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기조가 본격화하면서 시중은행 예·적금 시장에서 대규모 자금 이탈이 발생하고 있다. 반면 저축은행은 공격적 금리 인상으로 오히려 예금을 끌어모으며 ‘역주행’ 현상을 빚고 있다.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정기예금 잔액은 184조4944억원으로, 2월(187조6001억원) 대비 1.68% 감소했다. 감소액은 총 3조7102억원 규모였으나, 우리은행에서만 8조1329억원, 하나은행 3조5536억원, 국민은행 2조3498억원, 신한은행 7865억원, 농협은행 7054억원이 이탈하며 전체 이탈액을 상회하는 결과를 보였다.지난 2월에는 ‘금리 인하 막차’ 심리로 3조1441억원이 더 유입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3월 들어 시장금리가 빠르게 떨어지며 잔액은 3조1102억원으로 떨어졌다. 예금금리가 정체된 가운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최근 2%대를 기록하면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수익률이 저하되면서 예금 상품의 투자 매력은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명목금리가 유지되더라도 물가 상승이 계속되면 실질 수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저축 대신 다른 투자처를 찾는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기예금 시장 ‘출구 찾기’ 분주시중은행들은 기준금리 인하 여파로 잇따라 예·적금 금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은행은 ‘우리 첫 거래우대 정기예금’ 1년 만기 금리를 연 2.00%에서 1.80%로 0.20%포인트 인하하고, 장기 구간(24~36개월 이상) 금리도 연 1.80%에서 1.60%로 낮췄다. 첫 거래 고객에게는 별도 우대금리(1.0%포인트)가 제공된다.하나은행은 ‘하나의 정기예금’ 등 6종 정기예금과 ‘급여하나 월 복리 적금’ 등 8종 적립식예금의 기본금리를 구간별로 0.10~0.30%포인트 인하했다. 예를 들어 12개월·24개월·36개월 이상 구간 금리는 연 2.40%에서 2.20%로 떨어졌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현재 연 2.15~2.65% 수준으로, 조만간 1%대 초중반 진입이 불가피하다.반면 저축은행권은 대조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업계 1위 SBI저축은행은 지난 4월 22일 정기예금 금리를 연 2.80%에서 3.00%로 0.20%포인트 올렸고, 조은저축은행은 2.80%에서 3.20%로 0.40%포인트나 인상했다. 이들 저축은행의 수신 잔액은 2월 말 기준 100조5769억원으로 4개월 연속 감소했으나, 고금리 전략을 통해 시중은행과 금리를 역전시키며 예금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대형은행의 금리 인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보니 예·적금 수요가 저축은행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가 금리 인하 전망…시중 은행 내리고, 저축은행 올리고대출 금리는 비교적 더디게 인하되며 예대금리차가 확대되고 있다. 5대 은행의 신규 가계대출 기준 예대금리차는 지난달 평균 1.472%포인트로, 8개월 연속 확대됐다. 은행권 이익을 견인해 온 순이자마진(NIM)은 당분간 견고할 것으로 보이나, 금리 역전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시장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한국은행의 추가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면서 시중은행의 예·적금 금리는 당분간 추가 하락 압력을 받을 전망이다. 반면 저축은행권은 고금리 경쟁을 통해 대조적으로 예·적금 금리를 올리고 있어 예·적금 금리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5월 5일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차 방문한 밀라노 현지에서 “기준금리 내리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말라”고 언급하며 추가 인하 의지를 분명히 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가계대출 증가세에도 물가 안정과 경기 둔화 우려를 감안할 때 이번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를 두고 있다.금통위 인하가 현실화되면, 시중은행의 대표 예·적금 금리는 머지않아 1%대 중·후반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저축은행 업권은 최근 정기예금 금리를 3% 안팎으로 높여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어, 은행·저축은행 간 금리 격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추가 금리 인하 국면에서 예·적금 이용자는 은행별 금리를 꼼꼼히 비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전문가들은 금융시장 변동성이 큰 시기인 만큼, 예·적금뿐 아니라 투자 포트폴리오 전반을 점검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실제 미·중 관세 협상 진전, 원화 강세 등 대외 호재로 증시 투자 심리가 살아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코스피가 올 상반기 중 2400선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며, 주식·펀드·리츠 등 대체 투자처로 자금 이동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금융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금리를 비교·분석해 예·적금 상품을 선택한다”며 “주식·채권·펀드·대체투자 등 다양한 자산을 고려한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 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적금만으로는 실질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국면”이라며 “고액 자산가는 물론 일반 투자자도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