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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인정한 ‘제조 강국’의 시간 얼마 안 남았다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미국의 제조업 부흥 전략에서 한국은 핵심적이다. 정밀 제조시설을 운영하는 방법을 미국 노동자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한국 전문가들을 임시 비자로 미국에 보낼 수 있도록 한국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크리스토퍼 랜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최근 한미 양국이 발표한 관세·안보 협상 ‘조인트 팩트시트’에 대해 평가하면서 한 말입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한국이 ‘제조업 강국’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 줬습니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수출을 국가 생존 전략으로 삼고 중화학공업·전자·자동차·조선 육성에 민관의 역량을 올인했습니다. 특히 세계 최고의 교육열 덕분에 공대·이공계의 고급 기술 인력이 풍부하게 배출된 점, ‘빨리빨리’와 ‘정확하게’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정 속도와 품질관리 등으로 다른 나라보다 제조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삼성·현대·LG·SK·포스코 등 대기업이 중심이 돼 개발·생산·유통·수출 시스템을 체계화하고 장기 투자와 연구·개발(R&D) 축적 등을 한 점, 위기 때마다 기업 재편과 기술 투자 확대 등 산업 체질 강화에 나선 것이 한국이 제조업 강국으로 단단하게 자리 잡은 이유로 꼽힙니다.하지만 한국만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그중 하나가 제조업에서 일하려는 청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겁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0월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10월 29세 이하 제조업 고용보험 가입자는 54만4000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4.5%(2만6000명) 감소했습니다. 청년층 인구 감소의 영향을 고려하더라도, 동일 연령대의 전 업종 고용보험 가입자가 3.8% 줄어든 것에 비해 감소 폭이 큰 것이며, 동월 기준으로 봐도 2020년 10월(5.0%) 이후 5년 만에 최대 감소 폭입니다. 고용보험 가입자가 줄었다는 것은 제조업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인 상시직에서 일하려는 청년이 감소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2024년 5월부터 지난달까지 18개월째 감소세가 이어지고 그 폭도 커지고 있어 시간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이 빠진 제조업의 일손은 고령자와 외국인이 채우고 있는데, 지난달 60세 이상 제조업 고용보험 가입자는 40만1000명으로 처음으로 40만명을 넘어섰으며, 비숙련(E-9) 비자로 제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 고용보험 가입자는 지난달 23만500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제조업 강국을 떠받치고 있는 핵심 기둥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인재 경쟁력’에 금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워라벨·자기발전·창의성 추구 등을 중시하는 요즘 청년들에게 고되고 위험하며 임금도 낮고 조직문화가 보수적인 제조업체는 기피 대상 1순위일 수밖에 없다며 청년 유입을 위한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하지만 제조업의 특성상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활용하는 제조산업의 AI 대전환에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부도, 기업도 모두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지만 문제는 중소 제조기업의 경우 AI를 제조 공정에 도입할 돈도, 이를 주도할 인재도, 효과성에 대한 확신도 없다는 점소입니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은 AI 성능을 체감할 수 있는 실증 모범 사례들을 만들고 확산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마침 정부도 AI 팩토리 500개 이상 구축, 제조AI센터 구축 등 제조업 AI 전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투자와 속도를 더욱 높여야 합니다. ‘제조업 강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025.11.23 06:00

3분 소요
소셜 제국 만든 메타…하지만 독점은 아니다?[한세희 테크&라이프]

전문가 칼럼

페이스북 월간 사용자 수는 작년 말 기준 세계적으로 30억명이 넘는다. 소셜 네트워크 근본 서비스이다. 하지만 약 2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사용자도 함께 나이 들어 가고 있다. 2030 젊은 세대는 부모와 선생님, 직장 상사가 있는 페이스북에 질색한다. 젊은 세대는 이미지 중심 서비스 인스타그램으로 몰려 갔다. 인스타그램 사용자 역시 올해 9월 기준 30억명을 넘어섰다. 한편에선 아는 사람들 간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 유명 인플루언서들의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미디어로 성격이 변해버린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피로를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친구나 가족,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의 메신저 단체 대화방으로 물러났다. 세계 최대 메신저 왓츠앱 월간 이용자 수도 올해 초 30억명을 돌파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왓츠앱 모두 미국 메타가 운영한다. 페이스북의 노쇠를 인스타그램으로 상쇄하고, 소셜 네트워크에 대한 피로도에 왓츠앱으로 대응한다. 3개 서비스 모두 세계 인구의 절반 가까운 30억명의 사용자가 있다. 메타는 세계 소셜 서비스의 지배자다. 메타가 혼자 힘으로 소셜 서비스 제국을 일군 것은 아니다. 메타, 당시 페이스북은 2012년과 2014년 각각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인수했다. 직원이 10명 정도 있고, 매출도 없던 인스타그램을 10억달러(한화 약 1조원)에 샀다. 왓츠앱은 인수 당시에도 세계 최대 메신저이긴 했으나 비즈니스 모델이 뚜렷하지 않았고 직원도 수십명 정도였다. 왓츠앱 인수 가격은 190억달러였다. 우리 돈으로 20조원이 넘는다. 두 회사 모두 파격적으로 비싼 가격에 인수한 것이다. 메타, 유망 스타트업 사서 묻었나?소셜 네트워크 시장이 메타의 손안에 들어가면서,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의 알고리즘이 가짜뉴스 확산과 정치사회적 양극화를 일으킨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규제 당국의 압박도 거세지기 시작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메타가 유망한 경쟁 스타트업을 거액에 인수함으로써 경쟁의 싹을 미리 잘라버리는 반경쟁 행위를 했다며 메타를 제소했다. 메타가 ‘사서 묻어버리는’(buy-and-bury) 전략을 썼다는 것이다. 반면 메타는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해 이들 기업을 인수했고, 인수를 통해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이 더 좋아졌기 때문에 소비자 후생을 높인 것이라 주장했다. FTC는 2020년 소송을 벌였으나 법원에서 기각됐고, 이후 근거와 논리를 더 가다듬어 다시 소승을 제기했다. 재판은 2022년 시작했으나 계속 지연되다 올해 4월 마크 저커버그메타 CEO와 섀릴 샌드버그 전 최고운영책임자(COO). 케빈 시스트롬 인스타그램 창업자 등이 법정 증언하며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FTC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메타는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다시 분할해야 하는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될 수도 있었다. 11월 18일(현지시간) 나온 1심 판결은 메타의 승리였다. 미국 워싱턴DC 연방법원은 메타의 인스타그램과 왓츠앱 인수를 반경쟁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사용자 시간 놓고 경쟁하는 플랫폼 시장 법원은 메타가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음을 FTC가 입증하는데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설령 과거에 메타가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하더라도, 그 독점 능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까지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FTC는 메타가 ‘사람들과 온라인에서 친구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개인 간 소셜 네트워크(PSN)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메타가 틱톡이나 유튜브 같은 동영상 서비스를 포함하는 보다 광범위한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메타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FTC가 말하는 PSN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셜 네트워크의 정의에 잘 부합한다. 하지만 시장 변화가 빠른 디지털 플랫폼 시장에서 이런 구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같은 메타 서비스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고, 유튜브나 틱톡은 개인화된 미디어에 더 가깝다. 하지만 이들 서비스는 서로 모방하고 참고하면서 실질적으로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와 소셜 미디어의 구분은 흐려졌고, 서로 비슷해진 이들 서비스는 사용자의 시간과 관심이라는 제한된 자원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디지털 플랫폼 시장의 빠른 변화를 잘 보여준다. 2020년 처음 소송이 제기됐을 때만 해도, 틱톡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하지만 2025년 현재 틱톡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제치고 미국과 서구 젊은이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이 큰 앱으로 자리잡았다. 창업 생태계 살아날까?판사는 판결문에서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인용하며, 온라인 세계에선 “강물이 너무나 빨리 흐른다”고 밝혔다. 이 같은 급격한 시장 변화는 디지털 플랫폼 시장 규제 정책에 어려움을 더한다. 플랫폼 시장은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효용도 커지는 네트워크 효과가 작용하기 때문에 지배적 사업자의 지위가 매우 커 보인다. 하지만 네트워크 효과 때문에 지배적 사업자가 등장해도 소비자 효용은 더 커지기 때문에 독점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게다가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반경쟁 소송의 결과가 나올 무렵엔 이미 시장 환경이 달라져 결과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 이번 판결이 스타트업 인수를 다시 활성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메타의 인스타그램 및 왓츠앱 인수가 문제가 되면서, 기업들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흔히 하던 스타트업 인수가 위축됐다. 이는 스타트업 엑싯을 막아 창업 의욕을 떨어뜨렸다. 최근 메타나 구글의 AI 인재 유치 경쟁에서 보듯, 경쟁 당국의 눈길을 피해 유명 AI 스타트업을 인수하기 위해 핵심 인력만 거액을 주고 스카우트하고, 핵심 인력과 기술이 빠진 껍데기 회사를 남겨두는 꼼수가 성행했다. 이런 어색한 일이 줄어들고, 스타트업 생태계에 다시 활기가 도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다.

2025.11.22 11:00

4분 소요
내신 5등급제 전환...‘1등급’ 학생 8배 늘어난다 [임성호의 입시지계]

전문가 칼럼

2028학년도 대학입시부터 현 고1 학생들이 적용받게 될 내신 평가 방식이 기존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전환된다. 지금까지의 9등급제에서는 상위 4%까지만 1등급을 받을 수 있었지만, 새롭게 도입되는 5등급제에서는 상위 10%까지 1등급에 해당한다. 등급 구간 역시 기존 ▲1등급(4%) ▲2등급(11%) ▲3등급(23%) ▲4등급(40%) ▲5등급(60%) ▲6등급(77%) ▲7등급(89%) ▲8등급(96%) ▲9등급(100%) 체계에서 앞으로는 ▲1등급(10%) ▲2등급(34%) ▲3등급(66%) ▲4등급(90%) ▲5등급(100%)으로 단순화된다.폭발적으로 증가하는 1등급이 같은 변화로 인해 가장 큰 관심사는 ‘실제로 몇 명이 상위권으로 올라오는가’다. 최근 공개된 서울시 고교 데이터를 보면 변화는 매우 뚜렷하다. 현 고1 1학기 기준 모든 과목 1등급 학생 수가 기존 9등급제에서는 121명이었으나, 5등급제로 적용되자 1009명으로 늘어나며 약 733.9% 증가했다. 단일 학기 데이터이지만 변화의 폭이 상당해 입시 방향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학군별 변화도 주목된다. ▲강남·서초 ▲송파·강동 ▲양천·강서 등 주요 교육 특구 지역에서도 모든 과목 1등급 학생 수가 일제히 증가했다. 강서·양천은 16명에서 167명, 강남·서초는 13명에서 99명, 강동·송파는 16명에서 111명으로 각각 확대한 것이다. 숫자만 보면 단순한 증가 같지만, 이는 곧 '상위권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경쟁은 훨씬 촘촘해졌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전국 기준으로 보면 흐름은 더 명확해진다. 기존 9등급제에서는 모든 과목 1등급 학생 비율이 약 0.18% 수준이었지만, 5등급제 적용 시점에서는 1.72% 내외로 추정된다. 단순 계산만 놓고 보면 전국 모든 과목 1등급 학생 수는 기존 766명에서 약 7317명 수준으로 늘어난 셈이다.다만 이 증가세가 고2·고3까지 유지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학생별 학업 유지력 ▲이수 과목 선택 ▲학교 규모 ▲학생 수 ▲학년별 난이도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입시 결과 분석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2025학년도 서울권 4년제 학생부 교과전형 평균 합격선은 기존 기준 ▲인문 2.58등급 ▲자연 2.08등급이었으며 이를 5등급제로 환산하면 인문은 약 1.6등급, 자연은 약 1.4등급으로 계산된다. 반면 학생부 종합전형은 기존 인문 3.05등급·자연 2.71등급에서 5등급제 환산 약 1.8등급대로 나타난다. 즉, 내신제 개편에도 최상위권 대학 진학 기준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향후 내신 전략 가늠 중요해져내신 등급별 향후 전략 가늠도 중요한 변수다. 5등급제 기준 1학년 종료 시점 평균이 2.0등급인 학생이 남은 학기에서 모든 과목 1등급을 받으면 최종 약 1.46등급이다. 반면 1학년 평균이 2.3등급일 경우, 이후 모든 과목 1등급을 받더라도 최종 약 1.59등급 수준으로 추산된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 수치를 기준 삼아 '고1 2학기부터는 사실상 순위 경쟁이 아니라 등급 자리싸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실제 입시 구조를 고려하면 2.3등급을 넘는 학생은 서울권 교과 전형 진입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상위권 학생 수 증가로 인해 동점자 발생 구간은 지금보다 훨씬 넓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대학은 ▲수능 ▲비교과 ▲교과 세부능력 특기사항 ▲이수 과목 난이도 등을 종합 평가하는 방식으로 전형을 재조정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의대 합격선은 사실상 ‘최종 1.0등급대’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고1 종료 시점에서 이미 1.0등급 대에 진입했는지는 향후 입시 구조에서 결정적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3등급대 학생도 상위권과 같은 경쟁 라인에 서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수강 과목 선택과 학년별 전략은 더욱 치밀해질 전망이다.이들 학생은 고교학점제에서도 안정적 내신 등급을 확보하기 위해 수강생 수가 많은 과목에 몰릴 수 있는 상황이 예상된다. 학교별 학생 수에 따라 유불리 점도 매우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다.교육계는 이번 변화가 단순한 등급 조정이 아니라 ▲내신 방식 ▲대학 선발 기준 ▲학생 진로 설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변화라고 설명한다. 결국 현 고1 학생들은 ▲1.0권 ▲2.3권 ▲2.3 초과 세 그룹으로 전략이 명확히 갈리는 체제 속에서 입시를 치르게 될 것이다.고교 1학년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5등급제에서 ▲내신 1.0등급이내 ▲내신 2.3등급이내 ▲내신 2.3등급을 벗어날 경우, 대학 진학에서 각각의 셈법은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2025.11.22 09:00

3분 소요
KG그룹 곽재선 문화재단, 대학생 청년작가 'FLY, YOUNG ARTIST' 공모

전시

KG그룹 곽재선 문화재단이 문화예술 인재양성을 위한 제3회 대학생 청년작가 'FLY, YOUNG ARTIST' 공모를 시작한다고 21일 밝혔다.이번 공모전은 대한민국 국적의 만 35세 이하의 대학생 및 대학원생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모집 부문은 ▲한국화 ▲서양화 ▲판화 등 평면 예술과 ▲조각 ▲공예 등 입체 예술이며, 오는 12월 31일까지 지원할 수 있다.곽재선 문화재단은 창작자 발굴과 지원을 목표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공모전 심사에는 해당 분야에서 국내·외 최정상에 오른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을 꾸려 공모에 응한 대학생 청년 작가를 대상으로 엄격한 공개 심사해 최종 4명을 선발할 계획이다최종 선정된 4명의 작가에는 상금 200만원과 함께 2026년 상반기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곽재선문화재단 ‘갤러리 선’에서 기획 전시와 홍보 지원의 혜택을 준다.곽재선 문화재단 관계자는 “청년 작가들에게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청년작가 상생 프로젝트를 기획했다"며 "앞으로 'FLY, YOUNG ARTIST'를 통해 청년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곽재선문화재단은 지난 11월 14일부터 제3회 아트 공모전 대상 수상작 김민지 작가의 개인전 'BLUE CYCLE ; 순환하는 블루'를 12월 5일까지 서울 중구 갤러리선에서 개최하고 있다. 또한 2026년 '말'을 주제로 한 제4회 아트공모전을 추진하는 등 창작자 지원과 문화예술 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2025.11.2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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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치즈버거' 먹고 '금관' '황남빵'까지…10만원대에 APEC '풀코스' 체험해볼까

여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먹었던 힐튼호텔 '치즈버거', 시진핑 국가 주석이 '맛있다'고 한 '황남빵' 등 경북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시설이나 식사 메뉴를 체험할 수 있는 여행상품이 나온다.경북문화관광공사는 이달 말부터 1박 2일 일정의 '경주 APEC 트레일' 상품을 국내전담여행사를 통해 판매한다고 20일 밝혔다.이 상품은 정상회의 당시 사용된 회의장, 정상들 식사 메뉴, 영부인 일정 등 APEC의 주요 순간을 여행 동선에 그대로 녹여낸 이야기가 있는 여행이다.여행 1일 차 일정은 경주보문관광단지 내 경주엑스포공원에서 시작된다.이곳에는 APEC 정상회의장을 그대로 옮겨 온 재현관이 마련돼 있어 여행객은 세계 21개국 정상이 모여 의제를 논의한 현장을 볼 수 있다.이어 경주 힐튼호텔로 이동해 정상회의 주간에 미국 대통령이 특별 주문해 화제를 모은 '트럼프 치즈버거 세트'를 맛본다. 호텔 내 우양미술관에서는 회의 기간 중 외교·통상 합동각료회의가 진행된 예술 공간을 감상한다.여행객은 오후에 정상 배우자나 딸 초청 프로그램이 열린 불국사를 방문해 신라 불교 유산을 체험한다.저녁 식사 후에는 보문단지 호반광장에 새롭게 설치된 APEC 상징조형물, 육부촌 미디어아트, 3D 라이트 쇼가 결합된 야간 관광을 즐긴다.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만찬에 연이틀 오른 코오롱호텔의 해물파전 등 프리미엄 한식도 코스에 포함됐다. 2일 차 아침 식사는 존 리 홍콩 행정수반 내외가 먹고서 감탄사를 연발했다는 중앙시장 소머리국밥이다.여행객은 신라금관 6점이 특별전시되는 국립경주박물관을 비롯해 대릉원·첨성대를 둘러본다. 이어 캐롤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한미 정상회담 직후 방문해 전 세계 매스컴을 탄 황리단길을 방문한다.APEC 만찬주로 선정된 교동법주, 시진핑 주석 취향을 사로잡은 황남빵 등을 기념품으로 구매할 수 있다.상품가격은 1인 기준 10만원대다.수도권 전세버스, 1박 3식, 입장료, 가이드, 보험 등이 포함됐다.김남일 사장은 "APEC 감동을 관광으로 확장해 경주만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 여행상품 출시의 목표"라고 소개했다.

2025.11.20 16:39

2분 소요
케데헌 성지와 종묘 앞 초고층 빌딩 논란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글로벌 히트작인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에는 다양한 서울 명소가 나옵니다. 걸그룹 ‘헌트릭스’의 루미와 보이그룹 ‘사자보이즈’의 진우가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낙산공원(한양도성) 성곽길, 루미와 진우가 한옥 지붕 위에서 듀엣곡 ‘프리’를 부르는 북촌한옥마을, 사자보이즈의 히트곡 ‘유어 아이돌’ 무대가 된 남산서울타워, 헌트릭스의 복귀곡 ‘골든’ 뮤직비디오가 초대형 3D 전광판을 통해 공개되는 코엑스 K팝 광장 등인데, 케데헌 인기와 함께 이곳들도 외국인 관광객이 꼭 가보는 ‘성지순례지’가 됐습니다. ‘케데헌 성지’는 하나같이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서울만의 역사·문화·경관을 오롯이 간직한 곳이라는 점에서 외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인기는 경제 효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카드에 따르면 지난 3분기에 북촌한옥마을·코엑스·낙산공원 인근 지역에서 승인된 외국인 관광객 결제액은 각각 전년 같은 기간보다 54%, 30%, 29% 증가했습니다. 케데헌 속 캐릭터 더피(호랑이)와 서씨(까치)를 연상시키는 까치 호랑이 배지 등 국립박물관의 뮷즈(뮤지엄+굿즈)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면서 올해(1~10월) 뮷즈 매출액은 처음으로 306억4000만원(지난해 연매출 대비 44% 증가)을 돌파하기도 했습니다.외국인을 사로잡은 힘은 결국 가장 한국적인 것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적 가치의 정수’를 꼽으라면 종묘(宗廟)를 빼놓기 어렵습니다. 종묘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왕실 사당으로, 조선 왕조의 건국 이념과 정신을 잘 드러내는 공간 중 하나로 꼽힐 뿐 아니라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동양의 파르테논’(그리스 아테네의 신전)이라고 할 정도로 건축사적 가치도 높습니다. 이에 1995년 석굴암·불국사·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한국의 첫 세계유산에 올랐습니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종묘가 그 가치를 잃을 수도 있는 재개발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서울시가 종묘 일대와 인접한 세운4구역의 건물 최고 높이 제한을 기존 55~72m에서 101~145m로 상향하는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을 고시하면서 종묘 앞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설 수 있게 됐습니다. 정부와 학계, 문화유산 단체들은 종묘의 경관이 훼손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근거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며 크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네스코가 종묘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경관을 해치는 인근 지역 고층 건물 인허가가 없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서울시 계획대로 초고층 건물이 세워지면 종묘가 세계유산 지위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낙후된 지역의 개발이 필요하다’며 계획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다만 서울시도 ‘종묘의 가치가 훼손돼선 안 된다’는 점에서는 정부와 인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앞서 케데헌 성지처럼 한국적 가치가 오롯이 빛날 때 재개발 효과도 배가된다는 것을 서울시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남는 문제는 하나입니다. ‘세계유산을 지키면서도 낙후 지역을 살리는 길은 무엇인가?’ 정부와 서울시는 감정 대립이 아닌, 데이터·전문성·도시 비전을 기반으로 머리를 맞대어 최선의 해답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2025.11.16 06:00

3분 소요
틱톡에서 시작된 ‘맘다니’ 혁명[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전문가 칼럼

2025년 11월 4일, 미국 정치사에 한 획이 그어졌다. 인도계 우간다 태생의 91년생(34세) 무슬림 사회주의자 청년이 뉴욕시장에 당선된 것이다.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 100년 만의 최연소 시장이자 첫 무슬림 시장. 더 놀라운 건 그가 정치 왕조의 후계자 앤드루 쿠오모를 꺾었다는 사실이다.물론 그의 진보적 정책 - 임대료 동결, 무료 대중교통, 시영 식료품점 - 에 대해선 찬반이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건 그의 정치 성향이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정치든 비즈니스든, 새로운 세대와 소통하려는 모든 이들이 참고해야 할 혁신적 브랜딩 전략이다. 어떻게 2월 지지율 1%의 무명 정치인이 6월엔 32%, 11월엔 시장 당선자가 될 수 있었을까? 그는 정치를 하지 않았다.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다.알고리즘 해킹: 정치광고가 아닌 콘텐츠를 만들다기성 정치인들이 TV 광고에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을 때, 람다니는 93초짜리 동영상 으로 승부를 봤다. 뉴욕 길거리 상인과 대화하며 노점상 허가증 가격(2만 2000달러!)을 폭로한 영상은 순식간에 300만 뷰를 돌파했다.비결은 '광고'가 아닌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Subway Takes’라는 틱톡 시리즈에선 지하철에서 지하철카드를 마이크 삼아 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100만 팔로워를 보유한 이 채널과의 협업으로 만든 영상은 57만 5000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출구조사가 증명한다. 18-29세 투표자의 78%가 그를 선택했다. 쿠오모가 천문학적 자금으로 만든 광고들은 MZ세대의 알고리즘을 뚫지 못했다. 반면 람다니의 콘텐츠는 댓글과 공유, 듀엣과 스티치를 통해 자생적으로 퍼져나갔다."Hot Girls for Zohran." 흥미롭게도 이 캠페인은 람다니가 만든 게 아니었다. 브루클린에 사는 두 친구가 자발적으로 시작한 운동이었다. 2020년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던 #HotGirlsForBernie에서 영감을 받은 이들은 람다니의 정책에 감명을 받아 재미있는 캠페인 티셔츠를 만들어보자"는 단순한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람다니의 진짜 전략이 드러난다. 그는 이런 자발적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 최저임금 30달러, 시영 식료품점, 무료 대중교통 같은 급진적이지만 구체적인 정책들. 이는 뉴욕의 진보적 인플루언서들의 신념과 정확히 일치했다. 슈퍼모델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가 동참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2020년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던 진보 성향의 인플루언서였다. 280만 틱톡 팔로워를 보유한 그녀는 단순히 "지지한다"고 선언한 게 아니라, 직접 티셔츠를 입고 거리에 나섰다. 선거일 아침, 람다니와 함께 찍은 셀피 스타일 영상에서 "이번 선거는 젊은 유권자가 결정할 것"이라며 투표를 독려했다.가수 로드, 배우 신시아 닉슨, 감독 에이바 듀버네이, 배우 마크 러팔로... 이들 모두가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전화 캠페인에 참여했다. 심지어 배우겸감독 소피아 코폴라(프란시스코폴라의 딸)가 람다니에게 투표하는 영상까지 나왔다.결과는 어땟을까? 1만 8000명 이상의 팔로워, 5만 명의 자원봉사자, 150만 개의 현관문을 두드린 캔버싱. 이는 '동원'이 아닌 '참여'였고, '지지자'가 아닌 '공동창작자'였다.하이퍼로컬 전략: 10개 언어로 말하는 후보브루클린 선셋파크에선 중국어로, 퀸스 잭슨하이츠에선 벵골어로, 브롱스에선 스페인어로. 람다니 캠프는 10개 이상의 언어로 유권자와 소통했다. 단순 번역이 아니었다. 각 커뮤니티의 문화적 맥락에 맞춰 메시지를 재창조했다. 특히 주목할 건 그가 직접 힌디어로 순위선택투표제를 설명하는 영상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남아시아 팝컬처 레퍼런스까지 곁들인 이 영상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문화적 유대감을 형성했다.벵골계 청년들은 세대 간 타운홀 미팅을 열어 복잡한 정책을 쉽게 설명했다. 장애인 권익 단체는 수어로 캠페인 영상을 제작했다. 'Deafies for Zohran'(조란을 돕는 청각장애자들) 같은 그룹들은 각자의 커뮤니티에서 자율적으로 활동했다.기성 정치인들의 '표 계산용' 다문화 행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람다니는 각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어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방식으로 소통했다. 브롱스 킹스브리지에서 2% 열세가 14% 우세로 뒤집힌 비결이다.선거자금이 800만 달러 상한선에 도달하자 람다니는 "더 이상 기부하지 마세요. 대신 자원봉사를 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정치 컨설턴트들은 경악했다. 하지만 이 한 마디가 그의 브랜드를 완성했다. 쿠오모가 슈퍼팩 자금 5500만 달러를 쏟아부을 때, 람다니는 소액 기부로 모은 800만 달러로 승부했다. 투명하고 솔직한 소통은 그 자체로 강력한 메시지가 됐다.더 놀라운 건 그가 자신을 '미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GQ와 인터뷰 매거진 화보를 찍으면서도 "실패한 래퍼"라는 과거를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불완전함이 그를 더 '진짜'로 만들었다.정치를 넘어, 브랜딩의 미래를 보다람다니 현상이 브랜드 마케터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첫째, 인플루언서를 '활용'하려 하지 말고 그들이 '참여'하고 싶은 운동을 만들어라. 둘째, 완벽한 이미지보다 불완전하지만 진짜인 스토리가 강하다. 셋째, 플랫폼의 언어를 구사하되 본질을 잃지 마라. 넷째, 타깃을 관객이 아닌 공동창작자로 대하라.무엇보다 람다니는 '참여의 아키텍처'를 구축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브랜드를 '소비'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함께 만들기'를 원한다. 이것이 알고리즘 시대, MZ세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브랜드 문법이다.'West Village Girl'(뉴욕웨스트빌리지의럭셔리한 삶을 영위하는 젊은 여성) 현상이 보여주듯, 오늘날 젊은이들은 미니 크루아상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선다. 단순히 제품을 사는 게 아니라 그 경험을 공유하고, 소속감을 느끼며,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람다니는 이런 문화적 코드를 정치에 접목시켰다.100년 만의 최연소 뉴욕시장. 그의 당선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다.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방식, 메시지가 전파되는 경로, 팬덤이 형성되는 과정의 패러다임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2026년 한국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람다니 현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수막과 명함, 악수와 인사가 전부였던 선거판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미 일부 젊은 정치인들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새로운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하지만 중요한 건 단순히 '젊은 플랫폼'을 쓰는 게 아니다. 람다니가 보여준 것처럼, 시민을 동원의 대상이 아닌 참여의 주체로, 유권자를 관객이 아닌 공동창작자로 보는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한국에도 '한국의 람다니'가 나타날까? 구태의연한 정치 문법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세대의 언어로 소통하며, 진정성 있는 비전으로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인 말이다. 2025년 11월 4일은 정치가 브랜딩을 만난 날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묻게 될 것이다. "당신의 브랜드는 람다니 이전입니까, 이후입니까?"

2025.11.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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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전자정부’의 화재, 기술보다 시스템이 타버렸다 [이근면의 시사라떼]

전문가 칼럼

AI의 시대. 화제가 만발이다. 세계 AI 3대 강국. AI 중심국가. 거기에다 엔비디아가 GPU 20만 장을 한국민에게 선물한다는 빅뉴스까지. 젠슨 황, 이재용, 정의선의 깐부 회동이 뒷이야기를 퍼나른다. 이야! 멋진 AI의 나라이다. 그런데 ‘세계 최고의 전자정부’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졌다. 국가 주요 시스템이 화재로 전면 중단되고 백업 데이터조차 확보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근간이 무너진 사건이다. 한때 디지털 선진국이라 자부했던 대한민국이 왜 이런 기본적 실패를 반복하는가.국가 정부 운영 시스템과 데이터 관리는 AI 시대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한 것이 근본 원인이다. 세계와 민간 기업은 이미 글로벌 AI 전쟁 시대에 돌입했는데 국민의 자산과 미래는 방치된 것이다. 사건의 본질은 기술보다 운영 시스템의 구조적 부실에 있다. IT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지만, 정부 시스템은 전략적 영속성이 부재한다. 책임은 분산되고 전문성은 사라진다. 시스템은 남아 있지만 ‘이해하는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 정권 따라 바뀌는 담당자…전문성 부재가 불러온 참사결국 정권에 따라서 바뀌는 것은 물론 정책도, 책임자도, 관리자도, 담당자도, 실제 오퍼레이션 하는 민간 기업도 2~3년 주기로 바뀐다. (정부 조달 정책?) 모두가 현재만이 존재한다. 과거 히스토리도, 미래 전략적 꿈도 없는 조직과 기관이 되어 버렸다. 별일 다 하고 크기도 엄청난 행정안전부의 1개 부서가 맡을 일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있다’와 ‘된다’를 혼동하는 관행이다. 백업이 있다고 해서 복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주기적 점검, 무결성 검증, 복구 리허설이 없다면 백업은 그저 종이 위의 문서일 뿐이다. 이번 사태는 서류상으론 완벽했던 시스템이 실제로는 복구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이제는 공공 IT를 행정 편제의 일부가 아니라 국가 안보 인프라로 인식해야 한다. 세금, 행정, 국정 데이터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행정 공백이 아니라 국가 기능의 정지다. 대응의 핵심은 ‘누가 맡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닌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다. 지금의 순환보직 체계로는 AI 시대의 복잡한 기술 환경에 대응할 수 없다. 반대로 모든 것을 민간에 위탁하는 것도 위험하다. 정부의 설계권이 사라지고 특정 업체에 종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공무원 특수전문직화’와 민간 전문역량의 상시 결합’이다. 정부 인력 운영 체계의 전근대성이 ‘사고의 재발과 비전문가 집단’의 상시 시한폭탄의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데이터 아키텍처, 복구 전략, 보안 기준 등 ‘설계와 책임’을 쥐고, 민간은 기술과 운영을 맡는 구조다. 이를 위해 정부 내에 장기근속이 가능한 디지털 전문직 트랙을 신설해야 한다. 명예직 공무원이 아닌 SRE(Site Reliability Engineer), 보안 아키텍트, 백업 엔지니어 같은 기술 실무 중심의 직군을 제도화해야 한다. 군조차도 각기 세부화된 병과와 직종이 기본이다. 정부 내에는 ‘국가디지털·레질리언스본부(가칭)’를 만들어야 한다. 이 본부는 각 부처의 IT 업무와 재난·화재·랜섬웨어 등 모든 복구 시나리오를 통합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단순한 정보관리원이 아니라 복구와 지속성의 책임기관이어야 한다. 민간 IT 전문 회사의 기능과 역량을 따라갈 수준의 국가 CIO와 그 전략 운영 기관의 전문성이 국가 생존 전략이다. 기술적으로는 ‘3-2-1-1-0’ 원칙을 의무화해야 한다. 조선의 5대사고, 삼성의 멀티 데이터 센터의 운영은 왜 있었을까? 데이터를 세 개 이상 복제하고 두 가지 매체에 저장하며, 한 곳은 오프사이트(외부), 또 다른 한 곳은 오프라인·불변(immutable) 형태로 보관해 무결성을 보장해야 한다. 여기에 백업의 오류가 0이라는 뜻의 ‘제로 에러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 이런 체계는 관리의 문화와 예산의 철학이 바뀌어야 가능하다. 장비를 사는 데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훈련과 점검, 복구 시뮬레이션에 예산을 써야 한다. 책임 없는 행정이 신뢰 무너뜨려 법적 장치도 필요하다. 총체적 AI 중심 국가를 가능하게 할 기반 구조의 철저화가 병행 되어야 한다. ‘공공디지털인프라 안정·복구법(가칭)’을 제정해 RPO(복구시점목표)와 RTO(복구시간목표)를 법으로 명시하고 모든 공공시스템이 매년 복구 리허설을 실시하도록 해야 한다. 검사기관은 문서상 점검이 아니라 실제 복구 시연을 통해 점검해야 한다. 민간 기업에도 이런 기준을 적용해야 국가 전체의 사이버 레질리언스가 올라간다. 통신회사들의 개인정보 누출 사고와 해킹 피해에 대해 은폐 의혹이 끊이지 않는 사례는 요즘 다반사다. 궁극적으로는 ‘블레임리스(무탓) 사고분석 문화’가 필요하다. 실패를 숨기거나 덮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인 포스트모템을 통해 원인과 개선책을 공유해야 한다. 투명한 보고와 학습이야말로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이번 사고는 ‘최신 기술’의 실패가 아닌 낡은 제도와 책임 없는 행정 구조의 실패다. 시대와 기술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던 정치와 행정의 ‘합작 사고’이다. 우주를 나는 시대에 기술을 보는 눈은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화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복구 중이다. 이 초AI시대에 넌센스의 한 장면이다. 디지털정부는 장비가 아니라 사람과 조직이 만든다. 국가가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선진국으로 남고자 한다면 정권 차원까지를 넘어서고 순환보직을 넘어서는 ‘특별한 인력 운영 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세계 1위 전자정부의 명성은 한 번의 화재로 무너졌지만 진짜 위기는 복구가 아니라 변화에 대한 의지의 부재다. 이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과 제도를 백업해야 할 때다. 부국강병보다 내 편의 이익이 먼저인 듯한 정치의 어두운 그림자는 걷어내고 모든 국민이 양지를 찾아낼 지혜가 절박하다. 그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다시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국가’로 일어설 수 있다.

2025.11.1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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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은 왜 명품이라 불리는가 [이윤정의 언베일]

전문가 칼럼

“럭셔리 브랜드의 인기와 명성이 예전만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었다. 럭셔리 브랜드와 일반적인 브랜드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고액 자산가를 제외하고는 경기 침체 등으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중시하는 소비 패턴이 강해지고, 정보를 다량 보유한 소비자의 안목이 높아진 점도 한 몫을 한다. 흔히 럭셔리 브랜드를 ‘명품’(名品)이라고 부르지만, 모든 럭셔리 브랜드가 명품의 자질을 갖춘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 수입된 고가의 제품을 통칭하는 용어가 필요하다면 럭셔리 브랜드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럭셔리 브랜드’와 ‘명품’의 차이 대다수 럭셔리 브랜드는 가격이 높은 편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탁월한 ‘품질’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 이상 지속된 ‘디자인’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장인 정신’ ▲역사와 유산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등을 포함해 브랜드의 신뢰도와 이미지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높은 가격은 긴 세월 동안 쌓아온 브랜드의 명성에 품질이 더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럭셔리 제품 중에서도 명품의 자격은 무엇일까.앞서 언급한 조건에 ‘희소성’을 추가하고 싶다.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 중에는 처음부터 아예 하나 밖에 만들지 않는 제품도 있다. 요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하이 주얼리’가 대표적이다. 하이 주얼리는 원석이 주인공인 만큼 태생부터 여러 버전을 만들기 어렵다. 진귀한 원석을 찾으면 그에 맞춰 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매년 나오는 하이 주얼리 컬렉션의 모든 제품은 한 점씩만 제작된다. 샤넬이나 디올 등 패션 브랜드에서 간헐적으로 선보이는 ‘오트 쿠튀르’(최상급의 맞춤 의상)도 마찬가지다. 제작 과정이 거의 사람의 손으로 이뤄지며, 한 디자인에 한 벌 정도만 만든다. 각 브랜드가 소개하는 ‘리미티드 에디션’은 희귀함을 추구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정체성이 잘 나타난 결과다. 유명세를 얻어 잘 팔리던 제품이 어느 순간 희소성을 잃게 돼 인기가 떨어지는 점도 럭셔리 브랜드의 속성을 잘 나타낸다. 시계 이상의 예술품 '라 꿰뜨 뒤 떵'또 하나의 요소를 추가한다면 ‘예술성’을 꼽고 싶다. 예술성은 특정 기준으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예술 작품처럼 만들어진 상품을 만나면 명품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상에서도 사용 가능하지만, 브랜드가 보유한 창작성을 마음껏 표현하는 데 방점을 찍은 제품이다.최근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tin)과 루브르 박물관의 파트너십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시가 개최됐다. 지난 12일까지 열린 ‘기계의 예술’(Mecaniques d’Art)이다. 이 전시에 소개된 ‘라 꿰뜨 뒤 떵’(La Quete du Temps·시간의 탐구)은 감히 예술품이라 부를 만하다. 수백 년을 이어온 스위스 시계 제작 노하우와 공예 기법이 조화를 이룬 시계에 사람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구현한 기계 장치인 ‘오토마통’(automaton)을 결합했다. 시계는 ▲상단의 돔 안에 자리한 오토마통 ▲중간의 시계 부분 ▲하단의 음악 장치 등으로 구성됐다. 무려 7년 간의 개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시계는 6293개의 기계식 부품(시계를 위한 2370개 포함)과 외관을 위한 1020개의 부품 등이 결합한 작품이다. ▲오토마통이 구현하는 144개의 움직임 ▲오토마통에 내장된 158개의 캠 ▲8개의 오토마통 관련 특허 출원 등 마치 ‘신기록 제조기’ 같은 스펙도 갖췄다. 압도적인 규모와 존재감을 자랑하는 ‘라 꿰뜨 뒤 떵’은 높이 1m가 넘는 작품으로 시계를 넘어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경이로운 창작물에 가깝다. ‘손의 힘’ 가치 전한 보테가 베네타전(展)럭셔리 브랜드에서 ‘사람의 손 맛’은 필수적이다. 올해 여름 서울에서 전시를 연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의 ‘세계를 엮다: 인트레치아토의 언어’ 전시는 다시 한 번 손의 힘을 느끼게 해줬다. 보테가 베네타의 인트레치아토 탄생 50주년을 기념한 전시에서는 ‘엮임’이라는 주제로 한국 작가와의 협업 작품을 선보였다. ‘브릭 아 브락’(Bric a Brac) 시리즈 중 다섯 가지 디자인의 창작품도 전시했다. 브릭 아 브락은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 지역의 보테가 베네타 아틀리에에서 사용하고 남은 가죽 조각을 엮어 완성한 특별한 창작물이다. 각 크리에이션은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인트레치아토’(얇은 스트랩 모양의 가죽을 패널이나 나무 몰드를 따라 손으로 정교하게 엮어 완성하는 기법)로 완성됐다. 다양한 형태와 움직임을 보여주며 진화된 수공예의 표현력을 증명한다. 마치 뜨개질을 하듯 가죽을 자유자재로 엮어 표현한 5개의 작품은 단순한 핸드백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장인이 수십 시간, 혹은 수백 시간을 들여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손으로 제작한 하이엔드 시계와 하이 주얼리도 명품이라 부를 수 있다. 제품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정성과 시간은 대중적인 브랜드에서는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명품은 ▲고유의 디자인 ▲품질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변화 등을 장착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나열한 몇 가지 요소를 갖춘 제품이나 브랜드를 만났을 때 럭셔리 브랜드는 과시의 대상이 아닌 잘 만들어진 아름다운 작품을 소유하는 기쁨을 제공한다.

2025.11.15 09:30

4분 소요
'너도나도 출렁다리' 만들기…행정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나 [스페셜리스트 뷰]

전문가 칼럼

많은 시민들은 정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이하 국가)이 사회 전체의 부를 지키고 늘려주며, 나의 안전과 이익을 지켜주리라는 막연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국가가 이러한 믿음에 반하는 정책을 종종 취해왔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공공 목적의 사업을 한다며 시민의 사유재산인 토지를 강제수용하는 등의 사례들 처럼 말이다. 그로 인해 피해를 입어온 시민들이 있다는 사실 또한 막연히 느끼고 있으며, 그 대상이 자신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는 한다.추상적인 존재로서의 국가가 사회와 시민 개개인을 지킨다는 것은, 그 사회를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대전제다. 하지만 특히 한국이라는 국가는 주변의 적국들로부터 국가의 존속을 지킨다는 존재 목적을 우선시했으며, 시민 개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지키는 것은 제1순위 목적이 아니었다. 심지어 국가의 존속을 지킨다는 목적으로 시민 개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목숨까지 빼앗는 일도 숱하게 일어났다. 1980년 5월 18일에 광주에서 있었던 국가 폭력은 그 중 가장 심각한 사례로 꼽힌다.나아가, 국가 또한 개개인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집합체이다 보니, 국가를 구성하는 조직원 개개인의 판단과 이해관계를 우선시해 조직 바깥에 존재하는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도 일어났다. 특정 공무원들이 자신의 임기 중 실적을 올리기 위해 시민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순환배치돼 다른 보직으로 간 뒤에는 모른 척 하는 경우를,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을 상대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터다.이처럼 국가에 의해 사회와 시민 개개인이 피해를 입는 구조가 100여 년간 이어지다 보니, 시민들은 국가가 추진하는 사업에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이다. 이로 인해 국가가 선의의 목적으로 추진하는 사업까지도 시민들의 반대 때문에 추진되지 못해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가 피해를 입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국가나 언론에서는 시민들의 이러한 행동을 ‘민원’이라 부르며 비판한다. 하지만 지난 100여 년간 한국에서 일어난 상황을 돌이켜보건대, 이 악순환의 시작은 시민이 아닌 국가(조선왕조·조선총독부·한국정부)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이 글에서는 국가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피해를 입은 경우를 ‘행정 실패’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리고 과거의 몇몇 행정 실패 사례를 되짚어봄으로써, 앞으로 행정 실패를 줄일 수 있는 힌트를 독자분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시민 이주’는 가장 최악의 행정 실패다가장 심각한 행정 실패 사례는,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나 택지 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에 걸쳐 시민들을 이주시키는 경우다.극단적인 경우로는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의 시민들이 겪은 세 번의 강제 이주를 들 수 있다. 이들은 1942년에 일본군이 비행장을 건설할 때 한 번, 1952년 미군이 이곳에 주둔할 때 두 번째, 그리고 한국 내의 미군 재배치 사업이 이루어진 2006년에 세 번째로 강제이주를 당했다.이 경우는 일본 제국주의와 미국 정부, 그리고 한국 정부까지 얽혀 수 십년에 걸쳐 시민들이 피해를 입은 극단적인 사례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만 책임을 돌리기는 막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음에 소개하는 두 가지 사례는 충분히 예측가능한 행정을 펼칠 수 있었던 경우다.2023년, 대규모 삼성전자 공단이 있는 평택의 남쪽 지역인 지제동에 미니신도시를 개발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신도시 개발을 위해서는 기존에 살던 주민들을 이주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이들 주민 가운데는 앞서 소개한 미군 기지 재배치 사업과 관련해 2004년부터 시작된 고덕신도시 조성 사업 때 토지를 수용당해 이곳에 옮겨와 살게 된 경우가 있었다.아직 고덕신도시도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니만큼, 정부는 이렇게 두 번의 이주를 강제당하는 시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섬세한 행정을 취할 수도 있었다. 1970년대 초 울산에 고리 원자력발전소가 지어질 때, 사업 대상지역 주민들은 이웃 마을로 이주했다. 그런데 2001년에 신고리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기로 정해지면서, 그 마을이 또 다시 사업 대상 부지로 정해졌다. 정부가 원전 건설을 진행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처음부터 원전 건설 부지를 넓게 설정했다면 이렇게 시민들이 두 번 이주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평택 고덕·지제 신도시나 고리·신고리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례는 명백한 한국 정부의 행정 실패 사례다.두 번째로 살펴볼 행정 실패 사례는, 정치·행정 내부 논리로부터 비롯되는 낭비다. 특정 정치인·행정가가 사업을 추진했다가, 선거나 인사 발령을 통해 사람이 바뀌고 나면 앞선 사람이 추진했던 사업을 취소하는 경우다.전라남도 장성군에서는 민선 6~7기 군수가 지역의 색깔을 노란색으로 통일한다는 명목으로 공무원들에게 주택 색깔의 변경을 주장하다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인권 침해 판단을 받았다. 이후 지자체장이 바뀌면서 도시브랜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새로운 네이밍을 선정했다가 무산된 상황이다. 충청북도 증평군에서도 전임 군수가 내세웠던 ‘증가포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현재는 듣기 어렵다. 싱가포르 같은 강소도시가 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괜찮은 캐치프레이즈였어서 아쉬움이 든다.이화동 벽화를 주민들이 직접 지운 사연한편, 전임 지자체장이 특정 건물을 보존하기로 했다가 후임 지자체장이 이를 취소하고 철거하는 사례도 많다. 이 때는 안전진단 등급이 낮게 나왔다거나, 시민들이 주차장을 원한다는 논리가 단골로 등장한다. 강원도 원주시에서는 역사가 오래된 단관극장인 아카데미극장 건물의 보존을 전임 시장이 추진했으나, 신임 시장이 이 정책을 변경하면서 극장 건물이 철거됐다.또 서울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임 시장 시절 추진했던 종로구 창신동 재개발을 재추진하고 있다. 창신동은 도시재생사업의 모범사례로 거론되는 곳이다. 이곳은 한양성곽에 붙어있는 고지대여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어렵다 보니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세금이 많이 투입됐는데, 현재와 같이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면 결과적으로 그간 투입된 세금이 헛되이 쓰인 것이 된다. 세 번째 행정 실패는 현직 지자체장이나 공무원이 관광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자기가 관할하는 지역에 관광객이 더 많이 오게 만들겠다면서 다른 지자체의 성공사례를 베끼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그 지역만의 특성이 사라져버리고, 또 그곳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바람에 시민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대학로 근처, 한양성곽 옆에 자리한 이화동에 벽화마을이 조성됐다가 사라진 경우다. 당시 낙후된 지역에 벽화를 그리면 관광객이 찾아오고, 그러면 지역이 활성화된다는 논리에서 골목마다 천사 날개가 그려졌었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이 아닌 외지 자본이 가게를 열어서 이익을 얻고, 외지인들이 골목 구석구석까지 들어오는 바람에 지역 주민들은 사생활 침해까지 당했다. 그 결과 지역 주민들이 벽화를 지워버린 것이다.광주 양림동이나 부산 이송도마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돼 결국 원주민이 밀려나고 외지인이 지역을 점령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인천 배다리에서는 지자체가 지역 활성화를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하자, 외지 자본이 건물을 매입하고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는 바람에 기존 업체들이 위기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정부 구성원들이 무책임하게 행정을 추진한 바람에, 기존 시민들이 생존의 위협을 겪고 결국 밀려난 이런 사례들을 전국에서 쉽게 접한다.시민들, 지자체 행정 소식에 더 관심 기울여야최근에는 천사 날개 벽화에 이어 출렁다리가 전국 지자체에서 유행이다. 몇 년 전에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방문했을 때 수도권전철 3호선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양 옆 광고판에 지자체 두 곳의 출렁다리 홍보 광고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출렁다리는 전국에 한 두 곳 지어졌을 때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신기해하지, 이렇게 국내 전 지역에 대거 들어서면 더 이상 관광자원으로서 기능하지 못할 수 있다. 또 출렁다리를 만든다고 세금을 들인만큼의 관광 유발 효과가 일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강원도 원주의 간현관광지는 국내 최대 규모의 출렁다리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2023년 말 시점으로 누적 적자 7억원을 기록했다.특정 사업을 추진한 직후에는 반짝 효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그 사업을 추진한 관계자는 좋은 평가를 받아 선거에서 재선되거나 좋은 보직으로 옮겨가게 된다. 하지만 그 사업이 장기화되면서 반짝 효과가 끝나고 결과가 나쁘게 드러났을 때, 해당 관계자는 이미 그 자리에 없고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다. 또 전임자의 행정이 좋은 결과를 낳았을 경우에도, 후임자는 전임자의 사업을 이어받기보다는 이를 폐기하고 자신의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려는 경향이 있다.행정 실패를 막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자기 지역의 행정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장기적으로 그 결과를 추적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각자의 생업에 바쁜 시민들이 국가의 행정 실패를 추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낸 세금을 정부가 낭비하고 그 결과 내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좀 더 깨어있고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야 정부 구성원들이 시민을 무서워하고 시민의 눈치를 보며 행정을 펼치게 될 것이다.김시덕 도시문헌학자

2025.11.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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