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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김준태의 ‘세종과 정조의 가상대화’ (17) 물가안정

[Management] 김준태의 ‘세종과 정조의 가상대화’ (17) 물가안정



세종 ‘올해 하삼도(下三道: 전라·경상·충청도)에 흉년이 들어 쌀을 구하기 힘들어지자, 소나 말 등 집의 재산을 가지고 시전(市廛: 상설시장)에 와서 쌀과 바꾸는 백성들이 늘고 있더구나. 그런데 상인들 중에 간사하고 교활한 무리들이 있어서 쌀을 내어 줄 때 표준보다 작은 되와 말을 사용하고, 잡곡이나 모래를 뒤섞는 등 온갖 방법으로 속여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 하여 백성들이 원래 받아야 할 값의 6,7할 밖에 받지 못하나, 당장 먹고 살 일이 급한지라 고발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가련하고, 또 내 자신이 부끄러웠느니라.’(세종18.11.25).



정조 평시서(平市署: 시전을 관리·감독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가 있지 않사옵니까. 평시서를 통해 엄히 감찰하게 하시지요.



세종 ‘경시서(京市署: 세조 때 ‘평시서’로 개칭됨)가 있어서 시전을 감독하는 임무를 맡기고 있지만, 인원도 적고 관리들의 직급도 낮아서 저런 간사한 자들을 징계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구제해 주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헌부로 하여금 세밀하게 감찰하여 법으로 엄히 다스리게 하였느니라.’(세종18.11.25).



정조 소손도 본받아 대처하겠나이다.



유통 과정의 폐해 경계

세종 생각건대, 백성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품목들은 가격이 올라간 후에 부랴부랴 대응할 것이 아니라, 미리 선제적 대처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가령 올해 기후가 좋지 못하여 흉년이 들 것으로 예상되면, ‘나라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쌀을 사전에 방출하여 민가에 판매함으로써, 미리 곡식 가격을 안정시켜놓을 필요가 있느니라.’(세종4.8.1).



정조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소손, 흉년이 예측되면 ‘내수사 등 각 기관이 보관하고 있는 쌀을 시중에 방출하고, 묵은 쌀의 경우에는 가격을 낮추어 팔아 쌀값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사옵니다.’(정조6.4.30). 또한 군량미로 비축하던 쌀도 진제곡(賑濟穀: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한 곡식)으로 사용하게 하였는데, 이에 대해 우려하는 신하들이 있사오나, ‘백성이 있는 다음에야 국가가 있게 되고 군(軍)도 있게 되는 것 아니겠사옵니까.’(정조7.10.7). 그리고 같은 해라도 지역 별로 풍년·흉년이 다르게 올 수가 있으므로, 여유가 있는 지역의 쌀을 쌀이 모자란 지역으로 운반시키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나이다(정조6.8.25). 그런데 이렇게 대처를 하였음에도, 쌀값이 계속 뛰어오르니 이는 도고(都賈) 때문이옵니다. 소손, 요즘에는 어떻게 하면 이 도고의 폐단을 다스릴 수 있을지 고민 중에 있사옵니다.



세종 도고, 도고가 무엇이냐.



정조 전하의 치세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옵니다. 효묘조(孝廟朝: 효종)부터 대동법(大同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공물(貢物: 나라에 바치는 특산물)을 쌀로 대신 바치도록 하였고, 조정에서는 그 쌀로 충당된 경비를 가지고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입하도록 하였는데, 이 때 물품 구매를 대행해주던 상인들을 ‘도고’라 하옵니다. 헌데 이 자들이 물품 생산지에 직접 진출하여 상품을 매점하고, 원료와 생산자를 장악하여 생산과정 자체를 지배하기도 하옵니다. 그리하여 가격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유통과정에서 폭리를 취하니 생산하는 백성과 소비하는 백성 모두에게 해를 끼치고 있나이다. ‘이런 자들이 쌀에까지 개입하여 미전(米廛: 쌀가게) 상인과 무곡(貿穀: 곡식 거래를 통해 이윤을 취함) 상인들과 짜고 쌀을 각리(利: 전매하여 이익을 독점함)하여 쌀 가격을 마구 뛰어오르게 만드니, 나라에서 분기마다 1만석 가까운 쌀을 내놓아도 시장 가격이 안정되는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사옵니다.’(정조5.10.18).



세종 백성을 위해서는 물산(物産)을 고르게 흩어 놓는 것이 우선일터인데, 도고의 무리들이 부정한 이익을 위해 유통을 막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로구나. 그래서 어찌 대처하고 있느냐.



정조 경조(京兆: 한성부)와 평시서를 통해 ‘한강에서 거래되는 곡식들을 사찰하여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는 자들을 잡아내고(정조19.2.10)’, ‘단속을 대폭 늘이고 적발된 자들은 무겁게 처벌하고 있사옵니다만 뿌리를 뽑아내기가 쉽지 않사옵니다.’(정조5.10.18). 이 문제만으로도 소손이 골머리를 앓고 있사온데, ‘신하들은 시장 가격의 안정을 위해 획일적으로 가격을 고정해놓으라는 의견이나 내놓고 있사옵니다. 취지는 좋으나 현실 물정은 모르는 좁은 소견이 아니옵니까.’(정조19.2.10).



세종 그렇구나. ‘시장의 가격이란 오르고 내림이, 물건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거늘 어찌 획일적으로 값을 정해 놓을 수 있단 말이냐. 물산의 흐름에 따라 순리대로 오르고 내릴 수 있도록 놔두어야 한다.’(세종7.6.16). 다만 거래 기준 가격을 매겨 놓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때에 따라 시장가격을 조사하여 평균값을 정해놓음으로써 높고 낮은 가격이 모두 고르게 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크고 작은 상인들의 의견을 묻고, 시장의 실정을 조사하여 값을 계속 고정시킬 물건, 1년이나 3개월 단위로 가격을 조정할 물건, 채소나 생선·고기처럼 수시로 값이 변동하는 물건 등으로 분류한 후, 그 상황에 맞게 거래 기준 가격을 정하고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지 항상 주시해야 할 것이다.’(세종27.12.13). 별다른 사유가 없는데도 기준가격보다 시가가 오른다면, 바로 그 원인을 조사함으로써 매점매석 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정조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소손은 시장을 통한 물산의 건전한 거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옵니다. ‘장사꾼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인데, 물건 값을 고정해 놓음으로써 그들의 이익 추구를 막아버린다면 도성에서는 이익을 내지 못하겠다고 판단하여 배를 돌려 다른 곳으로 떠나버릴 수도 있음이옵니다.’(정조19.2.10). 소손은 매점매석을 엄격하게 단속함과 동시에, 시장거래를 활발하게 만들고자 하옵니다. 그러면 전국 각지의 장사꾼들이 폭주(輻輳: 몰려들도록)하여 도성 안에 물산이 많이 쌓이게 되고, 가격 또한 자연스레 떨어질 것이옵니다.’(정조16.8.24).



정부 소비 물량도 조절

세종 너의 말이 옳다. 아울러 ‘본디 돈과 물가(物價)는 한쪽이 쇠락하면 한쪽은 상승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돈의 값어치가 떨어지면 나라에서는 묵은 쌀, 콩, 포목, 해산물과 같은 물건들을 팔아서 돈을 거둬들여 물가를 낮추고, 돈이 귀하게 되면 나라에서는 현물을 사들여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세종8.11.1). ‘풍년이 들었을 때는 곡식을 사들이고, 흉년이 들었을 때는 곡식을 푸는 것과 같은 원리니라.’(세종27.3.17). 그래, 그 밖에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너는 어떠한 조처들을 취하고 있느냐.



정조 백성들에게 필요한 물품이 사치로 낭비되는 것을 단속하였사옵니다. 근래에 ‘사치스러운 술집이 범람하여, 곡식이 낭비되고, 고기와 생선 태반이 술안주로 쓰이며, 진수성찬이 무절제하게 차려져 시장의 반찬값이 뛰고 있었사옵니다. 하여 이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나이다.’(정조16.9.5). 또한 정부 기관에서 소비하는 양도 줄여, 백성에게 가는 몫이 더 많아지도록 하였사옵니다(정조2.12.21).



세종 잘 하였다. 물가는 백성들의 삶과 직결되는 것이다. 항상 주목하여 대처함으로써, 백성들이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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