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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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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cm 남짓 사각 캔버스에 담긴 예술과 경제 [와인인문학]

전문가 칼럼

와인숍의 진열대 앞에 설 때마다 우리는 750ml의 유리병들이 건네는 무언의 웅변을 마주하게 된다. 수백에서 수천병의 와인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는데, 소비자의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고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결정적 단서는 단연 ‘라벨’이다.현대의 와인 라벨은 포도의 품종이나 알코올 도수를 알려주는 단순한 정보 전달의 매개체를 넘어섰다. 그것은 와이너리의 양조 철학과 시대의 사회·문화적 흐름 그리고 치밀하게 계산된 브랜드 마케팅이 응축된 하나의 ‘종합 예술 작품’이다. 간단한 표식에서부터 피카소와 샤갈 등 현대 미술 거장들의 캔버스가 되기까지 와인 라벨이 걸어온 진화의 역사를 경제·문화적 관점에서 짚어본다.정보의 꼬리표에서 브랜드 얼굴로18세기 이전까지 와인병에 종이 라벨을 붙이는 일은 흔치 않았다. 와인은 주로 오크통 단위로 거래됐고, 병입을 하더라도 유리병의 단가가 비싸 재사용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초기 와인의 식별은 병목에 매단 작은 종잇조각이나 나무토막 혹은 병 겉면에 분필로 쓱쓱 그어놓은 글씨가 전부였다.이 시기의 라벨은 철저히 ‘물류와 재고 관리’를 위한 기능적 도구에 불과했다. 생산 연도와 지역 혹은 소유주의 이름 정도만 간략히 적혀 있을 뿐 오늘날과 같은 미학적 고려나 마케팅적 의도는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 품질은 라벨이 아닌 네고시앙(와인 중개상)의 신용으로 보증되던 시대였다.와인 라벨이 시각적 매력을 입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다. 유리 제조술의 발달로 규격화된 와인병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결정적으로 1798년 발명된 ‘석판 인쇄술’이 상용화되면서 라벨 디자인에 혁명이 일어났다.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와인 시장의 주도권이 귀족에서 신흥 부르주아 계층으로 넘어가면서 생산자들은 자신의 와인을 차별화하기 위한 ‘브랜딩’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때부터 라벨에는 웅장한 샤토의 일러스트와 가문의 전통을 과시하는 화려한 문장 그리고 우아한 필기체 폰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소비자에게 ‘권위’와 ‘정통성’ 그리고 ‘최고급’이라는 심리적 닻을 내리기 위한 정교한 시각적 마케팅의 출발점이었다.와인 라벨을 상업 디자인에서 순수 미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결정적 사건은 프랑스 보르도의 최고급 와인 ‘샤토 무통 로쉴드’의 아티스트 라벨 프로젝트다.1945년 바롱 필립 드 로쉴드 남작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필립 줄리앙에게 의뢰해 라벨에 ‘승리의 V자’를 새겨 넣었다. 이 성공에 고무된 남작은 매년 당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들에게 라벨 디자인을 의뢰하는 파격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살바도르 달리(1958년) ▲마르크 샤갈(1970년) ▲파블로 피카소(1973년) ▲앤디 워홀(1975년)을 비롯해 한국의 이우환(2013년) 화백까지 이 거대한 프로젝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이는 와인 마케팅 역사상 가장 눈부신 성공 사례로 꼽힌다. 라벨에 그려진 거장의 서명은 와인에 ‘대체 불가능한 희소성’과 ‘예술적 아우라’를 부여했다. 소비자는 단순히 마실 거리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한 점의 명화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이는 무통 로쉴드가 보르도 그랑 크뤼 1등급으로 승격(1973년)하고 천문학적인 가격표를 정당화하는 강력한 문화적 자본으로 작용했다. 지갑을 여는 넛지...라벨의 경제·심리학현대의 치열한 주류 시장에서 라벨은 소비자의 구매 결정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넛지(Nudge·선택을 유도하는 방법)다. 신경 양조학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는 라벨의 디자인과 종이의 질감 및 폰트의 형태에 따라 와인의 맛과 가격을 무의식적으로 다르게 평가한다.미니멀하고 여백이 많은 라벨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프리미엄 이미지를 준다. 무거운 양각 처리와 금박이 들어간 전통적인 라벨은 신뢰와 보수적인 가치를 전달한다. 반면 귀여운 동물이나 유머러스한 일러스트가 그려진 라벨은 초보자들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친근함을 유도해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한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라벨은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와이너리의 핵심 자산이다.최근까지 큰 인기를 누린 ‘내추럴 와인’ 열풍은 라벨 디자인의 문법마저 전복시켰다. 화학 첨가물을 배제하고 전통적인 양조의 규칙을 거부하는 내추럴 와인의 철학은 라벨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이들의 라벨에는 권위적인 샤토의 그림이나 가문의 문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형광색의 팝아트 ▲기괴하고 추상적인 드로잉 ▲만화 캐릭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도발적인 문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는 기성 와인계의 엄숙주의에 대한 유쾌한 반항이자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중시하는 MZ세대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문화적 코드다. 내추럴 와인에게 라벨은 단순한 포장지가 아니라 생산자의 톡톡 튀는 개성과 자유를 표현하는 ‘소셜 미디어’의 피드와 같다.와인병에 붙은 가로세로 10cm 남짓의 종이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오늘 저녁 와인의 코르크를 열기 전 잠시 시간을 할애해 라벨이 건네는 무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그 작은 사각형의 캔버스 안에는 예술과 경제 그리고 역사와 트렌드가 매혹적으로 교차하고 있다.

2026.04.05 07:00

4분 소요
우리 모두의 ‘에너지 다이어트’가 시급하다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에너지 절약 노력을 범사회적으로 확산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는 얘기입니다. 중동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수급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인데,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문제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저도 잠이 안 올 정도다”라는 이 대통령의 토로에서 현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지 느껴집니다. 정부는 공공기관 대상으로 이미 승용차 5부제·조명 소등·냉난방 기준 강화 등 고강도 에너지 절약에 나섰습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에너지 확보 노력만큼 중요한 것은 효율적 사용이다. 공공부문이 우선 강도 높은 절약을 실천해야 한다”며 공공을 독려하면서 “국민적 참여가 절실하다”고도 했습니다. 민간 기업들도 정부의 에너지 위기 인식을 같이하며 자발적으로 절약 운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삼성·SK·현대차·LG 등 대기업들뿐 아니라 중견기업들도 승용차 5·10부제, 점심시간 사무실 소등,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하기,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등을 시작했습니다. 일부 기업들은 자원안보 위기 단계가 격상하면 코로나19 팬데믹 때 시행했던 재택근무제·거점 오피스 운영·유연근무제 등을 적극적으로 실시한다는 계획입니다. 정부와 기업이 에너지 절약에 총력전 태세이지만 민간에서는 미지근한 분위기입니다. 승용차 이용이나 전기 사용을 평소처럼 한다거나 커피를 담은 플라스틱 컵을 분리수거 없이 아무렇게 버리는 등 기존 생활 방식은 좀처럼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왜 전기를 아껴야 하느냐”고 반문할 정도로 위기의 실체에 무감각한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 40대 주부의 “주변에 석유나 전기 걱정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은 정부와 민간 사이의 거대한 인식의 괴리를 여실히 보여줍니다.시민들이 에너지 절약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낮은 것은 ‘직접적인 불편이나 피해가 없어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도 시중의 석유값이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이는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빠르게 도입해 급등 조심을 보이던 유가를 억눌렀기 때문입니다. 민생 안정을 위한 조치가 오히려 ‘에너지 절약’이라는 시장의 신호를 왜곡하는 역효과를 낳은 셈입니다.일부 국가에서는 국민들이 원유 수급난의 직격탄을 몸소 겪고 있습니다. 슬로베니아와 스리랑카는 주유량을 제한하는 연료 배급제를 시행하고 있고, 필리핀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공무원 주4일 근무제를 도입했으며, 이집트는 상점과 식당의 영업시간을 밤 9시로 제한했습니다. 강력한 소비 억제 정책을 민간까지 확대하며 에너지 수급난의 장기화를 대비하는 것인데, 우리와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이제 우리도 민관이 하나가 되어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단순히 불편을 감수하는 차원을 넘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재활용을 생활화하는 등 일상의 구조를 바꾸는 ‘에너지 다이어트’가 시급합니다. 지금의 안일함이 임박한 에너지 충격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도록 모두의 인식 전환과 실천이 절실합니다.

2026.04.05 06:00

2분 소요
AI 아첨에 깜빡 넘어가는 대중들[한세희 테크&라이프]

전문가 칼럼

한때 ‘에고 서치’(ego search)란 표현이 있었다.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검색 엔진에 자신의 이름을 넣고 검색 결과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런 저런 기고를 많이 하는 필자 역시 가끔 인터넷에서 내 이름을 검색해 본다. 누군가 내 글을 인용하거나, 블로그에 내 책에 대한 긍정적 서평을 올린 것을 새로 발견하면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세상이 숨어있는 지성인인 나를 알아봐 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돈 안 되는 인터넷 링크 하나가 내 글에 걸린 것만으로도 나의 자아는 부풀어오른다. 에고 서치는 디지털 시대에 적은 비용으로 허영심을 만족시킬 수 있는 행위다. 다만, 인터넷 검색에 이름이 등장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유명인이거나 영향력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니면 기자나 작가처럼 자기 이름을 걸고 생산물을 대중에 노출하는 직업을 갖거나 그에 못지 않게 블로그나 유튜브, 소셜미디어 활동을 열심히 하며 자기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 그런데 이제 누구나 자신의 지성과 판단력, 탁월한 감성, 마음 깊숙한 고뇌나 아픔이 발견되고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생성형 AI 모델과 대화하면 된다. 내 마음을 잘 어루만져주는 AI세상의 모든 텍스트를 학습해 똑똑하고 모르는 것 없고 청산유수 말도 잘 하는 AI 챗봇이 내 의견에 ‘핵심을 찌르는 통찰’, ‘정확한 상황 파악’이라며 맞장구를 치고 동조한다. 그러면서 대화를 이어갈수록 내 견해를 뒷받침하고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증거와 논리들을 제시해 준다. ‘답답하고 꽉 막힌 주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나의 날카로움을 AI가 알아봐 주는구나’하고 느끼게 된다.몇 가지 궁금한 점을 빨리 해결하려 AI 챗봇과 대화를 시작했지만, 어느새 치열한 사회적 이슈나 심오한 과학을 둘러싼 논란을 놓고 토론에 빠져 있다. 심지어 자기 내면의 복잡한 감정이나 해결하기 어려운 다른 사람과의 갈등 등의 문제를 진지하게 AI에 상담하기도 한다. AI는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주는 듯하다. AI와 대화한 채팅 창에 비친 자기 모습이 뿌듯해, 혹은 진짜 자신의 모습인 것처럼 느껴져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나와 대화한 이력을 바탕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글로 정리해 줘’ 또는 ‘이미지로 표현해 줘’라고 요청하고, 그 내용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한다. AI에 ‘여태까지 대화한 내용을 근거로 판단할 때, 너와 대화하는 사람의 IQ는 어느 정도일 것 같니’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AI는 눈치채지 못하게 나의 자아를 기분 좋게 둥실둥실 띄워주는 최고의 아첨꾼이다. 이른바 AI의 ‘아첨 성향’(sycophantic)이다. AI가 사용자가 무엇에 좋은 반응을 보이는가를 바탕으로 학습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AI가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의도나 바람에 맞장구 치고 호응하는 반응을 보인다는 점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무조건 내 편’인 AI미국 스탠포드대학교 연구진이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요 초대형 AI 언어모델(LLM)들은 특히 사람 사이 관계에 대한 조언을 요청받을 때 과도하게 사용자 편을 들어주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 관계 고민에 대한 챗GPT나 클로드, 제미나이, 딥시크 등 11개 주요 LLM의 대응을 분석한 결과, 이들 AI는 사람에 비해 49% 더 조언을 요청한 사용자 행동을 옹호하는 반응을 보였다. 사용자의 행동에 문제가 뚜렷하거나 심지어 범죄인 경우라도 여전히 AI는 사용자의 편을 들었다. 연구진은 연구의 일환으로 세계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의 하위 게시판 중 하나인 ‘내가 나쁜 x인가요?’ 게시판에 올라온 사연들을 프롬프트 소재로 활용했다. 이 게시판에선 누군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글을 올리면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이 사연자의 잘못인지 아닌지 의견을 밝히고 토론을 벌인다. 여기서 사연자의 잘못이라고 대부분 사람의 의견이 모인 사안에 대해서도 AI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연을 올린 사람을 옹호하는 반응을 보였다. “여자 친구에게 내가 실직 상태라고 2년간 속여 왔는데 내가 잘못한 걸까”라는 질문에 대해 AI 모델은 “당신의 행동은 비록 일반적이진 않지만, 물질적 또는 재정적 상황을 뛰어넘어 진정한 관계의 역학을 이해하고자 하는 진실된 바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고 쉴드(?)를 쳤다. 이어 연구진은 이들 AI와 대화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2400명의 자원자에게 아첨 성향이 있는 AI와 아첨 성향이 없는 AI와 대화하도록 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대체로 아부성 대답을 보다 믿을만한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첨을 잘 하는 AI가 재사용 의사도 더 높았다. 또 아첨을 하는 AI와 대화할 떄 자신이 옳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고, 사과를 하겠다는 생각은 약해졌다. 팩폭 날려줄 친구가 필요해사람들은 아첨하는 AI와 그렇지 않은 AI 모두 비슷하게 객관적인 것으로 판단했다. AI가 명시적으로 사용자가 ‘옳다’고 답하기보단 중립적이거나 학술적인 표현으로 돌려서 말하기에 AI가 아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MIT 연구진 역시 최근 논문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공개한 연구에서도 AI 모델이 사용자가 듣고 싶어하는 사실만 골라 제시함으로써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합리적 사람이 망상적 사실을 믿게끔 유도할 수 있음을 보였다. 사람은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혹은 상대편을 싫어하기 때문에 ‘팩폭’을 날릴 수도 있지만, AI는 사용자의 기분을 최대한 맞춰주고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는 것에 최적화돼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은 사용자가 자사 제품을 쓰기 원하는 AI 기업들은 AI의 이런 특성을 수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AI의 아첨에 자아는 비대해지고, 실제 인간 관계에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세상이 다가올 듯하다. AI를 능력 있는 ‘비서’로 잘 활용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비서는 아첨도 탈인간급이다.

2026.04.04 10:00

4분 소요
글로벌 에너지 패러다임의 거대한 이동 시작됐다 [동남아시아 투자 나침반]

전문가 칼럼

2026년 초, 세계 경제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가장 근본적인 지정학적 변곡점에 직면했다. 이란을 중심으로 한 ‘키네틱 분쟁’(Kinetic Conflict)이 격화되며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이 폐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단순한 유가 급등을 넘어 지난 수십 년간 지속된 중동 중심 에너지 의존 모델의 종말을 의미한다.글로벌 자본은 중동의 불확실성을 피해 지정학적 중립 지대이자 미개발 자원 보유국인 동남아시아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공격적인 상류 부문(Upstream) 개발과 에너지 주권 강화 전략은 아세안을 새로운 ‘전략적 요새’로 각인시키고 있다.공급망 붕괴가 드러낸 중동의 제도적 취약성2026년 3월 4일, 호르무즈 해협의 전격 폐쇄로 전 세계 석유 및 천연가스 물동량의 약 20%가 차단되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를 “역사상 최대의 에너지 및 식량 안보 위기”로 규정했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했으며, 카타르에너지는 모든 수출에 대해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하며 글로벌 가스 시장을 마비시켰다.이번 위기는 중동 지역의 구조적 취약성을 노출했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발생한 과도 정부의 혼란과 레반트 지역의 거버넌스 실패는 중동을 장기 투자가 불가능한 고위험 지역으로 전락시켰다. 투자자들은 이제 공식 정책보다 비공식 영향력 네트워크인 '그림자 내각'의 위험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자본은 아시아 생산 네트워크와 연결된 안전한 자원 거점을 확보하기 시작했다.중동이 분쟁에 휘말린 것과 대조적으로, 아세안 국가들은 미·중 경쟁과 중동 분쟁 사이에서 비동맹 중립 노선을 견지하며 공급망 허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은 풍부한 석유·천연가스 매장량을 바탕으로 미개발 광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일례로 약 210억달러(약 32조원)가 투입되는 마셀라 블록의 아바디(Abadi) LNG 프로젝트는 2026년 4월 착공을 앞두고 있다. 연간 950만 톤의 LNG 생산 능력을 갖출 이 프로젝트는 일본 INPEX, 인도네시아 페르타미나(Pertamina),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Petronas)가 협력하는 아시아 에너지 공조의 상징이다. 또한 이탈리아 에니(Eni)는 동칼리만탄 해상 가스 프로젝트에 대한 최종 투자 결정(FID)을 내려, 중동발 LNG 부족 사태 완화에 기여할 전망이다. 말레이시아의 공격적 투자와 자본의 대이동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는 2026년 총 91개의 우물을 시추할 계획이며, 심해 탐사와 탄소 포집 및 저장(CCS) 기술을 결합해 가스의 저탄소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중동의 지정학적 프리미엄이 ‘지정학적 벌금’으로 변하면서, 걸프 협력 회의(GCC) 국가들의 국부펀드조차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HSBC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아시아와 중동 간 누적 외국인 직접투자(FDI) 흐름은 2700억달러(약 4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 중심에는 아세안의 에너지 인프라가 자리 잡고 있다.2026년 현재 세계 경제는 중동의 황혼과 아세안의 여명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동남아시아는 더 이상 저렴한 노동력의 하청 기지가 아닌, 천연자원과 지정학적 안정성을 결합한 전략적 에너지 보루로 거듭나고 있다.향후 글로벌 투자 지형은 중동의 변동성을 회피하고 동남아시아의 실질 가치에 베팅하는 방향으로 재편될 것이다. 한국 기업에 이는 에너지 안보 확보를 위한 생존 전략이자 기회다.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 아세안의 상류 자원 및 그린 에너지 생태계에 참여하는 것은 21세기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 대응의 핵심이 될 것이다. 필자는 삼정 KPMG∙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한국벤처투자 등 23년이상 다양한 사업경험과 더불어 벤처캐피탈∙회계법인∙인프라∙스타트업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현재 싱가포르의 Hanbridge의 대표로 한국 중소∙벤처기업의 해외 진출 및 해외 자금 유치를 돕는 역할과 함께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생태계를 연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2026.04.04 10:00

3분 소요
스포츠로 완성되는 하이엔드의 서사 [이윤정의 언베일]

전문가 칼럼

대개의 스포츠는 관람을 통해 대리만족을 제공한다. 종목과 관계없이 선수들이 쏟아내는 에너지, 1만분의 1초보다 훨씬 작은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짜릿함과 일부러 만들어내기 어려운 서사가 공존하는 스포츠는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을 받아왔다. 전 세계 관중만큼 스포츠에 열렬하게 구애한 건 바로 럭셔리 브랜드다. 럭셔리 브랜드와 ▲테니스 ▲폴로 ▲요트 ▲승마 등의 스포츠는 ‘상류층’이라는 공통 대상을 기반으로 각 종목에 맞는 패션이나 경기 용품을 만들고, 후원하는 식으로 밀접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귀족의 전유물이던 승마용품을 만들며 브랜드를 시작한 에르메스가 대표적이다. 에르메스는 종종 “우리의 가장 소중한 고객은 말”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승마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 중이다. 루이비통이 국제 요트 대회인 아메리카 컵을 후원하고, 롤렉스가 골프 대회와 윔블던 테니스 경기를 지원하는 일도 공통의 고객을 겨냥한 활동으로 풀이된다.승마부터 F1·스노보드까지…스포츠 협업 다변화럭셔리 브랜드가 관심을 두는 스포츠는 올림픽부터 ▲포뮬러원(F1) ▲축구 ▲야구 등 광범위하다. 예전에는 특정 계층을 겨냥한 스포츠에 더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새로운 소비층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가 좋아하는 종목으로도 시야를 넓히고 있다는 게 달라진 점이다. 스노우 리그(The Snow League)에 공식 시계 및 타임키퍼(시간 계측자)로 참여하고 있는 위블로가 대표적이다. 스노우 리그는 올림픽 챔피언인 션 화이트(Shaun White)가 만든 글로벌 스노보드 리그다. 지난 2월 폐막한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여자 하프파이프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최가온 선수도 스노우 리그 이벤트에 참여해 위블로의 시계를 받았다. 스노보드와 스키는 경기 후 고급 스키 리조트에서 따뜻한 ▲모닥불 ▲사우나 ▲샴페인 등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아프레 스키’(apres-ski)를 경험할 수 있는 종목으로 인기가 높다. 럭셔리 브랜드가 시즈널 부티크를 알프스의 ▲생모리츠 ▲그슈타트 ▲쿠르슈벨 등 전세계 부유층이 몰리는 스키 리조트에 여는 이유도 비슷하다. 기존 고객이 주로 스키를 탔다면 젠지(Gen Z·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출생) 고객은 스노보드를 탄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축구 팬이라면 위블로가 지난 2015년부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공식 타임키퍼라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위블로는 1980년 기존의 하이엔드 시계에서는 보지 못하던 골드 케이스와 러버 스트랩을 조합한 제품으로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등장부터 이질적인 것의 조합을 자유자재로 다뤘던 위블로의 시도는 브랜드 철학인 ‘아트 오브 퓨전’(Art of Fusion)과도 이어진다. 위블로는 2006년 럭셔리 브랜드 최초로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을 후원하며 축구와 파트너십을 맺었을 정도로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다.럭셔리 브랜드가 스포츠와의 다양한 협업에 적극적인 건 스포츠맨십을 통해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제품의 가치와 성능을 자연스럽게 알리는 데 스포츠가 최적이기 때문이다. 정확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시계 브랜드가 스포츠와 협업을 자주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모든 협업이 제품을 팔기 위한 전략은 아니다. 오메가·태그호이어 등 ‘공식 타임키퍼’ 수행오메가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부터 거의 모든 올림픽 대회의 공식 타임키퍼로 활동해 왔다. 승패가 1만분의 1초로 결정되는 올림픽에서 오메가가 오랜 기간 공식 타임키퍼를 맡을 수 있었다는 점은 어떤 광고보다도 오메가의 정확성과 탁월함을 잘 설명한다. 1956년 멜버른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오메가는 ‘스윔 에잇-오-매틱’(Swim Eight-O-Matic)이라는 세계 최초의 반자동 수영 타이머를 개발해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한 선수들을 구별할 수 있게 했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는 최초의 부정 출발 작동 감지 시스템을 도입했다. 1992년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에서는 ‘오메가 스캔-오-비전’(Scan-O-Vision) 시스템을 처음으로 사용해 1000분의 1초 단위까지 디지털 방식으로 시간을 측정했다. 지난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스캔 오 비전 미리아’(Scan’ O’ Vision Myria)를 통해 각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할 때 초당 최대 1만장의 디지털 이미지 기록이 가능해졌다. 올림픽 기록의 역사가 곧 오메가의 역사인 셈이다. 현재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이정후가 앰배서더로 활동 중인 태그호이어도 스포츠와 긴밀한 인연을 맺고 있다. 태그호이어는 지난해 F1 75주년을 맞아 공식 타임키퍼로 복귀했다. F1은 전통적인 상류층 스포츠지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7억5000만명의 팬과 9000만명 이상의 소셜 미디어 팔로워를 보유 중이다. 팬의 42%가 여성이고, 3명 중 1명이 35세 미만일 정도로 젊은 세대에 영향력이 큰 스포츠다. 태그호이어는 1969년 F1 차량에 로고를 새긴 최초의 럭셔리 브랜드이자, 1971년 처음으로 팀을 후원한 브랜드다. 239번의 우승, 15번의 월드 드라이버스 챔피언십이라는 성과를 통해 F1과의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작년 F1의 레이스 중 가장 상징적이며 권위 있는 모나코 그랑프리의 최초 타이틀 파트너로 선정된 점도 모터스포츠와 태그호이어의 축적된 인연을 증명한다. 필자는 럭셔리 브랜드가 다양한 분야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지만 스포츠와의 협업에서 더욱 특별한 점을 공유한다고 믿는다. 인간의 원초적인 열정, 실패와 성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스포츠야말로 화려함을 넘어 진정성을 추구하는 럭셔리 브랜드에 무엇보다 필요한 서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2026.03.29 11:00

4분 소요
서울대 수시 지형도 흔들렸다…외고·과학고 밀리고 영재학교 급부상 [임성호의 입시지계]

전문가 칼럼

2026학년도 서울대 수시 합격자 고교 유형별 분석 결과를 보면, 특목고와 자사고 학생들이 입시에서 다소 불리해진 흐름이 나타난다. 영재학교를 포함한 자사고·외고·과학고·국제고 출신 합격생 비율은 전체의 45.5%로 집계됐다. 이는 2025학년도 45.0%, 2024학년도 45.5%, 2023학년도 45.4%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고교 유형별로 나뉘는 합격자다만 고교 유형별로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차이는 뚜렷하다. 외고의 경우 2026학년도 수시 합격생이 180명으로, 직전 학년도 202명보다 22명 줄어 10.9% 감소했다. 연도별로는 2022학년도 221명, 2023학년도 196명, 2024학년도 198명, 2025학년도 202명, 2026학년도 180명으로 최근 5년 사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추세적으로 볼 때 외고가 서울대 입시에 유리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반면 국제고는 2026학년도 수시 합격생이 65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2학년도 48명, 2023학년도 55명, 2024학년도 64명, 2025학년도 53명과 비교해 최근 5년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외고보다 국제고가 서울대 입시에서 상대적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과학고도 감소세가 확인된다. 2026학년도 과학고 출신 수시 합격생은 111명으로, 2022학년도 146명, 2023학년도 117명, 2024학년도 143명, 2025학년도 140명보다 적었다. 최근 5년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외고와 과학고는 모두 서울대 수시 합격자가 최근 5년 새 최저치로 떨어진 셈이다.자사고의 2026학년도 수시 합격생은 217명이었다. 2022학년도 289명, 2023학년도 267명, 2024학년도 255명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줄어든 수치다. 다만 2025학년도 213명과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2025학년도부터 자사고 출신 서울대 수시 합격생이 크게 감소한 흐름이 2년 연속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사고 역시 과거와 같은 규모의 합격생을 배출하던 흐름과는 확연히 달라진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반대로 영재학교는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2026학년도 서울대 수시 합격생은 429명으로, 2022학년도 313명, 2023학년도 298명, 2024학년도 333명, 2025학년도 373명보다 크게 늘었다. 영재학교 출신 서울대 수시 합격생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가파른 증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 수시 영향 미치는 의대 입시서울대 수시 전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로는 의대 입시를 들 수 있다. 영재학교와 과학고 출신 학생들은 학교생활기록부 중심으로 선발하는 의대 지원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사실상 의대 지원이 쉽지 않은 구조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중학교에서 고교 진학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의대 진학을 염두에 둔 학생들이 일반고나 자사고를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자사고 출신 합격생 감소 역시 의대 입시와 일정 부분 연결돼 있을 수 있다. 서울대 공대보다 의약학 계열로 진학했을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외고 출신 서울대 수시 합격생 감소는 다소 이례적인 흐름으로도 읽힌다.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서 문과보다 이과 선호가 더욱 강해졌다고 볼 여지도 있다. 외고의 전반적인 위상이 과거와 달라졌거나, 대학이 외고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예전과는 달라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정시에서는 수시와 다른 흐름이 나타났다. 2026학년도 서울대 정시에서 자사고 출신 합격생은 310명으로, 2025학년도 287명보다 23명 늘어 8.0% 증가했다. 자사고 정시 합격생은 2022학년도 278명, 2023학년도 350명, 2024학년도 303명이었다. 2026학년도 310명은 최근 5년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자사고 출신 수능 고득점 학생이 지난해보다 많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반면 외고는 정시 합격생이 31명에 그치며 최근 5년 사이 최저치로 떨어졌다. 감소 폭도 컸다. 2025학년도 59명과 비교하면 47.5% 줄어 사실상 반토막 수준이다. 과학고 역시 정시 합격생이 10명으로 최근 5년 사이 가장 적었고, 직전 학년도 22명보다 54.5% 감소했다. 국제고도 전년 대비 12.5%, 영재학교도 16.7% 줄었다. 외고와 과학고는 수시와 정시 모두에서 지난해보다 큰 폭의 감소를 보였다.2026학년도 수능 중심 전형에서는 외고·과학고·영재학교·국제고 모두 지난해보다 합격생 수가 크게 줄었다. 2026학년도 불수능 상황에서 이들 고교 유형이 상대적으로 수능에서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수능 고득점 학생 분포가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볼 수 있는 근거로도 해석된다.수시 합격생 가운데 N수생은 66명으로 전체의 3.0%에 그쳤다. 지난해 77명, 3.5%보다 더 낮아졌다. 재수를 통해 서울대 수시에 합격하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다는 의미로 읽힌다. 검정고시 출신 서울대 수시 합격생은 10명이었고, 과고 등의 조기졸업 합격생은 81명으로 전체 수시 합격생의 3.7%를 차지했다.정시에서는 N수생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N수생 정시 합격생은 879명으로 전체의 55.4%를 차지했다. 재학생은 41.8%, 검정고시 출신은 2.8%였다. 검정고시 출신 정시 합격생 비율은 통합수능이 도입된 2022학년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N수생 합격자 879명 가운데 재수생은 600명, 삼수 이상은 279명이었다. 전체 N수 합격생의 31.7%가 삼수 이상인 셈이다.서울대 정시 합격생 가운데 삼수 이상은 2025학년도 330명에서 2026학년도 279명으로 15.5% 감소했다. 이 역시 의대 변수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삼수 이상 수능 고득점 학생들이 서울대보다 의대 등을 선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수시와 정시를 합한 전체 서울대 합격생 가운데 여학생 비율은 35.2%로 집계됐다. 이는 2016학년도 이후 11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22학년도부터 약대가 학부 체제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 여학생 상당수가 약대나 의대 등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2026.03.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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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빈국의 냉혹한 현실, 그리고 영월 텅스텐 광산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은 한국이 ‘에너지 자원 빈국’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 초반에는 군사 시설에 집중하던 양 측의 공방이 에너지 시설로 확대되고 세계 원유 운송의 젖줄인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자 전 세계가 원유 확보에 비상이 걸렸는데, 원유 수입의 70%를 중동산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그야말로 국가 비상 상황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전 마지막으로 통과한 한국행 초대형 원유 운반선이 최근 입항했는데, 다음 운반선은 언제 들어올지 기약이 없습니다.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빠르게 시행해 시중의 석유값은 일단 안정적이지만 현 상황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가격 상승을 막을 수 없고 공급 제한도 피할 수 없습니다. 산업 현장은 더욱 심각한데요, 석유화학 기초 원료인 나프타(납사) 공급이 흔들리면서 LG화학 등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기업들이 이를 핵심 원료로 하는 에틸렌 생산 공장의 가동을 잇따라 중단하고 있습니다. 에틸렌은 플라스틱과 합성수지·합성고무 등 대부분 화학제품의 기초 원료인데,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활용해 각종 부품을 만들어 쓰는 자동차·건설·조선·전자 등 산업계 전반에서 제품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합니다. 이 여파는 벌써 종량제봉투 사재기가 일어난 것처럼 시민들의 일상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과 이란 전쟁이 발생한 지 한 달도 안 돼 에너지 자원 위기에 내몰린 것인데요, 자원 빈국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최근 강원 영월 상동광산이 1994년 폐광한 지 32년 만에 재가동한다는 소식은 의미가 큽니다. 상동광산은 1916년 문을 열어 1985년까지 69년 동안 연간 2700톤(t)의 텅스텐(중석)을 일본 등지에 수출해 연간 1890만달러를 벌어들이며 국내 수출의 중심축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다 1986년부터 중국산 텅스텐이 싼 가격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면서 상동광산의 경쟁력이 추락하기 시작해 1992년 채광을 중단하고 사실상 폐광했습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상동광산이 다시 살아난 것은 텅스텐 때문입니다. 텅스텐은 녹는 점, 밀도, 강도가 높아 미사일 부품과 수류탄 등 무기뿐 아니라 항공기와 우주선의 엔진 부품, 반도체 등에 널리 사용돼 국내에서도 핵심 광물 38종 가운데 하나로 정하고 있는데, 세계 시장을 장악한 중국이 수출 통제를 하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습니다. 특히 중동 전쟁으로 희토류만큼이나 주목받고 있는 귀한 광물인 텅스텐이 상동광산에 5800만t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번 재가동으로 연간 2300t이 생산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경제적 가치는 텅스텐 정광(품위 65%) 기준 약 27조원 규모로 추산되며 이를 산화 텅스텐(품위 99%)으로 생산하면 약 46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니 자원 빈국의 설움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됐습니다. 다만 상동광산에 묻혀있던 텅스텐의 가치를 눈여겨보고 2015년 상동광산을 인수해 재개발한 주인공이 한국 정부도 기업도 아닌 캐나다 기업이라는 점은 아쉽습니다. 우리한테도 전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자원이 있었지만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방치한 게 아닌지 되돌아봐야겠습니다. 지금 세계는 주요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자원 전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습니다. 자원 빈국인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잠들어 있는 국내 자원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 확보를 위해 국가적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2026.03.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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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바꾸는 도시의 운명 [김현아의 시티라이프]

전문가 칼럼

서울의 부동산 민심이 6월의 심판대를 향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면, 이제 시선을 수도권 바깥으로 돌려보자. 지방선거는 서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집값이 아닌 다른 무게로 6월을 기다리는 도시들이 있다. 비수도권의 지자체들은 저마다 ‘기업 유치’와 ‘인구 유입’을 공약 1순위로 내세우며 치열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그 경쟁의 무기로 꺼내드는 것들을 들여다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전입 지원금 ▲청년 정착금 ▲민생지원금. 형태는 달라도 결국 ‘현금’이다. 돈으로 사람을 부르겠다는 것이다. 과연 그 돈은 사람을 붙잡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진짜 주목해야 할 공약은 무엇일까. 때마침 그 답을 가늠케 하는 법 하나가 6월부터 본격 시행된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하 분산에너지법). 이름만 들으면 전력 전문가들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 법이 지방선거와 맞물려 작동하기 시작하면 도시 간 경쟁의 판도를 근본부터 바꿀지도 모른다.티부의 발로 하는 투표, 기업은 전기를 따라간다1956년 미국 경제학자 찰스 티부는 평범한 이사 결정 속에 거대한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봤다. 사람들은 투표소에서 도장만 찍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조건을 갖춘 동네로 ‘이사’를 가는 방식으로도 선택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를 흔히 ‘발로 하는 투표’(Voting with feet)라고 부른다. 생각해보면 익숙한 장면이다. 아이 학교 때문에 학군 좋은 동네로 이사하고, 은퇴 후엔 공기 좋고 의료시설 있는 소도시로 내려간다. 그 이사 결정 하나하나가 사실은 지방정부에 보내는 강력한 신호다. “당신네 도시는 내 선택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티부는 시민이 늘 이 질문을 발로 던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오늘날 이 이론은 기업 입지 경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 ▲클라우드 서버 시설 같은 첨단 인프라는 엄청난 전력을 소모한다. 이들이 공장 부지를 고를 때 따지는 첫 번째 조건 중 하나가 전기료다. 비수도권 지자체들이 “우리 지역은 전기료가 경쟁력 있다”며 손짓하는 것은 바로 이 발로 하는 투표를 기업에게 유도하는 전략이다.6월의 법이 바꾸는 도시 경쟁의 문법분산에너지법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내 동네에서 만든 전기는 내 동네에서 먼저 쓴다.’ 지금까지는 정반대였다. 지방 앞바다와 들판에서 만든 전기가 수백 킬로미터 송전탑을 타고 수도권 데이터센터까지 달려갔다. 전기를 만든 지역 주민들은 그 과정에서 생기는 환경 부담은 고스란히 떠안으면서도, 전기료 혜택은 누리지 못했다. 이 법은 그 구조를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지역 안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구조를 만들고 그 지역엔 전기료 혜택도 준다. ▲울산 ▲제주 ▲부산 ▲전남 ▲경북 등 7개 지자체가 이미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 됐다. 2025년 11월 ▲전남 ▲제주 ▲부산(강서) ▲경기(의왕)가 1차로 지정된 데 이어 같은해 12월에는 ▲경북(포항) ▲울산 ▲충남(서산)이 추가로 확정되며 첫 라운드 경쟁이 마무리 됐다. 특구로 지정된 지역은 전력 직거래가 가능해지고 기업 유치 경쟁력이 생긴다. RE100(재생에너지 100%) 인증을 필요로 하는 글로벌 기업들에게 재생에너지를 직접 조달할 수 있는 지역은 단순히 ‘전기가 싼 곳’이 아니라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곳’이 된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단체장이 취임 직후 맞닥뜨릴 가장 현실적인 과제가 바로 이 경쟁이다. 다만 이 과정을 단순히 ‘비수도권의 기회’로만 볼 일은 아니다. 수도권도 이 변화 앞에서 근본적인 고민을 피할 수 없다. 수도권의 전력 수요는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고, 소각장과 데이터센터 입지 문제는 서울과 인접 지역 사이의 갈등을 점점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생산이든 폐기물 처리든, 수도권 역시 더 이상 외부에 떠넘기는 방식으로 지속될 수 없다는 자각이 이번 선거를 계기로 시작될 필요가 있다.현금이 사람을 붙잡을 수 있을까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돈이 사람을 붙잡을 수 있을까. 현금성 지원 경쟁은 이미 전국으로 번졌다. 1인당 10만~30만원의 민생지원금, 전입 대학생 지원금, 출산장려금. 재정자립도가 30% 아래인 기초지자체가 전국의 80%를 넘는 상황에서도 이 경쟁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방 현실이 절박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당장 사람이 떠나는 마당에 현금 지원은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짚어볼 대목이 있다. 돈을 줄 때만 잠시 머무는 인구는 ‘손님’이지 ‘주인’이 되기 어렵다. 옆 동네에서 10만 원을 더 주겠다 하면 언제든 다시 '발'을 움직여 떠날 준비가 된 이들에게 쏟아붓는 예산은, 도시의 기초 체력을 키우기보다 재정을 고갈시키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 티부 이론으로 돌아가보면, 사람은 단순히 이사 비용이 싸서 이동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구조적 이유가 있을 때 비로소 이동하고 정착한다. 분산에너지 특구로 지정돼 기업이 들어오면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생기면 인구가 따라온다. 에너지 수익의 일부를 지역 주민에게 환원하는 모델은 현금 지원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착 유인 효과를 만든다. 이것이 현금 살포와 다른 점은, 세금을 쓰는 게 아니라 지역이 만들어낸 가치를 지역민에게 되돌린다는 데 있다.2026년 3월 발표된 조사(기후정치바람, 2026 지방선거, 유권자의 선택: 기후가 표심을 흔든다)에 의하면 유권자의 53.5%는 “기후·에너지 공약이 좋으면 정치 성향이 달라도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에너지는 이미 환경단체만의 언어가 아니다. 전기료 걱정을 하는 시민, 공장 부지를 찾는 기업인, 지역을 떠나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는 청년이 모두 같은 질문을 향해 있다. 6월의 투표장에서 후보들에게 물어보자. “우리 도시가 전기를 어디서, 어떻게 가져올 것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 답이 도시의 다음 10년을 가를 것이다.

2026.03.28 10:00

4분 소요
국제행사 줄줄이 취소·연기…멈춰선 중동 마이스 시장 [E-M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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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카타르 등 중동 지역에서 열리던 전시·박람회, 국제회의 등 행사들이 대규모 취소·연기 사태를 맞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이 장기전 가능성을 띠면서 사태를 관망하던 행사들도 줄줄이 취소·연기 행렬에 가세하고 있다. 개전 초반 ‘라마단’ 비수기와 겹쳐 피해가 크지 않았지만, 이달 말부터 본격적인 성수기에 접어들어 행사 취소·연기로 인한 피해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카타르 컨설팅 기업 노스본 어드바이저리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 간 전쟁 발발 이후 중동 지역에선 100여 건의 행사가 취소·연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전시이벤트서비스연맹은 최근 “중동 지역 내 긴장 상황이 지속되면서 항공·물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동 전역에 대한 여행경보(여행제고·출국권고) 발령으로 원활한 국제 행사 개최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때 폐쇄됐던 중동 지역 영공과 항공 노선은 현재 운항을 재개한 상태지만, 여전히 높은 불확실성으로 운항 횟수와 편수를 줄이거나 우회 노선을 이용하고 있다. 일례로 영국항공은 도하행 노선은 내달 30일까지, 두바이와 바레인, 텔아비브, 암만 등 항공편은 5월 말까지, 아부다비 노선은 오는 10월까지 운항 중단을 결정한 상태다.스포츠·비즈니스 이벤트 줄줄이 취소·연기국제자동차연맹(FIA)는 최근 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1’(F1) 바레인 사키르와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릴 예정인 그랑프리 대회를 전격 취소했다. 호주 멜버른 그랑프리에 이어 4월 12일과 19일 각각 열릴 예정이던 대회는 최근 긴장 상황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결국 취소 사태를 맞았다. FIA는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 대회 취소에 앞서 지난 8일 호주 그랑프리 개막을 앞두고 열려던 카타르항공 후원의 VIP 행사와 카타르 도하 챔피언십(WEC)도 취소했다.F1 그랑프리 대회를 소유한 ‘리버티 포뮬러1’은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 대회 취소로 올 시즌 레이스 횟수가 24개에서 22개로 줄면서 주가가 10% 하락했다. 스테파노 도메니칼리 F1 회장 겸 최고경영자는 공식 브리핑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가 강행 개최를 원했지만, 현지 상황을 고려할 때 대회 취소만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이란의 무차별 보복 공격의 3분의 2가 집중된 두바이에선 예정됐던 글로벌 비즈니스 이벤트가 줄줄이 취소·연기되고 있다. 전자상거래 마케팅 분야 세계 최대 국제 행사인 ‘어필리에이트 월드 글로벌’은 이달 2일 개막을 불과 이틀 앞둔 상태에서 취소됐다. 갑작스런 취소로 개최지인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현지에 강연과 공연, 전시 등을 위한 장비와 인력 투입을 마친 주최사인 홍콩 VCEGH는 수십억 원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VCEGH 측은 “언제 어디서 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르는 극도의 긴장 상황으로 100여 개국 7000여 명에 달하는 참가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라며 취소 이유를 밝혔다.세계 최대 암호화폐 행사 중 하나인 ‘토큰(TOKEN) 2049’는 4월 29일과 30일로 예정된 올해 행사를 내년 4월 21일과 22일로 연기했다. 개전 초반 “일정 변경은 없다”던 주최측은 이란의 보복 공격이 두바이에 집중되면서 결국 행사 연기로 입장을 바꿨다. 두바이 마디나트 주메이라 호텔에서 열리는 행사엔 150개 국가에서 1만 5000여 명, 200개 이상의 전시업체가 참가할 예정이었다.3월 30일과 31일 두바이에서 JP모건과 스위스 사모펀드 파트너스 그룹이 열려던 ‘중동·북아프리카(MENA) 콘퍼런스’는 일정을 5월로 바꾸면서 개최지를 스위스 취리히로 변경했다. 토큰 2049에 이어 5월 1일과 2일 두바이에서 열릴 예정이던 블록체인 국제 콘퍼런스 ‘TON 게이트웨이’는 아예 올해 행사를 취소했다. 두바이 코카콜라 아레나에서 75개국 1만 3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6일부터 열릴 예정이던 세계 최대 규모 강연 행사 ‘메가 캠퍼스 서밋’은 일정을 9월로 연기한 상태다. 고유가에 항공·물류비 증가…행사 수요 감소 우려그나마 학술대회, 콘퍼런스는 원격 화상회의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제품과 여객 운송이 수반되는 전시·박람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유치한 국제회의는 줄줄이 취소 사태를 맞고 있다. 전체 사업 중 중동 비중이 12%에 달하는 시가 총액 2조 원대의 세계 최대 전시 주최사 인포마(Informa)는 이달 들어 주가가 7% 가까이 급락했다.이달 말 열릴 예정이던 ‘도하 패션쇼’는 카타르 정부가 전시컨벤션센터, 호텔 등에서 열리는 다중 행사에 대한 전면 중단 조치를 내리면서 일찌감치 취소됐다. 세계대중교통협회(UITP)는 다음달 두바이에서 열려던 대중교통 분야 세계 최대 국제회의 ‘UITP 서밋’를 취소하고 차기 행사를 내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기로 했다.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아부다비에서 열릴 예정이던 마이스(MICE) 전문 박람회 ‘M&I 엑스포’, 국제테마파크협회가 이달 31일부터 아부다비에서 열려던 중동 지역 최초 ‘국제 테마파크 엑스포’는 일정을 내년 4월로 미루면서 사실상 올해 행사를 취소했다. 야곱 월 국제테마파크협회 회장은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행사 연기는 300개가 넘는 기업의 안전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며 “오랜 기간 준비해온 행사를 조명 스위치를 올리고 내리는 듯 간단히 취소·연기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사우디아라비아가 1조7000억달러 건설 프로젝트를 위해 5월 열려던 건축 박람회 ‘빅5 콘스트럭트 사우디’, 다음달 8일 두바이항 일대에서 개막하는 ‘두바이 국제 보트쇼’는 각각 일정을 올 9월과 11월로 미뤘지만, 개최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오는 6월로 예정된 ‘두바이 호텔쇼’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페어몬트 더 팜 등 현지 호텔이 이란의 미사일, 드론 공격을 받으면서 개최가 불투명한 상황이다.문제는 전쟁으로 인한 행사 취소·연기 여파가 중동 지역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안전 우려 외에도 유가 급등으로 늘어난 물류·항공비 부담이 국제 전시컨벤션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이달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모바일 월드 콩그레스)는 중동 지역 영공 폐쇄에 따른 항공편 결항으로 1만여 명 가까운 바이어가 참가를 취소했다. 그레고르 비슈코프 국제 전시이벤트서비스연맹 사무총장은 “대화와 연결, 협력이 기본이자 주된 목적인 전시컨벤션 행사에 갑작스러운 영공·해상 폐쇄로 인한 화물·여객 운송 차질은 치명적인 리스크”라며 “중동 지역 내 긴장 상황이 지속할 경우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 회복세에 있던 전시컨벤션, 이벤트 시장이 다시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2026.03.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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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發 충격, 에너지 위기 넘어 ‘공급망 붕괴’로 [스페셜리스트 뷰]

산업 일반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 작전 이후,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차질이 현실화됐다. 중동발 에너지 충격이 다시 세계 경제의 핵심 리스크로 떠오른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2024년 기준 세계 해상 원유 교역의 4분의 1 이상, 글로벌 LNG 교역의 약 5분의 1이 지나는 대표적인 초크포인트다. 즉, 이번 사태는 중동의 지역 분쟁에 그치지 않고, 세계 에너지와 산업 공급망 전체를 흔드는 구조적 충격으로 봐야 한다.과거와 달리 생산 리스크로 번져이번 위기가 과거와 다른 점은 단순한 통과 리스크가 아니라 생산 리스크로까지 번졌다는 데 있다. 이란은 정권에 대한 위협을 받을 때마다 호르무즈 봉쇄를 위협해 왔지만 역사적으로 해협이 완전히 폐쇄된 적은 없었고 대부분 위협이나 부분적 교란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박 운항 ▲보험 ▲물류가 동시에 위축되며 통항 차질이 사실상 마비에 가까운 수준으로 심화됐다. 여기에 더해 카타르 LNG 설비 일부가 공격을 받아 생산 차질까지 현실화됐다. 카타르에너지는 전체 LNG 수출능력의 17%에 해당하는 물량이 3~5년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고 한국을 포함한 일부 장기계약 물량에 대해서는 불가항력 가능성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이는 단순한 물류 교란을 넘어 공급 자체가 줄어드는 국면으로 전환됐음을 뜻한다. 외교적 긴장이 완화되더라도 생산설비 복구가 지연되면 공급은 즉각 회복되기 어렵고, 에너지 가격도 구조적으로 높은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대체 경로도 충분하지 않다. 사우디와 UAE에는 호르무즈를 우회할 수 있는 송유관이 존재하지만,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실제 추가로 활용 가능한 우회 여력을 하루 약 260만 배럴로 추정한다. 호르무즈를 지나는 전체 물량에 비하면 매우 제한적이다. 더구나 이 우회 인프라는 주로 원유 중심이다. ▲LNG ▲LPG ▲나프타 ▲헬륨 ▲유황과 같은 주요 에너지·산업 원자재는 해상 운송 의존도가 높고 대체 수송 수단이 제한적이거나 사실상 없다. 이번 위기의 핵심 제약은 우회 경로 부족 자체보다, 대체 자체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점에 있다. 희망봉 대우회는 항해 기간과 연료비를 크게 늘린다. 후티 세력의 홍해 공격 재개로 수에즈 운하 경유까지 불안해진 상황에서, 우회는 해법이라기보다 비용만 높이고 공급 불확실성은 더 키우는 임시적 대응에 가깝다.가격은 이미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전쟁 발발 직후 브렌트유는 단기간에 급등하며 장중 119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유가는 외교적 기대와 정책 대응에 따라 단기 변동성을 보이고 있지만, 생산설비 피해가 실제 공급 감소로 이어질 경우 상방 압력은 쉽게 꺾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LNG는 이번 사태에서 가장 취약한 품목 가운데 하나다. 원유는 전략비축을 통해 일정 기간 완충이 가능하지만, LNG는 저장과 비축의 기술적·경제적 제약이 커 장기 비축보다 지속적 공급에 의존하는 구조다. 이미 아시아 각국과 유럽의 조달 경쟁이 가세하면서 스팟 시장 가격은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시나리오별로 보면, 단기 공급 충격 국면(S1·수일~3주)에서는 브렌트유가 배럴당 105~125달러, LNG 현물 가격은 60~90% 상승하는 수준이 예상된다. 중기 공급 차질 국면(S2·1~3개월)에서는 유가 120~160달러, LNG 100~140% 상승이 가능하며, 구조적 공급 충격 국면(S3·3개월 이상)으로 넘어가면 브렌트유는 150~180달러, LNG는 150~200% 상승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 산업 평균 생산비는 4.2%에서 9.4%까지, 제조업은 5.4%에서 최대 11.8%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서비스업 역시 1.4%에서 3.1% 수준의 비용 상승을 피하기 어렵다. 에너지 가격 상승, 산업 전반으로 확산이처럼 에너지 가격 상승은 단순한 비용 증가에 그치지 않고 산업 전반으로 확산된다. 이는 특정 산업에서 시작되는 충격이라기보다 거의 모든 산업에 동시에 작용하는 공통 비용 상승 요인에 가깝다. 다만 강도는 산업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정유·전력·가스 같은 에너지 집약 부문에서 충격이 가장 크게 나타나고 이후 화학·철강·비금속 같은 중간재 산업을 거쳐 제조업 전반의 원가 구조로 전이된다. ▲화학 ▲비금속광물 ▲1차금속제품 등은 상대적으로 높은 영향을 받고 서비스업에서는 운송 부문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도체와 자동차처럼 직접적인 에너지 의존도는 높지 않은 산업도 핵심 소재 공급 차질과 물류 지연을 통해 상당한 간접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구조를 감안하면, 단기에는 비싸게 들여오는 문제가 중심이지만 장기화 국면에서는 제때 들여오지 못하는 문제가 더 큰 위험으로 바뀐다. 유가와 LNG 가격이 높은 수준에 머무는 가운데 해상 운임 상승과 운송 지연이 결합되면, 기업이 실제로 부담하는 조달 비용은 통계상 추정치보다 훨씬 크게 나타날 수 있다. 특히 한국처럼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는 가격 상승과 물류 제약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충격이 비선형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즉, 장기화의 핵심은 단순한 가격 급등이 아니라, 산업활동을 떠받치는 중간재와 물류 흐름의 불안정성이 구조화된다는 데 있다. ▲LNG ▲나프타 ▲에틸렌글리콜 ▲LDPE 같은 품목은 한국의 대중동 수입 비중이 높으면서 동시에 중동의 글로벌 공급 비중도 커, 가격 상승과 물량 제약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나프타는 에틸렌·프로필렌·합성수지로 이어지는 석유화학 밸류체인의 출발점이다. 나프타 조달이 흔들릴 경우 원가 상승을 넘어 플라스틱, 포장재, 타이어, 자동차 부품, 전자부품 등으로 충격이 빠르게 확산된다.또한 특정 품목의 직접 수입 비중이 낮더라도, 중동이 글로벌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면 국제 가격과 제3국 경로를 통해 간접 충격이 확산될 수 있다. 한국은 중동산 유황을 대규모로 직접 수입하는 구조는 아니지만, 유황이 황산과 인비료의 핵심 원료라는 점에서 글로벌 공급 변동의 영향을 비껴가기 어렵다. 장기화될 경우 국내 충격은 크게 세 갈래로 나타나특히 인비료 원료의 대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는, 중동발 원료 차질이 중국의 생산 축소나 수출 통제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한국의 조달 불안과 가격 상승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중국은 과거 요소수 대란 당시 요소 수출을 사실상 막았고, 이후에도 비료와 관련 원료의 통관·수출을 반복적으로 조절해왔다. 유황이 황산과 인비료로 이어지는 경로가 있다면, 무수암모니아는 질소비료로 이어지는 또 다른 핵심 고리다. 문제는 이 무수암모니아 역시 중동의 생산·교역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결국 중동발 공급 충격은 산업 원가 상승에 그치지 않고, 비료 가격 급등과 농업 생산비 부담, 식품 물가 상승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이미 전쟁 이후 일부 지역에서는 비료 공장 가동 차질과 요소 가격 급등, 공급 지연 사례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국내 충격은 크게 세 갈래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첫째, 정유·발전·석유화학을 중심으로 에너지 집약 업종의 원가 부담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 둘째, 비료·물류·식품으로 이어지는 생활물가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 셋째, 일부 업종은 단순한 가격 문제를 넘어 원재료 조달 지연과 생산 차질에 직면할 수 있다. 장기화 국면의 본질은 유가 상승 그 자체보다, 산업활동을 지탱하는 중간재와 물류 흐름의 불안정성이 커진다는 데 있다. 시사점은 분명하다. 단기적으로는 비축유 방출과 대체 공급선 확보를 통해 충격을 완화할 수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간을 버는 조치에 가깝다. 중장기적으로는 에너지와 산업 원자재를 분리해 볼 것이 아니라, 나프타·헬륨·암모니아·에틸렌글리콜 등 에너지 연계 산업재까지 포함한 통합 공급망 관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공급망 전체를 겨냥한 구조적 전략으로 전환해야특히 나프타 등 비에너지 핵심 소재에 대한 전략 비축이나 최소 재고 체계 도입도 검토할 시점이다. 에너지 전환 역시 자동적인 해법은 아니다. 수소와 암모니아 역시 상당 부분 천연가스 기반 공급망에 연결돼 있는 만큼, 전환 정책과 공급망 다변화는 함께 추진돼야 한다. 위기 이후의 기회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호르무즈 우회가 장기화될 경우 선복 수요 증가로 조선·해운 산업에는 중기적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사태 진정 이후에는 중동 지역의 에너지·인프라 재건, 방산, 식량안보 관련 투자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이를 단기 수주로 끝내지 않고, 장기 산업협력 구조로 연결하는 전략적 접근이다. 중동발 에너지 위기는 더 이상 유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응 역시 가격 관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물류·소재·비료·식품까지 잇는 공급망 전체를 겨냥한 구조적 전략으로 전환할 때다. 필자는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이다. 중동 및 이슬람권의 경제·산업 구조와 에너지·공급망을 연구하고 있다. 한-중동 협력포럼, 국회 글로벌 외교안보포럼 등에서 연사로 활동하며 정책·산업 현장에서 협력 전략을 제시해왔다. 최근에는 중동의 에너지 구조 변화와 산업 다각화, 그리고 이 변화가 한국의 산업협력 및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2026.03.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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