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힘으로 크는 ‘골드 키즈’
돈의 힘으로 크는 ‘골드 키즈’
▶지난 15일부터 4일간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유아교육전’에서는 도서, 완구부터 가구, 인테리어 소품까지 유아 용품의 최신 경향을 알 수 있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
엄마 뱃속부터 이미 ‘명품족’ 종종 어린이 전용 사진관이나 병원을 이용할 때도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일상용품으로 20만원대 일본산 전자사전 키즈딕과 닌텐도 게임기, 작고 깜찍한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를 갖고 다닌다. 어린이 전용 백화점에 가거나 유치원에서 친구를 사귀려면 우아하고 세련된 품위와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골드키즈 이미지스쿨에 등록해야 한다. 아동의 최근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생활 문화의 글로벌화를 실감하게 된다. 이민훈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해외여행 증가와 세계화의 여파로 지난 10년간 글로벌 경험을 축적해 왔고 이는 ‘아는 것이 없는 소비자’를 ‘모르는 것이 없는 소비자’로 진화시켰다. 안방에 앉아 해외 쇼핑몰을 드나들며 실시간 유행 정보를 체크하고 안목을 높이면서 수입 키즈 용품들을 국내로 대량 유입하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바이올린 레슨을 하는 심태연씨는 얼마 전 갓 돌 지난 딸을 위해 호주산 침대를 140만원에 구입했다. 국내에서 70만원에 팔리는 뻬그뻬레고 유모차는 미국에 있는 동생에게 부탁해 반값에 샀다. 하루 열다섯 병 정도의 엔파밀을 아기에게 먹이는 그는 “우유를 데워 먹이면 영양분이 파괴되는데 엔파밀은 뚜껑을 열고 젖꼭지만 끼워 바로 먹이면 된다. 외출시 휴대가 간편하고 젖병 소독을 안 해도 되니 편리하다”고 전했다. 몇 년 전 첫아이를 키울 때 일본산 유모차를 80만원에 구입한 주부 이주언씨는 “처음엔 국산 유모차를 샀는데 사용할 때 느낌이 별로 안 좋아 1년 만에 바꿨다. 일본 유모차는 품질이나 색상, 디자인이 고급스럽고 바퀴가 굴러가는 느낌이 국산과 다르다. 요즘 주부들은 아이한테 돈 쓰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1~2년 사이 쌍춘년과 황금돼지 해를 맞아 집안에 하나뿐인 ‘골드 키즈(Gold Kids)’를 타깃으로 프리미엄 유아·아동용품 시장이 폭발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눈에 띄게 성장한 키즈산업(0∼14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사업)은 최근 몇 년 동안 연 10∼20%의 급성장을 구가하는 중이다. 유럽산 키즈 용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 쿠크몰의 박강 팀장에 따르면 인터넷 쇼핑몰에서 수입 성인용품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2000년 초부터 유아용품으로 방향을 튼 곳이 많다. 이들이 기존 유아용품 업계와 경쟁하면서 시장이 더욱 커졌다. 그뿐만 아니라 키즈 용품을 취급하는 해외 구매대행 사이트가 급증하고 키즈카드, 키즈보험 등 틈새시장이 속속 생겨나면서 키즈산업의 시장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조차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듀크족(Dual employed with kids)이란 어린 자녀를 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경제력 있는 맞벌이 부부를 일컫는 말.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과 달리 아이를 낳고도 잘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육아와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 아이를 위한 지출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 특징. |
백화점마다 키즈 매장 늘리기 이호배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키즈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시기는 외환위기 이후 아이를 적게 낳는 대신 투자는 몰아서 많이 하는 분위기가 보편화되면서부터다. 맞벌이로 부모 경제력이 커진 상황에서 아이는 줄고 투자가 늘었기 때문에 고가품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렇게 키즈산업 전체 시장 규모가 커진 배경에는 듀크족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린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를 일컫는 듀크족은 키즈산업 마케팅 분야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대상이기도 하다. 이들은 육아와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고 경제력은 있지만 가정생활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시간절약형 상품과 자녀를 위한 상품 구입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명품 열풍을 직접 체험한 세대여서 성인용품의 품질을 자신의 아이에게 그대로 전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귀족적 이미지를 임산부 운동에 접목해 태교 발레 프로그램을 개발한 디큐브댄스갤러리의 김희석 대표는 “태교발레는 클래식 태교음악과 동작을 곁들여 강습시간 외에 집에서 혼자 하기 좋다면서 DVD교본을 달라는 회원이 많다”고 밝혔다. 학습놀이용 완구를 직수입해 판매하는 슈펠가베&셀렉타 고객관리팀 김명숙씨는 “친환경 재료를 사용해 안전성이 높고 오감을 자극하는 기능성 완구이기 때문에 고가 제품이라도 구입하는 소비자가 많다. 특히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놀기에도 좋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인터넷 쇼핑이 보편화되면서 서울과 지방 소비자의 차이가 없어진 점도 전체 키즈산업 시장 규모를 확장시키고 있다. 대구백화점 홍보실 최정희씨에 따르면 올해 본점 키즈 매장의 인테리어를 고급스럽게 바꾸고 동선을 편리하게 구성하는 등 새롭게 확장 이전했다. 본점에 입점한 키즈 의류 브랜드는 총 29개. 이 가운데 국산과 수입 브랜드가 각각 70%와 30%를 차지하고 있다. 최씨는 “국내외 제품을 불문하고 고가 제품을 찾는 고객이 약 30%인데 그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대구백화점 키즈 용품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11%가량 늘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된 유모차와 유아용 카시트는 각각 1507만 달러, 3464만 달러어치로 4년 전보다 유모차는 네 배, 카시트는 두 배 이상 수입액이 급증했다. 수입 고가 제품의 소비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최근 백화점마다 키즈 매장을 토털 멀티숍과 편집숍 등으로 재구성하고 국내외 명품 프리미엄 제품군을 확대 배치했다. 이러한 발 빠른 전망과 변신의 성과는 매출액 증가로 나타났다. 현대백화점은 지난가을 정기세일에서 키즈 매장 매출이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같은 기간 매출이 31% 늘었다. 백화점뿐 아니라 대형마트 역시 키즈 용품 매출이 늘었다. 롯데마트는 올 9월까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했고, 홈플러스 역시 25% 신장률을 기록했다. 통계청의 ‘사이버쇼핑몰 통계조사’에 따르면 2001년 키즈 용품 거래액은 853억원이었다. 2003년 1921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엔 6522억원으로 해마다 급증했다. 올해 9월 거래액은 전년 동월 대비 20.6% 성장했다. 수년간 일본 제품을 수입해 인터넷쇼핑몰에서 판매해 온 에이텍스도쿄 김동현 이사에 따르면 2000년부터 인터넷쇼핑몰을 중심으로 수입 키즈 용품이 물밀듯 들어왔다. 그는 “2∼3년 전만 해도 인터넷쇼핑몰은 저가제품을 사는 사람이 70∼80%였지만 지금은 50% 이하로 떨어졌다. 대신 수입 유아용품을 사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수입 키즈 용품 시장이 확대되고 인터넷을 통해 제품에 대한 정보교환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몇 년 전 맥클라렌 유모차 동호회가 생겼다. 맥클라렌 유모차는 일명 ‘심은하 유모차’로 심은하씨가 사용한다고 알려져 젊은 엄마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김 이사는 “조선호텔에서 동호회 모임을 할 때 영국 대사가 참석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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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 문제 있는 제품 수입도 수입품이 시장을 넓히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온·오프라인의 대형 업체를 제외하고 수많은 영세 수입상이 인터넷 오픈마켓을 무대로 활동하면서 해외 현지 업체나 바이어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주는 것도 부작용의 하나다. 키즈 용품 소호몰을 운영하는 김 모씨는 “유행을 타고 1∼2년 반짝하다 사라지는 브랜드가 많아 단기간에 수입이 중단되는 등 변화가 심하다. 또 많은 물량을 수입하겠다고 큰소리쳐 놓고 샘플만 달랑 받고 잠적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해외 업체의 한국에 대한 신뢰도가 손상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보따리상이나 개인을 통해 들어와 판매되는 제품 가운데 KPS(안전인증) 마크 없이 불법으로 판매되는 제품이 많기 때문에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단기간에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일부 부작용도 따르고 있지만 연 10∼20% 성장률을 기록하며 고공행진 중인 키즈산업은 결과적으로 향후 전망이 밝은 편이다. 이 교수는 “성인 시장보다 키즈 시장의 절대적 규모는 작지만 고품질을 위한 투자 규모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내 아이를 최고로 만들고 싶은 부모들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환경을 볼 때 시장 경쟁력과 규모는 충분히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미 눈높이가 높아진 소비자들은 경제력을 앞세워 더 좋은 품질과 디자인, 안정성이 뛰어난 제품들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민훈 연구원은 “아직까지는 아동용 의류나 제품에 대해 직접 보지 않고 사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앞으로는 온라인 구입을 당연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장이 엄청나게 폭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관련 업계는 좀 더 구체적인 전망과 예측을 내놓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고급형과 저가형을 찾는 양 극단형 소비자가 더욱 늘어날 것이며 유통 채널별 브랜드 차별화도 심화돼 백화점, 할인점, 홈쇼핑, 온라인 상품 등이 뚜렷이 구별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유통 채널별로 각각의 고객층에 맞는 PB(자체 브랜드)제품 개발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수년 간 이어지는 키즈산업의 활황세를 공략하려면 좀 더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이 연구원은 “워킹맘(일하는 여성 주부)이 많아지면서 온라인을 이용하지 않고는 다른 워킹맘을 만날 방법이 없어졌다. 때문에 온라인에서 동호회를 만드는 등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런 소비자 특성을 파악한 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각각의 특성에 맞는 프로모션을 전개하는 등 기존의 오프라인에서 펼치던 형식을 바꿔야 한다”고 충고했다. 키즈 용품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구매자와 사용자가 다르다는 점이다. 때문에 부모와 아이 양쪽의 니즈(요구)를 잘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 교수는 “장기적으로 아이가 구매자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의 욕구를 찾아내는 방법과 마케팅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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