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볶는 기계 커피 로스터기로 진화하다
콩 볶는 기계 커피 로스터기로 진화하다
시작은 곡물 볶는 기계 제작이었다. 1989년 여름, 시장 한모퉁이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깨를 볶고 있는 상인을 본 김용환 태환자동화산업 대표는 자동볶음기 ‘도리깨’를 개발했다. 식자재를 납품하던 김 대표가 로스터기(볶음기)개발에 나서게 된 계기다. 김 대표는 “바닥이 둥그런 솥에 빗자루질을 하며 깨를 볶고 있는데 시간도 많이 걸릴뿐더러 위생적으로도 좋지 않아 보였다”며 “고교와 대학에서 기계를 전공한 터라 소형 볶음기를 만들어 납품하면 돈을 벌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1991년 서울 고척동 공구상가에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작은 점포를 얻어 개발을 시작한 지 2년.그는 재래시장의 참기름, 떡방앗간, 건어물집 등에 자동 볶음 기계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선식 열풍이 불면서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가 커피 로스터기를 접한 것은 1998년이다. 동서식품으로부터 보리 볶는 기계 주문을 받고 중국 심양 공장을 방문했는데 당시 프로바트라는 독일산 커피 로스터기에 보리를 볶고 있었다. 그는 그 제품을 분해해서 기술을 파악했다.
“이듬해 한 원두커피 업체로부터 커피 로스터기 주문을 받았어요. 몇 달을 매달린 끝에 첫 납품에 성공했죠.한번에 25㎏을 볶을 수 있었는데 반응이 꽤 괜찮았어요.얼마 전 그 회사에 갔더니 그 기계를 지금도 잘 사용하고있어 기분이 좋더군요.”김용환 대표는 국내 최초로 커피 로스터기를 생산했다. 곡물 볶는 기계를 제작하던 김 대표에게 커피 로스터기 제작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한국에도 원두커피 시장이 형성될 거냐는 것이었다.
국내 커피 로스터기 시장 70% 점유“사실 2000년 초만 해도 커피 로스터기가 귀했어요. 원두커피에 대한 수요가 없으니 공급자도 드물었던 거죠. 게다가 독일제 등 수입제품은 가격이 상당했거든요. 하지만 원두커피 소비가 꿈틀대기 시작했죠. 당시 커피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원두커피 시장의 가능성을 봤어요.”
국내 첫 커피 로스터기 생산은 업계의 빅뉴스였고 반응도 상당했다. 12㎏ 용량의 커피 로스터기 주문이 이어졌고 이후 6㎏, 3㎏, 1㎏등 소형 용량을 개발하면서 골목에 있는 로스터리 카페까지 공급 범위를 넓혀갔다.현재 태환자동화산업은 국내 로스터기 시장의 70%를차지하고 있다. 전국 250개 바리스타학원 중 150여 곳에 제품을 공급했다. 특히 로스팅 교육을 하는 학원의 경우 90%가 이 회사 제품을 쓴다.
김 대표는 “교육과정을 수료한 사람들이 로스터리 카페를 창업할 때도 우리 제품을 찾는다”며 “몇 해 전 드라마‘커피프린스 1호점’이 인기를 얻으면서 로스터리 카페가 급격히 늘어난 것도 매출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세계적으로 로스터기는 독일과 터키 제품을 알아준다.독일은 뛰어난 기술력으로, 터키는 커피문화의 발상지라는 상징성 덕분에 세계 로스터기 시장에서 맏형 노릇을 해왔다. 김 대표는 국내 시장에서의 높은 점유율에 대해 “기술력에서 뒤지지 않아 가격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태환자동화산업은 특허를 여러 개 가지고 있다. 특히 1997년에 개발한 진공이송장비(뉴 매직 콤비어)는 기업의 인지도를 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볶은 재료를 바람을 이용해 잡물을 털어내고 이송하는 방식으로 CJ햇반쌀, 풀무원 생식, 대상 두부콩, 남양 커피믹스 이송라인등에 공급했다. 뿐만 아니라 전자·전기장비, 반도체 부품 이송라인에도 적용돼 이송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파우더를 잡아낸다.
로스터기 기술력의 핵심은 볶는 재료의 물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맞는 온도로 가열하는 것이다. 특히 커피로스터기는 짧고 강하게 로스팅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추출이 잘 되기 때문이다. 태환자동화산업의 주력은 열풍 로스터기인 ‘프로스타’. 열풍 로스터의 장점은 복사열과 열풍을 이용해 생두 1㎏을 3분30초 만에 원두로 볶아낸다는 점이다. 드립 로스터기보다 네 배나 빠르다. 풍부한 열풍이 원두 내부까지 균일하게 볶아내고 풍부한 맛과 향을 뽑아낸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김 대표는 경기도 파주에 ‘로스팅 하우스’를 설립했다.바리스타 교육과 함께 생두 공급, 원두 가공을 병행하고 있다. 로스터리 카페 양성소인 셈이다. 김 대표의 얘기다. “커피 로스터기 구매 트렌드를 보면 1㎏에서 3㎏, 다시 6㎏으로 용량이 커지는 추세입니다. 커피 소비자가 늘면서 커피전문점 매출이 늘고 그래서 대용량을 다시 찾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죠. 요즘엔 전체 매출의 70%를 커피 로스터기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3년 내 전세계 30개 대리점 목표김 대표의 목표는 3년 안에 전세계에 30개의 대리점을 개설하는 것이다. 생두 등 커피 재료는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커피를 볶는 로스터기 만큼은 우리 것을 수출하겠다는 포부다.가격과 품질 면에서 경쟁력을 보여 해외 판매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2년 전 중국 상하이에 상하이태환상무무역공사라는 지사를 설립했고, 베이징올림픽 메인스타디움 지하상가와 상하이에 ‘커피공창’이라는 안테나숍을 오픈했다.
호주 멜버른 대형할인마트에 원두를 납품하는 업체에 대용량 로스터기를 납품했다. 독일·스웨덴·홍콩·베트남·인도네시아·캐나다·미국·일본 등에는 현지 에이전시를 통해 수출하고 있다. 최근엔 제3세계 보급용 로스터기 개발에 나섰다.
김 대표는 “무엇보다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디자인에 각별히 신경 쓰고있다. 지난해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A)가 주최하는 전시회에 기관차 모양의 로스터기를 출품해 주목받았다.그는 “올해 상반기에만 미국·일본·중국·호주·오스트리아 등 9번의 해외 전시회에 참여했다”며 “여러 나라의 커피 관련 대회에 협찬을 해서 인지도를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태환자동화산업의 지난해 매출은 64억원. 올해는 80억~9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호주·스웨덴·인도네시아 등에서 커피 로스터기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며“11월 중에 에스프레소머신, 카카오펀칭기 등 새로 개발한 제품들을 시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월급 안 들어왔네"...직장인 10명 중 4명 임금체불 경험
2국내 기업 절반, 내년 '긴축 경영' 돌입...5년 새 최고치
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예산 증액, 정부가 수정안 내면 협의”
4애플 손잡은 오픈AI, 챗GPT 영향력 키운다
5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 동의”
6가전도 '구독' 시대...삼성·LG 가전 구독 경쟁 본격화
711월 수출 전년比 1.4% 증가...14개월 연속 '수출 플러스'
8서민 지갑 꽁꽁 얼었다 ...소매판매지수 8개월째 '마이너스'
9'스타벅스의 최대 경쟁자' 스페셜티 커피는 왜 특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