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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마시는 우유, 소비자는 가격보다 ‘신선도’ 먼저 본다

전문가 칼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서 우유 구매 시 신선도 확인 비율 높게 나타나-생산부터 유통까지 냉장 관리 중요성 부각 우유를 구매할 때 소비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확인하는 기준으로 ‘신선도’가 꼽히고 있다.우유는 아침 식탁이나 간식, 식재료 등으로 일상에서 자주 소비되는 대표 식품이다. 매일 마시는 식품인 만큼 특별한 기능성보다 생산 이후 얼마나 신선한 상태로 관리되고 소비자에게 전달되는지가 중요한 품질 기준으로 여겨진다.우유는 생산 시점부터 시간과 온도 관리가 중요한 신선식품이다. 착유된 원유는 냉각 과정을 거친 뒤 살균, 포장, 유통 단계까지 냉장 상태에서 관리된다. 생산부터 소비까지 이어지는 콜드체인 체계는 우유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 요소로 꼽힌다.우유는 장기간 보관을 전제로 하는 저장식품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향, 신선도가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보관 기간뿐 아니라 신선한 상태에서 소비되는 과정도 중요하다.소비자 조사에서도 이 같은 인식이 확인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5 식품소비행태조사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우유 구입 시 가장 먼저 확인하는 정보로 신선도를 꼽은 응답은 29.9%로 가격 17.9%보다 높게 나타났다. 1·2순위 응답을 합산한 기준에서도 신선도는 30.7%로 가격 15.9%를 웃돌았다.국산 우유는 국내에서 생산된 원유를 냉장 유통 체계를 통해 가공·공급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국내 낙농가에서 생산된 원유가 냉장 상태로 관리돼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방식은 신선도를 중시하는 소비 흐름과 맞닿아 있다.상온 보관 제품은 보관 편의성과 장기 보관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반면 냉장 유통 우유는 생산 이후 온도 관리와 유통 과정의 신선도 유지가 중요한 소비 방식으로 구분된다.업계에서는 우유의 품질을 판단할 때 영양성분뿐 아니라 생산 이후 유통 과정의 온도 관리, 신선도 유지, 규칙적인 섭취 습관 등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우유 소비에서 신선도는 단순한 선택 기준을 넘어 제품의 품질을 판단하는 주요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매일 신선한 상태의 우유를 선택하고 소비하는 습관과 이를 뒷받침하는 냉장 유통 체계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2026.05.26 11:38

2분 소요
AI 시대, 리더십 판 바뀐다…살아남는 조직의 조건 [스페셜리스트뷰]

전문가 칼럼

6600만년 전,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은 압도적인 힘에도 불구하고 멸종했다. 그들은 약해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거대한 소행성 충돌 이후 급변한 환경에 스스로를 맞게 전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업 생태계에 떨어진 또 하나의 거대한 소행성은 바로 인공지능(AI)이다. AI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산업 구조 ▲조직 문화 ▲리더십 방식 자체를 재편하고 있다. 이 거대한 충격 앞에서 어떤 조직은 쇠퇴할 것이고, 어떤 조직은 새로운 종처럼 진화할 것이다. 그 차이는 결국 단 하나, ‘전환 가능성’(Convertibility)에 달려 있다.지난 4월, 필자는 이찬 서울대 교수와 함께 중국 마카오에서 열린 ‘2026 ATD x Wynn 리더십 아시아 서밋’에서 한국형 리더십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는 세션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20여개 한국 기업, 1500여명 이상의 리더십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 ‘4C 프레임워크’와 ‘컨버터블 리더십’(Convertible Leadership) 모델은 글로벌 전문가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분석 결과는 분명했다. 한국 조직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실행력과 헌신 유전자(DNA)를 보유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러한 강점이 변화의 시대에는 구조적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산업화 시대 한국 기업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을 통해 세계 경제사에서 유례없는 압축 성장을 이뤄냈다. ▲짧은 시간 안에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하고 ▲글로벌 브랜드를 구축하며 ▲위기 속에서도 강한 복원력을 보여준 배경에는 한국형 리더십 특유의 헌신·집중력·집단적 실행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AI가 주도하는 초연결·초변동 시대에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만으로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강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는가다. K리더십, 헌신과 실행력의 양면성한국형 리더십의 가장 큰 강점은 단연 압도적인 업무 몰입도와 실행 속도다. ‘하면 된다’는 정신은 산업화와 압축 성장기의 핵심 동력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한국 기업의 성과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한국 리더들에게 일은 단순한 직무 수행을 넘어 존재의 증명이며, 조직의 성공은 곧 개인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이러한 특성은 위기 상황에서 놀라운 추진력으로 발현된다. ▲빠른 의사결정 ▲높은 책임감 ▲목표 달성을 위한 집중력은 제조업·금융·반도체·IT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한국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해왔다. 높은 윤리의식과 원칙 중심 문화, 그리고 관계 기반 협력 구조 역시 조직 결속과 신뢰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실제로 글로벌 성향 분석 도구를 통해 살펴본 한국 리더들의 특징은 ▲높은 헌신(Maximizing Effort Through Hard Work) ▲원칙 중심적 행동(Acting on Principle) ▲관계 중심적 합의(Facilitating Consensus)라는 세 축으로 요약된다. 이 세 항목에서 한국 리더들은 글로벌 평균 대비 뚜렷이 높은 점수대를 기록했으며, 제조·금융 등 전통 산업군에서 그 경향이 두드러졌다. 특히 '높은 업무 헌신'은 일에 쏟는 '시간의 총량'과 그에 순응하는 태도로 발현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 세 가지 요소는 한국 조직이 빠른 성장과 높은 성과를 만들어낸 핵심 자산이었다.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강점이 변화의 시대에는 쉽게 그림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과도한 헌신은 ‘항상 연결된 상태'(Always-On) 문화로 굳어져 이른 출근, 늦은 퇴근, 주말까지 이어지는 업무 연결이 성실함의 기준이 되고, 일의 성과 뿐 아니라 업무 태도까지 시간의 길이로 측정된다. 그러나 글로벌 인재나 MZ세대((1980년~2000년대 초반 출생자)는 오래 일하는 것보다 정해진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몰입하고 자율성을 갖고 선택할 수 있으며 명확하게 끊어내는 방식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 원칙 중심 문화는 다양성과 유연성을 제한하며, 관계 중심 합의 구조는 글로벌 환경에서 비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예를 들어, 한국 조직에서는 빠른 응답과 지속적 연결이 책임감의 상징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글로벌 환경에서는 이러한 문화가 오히려 번아웃과 창의성 저해 요소로 인식된다. 같은 '헌신'이라도, 한쪽은 시간의 길이와 그에 순응하는 태도로, 다른 한쪽은 집중의 강도와 자율성의 존중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방식이 옳다’는 확신은 조직 내 안정감을 줄 수 있으나, 문화적 다양성이 필수적인 국제 환경에서는 혁신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결국 한국형 리더십은 강력한 엔진을 가졌지만, 방향 전환이 어려운 구조적 특성을 동시에 가진 셈이다. 세 가지 조직 병리 '고립·불안·정체'인코칭과 서울대 피플랩이 한국 기업 20여개·리더 1500여명을 분석해 도출한 '4C 프레임워크'는 한국 조직의 현재와 미래를 네 글자로 압축한다. ▲고립의 'Cage(감옥)' ▲불안의 'Code(코드)' ▲정체의 'Cushion(쿠션)'은 한국 조직이 빠질 수 있는 세 가지 함정이며, ▲'Crew(크루)'는 그 함정에서 벗어난 미래형 조직 모델이다. 즉, K-리더십의 전환은 'C에서 C로(From Cage·Code·Cushion to Crew)' 옮겨가는 여정이다.첫째, 고립형 조직(CAGE)이다. 전통 대기업에서 주로 나타나는 유형으로, 높은 디지털 역량에도 불구하고 위계 구조와 동질적 인재 선발 방식이 외부 자극과 다양성을 차단한다. 조직은 효율적이지만 폐쇄적이며, 결국 창의성과 혁신을 가두는 감옥이 된다. 디지털 전환은 이루어졌지만, 문화적 전환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이 구조에서는 똑똑한 개인들이 모여도 집단적 비합리성이 강화될 수 있다.둘째, 불안형 조직(CODE)이다. 주로 IT·테크 기반 기업에서 나타나며, 디지털 역량은 높지만 구성원 간 신뢰와 심리적 안정감이 낮다. 성과 중심 구조와 AI 대체 불안 속에서 협업보다 생존 경쟁이 강화되며, 정보는 흐르지만 신뢰는 흐르지 않는다. 촘촘한 핵심성과지표(KPI)와 성과 측정 체계 속에서 구성원들은 연결보다 평가를 먼저 의식하게 되고, 이는 조직 전체의 정서적 회복탄력성을 약화시킨다.셋째, 정체형 조직(CUSHION)이다. 공공기관이나 안정 산업군에서 자주 관찰되는 유형으로, 갈등 회피와 현상 유지가 조직 문화를 지배한다. 겉보기에는 안정적이지만 실제로는 혁신 동력이 약화하고,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경쟁력을 점진적으로 상실한다. 문제 제기보다 무난함이 장려되고, 변화보다 안정이 우선될 때 조직은 서서히 시장 변화에서 멀어진다.이 세 가지 유형은 산업과 형태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변화 대응력이 낮다는 특징을 가진다. 결국 AI 시대의 핵심 과제는 기술 도입 자체보다 조직 구조와 리더십 방식의 근본적 전환에 있다. ‘크루 조직’ 진화, 목적·연결·전환의 리더십이러한 구조적 함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직을 위계적 구조물이 아니라 유기적 시스템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필자는 이를 ‘크루(Crew) 조직’이라 부른다.크루 조직의 첫 번째 조건은 ‘공동의 나침반’(Collective Compass)이다. 리더는 더 이상 정답을 제시하는 통제자가 아니라 방향을 설정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구성원들이 조직의 목적과 존재 이유를 이해할 때 비로소 자율성과 몰입이 강화된다. 특히 AI 시대에 심화하는 실존적 불안은 통제가 아니라 목적의 공유를 통해 완화될 수 있다.두 번째는 ‘연결된 협업’(Connected Collaboration)이다. 조직 내부의 부서 장벽과 정보 단절 구조를 완화하고, 마치 반투과성 세포막처럼 외부 아이디어와 내부 전문성이 자유롭게 교환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집단 지성이 활성화된다. 연결은 단순한 소통이 아니라 정보, 신뢰, 피드백이 유기적으로 흐르는 시스템이다.세 번째는 ‘전환 가능한 역량’(Convertible Capabilities)이다. AI 시대에는 고정된 역할보다 상황에 따라 리더와 팔로워가 유연하게 전환될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 타이틀보다 역할 중심의 조직 운영이 요구된다. 문제 해결 상황에 따라 가장 적합한 사람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구조가 미래형 조직의 핵심이다.이 세 가지 조건을 일상에서 구현하는 리더십 모델이 바로 '컨버터블 리더십'(Convertible Leadership)이다. 컨버터블 리더십은 자동차 컨버터블이 지붕을 상황에 따라 여닫듯, 리더가 자신의 강점을 상황과 맥락에 맞게 유연하게 재배치하는 능력을 뜻한다. 헌신을 시간으로 표현하던 리더가 집중과 자율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통제로 발휘하던 권위를 신뢰로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강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강점을 재구성하는 능력이 컨버터블 리더십의 본질이다. 결국 크루 조직은 단순한 협업 구조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적응하는 생명체형 조직 모델이다. 이는 기존 위계 구조의 해체가 아니라, 변화 적응성을 중심으로 한 조직 재설계다.글로벌 생존 전략 '현지화와 브리지 코칭'한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본사 중심의 성공 방식을 해외에 그대로 이식하는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대차·삼성·신한·롯데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 사례에서 확인되듯 각 국가와 산업, 인재 특성에 맞는 리더십 현지화가 필수적이다.예를 들어 ▲베트남 생산 현장 ▲미국 연구개발 조직 ▲유럽 금융 네트워크는 동일한 리더십 방식으로 운영될 수 없다. 각 문화권은 일에 대한 가치관·의사소통 방식·권한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식 헌신과 합의 구조가 특정 시장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오히려 피로감과 거리감을 유발할 수 있다.따라서 본사와 현지를 연결하는 ‘브리지 코칭’(Bridge Coaching)이 필요하다. 이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로컬 민감성을 동시에 갖춘 리더를 육성하는 전략이다. 조직은 더 이상 단일한 리더십 공식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각 지역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동일한 목적을 구현할 수 있는 유연한 리더십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결국 조직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흐름이다. AI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 필요한 것은 더 견고한 통제가 아니라 더 유연한 전환이다.한국형 리더십은 이미 강력한 헌신과 실행력이라는 세계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헌신을 '시간의 양'으로만 표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집중의 깊이'와 '전환의 속도'로 재정의하는 일이다. 리더가 자신의 성공 공식을 유연하게 재구성할 수 있을 때, 조직은 '오래 일하는 헌신'을 넘어, 깊이 몰입하고 빠르게 방향을 바꾸는 크루로 진화할 수 있다. 대한민국 기업의 미래 경쟁력은 얼마나 오래 열심히 일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몰입하고 빠르고 유연하게 전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AI 시대의 진정한 리더십은 더 많이 통제하는 능력이 아니라, 더 빠르게 배우고 연결하며 전환하는 능력이다. 이제 K-리더십은 ‘시간으로 증명하던 헌신’을 넘어, ‘깊이와 속도로 증명하는 전환’이라는 미래의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필자는 진단 기반 코칭과 조직개발 분야에서 활동하는 리더십 코칭 전문가다. 2003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전문 코칭 기업 인코칭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글로벌 기업과 국내 대기업의 C레벨 임원 코칭을 수행해왔다. ATD 등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형 리더십 모델을 발신해왔으며, 주요 저서로 '컨버터블 리더십' '코칭 가이드북' 등이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 K-리더십의 전환 가능성을 분석한 '컨버터블 리더십' 모델로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2026.05.25 10:30

8분 소요
지방자치 30년, 도시는 무엇을 놓쳤나[김현아의 시티라이프]

전문가 칼럼

지금 각 가정의 우편함에는 두툼한 지방선거 공보물이 도착해 있다. 후보들의 공약집에는 공통된 단어가 있다. ▲글로벌 도시 ▲스마트 시티 ▲청년 허브. 인구 5만명 이하 소도시도 예외가 없다. 그리고 그 소도시에는 신청사 건립이 단골 공약으로 등장한다. 인구 2만명대 소도시가 수백억원짜리 신청사 예산을 증액하다 감사원 감사를 받는 일이 지금도 반복된다. 재정난을 호소하면서도 신청사 건립 경쟁을 벌이는 것, 이것이 지방자치 30년의 민낯 중 하나다. 그렇다고 그 30년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것은 아니다. 지방정부가 처리하는 사무 비중은 1994년 13.4%에서 2024년 36.7%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2000년 주민조례발안제, 2004년 주민투표법, 2006년 주민소환제가 차례로 도입되며 주민이 행정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도 갖춰졌다. 제도의 서랍은 분명히 늘어났다. 그러나 제도의 서랍이 늘어나는 동안 도시는 더 비어갔다.일은 세 배, 지갑은 더 얇아진 도시제도의 성장 뒤에 숨은 숫자를 들여다보면 표정이 달라진다. 지방세 비중은 1995년 21.2%에서 2023년 24.6%로, 30년간 겨우 3.4%포인트 늘었다. 반면 지방재정자립도는 1997년 63%에서 2024년 48.6%로 14%포인트 이상 후퇴했다. 사무는 세 배 늘었는데, 그 일을 할 재정의 자율성은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더 많은 일을 하면서 더 빈 지갑으로 한다는 뜻이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의하면 각 지방단체장들의 공약이행 완료율은 70.42%지만 공약이행 필요재정 확보율은 52.22%에 그쳤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도시는 단체장이 스스로 설계해 실행할 수 있는 공약의 범위가 처음부터 좁다. 예산의 절반 이상이 중앙에서 내려오는 교부금과 보조금으로 채워지는 구조에서, 재정 권한 없는 자율은 허울에 가깝다. 지방자치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주민은 62%지만, 실제 성과를 체감한다는 응답은 36%에 그쳤다. 참여 기회가 늘었다고 느끼는 비율은 48%였지만 실제로 참여해본 주민은 14%에 불과했다.(행정안전부·한국지방행정연구원 ‘민선 지방자치 30년 평가’ 중간 결과 자료) 제도는 열려 있는데, 그 문을 통과한 사람은 드물다. 이것이 지방자치 30년의 가장 솔직한 성적표다.민선 1기가 출범하던 1995년 수도권 인구 비중은 약 45%였는데 2025년 51%로 이미 과반을 넘었다. 비수도권 중소도시의 인구는 30년간 약 25% 감소했다. 30년간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지방자치를 했는데, 지방 도시는 더 비어갔다. KDI는 2026년 1월 보고서 ‘수도권 집중 흐름의 분석과 향후 비수도권 발전방향’에서 이 역설을 해부했다. 30년간 균형발전정책을 시행하고, 세종시에 8조5000억원을 투입하고, 전국에 10조원을 들여 혁신도시를 조성했다. 그런데도 1970년 이래 단 한 차례의 반전이 없었다. 보고서가 지목한 핵심 원인은 인프라 부족이 아니었다. 2010년대 수도권 지식기반산업의 생산성이 20% 이상 올라가는 동안, 비수도권 제조업 도시의 생산성은 오히려 줄었다. 10개 혁신도시 중 8곳이 계획인구 목표에 미달했다. 수도권 인구를 끌어오기는커녕 주변 소도시 인구를 흡수하는 역효과만 낳았다. 사람은 도로가 깔린 곳이 아니라 기회가 있는 곳으로 간다. 공공기관을 옮기고 도로를 깔아도,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결국 하나의 질문이다. "여기서 내 삶이 나아질 수 있는가."대리전의 반복, 그리고 분권의 역설정작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지방선거는, 30년간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역대 지방선거의 핵심 의제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대부분 지역의 고유 문제가 아닌 중앙 정치의 대리전이었다. 대통령 임기 중반의 심판론, 여야의 수도권 전초전, 국가 현안에 대한 찬반. 지역 후보의 공약을 꼼꼼히 따지는 선거보다, 중앙 정당의 간판을 보고 투표하는 선거가 반복됐다. 4년마다 새 단체장이 취임하지만, 이전 단체장의 정책이 검증되고 계승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 구조의 대가는 설계도의 소멸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 에너지 자원을 주민 수익으로 돌려주겠다는 구상들이 곳곳에서 나왔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거의 같은 방향을 향해 독립적으로 제출됐던 설계도들이, 경선이라는 정치적 문턱을 넘지 못하고 서랍 속으로 사라졌다. 탈락한 것은 후보들이지, 그 설계도의 타당성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더 많은 분권인가. 2023년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됐고, 자치입법권 확대·기관구성 다양화·기회발전특구 조성 등 분권과 자치 강화의 법적 기반은 계속 쌓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불편한 질문을 하나 던져야 한다. 사람이 빠져나간 도시에서 자치 권한을 강화하면, 그 권한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기존 지역 네트워크가 조례·인허가·예산을 더 촘촘하게 틀어쥐게 될 때, 외부에서 이주를 고민하는 청년이나 귀촌을 꿈꾸는 외지인은 그 도시의 문이 더 좁게 느껴질 것이다. 분권은 도시를 살릴 조건이 아니라, 살아있는 도시가 더 잘 작동하게 해주는 도구다. 순서가 바뀌면 답도 달라진다.중앙에서 어떤 도시에 후보를 공천하는 데는 그 도시의 주민들이 어떤 투표 성향을 보이느냐와 관련이 깊다. 중앙 정당이 지역을 ‘관리 가능한 표밭’으로 볼 때, 그 도시의 고유한 문제는 후순위로 밀린다. 지방선거가 대리전이 되는 것은 유권자의 무관심 때문만이 아니라, 공천 구조가 그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조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뒤집어 말하면, 유권자가 달라지면 공천도 달라진다. 중앙 정치가 지방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 유권자가 중앙 정치의 공천 방정식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질문은 그대로다, 여덟 번의 선거를 치르는 동안 우리는 주로 중앙 정치의 언어로 투표해왔다. 이번 한 번은, 후보를 평가하는 기준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중앙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내가 사는 도시의 언어로.

2026.05.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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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은 하나가 아니다, 그래서 더 강하다 [동남아시아 투자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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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회에 걸쳐 아세안(ASEAN)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봤다. ▲금융 구조의 재정의 ▲디지털 경제 프레임워크(DEFA)의 부상 ▲중소기업을 파고드는 임베디드 금융 ▲지정학적 격변 속 에너지 자원의 전략적 가치 그리고 ▲’소프트 블록’ 시대의 제조업 대전환까지. 여기에서 묻고 싶은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아세안을 정말로 이해하고 있을까. 흔히 아세안은 ‘기회의 땅’이라 불린다. 7억명의 인구와 급성장하는 중산층, 풍부한 자원과 지정학적 중립성까지. 이 수사는 틀리지 않았지만, 불완전하다. 아세안을 단일 시장으로 보는 순간,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놓친다. 아세안은 하나가 아니다. 동시에, 아세안은 분명히 하나가 되려 하고 있다.이 연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역설이 하나 있다. 아세안의 각 국가는 놀라울 만큼 다르다. 싱가포르의 정교한 디지털 금융 규제와 캄보디아의 현금 경제가 ‘아세안’이라는 이름 아래 공존한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공존하는 이슬람 금융 생태계와 베트남의 국영은행 중심 구조는 다른 행성처럼 보인다. 에너지 측면에서도 인도네시아는 수출국이고 싱가포르는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한다.아세안 통합의 본질…’통일’이 아닌 ‘연결’그런데 이 분절된 공간들이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연결되고 있다. ▲QR 결제 상호 연동 ▲아세안 디지털 경제 프레임워크 협정(DEFA)의 가속화 ▲아세안 적격은행(QAB) 제도 ▲역내 공급망 재편 등 이 모든 움직임은 ‘통일’이 아닌 ‘연결’을 향한다. 각국의 주권과 규제 철학을 그대로 둔 채, 경제 활동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최소 공통 규칙을 만드는 것. 이것이 아세안 통합의 본질이다.이 방식은 느리고 불완전해 보인다. 하지만 유럽연합(EU)가 수십 년에 걸쳐 이룬 통합을 아세안이 디지털이라는 도구로 훨씬 빠르게 달성하려 한다는 점에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전자정부·모바일 결제·디지털 신원 시스템이 물리적 국경의 마찰을 줄이는 속도는 과거 어떤 자유무역협정(FTA)보다 빠를 수 있다.아세안에서 동시에 진행 중인 세 겹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첫째는 금융의 전환이다. 아세안 금융은 오랫동안 은행·국영·현금 중심이었다. 지금 이 구조 위에 ▲디지털 결제 ▲임베디드 금융 ▲핀테크가 올라타고 있다. 전통 은행이 위협받는 것이 아니라, 금융 자체의 외연이 넓어지고 있다. 계좌가 없던 수억 명이 스마트폰을 통해 처음으로 금융 시스템에 편입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디지털 전환이 아니라, 금융 포용의 역사적 도약이다.둘째는 에너지의 전환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이 보여주듯, 중동 의존 에너지 모델은 한계를 드러냈다. 아세안은 석유·가스 매장량과 재생에너지 잠재력을 동시에 품고 있는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다. 인도네시아의 마셀라 LNG, 말레이시아의 심해 탐사, 그리고 태양광·지열 에너지 개발은 아세안을 에너지 수혜자에서 에너지 공급자로 바꾸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고 있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클수록 아세안의 전략적 가치는 높아진다.셋째는 산업의 전환이다. 아세안은 더 이상 저임금 조립 기지가 아니다. 숙련 노동 부족이라는 역설적 과제가 오히려 자동화와 AI 도입을 가속하고 있다. ▲서비스형 로봇 (RaaS) ▲에이전트 인공지능(AI) ▲스마트 팩토리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공장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소프트 블록 시대에 아세안은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모든 진영의 생산 파트너가 되는 매우 영리한 포지셔닝을 하고 있다. 필자가 제안하고 싶은 아세안을 바라보는 세 가지 렌즈가 있다.첫 번째 렌즈는 ‘아세안 전체’가 아닌 ‘국가별 깊이’로 보라는 것이다. 베트남에서 통하는 전략이 인도네시아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두 나라가 같은 아세안이지만 전혀 다른 문화와 규제 철학 그리고 소비자 행태와 금융 인프라를 가졌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아세안 전략은 항상 국가별로 시작한다.두 번째 렌즈는 ‘현재 시장’이 아닌 ‘제도의 방향’으로 보라는 것이다. DEFA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디지털 신원 시스템이 아직 미성숙하다고 기다리는 것은 가장 좋은 타이밍을 놓치는 일이다. 아세안에서 기회는 항상 제도가 완성되기 전에 열리고, 제도가 완성되면 선점자가 결정된다.세 번째 렌즈는 아세안을 ‘판매 시장’이 아닌 ‘공동 설계자’로 봐야 한다는 점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기술과 자본을 원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발전 경로를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한다. 한국이 아세안에서 단기 수익을 노리는 공급자가 아니라,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파트너로 인식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관계가 만들어진다.한국은 독특한 위치에 있다. 제조 강국에서 기술 강국으로 전환을 이룬 경험, 정책금융과 민간금융의 협력 모델, 빠른 디지털 인프라 구축의 역사 등 이 모든 것이 아세안이 필요로 하는 것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하지만 한국은 아세안 접근이 여전히 ‘수출’과 ‘진출’의 프레임에 머물러 있다. 은행은 한국 기업을 따라 진출하고, 제조기업은 저임금 생산기지를 찾아 이동하고, 에너지 기업은 프로젝트 단위로 참여한다. 이 접근법은 틀리지 않았지만, 이제는 충분하지 않다.독자들이 아세안을 볼 때,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아세안은 완성된 시장이 아니라 진행 중인 실험이다. 그 실험의 결과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7억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어떤 이는 처음으로 모바일로 송금을 하고, 어떤 이는 대출을 받아 처음으로 가게를 연다. 또 다른 이는 재생에너지 일자리를 통해 도시로 떠난 가족에게 돈을 부친다. 이 모든 개별적 움직임이 모여 우리가 ‘아세안의 부상’이라 부르는 거대한 흐름이 된다.수치와 트렌드 너머에 있는 이 인간적 역동성—그것을 보는 눈을 가질 때, 아세안은 비로소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필자는 삼정 KPMG∙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한국벤처투자 등 23년이상 다양한 사업경험과 더불어 벤처캐피탈∙회계법인∙인프라∙스타트업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현재 싱가포르의 Hanbridge의 대표로 한국 중소∙벤처기업의 해외 진출 및 해외 자금 유치를 돕는 역할과 함께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생태계를 연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2026.05.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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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령인구가 바꾸는 입시판 [임성호의 입시지계]

전문가 칼럼

2026년 기준 올해 고3 학생 수는 43만520명이다. 고2는 42만5400명, 고1은 44만8999명이다. 단순 입시 구조상으로 보면 현재 고교에 재학 중인 학생 가운데서는 고1 학생들의 대입 경쟁이 가장 치열한 상황이다. 고교 3개 학년만 놓고 봐도 학년별 학생 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만큼, 같은 대입 구조가 유지된다는 전제 아래 학생 수는 중요한 변수다.중학생까지 범위를 넓히면 경쟁 구도는 더 뚜렷해진다. 중3 학생 수는 45만3555명, 중2는 46만7802명, 중1은 42만3410명이다. 현재 중3과 중2 학생들은 고1·고2·고3보다 학생 수 측면에서 대입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상황이다. 특히 중2 학생들은 올해 고3 학생 수보다 8.7% 더 많다. 2027학년도 대입 결과보다 합격 점수가 훨씬 높아질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발표되는 대입 결과 지표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올해의 합격선이나 경쟁률만 볼 것이 아니라, 해당 학년이 실제 대입을 치르는 시점의 학생 수 규모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의미다.초4부터 학생 수 본격 감소초등학교 고학년은 중학생보다 대입 경쟁이 다소 완화되는 구간이다. 초6 학생 수는 42만2254명, 초5는 42만6836명이다. 이 구간까지는 학생 수가 40만명을 넘는다. 다만 현재 중1·중2·중3보다는 학생 수가 적어 대입 경쟁이 다소 완화되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학생 수만 기준으로 보면 중학생 학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줄어드는 흐름이 나타나는 셈이다.초4부터는 학생 수 감소가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초4는 39만8003명, 초3은 35만945명, 초2는 32만4040명, 초1은 30만1341명이다. 이때부터 학생 수가 30만명대로 진입하고, 30만명 초반대까지 내려간다. 현재 초4 학생 수는 올해 고3 학생 수보다 7.6% 적고, 초3은 18.5%, 초2는 24.7%, 초1은 30.0% 각각 적다. 학년이 내려갈수록 감소 폭이 커지는 구조가 분명하게 확인된다.초3·초2·초1 학생들은 대입 시점에 합격 점수와 지원 상황 등에서 현재와 같은 대입 환경 구도가 유지된다는 전제 아래서도 큰 폭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기존의 내신과 수능 시스템 자체가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불확실성이 있다. 2028학년도, 즉 현 고2부터 학교 내신은 10%까지 1등급, 34%까지 2등급, 66%까지 3등급, 90%까지 4등급, 90% 초과는 5등급으로 바뀐다. 내신 제도에도 변화가 불가피하겠지만, 어느 정도의 변화가 발생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학생 수 감소가 제도 변화와 맞물릴 경우 학교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 폭은 더 커질 수 있다.현재 미취학 상태인 만 5세는 27만6768명, 만 4세는 26만6030명, 만 3세는 25만1255명, 만 2세는 23만1508명, 만 1세는 24만8629명, 0세는 26만47명이다. 현 고3 학생 수와 비교하면 만 5세는 35.7%, 만 4세는 38.2%, 만 3세는 41.6%, 만 2세는 46.2%, 만 1세는 42.2%, 0세는 39.6% 줄어든다. 현재 고3 학생 수의 거의 절반 수준까지 줄어드는 상황이다. 지역 편차도 커질까현재 고등학교 3개 학년, 중학교 3개 학년, 초등학교 6개 학년, 미취학 대상 6개 연령 등 전체 18개 연령·학년 가운데 학생 수가 40만명대인 구간은 8개, 30만명대는 4개, 20만명대는 6개로 분류된다. 학생 수가 30만명대와 20만명대에 해당하는 10개 연령·학년에서는 지역별, 고교별 학생 수에도 현재와는 매우 다른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전체 학생 수 감소가 모든 지역과 학교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역별 편차도 함께 커질 수 있다.이 경우 학교 내에서 내신 상대평가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고교학점제의 다양한 과목들이 실제로 개설될 수 있을지, 개설되더라도 수강생이 정상적으로 모일 수 있을지 등 현재와는 매우 다른 양상이 불가피하다. 과목 선택권을 확대하더라도 학생 수가 충분하지 않으면 운영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학생 변별이라는 측면에서도 현재의 학교 내신 평가 원칙이 무력화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학교 안에서 평가하기 어려운 영역은 국가 단위 시험으로 대체가 불가피해지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현재 수능이 향후 어떤 변화와 역할을 하게 될지, 이러한 학생 구조 변화에 정밀하게 대응할 수 있는 평가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대학입시가 상대평가인 상황에서 공정성 자체가 가장 핵심적인 가치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2028학년도, 즉 현 고2부터 적용되는 수능과 내신 전면 개편에 따라 각 대학은 대입 전형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 지역의사제는 2027학년도, 즉 현 고3부터 도입·적용된다. 모든 지역의사제는 경인권 일부 지역과 지방권 소재 학생들에게 배정된 상황이다.현재도 지방권 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는 의대 지역인재 전형이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지역의사제까지 추가됐다. 2022학년도 지방권 소재 학생들에게 배정된 의대 지역 선발 인원은 766명이었다. 2023학년도에는 967명, 2024학년도에는 1025명, 2025학년도에는 의대 모집 정원 확대 영향으로 1913명까지 늘었다. 2026학년도에는 1232명, 2028학년도에는 1673명으로 확대된다. 2027학년도 배정 인원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특정 연도에서 학생 수가 급감하는 구간은 매우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역별 유불리도 지금의 시각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향후 학생 구조 변화까지 민감하게 살펴봐야 하는 상황이다. 단순한 입시 부담 완화 측면이나 이상적인 교육·평가 방향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학생 수 구조 변화에 명확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정교한 입시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기존 입시 제도의 틀을 유지하더라도 학생 수 변화가 가져올 영향을 반영하지 않으면, 학년별·지역별 체감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2026.05.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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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없는 나라, 소외된 노인 세대 [이근면의 시사라떼]

전문가 칼럼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논란이 뜨겁더니 이제 노인 적용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높이자고 한다. 여론조사에서도 다수가 찬성한다 한다(노인계층에만 물어본 건 아니다). 게다가 어물쩍 정년연장까지 하려 한다. 이미 노인이 된 사람이 아니라 모두 노인 되기 전의 사람들의 기득권을 늘리는 행동이다. 노인 세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그 어디에도 없고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깊어진다. 그러니 자조적으로 대한민국은 노인이 없다. ′아니, 없어져야 하나?’라고들 한다. 한국의 디지털 환경은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한다. 자동화·무인화·키오스크의 천국이 되어있다. 은행 점포는 나날이 급감하고 있고 물건을 만져보고 골라 살 수 있는 오프라인 상점은 생존이 어렵다. 햄버거 사먹기조차 어려운 게 노인에게 닥친 오늘의 현실이다. 생활 환경 적응이 생존의 위협으로 등장했다. 과연 옳은 정책 방향일까. 맞다! 대세는 디지털, AI시대이다. 그런데 세상이 급변해도 이들을 보호하고 안내할 책임이 사회와 정치의 몫인데 그야말로 ‘노인권익보호당’이라도 만들어야 될 우리의 자화상이다. 여기에 노인 빈곤이 문제라고 너도 나도 모두 목소리를 높이는 나라에서 노인 일자리 문제에는 입을 닫는다. 청년 일자리와 연계하는 목소리가 오히려 더 높다. 일본의 선택 vs 한국의 방치대한민국은 이미 ‘은퇴 없는 나라’다. 다만 우리는 그 현실을 제도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개인의 생존 문제로 떠넘겨 왔다. 평균수명은 84세를 넘었지만, 사회가 허용하는 노동의 시간은 여전히 60세 전후에서 끊긴다. 은퇴 이후 20~30년의 삶은 국가의 설계 밖에 놓였고, 그 공백을 개인이 각자 버티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이 장면은 한국만의 특수한 풍경이 아니다. 일본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모습이 있다. 지하철 역사에서, 공공주차장에서, 관광지 입구에서, 심지어 동네 소규모 시설에서도 요금을 받거나 입장권을 발급하는 노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자동화가 충분히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그 자리에 사람을 남겨두었다. 특히 고령자를.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본 사회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정책의 결과다.일본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이 내린 중요한 판단은 하나다. “모든 것을 자동화하는 것이 반드시 효율은 아니다”라는 인식이다. 무인화·자동화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그것이 사회 전체의 비용을 줄이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판단이었다.그래서 일본은 일부 단순 업무를 ‘남겨두는 일자리’로 관리한다. ▲주차 요금 징수 ▲시설 출입 관리 ▲간단한 안내 업무 ▲지역 공공시설 관리 등이다. 이 일들은 생산성이 낮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노인 일자리 정책이자 사회 통합 비용으로 본다. 고령자가 노동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고, 고립과 우울을 예방하며, 의료·복지 비용을 줄이는 효과까지 감안한 선택이다.반면 한국은 어떤 길을 택했는가. 우리는 자동화를 ‘무조건적인 선(善)’으로 여겼다. ▲무인 계산대 ▲무인 주차장 ▲무인 요금소 ▲무인 안내 시스템을 빠르게 확산시켰다. 그 결과 효율은 높아졌을지 몰라도, 그 자리를 대체할 노인의 역할은 설계하지 않았다. 자동화는 도입했지만, 전환은 준비하지 않은 것이다.그래서 한국의 노인은 일할 수밖에 없는데, 일할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남아 있는 일자리는 경비, 청소, 택배 분류 등 고강도·저임금 노동에 집중된다. 일본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배치된 ‘저강도 사회적 노동’과는 결이 다르다. 이는 문화 차이가 아니라 정책의 차이다. 한국 사회는 일하는 노인을 보면 안쓰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다르게 본다. “사회가 역할을 남겨두었다”고 인식한다. 같은 고령 노동이지만, 하나는 방치된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설계된 선택이다.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은퇴 없는 나라가 문제인가, 아니면 은퇴 이후의 역할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가. 일본은 은퇴 없는 사회를 전제로 삼고, 노동의 강도와 형태를 재설계했다. 한국은 은퇴 없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노인을 제도 밖으로 밀어냈다.이 차이는 세대 갈등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에서는 노인이 일하면 “청년 일자리를 뺏는다”는 말이 쉽게 나온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고령자의 단순·관리·안내 노동이 청년의 전문·기술 노동과 충돌하지 않도록 구조를 분리했다. 경쟁이 아니라 분담의 문제로 접근한 것이다.이제 한국도 선택해야 한다. 은퇴를 강요할 것인가, 아니면 선택 가능한 은퇴를 만들 것인가. 자동화를 무조건 확대할 것인가, 아니면 일부 영역에서는 사람을 남겨둘 것인가. 효율만 볼 것인가, 아니면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볼 것인가.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은퇴 이후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소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일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노후는 선택이 아니라 강요다. 둘째, 노인 일자리를 단기·구호성 사업이 아니라, 사회적 역할로 재정의해야 한다. 일본처럼 남겨둘 일자리, 조정할 노동, 완화할 강도를 설계해야 한다. 셋째,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노인은 부담이 아니라 자원이고, 노동은 청년만의 권리가 아니다. 중장년은 자신의 노후를 개인의 문제로만 미루지 말고, 제도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청년 역시 은퇴 없는 사회가 곧 자신의 미래임을 직시해야 한다.은퇴 없는 나라는 실패한 나라가 아니다. 실패한 것은, 오래 살게 해 놓고 그 삶을 준비하지 않은 사회다. 일본은 불완전하지만 준비했다. 한국은 아직 인정조차 하지 않았다.은퇴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선택이 없는 노후가 문제다.이제는 AI시대의 진입기이다.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바뀌어간다. 그러나 속도와 방향,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 선택적 결정은 우리의 몫이다. 바로 자동화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회를 남길 것인가의 문제다. 그 선택을 미루는 순간, 은퇴 없는 나라는 연대 없는 나라가 된다. 그리고 누구나 노인이 된다.

2026.05.23 08:30

4분 소요
美 '디지털자산 법제화' 완성했는데...韓은 '제자리 걸음' [김기동의 이슈&로(LAW)]

전문가 칼럼

“If you're under 40, Bitcoin is your new gold.”(당신의 나이가 40세 이하라면, 비트코인은 당신의 새로운 금이다)2021년 케빈 워시가 CNBC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2009년 1월 세상에 나온 비트코인과 함께 자란 세대에게는 가치저장수단으로서 ‘현물 금(gold)’보다 ‘디지털 골드(digital gold)’인 비트코인을 더 선호한다는 뜻이다. 그 워시가 지난 5월 15일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세계 금융의 흐름이 크립토 친화적으로 급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올해 초 이란 사태는 디지털자산이 현실 세계에서 수용되고 있다는 점을 다른 각도에서 확인시켰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무기 조달과 원유 결제에 활용했다. 국제 송금망 스위프트(SWIFT)를 우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재를 받는 권력에게 스테이블코인은 빠르고 실용적인 자금 이동 수단이었다. 반면 50%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정부를 불신하는 이란 시민들은 예금을 비트코인으로 바꿨다.미국에서 디지털자산은 더 이상 일부 투자자의 투기적 실험이 아니다. 제도권 금융산업이 주목하는 새로운 금융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JP모건은 지난해 말 이더리움 블록체인 위에 토큰화 머니마켓펀드(MONY)를 출시한 데 이어, 올해 두 번째 토큰화 펀드(JLTXX)를 추가 출시하고 예금 토큰 JPM Coin을 복수의 블록체인으로 확장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비트코인 인컴 ETF를 출시했고, 모건스탠리는 E*Trade 플랫폼을 통한 암호화폐 거래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블랙록의 디지털자산 플랫폼은 향후 5년 내 연간 5억달러의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2022년 11월 세계 3위 가상자산 거래소 FTX는 열흘 만에 무너졌다. 고객 자산 80억달러가 증발했다. FTX 붕괴는 단순한 사기 사건이 아니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디지털자산이 ‘증권’인지 ‘상품’인지 관할권을 다투느라 누구도 시장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 집행으로 규제를 대신하던 시대의 민낯이었다.美 클래리티법 등장…“디지털자산도 법의 틀 안으로”3년 반이 지난 2026년 5월 14일, ‘클래리티법(CLARITY Act·디지털자산 명확화법)’이 15대 9로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를 통과했다. 세계 최대 자본시장이 디지털자산에 대한 포괄적 성문 규제의 틀을 세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클래리티법 상원 수정안은 그간 SEC와 CFTC가 관할권을 다투며 공백으로 남아 있던 디지털자산 규제 체계를 포괄적으로 법제화한 것이다. 핵심은 자산 분류 체계의 재설계다. 대부분의 디지털자산을 ‘네트워크 토큰’으로 수렴시키되, 기업가적·경영적 노력에 가치를 의존하는 경우를 ‘부수적 자산’으로 구분한다. 네트워크 토큰은 ‘디지털상품(비증권)’으로 분류돼 CFTC가 감독하고, 부수적 자산은 ‘증권’으로 취급되지 않으면서도 SEC의 공시 감독을 받는 중간적 지위를 갖는다.네트워크 토큰은 기업가적·경영적 노력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을 SEC로부터 확인받게 되면 증권 규제에서 벗어나 CFTC 관할 디지털상품으로 전환된다. 탈중앙화할수록 규제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다. CLARITY Act가 바꾸는 것은 단순한 규제 체계가 아니다. 자산의 성격을 사전에 소명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한 만큼, 과거처럼 집행을 통해 사후적으로 법 위반 여부가 결정되는 불확실성이 줄어든다.이와 함께 기존 증권법상 등록 절차 대신 간소화된 등록 면제 제도인 ‘규제 크립토(Regulation Crypto)’가 신설됐다. 최대 4년간 연간 5000만 달러 또는 유통 중인 부수적 자산 총 달러 가치의 10% 가운데 더 큰 금액을, 누적 2억 달러 한도 내에서 간소화된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초기·반기 공시 의무와 내부자 처분 제한을 부과했다.불법 금융 방지와 소비자 보호도 정면으로 다룬다. 디지털상품 브로커·딜러·거래소에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고, 암호화폐 ATM 규제 공백을 해소한다. 파산법을 개정해 등록 중개인이 보관한 디지털자산을 ‘고객 재산’으로 분류하고, 파산 절차에서 다른 상품 및 증권과 동일하게 취급하도록 했다.탈중앙화금융(DeFi) 영역에서는 프로토콜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주체에게만 중개인 및 자금세탁 규제를 적용하고, 네트워크 트랜잭션 수집·노드 운영 등은 규제 대상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했다. 국법은행·주립은행·금융지주회사 등이 건전성 규제 틀 안에서 디지털자산 수탁·매매·대출·결제·파생상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명시적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법률 제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스테이블코인 수익 배분과 공직자 이해충돌 문제가 뇌관이다. 상원 본회의 통과에는 60표가 필요하고 민주당의 추가 지지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방향만큼은 분명하다. ‘디지털자산 시장 관여자들의 책임 법제화’다. 암호화폐에 특혜를 주자는 것이 아니다.일본까지 뛰는데…한국은 여전히 ‘규제 공백’클래리티법이 상원 본회의를 통과해 입법화되면 파급력은 미국에 그치지 않는다. 월가의 대형 기관들이 디지털자산 시장에 본격 진입하고,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수익 배분 규칙이 정비되면서 국경을 넘는 결제 인프라가 재편된다. 유럽연합(EU)의 미카(MiCA) 규제와 함께 글로벌 디지털자산 규율의 양대 축이 형성되는 것이다.미국만이 아니다. 신중함의 대명사였던 일본도 이미 달리고 있다. 2020년 금융상품거래법 개정으로 토큰증권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고, 엔화 스테이블코인이 정식 인가를 받았으며 국채 토큰화 컨소시엄까지 출범시켰다. 인공지능(AI) 에이전트가 스테이블코인으로 자율 결제하는 서비스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해외에서 계속 출시되고 있다.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금융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가. 연간 160조원 규모의 가상자산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실은 국내 규제가 가상자산 ETF·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허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도 사실상 금지돼 있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검토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가상자산 시장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기본 질서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미국이 디지털자산의 ‘헌법’을 쓰는 동안 한국은 2단계 입법 논의조차 아직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디지털자산의 법제화’를 서둘러야 할 때다. 법적 공백은 혁신을 막고 사고를 부른다. 지금 입법하지 않으면 분쟁이 먼저 법을 만든다. 그것은 훨씬 비싼 대가다.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

2026.05.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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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하는 지방...대전 살린 '성심당'을 보라 [허태윤의 브랜드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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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를 앞둔 요즘 지방 도시의 풍경은 어딘가 불안하다. 면사무소 앞 현수막마다 각종 지원금 공약이 빼곡하다. “1인당 30만원 지급”, “신혼부부 100만원 지원”, “전 군민 민생지원금 지급”. 재정자립도가 10%대에 머무는 지자체조차 빚을 내서라도 주민 통장에 돈을 꽂아주겠다고 약속한다. 한쪽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약속이 등장한다. 돔구장, 대형 공연장, 복합 컨벤션센터 같은 조 단위 개발 계획이다. 인구가 줄어 학교가 폐교되는 마을에도 거대한 청사진이 나붙는다.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지방자치단체장 공약 이행 평가에 따르면 전국 기초단체장의 공약 이행률은 70%를 넘었지만, 정작 재정 확보율은 절반 수준에 그쳤다. 약속은 넘쳐났지만 이를 지속할 돈은 부족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선거철만 되면 공약은 더욱 화려해진다. 현금성 지원, 대형 개발 사업, 지역 브랜드를 내세운 전시성 프로젝트까지 쏟아진다. 그러나 정작 4년 뒤 그 지역에 무엇이 남는지에 대한 답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성심당이 보여준 로컬 브랜딩의 힘지방소멸은 이제 통계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은 떠나고 아이는 줄어들며 학교와 상권은 문을 닫는다. 그동안 지방이 내놓은 해법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현금 지원으로 사람을 붙잡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단지와 대형 시설을 조성해 외부 인구를 끌어오는 방식이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원금이 끝나면 인구는 다시 빠져나갔고, 산업단지는 공실 문제에 시달렸으며, 거대 시설은 낮은 가동률 속에 유지비 부담만 남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이 지점에서 세계 여러 지역이 공통적으로 도달한 해법이 있다. 바로 ‘로컬 브랜딩(Local Branding)’이다. 이는 단순히 캐릭터를 만들고 슬로건을 붙이는 홍보 전략이 아니다. 지역 고유의 문화와 자원, 생활 방식을 ‘대체 불가능한 가치’로 재해석해 사람을 끌어들이는 장기 전략이다. 결국 사람은 돈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과 정체성에 반응한다.국내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대전의 성심당이다. 성심당은 단순한 빵집이 아니다. 전국에서 하루 평균 수만 명이 빵을 사기 위해 대전을 찾는다. 이 유동인구는 주변 상권과 관광 소비를 동시에 일으킨다. 실제 성심당은 지난해 1200억원이 넘는 매출과 3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대형 프랜차이즈를 뛰어넘는 수익성을 보여줬다. 핵심은 규모가 아니라 희소성이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살 수 있는 빵이 아니라 ‘대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빵’을 소비하기 위해 이동한다. 지역 정체성이 하나의 경제 생태계를 만든 셈이다.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지방소멸을 겪으며 이런 실험을 시작했다. 도쿠시마현의 산골 마을 가미야마초는 대표 사례다. 인구 감소에 시달리던 이 마을은 무리하게 인구를 늘리려 하지 않았다. 대신 ‘창조적 과소’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숫자보다 사람의 질을 바꾸겠다는 전략이었다. 주민들이 만든 비영리단체 그린밸리는 빈집을 정비해 외지인에게 연결했고, 필요한 인재를 직접 지목해 마을로 초청했다. “우리 마을엔 빵집이 없으니 제빵사를 찾는다”는 식이었다.이들은 보조금 경쟁에도 뛰어들지 않았다. “보조금을 보고 오는 기업은 보조금이 끝나면 떠난다”는 철학 때문이었다. 대신 광섬유망 구축 이후 IT 기업 위성 사무실을 유치하고, 오래된 양조장을 리모델링해 창작 공간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인구는 줄었지만 젊은 이주민과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지역의 미래를 바꾼 것은 거대한 개발 사업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이를 운영할 민간 조직이었다.시마네현 아마초의 사례도 비슷하다. 본토에서 배로 세 시간을 가야 하는 외딴섬이었던 아마초는 “섬에서 보물찾기를 하지 않겠는가”라는 독특한 메시지를 내걸었다. 외부 청년들이 섬에 들어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산물 냉동 기술, 해삼 수출 사업, 섬 유학 프로그램 등이 등장했다. 폐교 직전이던 학교는 다시 학생들로 채워졌고, 이주민 비중도 크게 늘었다. 대체불가능한 지역 매력 찾아라유럽의 해법은 또 다르다. 이탈리아 산촌 산토 스테파노 디 세사니오는 빈집을 허물지 않았다. 대신 마을 전체를 호텔처럼 활용하는 ‘알베르고 디푸조(분산형 호텔)’ 모델을 도입했다. 낡은 석벽과 오래된 골목 자체를 관광 자산으로 만든 것이다. 새 건물을 짓지 않고도 마을의 매력을 경제로 연결한 사례다. 한국에서도 문경 등이 이 모델 도입을 추진 중이다.이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는 지역만의 정체성이다. 둘째는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존재다. 셋째는 행정이 전면에 나서기보다 민간의 창의성을 지원하는 유연한 거버넌스다. 결국 지역을 살리는 힘은 예산 규모보다 ‘왜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가’에 대한 답에서 나온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유권자가 던져야 할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얼마 지원해줄 것인가”가 아니라 “이 도시를 어떻게 다른 도시와 다르게 만들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지방의 미래는 거대한 토목 사업이나 단기 지원금에 있지 않다. 그 지역만이 가진 대체 불가능한 경험과 정체성을 발견하고 키워내는 데 있다.빵집 하나가 도시를 먹여 살리는 시대다. 중요한 것은 빵값이 아니다. 사람들이 왜 그 빵을 사기 위해 KTX를 타고 내려가는가, 바로 그 이유를 만드는 힘이다.

2026.05.1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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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데이터센터가 우주로 가는 이유 [한세희 테크&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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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지구에 쌓이는 쓰레기를 모아 로켓에 실어 우주로 보내 버리는 상상을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물건을 만들고 쓰고(또는 쓰지 않고) 버리고 또 만든다. 묻자니 땅이 모자라고, 태우자니 공기가 오염된다. 자기 동네에 쓰레기 처리 시설이 오는 것은 절대 반대다. 로켓에 실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쓰레기를 처리하기엔 로켓 발사의 경제적 타당성이 전혀 없다거나, 사고로 유독 폐기물을 실은 로켓이 상공에서 폭발하면 피해가 너무 크다든지 하는 제약이 있으니 당연히 현실성은 없는 생각일 뿐이다. 그렇더라도 만약 정말 지구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면, 누군가 적은 비용으로 쓰레기를 우주에 보내는 방법을 찾아내는 연구를 할 것 같다. 쓰레기 문제 해결엔 사람들이 그 정도로 관심을 갖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우주에 보내서라도 간절히 해결하고 싶어하는 문제가 지금 지구에 하나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을 돌리는 인프라인 데이터센터다. 데이터센터 건설의 기술적 어려움이나 규제 비용을 해결하고 AI 병목을 해결할 방법으로 우주 AI 데이터센터가 주목받고 있다. 공상과학 소설 같은 이 아이디어를 스페이스X와 구글, 아마존 등이 진지하게 실천에 옮기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우주로 간다 스페이스X 상장을 앞둔 일런 머스크는 우주에 위성을 띄워 데이터센터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적극 띄우고 있다. 올초 자신의 AI 기업 xAI와 스페이스X를 합병한 그는 100기가와트(GW) 규모 우주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지구 궤도에 100만개의 AI 위성을 발사하겠다는 신청서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제출했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지을 초거대 반도체 제조 시설 ‘테라팹‘에서 자율주행이나 휴머노이드 로봇용 반도체와 함께 우주 환경을 견딜 고성능 반도체도 만든다는 구상이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운영하는 블루오리진도 최근 FCC에 AI 컴퓨팅 위성 5만2000개를 지구 궤도에 올리겠다며 승인을 요청했다. ‘프로젝트 선라이즈’다. 다만, 우주 데이터센터가 지상 시설에 비해 비용 경쟁력을 가지는 시기는 ‘향후 수십 년 내’로 보고 있다. 구글도 ‘프로젝트 선캐처’를 수년 간 진행해 왔다. 위성 스타트업 플래닛랩스와 협력, 자체 TPU 칩을 탑재한 프로토타입 위성 2개를 내년 초 쏘아올린다는 목표다. 스페이스X와도 우주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 로켓 사용 계약을 논의 중이다. 구글 자체 연구에 따르면, 현재 kg당 1000달러 이상인 로켓 발사 비용이 200달러 아래로 떨어지는 2030년대 중반에 지상 데이터센터와 비용 경쟁이 가능할 전망이다. 핀테크 서비스 로빈후드 공동 창업자 바이주 바트가 설립한 카우보이스페이스는 2028년 궤도에 우주 데이터센터를 올린다는 목표다. 최근 2억75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스타클라우드는 엔비디아와 우주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 협력한다. AI 최대 병목, 데이터센터 이는 데이터센터가 AI 확장의 최대 병목이 됐기 때문이다. AI 열풍과 함께 AI 학습과 추론, 서비스가 이뤄지는 데이터센터 수요도 폭증하고 있다. 오픈AI는 매년 100GW의 전력 생산 능력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소프트뱅크, 오라클 등과 제휴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xAI는 엔비디아 GPU 20만개 규모의 슈퍼컴퓨팅 데이터센터 ‘콜로서스’를 향후 100만개 GPU 규모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은 세계 주요 거점 지역마다 데이터센터 확장에 나서고 있다. 데이터센터 건설과 운영엔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수많은 반도체 칩이 높은 밀도로 집적돼 쉬지 않고 연산을 할 때 나오는 열을 관리해야 한다. 칩이 과열되면 손상되거나 수명이 짧아지므로 고효율 공조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정밀하게 처리된 특수한 물을 써 온도를 낮춰야 한다. 물 속에 서버를 담그거나 바다 속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데이터센터 냉각에 쓰이는 막대한 물을 공급하고 화학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도 커지고 있다. 에너지 수요를 대기 위해 빅테크 기업들은 원자력 발전소와 지열 발전소를 새로 계약하고, 핵융합 같은 미래 에너지원에도 투자하고 있다. 입지도 문제다. 데이터센터는 지반이 안정되고 풍부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곳에 지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기온이 낮고 시원한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고용 창출 효과는 거의 없고 전자파 우려, 환경 오염 우려 등이 겹쳐 입지 후보 지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AI 경쟁에 앞서 나가려 한시가 급한 AI 기업들로선 답답할 일이다. 이런 규제나 기술 비용을 치루느니 우주를 개척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법하다. 우주에선 태양광을 직접 받아 전기를 만들 수 있다. 우주 공간은 기온이 낮으니 발열 문제도 우회할 수 있다. 열을 전달할 매질이 없어 다른 방식의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만, 대안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무엇보다 입지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민원이나 규제도 피해갈 수 있다. 갈 길은 멀지만 우주에 무거운 데이터센터 서버 랙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로켓 발사 비용을 낮출 수 있을지, 유지보수는 어떻게 할지, 가혹한 우주 환경을 견딜 부품은 어떻게 만들지 등 여전히 해결할 과제는 많다. 수익성 개선 여지가 안 보이는 xAI 투자자를 달래기 위해 초우량기업 스페이스X와 합병시킨 머스크의 내러티브에 우리가 놀아나는 것일 수도 있다. 스페이스X 역시 정작 상장을 위해 제출한 투자 설명서엔 우주 데이터센터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 의존하고 있어 상업적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고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우주 데이터센터는 머스크의 호들갑(?) 이전부터 조용히 준비되던 기술이다. 또 하나의 거품 기술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길을 찾는다“는 인류의 특징이 다시 현실화될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만큼 빅테크와 스마트 머니가 AI 병목 해결에 진심이란 점은 확실히 보여준다.

2026.05.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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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표상들 떨고 있니”…수익 끝까지 환수하는 ‘암표근절법’ 온다 [백세희의 컬처&로(LAW)]

전문가 칼럼

크고 작은 축제로 전국이 들썩이는 계절의 여왕 5월이 찾아왔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만큼 잡음도 적지 않다. 특히 유명 가수의 대형 공연에는 어김없이 암표로 인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암표는 공연의 생산자가 아닌 제3자의 배만 불린다는 문제가 있다. 암표상은 공연의 생산자도 향유자도 아니면서 중간에 끼어 이득만 챙긴다. 소비자의 공연 관람 기회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팔리지 않은 입장권을 공연 직전에 대거 취소해 공연 주최 측에 손해를 입히기도 한다.암표의 폐해는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 입장권 판매가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기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공연법 개정을 통해 온라인상 암표 판매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그럼에도 암표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법이 부실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암표 거래를 일정 부분 양성화하는 것 외에는 뚜렷한 해법이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 법은 개정을 통해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을 선택하고 있다. 지난 2월 27일 개정돼 오는 8월 28일 시행을 앞둔 이른바 ‘암표근절법(개정 공연법)’이 대표적이다.‘매크로 사용 여부’ 관계없이 처벌 확대시행을 앞둔 개정법이 종전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매크로 프로그램 사용 여부’가 더 이상 핵심 쟁점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행 공연법이 금지하고 있는 행위는 정보통신망에 지정된 명령을 자동으로 반복 입력하는 프로그램, 즉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암표를 확보한 뒤 판매하는 행위다. 조직적·기업형 암표상을 찾아내 처벌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이 이들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문제는 이를 기술적으로 입증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공연기획사나 예매처가 상당한 비용을 들여 기술·인력 투자를 해야 비로소 적발 가능성이 생기는데, 실제로 매크로 프로그램 사용 여부를 가려내는 일은 매우 까다롭다고 한다. 수사기관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조직적인 암표상이 다수의 인력을 동원해 이른바 ‘광클’ 방식으로 티켓을 확보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단순히 매크로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입증의 난이도를 떠나 그 자체로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개정법은 매크로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입장권의 부정거래 자체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나아가 암표 판매의 전 단계인 ‘구매’ 역시 처벌 대상에 포함됐다. 현행법에서는 입장권의 부정판매만 처벌 대상이었다. 반면 개정법은 부정판매의 논리적 전 단계인 ‘부정구매’까지 처벌 범위를 확대했다. 개정법에 추가된 부정구매란 예매처가 정한 공정한 구매 절차를 벗어난 방식으로, 재판매를 목적으로 입장권을 구매하는 행위를 뜻한다.간혹 암표를 구매한 일반 소비자의 행위가 개정법상 ‘부정구매’에 해당한다는 오해도 있다. 하지만 개정법이 처벌하려는 대상은 공연을 관람하려는 소비자의 암표 구매가 아니라, 재판매를 목적으로 입장권을 확보하는 암표상의 구매 행위다. 현행법상 매크로를 이용한 암표상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암표 판매로 얻는 이익이 벌금액을 훨씬 웃돈다면 암표상 입장에서는 범행을 멈출 유인이 크지 않다. 결국 범죄로 얻은 이익 자체를 환수할 수 있어야 비로소 처벌 규정이 실질적인 범죄 억지력을 갖게 된다.문제는 현행 공연법에는 범죄수익을 몰수·추징할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범죄수익은닉처벌법)」은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해서만 범죄수익 몰수·추징을 허용한다. 하지만 현행 공연법 위반은 최대 1년 이하의 징역에 불과해 범죄수익은닉처벌법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 공연법 내 별도의 몰수·추징 조항도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개정법은 몰수·추징 근거 규정을 새롭게 마련했다. 오는 8월 28일부터는 암표 판매로 얻은 불법 수익을 국가가 직접 박탈할 수 있게 된다.또한 암표상에게는 과징금도 부과된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암표상에게 판매금액의 50배 이하 범위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부과 처분을 받고도 기한 내 납부하지 않으면 국세 강제징수 절차에 따라 징수된다. 결국 8월 28일부터 암표상은 벌금, 과징금, 몰수·추징이라는 ‘3중 제재’를 통해 범죄 수익을 사실상 모두 환수당할 가능성이 커졌다.여기에 더해 암표상의 부정구매 또는 부정판매를 신고한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도 신설된다. 소비자 개개인이 감시자 역할을 하며 암표상을 적발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시행령 마련이 관건…실효성 확보 과제다만 개정법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시행령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공연법은 포상금 역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입장권 판매처와 온라인 플랫폼이 암표 방지를 위해 반드시 시행해야 할 ‘필요한 조치’ 역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정하는 암표 신고기관의 지정 요건과 운영 기준 또한 시행령에 담겨야 한다.결국 개정법의 실효성은 향후 마련될 시행령의 구체성과 현장 적용 수준에 달려 있을 수 있다. 현재 구체적인 내용을 두고 이해당사자 사이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시행령이 담아야 할 내용이 상당한 데, 개정 이후 시행까지 6개월 만에 과연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안이 나올 수 있을지 지켜보는 중이다. 암표의 존재가 공연법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020년 12월이다. 지금까지 수년 동안 공연계의 꾸준한 목소리로 조금씩 변화를 이뤄져 왔다. 이번 개정법으로 암표가 획기적으로 줄어들기를 기대한다.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2026.05.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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