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세계 10위권에 드는 경제 규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금융 산업의 글로벌 순위는 60위권에 머물러 있다. 글로벌 무대에서 뒤처진 금융사들은 이제 생존을 넘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금융사들은 ‘혁신’을 화두로 해외 진출, 신사업 발굴 등 다방면에서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韓 금융사 글로벌 순위 60위권 ‘굴욕’S&P Global Market Intelligence(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가 발표한 ‘2024년 세계 100대 은행’ 순위를 보면 중국·미국·영국의 은행들이 글로벌 은행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해당 순위에서 중국공상은행·중국농업은행·중국건설은행·중국은행 등 중국의 은행 4곳이 1~4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JP모건 체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 영국의 HSBC, 프랑스의 BNP파리바와 크레디 아그리콜, 일본의 미쓰비시 UFJ 파이낸셜 그룹 등 글로벌 대형 은행들이 그 뒤를 이었다.특히 중국 은행들이 글로벌 선두주자인 배경에는 거대한 내수 시장과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 있다. 세계 2위 경제 규모와 인구를 바탕으로 중국 은행들은 대규모 자산을 축적했다. 중국 정부 또한 은행을 산업 육성·인프라 투자 등 국가 성장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왔다. 최근에는 지방 중소 은행을 대형 국유은행에 합병하는 구조조정을 통해 자산 규모와 안정성을 더욱 강화했다. 여기에 정책을 통한 해외 진출 확대, 디지털 금융 혁신 등도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은행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미국과 영국 은행들은 강력한 금융 인프라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세계 100대 은행 순위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은행은 방대한 내수 시장과 투자은행, 자산운용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에서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적극적인 인수합병(M&A)과 디지털 혁신, 정부의 금융 정책 지원 등도 약진의 배경으로 꼽힌다. 영국의 은행은 런던이라는 세계적인 금융 허브를 중심으로 국제금융·외환·자산운용 등 전문화된 금융 서비스와 오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점으로 삼는다. 우리나라 주요 금융그룹 또한 글로벌 100대 은행 순위에는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으나, 상위권 진입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2024년 집계 기준 순위는 KB금융지주(65위), 신한금융지주(68위), 하나금융지주(76위), 우리금융지주(88위), 농협금융지주(86위), IBK기업은행(97위) 등 6개 주요 금융그룹이 10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국내 은행 산업은 단기 실적 위주의 경영전략, 포화된 국내 시장에서 유사한 사업모델로 과열 경쟁을 벌여온 점이 한계로 꼽힌다. 특히 국내 은행들은 이자이익과 같은 전통적 수익원에 의존해, 비이자이익이나 해외사업 등 다각화가 미흡한 편이다.
해외 영토 확장 ‘필수적’…“당국 적극 지원 필요”우리나라 금융사가 이자장사에 치중한다는 오명을 벗으려면, 글로벌 영토를 확장하고 사업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진출은 해외점포가 2010년 333개에서 2022년 488개로 150개 이상 늘어나는 등 아시아지역을 중심으로 양적 성장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현지에서의 국내 금융회사 간 경쟁 심화, 은행 중심의 불균형적 진출 지속, 대형화 및 현지화 미흡에 따른 현지 인지도 및 경쟁력의 한계 등에 여전히 노출돼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부원장은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진출: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이와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고 현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존의 독자적 진출 방식에서 탈피해 은행과 비은행이 협력해 전략적 투자자로서 현지 대형 금융회사의 지분을 공동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특히 박 부원장은 “은행의 경우 현지 대형은행의 지분인수를 통한 해외진출은 현지 경쟁력 강화의 기회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배당금 확보, 자문수수료 취득 등을 통한 비이자이익 창출의 기회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분인수 방식의 해외진출은 출구전략 리스크, 투자부실화 리스크, 규제 리스크 등이 상존하기 때문에 현지 금융당국과의 협력 강화 등을 통한 국내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혁신금융서비스 지정 증가…경쟁력 확보 발판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당국도 노력 중이다. 대표적으로 당국은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통해 금융사들의 비이자이익 확대와 새로운 분야로 진출을 지원한다.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은 은행들이 기존의 경직된 사업구조와 내수 의존, 혁신성 부족 등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 미래 성장동력 발굴과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데 일조한다. 대표적으로 마이데이터 도입은 개인이 자신의 금융데이터를 통합해 관리·활용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로, 데이터 기반 맞춤형 금융상품 개발과 금융산업의 디지털 전환에 큰 역할을 했다. 해외 주식 소수점 투자 서비스 또한 혁신금융의 사례다. 해외 주식을 소수점 단위로 투자할 수 있게 해 국내 투자문화의 저변을 확대했다. 최근 들어서는 생성형 AI 기반 금융 서비스가 혁신금융으로 지정되며, 생성형 AI를 활용한 투자자문·대화형 상담·초개인화 대출관리 등 다양한 서비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혁신금융서비스 신청과 지정 건수도 날로 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24년 한 해 동안 436건의 혁신금융서비스 신청서를 접수해 이 중 207건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했다. 2023년에는 신청 건수 57건, 지정 건수 56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대폭 늘었다. 이동근 삼정KPMG 전무는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한 AI 금융 서비스 출시가 활발해지고, 제4인터넷전문은행 출범과 마이데이터 2.0 도입 등으로 디지털 금융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만큼, 기업들의 금융서비스 경쟁력 제고가 어느때 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