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erenade] 여성감독의 영화엔 뭔가 특별함이 있다
[Seoul Serenade] 여성감독의 영화엔 뭔가 특별함이 있다
서양 영화사에서 1970년대는 페미니즘의 등장으로 여성 영화의 지평이 열린 시기로 볼 수 있다. 한국 영화도 최근년 들어 몇몇 여성 영화감독의 활약이 돋보인다. 이들이 여러 작품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들은 결코 간과하기 어려운 화두다.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은 누구일까?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 ‘미망인’이란 작품을 낸 박남옥(1923~)이다. ‘미망인’은 그녀의 유일한 작품으로 당시로선 대단히 충격적인 여성상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전후 혼란스런 서울에서 혼자 딸을 키우는 전쟁 과부다. 그러나 전통적인 한국의 어머니상과는 달리 그녀는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짐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보상하려 한다.
이 영화가 묘사하는 관계의 복잡성과 대담성은 오늘날 여류 감독들이 시도하려 하는 정서적이고 성적이며 정치적인 영역을 미리 내다본 듯 많은 시사점을 준다. 배우 최은희씨와 그녀의 남편인 영화감독 신상옥씨의 ‘파트너십’은 창조적 협력관계가 뭔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씨의 예술성은 비단 연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녀 자신이 직접 두 편의 영화[‘민며느리(1965)’와 ‘공주님의 짝사랑(1967)’]를 감독했다. 이 두 편의 영화에서 여성들은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든 사회적 역할을 강요당한다. 그러나 이 같은 갈등을 통해 새롭고 합법적인 삶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90년대에 들어서면 변영주 감독의 놀라운 영화세계가 펼쳐진다. 그녀의 3부작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1995, 97, 99)’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이들 다큐 영화는 생존 종군위안부들의 고단한 삶을 표현했다. 첫 번째 작품은 종군 위안부 출신 여성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그들의 현재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았다.
그러나 두 번째 작품에서는 위안부 출신 여성들이 직접 나서서 매우 창조적인 방식으로 영화 제작을 도왔다. 세 번째 작품에선 위안부 출신 여성들이 무대를 해외로 옮겨 다른 나라 출신 위안부들과 만나면서 마침내 스스로의 대변자가 된다. 변 감독이 그 뒤로 만든 두 편의 영화는 흔히 말하는 “상업적”이란 잣대를 적용 받지만 냉정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모두 로맨틱하고 성적인 관계를 다루었지만 판에 박힌 듯한 형식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밀애(2002)’는 부인의 외도를 다루고, ‘발레교습소(2004)’는 성인용 멜로드라마다. 하지만 변 감독은 정상적인 연애와 가정생활을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본다(실제로 그녀의 영화에선 사랑과 가족이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문제로 다뤄진다).
‘발레교습소’에서는 G.O.D.의 리드 싱어인 윤계상을 남자 주인공으로 발탁하는 파격을 시도했다. 그의 스타성과 10대들에게 통하는 섹스 어필을 이용했지만 그 방향이 기발했다(윤씨가 분한 고3 수험생 강민재는 첫 발레수업에서 발레복을 거꾸로 입어 상당히 매력적인 윤계상의 몸매를 재밋거리로 격하시킨다).
21세기에 들어서 의미심장한 3부작이 또다시 나왔다. ‘거류(2000)’ ‘황홀경(2002)’ ‘신여성의 First Song(2004)’ 등 김소영(예명 김정) 감독의 ‘여성사 3부작’이다. 첫 번째 영화는 아버지의 집에서 태어나지만 남편의 집으로 떠나야 할 운명인 여성들의 ‘이산가족화’를 다뤘다.
영화는 다른 여성의 죽음을 기리는 조사(弔辭)도 여성이 직접 쓰도록 한다. 기본적으로 유교사회인 한국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발상이다. 두 번째 영화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성이 한국 영화에서 맡은 기여를 되돌아보았고, 세 번째 영화는 화가이자 시인인 나혜석(1896~1948)의 삶과 작품세계에 초점을 맞춰 범아시아적 현상인 ‘신여성 현상’을 조명했다.
흔히 ‘시간’을 4차원적 존재로 여기지만 이 3부작에선 시간 자체가 4차원이다. 자료보관, 해석, 정서, 도발의 측면에서다. 자료적 측면에선 이들 영화가 역사에서 밀려난 사건들을 되짚고, 해석의 측면에선 시간이 여러 층으로 겹친다(다시 말해 과거가 현재에도 새로운 의미를 띤 채 계속 살아 있다).
정서의 측면에서 시간은 감정적 풍요의 상징이며, 도발의 측면에선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반응을 이끌어내고 행동을 요구하거나 기존의 가치체계 자체를 바꾸게 한다. 김소영 감독도 장편 픽션영화를 만들었다. 독립하기 위해 집을 떠난 동생을 찾아나서는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경/Viewfinder(2009)’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시대의 상실감과 그 회복을 탐구하는 영화다.
흥미롭게도 어머니 죽음 이후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다룬 종결 부분은 여성 관객과 남성 관객 간에 서로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차이를 분열적 현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여성감독의 영화가 다양한 의사소통의 길을 열어 남녀 사이를 초월하는 이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확인시켜준다.
[필자인 얼 잭슨 주니어는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로 한국영화 전문가다. 영어로 보내온 글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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