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공격 시작하겠습니다.” 짧은 한마디였다. 위협적으로 들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차량은 완전히 먹통이 됐다. 단 1초 만이다. 천천히 움직이던 차는 공격 시작과 동시에 강하게 멈춰 섰다. 서행 중이었음에도 몸이 앞으로 튕겨 나갈 정도의 충격이었다. 이 정도에서 끝났다면 다행이다.잠시 뒤, 차량의 디스플레이가 이유 없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화면에는 ‘엔진후드 열림’이라는 경고 메시지가 떴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기자는 동석한 연구원에게 물었다. “앞에 보니까 엔진후드는 닫혀 있는데, 왜 열려 있다는 경고가 뜨는 거죠?”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해킹당했기 때문입니다.”실제 차량 해킹을 경험해보니, 별다른 고장이 없어도 해커가 원하면 디스플레이에는 전혀 상관없는 경고 문구를 띄울 수 있었다. 차량의 상태와 관계없이 운전자에게 가짜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다음 장면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차량이 노트북 하나로 조종됐다. 왼쪽으로 스티어링휠을 돌리고 싶으면 노트북 좌측 키패드를, 오른쪽으로 돌리려면 우측 키패드를 눌렀다. 전진하고 싶으면 전진 키를, 후진하려면 아래쪽 키를 누르면 됐다. 말 그대로 차량이 해커의 손끝에 따라 제멋대로 움직였다.이 모든 일이 고속 주행 중 벌어졌다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물론 해킹은 스마트폰, PC, 홈캠, 스마트TV 등 다양한 전자기기에서도 일어난다. 하지만 이들 기기의 해킹은 대개 인명 피해와는 거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반면 차량 해킹은 다르다. 운전자와 탑승자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번 체험은 그 위험성을 피부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해킹 방파제 ‘아우토크립트’기자가 체험한 이 해킹 시나리오는 아우토크립트가 직접 설계하고 차량에 적용해 실험하는 일종의 ‘공격 기반(Offensive)’ 보안 테스트베드에서 이뤄졌다. 자사 내부에 구축된 이 시스템은 실제 주행 중인 상태에서 해킹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연구진은 이 공간에 마련된 차량들이 해킹 시연에 최적화된 조건으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 기자가 경험한 해킹 사례 역시 현재는 방어 체계가 이미 구축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이 정도 수준의 해킹이 실제 도로에서 발생할 가능성은 현시점에서는 낮다는 의미다.연구실 한 켠에서 ‘해킹’을 연구하는 아우토크립트는 자동차 사이버보안에 특화된 국내 유일의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이들이 다루는 영역은 단순히 차량의 보안 경고 시스템에 머물지 않는다. 차량 내부의 전자제어장치(ECU)에서부터 도로 인프라, 클라우드까지 연결된 모든 경로를 보호한다. 즉, 차량의 ‘심장’과 ‘신경계’, 그리고 외부와 연결되는 ‘신호선’ 전체를 방어하는 보안망을 설계하고 구축하는 회사다.실제로 아우토크립트의 보안 솔루션은 IVI(In-Vehicle Infotainment),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 TCU(Telematics Control Unit) 같은 차량 핵심 제어기뿐 아니라, 전기차의 배터리관리시스템(BMS)과 자율주행 시스템까지 폭넓게 적용된다. OTA(Over-the-Air)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된 이 기술은 차량을 움직이는 거의 모든 영역에 보안을 입힌다.이토록 방대한 보안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해킹의 위험이 높은 부품이 많기 때문이다. 아우토크립트에 따르면, 오늘날 자동차 한 대에는 수십, 많게는 150개가 넘는 전자제어장치(ECU)가 탑재된다. 이 가운데 해커의 주요 표적이 되는 부품들은 대부분 외부와 연결된 기능을 갖고 있다. OTA, 차량 간 통신(V2X), 모바일 앱 연동 같은 기능들이 대표적이다.주요 해킹 위험 부품으로는 내비게이션과 오디오 시스템이 통합된 IVI, 차량과 클라우드 서버를 연결하는 TCU, 주행보조 시스템을 담당하는 ADAS ECU, 차량 외부 통신을 총괄하는 CCU(통신제어기), 배터리를 제어하는 BMS(배터리관리시스템) 등이 있다. 여기에 창문이나 도어락, 조명을 통합 제어하는 BDC(Body Domain Controller), 차량의 UI 중심인 HU(Head Unit), 전후방 시야를 담당하는 내장형 카메라(BLTN Cam)도 해킹 가능성이 높은 부품으로 분류된다. 이 외에도 계기판, 조향장치, 제동 시스템, 도어락 등 주요 장치들 역시 연결성과 기능의 고도화로 인해 보안 위협에 노출돼 있기에, 전방위적인 보안 설계가 요구된다.
글로벌 TOP 3의 위엄아우토크립트는 현재까지 171개 국내 고객사와 17개 글로벌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다. 이들이 참여한 프로젝트는 500건이 넘는다. 향후 이들의 보안 솔루션이 탑재될 차량은 6000만대 이상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는 현대차와 기아를 비롯해 주요 완성차 업체 대부분과 협력하고 있으며, 독일·사우디아라비아·미국·일본 등지에 지사를 설립해 글로벌 전장 플랫폼 기업들과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시장조사기관 프로스트앤설리번은 아우토크립트를 ‘글로벌 Top 3 자동차 사이버보안 혁신 기업’으로 선정했다. 이 회사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유일하게 국제 사이버보안 인증(TS, Technical Service)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차량 보안 관련 국제 인증 심사를 직접 수행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뜻하며, 아우토크립트의 기술력과 신뢰도를 상징한다.이 회사의 가장 큰 차별점은 ‘실전형 보안 개발’을 고수한다는 점이다. 내부에는 실제 자동차 해킹 대회를 제패한 화이트해커 출신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직접 해킹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그에 맞춰 방어 체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보안 기술을 개발한다. 2023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해킹 대회 DEFCON의 ‘Car Hacking Village’에서 상위권에 입상한 팀이 바로 아우토크립트 소속이다.김덕수 아우토크립트 최고운영책임자(COO) 사장은 "차량들이 점차 커넥티드카, 전기차, 자율주행차로 전환되면서 소프트웨어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며 "이와 함께 가장 우려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안전’"이라고 말했다.이어 “자동차에는 외부와 연결되는 채널이 최소 14개나 존재한다. 와이파이, 블루투스는 물론이고 수많은 센서, 교통 시스템, 통신망이 얽혀 있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보안이 허술하면, 해킹을 통해 차량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끝으로 그는 “자동차의 제어 기능이 소프트웨어로 구현되면서, 해킹 저항력이 있는 ‘보안 제어기’가 핵심이 됐다. 저희 아우토크립트는 바로 이 제어기에 암호화 기술을 탑재해, 안전한 차량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