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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한미 정상회담, 한국 경제와 국정 동력의 향배 [스페셜리스트 뷰]

전문가 칼럼

2025년 8월 25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의 첫 한미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적 의례를 넘어선 정치적·경제적 분수령이었다. 취임 82일 만에 성사된 이 회담은 국내적으로는 국정 동력 확보의 시험대였고, 국제적으로는 동맹의 미래를 가늠하는 자리가 되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회담을 두고 성과와 부담이 교차하는 만남이라며, 미국 내 산업보호 압력 속에서 한국이 상당한 양보를 요구받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반면 워싱턴포스트는 동맹의 미래를 시험하는 자리라 규정하며, 한미관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진화할지, 아니면 협상형 거래관계로 후퇴할지를 관전 포인트로 제시했다.한국 주요 언론은 회담을 '운명의 회담'이라 규정하며,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 시험대로 해석했다. 극심한 국내 정치 양극화와 지지율 하락세 속에서, 외교 무대에서의 가시적 성과는 곧 국정 주도력 회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산업계 또한 이번 회담이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핵심 수출 산업에 미칠 영향을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켜보았다. 긴장 속 진행된 첫 정상회담…협력의 메시지로 마무리트럼프 대통령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돌발 발언으로 긴장 속에 시작된 첫 한미정상회담은 협력의 메시지로 마무리됐다. 한국에서 숙청 또는 혁명이 일어난 것 같다는 언급은 AFP·로이터 등 외신들로부터 동맹에 긴장이 감돌았다는 평가를 낳았지만, 회담장에서 트럼프는 이를 오해로 정리하며 동맹을 치켜세웠다. 뉴욕타임스는 한 시간 동안 동맹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이 대통령의 설득이 성과를 거둬 트럼프가 입장을 바꿨다고 평가했고, AP는 남북 협력·북한 개발 구상이 논의됐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며 북미·남북 대화 중재 가능성까지 열어두었다. 경제 의제에서도 조선업 협력이 거론되며 양국 첨단산업 연계의 단초가 마련됐다.그러나 불씨도 남았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감축 질문에 즉답을 피하면서도, 기지 소유권 문제를 언급해 논란을 예고했다. 워싱턴포스트와 AP는 각각 미국이 한국 기지를 임대 대신 소유 원한다며, 오산 기지 계약 파기 발언을 보도했다. 외신들의 공통된 평가는 위기를 관리하며 협력의 메시지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식 동맹관은 언제든 거래로 전환될 수 있다. 한국은 이번 회담을 단순 이벤트로 소비하지 말고, 방위비·관세·주한미군 문제 등 구조적 불확실성에 선제 대응할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결국 이번 정상회담은 단기적 합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한국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이중 전략에서 벗어나, 기술·산업·안보가 얽힌 새로운 동맹 질서 속에서 주도권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출발점이었다. 이재명 정부가 얻어낼 성과와 감내해야 할 비용이 앞으로 한미관계의 방향뿐 아니라 한국 경제와 정치 지형에도 중대한 변곡점을 만들 것이다. MASGA와 조선업 협력, 공격형 협상 카드로 부상한 조선산업이번 한미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조선업 협력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한국은 훌륭한 선박 건조 능력을 갖고 있다”며, 한국과 함께 미국 조선업을 되살리자는 제안을 꺼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정치 구호를 변형한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를 새로운 회담 의제로 올리며, 러스트벨트 유권자와 군수 산업계에 동시에 메시지를 던졌다. 한국은 세계 1위의 조선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사실상 사라진 조선업 부흥이라는 정치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간극을 정확히 읽은 이재명 대통령은 맞춤형 협력안을 제시하며 외교 무대에서 공세적 주도권을 행사했다. 조선업 협력은 단순한 산업 협력이 아니다. 미국 내부에서는 러스트벨트 제조업 부흥이라는 정치적 서사가 걸려 있고, 한국 입장에서는 자동차·철강·반도체에서 불가피하게 방어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협상 구도를 전환시킬 공격 카드가 된다. 특히 자동차·철강은 미국의 관세·보호무역 압력이 집중되는 분야이지만, 조선업은 양국의 이해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협상 테이블에서 드문 윈-윈 카드였다.산업적 파급효과도 크다. 이번 협력은 한국 기업들에 군함 수주, 민간 선박 건조, 수리·개조 사업, 미국 내 합작 조선소 투자 등 다층적 기회를 제공한다. 더 나아가 미국 해군의 함정 현대화 프로젝트와 연계될 경우, 수십조 원 규모의 안정적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이는 철강, 엔진, 해양플랜트 등 연관 산업에도 파급되며 산업생태계 전반의 부흥을 견인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MASGA는 단순한 정치 구호를 넘어, 한미 양국이 이익과 상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보기 드문 협력 모델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번 조선업 협력은 방어적 외교에 머물던 한국이 처음으로 공격형 협상 성과를 이끌어낸 사례가 될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 700조원 대미 투자 러시의 명암이번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은 외교 무대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정부 차원의 동맹 강화와 함께, 우리 기업들이 줄줄이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으며 사실상 투자 외교의 장이 펼쳐진 것이다. 발표된 규모만 1500억달러, 앞서 합의된 3500억달러 금융 패키지까지 합치면 총 5000억달러, 우리 돈 700조원에 달한다.항공·자동차·조선·원자력 등 주요 산업 전반에 걸쳐 협력안이 구체화됐다. 대한항공은 70조원 규모로 보잉 항공기 103대를 구매하며 국내 항공사 역사상 최대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로봇 공장 설립과 전기차·배터리 라인 확충에 36조원을 투입한다. 조선 분야에서는 HD현대가 미국 사모펀드와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공동펀드를 조성해 조선소 현대화에 나서고, 삼성중공업은 미 해군 지원함 유지보수 사업에 참여한다. 원자력 부문에서도 차세대 SMR 개발과 원전 시공 등 4건의 협약이 체결됐다. 반도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슈퍼컴퓨터용 첨단 칩 공급을 논의하며 AI 반도체 시장의 전략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문제는 이 막대한 투자가 한국 경제로 얼마나 환류되느냐는 점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투자 유치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확실한 이득을 얻지만, 한국은 자본과 고용이 해외로 유출될 우려가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관세 인하 시점이 여전히 미정이다. 대미 투자가 확대되더라도 무역 장벽이 그대로라면, 기업 부담은 줄지 않는다. 700조원이라는 거대한 투자 러시가 단순한 해외 이전에 머물지 않으려면, 정부와 기업의 전략적 설계가 필요하다. 해외 투자와 국내 연구개발(R&D)의 연계, 중소 협력업체의 글로벌 공급망 진입 지원, 국내 인재 양성과 투자 조건의 연결 등이 필수적이다. 대미 투자가 불가피한 선택이라 하더라도, 그 성과가 한국 산업 생태계와 고용으로 환류되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외형적 성과, 내실 없는 성장이 될 수 있다.대한항공의 보잉 항공기 구매는 단일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이다. 일본과 카타르도 최근 관세 협상 과정에서 대규모 항공기 구매를 약속했는데, 이번 대한항공의 행보 역시 미국의 전략적 요구에 부응한 성격이 강하다. 현대차는 로봇 공장을 비롯해 전기차·배터리 생산망을 강화하며 미국 내 제조 생태계에 깊숙이 들어간다. 이는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보조금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지만, 국내 고용 기반 약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조선업은 MASGA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조선소 현대화와 해양 물류 협력을 추진한다. HD현대는 미 사모펀드와 수십억 달러 규모 공동투자 펀드를 조성했고, 삼성중공업은 미 해군 지원함 유지보수 사업 참여를 확정했다. 원자력 분야에서는 차세대 SMR 개발과 원전 시공 관련 협약 4건이 체결되며, 한국 원전 기술의 글로벌 진출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성과인가, 포에버 협상의 덫인가지난달 말 양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했으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25%가 부과되고 있다. 적용 시점조차 불투명하며, 일본·EU도 유사한 합의를 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행정명령이 없다는 이유로 실효되지 않았다. 오직 영국만 예외적으로 인하 적용을 받았는데, 이는 영국의 대미 수출 규모가 작아 미국 산업에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연간 140만 대 이상을 수출하는 한국은 그만큼 정치적·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뜻이다.워싱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무역 협상이 끝났다고 못 박았다. 지난달 양국이 원칙적으로 합의했던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1,500억 달러 상당의 한국기업의 미국투자, 그리고 관세율 인하(25%→15%)를 공식화한 것이다. 회담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행정부는 합의 불만족을 언급하며 한국의 세부 이행을 압박했지만, 이번 한미 정상회담으로 최소한 불확실성은 해소되었다고 평가된다. 대통령실은 이를 합의 이행과 신뢰 회복의 신호로 강조했다. 약속을 지키는 파트너라는 점을 부각하면서, 국내 산업계에 안정적 환경을 조성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백악관의 시각은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반드시 합의를 지킬 것이라며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더 나아가 이번 협정을 한국과의 역대 최대 무역 합의로 치켜세우며 정치적 성과를 미국 내 유권자에게 어필했다.산업계에서는 전기차·배터리·반도체 등 전략 산업에 대한 미국 내 투자가 장기적으로 한국의 기술력 강화와 시장 확대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지만, 동시에 재정적·운영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관세 인하 혜택이 투자·구매 부담을 상쇄할 만큼 효과적일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미국 언론은 이를 트럼프의 협상 승리로 포장한다. SNS와 언론 플레이로 압박을 가하다가 최종적으로 합의를 관철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행 가능성에는 의문을 제기한다. 대규모 투자와 구매 약속이 단기간에 실현되기는 어렵고, 한국 내 정치·경제적 상황에 따라 속도 조절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결국 이번 무역 합의는 성과와 부담이 교차하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불확실성을 줄이고 동맹 신뢰를 확인했다는 점에서는 성과지만, 구조적 부담은 한국 경제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이재명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트럼프식 거래외교의 불확실성을 관리하면서, 대규모 투자와 구매를 어떻게 한국 산업의 체질 강화와 신시장 개척으로 연결할 것인가다. 성과를 국내 산업의 성장 동력으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이번 합의는 기회보다 짐이 될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외교적 봉합을 넘어, 경제적 실행 전략이다.반도체·의약품 문제 역시 상황은 유사하다. 미국은 최혜국 대우를 약속했지만 이를 입증할 공식문서를 제시하지 않았다. 블룸버그가 이를 포에버 협상(Forever Negotiations)이라 명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합의가 언제든 뒤집힐 수 있고, 정책적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 내 부처 간 경쟁 구도다. 통상 관료들이 각자의 성과를 부각하기 위해 협상을 계속 끌고 가는 방식이 고착화되어 있어, 합의는 완결되지 못한 채 늘 미완 상태로 남는다. 이는 한국 기업들에 항상 불확실성을 떠안게 하는 구조적 리스크로 작용한다.자동차는 한국 수출의 핵심축이다. 관세 인하 합의가 실효되지 않는다면 산업 전반은 불확실성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적용 시점을 명시한 문서화, 구속력 있는 강제 장치 확보, 미국의 추가 요구에 대응하는 국내 지원 패키지 마련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과는 오히려 정치적 부담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이번 회담은 성과 있는 합의가 아닌 불안정한 약속으로 기록될 위험이 크다. 국익 중심 실용동맹, 한미동맹 3.0의 출발점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국방비 인상이 논의된 것은 한국 정부에 중대한 시험이다. 이는 곧 한국 재정에 직접적 부담으로 이어지고, 국내 여론의 강한 반발을 촉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단순히 비용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투자형 지출로 전환할 수 있다면, 오히려 산업적 기회로 승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증액분을 무기 공동개발, 방산 협력, 첨단 무기 도입에 연계해, 국내 방위산업의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그것이다.문제는 국방비를 넘어선 전략적 유연성 확대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역에서 주한미군을 운용할 수 있는 권한을 확대하려 한다. 이는 대중 견제에는 유리하지만, 한국으로서는 한반도 방위 공백이라는 구조적 불안을 초래한다. 따라서 한국은 정보 공유 확대, 첨단 무기 체계 배치, 미사일 방어 강화 같은 보완 장치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단순한 동맹 기여 확대가 아니라, 실질적 안보 공백을 막는 균형 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이번 회담에서는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기지 부지의 소유권을 미국이 요구할 수 있다는 발언까지 내놓았다. 이는 한미동맹 역사상 전례가 없는 요구로, 국내에서 강력한 논란을 불러올 소지가 크다. 방위비 증액과 전략적 유연성, 그리고 기지 소유권 문제까지 결합될 경우, 동맹의 비대칭성이 심화되고 한국이 사실상 종속적 위치로 밀려날 위험이 있다.따라서 이재명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방위비 증액을 산업적 기회로 재구성하는 투자형 접근. 둘째, 전략적 유연성 요구에 대한 보완적 안보 장치 확보. 셋째, 기지 소유권 문제와 같은 전례 없는 요구에 대해서는 원칙적 대응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부담만 늘고 실익은 적은 동맹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결국 방위비와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단순한 금전적 논쟁이 아니다. 동맹의 대칭성과 지속 가능성을 가르는 시험대이며, 이재명 정부가 동맹의 비용을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지 여부가 향후 한미관계의 질적 변화를 결정할 것이다.워싱턴 CSIS 연단에 선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미래 비전을 명확히 제시했다.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 원칙은 남북관계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북한 도발에는 강력히 대응하되, 대화와 협력의 통로를 열어두겠다는 것이다. 이는 억지와 관리, 대화를 병행하는 3중 전략으로, 안보·경제·외교를 동시에 포괄하는 새로운 접근법이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준수하고 비핵화 공약을 지켜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화해와 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이야말로 남북 모두와 한미 양국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역설했다. “비핵·평화·공존의 길이 열릴 때 한미동맹은 글로벌 차원으로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는 발언은, 동맹을 단순한 군사적 장치가 아닌 미래 전략 플랫폼으로 확장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안보 차원에서는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 두드러졌다. 국방비 증액을 공식화하며, 스마트 강군으로의 전환과 첨단 방산 협력을 미국과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한국의 국방역량 강화와 한미 방산 협력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는 한미가 단순한 군사동맹에서 첨단 기술과 방산 산업을 매개로 한 첨단기술 동맹으로 진화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성과와 부담의 교차, 공격형 외교와 비대칭 동맹의 동시 현실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성과와 부담이 교차하는 자리였다. 조선업 협력이라는 성과는 한국 외교가 더 이상 수세적 방어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세적으로 협상 주도권을 쥘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였다. 자동차·철강·반도체 같은 전통 수출산업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압박에 직면한 상황에서, 조선업은 양국의 이해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드문 기회였다. 한국이 공격형 외교로 전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순간이었다.그러나 그 이면에는 무거운 짐이 여전히 남았다. 관세 협상은 합의의 실체가 모호하고 적용 시점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국내 산업계가 체감할 수 있는 효과는 미미한데, 정치적 성과로 포장하기에는 근거가 약했다. 더구나 방위비 분담 증액과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확대 문제는 한국 사회에 직접적인 재정적·안보적 부담을 안겼다. 나아가 주한미군 기지 부지 소유권 발언은 동맹의 비대칭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전례 없는 요구였다. 결국 이번 회담은 한미 관계가 성과와 압박을 동시에 수반하는 구조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미국 언론들이 지적했듯, 끝없는 협상과 압박이 동맹의 뉴노멀이 된 것이다. 향후 과제는 분명하다. 통상 분야에서는 합의의 실효성을 담보할 구속력 있는 문서화가 시급하다. 자동차 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세제 지원, 보조금, 연구개발 투자 확대 같은 산업 보호 장치도 병행해야 한다. 안보 분야에서는 방위비 증액을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무기 공동개발, 방산 협력, 첨단 무기 도입으로 연결해 산업적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서는 정보 공유 확대, 첨단 자산 배치, 미사일 방어 강화 같은 실질적 보완책이 뒤따라야 한다.정치적으로는 국민 설득이 핵심이다. 외교적 성과는 성과대로 강조하되, 부담은 숨기지 않고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국민적 고통 분담 없이는 외교적 성과를 지켜낼 수 없다는 점을 공유할 때만 국정 동력이 유지될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본질적 메시지는 결국 방패와 창의 균형이었다. 피해 산업에는 방패를, 기회 산업에는 창을 드는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가 이 균형을 얼마나 능숙하게 운용하느냐가, 앞으로 한국 외교와 경제, 그리고 동맹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필자는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경영학 박사를 취득하고,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인적자원개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자동차 기획실과 인사부문에서 9년 간 근무한 경력이 있고, 대한경영학회 회장, 한국제품안전학회 회장, 산학협력단장·연구처장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제40대 한국생산성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25.08.31 09:00

11분 소요
AI 시대에 살아남는 기업가가 되려면…[스페셜 리포트]

전문가 칼럼

2025년 상반기, 미국 SaaS(Software as a Service) 기업들의 주가 성과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팔란티어(Palantir, +79%)와 중소기업용 재무 소프트웨어 기업인 빌닷컴의 주가 성과 차이는 무려 122% 포인트에 달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락한 기업들이 '망해가는 회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 여전히 견고한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었다.이런 극명한 차이가 생긴 것은 시장이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평가 기준이었던 ▲Rule of 40(매출 성장률과 이익률의 합이 40%를 넘어야 한다는 원칙) ▲연간반복매출(ARR) 성장률 ▲고객 확보 비용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새로운 기준은 ▲AI 시대 필수불가결성 ▲대체 불가능성 ▲실존적 문제 해결 능력이다.세일즈포스(Salesforce)는 여전히 Rule of 40을 충족하지만 -19% 하락했다. 반면 Palantir는 전통적 지표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밸류에이션(Valuation)을 받았다. 평가의 핵심 질문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성장하는가?"에서 "AI 시대에 얼마나 필수불가결한가?"로 바뀐 것이다. 인재 전략 대전환이 필수….’비기너 마인드셋’ 찾아라 2025년 4월 토비아스 뤼트게 소피파이(Shopify)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에게 메모를 보냈다. "신규 채용을 요청하기 전에, AI로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증명하세요." 그런데 몇 달 후 인턴 채용을 75명에서 1000명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표면적으로는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Shopify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AI 시대에 가장 위험한 것은 무지가 아니라, '원래 그런 것'이라는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말이다.현재의 인턴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Shopify는 이들을 ‘AI 켄타우로스’라고 부른다. 신화 속 존재인 켄타우로스가 반은 인간, 반은 말인 것처럼, 이들 인턴이 AI와 자연스럽게 협업한다는 의미다. 파한 타와르(Farhan Thawar) Shopify 엔지니어링 부사장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저는 그들이 게으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최신 도구를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반복적이고 비효율적인 작업을 거부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는 건강한 게으름이다.인턴들이 가져오는 가장 큰 가치는 바로 '비기너 마인드셋'이다. 이들은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건 불가능해"라고 배운 적도 없다. 그래서 자유롭다. 비기너 마인드셋은 첫 번째 해결책에 안주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더 나은 방법을 찾고, 프로세스 자체를 의심하고, 재발견한다.AI 시대의 인재상이 재정의되고 있다. 전통적인 채용에서는 경험·전문성·검증된 실적을 중시했다. 하지만 AI와 함께 일하는 시대에는 다른 자질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학습 능력이 전문성을 압도하고, 호기심이 경험보다 중요하다. 실험 정신이 완성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실험과 학습이 일상인 기업 만들어야 "AI 전문팀을 만들까, 아니면 모든 직원이 AI를 써야 할까?" "자발적으로 하게 둘까, 아니면 강제로라도 시켜야 할까?" 이런 고민들이 지금 여러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호주의 대표적인 스타트업인 캔바가 5000명 전 직원에게 업무를 중단시키고 AI 교육에 집중하게 한 실험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다. 캔바는 이미 1년 넘게 챗GPT·클로드·제미나이 등 여러 AI 도구를 전 직원에게 제공해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풀 포텐셜’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도구 접근권한과 실제 활용 능력 사이에는 여전히 큰 격차가 존재했던 것이다.캔바가 제시한 핵심 철학은 "'AI 퍼스트'가 '휴먼 라스트'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AI 도구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AI와 함께 일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체화시키려는 시도였다.가장 인상적인 성공 사례는 영업팀이 자체적으로 만든 ‘챗조지피티’(ChatGeorgePT)다. 이는 영업 플레이북과 교육 자료로 훈련된 맞춤형 GPT로, 영업 담당자들의 업무 시간을 주당 3시간씩 절약해준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위에서 내려온 오더가 아니라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나온 아이디어라는 점이다.AI 도입에서 ‘강요’보다 ‘실험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더 중요하다. 수백만 달러 이상을 투자한 캔바의 진짜 목적은 업무에 방해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다양한 AI 도구에 대한 체계적 접근, 그리고 역할별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신뢰베세머 벤처 파트너스(Bessemer Venture Partners) 조사에 따르면 90%의 경영진이 AI가 매출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AI를 완전히 통합해 실질적 성과를 내는 기업은 단 1%에 불과하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많은 기업들이 AI를 단순한 기술 도입으로 접근하기 때문일 수 있다.더 흥미로운 데이터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조사에 따르면 78%의 지식근로자가 이미 회사에서 제공하지 않은 AI 도구를 업무에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직원의 13%가 일일 업무의 30% 이상을 AI로 처리하고 있지만, 경영진은 이 비율을 4%로 추정하고 있다.즉, 직원들은 이미 AI의 가치를 체감하고 있지만 경영진과의 인식에는 격차가 있다. 많은 기업들이 하향식 AI 도입에 집중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상향식으로 이미 활용되고 있는 AI 사용을 체계화하고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신뢰' 기업의 직원들이 AI 도구 사용에 편안함을 느낄 가능성이 '저신뢰' 기업보다 2배 이상 높다고 한다. 일부 기업에서는 리더들이 자신의 AI 실험 과정과 실패 경험을 직원들과 솔직하게 공유하면서 양방향 소통 채널을 만드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클라우드 기반 콘텐츠 관리 서비스 기업 박스(Box)의 CEO 아론 리비는 자신도 AI를 배워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직원들과 솔직하게 공유하면서 조직 전체의 학습 문화를 조성했다고 한다.레거시 기업의 역설… 기존 강점을 AI 시대 무기로한편 "AI 혁명에서 전통 기업들은 도태되고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47년 역사의 레거시 기업 오라클(Oracle)이 41% 성장으로 시가총액 6580억달러를 달성한 것은 레거시 기업의 AI 시대 생존 전략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Oracle의 클라우드 인프라(Cloud Infrastructure) 매출은 52% 성장했으며, 4분기에만 OpenAI를 포함한 30여 건의 AI 관련 계약을 체결하며 총 125억 달러의 수주를 기록했다. 독일의 다국적 소프트웨어 기업 SAP 역시 2024년 클라우드 매출이 27% 성장했으며, 4분기 클라우드 주문의 50%에 AI 컴포넌트가 포함되었다.성공의 핵심은 포지셔닝 전략이다. AI 기업이 되려 하지 않고, AI를 위한 필수 인프라로 자리매김했다. Oracle이 하지 않은 것은 AI 스타트업처럼 포지셔닝하거나 트렌디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대신 "AI는 결국 데이터입니다. 우리는 40년간 데이터를 다뤄왔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엔터프라이즈와 소비자 시장의 의사결정 논리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 특히 규모가 큰 기업의 의사결정자일수록 조직적 리스크를 동시에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위험 회피 성향은 검증된 벤더에 대한 신뢰 프리미엄으로 나타난다. ‘최고의 AI’보다 ‘신뢰할 수 있는 AI 통합’을 선호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들첫째, 인재 채용 기준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험보다는 학습 능력을, 완성도보다는 실험 정신을 중시하는 채용 기준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특히 젊은 인재들의 ‘비기너 마인드셋’을 조직 전체로 확산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면접에서 "이전에 해본 적 없는 일을 어떻게 접근했는가" 같은 질문을 늘리고, "실패했지만 많이 배운 경험"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둘째, 상향식 AI 혁신을 지원하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직원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AI 도구들을 파악하고, 이를 체계화하여 전사로 확산시키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강제보다는 자발적 실험을 장려하는 문화가 더 지속가능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실제로 월 1회 ‘AI 실험 공유회’ 같은 자리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각 부서에서 시도해본 AI 도구나 워크플로우를 공유하고, 실패 경험도 솔직하게 나누는 자리가 있으면 조직 전체의 학습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셋째, 역할별 맞춤형 AI 교육에 투자하는 것을 고려해볼 만하다. 모든 직원이 거대 언어 모델(LLM) 의 작동원리를 알 필요는 없다. 대신 자신의 업무에 특화된 AI 활용법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케팅팀에게는 콘텐츠 제작과 고객 분석에 특화된 AI 도구 활용법을 교육하는 게 좋다. 영업팀에게는 리드 분석과 제안서 작성에 도움이 되는 AI 워크플로우를, 개발팀에게는 코딩 어시스턴트와 디버깅 도구 활용법을 교육하는 방식이다. 또한 단순히 도구 사용법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각 역할에서 "어떤 업무를 AI에게 맡기고, 어떤 부분에서 인간의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함께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접근이 일괄적인 AI 개론 교육보다 훨씬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넷째, 기존 강점을 AI 시대의 무기로 재포장하는 접근도 생각해볼 만하다. 완전히 새로운 AI 기업이 되려고 하지 말고, 특정 산업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인 ‘도메인 전문성’(Domain Expertise) 과 고객 관계를 AI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Oracle의 사례처럼 AI를 위한 필수 인프라가 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마지막으로, 신뢰를 기반으로 한 변화관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리더가 먼저 AI 실험 과정과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직원들의 우려와 제안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양방향 소통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마케팅 기업 허브스팟(HubSpot)의 CEO 야미니 랜간은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의 인상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단순히 AI 도구 도입을 지시하지 않고, 대신 매주 금요일마다 자신이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5분짜리 비디오를 전 직원에게 공유한. 중요한 고객 미팅 전 AI 리서치 활용법, 경쟁 분석에서의 AI 적용 사례 등 어떻게 접목했는지 구체적 사례를 보여준다. 수십 년간 굳어진 워크플로우를 바꾸려면 리더가 먼저 자신의 생산성을 AI에 걸고 실험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이런 접근이 직원들의 심리적 안전감을 높이고, 상향식 혁신을 활성화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중요한 것은 단계적 접근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작은 실험부터 시작해서 성공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AI 시대 생존의 핵심…기술 아닌 ‘마인드셋’AI 시대의 경쟁력은 AI를 얼마나 도입했느냐가 아니라, AI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에 달려있다. Shopify의 인턴들, 캔바의 직원들, Oracle의 전략가들이 보여준 것은 결국 같은 메시지이다.기술 격차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마인드셋 격차는 오히려 벌어지고 있다. "원래 그런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매일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조직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만이 AI 시대의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회로 만드는 기업가 정신, 그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이다. 필자는 글로벌브레인 한국 대표이자 한일 크로스보더 투자 전문가다. 일본 교토대학 물리공학과를 졸업하고 노무라종합연구소 및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한국과 일본 기업의 크로스보더 전략 컨설팅을 수행했다. 이후 AI 로봇 스타트업의 CSO를 역임하며 일본에서 제로투원 비즈니스를 담당했다. 현재는 글로벌브레인이라는 일본 주요 VC의한국 대표로 한국과 일본의 우수한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고 있다. 채널코퍼레이션·올거나이즈·리얼월드 등 한국의 담당 스타트업들의 일본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양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25.08.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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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한 ‘스펙’에 ‘일 잘하는’ 인재 놓칠 수 있다 [순화동필]

전문가 칼럼

우리 조직에 적합한 지원자를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 요즘처럼 이력서부터 면접 답변까지 잘 다듬어진 표면적인 정보에 의존하는 채용 구조에서, 실무에서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지원자를 가려내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문득 첫 창업 당시에 함께했던 300명 이상의 동료들이 떠올랐다. 그중 실력에 비해 자기 표현에 능한 이들은 이직 시장에서 빠르게 좋은 조건으로 옮겨갔다. 반면, 묵묵히 책임을 다하며 성과를 만들어낸 인재들은 정작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처음으로 채용시장의 판단 기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AI로 평준화된 자소서…채용의 본질 흔들려 지금 우리는 '정답 없는 채용'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직은 자연스러워졌고, 경력은 표준화됐다. 대부분의 지원자는 세련된 이력서와 완성도 높은 자기소개서를 갖춰 면접장에 들어선다. 특히 최근에는 생성형 AI의 확산으로 자기소개서 자체가 평준화되고 있다.지난해 국내에서 제출된 자기소개서 89만 건 중 약 48.5%가 생성형 AI를 활용해 작성된 것으로 추정됐다. 문장은 매끄럽고 형식은 갖춰졌지만, 개별 지원자의 개성은 흐려지고 내용은 점점 더 비슷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정제된 외형만으로는 이 사람이 협업에 적합한 인물인지, 조직과 잘 맞는 사람인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서류만의 문제가 아니다. 면접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겸손하고 내실 있는 사람은 자기 표현에 서툴다는 이유로 탈락하고, 반대로 말재주가 좋은 사람은 실력 이상의 평가를 받는다. 이런 상황을 반복해서 마주한 끝에 다시 생각하게 됐다. 지금 우리가 판단하는 채용 기준이, 정말 역량 있는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고 있는지 다시 질문해 볼 시점이다.성과 중심 채용에서 업무의 맥락을 읽는 시대로최근 인적자원(HR) 실무자들은 성과를 검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결과를 만들어낸 업무 방식과 협업 태도까지 함께 살피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채용 방식으로는 그것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어렵다. 이력서와 면접은 결과 위주로 요약된 정보만을 제공할 뿐, 실제 업무 환경에서의 역할과 협업 스타일은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진행해온 ▲팀 단위 과제 ▲토론 면접 ▲상황 시뮬레이션 등의 과정 중심의 평가가 이와 같은 맥락이다. 개인의 역량을 넘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고방식과 팀워크, 컬처핏 등을 입체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접근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스타트업에서는 특히 ‘컬처핏’(조직문화 적합성)이 중요하다. 실무에 바로 투입해야 하는 인력일수록 조직문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팀과 조화를 이루는지가 성과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스타트업은 자사의 조직 문화를 문서화한 ‘컬처덱’을 지원자에게 제공하거나, 직무 인터뷰 이후 별도의 컬처핏 인터뷰를 진행해 이를 확인하고 있다.다만 부족한 시간과 비용, 표준화된 평가 체계의 부재 등으로 인해 이러한 시도는 일부 기업에만 국한돼 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많은 인사담당자들이 지원자의 전 직장 상사에게 연락하거나 업계 네트워크를 통해 간접적인 정보를 얻는 방식의 ‘레퍼런스 체크’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레퍼런스 체크 방식은 상당한 시간과 인력이 요구된다. 또한 정보의 출처나 전달 방식이 일관되지 않아 실무에 체계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최근에는 기존의 레퍼런스 체크 방식을 보완하고자, 비정형적인 정보를 보다 구조화해 파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평판자 풀을 확보하고 지원자에 대한 공통된 키워드나 정성적 역량에 대한 정보가 누적되면, 한 명의 주관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경험이 축적된 객관적인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다. 예컨대, ‘일처리는 빠르지만 꼼꼼함은 부족한 편’과 같이 구체적인 업무 스타일과 조직 적합성을 함께 짚어주는 실질적인 평가가 가능해진다.스펙터는 평판 조회의 전 과정을 디지털화해, 하나의 플랫폼으로 구현했다. 지원자의 과거 업무 경험을 통해, 현재의 조직과 잘 맞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다면적인 평판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과정이 지원자의 동의와 자발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지원자가 직접 레퍼리(평판 제공자)를 지정하고 평판 열람에 동의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기업은 지원자의 일하는 방식을 확인하고, 지원자는 자신과 맞는 조직을 선택할 수 있다. 이는 채용 실패의 리스크를 줄이고, 기업과 지원자 모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HR 테크 솔루션, 채용 의사결정에 도움 조직에 적합한 인재를 채용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이에 스펙터는 평판조회 플랫폼은 물론, AI 기반의 면접 분석 앱 ‘테오’(TEO’와 지원자의 입사 후 3개월을 예측할 수 있는 프리미엄 평판조회 ‘휴먼 인사이트’ 등 다양한 HR 테크 솔루션 등이 보다 정교하고 신뢰도 높은 의사결정을 지원한다.이직과 채용이 반복되는 유동적인 시대이기에 함께할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는 역량이 조직의 지속성과 경쟁력을 좌우한다. 그 시작점은 객관적으로 검증된 평판에 있다. 그 평판이 구조화된 데이터로 축적될 때, HR은 단순한 인사 업무를 넘어 인재를 식별하고 연결하는 조직의 전략적 축이 될 수 있다.

2025.08.31 08:00

4분 소요
‘악마의 와인’을 모두가 사랑하게 됐다 [와인인문학]

유통

수많은 종류의 와인 중에서도 샴페인은 언제나 특별한 이야기꾼이다. 경쾌하게 터지는 코르크 소리와 섬세하게 피어오르는 금빛 기포 그리고 입안을 채우는 짜릿한 생동감까지. 이 한 잔의 와인에는 격동의 역사와 인간의 욕망 그리고 빛나는 성공의 순간들이 농축돼 있다.우연과 필연이 빚어낸 ‘악마의 와인’이야기의 시작은 프랑스 북부의 춥고 척박한 땅인 샹파뉴 지역이다. 이곳 사람들은 남쪽 부르고뉴의 화려한 레드 와인을 선망했지만 샹파뉴의 서늘한 기후는 포도가 완전히 익는 것을 방해했다. 그 결과 이 지역 와인은 묽고 산도가 날카로웠다. 겨울 추위는 발효 중인 와인을 잠재웠고 봄이 돼 기온이 오르면 병 속에서 다시 발효를 시작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가스로 병이 폭발하기 일쑤였다. 와인 생산자들은 예측 불가한 거품을 ‘악마의 와인’(le vin du diable)이라 부르며 저주했다.이처럼 샴페인의 시작은 원치 않았던 거품, 즉 ‘실수’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역사의 위대한 전환은 종종 우연한 발견을 필연적인 기술로 바꾸는 인간의 의지에서 비롯된다. 17세기 후반 영국인들은 ‘터지는 와인’의 매력에 먼저 눈을 떴다. 그들은 완성된 와인에 당분을 첨가해 의도적으로 기포를 만드는 방법을 제안했다. 석탄으로 유리를 녹여 고압에 견딜 수 있는 유리병도 만들어 냈다. 샴페인의 거품은 결함이 아닌 축제와 흥겨움을 상징하는 특별한 개성으로 여겨졌다.샴페인의 역사를 논할 때 돔 페리뇽(Dom Pérignon)이라는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빨리 와보게, 나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네!”라는 그의 외침은 샴페인의 탄생을 알리는 낭만적인 신화로 전해진다. 다만 엄밀히 말해 그는 샴페인을 발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와인 속의 거품을 없애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에 가깝다.돔 페리뇽의 실제 기여는 발명이 아닌 ‘품질의 완성’에 있다. 그는 각기 다른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섞어 훨씬 더 복합적이고 균형 잡힌 와인을 만드는 ‘블렌딩’(assemblage) 기술을 체계화했다. 또 껍질이 검은 포도에서 맑은 즙을 얻어내는 섬세한 압착 기술을 고안했다. 폭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코르크 마개를 철사로 고정하는 방식도 도입했다. 그의 헌신과 집념은 샴페인이 단순한 ‘거품 와인’을 넘어 깊이와 복합미를 지닌 고급 와인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견고한 토대를 마련했다.돔 페리뇽이 닦은 품질의 기반 위에 샴페인은 프랑스 왕실과 귀족 사회의 총아로 떠올랐다.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리는 화려한 연회에는 어김 없이 샴페인이 등장했다. 그 황홀한 기포는 구체제(Ancien Régime)의 사치와 쾌락 그리고 ‘삶의 기쁨’(joie de vivre)을 완벽하게 대변하는 상징이었다. 루이 15세의 연인 마담 드 퐁파두르는 “마시고 난 뒤에도 여성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와인이 샴페인이다”라는 찬사를 남겼다. 위기 속 더욱 빛나는 샴페인의 가치아이러니하게도 귀족 계급을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은 샴페인의 명성을 전 유럽으로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혁명의 칼날을 피해 해외로 망명한 귀족들이 유럽 각국의 사교계에 샴페인을 전파하는 문화 전도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후 샴페인은 런던·빈·상트페테르부르크의 왕실과 살롱에서 가장 세련되고 인기 있는 음료로 자리 잡았다.이 기회를 포착한 것은 귀족이 아닌 비전을 가진 부르주아 가문들이었다. 모엣·뵈브 클리코·로랑 페리에와 같은 샴페인 하우스는 우수한 품질에 ‘브랜드’라는 무형의 가치를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인물은 ‘샴페인의 위대한 여인’이라 불리는 클리코 퐁사르당이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미망인’(Veuve)이 된 그녀는 샴페인의 찌꺼기를 제거하는 ‘리들링’(riddling) 기술을 발명해 품질의 혁신을 이뤘다. 전쟁으로 봉쇄된 러시아 시장에 몰래 샴페인을 수출하는 대담함으로 유럽 전역에 ‘뵈브 클리코’의 이름을 떨쳤다. 이처럼 샴페인 하우스들은 왕실 후원과 국제적인 이벤트 그리고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통해 자신들의 와인을 단순한 술이 아닌 성공과 명예의 상징으로 각인시켰다.사치품의 정점에 있는 샴페인의 역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포도밭이 파괴됐고 대공황과 금융 위기 등 세계 경제가 휘청일 때마다 샴페인 시장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그럼에도 샴페인은 놀라운 회복력으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 그 저력의 핵심에는 ‘샹파뉴 와인 생산자 공동 협회’(CIVC)라는 독특한 상생 시스템이 있다.CIVC는 포도 재배자와 샴페인 하우스가 함께 설립한 기구다. 매년 포도 수확량과 가격을 조율하고 엄격한 품질 기준을 관리하며 ‘샴페인’이라는 이름의 가치를 공동으로 지켜 나간다. 경기가 어려울 때 무분별한 가격 경쟁으로 품질이 저하되는 것을 막는다. 호황기에는 과잉 생산을 억제해 안정적인 시장을 유지한다. 이는 단기적인 이익보다 ‘샴페인’이라는 공동의 유산을 지키려는 그들의 자부심과 지혜가 낳은 결과다.한 잔의 샴페인에서 쉴 새 없이 피어오르는 기포는 단순한 탄산가스가 아니다. 그것은 추운 땅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와인 생산자들의 열망이자 돔 페리뇽의 숭고한 장인정신이다. 베르사유의 화려함과 혁명의 격동을 모두 목격한 역사의 증인이다. 또 위대한 여성 사업가의 비전과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스스로의 가치를 지켜낸 샹파뉴 사람들의 굳건한 연대다.우리가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에 샴페인을 터뜨리는 이유는 단지 그 맛과 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이 황금빛 액체가 품고 있는 성공과 환희 그리고 역경을 이겨낸 승리의 서사를 빌려 우리의 순간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다음번 건배의 순간에는 잠시 귀를 기울여 보길 바란다. 당신의 잔 속에서 터지는 작고 영롱한 거품들이 속삭이는 수백 년의 이야기 속에는 당신의 성공을 축하하는 가장 품격 있는 찬사가 담겨 있을 것이다.

2025.08.31 08:00

4분 소요
논란의 노란봉투법, 그리고 절제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우원식 국회의장은 최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2015년 처음 발의된 지 10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자 남다른 소회를 밝혔습니다. 우 의장은 “노란봉투법은 노동 현실, 특히 하청 노동자 등 직원을 직원이라 부르지 않고, 사장을 사장이라 부르지 못하는 더 어렵고 취약한 노동 계층의 현실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이 법을 ‘홍길동법’이라 불렀다”며 “노동3권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좀 더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입법”이라고 환영했습니다. 우 의장의 말처럼 노란봉투법은 기업보다 약자인 노동자와 약자 중에서 약자인 하청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입니다. 특히 2014년 쌍용차 파업 노조원에 대한 47억원 손해배상 판결, 작년 현대제철 노조 등에 대한 200억원 손해배상 청구, 올해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473억원의 손배 청구, CJ대한통운을 점거 농성한 전국택배노조 조합원들을 상대로 한 20억 손배소 제기 등 어마어마한 손해배상액 때문에 노동자를 사지로 내모는 일부 기업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사용자 범위를 확대해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 교섭 등 직접 협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노동 현실에서는 기업보다 약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도 대항할 수 있는 무기가 생긴 셈입니다. 기업들은 노란봉투법으로 노조의 파업이 일상이 되고, 하청 노동자의 ‘원청 사장 나오라’는 교섭 요구가 빗발쳐 결국 회사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하청 업체 노조들의 원청 교섭 요구가 줄줄이 터져 나올 조짐이 보이고 있는데요,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제철·네이버 등의 협력사 및 자회사 노조 등은 원청 대기업이 직접 나서 임금이나 고용·복지 등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기업들은 지금은 일부에서 이 같은 움직임을 보이지만, 6개월 후 노란봉투법이 본격 시행되면 사방팔방에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올 것이라며 한국을 떠나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사실 트럼프발 관세 등으로 글로벌 교역 환경이 급변하면서 국내 제조 기업들이 생산 거점을 미국으로 옮기고 있는데요, 올해 1분기에만 북미 신규 설립 법인 수가 31개로 유럽보다 4배 이상 많았습니다. 이런 흐름은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여기에 노란봉투법 등으로 사업 환경이 친노동화하면 기업들의 해외로의 탈출 러시가 더욱 가속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국내에 들어와 있는 해외 기업들도 마찬가지인데요, 노동자에게 결코 이로운 일이 아닙니다. 노동자들도 노란봉투법이라는 무기를 쓸 때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마구 휘두른다면 기업들에게도 이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가 다시 쥐어질 것입니다. 이번 노란봉투법은 일부 기업이 자신의 힘을 과도하게 행사했기 때문에 탄생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와 정부는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개념 등 노란봉투법의 불명확성으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경제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2025.08.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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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 현역 트레이더의 ‘실전 투자 수업’ [CEO의 서재]

박세익 체슬리투자자문 대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투자의 전설, ‘피터린치’와 ‘워런버핏’의 공통된 키워드는 ‘일관된 성실함’”이라며 “그리고 이것을 오랜 시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한 ‘철저한 자기관리’가 공통점”이라고 강조한다.작년 하반기에는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투자자들의 국내 주식 투자수익률은 처참했다. 코로나19 전에 비하면 우리나라 투자자들의 금융 이해 수준은 세계 최고가 됐다고 자부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라는 고민을 그는 최근 많이 하게 됐다.박 대표는 일본의 워런버핏으로 불리는 후지모토 시게루의 ‘주식 투자의 기쁨’을 감수하면서 이런 고민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었다.일본은 한국 시장만큼이나 ▲낙후된 지배구조 ▲제조업의 흥망성쇠 ▲잃어버린 30년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 급등 ▲1987년 블랙먼데이 ▲1995년 고베 대지진 ▲2000년 초 닷컴버블 붕괴 ▲2001년 911테러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 등 숱한 위기를 겪었다.박 대표는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200억원에 가까운 주식부자가 된 시게루를 통해 ‘아! 모든 분야의 성공의 열쇠는 결국 하나, 끈기와 성실함으로 이뤄진 반복된 훈련과 노력이구나’라는 해답을 찾게 됐다.시게루는 펀드매니저 출신도 아니었지만, 어떤 프로 펀드매니저 못지않은 타이트한 ‘훈련’을 70년 넘게 하고 있다.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서 미국 주식시장을 면밀하게 모니터링(관찰)하고, 투자 시작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거래 기록 및 복기 노트를 작성했다. 기업 실적 발표 시즌에는 300개가 넘는 기업의 실적 발표를 미리 체크하고, 또 실적 발표 후에는 예상치와 실제 발표치를 비교하며 투자의사 결정을 내렸다. 박 대표는 “시게루의 어록은 ‘우리 투자자들이 반드시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명언들’”이라고 강조한다. ‘하루라도 쉬면 시장이 나를 앞서간다. 투자자는 시장에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매일 스스로를 단련해야 한다’ ‘투자자는 스스로를 경영하는 최고경영자(CEO)다. 돈은 결과일 뿐, 나의 행동이 본질이다’ ‘몇 달 안에 두 배를 노리는 투자는 몇년 안에 반토막을 만든다’ 등이 그의 어록이다.박 대표는 그동안 강의와 방송을 통해서 피터린치의 ‘월가의 영웅’을 비롯한 수많은 ‘투자 고전’을 ‘투자 필독서’로 권유해 왔다. 하지만 미국 시장과는 다른 점이 많은 국내 시장에 그런 대가들의 투자 방법과 스타일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애로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그리고 미국 시장이든 한국 시장이든 투자자들이 ‘투자로 돈을 버는 프로’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일상의 루틴’과 ‘방법’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책은 이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다는 것이다.박 대표는 “‘투자는 공부하는 사람에게만 보상을 준다. 하루 3~5 시간 공부는 기본이다’라고 얘기한 시게루의 말처럼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수익이라는 보상뿐만 아니라 투자의 기쁨과 행복을 경험하는 진정한 투자 고수가 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2025.08.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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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단체 무비자 입국 허용… 방한 포상관광 시장 ‘훈풍’ 맞나 [E-MICE]

전문가 칼럼

방한(訪韓) 포상관광 시장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정부의 중국인 단체 방문객에 대한 무비자 입국 허용으로 중국인 대형 포상관광단 복귀가 가시화되면서다. 내년 6월 말까지 ‘한시적’이긴 하지만 한중 양국은 상호 무비자 입국 환경을 갖추게 됐다. 한국 단체여행을 금지한 ‘한한령’(限韓令·한류금지령)에 이은 코로나19 사태로 이미 대만, 동남아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한 방한 포상관광 시장이 중국의 복귀로 ‘제2의 호황기’를 맞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중국은 한때 전체 방한 포상관광단의 절반에 가까운 절대 비중을 차지하며 ‘큰손’으로 군림했다. 2015년 9만여명에 이어 2016년엔 12만명이 넘는 중국인 포상관광단이 찾아 호황 분위기를 이끌었지만, 2017년 중국 정부의 한한령 조치로 수요가 급감했다. 2019년 10만명 수준까지 ‘반짝’ 회복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곧바로 터진 코로나19 사태로 재차 발길이 끊어졌다.최근엔 미국과의 통상 갈등에 중국 내 경기 불황이 더해지면서 여전히 70~80%의 더딘 회복세에 머물고 있다. 여기에 2년 전 중국 정부가 한한령을 해제했지만 대형 단체 파견에 대한 중국 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방문 횟수는 물론 수천 명에 달하던 규모도 수백 명 단위로 쪼그라든 상태다. 한 포상관광 전문 여행사 관계자는 “그동안 방문 시기, 규모 등을 확정 짓고도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일정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아예 행선지를 일본, 동남아 등으로 틀어버린 포상관광단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中 단체 무비자 허용에 분주해진 지자체들관련 업계는 한한령에 이은 코로나19 팬데믹, 경기 불황으로 급감했던 중국 내 방한 포상관광 수요가 무비자 입국 허용으로 반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중국 대형 포상관광단으로 호황을 누렸던 지자체들의 발길이 분주해지고 있다. 9월 29일 무비자 입국 허용 시점에 맞춰 계획했던 초청 상담회, 현지 로드쇼 등 프로모션 프로그램을 속속 실행 단계로 전환하고 있다.중국 기업·단체를 대상으로 포상관광 수요 선점에 가장 먼저 나서는 곳은 부산이다. 지난해 상하이에서 처음 단독 로드쇼를 연 부산은 9월 2일 상하이 하얏트 호텔에서 두 번째 로드쇼를 준비 중이다. 지역 마이스 기업 10곳이 동행하는 로드쇼에선 현지 여행사 등 기업·단체 대상 설명회에 이어 실질적인 방문 수요를 잡기 위한 일대일 B2B(기업 간 거래) 상담도 진행할 예정이다. 인천은 9월 2일 송도컨벤시아에서 중국 현지 여행사와 기업·단체 관계자가 참가하는 트래블 마트로 ‘안방 마케팅’에 나선다. 특히 올해는 그동안 대만, 일본, 동남아 등 국가별로 고르게 배분했던 바이어 구성을 바꿔 전체 30명 해외 바이어 중 절반을 중국 바이어들로 채웠다. 서혜란 인천관광공사 차장은 “그동안 중국 포상관광단이 방문한 적이 없는 강화도 등 새로운 지역과 시설을 둘러보는 현장답사 일정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인천은 10월 중국 하이난성 싼야 폴리국제전시장(PIEC)에서 열리는 ‘국제 여행 서비스 전시회’에도 대표단을 꾸려 참가한다. 중국여행사협회가 올해 처음 여는 행사에 중국 전역에서 기업·단체를 주 거래처로 둔 여행사 관계자 5000여명이 참가한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계획을 추가했다. 싼야 ‘국제 여행 서비스 전시회’엔 서울과 부산, 강원 등 지자체도 참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지난해 상하이에 사무소를 개설한 경기도는 본격적인 프로모션에 앞서 현지 네트워크를 가동해 수요 파악에 착수했다. 강동한 경기관광공사 관광사업실장은 “지난해 12월 무비자 시행 계획이 나온 직후 현지에서 진행한 단독 로드쇼로 1차 수요는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라며 “정부가 곧 발표할 무비자 입국 세부 지침에 맞춰 하반기 프로모션 장소와 일정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무비자 대상 지역 제한 시 효과 반감될 것”극도로 얼어붙었던 시장 분위기 전환에는 성공했지만, 아직 완전한 회복을 기대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나온다. 무비자 입국 허용이 한시적으로 제한적인 데다 아직 구체적인 세부 지침이 나오지 않아서다. 문화체육관광부·법무부·외교부 등 관계 부처는 아직 중국인 단체의 무비자 입국 시 허용되는 체류 기간 등 세부 운용지침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관련 업계와 지자체는 정부가 곧 내놓을 세부 운영 지침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부에선 자칫 무비자 입국 허용의 취지와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는 ‘옥상옥’과 같은 절차, 제도가 더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관련 업계에선 특정 도시에서 출발하는 인원으로 무비자 입국 대상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에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실제로 지난 4월 열린 전문가 토론회에서는 중국인 불법체류자 급증을 우려해 무비자 입국 허용 대상을 특정 도시(출발지 기준)로 제한하는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1선과 신(新)1선 도시부터 5선 도시까지 총 6개로 나뉘는 등급 기준에 따르면 1선 도시는 베이징과 상하이·광저우·선전 등 4곳, 신1선 도시는 청두·충칭·항저우·우한·심양·시안·칭다오·톈진 등 15곳이 포함된다.리쭈위안 중국여행사협회 비서장은 “소수 도시로 무비자 입국 대상을 제한하면 포상관광단 등 단체 방문이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으로 우려했다. 이어 “최소한 닝보와 쿤밍·샤먼·다롄·하얼빈 등 2선 도시에 최근 경제력이 급상승한 하이커우 등 3선 도시까지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무비자 입국 허용으로 적용 대상이 된 ‘전자여행허가제’(K-ETA)도 초미의 관심사다. 현재 미국·일본·캐나다·노르웨이 등 22개 국가의 국민은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K-ETA 없이 한국 입국이 가능하다. 정부는 지난 7월 6일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관광 활성화 미니 정책 TF 회의’에서 K-EAT 면제 대상과 기간 연장을 검토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현지는 물론 관련 업계는 무비자 정책 시행에 더해 중국도 K-ETA 면제 대상에 포함되기를 바라고 있다. 기업체가 실적이 우수한 직원에 대한 보상과 격려를 위해 운영하는 포상관광 프로그램은 참가자의 소속과 신분이 확실해 불법체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에서다. 리쭈위안 비서장은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한 건 맞지만 관광 교류를 활성화를 위한 무비자 도입의 원래 취지와 목표를 훼손하는 건 한중 양국 관계 개선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이라고 조언했다.

2025.08.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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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산업 도약 위한 트리거..."공생관계 지속되지 않을 것" [불붙은 퀵커머스 전쟁]③

유통

유통업계의 미래는 속도전으로 전망된다. 바로 퀵커머스(Q-commerce)로 재점화될 배송 속도 전쟁이다. 퀵커머스는 고객 주문 후 30분 이내에 상품을 배송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인 점을 감안해 1시간 이내로 보는 견해도 있다.얼마 전까지 유통 시장의 화두는 당일배송과 새벽배송이었고 시장 내 서열 정리가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배달플랫폼과 유통 대기업, 다이소와 네이버 쇼핑까지 퀵커머스 시장에 진출하며 시장 지형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쿠팡 로켓배송 성공의 학습 효과퀵커머스에 기업들이 빠르게 반응하는 이유는 이미 로켓배송을 통해 유통 시장에서 배송 속도의 중요성과 늦은 대응으로 인한 시장에서의 도태를 경험한 유통산업 전반의 학습효과 때문이다.국내 유통업계는 1990년대 유통 시장 개방 이후 폭발적인 성장을 했고 그 중심에는 대형마트가 있었다. 견고한 대형마트 아성을 한 번에 무너트린 건 쿠팡의 빠른 배송 서비스인 로켓배송이다. 로켓배송은 풀필먼트(Fulfillment) 물류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다. 풀필먼트는 전 세계 이커머스 1위 기업 아마존이 만든 물류 시스템이다. 도시 옆에 대형 물류센터를 건설한 후 도시에 거주하는 소비자가 구매할만한 상품을 미리 물류센터에 갖다 놓고 주문이 오면 즉시 배송해 배송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물류 시스템이다.아마존은 풀필먼트로 기존에 일주일 걸리던 온라인 쇼핑 배송기간을 3일 이내로 단축하며 미국 내 유통 시장을 단숨에 손에 넣었다. 국내에서는 아마존 풀필먼트를 벤치마킹한 쿠팡이 전년 매출 40조원을 넘기며 국내 1위 유통기업으로 성장했다. 쿠팡의 성공을 본 유통업계는 배송 속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넥스트 스텝으로 퀵커머스에 주목하고 있다.퀵커머스 시장을 노리는 업체는 크게 세 진영으로 나뉜다. 먼저 전통의 유통 진영인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 그리고 편의점이다. 다음으로는 최근 틈새에서 주류로 성장한 다이소, 올리브영 등 신규 오프라인 강자들이 있다. 오프라인 업체들은 이커머스 기업에 뺏긴 주도권을 찾아올 기회로 보고 있다. 이미 퀵커머스 사업을 운영 중인 배달플랫폼과 이커머스 유통기업들도 기어를 올리고 있어 퀵커머스 시장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전 세계적으로 퀵커머스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의 퀵커머스는 지난 2014년 서비스가 처음 도입됐다. 올해(2025년)는 현지 퀵커머스 시장이 1조 위안(195조 원) 규모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퀵커머스 시장은 저렴한 인건비와 거대 기업의 전폭적인 투자에 따라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다. 유통기업이 슈퍼마켓을 기반으로 퀵커머스 서비스를 도입해 성장했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제 중국에서는 슈퍼마켓과 자영업 상점의 상품을 퀵커머스를 통해 구매하는 것이 일상이다.중국 사례에서 보듯이 소매 퀵커머스가 초기 안정 궤도에 올리려면 배달 비용의 부담을 낮출 높은 객단가가 중요하다. 소상공인보다는 마트나 슈퍼마켓과 연계가 필요한 이유다. 중국에 비해 대한민국은 높은 배달 라이더 비용과 유통업체의 사업성 부재에 따른 관심 저하로 늦게 시장이 열리게 됐다.4조 퀵커머스 시장 경쟁 갈수록 치열하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퀵커머스 시장이 발전할 여건과 필요성이 충분하다. 유통 시장의 핵심 가치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이제 고객들은 배달 비용을 당연하게 여긴다. 배달서비스가 처음 도입됐던 시기에는 배달비에 대한 반감이 높았지만 최근에는 배달플랫폼 이용자 대부분이 배달비 지출에 대한 불만이 갖지 않는다. 이는 최근 배달의민족 B마트가 연간 거래액 1조원을 달성한 것과 기업형 슈퍼마켓의 퀵커머스 매출이 두 자릿수로 증가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퀵커머스 도입에 있어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 모두 기존의 운영 방식과 큰 차이를 보인다. 온라인 유통은 기존 택배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1시간 이내’라는 배송 속도를 맞추기 위해 일정 지역을 커버할 라이더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 또 기본적으로 퀵커머스 서비스를 운영할 안정적인 월간 활성 이용자수(MAU)와 묶음 배송으로 1회 배송당 객단가를 높일 다양한 상품과 이를 공급할 많은 수의 자영업 판매자(플랫폼 셀러)가 있어야 운영할 수 있다.즉 효과적인 배달 시스템과 묶음 배송이 가능한 풍부한 구색이 퀵커머스의 성공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유통업체와 배달플랫폼은 각각의 강점을 지닌다. 대형마트·기업형 슈퍼마켓·편의점 등 오프라인 유통기업은 식품과 공산품 중심의 풍부한 구색에서 강점을 갖다. 반면 배달의민족·쿠팡이츠 등 배달플랫폼은 음식점과 소매점 등 자영업 매장을 기반으로 한 검증된 배달 시스템에서 강점을 보인다.현재는 유통기업과 배달플랫폼 모두 퀵커머스 시장의 확장을 위해 서로의 장점을 활용하는 일종의 공생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퀵커머스 시장에서 경쟁이 불가피하므로 현재의 협업적 공생관계가 지속되리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배달의민족은 2018년부터 B마트 서비스에 꾸준히 투자하며 자체 도심물류센터와 효율적 배달 시스템을 모두 갖췄다. 이 기업은 현재 국내 퀵커머스 시장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된다.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국내 퀵커머스 시장은 올해 약 4조원 규모로의 성장이 전망된다. 쿠팡이 로켓배송으로 신드롬을 일으켜 국내 유통 시장을 차지한 것처럼 향후 유통과 배달플랫폼 시장에서 퀵커머스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한 트리거(기폭제)가 될 것이다. 향후 국내 500조 규모의 소매 판매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배달플랫폼과 이커머스 기업, 재도약을 꿈꾸는 유통 대기업의 사활을 건 쟁탈전이 흥미로워질 거 같다.

2025.08.30 00:00

4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