면서 진행한 이른바 ‘깐부 회동’은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경제 관계자들은 깐부 회동을 첨단 기술 기업들이 협력 의지를 다지는 행사로 받아들였고, 대중은 재벌 총수들이 선술집에서 만나 러브 샷을 하는 낯선 풍경에 열광했다. 필자 역시 이 흥미로운 만남을 지켜보며 한편으로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다. ‘젠슨 황은 왜 그토록 오랜만에 한국을 찾아 대기업 총수들만 만나고 갔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글로벌 빅테크 기업 CEO로서 당연한 행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반도체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세계적인 기업을 일군 엔비디아의 정체성을 생각하면, 이번 방한 행보에는 까닭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젠슨 황의 한국 방문은 무려 15년 만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중국·대만·일본 등 주변 아시아 국가를 수차례 방문했지만, 정작 메모리 반도체 강국인 한국은 찾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국내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했음에도, 엔비디아는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한국을 추억하는 젠슨 황,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한국 측근들의 전언에 따르면 젠슨 황은 인연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인물이다. 30여 년 전 엔비디아에 투자했던 일본인 담당자의 연락 한 통에 직접 답장을 보내고 일본행을 택했을 정도다. 이번 방한의 계기 중 하나로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과 편지를 주고받았던 인연을 꼽기도 했다.그에게 한국은 각별한 기억이 있는 곳인 듯하다. 그는 방한 기간 중 "엔비디아의 성장은 한국의 PC방 덕분"이라며 과거 용산 전자상가를 누비던 시절을 회고했다. 온라인에서는 2008년 서울대학교에서 강연하던 그의 앳된 모습이 담긴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엔비디아에게 한국은 의미 있는 시장이었고 젠슨 황은 이곳에서 꽤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기이한 점은 그 시절의 젠슨 황을 상세히 기억하거나, 개인적인 인연을 이어온 한국인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유명인의 사소한 에피소드까지 발굴하는 언론조차 그의 과거 행적을 찾지 못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용산 상인들의 인터뷰를 싣는 데 그쳤다. 반도체 업계 원로 중 누구도 그와의 인연을 자랑스레 이야기하지 않았다. 작은 인연을 가능성으로 바꾸지 못한 실수 엔비디아는 한국에 진출한 지 오래되었고, 한국은 그들에게 결코 작은 시장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젠슨 황을 기억하지 못할까. 스타트업 생태계에 몸담은 필자는 그 이유를 '과소평가된 작은 인연'에서 찾는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약한 유대’(Weak Tie)라고 부른다.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이 약한 유대는 종종 거대한 기회로 이어진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문화 속에서 창업자들은 새로운 협업 관계 형성에 적극적이다.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 훗날의 사업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 이미 구축된 가치 사슬 위에서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협업을 결정하는 기존 대기업의 문화는 이와 사뭇 다르다.기성 기업들은 종종 창업자의 잠재력과 스타트업의 파괴력을 과소평가하며 작은 인연을 흘려보낸다.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Android)의 창업자 앤디 루빈과 삼성전자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2004년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삼성전자를 찾은 앤디 루빈과 8명의 개발자는 턱없이 작은 회사 규모를 이유로 문전박대당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안드로이드는 구글에 인수됐다. 이 사건은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시각의 한계와, 그들이 왜 혁신적인 파트너와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려운지를 여실히 보여준다.필자는 15년 전, 젠슨 황 역시 한국에서 비슷한 시선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세계를 호령하지만 당시 엔비디아는 그저 그래픽 카드나 만드는 부품 제조사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많은 국내 기업 관계자들이 그를 단순한 하청 업체 대표 정도로 치부했을 가능성이 크다.작은 인연도 소중히 여긴다는 젠슨 황은 과거 한국에서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그와 시간을 보내며 약한 유대를 맺었을 수많은 한국인 중 그를 뚜렷하게 기억하는 이는 없다. 15년 만에 돌아온 거물을 정치인과 재계 총수들은 환대했고 대중은 환호했다. 하지만 작은 인연이 불러올 엄청난 잠재력을 아는 필자는 그 화려한 깐부 회동 뒤편에서 씁쓸함을 느낀다.오늘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또 다른 스타트업 창업자가 15년 뒤 제2의 젠슨 황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 그때도 우리는 그를 기억하지 못할 것인가. 펜을 놓는 순간까지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는 건 단순한 기우가 아닐 것이다.

2026.01.25 10:00

3분 소요
‘성공하는 혁신’의 생태계가 절실하다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5.0%인 119조원, 2028년 9.4%인 233조원, 2030년 14.5%인 367조원…. 이 엄청난 숫자는 새롭게 등장한 신기술을 활용한 신사업의 성장 전망치인데요, 바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실물자산이나 금융자산을 디지털 토큰 형태로 발행하는 토큰증권 이야기입니다. 고가의 빌딩이나 미술작품, 선박뿐 아니라 콘텐츠 지식재산권(IP) 등의 자산을 소액 단위의 디지털 조각으로 쪼개 여러 사람이 소유하고 임대료나 판매 차익을 나눌 수 있는 기존에 없던 혁신적 금융투자 방식입니다. 정부와 핀테크 업체들은 토큰증권이 자산 분산투자 및 벤처투자 활성화 등 특장점이 많다고 보고 2019년 금융규제 샌드박스 도입과 함께 ‘혁신금융서비스’ 틀에서 제한적으로 운영하며 정식 사업화를 준비했는데, 최근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됐습니다. 이제 정식 사업화에 더욱 속도가 붙을 시점인데, 토큰증권 유통 시장을 운영할 조각투자 장외거래소(유통플랫폼) 사업자 선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2018년 창업한 뒤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돼 7년간 관련 서비스를 운영해 온 1세대 핀테크 업체 루센트블록이 제외되고, 기존 거래소(한국거래소·넥스트레이드) 중심의 컨소시엄 두 곳이 선정된 것으로 알려져서입니다.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는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기간 축적된 성과와 선도성에 대한 보호는커녕 운영할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퇴출당할 위기에 처했다. 그 자리는 아무런 기여도 한 적 없는 금융당국 연관 기관들이 자리를 채우게 됐다”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토큰증권의 정식 금융상품화만을 희망하며 오랫동안 시련의 시절을 버텨온 스타트업으로서는 억울하고 분한 건 당연지사입니다. 금융 당국은 사업자를 발표하려다가 연기했는데, 이후 최종 심사결과에 따라 혁신 사업에 도전했다가 문을 닫을 수도 있어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신세입니다. 또 다른 혁신 사업에서도 핀테크 업체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은행권에 힘이 실리고 있어서입니다. 은행이 과반(51%) 지분을 보유한 컨소시엄을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로 우선 허용하는 방안이 당국에서 흘러나오자, 기술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만들고 시장을 개척하던 핀테크 업체가 뒤로 밀리는 꼴이라며 기가 차다는 반응입니다. 금융 안정이라는 가치가 중요치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혁신을 주도한 기술 기업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어느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길을 개척할까요. 토큰증권과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신사업이 아닙니다. 미래 금융 질서를 재편할 촉매제이자 대한민국 금융의 미래가 걸린 승부처입니다. 전 세계적인 대전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한민국호’가 순항하기 위해서는 혁신을 시도한 이들이 패배자가 되는 구조를 타파해야 합니다. 지금은 실패를 용인하는 것을 넘어, ‘성공하는 혁신’이 제대로 대접받는 공정한 생태계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2026.01.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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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가득률 90%…‘수출 산업’으로 진화하는 K-마이스 [E-MICE]

전문가 칼럼

아시아 최대 커피 박람회 ‘서울카페쇼’ 전시회 주최사인 엑스포럼은 최근 3년간 올린 외화 수입이 330만달러(약 48억원)에 달한다. 약 220억원인 회사 1년 전체 실적의 20%에 육박하는 규모다. 지난 2023년 40만달러(약 6억원)였던 외화 수입은 이듬해 2배 넘게 늘어난 90만달러(약 13억원)에 육박한 데 이어 지난해 200만달러(약 29억원)를 넘어섰다. 출품업체로부터 받는 전시 부스비(참가비)와 관람객이 내는 입장료(등록비)가 주 수입원인 전시·박람회 주최 회사로는 이례적인 실적이다. 엑스포럼은 그동안 올린 외화 수입이 수출 실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전시 업계 최초로 ‘200만불 수출탑’도 수상했다. 이전까지 순수 민간 전시 주최사나 컨벤션 기획사가 받은 수출탑은 100만불, 전시컨벤션센터는 코엑스가 지난 2024년 받은 500만불이 최고였다.오윤정 엑스포럼 상무는 “서울카페쇼 등 국내 행사를 비롯해 베트남 호찌민과 하노이, 프랑스 파리와 일본 오사카에서 여는 전시·박람회에 직접 참가비를 내고 출품하는 현지 기업이 늘어난 덕분”이라고 말했다. 전시·박람회 외국 출품기업 2.3배 증가마이스(MICE, 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산업의 기능이 수출·무역 진흥의 도구에서 수출 산업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숙박·쇼핑·관광 등 전후방 산업과 수출 기업의 판로 개척을 돕는 보조 기능에 더해 직접 외화 수입을 올리는 이른바 ‘외화 취득 산업’으로 역할을 하면서다. 연간 7000억달러(약 1033조원)를 넘어선 나라 전체 수출 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요원하기만 했던 마이스 산업의 국제화와 고도화 측면에서 의미 있는 변화라는 평가다.마이스는 그동안 높은 ‘외화가득률’(총 수입에서 외화로 벌어들이는 비율)에도 ‘번외’ 수출 산업으로 분류돼 왔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마이스의 외화가득률은 90%에 달한다. 외화벌이 능력만 놓고 보면 ▲자동차(71%) ▲TV(60%) ▲반도체(43%) ▲건설·플랜트(30%) 산업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외화가득률은 전체 수출 금액에서 제품 생산에 들어간 수입 원자재비를 빼고 남은 외화가득액이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외화가득률이 높다는 건 국산 원자재 사용 비율이 높아 그만큼 수익성이 크다는 의미다.지난 2023년 마이스 목적으로 방한한 외국인(153만명)의 총소비액 4조5000억원으로 외화가득률을 적용한 실질 수입은 약 4조원이다. 전체의 8%에 불과한 외국인(기업) 참가 비중을 싱가포르, 홍콩 등과 비슷한 수준인 40%까지 높이면 지금보다 5배 많은 20조원의 수출 효과를 얻을 수 있단 얘기다. 윤은주 한림대 교수(한국무역전시학회장)는 “제조업에 비해 월등히 높은 외화가득률에도 마이스를 수출을 늘리는 보조 수단으로 바라보는 인식과 시각이 높은 건 외화 취득의 주체가 마이스 업계가 아닌 호텔·항공·쇼핑 등 전후방 연관 업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마이스의 수출 산업화 양상은 전시 산업이 주도하고 있다. 국내에서 열리는 전시·박람회에 출품하는 외국 기업이 늘면서 행사 자체가 외화를 버는 수출품 역할을 하고 있다. 다국적의 국제 행사로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국내외 바이어 방문이 증가하는 ‘후방 연쇄효과’도 나타나고 있다.경연전람이 고양 킨텍스에서 2년마다 여는 ‘국제포장기자재전’은 전시 부스 판매로 역대 최대인 100만달러(약 14억원)가 넘는 외화 수입을 올렸다. 가장 최근인 지난 2024년 행사에 참가비를 내고 출품한 외국 기업은 직전 대비 10% 넘게 늘어난 22개국 548개사다. 전체 1376개 참가기업의 40%에 가까운 규모로 4600여개 전체 전시 부스 중 1000개 이상이 외국 기업들로 채워졌다.한국전시산업진흥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7150개였던 국내 전시·박람회 출품 외국 기업은 지난 2024년 1만6192개로 2.3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평균 8%이던 행사당 외국 기업 비중도 14%로 1.8배 늘었다. 추세만 놓고 보면 아직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세계 시장의 성장세를 웃도는 수치다. 세계전시연맹(UFI)에 따르면 지난 2024년 전 세계에서 열린 3만2000여건의 전시·박람회에 참가한 기업은 팬데믹 이전에 비해 0.8% 줄었다. 업계 해외 진출 늘고 사업도 다양해져관련 업계의 해외 진출이 늘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사업 포트폴리오도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 2011년 베트남에 지사를 설립한 엑스포럼은 동남아에 이어 프랑스, 일본에도 진출해 작년 약 30건의 행사 중 8건을 해외에서 개최했다. ▲IT·전자 ▲식품 ▲교육 ▲패션 ▲소비재 등 분야도 다양하다.업계 내 유일한 상장사인 메쎄이상은 지난 2024년 ‘대한민국산업전’(KoINDEX)에 이어 올해 인도 뉴델리 현지에서 뷰티 박람회 개최를 준비 중이다. 연 95건의 전시·박람회를 여는 메쎄이상은 킨텍스와 뉴델리 ‘야쇼부미’ 전시장도 공동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엔 수출 진흥에 기여한 공로로 경연전람(철탑)과 함께 산업훈장(동탑)도 수훈했다.킨텍스는 뉴델리 야쇼부미 전시장 20년 운영권에 이어 작년 말레이시아 ‘페낭 워터프론트 컨벤션센터’ 운영권을 따내며 시설 운영사업을 동남아로 확대했다. 운영 3년 차에 접어든 야쇼부미는 서남아 최대 규모로 20년간 예상 수익이 최대 2800억원에 달한다.국제회의 기획·운영이 본업인 컨벤션 기획사는 컨설팅, 서비스로 영역을 넓히며 외화 수입을 늘리고 있다. 지난 2024년 아랍에미리트(UAE) 정부를 상대로 국제회의 기획·운영 컨설팅 사업을 시작한 인터컴은 그해 ‘100만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컨벤션 기획사가 수출탑을 받은 건 인터컴이 최초다. 대구 지역 컨벤션 기획사 덱스코는 지난해 외국인 참가자의 원활한 행사 참가를 돕는 하우징뷰로 서비스로 200만달러(약 29억원)가 넘는 수입을 올리며 ‘관광진흥탑’ 수상기업에 선정됐다.업계는 수출 산업화를 위해 행사 위주 정책과 제도의 대상과 범위를 기업 육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이스 수출 산업화가 제조업 중심 수출 구조를 다각화하는 효과도 클 것으로 본다. 국내 개최 행사의 해외 수요를 늘리기 위해 ‘패스트트랙’, ‘전시 비자’와 같은 입국 편의 서비스를 전략적으로 확대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이상택 메쎄이상 부사장은 “▲인포마 ▲알엑스 ▲엠씨아이 등 연간 1~3조원에 달하는 실적을 올리는 글로벌 마이스 기업이 국내에서도 나올 수 있다”며 “수출 산업화를 위해 먼저 마이스 산업은 물론 관련 기업에 대한 인식과 활용도부터 수출 산업의 관점에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26.01.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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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이 모두 은행 책임?...왜 통신사와 정부는 뒤로 빠져있나 [이근면의 시사라떼]

전문가 칼럼

보이스피싱은 ‘고질적 방관 범죄’다. 수년째 범죄는 반복되고,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수법은 날로 교묘해지는데 대응은 늘 제자리걸음이다. 사건이 터지면 분노하고, 여론이 들끓으면 보상을 논의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잊힌다. 그 사이 범죄는 진화한다.최근 은행의 배상 책임을 강화하고 피해 보상 비율을 높이자는 논쟁이 한창이다. 어딘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전세사기 피해 보상 논란 때와 판박이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그 보상 재원은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오는가?’보이스피싱 피해 보상도 결국 국민의 돈이다. 은행의 부담은 수수료 인상으로, 공적 재원 투입은 세금으로 국민에게 전가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범죄를 막지 못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은행인가, 통신사인가, 감독기관인가. 아니면 늘 그랬듯 아무런 권한도 없이 의무만 떠안는 ‘국민’인가.전 국민 얼굴 인증, 왜요? 제가요? 지금이요? 보이스피싱 예방책으로 거론되는 ‘전 국민 휴대전화 얼굴 인증 의무화’는 언뜻 강력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과잉 규제이자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범죄는 소수가 저지르는데, 그에 따른 불편과 사회적 비용은 전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 노인, 아동, 장애인 등 디지털 취약계층까지 잠재적 위험 요소로 간주하는 셈이다.얼굴 정보는 가장 민감한 생체 데이터다. 이를 통신 인프라 전반에 상시 축적하는 것은 보안 리스크를 구조적으로 키우는 일이다. “안전을 위해 자유를 조금 양보하자”는 명분은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유의 일부를 양보하는 차원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상시 감시 체계 아래 두는 문제다. 빈대 한 마리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격이다. AI 시대, ‘기술적으로 못막는다’ 변명 통하지 않아더 큰 문제는 기술적 방임이다. 오늘날 AI는 ▲음성 패턴 ▲통화 빈도 ▲발신 행태 ▲위치 변화 ▲단말기 이동 경로까지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다. 동일 번호나 유사 패턴의 반복 발신, 비상식적으로 짧은 시간 내의 번호 변경과 지역 이동 등 범죄 징후는 데이터로 남는다. 이런 신호는 ‘사후 수사’의 대상이 아니라 ‘사전 차단’의 대상이어야 한다.그런데도 통신사가 “우리는 단순 전달자”라며 책임을 회피한다면, 이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명백한 직무 유기다. 대한민국 통신 산업은 결코 낙후되지 않았다. 통신 3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와 AI 역량을 자랑한다. 그 뛰어난 기술을 광고와 요금제 수익화에만 쓰고, 정작 국민 보호에는 무력하다면 그들의 기술은 존재 가치를 잃는다.돈은 통신사가 벌고, 책임은 은행이 져라?현재 제도는 은행에 대해 “이상 거래를 탐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배상 책임을 일부 지우고 있다. 그렇다면 범죄의 통로인 통신망을 관리하는 통신사는 왜 책임에서 자유로운가.보이스피싱은 전화가 연결되지 않으면 성립조차 할 수 없다. 통신망은 범죄의 필수 플랫폼이다. 플랫폼에는 권한이 있고, 권한에는 응당 책임이 따른다. 유독 보이스피싱 앞에서만 통신사가 면책 특권을 누리는 것은 책임의 비대칭이자 정책적 특혜다.전세사기와 닮은 ‘사후 약방문’ 국가이 구조는 전세사기 사태와 소름 끼치게 닮아 있다. ▲관리·감독의 실패 ▲위험 신호 방치 ▲예방 부재가 이어지다 결국 세금으로 피해를 메우는 방식이다. 보이스피싱 대응 역시 예방에는 소홀한 채, 피해 발생 후 보상 논의로만 흐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감독기관과 정부의 책임 소재는 희미해진다.보이스피싱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재앙이 아니다. 수년간 통계가 쌓였고 수법과 대포폰 유통 경로도 드러나 있다. 그런데도 ▲통신사에 대한 사전적 기술 차단 의무 ▲금융권과의 공동 책임 구조 ▲예방 성과에 대한 정량적 평가 기준은 여전히 부재하다. 명백한 정책의 실패다.진짜 해법은 ‘국민 감시’가 아닌 ‘플랫폼 책임’ 대응 방향은 분명하다. 기술 강국답게 기술로 막아야 한다. 첫째, AI 기반 이상 통화의 실시간 차단을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대포폰 개통 및 유통 관리 실패의 책임을 통신사에 명확히 귀속시켜야 한다. 셋째, 피해 발생 시 은행뿐만 아니라 통신사도 배상 책임을 분담하는 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넷째, 면피성 노력이 아니라 실질적인 ‘피해 감소율’을 기준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아울러 법과 제도의 재정비가 시급하다. 통신·금융·감독 당국이 서로 선 긋기에 바쁜 지금의 구조로는 예방 시스템이 작동할 수 없다. 범죄 예방 실패에 대한 공동 책임 체계를 법제화하고, 실질적 차단 성과를 낸 주체에게는 규제 완화나 인센티브를 주는 ‘성과 연동형 규제’가 필요하다. 그래야 기술이 현장에서 작동하고, 책임은 결과로 증명된다.보이스피싱은 더 이상 개인의 부주의나 노년층의 정보 소외 문제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이는 국가적 관리 실패가 누적된 시스템 범죄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또다시 세금으로 피해를 덮으려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다음에는 막겠다”는 공허한 약속만 반복하게 될 것이다.빈대 한 마리를 잡겠다고 집을 불태우는 나라는 안전한 나라가 아니다. 진짜 안전은 편한 정책이 아니라 옳은 정책, 즉 책임져야 할 곳에 확실히 책임을 묻는 것에서 시작된다.

2026.01.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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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낮과 밤, 그리고 멈춰선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힘[김현아의 시티라이프]

전문가 칼럼

‘통영’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필자는 ▲이순신 ▲박경리 ▲윤이상이라는 세 명의 인물과 ▲나전칠기 ▲겨울 미각을 깨우는 굴 ▲옛스러운 디저트인 꿀빵이 떠오른다. 하지만 도시를 연구하는 연구자적 입장에서 내게 통영은 아름다운 관광지이기 이전에, 뼈아픈 ‘산업의 흥망성쇠’가 새겨진 현장이다. 한때 ‘말(馬)은 제주로, 돈은 통영으로’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 정도로 통영은 어업과 조선업 호황을 누렸던 경제력이 있던 도시였다. 그렇지만 지금 통영이 마주한 성적표는 서늘하다. 2010년 14만명을 웃돌던 인구는 중소 조선소들의 연쇄 부도와 함께 무너져 내려 2023년 기준 12만명 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한때 전국 시·군 중 실업률 1위(2018)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고, 정부로부터 수차례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돼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듯 연명해온 것이 통영의 또다른 얼굴이기도 하다.예술과 빛으로 다시 깨어나는 통영의 낮과 밤그렇지만 최근 방문한 통영에서 필자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과거의 ‘스쳐가는 관광’에서 ‘머무르는 관광’으로 진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낡은 달동네에 벽화를 입혀 전국적인 명소가 된 동피랑과, 박경리 선생의 문학적 향취가 흐르는 서피랑, 여기에 통영의 피카소 전혁림 화백의 예술혼이 담긴 전혁림미술관(전혁림 작가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인왕실에 걸린 <통영항> 그림의 작가) 등이 통영의 낮을 채우고 있다면 남망산 조각공원의 ‘디피랑’은 통영의 밤을 새롭게 정의했다. 화려한 미디어아트로 되살아난 디피랑은 관광객을 밤까지 붙잡아둠으로써 숙박과 야간 식음료 소비를 유도한다. 이는 단순히 볼거리 하나가 늘어난 차원이 아니다. 2023년 국민여행조사에 따르면 숙박 여행자의 1인 지출액은 당일 여행자의 약 2.5배에 달한다고 한다. 지방 소멸의 위기 속에서 도시의 시간을 밤까지 연장하여 경제적 활력을 도모하는 ‘야간 도시 기획’의 모범 답안을 통영이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멈춰선 거인 ‘신아조선소’, 환경만큼 절실한 지역 경제 회복그러나 디피랑의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옛 신아조선소 부지는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겨 있다. 통영 경제 재도약의 핵심이자 1조원 규모(민간투자 포함)의 국책사업으로 화려하게 시작했던 ‘폐조선소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토양 오염 정화 문제와 그로 인한 천문학적인 비용 상승, 행정 절차의 늪에 빠져 수년째 표류 중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는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방증한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든다더니 흉물로 방치해 둔 지가 언제인데 펜스만 쳐놓고 있느냐”는 탄식이 주를 이룬다. 조선업이 떠난 자리를 어떠한 산업이나 기업이 메꾸어주지 못한 상황에서 주민들은 환경적 ‘무결점’보다는 경제적 ‘재도약’과 사업의 ‘속도’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관계 당국은 완벽한 오염 정화라는 명분과 법적 기준 뒤에 숨어 서로 책임을 미루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물론 시민의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다. 하지만 그것이 사업 지연의 막연한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통영의 지방 소멸 시계는 완벽한 정화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려줄 만큼 여유롭지 않다. 그래서 지금 통영에 필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첫째, 토양 정화 과정 자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를 역발상의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프로세스 투어리즘’을 제안한다. 펜스로 가리고 숨길 것이 아니라, 오염된 땅이 인간의 노력으로 치유돼 가는 과정을 에코 투어리즘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안전이 확보된 구역부터 단계적으로 개방해, 멈춰선 골리앗 크레인 아래서 설치 미술제를 열거나 팝업 스토어를 운영한다면 ‘공사 중인 현장’조차 MZ세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힙’(Hip)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둘째, 개발의 밑그림을 원점에서 다시 그려야 한다. 현재의 주거·상업 위주 개발 계획은 수도권이나 대도시의 문법을 답습한 것으로, 통영과 같은 지방 중소도시에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우리는 프랑스 낭트(Nantes)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낭트는 1987년 마지막 조선소가 문을 닫으며 도시 전체가 실직과 우울감에 빠졌었다. 하지만 그들은 폐업한 조선소 부지를 밀어내고 그곳에 거대한 기계 코끼리와 해양 생물을 전시하는 ‘기계 섬’ 테마파크를 조성했다. 조선소의 기술력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 창의적인 공간은 쇠락해가던 공업 도시를 연간 수백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문화 관광지로 탈바꿈시켰다. ‘프로세스 투어리즘’과 ‘문화 규제 프리존’으로 여는 미래통영 역시 무리한 고밀도 개발보다는, 통영만의 바다와 조선업 유산을 결합한 ‘문화 규제 프리존’을 도입해야 한다. 용도지역과 건폐율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나 창의적인 건축과 실험적인 콘텐츠가 폐조선소를 채울 때, 비로소 민간 투자의 물꼬도 트일 것이다.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강력한 거버넌스의 구축을 촉구한다. 현재의 지지부진함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행정의 문제다. 통영 폐조선소 재생을 위한 ‘범정부 전담 추진단’을 구성해 토양 정화 기준의 합리적 적용(위해성 평가 도입 등)부터 콘텐츠 유치까지 멈춰 서 있는 이 사업의 물꼬를 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소멸해가는 지방 도시에 새로운 심장을 이식하는 국가적 과제다.이순신 장군의 바다가 풍전등화의 나라를 구했다면, 이제는 혁신적인 공간 재생이 위기의 통영을 구해야 할 때다. 남망산 디피랑에서 쏘아 올린 빛이 건너편 옛 신아조선소의 멈춰선 크레인까지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과거의 산업 유산과 현재의 기술, 그리고 미래를 향한 과감한 규제 혁신이 만날 때, 통영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글로벌 문화·예술 거점으로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멈춰선 통영의 시간은 다시 힘차게 흘러야 한다.

2026.01.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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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없고 계약만 있었다’... 수천억 ‘아트테크 사기’ 뭐길래 [백세희의 컬처&로(LAW)]

전문가 칼럼

종종 아트페어 주최 측으로부터 잠재적 미술품 구매자를 대상으로 한 강연 요청을 받는다. 넓은 박람회장 한켠에 마련된 작은 무대에서 진지한 표정의 청중을 만난다. 아름다운 작품들로 가득한 축제의 공간에서, 굳이 변호사의 강의를 듣기 위해 시간을 낸 사람들이다.주최 측이 요청하는 강의 주제는 늘 비슷하다. 바로 ‘안전한 아트테크’다. 아트테크는 ‘아트’(Art)와 ‘재테크’를 합친 말로, 미술품 구매의 여러 이유 가운데 경제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신조어다.전통적인 미술품 거래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와 이를 구매하는 콜렉터가 전부다. 당사자가 명확하기 때문에 계약 관계 역시 단순한 편이다. 그래서 필자가 강의에서 다루는 아트테크 역시, 작품을 소장하게 될 구매자 입장에서 낯설지만 중요한 계약 조항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둔다.여기에 비교적 최근 등장한 투자 방식들도 함께 다룬다. 미술품 조각투자나 NFT(대체불가능토큰) 열풍 같은 사례들이다. 그리고 강의 말미에는 늘 같은 당부를 덧붙인다.“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신중하게 판단하라. 정말 좋은 투자 정보라면, 과연 나에게까지 왔을지 한 번 더 의심해보라.”너무 흔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만큼 가장 중요한 원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구매와 소장’을 전제로 한 이야기를 아무리 강조해도,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곳으로 돈이 흘러가고 있다. 실제로 큰돈은 작품을 사서 소유하는 단순한 구조를 벗어난 지점에서 움직이고 있다. 투자처를 찾는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파고든 이른바 ‘아트테크 사기’에 많은 이들이 현혹됐다.수법 자체는 전형적인 사기와 다르지 않다. 다만 그 포장지가 ‘예술’이라는 점에서 새롭고 그럴듯해 보였을 뿐이다. 그 결과, 피해자는 더욱 빠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아트테크 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새로운 투자처’인가 전형적인 ‘폰지 사기’인가2024년 들어 갤러리 대표들이 구속됐다는 소식이 잇따라 보도되기 시작했다. ▲지웅아트갤러리 ▲아트컨티뉴 ▲서정아트센터 ▲갤러리K 등은 미술품 투자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들이다. 이들 업체의 공통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유사수신 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이들 갤러리는 투자자들에게 “미술작품을 구매한 뒤 일정 기간 갤러리에 맡기면 전시·광고·협찬·대여 등을 통해 연 10~16%의 수익을 지급하겠다”고 홍보했다. 계약 기간이 끝난 뒤 작품이 제3자에게 팔리지 않을 경우 갤러리가 재매입해 원금을 보장하겠다는 조건도 제시됐다. 투자자들은 작품 대금을 지급했지만 실제 미술품을 인도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작품 이미지만 파일 형태로 전달받거나, 잠시 인도받았다가 다시 반환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문제는 일정 기간 이어지던 수익금 지급이 갑자기 중단되면서 드러났다. 수익금은 물론 약속된 원금까지 지급되지 않자 피해자들의 고소가 잇따랐고, 수사 끝에 업체 대표들이 구속됐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사기 혐의를 받는 주요 네 개 업체에서 각각 약 1000억원 규모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확인된 피해액만 4000억원을 넘어섰고, 전체 피해 규모가 수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수사기관은 이들 업체가 치밀하게 설계된 금융 사기를 벌였다고 보고 있다. 미술품을 병원 등에 임대해 수익을 창출한다는 설명은 형식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신규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 수법이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업체들은 투자자 보호와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겼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실제로 지웅아트갤러리의 경우, 지난해 3월 회장과 임원진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유사수신 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회장은 징역 23년, 대표이사 두 명은 각각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매월 투자금의 1% 수익과 3년 후 원금 보장을 약속했지만, 투자금 대부분은 갤러리 회장이 운영하던 부동산 시행사업 등에 전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정보의 불균형이 만든 투자 피해문제의 본질은 일부 아트센터들이 만들어낸 ‘투자상품’에 있다. 이 상품은 투자자의 돈으로 고가의 자산을 매입해 보관·관리·운용하고 그 수익을 나눠주며 원금까지 보장하겠다는 구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이런 방식의 자금을 모집하려면 법에 따른 인·허가를 받고 엄격한 규제를 충족해야 한다. 엄격한 규제 하에 제한적으로만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정보의 비대칭’이라는 투자 거래의 특수성 때문이다. 투자상품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요소의 영향을 받게 마련인데, 그에 대한 정보는 상품을 만들어 낸 주체가 독점하곤 한다. 일반 투자자는 상품의 가치를 좌우할 수 있는 수많은 변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나아가 충동적인 투자 혹은 투기의 가능성도 상당하다. 여기에 노동 없이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 원금 보장이라는 말이 더해지면 판단은 더욱 흐려지기 쉽다.아트테크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업체들은 쿠사마 야요이·데미안 허스트·이우환·박서보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내세워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투자자들은 형식적인 소유권만 넘겨받았을 뿐, 작품을 실제로 소장하지도 못했고 구체적인 운용 방식에 대한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다. 자신이 지불한 금액이 미술 시장에서 적정한 가격인지조차 알기 어려운 구조였다. 미술품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치 변동이 큰 재화다. 얼마에 팔고 얼마에 살 수 있는지는 업계에 있는 사람들만이 제대로 알 수 있다. 공동구매 방식을 통해 평소라면 감히 상상할 수 없던 거액의 작품을 분할 소유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들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위법한 금융투자상품의 구매자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크다. 수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조각투자나 NFT 투자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위법한 금융투자상품으로 판단되어 금융당국의 철퇴를 맞고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곤 했다. 업체들은 불황을 탓하며 투자의 실패를 다른 곳으로 돌렸고, 투자자는 어리석은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왜 그런 정보가 나에게 왔을까”를 묻는 자세갤러리들이 의도적으로 폰지 사기를 기획한 사실이 입증된다면, 관련자들은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가해자가 처벌받는 것과 투자자의 피해가 회복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형사재판의 목적은 처벌이지, 피해 회복이 아니기 때문이다.피해 회복은 결국 민사 절차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민사소송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설령 승소하더라도 집행할 재산이 없다면 판결문은 종이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는 수백 년간 반복되고 있는 투자 사기의 전형적인 말로이다. 그렇게 수익성이 좋은 상품 정보가 굳이 나한테까지 흘러든 이유가 무엇인지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하나마나 한 소리일 수 있지만 또 한 번 강조하게 되는 이야기다.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2026.01.18 10:01

5분 소요
“천재는 보이지 않는 표적을 맞힌다”…5인의 거장에게서 찾은 ‘창조의 비밀’ [새로나온 책]

‘영재는 아무도 맞히지 못하는 표적을 맞히고, 천재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표적을 맞힌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천재’를 정의한 말이다. 이 정의를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다섯 명의 천재적 지성에게 적용해보자.화가이자 발명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영국 최고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 음악의 성인(聖人) 루트비히 판 베토벤, 그리고 상대성 이론을 정립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들을 ‘천재’라 부르는 것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서로 다른 분야에 열정을 쏟아부었고, 그것들을 융합해 뜻밖의 시너지를 창출했다는 점이다.‘천재백서’라는 책은 천재를 어떻게 만드느냐를 알려주는 단순한 실용서가 아니다. 대신 천재의 본질과 그들의 공통된 특성을 깊이 있게 탐구하며 삶과 업적을 되돌아본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인류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뒤집었다. 우리는 거대한 혁신을 주도한 이들을 보며 궁금증을 갖게 된다. ‘어떻게 그런 발상을 했을까’, ‘천재와 평범한 우리는 무엇이 다를까.’ 저자인 불렌트 아탈라이는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그 해답을 찾아 나섰고, 결론적으로 ‘천재들은 어떤 공통된 틀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저자는 천재성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천재성은 단순히 타고난 능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성향, 성격적 결함, 호기심, 광기 등의 내적 요소와 시대정신 같은 외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맞물려 탄생한다는 것이다. 다섯 명의 지성인들은 당대의 관습에서 출발했지만, 기존 양식을 다시 쓰며 장르 자체를 재정의했다. 또한 저자는 “천재들은 비범한 사고능력과 통찰을 보이는 동시에 기행, 고통, 광기 등을 함께 지니며, 이런 부정적 특성조차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아이가 천재인 것 같은데 어떻게 가르쳐야 하느냐’는 부모들의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조언한다. “똑똑한 부모에게는 대개 똑똑한 자녀가 있다. 하지만 똑똑한 부모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저녁 식탁에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아이의 질문에 답해주고 과학 숙제를 돕되 대신 해주지는 않는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 아이의 생각을 들어주는 상담자 역할을 해야 한다.”이 책이 실용서보다 철학이나 인문학 서적 같은 깊이를 주는 것은 저자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불렌트 아탈라이는 물리학자이자 작가, 그리고 예술가다. 영국 옥스퍼드대 이론물리학과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수학한 그는 현재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예술가로서도 명성을 쌓고 있다. 런던과 워싱턴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그의 석판화집은 버킹엄궁과 백악관에 영구 소장될 정도로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베스트셀러 ‘다빈치의 유산’의 저자이기도 한 그를 사람들이 ‘르네상스적 지성’이라 평가하는 이유다. 글로벌 패권의 미래트럼프의 귀환은 기존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가 깨지고 ‘미국 우선주의’라는 새로운 패권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역사적인 전환점에서 이 책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통찰을 통해 미국·중국·인도 등 주요 국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한국의 진로에 대한 고민도 놓치지 않았다. 한국은 지금까지 미국 주도의 질서 속에서 성장했으나, 미국의 상황은 과거와 같지 않다. 저자들은 현재에 안주한다면 한국 역시 유럽처럼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냉철한 현실 인식과 대전략이 절실한 시점, 이 책은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핵심광물 공급망 전쟁미·중 패권 전쟁의 전선이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넘어 리튬·니켈·코발트 등 핵심광물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은 흑연과 희토류 수출 통제를 통해 공급망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연합(EU)은 핵심광물 확보를 국가 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격상해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통상과 산업 정책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쥔 패권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은 핵심광물을 단순한 자원이 아닌 국가의 산업 경쟁력과 안보, 외교 전략이 교차하는 ‘공급망 전쟁’의 핵심 요소로 조명한다. 저자 박준혁은 현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철학자의 마지막 수업중국의 저명한 철학자 주루이 교수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쉰여섯이었다. 의사로부터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말을 들은 그는 죽음과 인생의 진실을 남기기 위해 한 청년과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열흘 동안 매일 밤 11시 30분에 청년과 만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눴고, 인터뷰를 마친 후 스스로 생명유지 장치 제거를 결정했다. 투병 중에도 강의와 인터뷰를 통해 철학적 사유를 멈추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중국 주요 언론에 보도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죽음을 담담히 준비하는 태도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당신은 평범하고 작은 존재인 동시에 위대하고 반짝이는 존재다.”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마지막 메시지다.

2026.01.18 09:00

4분 소요
돌아온 ‘반도체 왕’, 그 권위 증명하는 길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설마 3만 전자?’ 2024년 11월 삼성전자 주가가 4만원대까지 떨어지자 투자자들이 한숨을 내쉬며 내뱉은 말입니다. 당시 삼성은 AI(인공지능) 반도체 주도권의 핵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분야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고,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에서도 대만의 TSMC와의 격차가 50% 이상 벌어졌습니다. 절대 우위를 점했던 D램과 낸드 분야에서도 2위권의 맹추격에 격차가 좁혀지는 등 답답한 상황의 연속이었는데, 이런 안 좋은 흐름은 2024년 3분기 실적에서 분기 최대 매출을 기록하고도 반도체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절반 가까이 감소하는 등 숫자로 드러났습니다. 이에 여기저기에서 ‘위기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부도설’까지 제기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삼성전자의 연간 매출 규모가 정부 1년 예산의 절반 수준인 300조원대로, 부도가 나면 나라 전체가 휘청이는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겁니다. ‘부도설은 말도 안 되는 괴담’이라는 것을 다들 알면서도 당시 삼성 상황이 창사 이래 최악이어서 커뮤니티에서 그 가능성을 놓고 진지하고 열띤 토론이 펼쳐지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삼성전자는 그로부터 1년 3개월 만인 이달 초 처음으로 ‘14만 전자’ 고지를 터치했습니다. 최근 2025년 4분기의 역대급 실적이 공개된 영향이 큰데, 1년 전과 비교해 매출(93조원)은 22.7%, 영업이익(20조원)은 208.2% 증가했습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호황기)이 도래했던 2018년 3분기(영업이익 17조5700억원) 이후 7년여 만에 최대 실적입니다. 그야말로 ‘반도체 왕의 귀환’인데요,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도체 업황이 슈퍼사이클 국면에 접어든 데다가 메모리 가격 상승 흐름이 지속하고, 개발에 뒤처져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줬던 HBM에서 경쟁력을 강화한 덕분입니다.삼성전자는 자신감을 완전히 되찾은 모습입니다.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에 “삼성의 위기는 경영진에게 있다”며 이례적으로 사과까지 했던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DS부문장(부회장)이 연초 신년사에서는 “HBM4가 고객들에게 ‘삼성이 돌아왔다’는 평가까지 받으며 차별화된 성능 경쟁력을 보여줬다”며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로직부터 메모리, 파운드리, 선단 패키징까지 ‘원스톱 설루션’이 가능한 세계 유일의 반도체 회사로서 AI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전문가들은 이제 삼성전자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성장 궤도에 진입했다고 진단합니다. AI 산업의 팽창은 곧 반도체 수요의 폭증을 의미하며, 준비를 마친 삼성에는 ‘꽃길’이 열린 셈입니다. 하지만 화려한 숫자 뒤에 숨은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여년 전의 위기론은 단순히 업황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절대 우위에 안주하며 시장의 변화를 간과했던 결과였습니다. 장밋빛 미래가 현실이 되기 위한 조건은 명확합니다. 스스로 ‘위기’를 선언하며 고뇌했던 당시의 절박함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기술 초격차’라는 본연의 경쟁력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유지할 때만이 ‘위기론’이라는 불청객의 재방문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된 ‘반도체 왕’의 시대, 삼성전자는 숫자가 아닌 압도적 기술로 그 권위를 증명해야 합니다.

2026.01.18 06:00

2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