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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 미군이 해외에서 유일하게 수리 맡겨

Business - 미군이 해외에서 유일하게 수리 맡겨

군용기 정비·수리·정밀검사 가능…보잉·에어버스 부품 제조 수주 늘려



부산 김해공항 활주로 뒤편에는 비닐하우스가 쭉 늘어서 있다. 아무것도 없을 것처럼 한적한 이 길을 따라 버스로 5분여 가면 낯선 공장 하나가 나타난다. 겉에서 보면 일반 물류창고처럼 보이는 이곳이 대한항공의 ‘테크센터’다. 민간 항공기뿐만 아니라 한국 공군과 주한미군, 주일미군의 비행기가 쉴 새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전략 방위산업체다. 입구부터 겹겹의 보안장치가 즐비해 위압감이 느껴진다.

그동안 대한항공은 테크센터 공개를 꺼렸다. 무슨 비행기를 수리하고 있는지, 어떤 부품을 생산하는지 등이 모두 보안사항이기 때문이다. 특히 군용 헬리콥터와 전투기, 무인정찰기 등을 다루는 기술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민감한 정보다. 자랑하고 싶어도 알리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그러나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정부의 전문 계열화 제도를 거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테크센터가 군수보다 민수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해외 항공사 제조 물량이 늘어났다. 이제는 기술력을 공개해 해외 영업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르려고 한다.

테크센터는 1976년 설립 때부터 군수목적이 뚜렷했다. 1974년 11월 북한군의 땅굴이 발견되고 이듬해 4월 베트남이 공산화하는 등 공군의 국방산업 필요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돈으로만 700억원을 들여 만든 테크센터는 헬리콥터 300대를 조립할 수 있는 규모였다.

1970년대 각종 전투기의 창정비(완전 분해 후 재조립)와 한국형 전투기 생산을 담당하던 곳도 테크센터였다. 현재 테크센터는 서울 여의도 공원의 3배 면적(21만평)에 2727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외부용역 인력까지 더하면 3600여명이 테크센터로 매일 출근한다.



여의도공원 3배 면적에 3600명 일해공장 안 쪽으로 들어서면 60여개 건물이 즐비하게 서 있다. 정비창은 김해공항 활주로와 연결돼 있다. 정비공장과 김해공항 사이는 너른 활주로가 끼어있고 테크센터는 일반인들이 다니는 쪽에서는 볼 수 없는 각도에 위치해 있다. 테크센터는 일반 기계 산업 공장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집채 만한 대형 부품을 제작하다 보니 공장 전체가 그리빠르게 돌아가지 않는다. 흔한 컨베이어벨트도 없고 자동화 로봇도 별로 없다. 대신 수백억원에 달하는 탄소강화섬유 경화기나 40억원짜리 대형 압력챔버 등 고급 설비가 널찍하게 떨어져 있었다. 공장이라기보다 연구소 분위기에 가깝다.

11월 27일 오전에는 미해군의 거대한 공중급유기가 정비를 받기 위해 테크센터를 찾았다. 엔지니어 100여명이 나와 급유기의 이모저모를 뜯어보며 미군 대령과 이야기를 나눴다. 조종사 구출용 미군 헬기는 수리를 마친 뒤 날개를 접은 채로 이송을 기다렸다.

창고 안에는 이륙 중에 꼬리부분이 부러진 한국 육군의 헬리콥터가 수리 중이었고, 미공군의 F-15 전투기는 내부 전선을 모신제품으로 교환 받고 있었다. F-16 전투기 수십 대는 도색을 모두 벗기고 주요 부품들을 대부분 빼내는 등 중정비를 받고 있었다. F-16을 정비 중이던 한 직원은 “미국의 워너로빈슨보다 우리 납기가 빠른 것이 큰 장점”이라며 “테크센터가 미군의 유일한 해외 정비 공장이라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항공기 정비사업은 MRO라고 한다. 항공기 정비(Maintenance), 수리(Repair), 정밀사(Overhaul) 등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테크센터의 군용기 MRO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규모다. 주일미군 물량까지 소화하기 때문이다. 항공기 MRO 사업은 장기간에 걸친 기술 축적이 필요하고 대규모 시설투자비가 든다. 하지만 영업물량은 그에 비해 안정적이지 않은 편이다. 이 때문에 세계 대부분 항공사들이 MRO 사업을 하고 싶어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대한항공은 항공기 운송과 제조, MRO를 함께 하는 유일한 항공사다. 국내외 모든 항공사들은 공항에서 자사 비행기에 대한 부품교체와 경정비를 거치고 중정비나 수리는 MRO 전문 업체에 맡긴다. 항공기 중정비 센터는 항공사 전체 자본보다 더 많은 투자금이 들어갈 수도 있어 국내외 대형 항공사도 선뜻 뛰어들길 꺼린다.

대한한공 테크센터는 대한항공의 모든 항공기에 대한 중정비와 정기적인 도색 물량을 받는다. 테크센터의 올해 매출은 6000억원을 넘을 전망이다. 이 중 53%가 보잉과 에어버스 등 민수 사업에서 벌어들인 매출이다. 그러나 테크센터의 영업이 언제나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군수산업 축소에 따라 군수물량이 줄어들고 있다.

군수 쪽은 수지는 좋지만 물량이 들쭉날쭉해서 시설투자를 쉽게 늘리기 어렵다. 민수 쪽은 항공기 대형화에 따라 개발투자비가 무한정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세계 물량은 늘어나는 데 국내 물량은 줄어들어 대한항공 테크센터도 글로벌 영업 비중을 키워야 할 때다.

대한항공은 테크센터 규모를 더 키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2020년까지 1조 5000억원을 들여 제2테크센터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항공기 조립 공장과 민항기 국제 공동개발센터가 들어서는 복합단지다.

지창훈 대한항공 총괄사장은 11월 19일 부산시의회에서 제2테크센터 건립을 골자로 하는 ‘비전2020’을 발표했다. 현재의 테크센터 주변인 김해공항 인근 부산 대저동에 부지 23만㎡ 규모로 짓는다. 부산시의 항공산업클러스터의 일환으로 만들어지는 제2테크센터에는 항공 관련 각종 협력업체들도 입주할 예정이다.



한국산 완제 민항기 기대지금의 테크센터가 날개와 동체 등의 제조와 정비에 주력하고 있다면 제2테크센터는 항공기 조립까지 소화할 수 있도록 한다는게 대한항공의 장기 비전이다. 또 제2테크센터에 국제공동개발센터를 설립해 보잉·에어버스 등과 공동 연구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창훈 사장은 “세계 항공 제조 시장이 연 5000억 달러(약 550조원) 규모인데 현재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0.5%에 불과하다”며 “항공기 제작과 운송을 함께하는 대한항공은 제2테크센터로 2020년 매출 3조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더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도 추진 중이다. 대한항공은 현대중공업과 더불어 KAI 인수의 우선협상대상자다. 테크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의 김종하 상무는 “KAI의 인재와 기술 수준이 뛰어나 대한항공 테크센터와 합치면 높은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서 “현대차와 기아차처럼 인수를 한다해도 각각의 체계를 인정하며 서로 발전적인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전체 항공 기술의 발전을 위해 대한한공이 KAI를 인수해 글로벌 규모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현재 테크센터의 보잉과 에어버스 협력 지분은 180억~200억원 수준. 세계 유력 항공기 제작사가 전체 제작비의 60%를 외주로 주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영업기회는 풍부한 편이다. 테크센터에서 부품을 제작한 뒤 카이로 납품해 조립하는 등 협력관계를 키울 여지가 보이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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