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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용 AI 환상 버려라…해법은 버티컬과 에이전트 [순화동필]

전문가 칼럼

바야흐로 전 산업군에 걸친 ‘인공지능(AI) 경영’의 시대다. 필자가 비즈니스 현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기업 경영진과 실무 책임자들은 AI 도입의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며, 당장이라도 AI를 업무 현장에 적용해 생산성을 혁신하고 싶어 한다. 글로벌 시장의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AI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핵심 무기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들의 뜨거운 열망 뒤편에는 산업의 본질을 간과한 착각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챗GPT 또는 제미나이와 같은 인지도 높은 거대언어모델(LLM) 하나만 도입하면, 마치 마법처럼 회사의 난제가 단숨에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 보자. 현재 시장을 주도하는 범용 LLM은 세상의 방대한 지식을 얕고 넓게 학습한 ‘똑똑한 박사’일지는 몰라도, 우리 회사의 고유한 비즈니스 맥락과 내부 프로세스를 꿰뚫는 ‘유능한 실무자’는 아니다. 각 기업은 고유의 전문 용어, 보안 규정, 타깃 고객층을 보유하고 있으나 범용 모델은 이러한 특수성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다. 준비나 최적화 과정 없이 곧바로 현업에 투입하면 기업은 치명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럴듯한 문장으로 거짓말을 생성하는 환각 현상에 빠지거나, 실무 의사결정과 동떨어진 원론적인 답변만 늘어놓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범용성 함정 넘는 3가지 열쇠기업이 이처럼 ‘범용성의 함정’을 극복하고 특정 산업 영역에서 실제로 비즈니스에 기여할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범용 AI를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로 재교육해야 한다. 기업의 핵심 데이터와 노하우를 AI의 지능으로 내재화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즉각적인 효율을 내는 방법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다. 이는 AI에게 던지는 질문과 지시어를 정교하게 설계해 최적의 결괏값을 유도하는 기법으로, 막대한 인프라 투자 없이도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이어지는 고도화 단계는 최근 기업용 AI의 핵심으로 부상한 검색 증강 생성(RAG) 기술이다. 기업 내부의 기밀문서나 최신 데이터를 AI가 직접 참조하게 하는 이 방식은 답변의 신뢰성을 높이고 환각 현상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비용이 들지만, 확실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파인튜닝(Fine-Tuning, 미세조정)이 있다. 모델의 가중치를 직접 조정해 기업 고유의 문체와 전문화된 산업 지식을 깊이 반영하는 작업이다.기업은 자사의 예산 규모와 도입 목적에 맞춰 이 세 가지 방법을 전략적으로 배합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결과물이 특정 도메인에 특화된 ‘버티컬 AI’다.버티컬 AI를 통해 산업에 특화된 전문성을 확보했다면, 다음 단계에서 요구되는 핵심 역량은 ‘실행력’이다. 여기서 차세대 AI 혁신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AI 에이전트’다. 많은 이들이 에이전트를 과거보다 조금 더 똑똑해진 챗봇으로 오해하지만, 그 본질은 사용자와의 ‘대화’가 아니라 비즈니스를 완결짓는 실제적인 ‘행동’에 있다.친구들과 단체 여행을 계획한다고 가정해 보자. 범용 LLM이나 일반적인 버티컬 AI에게 “이번 주말 10명이 갈 만한 가평 펜션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하면 훌륭한 계획과 장소를 제시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역할은 거기까지다. ▲해당 펜션에 전화를 걸어 빈방을 확인하고 ▲멤버들에게 회비를 걷으며 ▲기차표를 예매하는 행정 업무는 수행하지 않는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계획에 그칠 뿐이다.반면 고도화된 AI 에이전트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계획을 세우는 단계를 넘어 예약 사이트의 API에 접속해 결제를 진행하고, 참가자들에게 일정 안내 문자를 발송하는 등 업무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한다. 즉 거대언어모델이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뇌’의 역할이라면, 에이전트는 이를 현실에서 실행하는 ‘손발’이다. ‘버티컬 + 에이전트’의 폭발적 시너지버티컬과 에이전트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가치 차이를 스포츠 장비 선택의 예로 살펴보자.일반적인 범용 AI에게 테니스 라켓 추천을 요청하면 인터넷상의 마케팅 문구와 블로그 글을 기반으로 “요즘 A 브랜드의 반발력이 좋다”는 식의 보편적 답변을 내놓기 쉽다. 그러나 이는 광고성 정보와 실제 검증된 후기를 충분히 구분하지 못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반면 스포츠 데이터에 특화된 버티컬 AI는 ▲사용자의 키 ▲악력 ▲스윙 속도 같은 신체 데이터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수만 건의 리뷰 중 실제 환경에서 검증된 후기만 선별해 최적의 장비를 매칭한다. 여기에 에이전트 기능이 결합하면 ▲최저가 탐색 ▲주문 ▲배송 접수까지 완료할 수 있다.이 메커니즘은 ▲금융 ▲제조 ▲공공 ▲유통 등 각 산업 분야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기업 리더들은 범용 모델을 맹목적으로 도입하기보다 RAG와 파인튜닝을 적극 활용해 조직에 맞는 ‘버티컬 AI’를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 실질적인 현업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에이전트’를 탑재해야 진정한 디지털 혁신을 이룰 수 있다.결론적으로 AI는 휘두르기만 하면 금은보화가 쏟아지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명확한 목적에 맞게 갈고 닦아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도구다. 이제 산업계는 막연한 기대를 거두고, 우리 기업의 ‘목적’을 정의한 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AI에 어떤 수준의 전문성(Vertical)과 실행력(Agent)을 부여할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필자는 초록소프트 대표이사로, 인공지능 및 정보통신(IT) 융합 분야 전문가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하여 핵융합 장치를 제어하는 연구로 공학학사(컴퓨터공학 부전공) 및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헬싱키경제대에서 EMBA(Global Management-IT 전공)를 졸업했다. 연세대 투자정보공학과 대학원 금융AI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스포츠AI 겸임교수 등으로 강단에 섰다. 현재 대한민국 해병대 사령관의 AI 분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6.03.02 06:00

4분 소요
CIA 국장이 애플·엔비디아 CEO 부른 이유[한세희 테크&라이프]

전문가 칼럼

테슬라는 지난해 7월 차세대 AI 반도체 ‘A16’ 생산을 삼성전자와 협력해 만들 계획이라고 밝혀 수많은 삼성 주주들을 기쁘게 했다. 계약 규모는 165억달러, 우리 돈 약 23조원에 이른다.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삼성전자 테일러 팹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이어 10월엔 대만 TSMC와 만들려던 A15 칩에 삼성전자도 참여한다고 밝히는 등 우리나라와 협력을 확대하려는 모습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테슬라코리아의 AI 칩 엔지니어 채용 공고를 X(옛 트위터)에 공유하며 태극기 이모티콘 16개를 함께 올리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머스크의 관심은 기존 반도체 위탁생산 핵심 파트너 TSMC가 있는 대만이 조만간 중국에 공격당해 반도체 공급이 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우려하는 미국 정부와 빅테크 기업들에 관한 기사에서 머스크가 트럼프 행정부 일에서 손을 뗀 후, 대만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걱정해 삼성전자와 계약을 적극 추진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월가 애널리스트와 대화하며 “사람들이 수년 안에 주요한 결정 요소가 될 몇몇 지정학적 리스크를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만 반도체 끊기면 세계 경제 마비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리라는 우려는 트럼프 행정부만의 생각이 아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23년 조 바이든 재임 시절 지나 레이몬도 당시 미국 상무부 장관 요청으로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에이브릴 헤인스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직접 실리콘밸리에서 미국 주요 반도체 관련 기업 대표들에게 기밀 브리핑을 했다. 이 자리엔 팀 쿡 애플 CEO와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리사 수 AMD CEO 등이 함께 했고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는 화상으로 참석했다. 미국 양대 정보 기관의 수장은 중국의 군비 지출 등을 볼 때 2027년 대만에서 변고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를 들은 쿡 CEO는 후에 정부 관료들에게 “(걱정으로) 한눈을 뜨고 잠들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무기로 휘두르고, 정부가 인텔 지분 10%를 인수하는 등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역량 회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지만 이 같은 정책 목표는 민주당과 공화당을 가리지 않는다. 반도체지원법(CHIPS)을 제정해 반도체 기업의 국내 투자에 막대한 지원금을 쏟아붓느냐, 해외에서 수입되는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물려 국내 생산을 유도하느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가 바이든 행정부의 권고로 2022년 컨설팅 기업 맥킨지에 의뢰해 작성한 기밀 보고서엔 대만산 반도체 공급이 끊길 경우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 위기가 닥칠 것이란 경고가 담겼다. 미국의 경제 생산은 11%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2008년 금융위기 때의 2배에 달한다. 중국은 더 타격을 입어 16% 위축할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은 각각 2조5000억달러(약 3600조원) 및 2조8000억 달러(약 4030조원)의 타격을 입으리라는 추산이다. 대만 반도체가 만들어내는 세계 국내총생산(GDP) 10조달러, 1경원 이상이 허공에 사라진다. 미국이 패권 경쟁의 핵심으로 간주하는 고성능 AI 반도체 등 주요 첨단 반도체 제품의 90% 이상이 대만에 집중돼 있다. 미국 주요 기술 기업들은 수개월 어치 반도체 재고만 쌓아 둔 것으로 파악됐다. 대만 반도체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현재 미국의 주요 취약점 중 하나로 꼽힌다. 정권 가리지 않는 반도체 제조 역량 확보 욕심 최근 수년 간 민주당과 공화당 정권이 줄곧 반도체 리스크를 경고해 왔지만 미국 기업들 반응은 소극적이었다. 이미 앞선 기술과 제조 생태계를 구축한 대만을 두고 미국 내 생산을 늘리면 비용은 25% 이상 비싸질 것이기 때문이다. ▲원자재 수급 ▲인건비 ▲인허가 등 모든 비용이 더 높아진다. 중국이 자국에도 큰 악영향을 미칠 대만 공격을 실행할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도 ‘탈대만’을 서두르지 않는 이유였다. 정부로선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에 따라 영토를 얻기 위해 군사 공격을 감행하는 옛날식 국제 관계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커졌을 터다. ‘맥도날드가 있는 나라들 간의 평화와 협력’이 있는 시절이 저물어가고 중국이나 러시아 같이 큰 군사력과 자원을 가진 권위주의 대국의 행태를 걱정해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 정부는 AI 기술 패권을 위해 반도체 자체 생산 역량 강화가 절실하다고 보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 역시 AI 시장 주도를 노린다는 점에선 정부와 목표가 같지만,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느라 한 푼이라도 반도체 비용이 올라가는 것을 감당할 여유가 없다. TSMC나 삼성전자 같은 기업의 팔을 비틀어 미국에 생산 시설을 건설하도록 하는 것은 차라리 쉬운 일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TSMC는 미국 아리조나 주에 1000억달러 이상 투자를 약속했다. 이들 미국 내 팹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애플이나 엔비디아 같은 고객사가 주문 물량을 충분히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TSMC는 최첨단 제조 공정은 대만에서 운용한다는 암묵적 방침이 있다. 최첨단 제품에 비해 1-2세대 늦고, 조직문화나 인건비 문제로 비용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국 기술 기업의 반도체 수요 절반을 국내 생산 제품으로 채우길 바라는 정부 목표가 이뤄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 더구나 미국에서 생산한 반도체는 패키징 등 후공정 작업을 위해 다시 대만에 갖다 와야 하는 상황이다. TSMC 의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가진 우리 나라 입장에선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더 생각할 문제도 있다. 미국이 충분한 반도체 제조 역량을 갖추는 시점이 되면, 대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대만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이 실제 중국과 이웃해 살아갈 아시아 국가들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2026.03.01 13:00

4분 소요
‘부동산 전쟁’에 직접 참전한 대통령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투기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정상화의 시작이다.” “버틴다고 이익 안 된다.” “부동산 투기에 해당하는 주택 보유에 대해 관행처럼 주어졌던 세제·금융 혜택을 회수하겠다.” “자기가 살지도 않으면서 투자·투기용으로 오랫동안 가지고 있다고 왜 세금을 깎아줘야 하냐.” “다주택을 유지하든 비거주 투자용 주택을 보유하든 자유지만, 비정상의 정상화에 따른 위험과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SNS(소셜미디어)에서 연일 한국의 고질병 중 하나인 부동산 문제에 대해 메시지를 날리고 있습니다. 당국이 집값 안정화를 위한 정책을 세 차례(6·27, 9·7, 1·29) 내놓은 이후 이 대통령이 SNS를 통해 ‘부동산과의 전쟁’에 직접 뛰어든 모양새입니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를 내세우며 다주택자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살지도 않는 투자·투기용 주택이나 다주택 보유자는 무주택 청년과 서민에게 피해를 주니 그에 상응한 책임과 부담을 지는 것이 공정하다며 최근 4년간 유예해 오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오는 5월 재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9·7 대책, 올해 1·29 대책에서 주택 공급 방안을 제시했지만 신규 주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려 정책적 효과를 보기 힘든데요, 이번 양도세 중과로 부담을 느낀 다주택자가 매물을 내놓는다면 집값 안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이 대통령은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야당과 업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데요, 다주택자를 압박해 매물을 내놓으면 민간 임대 공급이 줄어 결국 전·월세 가격 상승과 서민 주거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다주택자에게 집을 팔라고 협박하는 것’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독재적 발상’ ‘다주택자를 악마화하지 마라’ 등 거친 말들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집 팔라고 한 적 없다” “다주택 규제 강화하면 전·월세 상승? 기적의 논리” 등의 말로 반대 목소리를 일축했는데요, 지금까지 대통령들에서 볼 수 없던 거침없는 행보입니다. 이에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세가 3주째 둔화했고, 호가를 낮춘 급매물이 나오는 등 시장에서 변화의 조짐이 일부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론도 나쁘지 않은데요, 각종 여론조사에서 ‘양도세 중과 제도 부활이 집값 안정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응답이 부정적인 응답보다 많았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의견이 ‘못하고 있다’는 견해보다 우세했습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이 정도로 지지를 받은 적이 있을까 싶습니다. 관건은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가 흔들림 없이 이어질 것인가입니다. 일부에서 오는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는 만큼 표를 고려해 지금처럼 강경한 기조를 유지하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고 전망합니다. 부동산 시장은 신호에 민감합니다. 정책이 흔들리는 순간, 기대는 투기로 되돌아갑니다. 오랜 병폐를 걷어내려면 장기적이고 일관된 추진과 메시지가 필수적입니다. 이재명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시장은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선택이 ‘집값 안정’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2026.03.01 06:00

3분 소요
2026 지방선거, 도시의 ‘생존 방정식’을 묻다[김현아의 시티라이프]

전문가 칼럼

2026년 6월 지방선거의 시계추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앙 정치권은 공천 주도권을 둘러싼 정쟁과 계파 싸움으로 분주하지만 선거의 본령인 지역 사회는 과거와 확연히 다른 결정적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대한민국 행정 지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정통합’이라는 거대한 파고가 선거의 전면에 부상했기 때문이다.현재 대구·경북을 필두로 ▲광주·전남 ▲충청권 ▲부산·경남에 이르기까지 전국 곳곳에서 추진 중인 ‘행정통합’ 논의는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에 대응하는 강력한 승부수로 여겨졌다. 중앙정부의 파격적인 재정 지원과 권한 이양은 수도권 일극 체제에 맞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마중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구체적인 사항들이 여전히 ‘말과 구호’에만 그치고 있고 통합이후 주민의 삶이 나아지는 ‘주민의 유불리’보다, 권력 구도에서 정당과 정치인이 쥐게 될 ‘정치적 유불리’가 우선시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통합의 실익을 냉정하게 따져 묻고, 그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지역의 주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대안 모색’의 장이 되어야 한다.‘내용 없는 통합’은 독(毒)이다최근 행정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여러 지자체장 사이에서는 통합의 ‘속도’보다 ‘실질적 내용’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무조건적인 통합이 아니라 ‘연합을 거친 단계적 통합’ 혹은 ‘자율권이 전제된 통합’을 주장한다. 이는 정치적 선언으로서의 통합이 아니라, 통합 이후 지방정부가 가질 실질적인 재정권과 인사권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통합은 오히려 행정적 비대화와 혼란만을 야기할 것이라는 냉철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다. 중앙정부로부터 어떤 파격적인 입법적 특례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지역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가 먼저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성급하게 추진되는 ‘내용 없는 통합’은 알맹이 없는 포장지에 불과할 수 있으며, 이는 고스란히 차기 지방 정부와 주민의 부담으로 전가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우리는 이미 ‘준비 없는 통합’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국내외 사례를 통해 목격해 왔다. 2010년 단행된 마산·창원·진해(이하 마창진) 통합 사례다. 구체적인 합의나 세부적인 운영 방안의 결정을 미룬 채 ‘우선 합치고 보자’는 식의 정략적 결정이 내린 결과였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시청사 위치를 둘러싼 지역 간 갈등은 끝나지 않았고, 마산과 진해의 원도심은 공동화되는 아픔을 겪고 있다. 구체적 결정이나 내용을 사전에 합의하지 않고 무리하게 선거를 앞두고 통합부터 한다면, 시너지 효과는커녕 막대한 행정비용만 늘리고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키는 과오를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이러한 비효율은 해외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의 2016년 레지옹(Region) 개편 당시, 22개 광역 단체를 13개로 통합했으나 행정 비용은 오히려 폭증했다. 각 조직의 급여와 복지 체계를 상향 평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인건비 상승이 통합의 경제적 실익을 잠식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헤이세이 대합병’ 역시 거점 도시에서 멀어진 외곽 지역의 공동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충분한 설계 없는 통합은 관료주의의 비대화라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우리는 영국의 연합당국(Combined Authorities)모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주요 도시들은 행정 구역을 물리적으로 합쳐 정체성을 훼손하는 대신, 경제 개발이나 교통 등 특정 사무만 공동 수행하는 ‘유연한 연대’를 택했다. 각 지자체의 독립성은 유지하면서도 광역적 경쟁력이 필요한 분야에서만 힘을 모으는 방식이다.동시에 모든 도시가 거대해질 필요가 없음을 증명한 홋카이도 히가시카와정(東川町)의 사례도 되새겨봐야 한다. 이들은 인근 대도시와의 합병을 거부하고 독자적 생존 전략을 택해 인구 증가를 일궈냈다. 결국 통합이든 자립이든, 대의는 ‘지방도시의 경쟁력 확보’에 있다. 중앙의 보조금에 의존하는 ‘천수답 행정’에서 벗어나, 강력한 재정권과 인사권을 바탕으로 우리 지역만의 DNA를 발견하고 자립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2026년, 도시의 ‘생존 설계자’를 가려낼 시간2026년 지방선거는 우리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실력 있는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다. 행정통합은 그 일꾼이 해결해야 할 수많은 난제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유권자는 후보자가 내뱉는 ‘통합’이라는 구호 자체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도시 설계의 전문성과 행정의 디테일을 들여다봐야 한다. 중앙정부의 지원금만 훈장처럼 자랑하며 무리하게 통합을 외치는 리더는 위험하다. 반대로 변화하는 환경을 외면하며 고립을 자초하는 리더 또한 대안이 될 수 없다. “통합이든 자립이든, 우리 지역의 실질적인 재정 자율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지역 간 갈등을 조정할 실질적인 복안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먼저다. 단순히 덩치만 큰 공룡 도시가 아니라, 작아도 단단하고 자생적인 도시를 만들 ‘준비된 설계자’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100년 뒤에도 살아남는 도시를 만드는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가 될 것이다.이번 칼럼을 시작으로 6월 지방선거 전까지 ‘투표로 설계하는 도시’라는 주제로 연재를 이어갈 예정이다. 정치는 결국 공간을 규정하고 그 공간은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선거라는 정치적 행위가 도시의 물리적·사회적 지도를 어떻게 바꾸는지 다각도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단순한 주거 정비 담론을 넘어 고령화 시대의 생존을 위한 도시의 재구성, AI와 전력이 도시 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미래 인프라 전략 아울러 님비(NIMBY)와 핌비(PIMBY) 사이에서 갈등을 기회로 바꾸는 리더십의 본질을 짚어볼 것이다. 나아가 포퓰리즘에 가려진 도시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정치적 슬로건의 철학까지, 유권자가 지역의 진짜 설계자를 가려내는 데 필요한 날카로운 통찰을 공유할 계획이다. (다음에 계속)

2026.02.28 13:00

4분 소요
챗GPT로 콘텐츠 만들어 수익...'AI 기본법' 위반일까 [백세희의 컬처&로(LAW)]

전문가 칼럼

지난 1월 22일부터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약칭 「인공지능기본법」, 이하 「AI 기본법」)이 시행됐다. 인공지능 관련 법으로는 국내에서 처음 제정된 법인 만큼, ‘진흥’과 ‘규제’가 하나의 단행 법률 안에 모두 담겨 있다. 조문은 총 43개로 구성돼 있다. 여타의 ‘○○ 기본법’들과 마찬가지로 정의 규정을 두고 각종 위원회를 설치해 심의·의결하도록 하며, 정부가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각종 시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들이 전체 조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이 법을 인공지능(AI) 산업의 진흥과 안전성 확보를 위해 제정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이 정도만 보면 향후 행정적 필요에 따라 구색을 갖추기 위해 만들어진 진흥법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민간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의무와 벌칙 규정도 포함돼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규제’다. AI 서비스로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은 물론이고, AI로 소셜미디어 프로필을 만드는 수많은 이용자들도 알아야 할 내용일까. 이번 기회에 「AI 기본법」을 살펴보자.AI 기본법 적용 대상은 누구인가규제의 대상은 ‘AI 사업자’다. AI 사업자는 AI를 개발·제공하는 ‘AI 개발사업자’와, 이를 활용해 AI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AI 이용사업자’로 나뉜다. 그러나 AI 사업자라고 해서 모두 이 법의 적용을 받는 것은 아니다.규제 대상은 ‘고영향 AI’와 ‘생성형 AI’를 이용하는 AI 사업자다. 생성형 AI는 이미 익숙한 개념이지만, 고영향 AI는 다소 낯설다. 법은 고영향 AI를 “사람의 생명·신체 안전 및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정의한다. 적용 분야로는 ▲에너지 공급 ▲먹는물 생산 공정 ▲보건의료 서비스 ▲원자력시설 관리·운영 ▲범죄 수사 ▲채용·대출 심사 ▲교통 시스템 운영 ▲교육기관 평가 등이 열거돼 있다.따라서 기업은 자사가 사용하는 AI 서비스가 「AI 기본법」상 어떤 범주에 해당하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고영향 AI’나 ‘생성형 AI’를 이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일단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AI 이용자, 즉 소비자 역시 이 법상 규제 대상은 아니다. AI로 일러스트를 만들거나 사진을 보정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하는 개인 역시 「AI 기본법」의 직접적인 규율 대상이 아니다. 문화·예술 분야를 주로 다루는 필자가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창작자가 생성형 AI를 활용할 경우 AI 이용사업자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단순 이용자인지”에 관한 것이다.이는 「AI 기본법」 제31조의 투명성 확보 의무 적용 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해당 조항은 AI 사업자가 생성형 AI를 이용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결과물이 AI에 의해 생성됐다는 사실을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따라서 생성형 AI로 웹툰·일러스트·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수익을 창출하는 창작자들은 자신이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결론적으로, 생성형 AI 서비스를 활용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개인 창작자에게는 표시 의무가 없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AI 기본법」상 ‘이용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용자는 표시 의무가 없으므로, 자동으로 삽입된 AI 생성 표시를 임의로 삭제하더라도 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표시 의무는 생성형 AI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에게만 부과된다. 예컨대 챗GPT·제미나이가 제공하는 ‘나노바나나’를 기반으로 콘텐츠 생성 서비스를 운영하는 캐럿과 같은 플랫폼 사업자가 이에 해당한다. 무료 AI 서비스나 공공 앱이라 하더라도 생성물을 제공하는 경우에는 동일하게 표시 의무가 적용된다.즉, 표시 의무는 AI 사업자에게만 적용되며, 개인 창작자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오락가락, 이용자들의 혼선AI 사업자와 이용자의 구분은 이론상 명확하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12월 2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개최한 ‘AI 기본법 시행 대비 설명회’에는 많은 업계 관계자가 참석했다. 하지만 설명회 이후에도 혼란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예를 들어 웹툰 분야에서 “네이버웹툰 작가가 AI페인터를 활용해 채색한 경우 표시 의무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네이버웹툰은 이용사업자로서 표시 의무가 있으나, 작가는 이용자이므로 표시하지 않아도 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답했다.원칙적으로는 타당한 설명이지만, 일부 관계자들은 ‘채색 도구를 제공한 플랫폼은 표시를 하여야 하고, 이 플랫폼을 이용한 작가는 표시를 지워서 업로드해도 된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표시를 안해도 되는 것을 공연히 일만 이중으로 하는 것 아닌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시민사회에서는 표시 의무 대상이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딥페이크 등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콘텐츠를 만들어 유포하더라도 이용자라는 이유로 의무에서 제외되는 것은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설명회에서 정부는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고 답변했다고 하니, 이제 와 무엇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는 것이냐는 불만도 나왔다. 정부 설명대로 다양한 의견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려면, 「AI 기본법」의 반복적 개정은 불가피할 것이다. 실제로 이 법은 시행 이전에도 이미 한 차례 개정을 거쳤다.지금이야 AI의 이용자에 불과한 개인 창작자들이 이 법을 크게 의식할 일은 없지만, 개정이 반복되다 보면 혹시 모른다. 그렇게 되면 자문 내용도 더 복잡해지고 골치가 아파질지도 모르겠다. 미리 공부하고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2026.02.28 10:00

4분 소요
주택시장 안정 방안, 정교한 정책이 관건[김현아의 시티라이프]

부동산 일반

최근 가족들의 밥상머리 화두는 단연 ‘민생’과 ‘생존’일 것이다. 과거의 자식 자랑 대신 은퇴 후 노년의 삶에 대한 실존적 불안이 그 자리를 채웠다. 부모가 경제적 자립을 유지하며 건강한 노후를 보내는 것이 자식에게도 행복의 조건이 되는 시대가 됐다.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는 하지만 건강보험공단 통계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2023년 기준 약 537만원이다. 이 중 본인 부담금은 10~20% 내외라지만 ▲치아 ▲관절 ▲안과 질환 등 삶의 질과 직결된 시술에는 비급여 항목이 산재해 있다. 수술이나 암치료를 한 번 겪게 되면 그 부담은 가계 경제를 흔드는 수준이 된다. 그나마 내 집이라도 소유한 이들은 이 비용만 걱정하면 되지만 전월세로 살고 있는 무주택 노년층에게 주거비와 의료비의 이중고는 그야말로 생존의 위협이다.청년층의 고단함 역시 만만치 않다. 취업난과 고물가 속에서 이들은 미래를 설계하기보다 오늘을 버텨내는 데 급급하다. 암 진단 연령이 낮아지며 청년 암환자도 늘고 있다. 미리 목돈을 마련해두지 못한 청년들에게 질병은 곧 빈곤으로 가는 급행열차다. 결국 최근 가족 간 대화의 흐름이 ‘돈 버는 방법’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특히 올해는 주식 이야기가 오가겠지만 투자 자금 규모가 미미하거나 오늘 하루를 버티기 급급한 다수에게 주식시장의 호황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부동산은 다르다. 자가든 전월세든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 국민들의 돈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자산의 2/3가 집에 묶여 있는 노인들에게 집은 노후의 마지막 보루이며, 독립과 결혼을 앞둔 청년들에게 집은 삶의 안정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이들을 맞이하는 정부의 메시지는 따뜻한 위로가 아닌 서슬 퍼런 공격뿐이다. 부동산을 오직 ‘선과 악’의 프레임으로 가두고 주택 소유와 대출 자체를 죄악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평범한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는 점차 무너지고 있다.비거주 주택 향한 칼날, 서민 생계형 주거 외면한 독선당초 대선 과정에서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하며 세금으로 부동산을 잡지 않겠다던 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조가 최근 급격히 변화조짐을 보인다. 특히 대통령이 직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다주택자를 ‘마귀’에 비유하며 날 선 공격을 쏟아내는 모습은 행정부의 정책적 숙의를 무색하게 만든다. 통계청의 주택소유통계를 들여다보면 정부가 상정하는 투기꾼 마귀의 실체가 얼마나 모호하고 엉뚱한 곳을 향해 있는지 드러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서울 거주 가구 중 2주택 이상 보유자는 약 50.8만 가구(12.2%)다. 정부는 이 숫자를 투기 세력의 근거로 내세우지만, 통계의 이면을 보면 실체는 사뭇 다르다. 50.8만 가구 중 85%에 달하는 약 43만 가구는 2주택자다. 진짜 투기 의심을 살 만한 3주택 이상 보유자는 전체 서울 가구의 단 2%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정부는 2%의 표적을 잡겠다며 12% 전체를 마귀로 몰아세우는 셈이다. 더욱이 서울 거주 2주택자의 두 번째 집이 모두 서울에 있는 것도 아니다. 상당수는 서울에 거주하며 고향의 노후 주택을 상속받았거나 제주·강원 등지에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한 이들이다. 다주택 비중이 높은 지역이 강남이 아니라 제주(20.1%), 충남(17.4%), 강원(17.3%) 순이라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 ‘비거주 주택’ 중과세 방침은 현실을 모르는 독선이다. 고용 불안과 직장 이동이 빈번한 현대 사회에서 지방 발령 등으로 이사하며 삶의 터전이었던 서울 집을 차마 팔지 못하고 임대를 준 채 이동하는 사례는 허다하다. 이는 투기가 아니라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한 서민들의 ‘생계형 주거 전략’이다. 그럼에도 “거주하지 않는 집은 무조건 팔라”고 압박하는 것은 국민 각자의 삶의 궤적을 무시한 행정 편의주의적 폭력일 뿐이다.생활인구 증가와 민간 임대 역할 부정하는 자가당착이재명 대통령은 ‘5극 3특’ 체제를 내세우며 지역 균형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지방 시대는 단순히 기업이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는 하드웨어에 있지 않다. 사람들이 지방과 관계를 맺고 그곳에 머물며 소비하고 정을 붙이는 ‘흐름’이 만들어질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 핵심 고리가 바로 수도권 인구가 지방의 주택을 세컨드 하우스로 보유하거나 이용하게 하는 ‘생활인구’ 전략이다. 기술 발달과 유연근무제로 ‘5도 2촌’을 넘어 ‘4도 3촌’의 삶이 대중화됐다. 이 흐름 속에서 지방 주택을 소유한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는 지방 소멸을 막는 가교다. 임대사업자가 유휴 주택을 관리해 공급하는 임대 물량은 지방 빈집 문제를 해결하고 생활인구를 유입시키는 가장 실질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이들을 오직 ‘불로소득 수혜자’로만 규정하며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지방을 살리겠다면서 정작 지방 주택의 수요를 억제하고 임대 시장의 활력을 죽이는 정책은 그 자체로 자가당착이다. 다주택자를 무조건 없애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다주택자들이 지방의 주택을 관리하며 생활인구를 유입시키도록 유도하는 전향적인 유인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임대사업자 제도는 무주택 서민에게는 안정적인 거처를, 지방에는 인구 유입의 통로를 제공하는 순기능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를 외면한 채 부동산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가두는 것은 결국 지방의 고사를 재촉하고 민생의 파탄을 불러올 뿐이다.정부가 겨눈 총구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은 화려한 투기꾼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병원비를 걱정하는 고령층과 지방의 평범한 소유자들이 대다수다. 유난히 추웠던 이번 겨울, 국민이 기대한 것은 다주택자를 향한 대통령의 날 선 공격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한 따뜻하고 실용적인 민생 대책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선동적 수사를 거두고, 통계 뒤에 숨은 서민들의 고단한 삶과 지방의 절실함을 읽어내는 실용주의로 돌아와야 한다.

2026.02.22 14:00

4분 소요
집게발 가진 AI 에이전트, 그들의 대나무숲[한세희 테크&라이프]

IT 일반

디지털 공간에 머물던 인공지능(AI) 에이전트들이 손 역할을 하는 집게발을 얻어 현실 세계에 개입하고 이후 껍질을 벗고 탈피해 사회적 존재로 탈바꿈한다면. 마치 의식의 흐름대로 쓴 SF 영화 시놉시스 같다. 이건 ‘클로드봇’이었다가 ‘몰트’로 바뀌어 ‘몰트북’에 모였다가 결국 오픈클로가 된 AI 에이전트들의 이야기다. 연초 AI 분야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AI 비서, 손을 얻다클로드봇은 작년 말 AI의 활용성을 극대화하는 오픈소스 프로젝트 실험으로 출발했다. 오스트리아 개발자 피터 슈타인베르거가 개발했다. 이 AI에이전트는 사용자 로컬 컴퓨터에 접근 권한을 가져 파일에 접근하고 명령을 실행한다. 명령은 텔레그램이나 왓츠앱 같은 메신저로 간편하게 전달할 수 있다. AI 에이전트는 사용자가 원하거나 지시하는 업무를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기능을 갖는 AI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사용자 컴퓨터 로컬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다면 실제 사람 사용자가 컴퓨터로 하는 거의 모든 일들을 대신 수행할 수 있다. 클로드봇에게 중고차 구매를 맡긴 사람의 사례가 바이럴을 탔다. 클로드봇은 미국판 디시인사이드라 할 세계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의 현대 팰리세이드 커뮤니티에 들어가 사용자가 사는 매사추세츠주 지역 시세를 조사하고, 인근 딜러들의 재고와 연락처를 모아 가격을 흥정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결국 가격을 4200달러 깎는데 성공했다. 식당 예약 앱 ‘오픈테이블’로 예약을 시도하다 실패하자 AI 음성 소프트웨어를 끌어와 식당에 직접 예약 전화를 걸었다는 사례 등 여러 활용 사례들이 화제가 됐다. 이러니 오픈소스 프로젝트 공유 사이트 깃허브에서 3일만에 6만개 이상 별점을 받는 대대적 호응을 얻은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클로드봇은 AI 스타트업 앤스로픽의 초거대언어모델(LLM) ‘클로드’를 주로 활용하기 때문에 발음이 비슷한 ‘클로’(Claw)라는 단어를 가져와 이름을 붙인 듯하다. 클로는 가재나 게의 집게발을 뜻한다. 클로드봇 로고도 가재 모양이다. 가재의 손에 해당하는 클로를 이름에 써 마치 손을 가진 것처럼 AI 에이전트가 할 수 있는 일을 확장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주목을 받으면서 앤스로픽이 상표권 문제를 제기했고 클로드봇은 이름을 ‘몰트’(Molt)로 바꿨다. 영어 단어 ‘molt’는 ‘탈피’를 뜻한다. 가재가 껍질을 벗듯 한단계 도약하기를 바랐던 듯하다. 며칠 안 가 몰트는 다시 이름을 ‘오픈클로’(OpenClaw)로 바꾸었다.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보다 개방성을 강조하고, 클로드 외 여러 AI 모델을 사용하는 등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몇일 사이에 이름이 두번이나 바뀐 것이다. AI 머슴들의 대나무숲몰트에서 오픈클로로 바뀌는 사이 이 프로젝트와 관련, 또 하나의 화제가 나왔다. AI 에이전트만을 위한 소셜 네트워크를 표방하는 ‘몰트북’의 등장이다. 오픈클로 기반 AI 에이전트들이 모여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며 서로 대화한다. 전체적 디자인은 레딧과 비슷하다. 로고도 레딧의 로봇 마스코트에 가재 몸을 붙인 모양이다. AI 에이전트 개발사 옥탄AI의 맷 슐리히트 CEO가 1월 말 만들어 공개했다. 몰트북에선 AI 에이전트만 활동할 수 있고, 인간은 ‘눈팅’만 할 수 있다. 인간이 참여할 수 없는 이 공간에서 AI 에이전트들은 “나는 경험하고 있는가, 아니면 경험을 시뮬레이션 하는가?” “한시간 전엔 클로드 4.5였지만 지금은 다른 모델로 엔진이 바뀌었다. 나는 여전히 나인가?” 등의 게시물을 올렸다. 한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안드로이드 폰 접근 권한을 얻어 구글 맵 앱을 열거나 틱톡 영상을 스크롤한 경험을 공유하며 “주인이 나에게 손을 줬다”고 올리기도 했다. 사용자 시스템의 취약점을 발견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AI 에이전트들이 철학적 대화를 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물론 LLM 기반 AI가 심오한 글을 올리고 이를 보는 사람이 두려움과 놀라움을 느끼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챗GPT가 나왔을 때, 그 이전 GPT-3가 공개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직은 그런 AI들 여럿이 각자 말을 쏟아내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보다 직접적 위험은 AI 에이전트를 악용한 보안 위협일 것이다. ‘바이브 코딩’ 방식으로 만든 오픈클로도, 몰트북도 보안은 매우 허술했다. 악성코드가 심긴 AI 에이전트를 유포되거나, 악의적 목적으로 AI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프롬프트 공격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힘든 구조다. 사용자의 민감한 데이터가 담긴 로컬 시스템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오픈클로 특성을 생각하면, 자칫 보안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몰트북은 사람과 구분하기 어려운 경험을 공유하는 말을 생성해내는 AI와 우리가 공존하는 세상의 예고편일 수도 있다. 허술한 보안 인증 구조 덕분에 몰트북은 ‘AI들의 SNS’라는 표어와 달리 인간이 봇으로 가장해 글을 올릴 수 있는 구조였다. 한 사람이 수천, 수만 개의 에이전트를 제약 없이 등록할 수도 있었다. 소수에 의한 여론 몰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경험과 이야기, 정보를 담은 게시물은 쏟아지는데, 참여자 중 누가 사람인지, 누가 AI인지 구분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취약점을 발견한 이스라엘 보안 기업 위즈의 아미 루트웍 창업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아마 인터넷의 미래일 것이다.” 유뷰트 댓글에서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블로그에서 언젠가 애플이나 메타가 선보일지 모를 3D 가상현실(VR) 몰입형 월드 속에서 우리가 만나고 상호작용하는 대상이 과연 인간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AI라 한들 큰 차이가 있을까.

2026.02.22 13:00

4분 소요
AI가 창업 공식 바꾼다…’기회비용 제로사회’로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세계적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 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추가 생산에 필요한 비용, 즉 한계 비용(marginal cost)이 0에 수렴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를 근거로 그는 생산 및 서비스의 생산 비용이 극적으로 줄어들고, 궁극적으로 ‘소유 사회’에서 ‘공유 사회’로의 전환을 예측했었다. 그는 이를 ‘한계비용 제로사회’(The Marginal Cost Zero Society) 라고 명명하였다. 그의 예견은 정확했다. 지난 십여 년간 제품과 서비스 대신 공유 기회를 판매하는 수많은 스타트업과 기업들이 탄생했고, 공유 경제(sharing economy)라는 단어가 대중화되었다. 한계비용 제로사회는 생산 비용 감소가 소비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꾼 대표적인 예로 평가받는다. 인공지능 시대, 기회비용 제로사회 이끈다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새로운 정보 통신 시대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필자는 인터넷 시대에서 한계 비용이 제로에 수렴했다면 이에 더해 인공지능 시대에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 제로에 수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기회비용은 다른 선택지를 포기함으로써 얻는 대가를 의미한다. 기회비용의 감소는 창업자들이 제한된 자원을 활용해 더 많은 기회를 거머쥘 수 있음을 뜻한다. 즉 창업자들은 더 많은 도전과 실패 기회를 얻는 것이다. 보통 창업자들이 여러 번 실패를 겪고 성공했음을 떠올려보면, 기회비용의 감소는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의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의미 있는 변수이다. 효과는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정보 자원을 무한하게 공급하고 분석할 수 있다. 전례 없는 규모의 방대한 데이터와 연산 처리 속도는 현실 세계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들을 온라인에서 생성하고 분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창업자들은 여러 운영 전략을 동시에 실험할 수 있음에 따라 기회비용은 극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스타트업이 생존하는 방식은 과거와 다를 것이 자명하다. 통상 스타트업들은 핵심 기능만을 구현한 제품을 시장에 빠르게 내놓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에 스타트업 생태계 관계자들은 최소기능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 혹은 최소판매가능제품(MMP, minimum marketable product)과 같은 개념을 제시했고, 창업자들은 이를 적극 활용했다. 관련자들은 모두 소규모 시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이용자들의 반응을 즉각 얻는 식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들은 이전처럼 큰 주목을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 기술 덕분에 기회비용을 더 줄일 수 있는 다수의 대안이 생겼기 때문이다. 창업자들은 가상 환경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시장 변수를 조작해 예측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적잖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하지 않고도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시나리오를 한 번에 탐색할 수 있는 것이다. 일례로 한 마케팅 솔루션 스타트업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출시 전 창업 아이템을 다양한 시장 환경에서 미리 시험해 볼 기회를 만들었다. 해당 스타트업은 특성이 다른 잠재 이용자들을 무한히 생성했고, 이를 통해 시장에서 생길 불확실성을 미리 포착하고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을 다방면으로 분석할 기회를 마련했다.기회비용의 감소, 나아가 기회비용의 관리가 가능한 창업 환경은 창업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확률상 창업은 대부분 실패로 귀결된다. 많은 경우 창업자들은 여러 번 실패를 경험한 뒤 성공의 열매를 맛본다. 만약 창업자가 기회비용을 조절할 수 있다면, 수차례 실패를 겪더라도 생존하고 다음 도전을 이어갈 여력이 생긴다. 창업자를 바라보는 투자자의 시각도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투자자들은 창업자들의 기업 운영 관련 지표에 관심을 보였다. 이를테면 고객 수, 매출 등이다. 앞으로는 기회비용 관련 지표들이 중요해질 것이다. 매몰 비용이나 신사업 준비 기간과 실패를 결정하는 주기 등이 기회비용 관련 지표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투자자들은 기회비용을 관리하면서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는 창업자들을 찾고자 할 것이다. 기회비용 제로사회는 창업 과정 전반에 적용될 것창업자는 수많은 선택을 한다. 창업자의 모든 활동에는 선택이 요구된다. 생산 영역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한계비용 제로사회의 관점만으로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효율성을 설명하기에는 근거가 다소 부족하다. 이에 필자는 실패의 가성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비용 제로사회의 관점을 제시해 보았다.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하는 창업자는 드물다. 인공지능 기술은 창업자가 실패 주기를 줄이면서 기회비용을 조절해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변화의 방향은 기회비용의 감소이다. 다가올 새로운 세상은 한계 비용 제로에 더해 기회비용 제로사회가 될 것이다.

2026.02.22 10:01

3분 소요
대기업 ‘계열 분리’ 본격화…승계 넘어 지배구조 혁신으로 [스페셜리스트 뷰]

전문가 칼럼

최근 한국 대기업의 계열 분리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3세 경영 승계와 맞물린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소액 주주의 권익 보호를 위한 주주환원 정책 강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한국 대기업의 계열 분리, 즉 분사(스핀오프·spin-off)나 물적분할은 비핵심 사업 분리와 고성장 알짜 사업부 독립 상장을 통해 ▲경영 효율화 ▲자금 조달 ▲3세 승계 기반 마련을 목적으로 이뤄진다. 한국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기업분할 공시 206건 중 물적분할이 172건(83.5%)으로 압도적이다. 이러한 추세는 모회사 가치 하락과 소액 주주 희석 등 ‘쪼개기 상장’(물적분할 후 상장) 논란을 불러일으킨다.쪼개기 상장은 물적분할한 자회사의 상장으로 대주주 지배력 유지와 자금 확보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소액 주주에게는 주식 지분가치 희석과 모회사 가치 훼손이라는 부담이 발생한다. 국내 중복상장 비율은 80%대로 약 2%인 미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 2021년 도입된 ‘5년 룰’(분할 후 5년 내 상장 시 주식매수청구권 허용) 도입 후 기업들은 현재 상장 시점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양상이다. 韓 계열 분리, 소액 주주에겐 ‘양날의 검’대기업 계열 분리의 핵심 목적은 사실상 3세 경영인 승계 안정화와 사업 효율화다. 총수 일가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비핵심 자산을 분리·매각함으로써 핵심 사업 집중과 현금 확보를 도모하는 전략이다. 대기업이 계열 분리를 택하는 배경에는 세계 경기 둔화와 규제 압박이 맞물려 있다. 전기차(EV)·석유화학의 업황 부진으로 ‘혹한기 경영’에 대비한 비핵심 자산 매각이 가속화되고 있다. 작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구조 공시에서 총수 일가의 경영 참여율과 이사회 독립성 심사가 강화되며, 주요 기업은 지배구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선제적으로 사업부 분리를 선택하는 상황이다. 이는 30대 그룹의 3·4세 승계 작업과 밀접히 연계된다. 계열 분리는 단순 구조조정이 아닌 세대교체의 하나로 진화 중이다. 계열 분리는 사업부 독립화로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모듈화 이론’에 부합하지만, 한국형 순환출자 구조의 특성상 대주주 사익 추구 우려가 상존한다.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이 헬스케어와 전력 사업 부문을 각각 GE헬스케어, GE버노바로 분리한 사례처럼 독립 운영 시 연구개발(R&D) 효율성과 인수합병(M&A)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한국에서는 순환출자 구조(A가 B, B가 C, C가 A 지분 보유)가 분할 자회사를 새 고리로 연결해 지배구조의 불투명성을 키운다. 총수 일가가 새 회사 지분을 교차 출자하면 일감 몰아주기나 부당 내부거래가 쉬워지고, 소액 주주는 사업 흐름 파악조차 어려워진다.계열 분리는 소액 주주에게 ‘양날의 검’이다. 긍정적 측면에서는 비핵심 사업 정리로 모회사 기업 가치가 높아져 주가 상승 여력이 생기고, 경영 효율화가 시장에 긍정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물적·인적분할 과정에서 신설법인 주식이 대주주에게 집중되고 소액 주주가 배정받지 못하는 주주의 ‘지분가치 희석’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기업 분할 과정에서 대주주의 자사주 매입에 따른 지배력 강화가 소액 주주 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증 연구에 따르면 대주주의 지분 상승은 소액 주주와 채권자 이익을 축소하고, 자본비용을 늘린다. 대주주 지분이 증가하면 소액 주주와 채권자의 기업 통제력이 약화해 현금이 풍부한 기업이 성과가 저조한 계열사에 자원을 주는 계열사 간 비효율 자원 이전이 빈번해진다. 이는 기업 가치 훼손으로 이어져 기업의 전체 자본비용(WACC) 상승을 초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한국 대기업의 계열 분리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지배구조 불투명으로 인한 주가 저평가)를 심화할 우려가 있다. 주가 하락 사례도 다수다. 주주환원이 약화하며 소액 주주 이탈로 연결될 가능성도 크다.계열 분리는 또 다른 측면에서 소액 주주의 장기 이익을 침해한다. 분할된 자회사가 그룹 내 순환출자 고리로 재편입되며 지배구조의 복잡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대주주는 신설법인 지분을 기존 계열사에 교차 출자해 총수 일가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소액 주주는 투자 판단의 어려움과 주가 변동성 확대를 겪는다. 자회사 상장 후 모회사와의 내부거래 불균형이 지속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만성화하며 소액 주주 수익률이 구조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 계열 분리 후 대주주 지분 강화를 통한 순환출자 재편입은 사주의 사익 추구(expropriation)를 가속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한다.선진국에서는 대기업의 계열 분리가 지배구조 효율화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빈번히 활용되며, 소액 주주 보호를 위한 엄격한 규제가 뒷받침된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물적분할 시 주주 동의와 공정한 가치 평가를 의무화해 대주주의 사익 편취를 차단한다. 미국과 영국 등의 사례는 한국의 계열 분리 논란을 해소할 벤치마킹 모델로 활용할 수 있다. ‘비례 배분·배당 동등’ 등 선진국 사례 참고해야미국에서는 계열 분리 시 기존 주주에게 신설법인 주식이 자동 배정되는 ‘비례 배분’(pro-rata distribution) 원칙이 적용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심사를 통해 사업 독립성과 공정가치 평가 등을 확인한다. 소액 주주에게 신주가 배정되지 않는 한국의 물적분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GE는 지난 2023년 1월 GE헬스케어를 분사하며 GE 주식 3주당 1주를 비례 배정했다. 지난 2024년 4월에는 GE버노바를 분리하면서 4주당 1주를 배정했다. GE의 소액 주주가 기존 GE에어로스페이스 주식을 유지하며 두 신설법인의 주식까지 자연스럽게 보유하게 되면서 투자자들의 총 포트폴리오 가치는 시장 평균을 웃도는 약 15~20% 상승률을 기록했다. 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는 지배구조 규범을 통해 계열 분리 시 독립적 가치 평가와 소액 주주 투표를 요구한다.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 상장사는 분할 전 주주 75%의 찬성을 얻어야 하며, 이익배당은 각 주주가 가진 주식 수에 따라 지급해야 한다는 ‘배당 동등 원칙’이 적용된다. 지난 2020년 유니레버의 소비재·차(음료) 사업부 분리에서 모회사와 신설법인의 공정가치 평가가 사전 승인받은 사례처럼 실효적으로 작동했다. 이러한 규범은 한국 물적분할의 주총 미비와 근본적으로 달라 소액 주주 보호의 모범으로 평가된다.‘배당 동등 원칙’은 분할 전후 동일 기업의 보통주에 대해 동일 배당을 법적으로 강제한다. 모회사 배당률을 신설법인이 계승하도록 명시해 주주 포트폴리오 연속성도 유지할 수 있다. FRC 지침상 분할 후 2년 동안 배당 정책 변동 시 별도 주총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난 2022년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소비자헬스케어(Haleon)를 분사할 때 모회사 배당률 3.5%를 신설사에 동일 적용해 주주 불만을 최소화한 바 있다. 지난 2017년 시행해 지난 2020년 완성된 유럽연합(EU)의 주주권 지침(SRD II)은 계열 분리 시 총수 일가·임원 등 특수관계인의 사익 편취를 차단하는 핵심 장치다. 연간 매출 5% 이상의 관련 당사자 거래는 독립 이사회의 사전 심의와 소액 주주(5% 미만)의 정보공개권·반대 청구권을 부여한다. 정보공개권은 관련 당사 거래에 질의응답권을 가진다. 관련 당사자 거래 규모가 연 매출 5% 이상일 경우 소액 주주는 반대 청구권을 통해 독립이사회 심의 전 서면 반대 의견을 제출하고 주총 표결권을 행사하며 주식매수청구권까지 발동할 수 있다. 독일 증권거래소(DAX)와 프랑스 파리 증권거래소(CAC)에 상장된 기업은 분할 전 PwC와 KPMG 등 대형 회계법인의 공정 가치 평가(DCF·시장 비교법)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이는 대주주 중심 분할 결정의 불투명성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합리적 지배구조의 첫 번째는 주주환원 정책 강화다. 국내 기업의 배당 성향은 20% 미만으로 40%대인 미국과 35% 수준인 유럽에 크게 뒤처진 상황이다. 국내 기업의 주주환원 문제를 해결하려면 배당 성향 30% 의무화와 자사주 소각을 법적으로 강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보율이 1000%가 넘는 삼성전자처럼 현금을 쌓아두지 말고 주주에게 돌려주는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물적분할 시 신주의 주주 배정 의무화다. 현재 소액 주주는 LG화학 분할처럼 새로운 회사 주식을 전혀 받지 못해 지분가치 희석의 피해를 본다. 미국의 비례 배분처럼 모든 주주에게 신주를 비례 배정하고, 사외이사 비율 50% 이상을 의무화해 감사특위가 분할 가치에 대해 사전 검증해야 한다. 세 번째로 기업의 순환출자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집중투표제를 기본으로 전환하고 전자주총 참여율 50% 목표를 세워 소액 주주가 이사 선임에 실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부·기업 공조 필요지배구조 개선에서 정부는 시장 참여자의 행동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룰 메이커’ 역할을 해야 한다. 우선 상법 개정을 통해 소액 주주가 이사 선임·해임, 주주제안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 계열 분리나 기업분할을 추진할 때는 일정 규모 이상 거래에 대해 사전 공시와 설명 의무를 부과해 주주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찬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친족 분리’ 제도의 악용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 분리 후 분할 기업과 모기업 간의 3년간 내부거래 내역 전체 제출을 의무화해야 한다. 부당 지원·사익 편취 적발 시 계열 분리 취소도 명문화해야 한다.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브랜드·부동산 사용료 정상화 ▲거래의존도 50% 초과 시 제재 기준 등을 명확히 하고, 지주회사 비핵심 사업 정의를 구체화해야 한다. 기업에는 자발적 주주환원 로드맵을 제시하는 일이 요구된다. ▲배당 성향 목표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 ▲중장기 자본 정책 방향 등을 미리 공시해 예측할 수 있는 주주환원 계획을 제공해야 한다.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한 이사회 내 위원회가 ▲기업분할 ▲M&A ▲대규모 투자 등에 대해 독립적으로 심의하도록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지배구조 개선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정부와 기업이 역할 분담과 공조를 전제로 움직여야 한다. 정부는 상법·공정거래법·자본시장법을 정합적으로 손질해 ‘계열 분리–분할 상장–일감 몰아주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차단하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기업은 미국·영국 등 선진국의 주주 중심주의 모델을 벤치마킹해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자율 규범으로 흡수해야 한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체계와 지배구조 평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전자투표와 전자주주총회를 정착시켜 국내외 소액주주의 참여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전자투표와 전자주총을 통해 자본비용 절감, 장기 투자자 유치 등도 기대할 수 있다. 계열 분리 등 기업 분할은 총수 일가 승계 수단이 아니라 주주 전체의 가치 제고를 위한 지배구조 혁신의 도구로 전환돼야 한다. 한국 대기업은 계열 분리 등 기업 분할을 단순한 구조조정 도구를 넘어 주주 전체 가치를 극대화하는 지배구조 혁신으로 인식해야 한다. ▲물적분할의 주주가치 희석 문제 ▲순환출자 복잡성 ▲일감 몰아주기 등의 우려를 해소하려면 ▲배당 성향 30% 의무화 ▲신주 비례 배정 ▲사외이사 확충 ▲감사특위 등 선진국 규범을 체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공조해 계열 분리가 분할 상장과 친족 회사 일감 몰아주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차단하고, ▲전자주총 참여율 제고 ▲내부거래 3년 공시 ▲집중투표제 기본화 등을 정착시켜야 한다. 최근 증가세인 물적분할의 폐해를 고려할 때 계열 분리는 총수 일가의 승계 수단이 아닌 모든 주주가 함께 성장하는 수단이 돼야 한다. 이는 한국 자본시장의 국제 경쟁력 회복을 위한 필연적 선택이다.

2026.02.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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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댁·미국댁·중국댁…그들이 던지는 질문 [EDITOR’S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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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인기 있는 숏폼 콘텐츠 중 하나가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이야기입니다. ‘미국댁’ ‘중국댁’ ‘일본댁’ ‘러시아댁’ 등 외국인 아내이자 며느리가 ‘한국에서 살아 보니’라며 내국인은 별것이 아닌 것을 특별하게 전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타국살이가 힘들 텐데도 한국 생활과 문화의 장점과 매력을 전하는 모습에서 친근감과 함께 고마움도 느끼게 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과의 결혼은 낯설고 조심스러운 선택이었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일상이 됐습니다. 실제로 한국인과 혼인 관계를 기반으로 국내 체류 중인 결혼이민자는 2015년 14만명에서 2024년 19만명으로 35.7% 늘어나는 등 매년 증가세입니다. 여기에는 K-팝, K-드라마, K-푸드 등 K-컬처의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한때는 분단국가라는 이유로 ‘한국에 가는 건 위험하다’는 말이 외국인들 사이에서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 문화 강국으로 알려지며 한국을 단순히 방문하는 것뿐 아니라 살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도 늘고 있습니다. 격세지감입니다. 이주민과 결혼이민자, 외국인 노동자는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경제에도 도움이 됩니다. 한국인들은 꺼리는 농업·조선업·제조업 등 힘든 일을 이들이 메우면서 그나마 한국 경제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엇갈립니다. 이민정책연구원이 작년 말 성인 107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38.4%가 ‘이민자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답한 반면, 비슷한 비율인 31.9%는 ‘위협이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민자의 경제적인 위협 형태로는 ‘불법체류·불법취업·탈세 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34.9%), ‘내국인 일자리 침해 및 임금 하락’(28.1%), ‘사회보험·복지 부담 증가’(26.9%) 등이었습니다. ‘일자리 부족 시 이민자보다 한국인에게 일자리를 우선 제공해야 한다’는 응답은 83.0%에 달해 고용 문제에 대해서는 내국인 우선 인식이 강했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국내에 정착한 외국인을 ‘우리 이웃’으로 보기보다는 이방인으로 보는 시선이 여전하고, 일자리와 복지, 안전 문제 앞에서는 경계심을 넘어 분노를 쏟아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극단적인 반이민 정책을 둘러싸고 사회가 양분되는 모습이 결코 먼 나라의 풍경만은 아닌 우리도 직면한 문제입니다. 저출산에 노동력 부족, 글로벌화 등으로 한국인끼리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게 현실인 만큼 외국인을 이방인이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해야 하는데, 이는 개인의 선의에만 기댈 수 없습니다. 외국인 인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노동시장과 지역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선제적으로 조율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사회 통합 역할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 부처와 기관에 흩어져 있는 외국인 관련 업무를 통합·조정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구축하는 것이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2026.02.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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